2013. 12. 31. 04:29 Vecchio Primavera
2013. 12. 27. 02:54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먹고사니즘’의 주문 - 용산참사 5주기를 맞아, <두 개의 문>
우리 정말 안녕들 한 건가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한복판 용산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서울시와 삼성물산이 주축이 돼서 진행한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 사업으로 강제 철거된 철거민들의 농성 중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뿐 아니라 당시 사건으로 장애를 입은 이도 있고 그 화마 속에서 평생 씻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다. ‘용산참사’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에 구구절절하고 세세한 설명은 어쩌면 필요하지 않을 테다. 우리는 모두 그 날 저마다의 눈으로 이 참극을 지켜봤고 그 비릿했던 기억을 잊기에 5년은 너무 짧았다. 하물며 그 날과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참극들이 되풀이되는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 2009년 1월의 기록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두 개의 문>의 포스터를 마주하게 되면 그 제목에서 마치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한 추리활극을 떠올리게 된다. 혹은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라는 약간의 사전정보를 들고 영화를 마주하면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을 고발하는 영화를 염두에 두게 된다. 그러나.
<두 개의 문>은 관객을 선동해 모두가 화내고 슬퍼하다 영화의 말미에는 마침내 “진실을 규명하고 정권에 책임을 묻겠다”는 결기어린 다짐이 샘솟게 하는 영화가 아니다. 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까발려 사회적 공론을 형성하겠다는 야심찬 영화도 아니다. 영화는 그저 여기저기서 모아 온 용산참사 당시의 사건 필름들을 지루할 정도로 보여 줄 뿐이다. 그리고 지루한 법정공방. 수 천 쪽의 법정 기록을 읽고 채집하며 증언을 기록하는 작업. 영화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 무엇을 밝혀내려는 욕심도, 관객들에게 분노하고 슬퍼하라며 부추기는 목적도 없다. 그저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는 더욱 알 수 없게 된다. 공권력 남용에 대한 규탄으로 이 참사를 바라보기에 그 대상인 경찰특공대 대원들은 혼란스러웠고 공포심에 떨고 있었으며 그들이 열어야 할 문이 무엇인지, 그 문을 열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도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 영화는 차라리 스릴러에 가깝다. 차례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고 그저 공포에 떨며 서로를 의심하는 일밖엔 못하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6명의 사람이 화마에 휩싸여 죽어갔는데 우리는 그 범인이 누군지 여전히 모른다. 영화 속 법정 장면은 범인의 죄를 밝혀내는 과정보다는 차라리 범인이 누군지를 찾는 과정에 가까워 보였다. 그 불길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은 범인으로 지목돼 교도소에서 4년여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남편을, 아들을 잃은 ‘아줌마’들이 거리의 투사로 변해갈 동안에도 사람들은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정작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
# 무엇을 보고 있었나
영화에 사용된 화면은 두 가지다. (영화 중간에 삽입되는 인터뷰 영상들은 제외하고) 하나는 칼라TV를 비롯한 진보언론매체들의 영상이고 또 하나는 경찰의 채증 영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채증영상을 통해 보이는 현장이다. 두 영상을 각각 씨줄과 날줄이라고 한다면, 두 실이 엮어내는 천이 전혀 성기거나 어색하지 않다.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었던 까닭이다.
경찰의 채증영상은 매우 흔들리고 혼란스럽다.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몰랐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염병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망루안의 사람들이 위대한 혁명을 바라는 투사나 사회의 전복을 바라는 폭도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들 역시 잔인한 살인마도, 피도 눈물도 없는 전투기계도 아니었다. 그 순간 그 곳에서 철거민들과 경찰특공대 양쪽 모두는 겁에 질렸고, 상황을 강요받았다. 그 곳은 마치 서로 죽일 것만을 강요받던 콜로세움이었다.
앵글 한 번 변하지 않는 인터뷰와 흔들리는 채증영상. 영화는 집요할 정도로 그 혼란과 공포,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온 이 잔인한 고요에 관객을 반복해서 끌어들인다. 경찰특공대의 그 그악스러운 잔인함은 어쩌면 공포심의 발로였을까.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은 대부분 노예였다. 그들은 싸울 것을 강요받았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권력은 그 열광을 지배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럼 콜로세움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살인자는 상대 검투사인가, 아니면 콜로세움 경기를 조장한 권력인가. 혹은 열광을 보내던 관객들인가. 그 피해자는 잔인하게 목이 잘린 검투사 노예일까 아니면 열광의 대가로 자신들을 착취를 망각해 준 관객들일까.
# 여러분 부~자 되세요
2000년대 초반 한 신용카드 광고의 카피였던 “부~자 되세요”는 모델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카피는 온 나라의 주문이 됐다. 어딜 가든 사람들은 서로 부자가 되라고 말했다. IMF를 지나면서 신용카드를 비롯한 금융 자본의 비대화가 한국 자본주의의 최대 목표가 된 시점이다. 인생의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뿐이고, 인격은 그저 '돈'으로 추정됐다. 돈이 곧 삶의 유일한 목표이고, 종교가 되어버린 것.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6명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 ‘책임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외면했다. 철거민들의 죽음은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었고, 경찰의 죽음은 전문시위꾼 폭도들의 폭력 때문이 됐다. 이 외면과 전가의 무책임함에서 ‘대중’이라고 불리는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대통령 한 명에게 화살을 돌리거나 과잉된 공권력을 탓하며 거기서 한 발 물러설 알리바이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로마의 권력자들은 콜로세움으로 대중들을 통제했다. 그러나 그 살인 유희에 열광을 보낸 것은 대중이다. 열광이 호출한 잔인함. “부~자 되세요”라는 주문이 호출 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술자리에서 ‘용산참사’이야기로 목에 핏대를 세우던 우리는 집에 돌아와 주식 시세표나 집값의 오름 추이를 뒤적거리고 아이들에겐 공부해서 명문대가고 좋은 직장 가라는 ‘주문’을 외우진 않았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과도한 경제숭배에 있다. 일종의 ‘먹고사니즘’ 태안 바다에 기름이 쏟아졌을 때 도대체 우리는 얼만큼이나 시체 썩은 기름을 소비하며 살고 있었을까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 이는 많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 농토에 ‘서울사람들만’ 쓸 전기를 공급할 송전탑이 들어설 때, 이웃나라에서 역대최고급의 방사능 유출이 일어났음에도 신규원전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 숱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반도체 기업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때 우리는 다시 용산참사를 호출하는 주문을 외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 다시, 두 개의 문
영화에서 ‘두 개의 문’은 얼마나 성급하게 경찰이 투입됐는지, 심지어 이들의 안전조차 보장되지 못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하며 동시에 관객들에게 또 다른 메타포로 다가온다. “ 두 개의 문이 당신 앞에 놓였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하는 질문.
감독들은 기획의도에서 “관객대중 스스로 어떤 위치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해석하고 기억하고 있는 지를 생각해 보는 것, 스스로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정에 동참시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녀들이 말하는 진상규명과정이란 경찰이 망루를 때렸는지, 시너가 얼마나 쌓여있었는지, 경찰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판가름 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사건의 정황과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보다, 용산으로 대변되는 이 ‘먹고사니즘’의 풍경을 호출하는데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 그건 가치의 전환이다. 인간적 삶에 대한 복원.
수전손택은 “꼭 강해지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2014년 1월의 기록
이 글을 쓰고 있는 2013년 12월 22일 현재, 경찰은 백여 명의 사람들을 연행하며 정동 경향신문 사옥 내에 소재한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다. 파업 중인 철도노조 위원장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한다. 건물 유리문을 파손하고 출입을 통제하는 십여시간의 작전이 펼쳐졌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들은 “철도노조 위원장은 이곳에 없다”며 경찰을 제지했고 경찰은 시민과 조합원 100여 명을 연행하면서 작전을 강행했다. 역시나 경찰이 찾던 철도노조 위원장은 거기에 없었다. 더욱이 법원은 경찰에 ‘체포영장’을 발부했을 뿐 ‘수색영장’은 발부하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경찰은 헌법의 영장주의를 위반하면서 언론사 건물에 침입해 노동조합 사무실을 수색했으며 그마저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물러나야했다는 것이다.
