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이번 사고가 터지고 가장 마음이 먹먹했던 기사.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남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 
하지만 살아야지, 먹고 놀고 웃으며 그래도 살아야지.

2.
말이 넘쳐난다. 저 위정자들의 유체이탈 화법이야 이제 하나하나 옮겨적는 일도 지치니 잠시간 뉴스를 끊고 심호흡,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해야하겠다. 우리가 할 일은 짧고 굵게 분노하다 지치는 것이 아니라 길게 슬퍼하며 오래기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속죄. 

누구 하나를 악마화 하고 몰아붙이는 것으로 분노를 소모해서도 안된다. 사고는 정권의 탓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 탓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들었거나 유지했거나 납득하고 체념하고 다른 세계로의 가능성을 체념한 우리 모두의 탓이기도 하다. 1년짜리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들이 배와 함께 장렬히 최후를 맞이하는 해적만화 같은 책임감을 발휘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비용절감과 규제완화만이 절대의 선인양 온 나라가 발벗고 나서는데, 합리와 효율이라는 말에 이미 생명과 안전은 배제되는 이 신자유주의의 세계에서.

책임의 소재를 가리고 적절하게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것은 냉정한 분노와 정확한 진단이다. 

3.
가뜩이나 봄을 타고 있는데, 온나라가 초상집이니 마음이 더 심숭생숭하다. 낮에는 괜히 티비에서 나온 서른즈음에를 듣다 울컥해버렸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불안과 우울, 서른해 남짓 나를 대표해온 키워드가 이런 것이라니 참 서글프기도. 아까는 운동 중에 한남대교 다리 위에서 담배를 태우며 멍하니 서있는데, 뭔가 걱정스러워 보였는지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더라. "야경 참 예쁘죠?". 그 에쁜 풍경에 내 몫이라곤 하나 없는 것 같아서 괜히 더 울컥했다. 하지만 대답은 해맑게.

4.
이와중에 엘지는 승률 2할5푼을 찍으며 최하위. 며칠전엔 빈볼에 이은 벤치클리어링으로 구설수에. 좀 작작하자.

5.
몇 주 밀렸던 참좋은시절을 몰아서 다시 봤다. 요 몇 년간 그 시간대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좋은 드라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김희선과 윤여정이 참 돋보이고 예쁘다. 애잔하고 슬프다 피식 웃게되는 몇시간을 집중하고 있는데, 김희선이 밥을 먹는 식당장면에 이송 감독의 남쪽으로 간다 포스터가 잡힌다. 포커스가 완전히 나가서 글자고 그림이고 잘 안보이지만 실루엣만으로 포착해낼 수 있어야 진정한 덕후입니다. 내 덕력의 가이없는 성장이 뿌듯할 따름.

6.
며칠 전엔 고즈넉하고 어두운 바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입구엔 지미헨드릭스가 걸려있었고 들어설 땐 김광석이 흘러나왔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트래비스니 콜드플레이니 하는 브릿팝부터 QVL이나 뉴트롤즈 같은 프로그래시브에 서태지와 다프트펑크까지 대중없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는데, 노래가 나올적마다 반응을 보이니 흥이난 사장님이 대뜸 90년대 댄스뮤직 퍼레이드로 방향을 선회했다. 친구와 대화 중에 듀스니 Ref니 하는 팀의 이름이 나온걸 아마 사장님이 들었나보다. 시간도 늦어 가게 안엔 만취한 사람과 만취할 사람만 남아있었는데, 그 탓인지 사람들이 흐느적 흐느적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졸지에 밤과음악사이가 돼버린. 얼결에 나도 일어나 꼭지점 댄스같은 춤을 뒤뚱뒤뚱 추며 그 가게의 웃음거리가 돼주었다. 뭐 여튼 재밌게 잘 놀았다고. 시절이 어떠니 우울이 어떠니 해도 술을 마시고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춤도 추고 그러는 겁니다.

7.
그래서 내 장래희망인 대학가 허름한 술집의 털보 뚱보 사장겸 셰프겸 DJ가 이뤄졌을 때 꼭 틀고 싶은 오늘의 노래는 이거.
      



어른들이 어쩔 수 없는



1. 

