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3. 20:00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최후의 제국>, 막다른 자본주의의 경고
- 이미 지나가버린,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1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 선거가 16일 남았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화두는 역시 ‘경제민주화’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조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한다. 민주통합당은 스스로를 ‘서민’정당이라고 변설한다. 문재인 후보는 “경제력집중의 폐해를 시정하여 헌법정신과 공동체 가치 구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와 현대자동차, 유성기업에 이어 전북의 버스노동자들이 고공 농성에 들어갔다. 전기가 끊긴 가정의 조손은 촛불을 켜고 자다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2
얼마 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은 ‘의료개혁’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오바마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기조연설에서 오바마는 “아들의 약값 45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눈물 흘리는 직장 잃은 아버지”를 위로했다. 그는 “모든 어린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여전히 상위 1%가 전체 부의 43%를 차지하고 아이들 5명 중 1명이 밥을 굶고 있으며, 45명 중 1명은 모텔이나 자동차, 심지어 지하 배수구에서 생활하며 집 없이 살고 있다.
#3
중국의 시장경제는 덩샤오핑의 유명한 ‘흑묘백묘론’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양이는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이 이야기는 “사회주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마오쩌둥의 ‘잡초론’을 누르고 중국에 시장경제를 도입시켰다. 흑묘백묘가 등장하고 30년,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사회가 됐다. 그러나 동시에 상위 1%가 전체 부의 41%를 차지하고 모유를 팔아서라도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도시빈민과 매일 밤 슈퍼카를 몰고 고급 클럽을 찾는 ‘소황제’들이 같은 도시에 공존하는 모순도 함께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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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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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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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 <최후의 제국> 화면캡쳐] |
2012. 11. 15. 02:27 Vecchio Primavera
1. 올 것이 왔다. 추위. 그리고 코 찔찔. 마땅한 겨울옷이 없어서 옷을 사야겠다. 고 생각했지만, 텅텅빈 지갑.
2. 총체적 난국. 이래저래 일이 왜 이 모양이냐고 투덜투덜 거리다
밤에 혼자 술마셔서 팔자가 기구해지는 것이란 가름침을 받고야 말았다. 역시 생명의 말씀.
3. 꿈을 참 많이도 꿨던 것 같다. 그렇게 인생을 설계했고 그리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삶이란 그렇게 대단치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지루한 반복이다.
4. 어제는 첫 눈이 왔다. 길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먼지같은 것들이 날리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첫 눈. 황망히도 첫 눈을 바라보다 이윽고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첫 눈의 낭만에 젖기엔 막차시간이 너무 가까워서, 택시비 따위 없거든. 알량한 한떨기 낭만도 허락치 않는 얄팍한 지갑.
5. 007은 왠만하면 보지않는데, 하비에르 바르뎀의 영화는 반드시 보자는 주의라 스카이폴을 봤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멋있는거야 진즉에 아는 일이지만, 다니엘 크레이그가 이리 괜찮은지는 미처 몰랐네.
6. 그럼에도 스카이폴에서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아델의 노래가 나오던 오프닝 시퀀스. 입 벌리고 쳐다봤다. 하악하악.
7. 문득문득 생각한다. 내 삶은 두 시간의 러닝타임이 끝나면 쫑나는 영화가 아니라고. 꾸역꾸역 또 살아야하고, 이건 오로지 내 삶이라는 것을. 문득문득 떠올려야한다. 내 삶에 너무 무책임하다. 마치 스크린 밖에서 내 삶을 바라보는 관객처럼.
8. 사실 그래서 영화를 본다. 내 삶은 너무 무겁거든.
9. 영어로 노래하는 언니 중에선 당분간 아마 아델이 1등.
2012. 11. 6. 17:44 Vecchio Primavera
1.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이 모두 모인자리에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가서 "살자"고 얘기했으나 경찰은 그들의 입을 막고(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진짜로 입을 막았다) 광장 밖으로 쫓아냈다. 대선 후보 아무도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2.
이 내용을 기사로 쓰고 있던 텅빈 카페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어느 대학의 선후배 간담회란다. 자리까지 옮겨달라며 시끌시끌. "전화 인터뷰는 다 했군"이란 생각보다, 그들이 내 등 뒤에서 나누는 대화가 더 거슬린다. 94학번이라는 어느 선배가 10학번 대학생들에게 취업 잘하는 법과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을 설명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을 운운하면서. 스물 둘을 갓 넘겨 정장이 아직 어색한 어린 친구들은 눈을 빛내며 그 이야기를 듣는다.
이름과 나이에 앞서 다니는 회사 이름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자리.
3.
요즘 영화를 좀 봤다. 대부분 좋았는데, 기억이 나는 건 강철대오와 늑대소년.
강철대오는 어떻게 봐도 영화의 만듦새가 뛰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고 억지로 이어가려는 개그코드도 거슬렸지만 그래도 어쩐지 모를 우직함이 돋보이던 장면들.이 좋았다. 다분히 클리셰적이기까지 했던 장면들.
소녀의 동화같았던 늑대소년이 오히려 영화적 재미는 더. 늑대소년이 나오지만 사실 이 영화는 괴기물보단 로맨틱 코메디에 가깝다. 그리고 박보영과 송중기의 자태는 그야말로 그림. 여하간에 영리한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정확한 영화라는 느낌. 좋다는 뜻이다.
4.
'눈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걸 좋은 배우를 일찌감치 알아보거나 좋은 술집을 잘 찾아내는 형태로 발현하고자 한다.ㅎ 강철대오와 늑대소년에 나온 유다인과 유연석이 그런데 일찌기 혜화, 동을 보고 유다인의 대성을 예견한 선견지명 있는 남자다 내가. 아, 송중기도. 트리플 첫 회를 보고 송중기 관련 장문의 포스팅을 올린 유망주계의 매의 눈. 결론은 유다인은 정말 예쁘더라는 거.
5.
영화를 좀 봐야겠다. 어지간하면 007은 보지 말자는 주의지만 하비에르 바르뎀의 영화는 무슨일이 있어도 보자는 주의이므로 007을 보러가야지.