5년전 이 맘때, 재개발 사업을 위해 십 수 명의 철거민들이 올라 “살겠다”고 외치던 망루를 공격하던 모습과 놀랍도록 유사해 보이는 건 그 때도 지금도 추운 겨울이어서만은 아니다. 공적 재산인 토지와 철도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만드는 사회의 ‘주문’이 사뭇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고액연봉자 주제’에 파업씩이나 한다며 손가락질을 하는 오늘의 모습에서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떼거리를 쓴다고 비판하던 어느 날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 덧
민주주의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자신의 삶에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이겠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일이란 어쩌면 아주 간단한 일이다. 내 삶을 좌우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 내 삶을 결정하는 나의 욕망이 주식시세표인지, 부동산시세표인지. 혹은 우리의 행복을 규정하는 것이 우리 자신인지 아니면 이 먹고사니즘의 사회가 규정한 “부~자 되세요”라는 주문인지.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자신에게 물어보자.
진짜, 정말 우리는 안녕들한건가.
2013. 12. 13. 06:02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군복을 벗고 찾아온 교정에는
막바지 진달래만큼이나 싱싱한 젊음들이 배타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네.
시험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언어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그때쯤 깨닫게 되지.
남몰래 도서관에서 시험지 채우는 연습을 하는 동안
세월은 시험지 채우기보다는 쉽게 흘러가지.
김영하 - 다시 은둔을 꿈꾸는 친구에게 (H의 결혼에 부쳐)
2.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좋다거나 아이큐가 높다는 얘기는 뇌세포의 개수가 절대적으로 많거나 뇌용량이 큰 것 보다는 '시냅스'의 문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냅스란 한 뉴런에서 다른 세포로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 지점을 뜻한다. 그러니까 뇌신경과 뇌신경사이의 전달통로.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이 연결통로가 다양할수록 머리가 좋다는 말일텐데, 그건 아마 사고의 유연함, 내지는 다각적 관찰, 혹은 이면을 볼 수 잇는 힘. 정도로 해석되겠다.
사람은 살면서 보통 (주입된 것이든 스스로 익숙해진 것이든) 자주 사용하는 사고체계, 그러니까 늘 사용하는 시냅스만을 사용하면서 나머지 것들은 퇴화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살던대로만, 편한대로만 살아서 우리는 조금씩 더 멍청해지고 있다는 이야기. 이게 과학적으로 맞는 것이든 아니든 그건 그 다음의 문제겠다.
3.
어쨌든 수다떨어서 밥먹고 살겠다고 나선 이상, "시험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언어를 상실"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사실 원고지 한 장, 어느 땐 (지금도) 이 포스팅 하나를 다 채우지 못해 끼적거리고 지우기를 수십번 반복하기 일쑤다.
4.
말을 앗아가는 것은 세상이나 사회.라기보다는 그것에 의해 빼앗기고 있다고 규정하고 단정하는 스스로인 게 더 정확하겠다. 나이드는 것은 세상을 조금 더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냉철하고 객관적이라는 것은 거기서 한발작 물러서는 것이라고, 한발짝 물러섰으니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 철이드는 것은 내 일이 아닌 일에 열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게 '쿨'하게 살아야만 견딜 수 있었을까. 혹은 '잉여'를 자처해야만 좀 덜 부끄러웠을까. 그렇게 어느새 사고는 단절되고 언어를 상실하고 시냅스가 끊어져 멍청해져서는. 인지부조화, 대가리를 짚더미에 쳐박고 내가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 세상도 나를 보지 않을거라 여기는. 닭들마냥.
5.
저 대자보가 회자되고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저 자리엔 비슷한 내용의 대자보들이 숱하게 붙었었을테고, 저 대자보를 쓴 친구도 이미(아마?) 저 자리에다 여러차례 무언가를 호소하고 바랐을거다. 다만 그걸 보지 '않은' 것은. 쿨하게 살아야만 견딜 수 있었고 잉여를 자처해야만 좀 덜 부끄러웠을 사람들, 나나 당신. 그렇게 할 말도, 들을 말도 조금식 빼앗겨버린 사람들.
(어쩌면 저 대자보 사진 뒤에 보이는 종이들이 어느 토익학원이나 유학원, 혹은 대기업 공모전 포스터일 것이란 짐작이 어렵지 않다.)
6.
새벽에 괜히 센치해져선 이런 되도않는 중언부언을 끼적이고 있지만 이건 올곧이 부끄러움이고 그래서 자기위안이다. 다만.
비록 어느 순간 행동하고 나서고 또 깨지고 쥐어박히고 하지는 못해도. 말만이라도 그것만이라도. 말만은 잃지 말아야지. 늘상 들었던 말이 "주댕이만 살아가지고"였으니 그나마 산 주댕이라도 고이고이 간직하고 살아야지. 그래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시험지를 채우거나 이렇게 누구 하나 읽지도 않을 잡설을 끼적이는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지.
7.
여담이지만, 대학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던 대자보도 그렇고 저 학교는 대자보 참 잘 쓰네.ㅋ
내가 쓴 (악필)대자보를 보고 굳이 뜯어와서 "학우들 우롱하지 말라"던 그 잔인한 기억이 문득 새록새록하구만. 대자보 꿈나무를 짓밟았어. 엉엉엉
2013. 11. 3. 16:00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어쩐지 콧구멍이 벌름거리기 시작했던 건 최은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던 순간이었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던, 그야말로 여배우의 얼굴.(그건 지금의 젊은 여배우들에게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감상을 느끼는 것과는 다른 층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옷 매무새를 만져주는 여든 다섯의 스타일리스트, 노라. 육십여년 쯤은 가볍게 뛰어넘어버린, 아니 그보다는 육십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이 어쩐지 가슴벅차고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건 아마 '시간'이 세겨놓은 주름과 그 주름의 골마다 박힌 지혜와 어리석음, 그걸 고스란히 견뎌온 묵직한 삶.의 아름다움이었을테다.
그리고 기어이 눈물이 흘렀던 건 노라노 선생이 스무살 남짓 젊은 여자애들과 전시회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었다. 기억이 전승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여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나이들었지만 낡지 않은 여자와 나이들어도 결코 낡고 싶지 않을 (혹은 낡지 않을) 여자들의 만남. 역사란 고루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가슴벅찬 것이며,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주조하는 것이라는 명징한 증명이었다.
영화는 노라노를 1세대 패션디자이너로 추켜세우거나 그녀의 위대한 업적을 되짚어 찬미하는 지루한 우를 범하지 않았고 그녀의 삶도 과거에 연연하고 이름에 기생하는 멋대가리 없는 것이 아니었다. 노라의 전시회 라비앙 로즈는 그녀의 60년 디자인 인생을 되짚고 회고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난 60년을 딛고 다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영화는 "때로는 어리석었고 때로는 현명했었던" 그녀의 삶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가장 적절한 거리에서 관찰한다. 그녀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녀의 성과도 오류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 반복과 인정이 바로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라는 깨달음을 목격한다.
삶을 살고, 견디고, 다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실은 장밋빛 인생. 기꺼이 올해의 영화다.
- 영화를 보고나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엄마를 찾는다. "엄마 노라노라는 디자이너를 알아요?"
- 당연히 우리의 엄마들은 대부분 노라노의 옷을 한두번 쯤은 입어봤거나, 혹은 노라노의 샵을 기웃거려 봤다. 그녀들의 전성시대. 엄마랑 같이 영화를 다시 보러가야지.
2013. 10. 28. 05:03 Vecchio Primavera
1.
오늘의 심야조깅(을 빙자한 산책)은 9.64Km.
브금으로 아이돌 댄스를 주로 듣는데, 갑작스런 변박으로 혼란의 카오스에 빠졌던 아이야를 무사히 넘겨서 기쁘기 한량없다. 하지만 최고의 러닝브금은 역시 로드파이터와 컴백. 역시 젝키가 짱.
2.
엘지의 플레이오프 광탈이후 야구소식을 단호박 자르듯 단호하게 끊었다. 박펠레 박동희가 두산의 승리를 점쳐서 당연히 엘지가 이길줄 알았는데. 기왕 이렇게된거 두산이 드라마마냥 코시를 우승해줬으면 싶..을리가 있냐. 드라마고나발이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진리를 삼성이 막강 전력으로 증명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두산의 2승.
강제강판 같은 어지간해선 고교야구에서도 안나올 진기명기를 보여주는 두산은 정말 드라마의 팀. 그러니까 삼성 이겨라. 홍홍호옹.
3.
트위터에서 모집하는 공부모임을 신청했다. 인문사회과학과 미학공부. 일단 내주까지 앙띠오이디푸스를 읽어야 하는데 책도 아직 못구했다. 현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일단 내 근본없는 무식함.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무식함보다는 대책없는 게으름이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 그니까 일단 뭐라도 하겠다구요.