난 학교로 대변되는 제도권 교육과 거기서 파생되는 폭력의 대물림을 꽤 혐오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를 거부한다거나 지금 일부에서 흘러나오는 말처럼 수학여행이고 학교고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분노를 갖지는 않는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만일 나중에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되더라도 학교는 꼭 보내고 싶다.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며 참 많이도 얻어맞았다. 선생님이나 선배, 동급생에 의한 물리적 폭력은 물론이고 성적, 돈, 대학, 차별 같은 사실 어쩌면 주먹보다 더 아픈 것들로도 숱하게 얻어맞아야 했다. 그럼에도 나와 내 친구들은 건강하게 십대시절을 보냈다. 우리는 가끔 못된 짓을 하며 낄낄거리기도 했지만 돌이켜 후회하고 반성하는 법을 배웠고, 시험성적을 잘 받고 싶어서 커닝을 했지만 시험지 잘 보여주는 것보다 운동장에서 패스 잘 해주는 친구가 더 훌륭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2.

어른들은 언제나 경쟁하고 승리하고 이겼으면 짓밟는게 당연하고 넘어지고 패배한 놈 따윈 가볍게 무시하고 너부터 잘 살라고 가르쳤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었다. 여기서 우리란 나와 내 친구들을 말하는게 아니다. 이 빌어먹고 씹어먹을 세상에서도 우정과 의리와 사랑을 알고 있는 모든 어린 친구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 어른들은 그들이 가르친대로, 저 혼자 살기위해 남들은 짓밟으라고 가르친 대로 행동했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믿지 않고 서로를 보듬고 앉아 남았다. "언니는 왜 구명조끼를 입지 않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승무원은 가장 나중에 구명조끼를 입는 것"이라며 어린 아이들을 살려내고 세상을 떠난 22살의 알바생이 그 배에서 사고에 책임을 표현한 유일한 선측 사람이다. 


내 학교가 아름다웠던 까닭은 오직 그 것이다. 우리가 어른들의 세계와 언어를 믿지 않으며 우리를 보듬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 이루 다 열거하기 힘들만큼 역겨운 어른들의 작태가 더 증오스럽고 또 부끄럽다.



생명과 구조는 뒷전이고 사진찍기 바쁜 일부 정치인이나 제 밥그릇 찾겠다고 사망자의 보험금을 운운하는 기사까지 내보내는 몰지각한 기자 나부랭이들만을 탓하고자 하는건 아니다. 흔한 농담처럼 기자와 정자의 공통점은 '사람되기 어렵다'는 것이니까. 이건 어른들이 아이들과 사회에 동시에 저지른 죄악이다. 그래서 쉽게 분노해서도, 슬퍼해서도, 사죄해서도, 비통해해서도 안된다. 고작 그까짓 서푼짜리 양심의 가책으로 넘겨버린다면 언제고 이런 일은 다시 또 더 크게 발생할 것이다.


3.

뉴스를 통해 구조 소식을 지켜보던 어느 아이들에게 선생이라 불리는 작자가 "어차피 다 죽었을테니 신경끄고 공부하라"고 말했다는 아이의 트윗을 보고 얼마간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후관계를 떠나 한 생명 한 생명의 무사를 기원하고 어른들이 뿜어내는 독소같은 말을 믿지 않는 아이들의 힘이 세계와 세상을 지켜낼 것이다. 그 시절을 올곧고 건강하게 살아 어른들이 내뿜는 독마저 이겨낸 아이들의 우정과 의리와 사랑.


4.

그래서 난 학교교육을 다 없애자고, 수학여행 따위 없애버리자고 분노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스민 어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 따위가 감히 어쩔 수 없는 힘을 어린 친구들은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친구와 가족과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거나 잊지 않았던 그/녀들에게 말한대로 어떤 사죄와 안타까움과 조의도 표하지 못하겠다. 다만 이미 어른이 돼버린듯 살아가지 않겠다는 다짐만. 나중에 아이와 함께 살아가게 되면 꼭 경쟁보다 우정을, 승리보다 사랑이란 말을 먼저 가르치겠다는 다짐만.

 

단상


1.