2012. 10. 5. 00:39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도대체 이 난데없는 무료공연의 의미는 뭐고 이 신드롬은 뭐냐.
힘겹게 오른 버스에서 들린 라디오는 오늘 '싸이특집'이란다. 인터넷 뉴스며 SNS며 온통 싸이 이야기.
심지어 '국가대표 가수'로서 싸이에게 주어진 막중한 역할을 엄중히 요구하는 글도 봤다. 미쳐돌아가고 있는거지.
7
삼성, 월드컵, 올림픽, 싸이, 디워, 황우석 등등등.
동원된 싸구려 국가 이데올로기에 침식당하는 것은 당신의 삶이고 노동이다.
8
내가 버스 우회때문에 드립다 걸은게 억울해서 이렇게 툴툴거리는게 아니다. 진심이다.
(안내도 없어서 버스 진행 역방향으로 한시간을 걸었다. 사실 엄청 억울하고 짜증난다.)
9
그래도 싸이가 계속계속 잘돼서 빌보드 석권도 하고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 진심이 아니므니다.
10
싸이가 별로가 되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는 트윗을 하나 봤는데, 거기서 언급하는 예시가 김장훈이더라.
아 속상해서 정말.
덧붙이는.
- 공연이 끝나고 수만의 인파가 우르르 밀려나가면서 일대는 아비규환이었단다.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은 피케팅을 하다말고 메가폰을 잡고 장내 질서 정리를 했다고. "밀지말고 천천히, 빨리가면 위험합니다"
- 인파가 빠져나가자 남은건 쓰레기더미, 구멍나고 찢어진 분향소 천막 비닐, 깨져버린 화분들, 박살난 어쩌다 카페.
조합원들은 그저 청소하고 천막을 수리하고 다시 꽃을 심고. 어느 쪽이 더 자랑스러운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다.
- 이 와중에 공연을 보러온 시민들이 많이 서명에 동참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 그 힘이 무엇보다 강해져 마침내는.
2012. 9. 25. 23:46 Vecchio Primavera
1.
가끔 멀쩡한 문장을 편집실에서 비문으로 만들어 놓는다. 뭘 수정하고 싶었는지 알겠으니 차라리 그냥 나한테 수정하라고 말해주는게 더 좋겠다. 그래도 도움 받은 일이 더 많으니 패스....같은 쿨한 척은 도저히 못하겠다. 좀 짜증난다.
2.
이정희의 대선출마가 올 해 본 뉴스 중에서 가장 웃기다. 사람이 아니므니다.
사실 어차피 기성정치판에서 대의니 정당성이니 하는 말들을 찾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차라리 이건 정치적 감각의 문제다. 이정희와 경기동부는 요단강을 건넜다.
3.
쌍용차 사태해결을 바라는 삼천배를 지켜봤다.
어릴적 엄마따라 간 절에서 받은 내 수계명은 '반야'다. 반야는 불교적 지혜를 의미한다.
속세의 지식과는 다른, 모든 사물에 대한 무분별의 지혜. 성불의 시작.
정말 내가 조금 더 지혜로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한문 분향소에선 백일간 매일 천배씩 10만배 기도가 진행중이다.
하루쯤,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다해 빌어야겠다.
4.
응답하라의 영향인가 곳곳에서 90년대 노래들이 들린다. 저번 놀러와에는 공일오비가 나와서 이젠안녕을 부르더라.
왜 지금은 그런 문화적 풍요가 없을까.라고 안타까워 하려다가, 이십년쯤 지나면 다시 지금을 그리워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운건 그 노래가 아니라 그 시절이었다.
5.
그래도 내 청소년기를 가장 많이 함께 해준 노래는 아무래도 김장훈이다.
얼마전 다녀온 클럽공연에서 들은 그의 노래가 좋았다. "이번 생은 이렇게 가기로했다"던 그의 말이 참 좋았다.
"오빠 앨범자켓을 디자인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던 소녀에게 "오빠는 이제 디지털만 낼거"라고 대꾸하는 그도 참 좋았다. 무엇보다 그의 노래가 무척 좋았다. 그의 노래가 좋으니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이 시절도 그대로 좋은거다.
6.
들국화 아저씨들이 나온 놀러와를 봤다. 쌈싸페 티켓을 미리 질러놓길 잘했던거다. 흥, GMF 따위.
7.
별로 예뻐하지 않는 수습 후배가 "언제까지나 여기 계실건 아니잖아요"라고 물었을 때 뭐라 답하지 못했다.
내가 그래서 널 별로 예뻐하지 않는거란다.
8.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다.
9.
김장훈 - 그대로 있어주면 돼
아무것도 하지마 눈 뜨고 있으면
여전히 우린 다시 살아갈거야.
2012. 8. 31. 01:38 Vecchio Primavera
1
자기 감정에 대한 불신은 비겁하지만, 확신은 오만하다. 언제나 그 중간쯤 어디에 존재해야한다. 의심하면서도 용기내는 것. 혹은 확신하면서도 톺아보는 것. 안일해서도 집착해서도. 그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것. 그런걸 균형감각이라거나 삶의 지혜라거나 경험과 연륜이라거나 하는 이름으로. 혹은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2
내 글에 대해 겸손한 척했지만 사실 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3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같은 건 아직 못봤다. 호들갑에 비해 (적어도 내 주위는) 비교적 평안했기에 그 호들갑이 못마땅했다. 방재 시스템을 '개개인의 준비'정도로 때우려는 안이함과 정작 재난에 대비한 어떤 준비도 하지않는 정부와, 그걸 알면서도 굳이 문제제기하지 않고 호들갑에 입을 맞춰주는 언론에 진절머리가.
4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했는데, 세상은 너무 평온하다.
이럴거면 귀찮게 뭐 하지마라 쫓아다니기도 지친다.
5
정보석이 지붕킥에서 했던 대사가 기억났다.
"내 사랑은 언제나 적자에요"
서로 나누는 감정의 총량이 일정하다면 어느 한 쪽은 적자일 것이고 어느 한 쪽은 흑자일 것.
주는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그 설움의 고백.
내 사랑은 언제나 적자에요. 방바닥을 벅벅 긁으면서 오늘도 내 사랑의 마이너스 체크만.