4.
김현식 아저씨의 미발표 곡들을 모은 앨범이 나왔다. 버스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그 소식을 발견하곤 기사아저씨의 목을 졸라 차를 돌려 핫트랙스로....향하진 못하고 내려서 버스 갈아타고 갔다. 그리고 아, 목소리. 마침 그 날은 주찬권 아저씨가 죽은 다음날. 얄궃게.
'그대 빈들에'는 김현식 아저씨의 마지막 목소리라고 한다. 2013년 시월에 듣는 90년 시월의 목소리. 그렇게 노래가 남아 사람을, 시절을 돌이켜주는 것. 노래를 불러야지. 죽을때까지 하염없이.
++
세상이 모두 다 내것 같을 때, 나는 저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았네
세상이 모두 어둠으로 덮힐 때, 나는 또 어둠을 걸었네
이젠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나봐 이젠 잊어야할 시간이 되었나봐
5.
이제 여간해선 무협지를 잘 읽지 않는다. 그나마 환상문학이 팔리는 장사가 되니까 우후죽순처럼 온갖 허섭스레기들이 양산됐고 내용은 차치하고 비문투성이에 쉬운 맞춤법도 지키지 않는 무협지가 태반이다. 영웅문이나 천룡팔부를 읽으며 철사장을 연마하고 땅에 떨어진 강호의 도의를 가슴 아파하던 시인묵객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여하튼, 이제는 거의 끊어낸 무협 중독에도 끝내 끊어내지 못하는 무협지가 하나 있는데, 한백림 작가의 한백무림서. 한백무림서가 책 제목은 아니고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 속 세계관에 등장하는 책 이름인데, 작가는 이 한백무림서가 완성되는 이야기를 10여 개의 독립된 시리즈물(그러니까 주인공이 10여 명쯤)로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란다. 한 시리즈가 보통 10권정도 되니까 완성되면 총 100권이 넘는 대하소설이 되는 것. 무협지가 재밌다기 보다는 이 원대한 계획의 진행을 지켜보는 맛이 있다.물론 소설 자체도 소소하고 쏠쏠한 재미가 있다.
작가가 현직 의사라던데, 그래선지 극악할 수준으로 연재진행이 더디다. 지난 권을 읽고 군대에 갔다는 독자가 제대를 했는데도 다음권이 나오지 않더라는.... 그런 수준.... 하지만 요 극악한 작가의 만행에도 기다린 보람이 있어 신간이 나왔다는 첩보를 뒤늦게 입수했다. 내일은 간만에 만화방가서 짜장면을 먹어야겠다.
6.
아, 춥다.
기온이 얼마나 내려갔을 때면 보일러를 틀어도 부끄럽지 않다는 가이드라인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2013. 10. 28. 03:48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공교육 12년간의 모든 노력이 투여될 단 하루에 수험생들은 물론 그 주변사람들도 애가 녹는 시기다.
작년 이맘쯤에는 한 도시에서 십 수 명의 청소년들이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각각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지만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아마 가정, 학교, 사회 어느 곳에도 전할 수 없었던 외로움이었을 테다.
국제중, 특목고, 자사고, 명문대.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교육’보다는 ‘진학’에 방점을 찍고 있다. ‘높은 교육열’은 곧 ‘높은 사교육비’로 이어졌다. 한국은 GDP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교실에는 친구, 우정, 선생님, 꿈, 희망같은 말보다 ‘일타강사’, ‘쪽집게과외’, ‘합격비법’ 같은 말이 넘쳐난다. 최근 어느 사교육업체는 광고에서 “우정이란 그럴듯한 명분으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며 “친구는 네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는다”고 설교했다.
그러나 정말 말만 그럴듯한 우정이란 우리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일까. 그럼 학교란 우리에게.
# 글로배우지 않아도 아는 ‘함께 사는 법’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의 제목은 ‘혹가이도 조선 초중고급학교’(남한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훗카이도’가 올바른 표기지만 영화에서 문화어인 ‘혹가이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본문에서도 혹가이도로 통칭)의 구성원들이 조선학교를 ‘우리학교’라 부르는데서 왔다.
조선학교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재일조선인들이 조국의 말과 글, 조선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세운 학교다. 영화의 배경이 된 혹가이도 조선학교는 북해도 섬의 유일한 조선학교로 초중고등부가 모두 함께 생활하며 학교 아이들 중 일부는 12년의 학창시절을 같이 보내기도 한다.
사실 ‘우리학교’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말이다. 우리집, 우리학교, 우리엄마, 우리편. 한국어는 ‘나’라는 표현보다 ‘우리’란 표현을 더 즐겨 사용한다. 영어의 소유격 ‘My’를 해석하면 대부분의 것들은 ‘우리’로 번역된다. 그건 아마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오직 나만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의 것에 더 가깝다는 인식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하는 경구들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일이란 결국 나 아닌 것들과 관계맺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있다. 그래서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은, 또 그 교육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학교의 본령은 분명히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데 있다.
영화 <우리학교> 속 ‘우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그 교육과 학교의 본령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그 모습이 그토록 뭉클했던 이유는 그 본질에 충실한 학교의 모습에 그대로 비치는 지금 이곳의 학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혹가이도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타국 땅에서 고국의 말과 글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학내 조선말 100% 사용’이라는 약속을 정한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오직 조선말만 사용하며 생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려서부터 조선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편입생들은 더 그렇다. 어린시절 내내 일본학교에 다니다 고등학생이 돼서야 조선학교로 편입한 ‘려실’은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일본어로 말하지 않으면 목표달성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자연히 아이들과는 계속 서먹해지고, 적응은 곱절로 힘들어지는 악순환. 그러나 반장 재훈은 “조선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편입생들이 일본어를 쓰는 것은 약속을 깨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잘 쓰지도 못하는 조선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수이 조선말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물꼬를 터주는 일. 려실은 후에 그 날을 떠올리며 “울듯이 기뻤다”고 말했다. “말하지 않았는데 너는 어찌 나의 사정을 알아주었느냐”면서.
<우리학교>가 개봉한 2007년, 남한의 서점가에는 <배려>란 자기계발 서적이 불티난 듯 팔리고 있었다.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배려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3, 40대 직장인들에게 이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며 려실에게 일본어를 써도 괜찮다고 말해주던 재훈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 큰 어른이 돼서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책 한 권으로 배우겠다고 덤비는 모습이 어쩐지 ‘말하지 않아도 친구의 사정을 이해하는’ 열일곱 재훈의 진짜 배려 앞에 부끄러웠다.
나이가 들면 분명 알게되는 일들이 있다. 공존하는 삶,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결국엔 자신을 살아가게 해준다는 것. 어쩌면 요즘 힐링이니 위로니 격려니 하는 ‘말’과 ‘글’이 득세하는 것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 때문이겠다. 그러나 사실 이미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살 부대며, 다투고 화해해가며 배웠어야 할 ‘생활’들.
“우리를 보시라 그 어디 부럼 있으랴,
마음껏 배워가는 이 행복넘치네”
-<우리학교> OST ‘우리를 보시라’ 中
# “어려움이 있을 땐 사양 없이 우리학교를 찾아오십시오”
군사부일체라고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선생님들은 ‘담탱이’나 ‘꼰대’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양 극단의 어느 쪽이든 선생님이란 존재는 언제나 어렵고 멀다.
그러나 ‘우리학교’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지근거리에 있다. 그들은 아이들과 말뚝박기를 하고 함께 케이크를 만들고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우리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은 통제와 감시, 훈육의 대상 보다는 말벗이고 놀이동무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동생에 가깝다.
그건 우리학교의 특성보다는 어쩌면 재일조선인 공동체의 유대감에 가까울 수도 있다.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신분으로 온갖 박해와 소외를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 다시 그런 삶을 이겨나가야 할 다음 세대의 동생들, 후배들에게 갖는 안타까움 섞인 사랑. 때문에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지식의 전승이나 진학지도가 아니라 서로를 의지하고 기대는 법을 가르친다. 낮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 (하지만 사실 어느 시간 어느 공간이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 이방인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영화의 말미, 혹가이도 우리학교 21기들의 졸업식에서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학교생활의 추억을 낱낱이 이야기하며 눈물 짓는다. 그리고 그 추억의 한 켠에는 반드시 선생님들이 있다. 아이들의 고백은 선생님과 학교가 등장하는 거창하고 감동적인 미담이 아니다. 그저 함께 케익을 만들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땀을 흘린 작고 소소한 기억들. 강사나 교사, 꼰대, 담탱이가 아니라 ‘선생님’이 되는 일은 그렇게 아이들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 스며드는 것 부터였다. ‘우리학교’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선생님은 ‘먼저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액면 그대로의 의미다.