요즘 내게 닥치는 문제들에 대해서 이래저래 끼적여보다가 중언부언이 되는 것 같아 관뒀다. 다만 끼적여 눈으로 읽고 나니 문제는 머릿 속이 엉켜있어 너무 산만하고 두서없다는 것. 해야 할 말을 안하거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있다. 의미없는 말이(만) 많아졌고,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재미도 없고 실없는 농담만 지껄이는 중. 돌아서면 후회할 일과 말.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는 느낌이다. 그보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글도 말도 중언부언. 재미없는 농담을 끝없이 지껄이는 남편을 살해한 여자에 대한 소설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뜨끔했다. 여튼.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 자존감의 부족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이 말을 해도될까"라는 마음, "이렇게 말하면 관심받을 수 있을거야"란 마음. 같은 거. 생각을 정지시키는 우울한 삶도 사실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고, 사실은 자존감이 떨어진 결과기도 하고. 여튼 살을 빼기로 했다. 연애도 하고. 말을 줄이고, 글을 늘리고. 돈을 아껴쓰고,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씻고, 택시를 타지 않고. 


2.

절에 갔다가 법화경을 한 권 얻어왔다. 조금씩 조금씩 머리맡에 두고 읽어야겠다. 경전 읽어서 좋은 일이 생길거라는 마음보다는 뭐든 다시 읽는 습관을 들여야지,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지. 책을 제대로 끝까지 읽은게 언제적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3.

JTBC에서 하는 밀회를 보기 시작했다. 유아인과 김희애가 협주하는 장면이 마치 격정적인 베드신 같았는데, 그렇게 느끼라고 만든 장면이었나보다. 그런 대사가 나중에 나오더라. 재밌고 좋은 드라마를 보는 일, 그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끼적거리는 일. 이 찌질한 일이 지금 내가 하는 가장 행복한 일이다. 


4.

하지만 가장 행복한 일을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돈 버는 일을 해야지. 사실 내가 가장 우울하고 힘든날은 주머니에 돈이 없는 날이다. 빚지는 것도 쩔쩔매는 것도, 돈 때문에 고민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흥청망청 놀아재끼는 일부터 줄여야지. 술을 줄이면 살도 빠지고 돈도 아끼고. 


5.

운세사이트에서 사주를 보는데, 내 애정운을 이렇게 설명해놨더라


[계일생(癸日生) 남성들은 다소 나약하고 소심한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성이 나타나도 머뭇거리다가 구애의 시기를 놓치고는 후회하기도 합니다. 지하로 흐르는 물, 즉 음기가 강한 물이기 때문에 숨겨지는 것이 많고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면이 많은 까닭입니다. ]


소심하고 찌질한건 이미 사주에서 예견된 바였다... OTL


6.

오늘은 만우절. 하루종일 내게 농담한 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다. 사실 나도 딱히 농담한마디 하고 싶은 사람도 기깔나는 개드립 아이디어도 없다. 내 꿈이 무려 개드립의 마술산데. 그래서 그냥 짤방으로 대체.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만우절에하는 사랑고백은 대부분이 진심일거다. 그래서 난 고백하지 않을거다.ㅋ 다만 만우절을 핑계삼아 고백해주세요. "라면먹고 갈래? 불닭볶음면도 있어" 엉엉엉. 제발. 엉엉엉.


8.


거짓말하면 역시 god.




단상


1.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을 진즉에 포기했다. 무슨무슨 주의니 하는 말들을 드립다 읽어봤자(사실 그렇게 드립다 읽지도 않는다ㅋ) 변혁도 다른 세계도 이미 요원하다. 그것이 사회나 세계같은 거창한 것이든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든 모든 변혁과 진보는 어차피 곧 봉합되고 원점으로 회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포기'는 아닐테다. 봉합된 세계는 다시금 뜯겨나갈 것이고 봉합과 탈주가 무수히 반복되는 동안 생긴 작고 미세한, 정말이지 너무너무 작고 미세해서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균열들의 축적이 마침내는 변혁이고 다른세계일 것이라는 희망을 믿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그 희망을 '믿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떨었던 수다와 심각하게, 혹은 낄낄거리면서 나눴던 토론이 지금 당장의 변화를 추동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책에서 읽은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고 자괴하는 일도 좋다. 그 자괴가 알리바이로 작용하고 자기변명꺼리로 이용되는 일도 나쁠 것 없다. 다만 희망을 믿을 수만 있다면. 오늘내일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말이다. 오래가는 힘, 오래도록 희망을 부여잡을 수 있는 힘. 그건 아마 쉽게 실망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마음에서 나올 것이다. 시간을, 마음을, 이야기를, 공간을 쌓고 또 쌓자. 조금씩 조금씩. 낙숫물이 주춧돌을 뚫어버릴 듯, 우씨 노인이 산을 옮기듯, 소녀시대가 꾸준히 예뻐지듯. 