6
트위터를 둘러보다가 이 문장을 읽었다. 김유진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너는 누굴 싫어해?/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들./그럼 누굴 좋아해?/나는 너를 좋아해.
숨은 밤 - 김유진
7
네 삶을 지켜주는 건 내가 아니다. 너다.
8
응답하라 1997을 보다가 문득 울컥했다.
"누구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내 모든 것을 걸었던"
그것이 90년대라면, (혹은 다른 이름의 그 무엇이든) 내게도 응답하라.
9
2012. 7. 31. 23:42 Vecchio Primavera
1.
강정 평화 대행진에 참가중이다. 하필이면 오늘 제주는 10년만의 무더위.
발바닥과 사타구니가 난리도 아니다. 어그적 어그적. 누가보면 똥 싼 줄 알겠다.
2.
이 아름다운 소녀 덕분에 더 힘들었다.
생태와 평화와 아빠와 무엇보다 '걷기'를 사랑하는 이 소녀는 이 불볕더위에도 칭얼거림 한 번 없이 웃는 얼굴로 행진을 했다. 덕분에 나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못했....ㅠㅠ
하지만 아름다우니까 용서, 패스.
3.
올레길의 성공 탓으로 제주 어디를 가나 관광객을 만난다.
오늘 숙영지였던 표선 같은 해수욕장은 더욱 그렇다.
망중한을 즐기던 그들은 행진단이 나타나자 깜짝 놀랐고, 이내 조금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할 수 있다. 소중한 여름휴가지의 호젓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해친것만은 분명하다. 시큼한 땀냄새와 저녁식사가 풍긴 음식냄새도 반갑진 않았을테다.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다만 느껴지는 것은 허무함이다. 이런 허무함은 오랜 감정인데,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 있다가 고개만 조금 돌렸을 뿐인데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싸우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혹은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탔을 뿐인데 라디오에선 연애상담과 우스개와 오늘도 또 뉴스들이. 무한도전이. 1박2일이.
그 치열함과 평화로움 어느 쪽도 탓할 수 없고 마음의 무게를 실을 수 없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건 그런 허무한 우울감 뿐이다. 그래서 그토록 애타게 뒷풀이를 주창하는지도.
사타구니와 발바닥의 통증에 어그적 어그적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괜시리 우울해져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낄낄거렸다. 나도 낄낄거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은 내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 얼굴을 찌푸렸고, 앞자리에 앉은 올레꾼 커플은 소근소근 사랑의 밀어를 나눴다.
기사도 다 썼고. 혼자 뒤풀이하러 가야겠다.
4.
복학했다. 이게 몇번째냐.
일은 계속한다. 아마 출석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학교는 안나가서 선배들 사이에서만 회자되는 '소문의 그 선배'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우리엄마 머리에 학사모는 꼭 씌워줄거다. 내 대학졸업의 유일한 목표는 그거다.
5.
새로생긴 스마트콘을 쪼물딱 거리다가 무료 타로카드 어플을 하나 받았는데, 이게 신기하다.ㅎㄷㄷ
신나서 이것 저것 막 해보려니 그때부터 유료. 역시 점괘는 복채가 있어야 성립하는 법. 걍 지웠다.ㅋ
6.
서울로 돌아가면 바로 휴가다. 가까운데로 바람이나 쐬러가야지.
7.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께 - 창고
난 김창기 아저씨의 동물원보다 창고가 더 좋다.
동물원은 너무 예쁘기만 하잖아.
가벼운 여행 생각을 하니까 이 노래가 가장 먼저 생각났지만,
사실 난 요즘 동물원이 더 좋아지고 있기도 하다. 우훗.
8.
중화항공이 팬더에게 자리를 제공했다.
팬더는 기저귀를 차고 14시간동안 비행했다.
2012. 7. 24. 15:59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2002년에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가 우리동네에 유세를 왔을 때 난 맨 앞에 앉아있었다. 거기서 그는 "반미면 어떻고 친북이면 어떻냐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농민의 아들이다"라는 말도.
어린 나이였지만 그 말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난 희망돼지도 보냈고, 지지의 편지도 썼고, 노사모도 가입했다.
2.
다음 해, 수시시험을 보려고 갔던 어느대학에서 칸쿤에서 돌아가신 이경해 열사의 분향소를 봤다.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는 '농민의 삶'을 위해서 목숨을 끊어야 했다.
3.
대학 새내기 시절에 했던 세미나 중 가장 격렬했던 토론은 이라크 파병에 관한 토론이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남의나라 침략전쟁에 군대를 파병했고, 부안에 핵폐기장을 지으려고 했다. 부평에서, 포항에서, 여의도에서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죽어갔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던 이가 대통령인 정부에서 노동자와 농민을 차례로 죽였다. MB정권을 살인정권이라 부르지만, 사실 노무현 정권에 죽은 노동자가 훨씬 많다. 노동자 농민이 잘사는 세상을 약속했던 그는 어느날 "더이상 죽음으로 항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얼마전부터 지금까지 떠들썩했던 한-미 FTA도 노무현의 작품이다. 4대 선결조건에 스크린쿼터가 포함됐을 때 "영화인 여러분 자신없습니까?"라고 말했었던가.
4.
그리고 그는 대추리에 군대를 파병했다. 대추리에 모여있던 주민들과 신부님들과 평화활동가들과 농민들과 학생들은 '적군'이 됐다. 전장에서 적군을 포박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포박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도해야했다. 그 날 여러사람이 광주를 떠올렸다.
5.
노무현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희망돼지를 돌려달라고. 당신에게 걸었던게 희망이 아니었음을 알았다고.
6.
대학도 나오지 않은 시골 촌부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조금은 평등해질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대기업 사장 출신의 경제인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가 나아질거라고 생각했던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7.
청렴하고 깨끗해 '보이는' 기업인이 대통령이 되거나 '가장 훌륭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대통령'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가 대통령이 된다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거나 '변절한 노동운동가'가 대통령이 된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다.
8.