선생님들은 험난한 세상을 맞이할 아이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땐 사양 없이 우리학교를 찾아오라”고 말한다. 언제까지고 기댈 수 있는 선생님과 학교가 돼주겠다는, 외롭고 고단한 삶을 함께 견뎌주겠다는 소중한 다짐과 약속.
# 이념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조총련, 재일조선인, 북한. 남한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낮설고 두려운, 또 어려운 이름들이다. ‘우리학교’의 교실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아이들은 ‘북조선’을 조국이라 부른다. 운동회엔 인공기가 걸리고, 표준어가 아니라 문화어를 배운다. ‘우리학교’의 사람들은 “고향은 남쪽이지만 조국은 북쪽”이라고 여긴다. 어쩌면 어떤 이들은 ‘종북빨갱이’를 운운할지도 모르겠다.
해방이후 남한도 북조선도 선택하지 않고 사라진 나라 ‘조선’의 국적을 선택했던 동포들을 남한정부가 어떻게 외면했는지, 일본정부가 얼마나 박해했는지를 논하면 그들이 조국을 북쪽이라 말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학교’의 아이들에게 남과 북, 북과 남은 실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대립하고 적대하는 관념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들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이들보다 더욱 분단의 비극과 지난시절의 비극에 맞닿아 있다. 등굣길에 치마저고리가 찢어지고, 수없는 협박전화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 국적선택을 강요받으며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삶. ‘우리학교’의 아이들에게 분단이란 모호한 이념의 대립이나 첨예한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일부다. 정작 색안경을 모로 끼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분단을 만들고 대립을 유지하는 어른들.
조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일본 우익들의 입항반대시위를 만났을 때 성에가 낀 버스 유리창에 통일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다. 그건 아마 ‘적대’가 아니라 ‘평화’를 바라는 마음. 오직 그것만이 이 무의미하고 지루한 싸움을 끝낼 길이라는 것을 체득한 아이들의 마음이겠다.
어린 품속에 그려본 사랑하는 조국은 하나였네
오랜 세월에 목이 다 말라도 마음은 서로 눈물로 적셨네
- <우리학교> OST ‘하나’ 中
# 학교가 아이들을 키운다는 믿음
어떤 삶과 어떤 교육이 옳은 것이라고 분명히 단정할 수 없다. ‘우리학교’의 모습만이 이상적이고 아름답다고 마냥 찬미할 수도 없다. 고도의 자본주의사회에서 학벌과 경쟁의 승리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작금의 교육현실에서 이상론만을 주절거리고 지금 딛고 있는 현실과 한참이나 동떨어진 꿈만을 강요하는 일이 얼마나 허무하고 의미 없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경쟁하고, 서로를 적대하고, 험난한 삶에 지칠 아이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만큼은 쥐어주고 싶다. 내가 이기는 법보다 우리가 함께 하는 법을 먼저 떠올리고 선생님 눈을 피하기보다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시절,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믿고, 나만 잘 사는 일을 어리석다 여기는 시절. 삶에 그런 한 시절쯤 있어야 평생을 두고 곱씹으며 힘낼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학교. 어려움이 있을 땐 사양 없이 찾아 갈 수 있는 ‘우리학교’. 우리를 언제까지나 키워주고 마침내 최후에는 기대 쉴 수 있는 그런 학교에 대한 꿈.
# 덧붙여
지난번 소개했던 <그리고 싶은 것>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일본은 점차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있다. 북일관계는 해를 거듭하며 악화되고 국제정세도 급변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재일조선인들과 ‘우리학교’들은 전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재일동포들이 북쪽을 조국이라 여기게 된 이유는 남한정부의 무관심과 무기력함 때문이었다.
2013. 9. 25. 03:49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지난 9월 7일,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에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히려 청계천 모퉁이 나무그늘에 앉았다. 주말 오후의 청계천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커플들이 가득했다. 더워 죽겠는데 굳이 손을 꼭 잡고 붙어 앉은 그들에게 속으로는 저주를, 눈으로는 질시와 부러움을 쏘아내고 있을 때 눈에 띈 한 커플, 서로의 땀을 닦아주고 부채질을 해주면서도 간간히 입을 맞추고 떨어져 앉을 줄 모르던, 어느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그 날은 <소년, 소년을 만나다>, <친구사이>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인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와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동성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종로와 청계천 일대엔 레인보우 깃발과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플랜카드가 즐비했다. 동성애자들과 인권운동 활동가를 비롯해 천여 명의 사람들이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메웠다. 바야흐로 동성결혼 시대의 개막.
행정당국이 이 세기의 커플(!)의 혼인신고를 받아줄 지 여부나, 이들의 결혼식에 그야말로 똥물을 뿌린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차치하고 이들의 결혼이 한국 사회의 이성애 중심주의, 전근대적 가족주의에 작지 않은 균열을 낸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담배연기 자욱하고 으슥한 게이바(Bar), 가장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정체를 숨겨야 하는 눈물, 세상으로부터의 소외. 이런 상징들이 그동안의 동성애자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면, 밝은 대낮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열린 이 결혼식은 그야말로 ‘기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 ‘기적’의 시작은 어쩌면 ‘종로’에서부터.
# 종로의 기적
종로는 이태원과 함께 서울의 게이 커뮤니티를 양분하고 있다. 지금도 종로에는 백 개가 넘는 게이바가 밀집해 있고 젊고 어린 ‘꽃띠’들 뿐 아니라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게이들도 아직 녹슬지 않은 ‘게이다’를 발동시키고 있다. ‘P살롱’으로 불리던 파고다 극장과 극장에서 만난 커플들이 슬그머니 모여들던 종로 인근의 다방들은 게이들의 욕망과 낭만, 실연과 희망이 반복되던 곳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게이설이 나도는 어느 시인은 파고다 극장에서 지퍼가 열린 채 복상사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종로가 게이들의 ‘낙원’인 것만은 아니다. 종로의 뒷골목에선 동성애자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종종 일어난다. 게이 커플을 향해 갑자기 달려들어 집단린치를 가하는. 종로는 아니지만 지난 해에는 남산 일대에서도 비슷한 증오범죄가 발생했었고, 마포구청이 LGBT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현수막 게시를 불허하고 철거를 진행한 ‘사건’도 같은 범주에서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 내지는 혐오증)에 해당하는 일이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결혼식에서도 불청객이 난입해 오물을 투척하고 관계자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교회장로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 남자는 “인분과 된장을 섞은 것이 바로 동성애의 현실”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종로에서 한 블럭만 벗어나도 게이들이 받는 시선은 여전하다. 어느 유명 연예인은 동성애를 ‘나쁜교육’으로, 동성애자를 ‘불쌍한 영혼’으로 표현했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극 중에 동성애자가 등장한 이유로 수많은 비난 여론을 감수해야 했다. 여전한 호모포비아의 세상. 동성간의 사랑이 멸시와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축복과 질투(!)의 대상이 되는 일, 결혼을 당연하게 하는 일은 종로 밖의 세상에선 여전히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 가장 리얼한 게이이야기
이혁상 감독과 ‘연분홍치마’가 <종로의 기적>을 내놓기 전에도 LGBT 영화들은 있었다. 그러나 ‘맨얼굴’의 게이들이 자신의 ‘생활’을 노출시킨 작품은 <종로의 기적>이 처음이다. 그동안의 것들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취급하거나 영화의 주변부로 소비하는데 그치기 일쑤였다.