그래서 오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다만 외로움이다. 희망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시간을, 마음을, 이야기를, 공간을, 관계를 앗아가버리는 그런 모종의 외로움. 오래도록 희망을 믿고 시간을 쌓아나가기 위해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더 나은 우리가 건강해야한다. 하여 결국 하고싶은 말은 외롭지 않게 즐겁게, 오래도록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게, 재밌게 놀자는 것. 그러니 소개팅을 굽신굽신.ㅋ     


2.

연애음주주간. 물론 내 연애는 아니고 남의 연애문제에 감놔라 배놔라 하느라 일주일간 하루도빼놓지 않고 부어라 마셔라 흥청망청 술을 마셔댔다. 그 연애문제들에 시덥지 않더라도 뭔가 위로를 건네고자 얼마 있지도 않은 멜랑콜리한 사연들을 끄집어 쥐어짜내느라 적잖이 고통스러웠던. 마른오징어에서 물짜내는 것마냥. 


여튼, 그 덕에 지난 내 애정사를 톺아보며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모두 맛보고나니 우울감보다는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다. 내가 얼마나 바보같고 폭력적이었는지, 또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에는 얼마나 비겁하고 용기 없었는지를 모두 기억해낸 듯. 그래, 사랑만이 오직 우리가 해야할 일.


3.

집안의 대소사며 회사의 망할 상사이야기, 시시콜콜한 연애문제까지 살며 겪는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에게 "좀 덜 친하게 지내자"고 말했다. 다시금 적당한 거리두기. 서로에 대한 의존이 너무 많이져서, 서로의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서 (걔도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다만, 여튼.) 어쩌면 각자의 삶에 스스로 충실하지 못하고 나가선 서로의 삶을 갉아먹고 잠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니까, 걔 소개팅과 새 연애를 치졸하게 방해하는 나를 봤다는 얘기다. 괜한심술과 투정, 질투.


사실 한 5년 전쯤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있었는데. 언제까지 이런 실수를 계속 반복해갈진 모르겠고 아마 또 한 5년쯤 지나서 이런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언제나 친구에게 "외로움을 긍정하고 견뎌낼 수 있는 법을 배우자"고 말했다. "오직 그것만이 이 외로운 세상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지켜내며 외로움으로부터 침식당하지 않을 방법"이라면서. 이제 그 말을 나 스스로에게 돌려줘야지. "외로운 마음을 인정하고 견뎌내자" 


4.

그래서 이번 주의 노래는 뜨거운 안녕.ㅋ

하지만 노래는 성시경이 부른게 더 좋은데, 싸이의 그 유치하고 저질스런 추임새 랩만 빼면.ㅋ



5.

프로야구 개막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리즈의 공백이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 한 번이라도 만족스런 전력으로 시즌을 시작한 적 있었나.ㅋ 그간 10년 정도는 엘지에 없었던 말인 '유망주'들이 한것 자라주고 있다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낸 노장들도 한껏 사기가 충천했다니 신심을 갖고 시즌을 지켜보겠다. 


시범경기 마지막날 처음으로 잠실을 찾았는데, 기아로 이적한 이대형의 모습이 늠름하더라. 어려운 시절 꿋꿋하게 팀을 지켜준 의리있는 남자 이대형이 승승장구하길 온마음으로 바란다. 시즌당 도루도 한 70개씩하고 4할출루에 3할타율도 기록했음 좋겠다.그러다 다음 FA에는 거액을 받고 친정팀으로 금의환향 하기를.


이쯤에서 내 멋대로 엘지트윈스의 베스트 나인.


1. 박용택 (중)

2. 오지환 (유)

3. 정의윤 (좌)

4. 조쉬 벨 (3)

5. 이병규9 (DH)

6. 이진영 (우)

7. 이병규7 (1)

8. 현재윤 (포)

9. 손주인 (2)

P. 류제국


김용의나 문선재, 정성훈, 윤요섭 같은 이름이 너무 아깝지만 일단 베스트 멤버는 저쯤 아닐까.

김용의 문선재의 불확실한 포지션을 정리하고 박경수와 권용관이 더해진 내야의 힘을 좀 더 키우면 공격력은 올 해도 최고 수준일듯. 문제는 선발진인데, 개막선발로 내정된 김선우는 여전히 조금 못미덥다. MLB의 써니 시절은 사실 이미 진즉에 지났는데.