주체의 문제다. 더 행복하고 싶고 '잘' 살고 싶다고 여기는 주체 개개인의 문제다. 모든 이가 정치주체가 되고 경제주체가 돼야하는 일이다. 대통령 한 명 잘 뽑아서 세상이 나아질거라는 믿음은 어느 으슥한 골짜기에서 무림기서를 얻어 천하제일 내공의 검객이 되겠다는 심보와 다르지 않다. 사실 이건 그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9.
잘되도 니 탓, 안되도 니 탓이라는 태도는 아주 편하지만 비겁하다. 민주주의란 원래 귀찮고 어렵고 성가신 일이다. 엄청 훌륭한 제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어쩌면 가장 태평성대를 이룰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하겠다고 그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면, 그 민주주의 하겠다고 이토록 치열하게 떠드는 것이라면, 그 성가심과 귀찮음 정도는 감내해야한다.
10.
그리고 공부하고 읽고 생각해야한다.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너는 그러고 있냐.란 비난은 듣지 않는걸로.ㅋ) 보다 실체에 가까운, 보다 정의에 가까운, 보다 행복에 가까운 선택을 위해서는 말이다. 여기서 선택은 투표, 선거에만 국한하는 말이 아니다. 선거는 어디까지나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
11.
여튼 쓸데없고 안어울리게 긴 글의 요지는 '안철수의 생각' 살 돈 있으면 참세상을 후원하라는 것 입니다. 아니면 여기저기 엄청 많은 장투사업장에 연대기금을, 그도 아니라면 희망식당에서 나한테 밥 사달라는, 30일부터 시작하는 제주 평화 대행진에 단돈 2만원 내고 참가하라는.
덧,
이걸 페이스북에 먼저 올렸었는데 선배가 댓글로 좋은 구호를 하나 달아줬다.
"우리의 지도자를 바꾸지 말고 우리의 삶을 바꾸자"
2012. 7. 21. 15:57 Vecchio Primavera
1.
유령이 생각보다 재밌다.
소간지와 이연희의 외모보다는 곽도원이 더 좋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난 아닌척 하려고 했지만 좋은걸 어떡해.
임지규도 독립영화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지명도를 쌓아가는 좋은 케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악역들에 끌리게 되는데, 추적자에서 박근형과 김상중을 은연중에 응원했던 것이나,
유령에서 엄기준을 대놓고 응원하게 되는 것. 하긴 난 원래 압도적인 나쁜놈을 좀 동경했었다.
2.
안철수의 사실상 대선출마선언 이후 말들이 많다.
난 안철수에게 거는 사람들의 과도한 기대가 싫다.
그건 어쨌거나 성공신화를 뒤쫓는 또 한 형태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가 남한에 그동안 있어왔던 '상식 밖 수전노형 자본가'들과 뭔가 다른 듯 보이기(혹은 그렇게 보이려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다름'과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
그건 다시 한탕주의다. 그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건 아니건
그에게 이처럼 막연한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는 또 투표말곤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라는 뜻.
거기다 난 안철수가 그 자본가들과 그다지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착취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본주의의 수단에 불과하다.
괜히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을 것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여하튼 안철수의 책이 어디서 생겨서 읽었는데, 그의 문장력도 난 영 별로.
뭐 하나가 맘에 안들면 다 맘에 안들어보이는 거랄까.
그런 의미에서 외모도 별로.ㅋ 정치와 프로야구 선수에게 제일 중요한 요소는 외모라니까..ㅋ
3.
탑밴드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더라만 뭐 그럴수도 있는거지. 다만 김경호가 심사위원인게 영. 누가누굴 심사하니.
탑밴드는 꼭 이렇게 납득 안되는 심사위원을 한 명 올려놓더라. 지난 시즌에선 노브레인. 송 아저씨의 쿨하고 냉철하고 잔인한 심사가 아쉽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송 아저씨가 없으니까 신대철을 견제할 만한 이가 없어. 정원영 아저씨는 어쩐거야.)
이번시즌에서 난 로맨틱펀치를 응원하기로. 아, 악퉁도.
4.
제주 평화대행진 취재를 간다. 그것만으로 좋았는데, 심지어 들국화 아저씨들이 온단다. 올레.
5.
지난번에 해먹은 초계탕과 토마토소스 마파두부.
중복엔 닭강정 ㄱㄱㅆ
아직도 내 요리실력을 의심하는이가 있다면 아오지로 보내버리리.
6.
냉면먹고싶다.
유명한 냉면집이라는데를 어지간하면 가보는 편인데,
신천의 해주냉면이나 동아냉면 다 별로. 특히 동아냉면은 학교 앞에 점심먹으러 가던 집인데 왜 저게 저리 유명한 맛집이 됐는지. 줄 안서면 먹기도 힘들더라. 건방지게 선불을 받고 말이야..
냉면은 역시 동네 중국집에서 시켜먹는 팅팅뿔은 중국식 냉면이 짱이다.
유명한 집 가봐야 어차피 조미료 넣고 끓인 인스턴트 육수인거다. 그러려면 차라리 둥지냉면을 먹고말지.
7.
핸드폰 액정이 망가져서 불편하지만 좋다.
걸려오는 번호는 외부화면에도 뜨기 때문에 익숙한 번호는 바로 알아볼 수 있지만,
모르는 번호는 누굴까 두근두근하는 맘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쪼임맛은 문자메시지가 왔을 때 최고조.
은연 설레이다 보도자료 발송했다는 문자면 김이 확 새지만, 그건 또 그 나름의.
여튼 보고있나 언론노조? 문자 좀 작작보내.
8.
6개월만의 무한도전이랑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동시에.
뭘 봐야하지....는 무슨, 그 시간에 집회현장에서 일한다. 콜트콜텍 2000일 문화제.
사실 무도나 프로야구만큼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밴드, 콜밴도 좋다.
우윳빛깔 콜밴. 연주력 따위 중요하지 않아요 가사만 틀리지 마요.ㅋ
9.
설렘과 우윳빛깔을 연달아 언급했더니 자연스레 떠오르는건 아이유.
내게 너 뿐인걸 니가 알았으면 좋을텐데.
2012. 7. 21. 14:26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어제 2년 반만에 용산참사 촛불집회가 열렸다.