<종로의 기적>의 가장 큰 미덕도 이 지점에 있다. 이혁상 감독은 그동안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했던 혹은 남들과의 다름에서 상처를 받은 이들의 고생담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로인해 ‘인간극장’류의 다큐멘터리가 타자의 고통을 전시하면서 대상을 착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사실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는 가장 손쉬우면서 안인한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덕은 <종로의 기적>에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관객들은 자신들과는 사뭇 다른 양식의 삶의 모습에서 (여기서의 ‘다름’은 성정체성의 다름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 자신을 설득시키는, 이성애자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의 노력을 의미한다.) 느끼는 괴리감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삶이 여상스럽고 보편적일수록 그 농도를 더해간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리얼리티’다. 간혹 관객일반은 피가 튀고 살점이 뜯어지는 장면을 ‘리얼하다’고 표현한다. 또는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린 캐릭터의 불쌍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값싼 동정의 말과 함께 ‘리얼’이라는 수사를 덧붙인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판타지에 불과할 따름이다. (‘진짜 삶’에서 머리가 뜯겨나가고 팔목이 잘려나가는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오히려 ‘리얼리티’는 현실의 고단함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있다. 그리고 모두 그 강퍅하고 고단한 삶에서 자신의 희망을 발견하고 우직하게 기적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
(<종로의 기적>은 게이에 대한 판타지를 깨는데도 적잖이 일조한다. 많은 미드에서 게이는 잘생기고 돈도 많은데 이해심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로 그려진다. 심지어 주인공의 믿을 수 있는 절친. 그러나 <종로의 기적>의 게이들은 배나오고, 술 마시고, 가난하고, 소심하며 가끔 찌질하다. 대부분의 한국남자들이 그런 것처럼)
# 다큐멘터리가 삶을 변화시키는 순간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관찰자의 위치를 고수하며 대상과의 거리유지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면 모든 대상은 카메라를 거치는 순간부터 객관적일 수 없다. 그보다 이미 카메라에 담길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어쩌면 세상에 객관적이고 실체적인 사실 혹은 진실이라는 게 있기나 할까.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본질이니 다이렉트 시네마니 하는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보단 창작자의 의중이 명확히 포착되는 다큐멘터리에 눈이 가는 건 당연한 순리다. <종로의 기적>에서도 감독은 카메라 안의 풍경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이혁상 감독도 “다큐멘터리의 환상과 신화에 얽매이지 않고 감독과 주인공들의 관계가 영화에좀 더 드러남으로 이성애 중심사회를 향한 성소수자들의 메시지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의 촬영 전과 후 등장인물들은 물론 감독의 삶도 확연히 달라진다.
이혁상 감독은 <종로의 기적>을 통해 커밍아웃했다. 처음에는 카메라 뒤에 숨어 대상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역할을 규정했던 감독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선언하는 순간, 스크린과 렌즈로 가로막혀 있던 벽은 허물어진다. 그리고 관객들은 관찰자가 아니라 ‘종로’ 한복판으로 스며들게 된다. 스스로 ‘영화감독’보다는 ‘활동가’라는 이름이 더 편하다는 감독의 말과도, 다큐는 결국 동화(同化)를 위한 작업일지 모른다는 의문과도 맞닿는 순간.
(감독은 <종로의 기적>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변화한 부분으로 HIV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꼽는다. HIV 인권운동을 하는 욜과 석주의 관계에서 HIV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의 일이라는 것을 인지했다고. 애초의 욜의 에피소드는 대기업에 다니는 게이가 겪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은 결국 HIV문제에 대한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 하지만 단언컨대, 기적은 시작됐다
일부러 냉정히 말하면, <종로의 기적>은 흥행에 실패했다. 2006년 개봉한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4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연분홍치마’가 제작한 <두 개의 문>이 7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점을 감안하면 1만 명도 채 동원하지 못한 <종로의 기적>의 스코어는 다소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독립영화, 그것도 다큐멘터리의 스코어로는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다)
호모포비아는 여전하다. 결혼식장에서 똥물을 맞은 김조광수 대표는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행복과는 별개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함께 사는 당연한 일이 정말로 당연해지기까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그건 정말 기적같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기적은 시작됐다. 꽃미남도 아니고 배도 나왔고, 소심하고 가끔은 찌질한 이 보통 남자들이 종로에서 일으킨 기적이 점점 세상을 전염시키길 기대한다. 그래서 사실 행복한 커플에게는 오직 질투와 절망의 저주만 퍼붓고 싶은 내 바람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결혼식 날,주위를 점령한 커플들에게 혹시 망나니 호모포비아로 보일까 염려하며 선량한 눈빛을 가장해 축하의 말만 전하느라 내심 무척 힘겨웠다.
# 덧붙여, 연분홍치마
<종로의 기적>은 물론 <두 개의 문>같은 의미있는 활동을 계속하는 ‘연분홍치마’의 이름을 꼭 언급하고 싶다.
<종로의 기적>을 제작한 ‘연분홍치마’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이다. 연분홍치마는 1년에 한 번 꼴로 성적소수문화를 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발표한다. 그동안 <3 X 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을 발표해 기록적인 관객동원과 동시에 올 해의 독립영화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연분홍치마’는 최근 제작한 <노라노>를 마치고 활동 1기를 정리하고 새로운 활동을 준비한다고 한다. 의미있는 주제를 가장 탁월하게 표현하는 ‘연분홍치마’가 앞으로도 지속해 성적소수문화환경에 기여하는 재밌고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2013. 9. 23. 04:06 Vecchio Primavera
1. 엘지트윈스의 십일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축하합니다. 이런 날이 오다니 엉엉엉.
2. 연휴가 끝나고 어느새 밤이 낮 보다 길어지고 오곡과 백과가 영근다는 추분, 바람이 서늘해졌다.거두어 들이고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계절.
3.오래된 동네의 집 앞 으슥한 골목길엔 온갖 풍경이 다 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들과 세상이 고되서 연휴마저 고된 아저씨들과 남들 다 퇴근하는 시간에 비로소 분내 풍기며 출근하는 아가씨. 오늘은 헤어지는게 못내 아쉬운 어느 커플의 사랑의 밀어가. 요놈들아 내가 다 듣고 있다. 얼른 뽀뽀하고 헤어져라. 내일은 출근해야지.
4. 베란다에서 바라보면 예전엔 우리 학교였던 건물이 보인다. 늘 그런건 아니고 문득 괜히 아쉽고 쓸쓸하고 서늘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건 아마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시절에 대한 죄스러움 같은거다.
5. 타인에 대해 조금 더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까 종종 "자니?" 같은 문자를 보내면 이해해 주시길 바람니다. 자니??
2013. 9. 13. 18:30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영화보고 조용히 알바하고 공부할 계획이었지만. 그냥 술마셔야겠다. 아무래도 홍상수는 주류업계와 내밀한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게 분명하다.ㅋ
다만 선희처럼 예쁘고 착하고 안목있고 자기 욕망에 솔직한데다 또라이 기질도 있는 여자랑 대낮부터. 이 영화, 술은 환할 때 먹는거라고 강변하듯 주구장창 낮술만 마셔댄다.
여튼 선희처럼 예쁘고 착하고 안목있고 자기 욕망에 솔직한데다 또라이 기질도 있는 여자가 삐삐쳐주길 마냥 기다려(봤자 연락이 오겠냐. 엉엉엉)야지.
2013. 8. 26. 03:57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결국 우리가 그려야 하는 것
한국에서 일본은 여전히 금기다. 친일파, 일제의 잔재 같은 말들은 어디서든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다. 선거판에서 친일파의 후손 운운하며 상대를 공박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그다지 낯선 풍경도 아니다. 그 영향인지 이 사회엔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증오도 곳곳에 도사린다. 후쿠시마에 재앙이 닥쳤을 때,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고소해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았다.
사실 그 증오심이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지난 세기 일본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군국주의의 깃발을 세우고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가난한 촌부들의 식량을 빼앗았고, 나라 고유의 말과 글을 없앴고, 학대하고 착취했다. 그리고 여성들을 집단 강간했다. 먼 과거의 일도 아니다. 고작 60여년.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당했던 일이다. 어찌 그걸 그대로 잊어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전쟁과 증오, 폭력, 착취, 학대, 복수. 그걸 그대로 일본에 돌려준다고 하여 과연 아픔이 치유되고 상처가 아물고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는 것일까.
# 그려야 하는 것
영화는 2007년에서 시작한다. 당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기점으로 전 일본에 우경화의 바람이 불어 닥치는 시기였다. 한중일의 그림책 작가들은 평화그림책만들기 프로젝트를 제안해 삼국에서 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한 그림책을 동시에 출판하기로 한다. 한국에서는 권윤덕 작가가 참여했고 권 작가는 13살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전쟁과 폭력 속에 무기력하게 내던져진 소녀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
위안부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성적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 베트남 등의 식민지 국가에서 징용된 일본군의 성노예를 지칭한다. 일본군은 위안부를 동원하기 위해 납치나 인신매매 등의 방법을 동원했다. 위안부들은 정해진 일정표에 따라 하루에 수 십 차례 강간을 당했으며 갖은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다.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으로 설치됐고, 군이 위안소 설치 관리와 위안부 이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일본사회의 급격한 우경화로 위안부 범죄 자체를 부정하거나 오히려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범죄사실을 축소 은폐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영화에서 권윤덕 작가는 일본의 청소년들을 만나 그림책의 초안을 보여주며 일본이 저지른 전쟁 중 성폭력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답한다. 평화그림책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일본의 출판사 인사도 “평화로운 시기를 살아가는 일본의 아이들에게 전쟁의 기억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은폐. 실제로 일본사회는 위안부 범죄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없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인 위로금을 지급한 것으로 사건을 종결지으려 하고 있다.