(하지만 그래봤자 우승은 삼성이 하겠지요)


5. 

정도전, 참좋은시절, K팝스타, 일박이일까지. 주말, 특히 일요일에 챙겨보고 있는 TV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아져서 고단하다. 참좋은 시절과 K팝스타는 벌써 2회나 밀렸어. 얼른 따라가야지.ㅋ


6. 

주말에 TV나 보는건 내가 연애도 못하고 외로움에 사무쳐서 그럼니다. 바야흐로 고독이 몸부림치는 계절. 하트는 이제 그만보내주세요. 애니팡만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처량함니다. 엉엉엉




클럽공연 짧은후기, 노래를 돌려받은 기분이에요






노래 잘해서 좋아해요.ㅎ



기회비용 15만원짜리, 재밌거나 의미있었을 시간까지 포함하면 더 큰 기회비용을 지불한 공연이었지만, 그럼에도 간만에 참 좋았던. 그동안 궁시렁 궁시렁 이러쿵 저러쿵 말이 참 많았지만, 이렇게 노래가 좋으면 다 좋아요. 바로 팬심 되살아나 또 하악하악.

십 수 년만에 다시 돌아온 원년멤버의 우당탕탕 드럼소리가 그 시절의 노래와 마음을 상기시켜 주는 양. 형들한테 덤비는 것 같고 감히 불러선 안될 것 같아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넋두리 같은 노래는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었는데, "사실 덤비는거면 또 그게 어때서"하며 부르던 그것만이 내 세상이 참 좋더라. 기쁨보리떡이나 슬픈인연도 무척 좋았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노래만불렀지'. 작년쯤 한창 산만하고 정신없던 시절에 부르던 노래만 불렀지는 그렇게 싫었었다. "내 노래만 불렀지를 돌려줘"라는 공연후기도 썼었는데..ㅎ 그건 마치 노래를, 어쩌면 시절을 다시 돌려받은 느낌. 그래서 오랜만에 덩실덩실.ㅎ 대학로 소극장 구석에서 덩실덩실 우린 미쳤어 하고 소리지르던 시절도 다시 생각나 울렁울렁 하기도 하고. 여튼,

며칠 전 전인권 아저씨 공연도 그렇고 요즘은 참 좋은 노래들에 귀가 행복한 시절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으니 이제 새로운 꿈을 꾸어요.ㅋ


Bandits - Another Sad Song

)

극단적인 남성중심의 사회와, 그 세상의 폭력, 저항과 탈주, 그리고 음악을 통한 우정과 연대. 밴디트가 가진 키워드는 이렇게 매력적이다. 어쩌다 주워들은 another sad song을 찾아가다 만난 영화는 참말 근사했다. 총을 겨누는 제복의 남자들 앞에서 기꺼이 총을 버리는 여자들. 열광하는 관객들의 머리 위로 뛰어내리는 밴드. 하악하악.

90년대 초중반에 개봉한 영화들은 너무 어렸던 탓에 놓치고 지나가기가 십상이다. 차근히 하나하나 다시 구해서 봐야겠다. '그땐 너무 어렸어요 기획'쯤이 될까.ㅋ

++
But I can't really tell you, what is wrong 
But all that comes out is another sad song 
Maybe it's because I slept too long 
And nobody called me on the phone.


만신




"외기러 왔소, 불리러 왔소, 죽은 쇠를 받아다가 산 쇠를 만들러왔소"


'걸립'은 새 만신이 신내림을 받기 전 마을을 돌며 내림굿에 쓸 무구와 쌀을 얻는 일이다. 집안에 오래된 죽은 쇠를 받아다가 산 쇠로 만들며 집 사람들을 축원한다. "이 쇠 받아다 큰 만신 되세요". 하나의 만신이 탄생하는 과정은 마을이 힘을 모으고 희망을 축원하는 일이다. 만신의 굿과 기도란 개인의 부귀나 영화가 아니라 공동체, 나아가선 세계와 소통하는 일에 더 가깝다.


만신이 작두의 날을 타는 것은 마치 그녀들의 삶을 닮아있는 것 같다. 사람과 신의 경계에 위태하게 서있는 양. 어느쪽으로 기울 수도 없는 외롭고 고독하게 그저 가장 높지만 가장 위험한 곳을 살아내야 하는.