남일당은 폐허로 변했고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시 주차난 해소를 위해 주차장이 그토록 급히 필요해서 6명이나 사람을 죽였나보다.
2.
두개의 문은 5만 관객을 넘겼다.
개봉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영화에 5만의 관객이 몰린건 무엇보다 영화가 갖는 힘이겠지만 타이밍의 적절함과 배급위원회의 노력도 빼 놓을 수 없겠다.
정동영에 문성근 같은 정치인들이 대선정국에 맞물려 영화관을 찾아주고
현병철같은 인사도 비록 쫓겨나긴 했지만 영화관을 찾았다. 심지어는 경찰들도 단체관람을 했다고. 영화가 가진 힘이다.
이 관객 증가추세라면 10만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거기에 공동체 상영이나 상영관 추가확보가 더 진행된다면 어쩌면 더. 더 많은 사람들이 '돈내고' '시간들여' '마음아파'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건 용산참사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좋은영화'를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건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필름이다.
3.
어제 촛불문화제에 강허달림 언니님이 왔다.
(팬심돋게) 내가 제일 먼저 알아보고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가수가 아니라 개인 참가한 시민으로 온 그녀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팬심을 제거해서 봐도 그 태도는 정중했다. 인터뷰 신청한 내가 무례해보일만큼)
그녀 2집의 '멈춰버린 세상'은 용산참사를 위무하는 노래다.
++
가느다란 길 같이 걸었던 길
그 길에 내몰린 사람들
벌겋게 달아오른 불꽃에 멈춰버린 세상
내 모든 걸 주고도 남아 바뀔 수 만 있다면
나 아닌 누구의 삶이 유지될 수 있다면야
같은 공간, 같은 눈빛, 같은 웃음소리 나누던
촉촉이 젖은 길 흘린 눈물만큼 비린세상
기자들이며 팬들을 우르르 몰고와서 사진 한 방 찍고 떠나는 유명한 사람들에 비하면
그녀는 확실히 덜 유명하지만 집회의 맨 뒷자리에서 끝까지 집회를 바라보던 그 마음만은 진짜인게 보인다.
늘 얘기하지만 노래는 딱 그만큼만이다. 살아가는만큼 살아본만큼 바라보는만큼.
그녀의 노래가 사랑스러운 이유. 라고하면 너무 팬심돋는 맨트인걸까.ㅋ
4.
강허달림 얘기가 나와서.
그녀는 내가 아직도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는 '레드마리아'의 OST도 불렀다.
(본인은 페미니스트 가수라고 불리거나 규정되는 것을 마뜩치 않아하는 것 같아 그렇게 부를 수는 없지만)
그녀는 경직된 규정, 소외, 허한 마음에 대한 위로.(를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텐데)를 노래한다.
언제가도 얘기했지만 그녀가 부른 '독백'을 듣고서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었다. 엉엉엉
여하튼 인터뷰를 거절하고 거절받은 그녀와 나는 잠시잠깐의 어색함을 겪어야 했는데
내가 바로 팬심돋게 싸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일전에 그녀가 내 블로그에 방문해서 내 앨범평을 보고선 내가 보러간 공연에서 앨범평을 얘기했던 에피소드도. 그렇게 팬 인증을 하고서야 명함을 받아주셨. 다음에 또 어딘가에서 만나면 기어이 인터뷰 해주셨으면. 이번에도 자기이름 검색하다 또 이 글을 봐주셨으면.ㅋ
5.
이것도 언젠가 얘기했던 것 같은에 난 모든 예술가는 좌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좌파를 있는 그대로만을 긍정하지 않고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상상하고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예술가는 가장 근원적인 좌파일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삶이 늘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일이라면 살아가는 모든 이가.
그래서 모든 삶이 곧 예술이라는 거잖아.
7.
김석기를 비롯한 이들에게 고발운동이 시작됐다. 이른바 '나는 고발한다' 에밀졸라의 유명한 경구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역사의 공범과 역사의 목격자. 두 개의 문이 다시 앞에 있다.
경찰특공대에게 두 개의 문은 혼란이었지만 우리에게 두 개의 문은 용기다. 진실이고 선언이고 다짐이다.
8.
남일당이 있던 곳은 공터로 변해 주차장으로 쓰인다.
그리고 그 흉물스러운 주차장 바리케이트 한 귀퉁이에도 꽃이 피었더라.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 다시 피는 꽃.
2012. 7. 8. 18:59 Vecchio Primavera
1.
담백하게 살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더 찐득거려.
천성이라기보단 상황, 상황이라기보단 핑계.
2.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일간지의 경제부.에 다니는 선배를 길바닥에서 만났다.
커피나 한 잔 하자고 마주앉아서, 학교 때부터 늘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가 어쩌고 인과율이 저쩌고, 결과를 무시하는 과정이니 과정을 배반하는 결과니. 시시껍절 되도 않는 얘기나 주절주절. 그런데 사실 그 때가 제일 그립기도하다.
3.
살아가는 모든 일이 곧 정치행위이며 또 운동. 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했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열심히 생을 다바쳐 운동하는 이들이 엄연히 있는걸. 마찬가지로 그 반대에 있는 이도 있고.
난 늘 그 중간 어디쯤을 배회한다. 회색의 비겁함.
하지만 사실 이건 다 변명거리다.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어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척. 현명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척.
4.
어제는 대학 동기 결혼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반갑지만 또 정확히 그만큼 어색한.
삶의 반경이 달라진다는 것은 관계의 질감도 달라지는 것인가보다. 괜히 쓸쓸해지지..도 않아서 사실 더 씁쓸했다.
5.
친구가 손학규 캠프에서 일하는데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가 좋았다고 말해주니 기고만장해선 당장 대선승리라도 할 것처럼 군다. 꼴보기 싫어서 어차피 문재인이 후보가 될거고 대통령은 박근혜가 될거.라는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나의 냉철한 정세 분석을 들려주려다가. 참았다. 열심히 하는 친구한테 굳이 재를 뿌릴것 까지야. (내가 이렇게 착한 사람인데!!)
6.