잊혀지거나, 잊게하거나.
이제 고작 60여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어느덧 생존한 피해자가 57명(이 글을 쓰고 있는 8월 11일에도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뿐이 남지 않았다.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그려야 하는 이야기들.
# 그들이 그리지 못하는 것
그러나 권윤덕 작가의 ‘꽃 할머니’는 여전히 일본에서 출판되지 않았다.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의 우익세력들, 그들이 득세하며 급격히 우경화되는 일본사회. 비단 그들이 아니라도 지난 시기 자국의 범죄를, 그것도 이렇듯 더럽고 잔인한 범죄를 들춰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림책의 일본 내 출판을 맡았던 ‘동심사’의 회장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하고 서대문 형무소를 견학, 참배하는 열의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권 작가에게 보내온 메시지는 끝내 “일본 사회 내에선 태평양 전쟁 이전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더욱 빈틈없이 준비해 출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일본의 정계는 심각하게 우경화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촉구하고, 어느 유력 정치인은 “위안부는 정당했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일본 내 우익집단들은 위안부 범죄에 대한 양심적 활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들에 대한 테러도 자행하고 있다.
# 결국 우리도 그리지 못하는 것
그러나 이같은 일이 비단 일본에 국한돼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전쟁 중 성폭력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라이따이한’. 영화 속에서 권윤덕 작가는 어린 청소년들을 만나며 한국의 군인들도 7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많은 민간인 여성들을 강간했던 사실을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의 어린 아이들도 일본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베트남의 민중들이 그 광경을 봤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살인과 폭력, 그 광기의 소용돌이에서 분출되는 욕구. 그 욕구의 해소를 위해 피해를 입은 여성들. 사실 위안부 문제는 (그 규모와 잔혹함에서 한국군과 일본군의 그것에 양적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가해국과 피해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전쟁이라는 광기에 희생된 여성인권의 문제다. 기실 한국사회, 특히 정부도 라이따이한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조력에 대단히 인색하다. (이용과 조력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지 ‘않는’ 것들은 일본의 우경화와 우익세력이 아니라 범죄를 범죄라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 때문이다. 그것이 서푼짜리 애국주의든, 전근대적 마초이즘이든.
종종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나 소설들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질곡과 수난의 역사를 견뎌온 가여운 피해자로만 포장하거나, 일본군의 잔인함과 군국주의를 성토하는 선동을 일삼는다. 혹은 일본군에게 ‘더럽혀진’ 여리고 약한 소녀의 이미지를 덧씌우거나. 이런 일련의 시도들은 모두 본질의 은폐를 호출한다.
영화에서도 한국의 또다른 남성 작가와 출판사 인사들은(남성이다) 권 작가의 그림책에 욱일승천기가 빠져있음을 지적하며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강조하려 한다. 그러나 권윤덕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일본군 가해자에 희생된 피해 소녀들이 아니였다.
# 그리고 싶은 것
결국 그리고 싶은 것은 전쟁과 거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성범죄, 그를 종용하는 국가권력과 그를 부러 은폐하는 애국주의다. 일본의 위안부 범죄에서 방점이 찍혀야 할 곳은 ‘일본’이 아니라 ‘성범죄’인 것.
때문에 영화를 보는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은 일본의 우익세력이나 과거의 전범들이 아니다.(그들의 사과가 필요없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성범죄 보다 일본 그 자체에 분노하고 있던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일본정부가 사과해야 할 것도 한국정부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강간했던 자신들의 과거와 그에 희생된 인류 전체에 대한 사과가 우선이다.
그림(畵)의 어원은 그리움이다. 권윤덕 작가도 그녀의 그림책을 보고 자랄 아이들도 그리고 그녀와 그 아이들을 모두 지켜보는 이들도 무엇을 그리워해 무언가를 그린다. 그리운 것은 증오가 아니다. 때문에 그려야 할 것, 그리고 싶은 것도 증오나 복수가 아니다. 그려야 할 것은 오직 평화와 위로, 용서, 화해. 그리고 그것은 과거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기억하는데서 출발하며 직시하는 일이란 표면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일이다.
상처가 아픈 것은 낫기 위해서다. 벌을 받는 것은 다시는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의 거름이 되기 위함이다. 사과는 용서받기 위해 하는 것이고, 화해는 사랑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전쟁과 폭력, 학대가 없는 꽃 같은 세상. 꽃할머니가 마침내 그렸을 그 세상을 그리는 것은 남은 우리의 몫이다.
2013. 7. 25. 03:43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우리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늘 ‘폭군’이었다. 사소하게는 TV 앞 리모컨 점유율이나 저녁식탁의 고기반찬 선점권부터 조금 더 심각하게는 어머니를 향한 폭력이나 무책임한 가정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매일 술을 마시던 아버지, 그 술상을 뒤엎던 아버지,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 결코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이미지는 가부장, 남근주의 같은 말들로 규정됐다. 그렇게 아직 젊은 날을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 아버지에 대한 일말의 증오심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토대가 됐다.
그렇다고 이 시대의 아버지가 얼마나 가족들로부터 소외됐는지, 얼마나 외로운 인간인지를 무작정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적어도 이 시대 한국사회의 아버지는 정말로 그랬다. 다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도.
# 그녀의 아버지
홍재희 감독은 그녀의 아버지 홍성섭 씨로부터 43통의 이메일을 받는다. 그가 숨을 거두기 전 1년간 보낸 편지들. 거기엔 1935년부터 이어진 70여 년간의 삶이 적혀있었다.
아버지는 ‘빨갱이들의 나라’가 지겨워 한국전쟁 직전 어린나이에 홀로 월남에 성공한다. 배움에 대한, 성공에 대한 열망이었다. 원대한 꿈과 영민함으로 사업에 성공을 목전에 두고 그는 한국전쟁을 맞이한다. “지긋지긋하던 인민군을 피해왔더니 다시 인민군 천지가 돼버린 것”이다.
이 전쟁과 가난, 이 지긋지긋한 땅에 뿌리내리지 못한 아버지는 바다 건너의 땅에서 꿈을 찾았다. 월남전이 벌어진 베트남, 건설경기 붐이 불던 중동, 독일, 호주, 그리고 미국. 언제나 떠나고 싶어 했던 아버지에게 한국은, 그리고 한국의 가족은 거추장스런 짐이었다. 그리고 그 꿈이 좌절된 아버지에게 한국과 가족은 철저한 원망의 대상.
아버지는 좌절된 꿈이 남긴 상처를 가족에 대한 폭력으로 메우려 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가끔은 딸을 때렸다. 경제적으로 무능했으며 무책임했다. 가정경제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이었으며 똑똑한 두 딸은 대학을 가자마자 집에서 ‘탈출’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 결혼해 미국으로 떠난 큰 딸과 아버지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운동권이 된 둘째 딸의 삶의 원동력은 어떤 부분에선 아버지에 대한 증오였다.
# 우리들의 아버지
그러나 영화가 조금씩 더 아버지의 지난 삶을 추적해 갈수록, (감독 그녀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은 그 방향성을 잃어간다. 어머니 집안의 내력이 밝혀지면서 부터, 차라리 너무 비극이어서 이제는 희극적이기까지 한 이 나라의 현대사가 이들의 가족사로 침투하면서.
어머니의 작은 오빠는 한국전쟁 직후에 행방불명 됐다. 그 작은 오빠를 찾으러 간 형제도 마찬가지로 행방불명됐다. 당시의 정부는 행방불명을 월북으로 의심했다. 서슬 퍼런 연좌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설상가상 어머니 집안의 오빠들은 전쟁 당시 보도연맹에 가입한 전력도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의 꿈을 좌절시킨 것은 그 연좌제였다. 높은 성적으로 해외파견 업무 시험을 통과해도 연좌제에 묶여 실패하거나 금세 국내로 소환돼야 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술상을 뒤엎으며 뇌까리던 “빨갱이 처갓집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외침은 사실이었던 거다.