그래서 어쩌면 무속과 굿은 예술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것이겠다. 사후의 구원을 보장하며 엄숙한 합창에 헌금봉투를 내미는 이들에게 돼지머리에 만원짜리를 턱턱 붙이는 굿이야 천하고 해괴한 것이겠지만 사후에 올 세계가 아니라 지금 이자리에서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고 울고 웃게 만들어주는 굿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예술이고 연출일 수 있다.


박찬경 감독은 굿이 오늘날 영화를 비롯한 대중예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연출을 보인다. 다큐에 캐릭터가 들어서고 현실의 인물과 극의 인물이 만나는 순간, 그러니까 경계성이 무너지며 경계의 삶이 드러나는 그 순간 만신 김금화의 삶이 더 애잔하고 슬프고 감동스러워진다. 그게 가장 잘 들어나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쇠걸립 시퀀스다. 쇠를 얻으러 다니는 어린 넘세 김새론에게 "큰 무당이 되라"며 쇠를 건네는 출연진과 마을사람들과 스탭들.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김금화 만신까지. 지나간 시간과 사연이 올올이 풀어해쳐지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만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래요, 영화보는 거 좋아한다면 이 영화는 꼭 봅시다. 김금화 선생님이 쓴 '비단꽃 넘세'도 좀 읽구요.


덧,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백현진이 부른 파경. 영화와 백현진의 목소리는 어쩌면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


다큐리뷰 - 마이 플레이스, “그건 평균이지, ‘정상’이 아니에요”



사고 (事故)[사ː고][명사]

1.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2.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사고를 쳤어”. 한 숨을 푹 내쉬는 아버지, 죄를 지은 듯 침통한 표정을 짓는 어머니, 고개를 푹 숙인 딸, 흥분한 듯 숨을 씩씩거리는 오빠. 사랑의 도피행각 끝에 배가 불러 나타난 딸이 ‘사고’란 대사를 뱉으면 비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전형적인 한국의 홈드라마라면 그렇다.


사전에 나온 것처럼 ‘사고’는 ‘불행한 일’이며 ‘나쁜 짓’이다. 하여 공공기관의 수장을 낙마시킬 만큼 혼외임신을 부도덕한 짓으로 여기는 한국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임신(사실 이 표현도 지극히 모순적이다. 처녀가 어떻게 임신을 하나)은 분명 ‘사고’다. 더구나 임신을 했으면서 결혼은 굳이 하지 않겠다는 딸이라면 이보다 큰 사고뭉치는 없다. 딸을 임신 ‘시킨’ 그 놈(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사위는 아니다)은 결혼해 딸과 손주의 인생을 ‘책임’지려 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거다.     


# 정상성에 대한 질문


전형적인 한국의 드라마에서 사고친 딸의 귀환 시퀀스만큼이나 흔한 연출은 또 임신한 연인에게 “내가 책임지겠다”며 “결혼하자”말하는 남자의 결기어린 선언이다. 임신한 연인을 대하는 남성들의 책임감은 대부분 ‘결혼제도로의 편입’이라는 형태로 이어진다. 그것은 그대로 결혼제도 바깥에서의 출산과 육아를 무책임한 것, 그리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다. 


<마이플레이스>는 어느날 느닷없이 임신해서 나타난 감독의 여동생과 가족들, 그리고 여동생의 아들 소울이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그야말로 계획되지 않은 사고를 치고 집에 돌아온 딸과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 


<마이 플레이스>의 박문칠 감독은 영화에서 “평소 자신을 꽤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임신해서 돌아온 여동생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숫제 딸의 임신소식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알려지면 이제 난 교회에도 못다닌다” 면서. 아버지는 손자 소울의 돌잔치 초대장에도 누구의 아이인지 정확히 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 문숙은 이 임신이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고, 결혼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계획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캐나다의 정부가 지원하는 육아지원금과 학자금 대출을 통해 생활을 꾸리고 학업을 마친 이후에 대출금을 갚아나가겠다는. 실제로 문숙과 소울은 계획대로 캐나다 정부의 보조금과 학자금대출, 무상보육 시스템을 활용하며 충분히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변에서 우려한 것처럼 ‘계획에 없던 사고’, ‘무책임하고 철없는 행동’이 아님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이란 어쩌면 판타지에 다름없다. 혹은 편집증이나 강박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양부모와 미혼의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 역사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가족을 대표하는 가족형태이며 정상성을 획득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우리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생아(私生兒)라는 표현은 이 이데올로기가 우리사회에서 갖는 역할을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겠다. “공식적이지 못하고 사사롭게 태어난 아이”라는 뜻인 사생아의 영어 표현은 ‘Love Child’. 오히려 사랑과 출산, 행복 같은 말은 결혼 바깥에 있는지 모를 일이다.