밀려있던 탑밴드를 주말동안 몰아치고 있는데, 아직 마땅한 팀이 없네. 괜찮다 싶으면 떨어지고. 결국 화제성 있고 유명한 팀들만 살아남아 밴드판 가요톱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보이지만 관전평은 뭐 그래도 끝까지 지켜보고 난 후에.
7.
출장을 빙자한 외유와 엠티와 휴가를 잘 엮으면 8월 한 달동안 20일을 놀 수 있을 것 같다.
8.
최근 드라마며 영화를 꽤 봤는데, 감상문이 너무 밀렸다. 이젠 다 쓸 엄두도 안나네. 짧게라도 한 줄씩 남겨놔야지.
9.
요즘 제일 많이 듣는건 가장 보통의 존대.
이런 이런 큰일이다
2012. 4. 29. 16:33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축이 되는 디딤 발이 흔들려서 킥이 정확하지 못하니까 공이 떠버리는 겁니다”
한 때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축구 해설가였던 신문선은 늘 ‘축’과 ‘디딤발’을 강조했다. 간과하기 쉽지만 정확하고 강한 킥을 위해서는 공을 때리는 발보다는 땅을 딛고 있는 디딤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강속구 투수에게 강한 어께만큼이나 튼실한 하체와 균형 감각이 더 중요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끝내 강력하지도, 정확하지도 못한 킥을 날린 채 끝을 맞았던 것도 축과 디딤 발이 튼실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드라마의 ‘킥’이 결국 멜로라인이라면 김병욱 감독이 구축한 하이킥의 세계의 멜로라인을 지탱해주는 축은 ‘해학’이다.
해학이란 현실에 기반한 웃음이다. 비극적 현실에서 파생된 희극이다. 삶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채플린의 조언이야말로 해학의 본질을 꿰뚫는 경구다.
그동안의 하이킥 시리즈는 오직 물질만을 숭앙하는 자본주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소외된 개인, 사랑조차 철저히 계급적인 세상을 적나라하게 지켜본 김병욱 감독의 정확한 ‘눈’이 디딤 발과 축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튼실한 축을 바탕으로 한 킥은 지붕을 뚫어버릴 듯 거침없는데다 정확했다. 높은 시청률과 스타탄생은 성공한 슈팅에 이은 일종의 세리모니였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도 그랬다. 2012년을 돈의 해로 규정한 이적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사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적응’ 혹은 ‘종속’돼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이야기는 수 십 년간의 인간관계를 금전관계로 전복시키면서 시작했다. 가부장의 권위도 사실은 ‘금력’에 기반 하고 있었음을 폭로했다. 금력의 상실이 곧 권위의 상실로 이어졌음을 인정하지 못하던 내상은 급격한 스트레스에 부닥쳤다. 123개의 에피소드 중 가장 좋았던 유선의 ‘완경’ 에피소드도 경제가 ‘몸’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했다. 완성과, 이별, 새로운 삶에 대한 이미지들은 그냥 차치하더라도.
그러나 갈등은 너무 쉽게 봉합됐다. 남한사회에 사업에 실패한 가정은 숱하겠지만, 복권당첨으로 재기의 기회를 잡는 가정은 얼마나 될까. 그동안 취업에 애를먹던 취업준비생이 용감하게 꿈과 희망을 담은 대기업에 지원해서 합격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현실적 난관’을 무시하고 말이다.
숏다리들의 기습적 하이킥은 통쾌하겠지만, 사실 그 궤적이란 롱다리의 미들킥보다도 낮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세경이 행복해지기 위해 시간을 멈춰야 했던 것처럼 짧은 다리들의 역습도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한다. 짧은 다리들의 하이킥이란 그저 통쾌함으로 건네는 위로가 최선이다.
희망과 행복이란 절망과 불행을 전복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과 불행을 정확히 응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망조차 하지 못한 희망이란 거짓이고 불행해본 적 없다면 행복 할 수도 없다. 사실 희망과 절망, 행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하이킥의 매력은 그 종이 한 장을 포착해 내는 지점에 있었다. ‘짧은 다리의 역습’이란 이름처럼 이번 시즌이 그 불행과 절망의 순간들을 가장 적나라하고 신랄하게 담을 수 있었을테지만, 절망은 방치됐고, 불행은 외면당했다. 현실이 거세된 그렇고 그런 가짜 희망극. 무책임한 ‘1년 후’ 혹은 ‘그들은 그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주문과도 같았다.
이건 해피엔딩, 혹은 시청자들이 강요하는 ‘강박적 행복’에 대한 김병욱 감독의 신물이거나 납득이거나 항복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조롱일 수도 있겠다. 사실 김병욱 감독의 전작들 중에는 해피엔딩이 아닌 작품이 없다. 김병욱 감독의 최고작이라 꼽고싶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도 마지막 회,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이 찾아왔지만 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삶은 늘 죽음을 곁에 두는 것이며 죽음조차 일상인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지붕킥의 세경도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 삶, 물질, 풍요가 행복을 가늠하는 오직 한가지의 잣대가 아님을 김병욱 감독과 하이킥의 세계는 알고 있었고 행복과 불행은 총량의 법칙에 따라 움직임을, 마냥 행복할수만도, 마냥 불행할 수만도 없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절망에 대한 응시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행복을 탐구하는 모습이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하이킥의 주인공들은 늘 안주하지 않고 떠났다. 발전이란 이동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새로운 사람이나 새로운 삶, 관계로. 그러나 짧은 다리의 역습은 아무도 떠나지도, 상처받고 치유하지도, 변화하고 발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완성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겠지만, 사실 그런 삶은 없다. 어떤 의미에서 하이킥 시리즈는 이제 끝났다.