지겹고 미웠던 인민군을 피해 넘었던 38선이었지만 전쟁은 다시 아버지의 꿈을 앗아갔고, 그 전쟁과 대립이 남긴 연좌제는 다시 아버지의 남은 모든 희망마저 빼앗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무엇 하나 딱히 잘못한 것도 없이 좌절해야했다. 남은 것은 짧은 해외파견동안 마련한 작은 집 한 채. 아버지는 그 집 한 채만을 부여잡은 채 집안으로 침잠했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에겐, 심지어 딱히 잘못한 것도 없이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남자에겐 ‘전가’의 대상이 필요하다. “너 때문이야”.
아버지에게는 “빨갱이 처갓집”이 원망의 대상이었다. 북에 남겨둔 가족들이 있으니 북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를 법도 하건만, 아버지에게 북한은 그저 ‘빨갱이들의 나라’였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빨갱이’의 의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부숴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어쩌면 우리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내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늘 나를 앉혀놓고 무너진 당신의 꿈을 토로했다. 문인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설국’이나 ‘에덴의 동쪽’같은 소설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이야기의 결론은 가난한 집의 장남, 가난한 집의 맏사위로서 꿈을 접어야 했던 기구한 팔자와 그렇게 포기하기엔 아까웠던 자신의 문재에 대한 자랑이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사실 아버지뿐일까, 꽤 유명한 만화가의 유망한 문하생이었던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온 외할머니의 손에 붙잡혀 집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대부분 그렇게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유로 좌절해야했고 포기해야했고, 또 체념해야했다. 그리고 적당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어느 곳에 그 원망을 게워내고. 그리고 그 한과 원망으로 얼룩진 폭력은 대물림되고.
‘그건 오로지 이 지겹고 고단한 한국의 현대사 탓이었다’고 말한다면 이건 또 얼마나 무책임해 보이겠냐만. 사실이 그렇다. 그들은 그렇게 누구의 탓도 아닌 채 좌절하고 포기했다.
<감독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웃음을 찾은 순간은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미국’을 찾았을 때다. 결혼한 큰 딸을 만나러 향한 미국. 평생을 방안에서 술만 마시던 아버지는 정원을 손질하고 손자를 안고 산책을 나섰다. 집안 곳곳을 청소했고 어머니와는 평생의 처음으로 다정하게 외출했다. 아버지를 짓누르고 있었던 건 분명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란 느낌이 드는 순간들.>
# 그리고 그녀와 우리의 아버지들
영화는 내내 질문한다. “우리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아버지를 용서할 자격이 있겠냐는 질문이다. 감독은 카메라 너머에서 ‘홍성섭 가족’을 기록하는 홍재희 감독이면서 동시에 ‘홍성섭의 차녀 홍재희’로 그 프레임 안에 꿋꿋하게 서 있다.
그 과정은 감독 홍재희가 파헤친 가족과 아버지, 어머니의 알지 못했던 과거를 홍성섭의 차녀 홍재희가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들은 또 우리의 아버지와 가족들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아버지 홍성섭 씨는 죽기 직전까지 오래도록 살아온 집의 재개발 투쟁에 참여한다. 평생을 두고 그렇게나 혐오하던 ‘빨갱이 짓’에 가담하는 것. 어쩌면 아버지는 그 투쟁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증오해왔던 ‘빨갱이’의 실체가 무엇인지 다시금 떠올려본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빨갱이 둘째 딸’에게 남기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우리의 아버지들과 (사실은 내 아버지와) 함께 이 영화를 다시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세상에 대한 증오와 체념을 동시에 간직하고 자신에게 또 자신의 가족들에게 모종의 폭력을 가하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리고 묻고 싶어진다.
“아버지, 제가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 사적 다큐멘터리의 미덕
감독의 아주 사적인 다큐멘터리였던 <아버지의 이메일>은 사적 다큐멘터리가 가져야 할 두 가지의 미덕을 모두 지닌다. 하나는 홍성섭의 차녀 홍재희가 그녀의 가족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편지.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아버지를 가진 우리들에게 보낸 교환일기장 같은.
“결국 우리의 아버지 때문에 우리는 이만큼이나 아팠어. 하지만 우리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까?”
2013. 7. 13. 19:30 Vecchio Primavera
복날맞이 주방점거.
돼지 앞다리살 가지말이 찜과
토마토소스 오징어볶음.
가지는 체내 노폐물을 배출하고 흥분을 억제하며 혈압을 낮춰준다. 또 성질이 냉하기 때문에 열이 많고 혈압이 높은 사람들이 여름보양식으로 택하면 좋은 음식.
특히 식욕을 증진시키지만 초저칼로리를 자랑하는 다이어트 음식이다.
토마토 예찬은 언젠가도 했었지만, 정력과 숙취해소에 탁월한 음식이다. 토마토가 붉어질수록 의사의 얼굴은 파래진다는 속담이 있을만큼 출중한 스테미나 식.
오징어 역시 대표적인 스테미너 해산물이다. 오징어를 많이 먹으면 정액생산량이 많아진다는 다소 민망한 속설도
돼지에서도 지방이 가장 적은 편인 앞다리살을 다져 얇게저민 가지로 말아 쪄내고 유자소스와 간장소스로 간했다. 최소염분 최소지방의 건강식.
반면 토마토소스에는 올리브유와 마늘, 후추를 잔뜩넣었다. 더불어 굴소스도 조금. 그야말로 온갖 스테미나 음식을 다 때려넣은.
해서 흥분을 가라앉힌다는 가지와 정력제 토마토가 함께 밥상에 오른 오늘의 테마는 음양조화. 건강한 남자가 되겠어요.
함께 자실 분은 삐삐치세요. 저염(!)하고 저렴하게 모심미다.ㅎ
2013. 6. 25. 03:55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택시에 올라 목적지를 말하기 무섭게 기사 아저씨는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앞서 택시에 탔던 어느 모녀의 이야기였다. 말인즉슨, 엄마는 내내 어린 딸을 꾸중했는데 그 까닭이라는 것이 버스에서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했기 때문이란다. “제 밥그릇도 제대로 찾지 못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는 엄마의 걱정. 기사 아저씨는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지 무섭다”고 했다.
간간히 소식을 주고받는 중학생 조카는 얼마 전, 현장학습으로 어느 대기업의 사옥을 방문해 ‘멘토링 스쿨’에 참가했다 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직원들이 열네살의 중학생들에게 자신의 연봉과 학력을 과시하며 스스로 ‘멘토’라 칭한 그 강연회의 주제는 ‘꿈’이었다고. “어떤 어른이 될지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던 조카는 “남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냐고 물었지만, 딱히 무어라 대답해주지 못했다.
# 다시 마을 - 인간적 삶의 복원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 마을은 ‘대안적 도시공동체’다. 초보 엄마, 아빠들은 “우리는 잊고 살았지만 아이들만은 부모세대와 달리 인간으로서 지키고 살아야 할 가치를 배우고 자랐으면”하는 마음으로 성미산 자락에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한해 두해가 지나는 동안 어느덧 마을에는 마을 밥집과, 카페, 학교까지 생겨났고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는 최초로 주민공천 후보까지 내는 등 성공한 도시공동체,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공동체니 공동육아니 민주주의니 하는 다소 거창한 말보다 성미산은 그저 ‘동네’, ‘마을’이라는 소박한 말이 더 어울리겠다. 불과 2~30년 전만해도 당연했던 그 ‘동네’.
감독은 영화의 초입에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누비며 동네 풍경을 자랑한다.(그렇다, 그건 분명 자랑이다.)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가는 길에, 학교를 다녀오다가, 골목어름에서 햇볕을 쬐다가 감독과 인사를 나눈다. 이웃사촌은커녕 옆집,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오늘날의 도시생활에서 인사하고 화답하고 미소 짓고 음식을 나눠먹는 마을의 풍경은 그리움과 어색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소통과 관계 맺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인간이 인사와 화답으로 표현되는 관계 맺기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거든 대답하지 말고 얼른 집으로 돌아오라”고 가르쳐야 하는(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점을 또한 인정한다) 세상은 분명 병들어 가고 있다.
어느덧 부모세대가 된 이들, 그러니까 속칭 386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사랑이 풍부한 어른들에 의해 키워졌다. 그들에게는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이었다. 이모와 삼촌은 물론 동네 아주머니들과 형, 누나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 사랑 많은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 사랑을 주는 법, 받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힘이 아마 암울했던 시대, 그들이 목 놓아 세상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었을 것.