하이킥의 결말을 예측해본적 있다. 자본주의적 삶의 태도를 가진 두 인물은 이적과 크리스탈이었다. 이적은 늘 그런 삶의 태도를 후회하고 환멸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 자본주의의 가치관을 가장 잘 관철한다. 크리스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 (젊고 예쁜 여자의 성적 매력이 대표적인데)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워간다. 미국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아빠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선 자신의 기질적 특성도 완전히 숨길 수 있는 그녀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본성을 발각당하지 않았다) 난 그 둘이 결합할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결합하는 것. 일종의 M&A 같은거다. 크리스탈은 자신의 미모와성적 매력을 팔고 이적은 그 대가를 지불하고. 낭만이 없다고 주장하면 안된다. 금전적 능력으로 젊고 예쁜 여성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은 원시시대에 사냥 잘하던 남자가 애 잘 낳는 여자와 결합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신적 가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매력으로 작용하는. 자본주의의 시대의 낭만이란 그런 것.
지원이는 결국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갈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의사가 될 거라고. 그녀의 말대로 늘 재미없어하겠지만 적당히 재밌는 척 해주면서 그렇게 삶을 살아갈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계상이 걸은 길이기도 하다. 그 결핍감을 봉사활동이니 보건소근무니 하는 것들로 보충하겠지만, 그건 본질적인 건 아니니까. 그렇게 적당히 불행하고 적당히 윤택하고 적당히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살거라고 생각했지만... 지원이 뛰쳐나가서 정말 르완다로 갔을 것 같지는 않다. 그녀는 아마 좌절할거야. 르완다 비자가 그리 쉽게 나오나..ㅋ
종석이는 떠난 사랑에 좌절하고 적당한 성적에 명문대엔 지원했다 떨어지고 삼수해서 수도권 4년제 대학쯤에서 연애하고 술마시다 군대에 다녀오고 가끔 아이스하키를 보러가는 잘생긴 중소기업 직장인 쯤이 될거고, 진희는 언제까지고 골골거리면서 고시원을 전전하다 그럭저럭한 회사 비정규직 경리직원으로 살아가다 과장쯤 되는 남자랑 결혼할거라고 생각했다. 종석이 명문대에 지원하고, 진희가 꿈과 희망으로 대기업에 지원해보는 것. 그리고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한땐 나도 잘나갔지’를 주섬거리는 것이 짧은 다리들이 날릴 수 있는 역습의 궤적이다. 애초에 짧은 다리들에게 하이킥으로 경기를 역전하기란 불가능 한 일.
다만 희망이란 그렇게 수태날리는 숏다리들의 로우킥에 천하역사도 쓰러지는 법이란 사실이다. 본야스키의 로우킥이 최홍만과 밥샙을 자빠뜨렸던 것처럼. 그러나 어쩌다 날린 하이킥 한방에 들뜨다간 또, 자기가 그런 하이킥 날릴 수 있을거라고 믿고 로우킥 연습 안하다간, 밥 샙한테 신나게 두드려맞는다. 세상은 원래 롱다리들 편이다.
덧,
- 시즌 시작할때는 오직 백진희 편이었으나 지금은 박하선도 좋아연.
- 이종석에 박하선, 크리스탈까지. 김병욱 감독이 신인배우 알아보는 눈은 정말 매의 눈입니다.
2012. 4. 12. 06:42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괜히 동해서 선거평가.
1. 설레발치던 야권연대는 참패. 정권심판은커녕 지들이 심판당했.. 결국 정책적 차별성을 보여주지도, 인적 쇄신을 해내지도 못한 채 무조건 '우리도 나쁘지만 쟤들이 엄청나빠' 프레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증명 한 선거. 대선때 뭐라도 하고 싶다면 분노나 원망보다 일단 반성을. 하지만 그거 절대 못할거라는 걸 알기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대로면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맞이 할 수도 있을 듯?ㅋ
2. 통합진보당은 민노당 시절부터 지켜오던 동남권 라인을 상실. 울산에서도 창원에서도 거제에서도. 남은건 관악, 노원 같은 민주당이 던져준 떡밥. 이제 확실한 민주당 2중대로 자리잡았다. 예전엔 노동당 2중대, 지금은 민주당 2중대. 2중대 밖에 할게없는 당인가보다. 이로서 한국엔 노동자 정당이 사라졌다.
3. 진보정당의 개박살. 진보신당은 1%, 녹색당은 0.4% 정확히 92년으로 회귀했다. 백기완선생이 92년 대선에서 1.5%받았다고 했었나.
4. 하지만 괜찮다. 진보신당은 21만명이 넘는 이들에게, 녹색당도 10만에 가까운 이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 철폐와 탈핵과 생태주의와 인간적 삶의 복원에 동의해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 한번이라도 쉬운적 있었나. 김순자 아줌마가 더욱 힘을 불끈내주길, 김종철 선생님이 더 중요한 얘기를 좀만 더 쉽게 써주시길, 언젠간 그 문건에서나 보던 적녹동맹이 이루어지길 기대할 힘이 생겼다.
5. 오타까지 배낀 문대성과, 제수를 성폭행하려던 개새끼까지 당선됐다. 뭐 그렇다는거다. 이 정도로는 멘붕따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을 6명이나 죽인 김석기가 출마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저정도 쯤이야 뭐.
6. 그래도 이게 사는건가
7. 선거운동한답시고 쌍차 분향소에 조문도 안간 자칭 진보정당이지만, 한일병원 노조와 쌍차, 홍대, 재능, 강정, KEC 그밖의 모든 폭력에 저항하고 있는 곳에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
8. 정진'후'는 어떻게든 당선이 되는구나. 정진'우'를 바랐지만.
9. 난 처음으로 대한민국 0.5%가 됐다. 뭐 나름 뿌듯해.
10. 자세한건 내일 기사에서....물론 선배들이 쓸거다.ㅋ
11. 이 사진은 마음이 짠하네.
2012. 4. 10. 20:47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전봇대 뒤에 숨어있던 남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여성을 납치한다. 남자는 납치한 여성을 강간하고 무참히 살해한다. 피해 여성은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경찰은 애꿎은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수사 책임자가 옷을 벗고 물러나지만 여파는 잦아들지 않는다. 이 와중에도 경찰은 사건의 본질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사건은 오리무중이고 진짜 범인은 음흉하게 다음 범죄를 기획한다.
지난 1일 벌어진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줄거리다. 기시감이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와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은 놀랄만치 닮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건의 배후엔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경찰’이고 조금 나아가면 ‘정권’이고 어쩌면 ‘국가’ 혹은 ‘체제’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장면을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아”
영화 ‘살인의 추억’의 주인공들은 끈질긴 수사 끝에 범인이 등장하는 시점을 알아낸다. 비 오는 날, 라디오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흘러나오면 범인은 범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마침내 범인이 등장 할 시점을 포착하지만 결국 희생자가 발생한다. 촘촘한 포위망을 구축해야 할 경찰력이 시위진압을 위해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살인의 추억’의 배경이 됐던 5공 말기, 경찰은 시골 아낙이나 지켜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정권을 위협하는 이들을 고문해야 했고(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가끔씩은 성고문도 해야 했고(권인숙 성고문 사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러내기 위해 철거민(상계동 철거민 탄압)들을 쫓아내야 했다.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의 경찰들도 바빴다. 그들은 꼼꼼히 라디오를 챙겨들을 필요도 없이 피해자가 위치정보를 매우 상세하게 알려줬고, 7분이 넘는 시간동안 피해자와 전화가 연결돼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전해 듣고 있었지만 단순한 “부부싸움 같았다”던 담당 경찰관은 상황을 수수방관했고, “단순 성폭력 사건인 줄 알았다”던 형사과장은 다음날 사건이 다 종결된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하다. 이들은 바다 건너 제주의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진압’해야 했고,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 최루액과 테이저건을 쏴야하는 데다가, 크레인을 점거한 노동자와 그녀를 돕겠다고 몰려든 ‘외부세력’들을 쫓아내야 했다. ‘부부싸움’이거나 ‘단순 성폭력’일지도 모르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엔 이들에겐 할 일이 너무 많았다. ( 서천호 경기경찰청장은 강정에 수 백 명의 경찰력을 투입했고, 과잉진압 논란이 있던 ‘희망버스’ 당시 부산경찰청장 이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평택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당시 경기경찰청장이었고, 진압의 공을 인정받아 서울 경찰청을 거쳐 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영화가 ‘동네 바보 형’ 한 명을 잡아다가 두들겨 패서 거짓 증언을 만들어내는 모습과 신고전화 녹취시간과 경찰출동 여부 등 금방 드러날 거짓말로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모습도 닮아있다. 이들도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 하지만, 이들의 ‘사건해결’은 일반적인 의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에겐 ‘사건이 불거지지 않는 것’이 ‘해결’이지 않을까. 그들이 지키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정권’, ‘국가’, ‘체제’같은 것들 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이건 ‘기시감’이라는 단순한 현상으로 설명 할 수 없다. “이 장면을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아”라는 신기한 감정으로 치부하기에 이 반복은 너무 구조적이고 치밀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는가
눈 밖에 난 인물이라면 그가 연인의 딸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는 대화까지도 엿듣는 국가다. 공무원이고 노조고, 정치인이고, 언론사고 ‘닥치고 사찰’하는 국가다(굳이 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정권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맨 앞장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충성’을 맹세시키던 국가다.
세금을 내고, 법규를 준수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것은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 곳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을 국가가 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결과 오늘 날 돌아온 건 치안의 바깥으로 내던져지는 결과다. 어느 경우엔 몸과 마음을 다 바친 국가에게 사생활이 파헤쳐지거나 직접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교과서는 분명히 우리의 안전한 삶과 행복을 위해서 국가가 존재한다고 가르쳤는데, 실상은 그 반대다. ‘국가’(로 대변되는 그 무엇)의 존속과 안위를 위해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경찰과 군대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따금 그들은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는 것일까.
‘살인의 추억’의 시대와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의 시대 사이엔 30년에 가까운 시간이란 간극이 있지만, 여전히 동시대라 불러야 한다. 사람보다 국가가 우선시 되거나 국가를 위해 사람이 무시되는 시대. 공권력의 의미가 ‘공익’을 위한 권력보단 ‘공인’을 위한 권력으로 이해되는 시대.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이 지겨운 반복의 주범은 사실 우리이기도 하다. 몰이해 혹은 무지는 망각이나 단념보다 더욱 큰 죄악이다. 무엇이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왜 화를 내야하는지 알지 못하는 일.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는 말의 기저엔 부부간의 폭력은 개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일한 의식이 깔려있다. “단순 성폭행인줄 알았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 성폭행 사건은 긴급을 요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을까.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경찰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무책임한 사람들의 반응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고도 말하고 있다. 10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유가족은 “그러게 왜 밤중에 돌아다니냐는 악성댓글이 달리고, 언론들은 멋대로 사건을 부풀린 자극적 기사를 내고 있다”고 말하며 “이런 일들이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일에 무던해질 대로 무던해진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도 무던해졌는지 모르겠다. (이 유가족이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도 애초에 프로그램 공식 웹사이트에 그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그가 익명을 요구하자 부랴부랴 실명을 삭제했다)
감수성의 문제다. 자신과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고통의 정도를 인지하는 능력의 문제다. 부족한 감수성은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인지하지 못하게끔 한다. 국가가 살인을 방관해도, 부부간의 폭력을 일상으로 치부해도, 성범죄의 책임을 오직 피해자에게 전가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시대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문제의식조차 없는데 어떻게 나아갈까. 그저 지긋지긋한 반복뿐이다.
살인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 “미치도록 잡고 싶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살인의 추억’ 메인포스터가 하는 말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잡을 수 없었던, 오늘날 수원에서 또 한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경찰이 수사보다 축소를, 사과보단 은폐를 선택하게 했던 ‘그 것’. 그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지만 ‘그 것’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어딘가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다.
어쩌면 ‘그 것’은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부부간의 폭력은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머리에, 성폭력의 원인은 피해 여성에게 있다고 말하는 당신의 혀 끝에, 피해자의 처신을 운운하는 댓글을 달고 있는 당신의 손 끝에.
추억은 과거에 머물러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때 추억이 된다. 반복되는 것은 추억이 아닌 현실이다. 우리가 전부 달려들어 죽인 그녀. 우리에게 이 살인만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2012. 3. 31. 03:27 Vecchio Primavera
윤아가 이명박을 지지하면 난 새누리당에도 가입할 수 있을 듯.ㅋ
(근데 정말 그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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