그러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무한경쟁의 세상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들, 옆에 앉은 친구는 곧 너의 경쟁자임을 잊지 말라고 강요하는 유명학원의 광고 문구를 보며 자라야 하는 아이들은 어디서 사랑을 나누고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래서 서로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이뤄지는곳, 마을은 그대로 인간적 삶의 복원을 향한 첫걸음이다. 시간과 관계의 축적. 단골손님과 동네 형들과 옆집 아줌마와의 인사, 다툼, 화해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마을 공동체. 그 관계의 중첩과 마을이 서로를 돌보고 안아주는 공동체를 만들 것이라는 희망.
# 나무를 심는 사람 - “생명에는 주인이 없어요”
감독은 어느 날 성미산 마을의 열세살 승현이가 파헤쳐진 나무의 뿌리에 흙을 덮어주는 장면을 포착한다. 나무가 안쓰럽다는 듯 승현이는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 고사리 손으로 흙과 나무뿌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어느 사학재단의 개발이익을 위해 성미산은 파헤쳐지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심은 어린나무들도 수십 년간 마을을 지켜봤을 아름드리도 포클레인과 전기톱 앞에서 허물어진다. 거세게 저항하는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관청 공무원들과 시공사 직원들은 ‘사유지’임을 강조한다.
그러게. 제 소유인 땅에서 주인이 무얼 하든 누구도 상관할 수 없다. 어른들의 세계는 그렇다. 그러나 승현이는 “생명에는 주인이 없다”며 어른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한다.
“이 작은 나무에도 온갖 개미들이며 벌레들, 진딧물이 있어요”
제 주변에 살아있는 것들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지혜. 아파트 평수를 넓히는 것을 생의 지상과제로 삼은 어른들에게는 없는 그 지혜가 산을 놀이터 삼아, 나무와 꽃을 친구삼아 살아온 아이들에게는 있다. 사람이 버젓이 앉아있는 땅을 중장비로 파헤치고, 높은 곳에 매달린 사람들을 밀쳐내고, 전기톱으로 사람을 위협하는 어른들에게는 없는 지혜.
여담이지만, 마을의 한 아이는 공사장 주변에 포도 씨를 뿌리면 공사가 멈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포도가 자라나면 인부아저씨들이 포도를 따먹느라 공사를 안 할 것이라는 이야기. 중장비로 위협하고 완력과 악다구니로 저항해야 하는 어른들을 모두 일순간에 부끄럽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곳이 그의 땅인지 나는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곳이 공유지이거나 아니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백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中
성미산을 놀이터삼아 자란 아이들은 땅과 나무를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것,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연보호’니 ‘녹색성장’같은 표어를 내걸며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자른다. 그건 사람도 자연도 그저 자신의 주변부, ‘환경’으로만 대하는 태도와 자신을 포함한 뭇 생명을 모두 자연의 일부,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의 차이다.
# 다시, 나의 살던 고향은
마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영화의 흐뭇한 시선은 울고, 다치고, 슬퍼하는 이들의 흔들리는 시선으로 서서히 옮겨간다. (영화에는 감독의 촬영카메라 외에도 주민들이 핸드폰이나 캠코더로 직접 찍은 영상들이 적지 않게 들어있다. 그 영상들은 어둡고 흔들리는 주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산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안타까움, 너무나 두꺼운 현실이라는 벽에 고작 조약돌 하나 던진 것이라는 자조.
영화의 시선은 그렇게 사람들의 절망과 슬픔을 응시한다. 사람들은 있는 힘껏 저항했지만 실패했고, 지쳤고, 다쳤다. 그러나 절망에 대한 지긋한 응시에 따르는 것은 다시 모종의 희망이다. 그것은 마을사람들이 몸으로 부대끼며 포클레인을 막아 세우던 싸움에서 ‘냅둬유’라고 노래를 부르며 성미산과 그 산자락 사람들의 삶을 전달하는 방식의 저항으로 옮겨가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한 소절씩, 한 음정씩 짚어가며 인간적 삶에 대한, 뭇 생명들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그렇게 다른 세상과 더 나은 삶의 꿈을 조금씩 전염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영화와 성미산의 사람들이 다시 부여잡은 희망의 방식이다.
마을의 어른들은 성미산이 마을 아이들의 ‘고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마음 한켠에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곳, 고향.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고향을 지키려 그토록 힘겹고 어려운 싸움에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싸웠다.
그 치열했던 싸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고향은 허물어질지 모른다. 젖은 흙을 헤집고 나온 지렁이, 제 손으로 한 삽씩 정성스레 심은 아까시 나무가 모두 콘크리트 덩어리 밑에 파묻힐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고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다. 아이들의 고향은 성미산이라는 공간 그 자체보다는 어쩌면 산의 품에서 자란 이만 가질 수 있는 너른 마음, 지고 또 져도 노래 부르고 웃으며 다시 희망을 움켜쥐는 삶에 대한 의지이며 그 마음을 지닌 이들과의 관계와 기억에 더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말미, 마을 사람들은 공사 중에 뽑혀버린 성미산 장승을 다시 세운다. 그 앞에서 너그러운 마음과 산의 품을 기원하며 춤추고 노래한다. 그렇게 다시 처음이다. 비록 산의 한 뭉텅이가 잘려나가더라도 다시 살아갈 희망을 부여잡은 그 춤과 노래. 그리하여 시간이 또 지나 언젠가는 더 이상 성미산이 꽃피는 산골이 아니게 되더라도
“나의 살던 고향은 춤추는 성미산”
2013. 6. 10. 01:22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2013. 6. 6. 22:53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영화는 나른하고 통속적이고 신파적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게 얘기해줘도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영화의 이야기가 삶을 괴롭히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그건 현실의 삶이란 언제나 고단하고 비관적이며 (적어도 오늘 날의 세상에는) 희망같은 것을 말하기에 너무 가혹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겠다. 그래서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통속신파극을 보고나서 늘 하는 말은 "결국 해결된 것은 없잖아"
사실 이경규 아저씨와 배우들(특히 류현경과 유연석)에 대한 팬심만으로 본 이 영화도 그랬다. 그래서 보는내내 투덜투덜. 마찬가지로 삶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영화는 그저 해피엔딩으로 달려가고.
하지만 아무 개연성 없이 무능한데다 무책임하기까지한 남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장면에서 문득.
삶이란 복잡다난하지만 또 동시에 다분히 통속적이며 신파적이기도 하다. 개연성 없이 누군가를 증오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용서하기도 한다. 하물며 반려자 혹은 가족이라면. (난 아직도 우리 부모님의 감정과 관계를 적절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삶의 문제란 종종 그렇게 미숙하게 봉합되고 사소한 계기로 해소된다. 거기다 그 해소란 것이 진짜 정답인지는 언제까지고 알 수 없다. 해결하지 못해 곪아터지기도 하지만 섣불리 해결하려 들다가 어긋나고 덧나 다치기도 한다. 그럼 어쩌면.
노래자랑에서 불러재낀 카스바의 여인 한자락이 지난한 삶의 고민들을 모두 해소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상관 없다는 뜻이거나 모든 영화가 거기에 가닿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다만 이 영화의 바람처럼 "이게 당신의 문제를 해소해주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쩌면 사소한 희망일 수도 있길 바라요"하는 마음.
고다르는 "영화는 현실의 반영보다는 반영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영화란 현실을 똑 떼어내 필름안에 박아넣는 것이 아니라 만든 이의 의식을 현실화 시켜내는 것.
요즘 무언가를 볼 때마다 극중 인물들의 고통을 대상화하며 즐거워했다. 좋아하는 어느 영화 감독의 "근래에 나오는 단편영화들이나 시나리오들에 대해 타자의 고통을 내면화하고 사유하는 과정없이 그저 소비, 전시하는 장르적 착취만을 가하고 있다"는 충고를 보고선 아 그렇구나. 싶었다. 그간 내 태도는 마치 삶의 정체를 응시하는 냉소적 관찰자 코스프레. 그리고 말한 것처럼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는 곧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타자의 고통을 소비하고 착취하면서 희망을 부정하는 것. 얼마전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레 끼적인 글쪼가리에서도 그랬다. 그저 괴롭히는데만 급급해서는.
더 폭넓게 사유하고 이해하고 응시하는. 그리하여 마침내 그럼에도 부여잡는 희망의 부스러기마저 포착해내는.
전국노래자랑이 그렇게 고단한 삶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을 부녀잡는 좋은 극본의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삶이란 그럼에도" 같은 건강한 마음의 미덕을 돌아보게 됐다는 것.
그러니까 말인즉슨, 나도 류현경 같은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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