조금 심각해져본다면, 엄부자모의 단란한 4인 가정이라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자본이 ‘국가권력’과 ‘생산수단’을 소유한 채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의 성’을 통제하여, 가능하면 최고의 노동력, 즉 국민을 끊임없이 가장 싸게 제공받음으로 궁극의 이익인 국가경쟁력, 자본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다. 미셸푸코는 “성권력의 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국가와 자본이 ‘육체의 규율’과 ‘인구조절’이라는 두 가지 극을 중심으로 이용해 ‘생명의 정치적 배치’를 관리하고 통제한다”고 말한다.

 

결국 덧없고 무의미한 정상가족, 정상성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사회의 비혼 여성이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것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은 것’에 가깝다.


# 가족의 의미


하여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모든 억압과 통제의 기초단위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족은 살아갈 힘을 만들어주는 모든 행복의 기초단위이기도 하다. <마이 플레이스>에서 감독은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연출했던 단편영화를 소개한다. 사회로부터 결국 소외당한 주인공이 결국은 엄마 품으로 찾아드는 내용의.


언젠가 가족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족을 “억지를 부릴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이라는 말로 정의한 적 있다. 부당하고 불합리하고 다소 폭력적이지만 의례히 받아 줄 것이라고 여기며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대상들이라는 의미였다. 어디서 큰 빚을 지거나 혹은 말도 안되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도 아니라면 방구석에서 잉여노릇하며 백수로 피둥피둥 한심하게 살아도 받아줘야하는, 받아 줄 수 있는 존재들. 최후의 순간까지 치달은 후에 결국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믿음의 대상 같은 것. (물론 가족이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강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족이란 친족간의 혈연적 유사성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유대관계가 그 핵심에 더 가깝겠다.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갖고 싶었던 문숙의 솔직한 속내는 “어떤 경우라도 자기 편이 돼주는 존재”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기존의 가족에서 느끼지 못했던 유대관계를 자신의 분신으로 부터 얻고 싶었던 마음. 

  

# 다시, 가족의 탄생


<마이 플레이스>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서로 오해하거나 잘 모르고, 그래서 왜곡되거나 삐뚤어졌던 혈연적 가족관계에서 소울의 탄생이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가까워지는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다시 하나의 가족이 탄생하는 듯한 모습이다. 


딸 문숙은 폭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미워했지만 소울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또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마찬가지로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이해할 계기를 갖게 된다. 감독 역시 ‘이방인’과 ‘비정상’으로 살아야 했던 가족사를 더듬으며 “자기 자신을 숨기는 것에 능숙했던” 어린 시절과 지금의 모습을 되새긴다. 


차별과 가난에서 도망쳐 캐나다를 찾았던 부모세대와 다시 돌아온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던 자식세대. 두 세대의 고통은 ‘다름’을 배제하고 ‘평균’을 강요하는 사회적 억압이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용납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경직성에 ‘이방인’으로 떠돌던 가족. 그러나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지탱시켜주는 것 역시 가족이라는 것을 이들은 소울의 탄생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된다. 한 곳에 모여 살지 않아도,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유지되며 서로의 버팀목이 돼주는 가족, ‘마이 플레이스’의 탄생이다. 


# 소울


감독 가족의 결합을 이끌어낸 소울은 어느덧 아홉살이 됐고 캐나다에서 행복하게 성장 중이다. 가끔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가족을 ‘비정상’이라고 여기지 않는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고 있다 한다. 소울은 한국과 몽골(감독의 아버지는 몽골에 거주하며 봉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캐나다에 각각 떨어져 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 엄마를 모두 가족이라 부르며 “사람들은 생김새와 피부색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관찰해낼 만큼 영특하고 “그래도 모두 같아졌으면 좋겠다” (글쓴이의 자의적 해석일 수 있지만,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는 의미로 들렸다)고 말할만큼 기특한 어린이로 자라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체화하며 ‘정상’을 강요받지 않는 아이들이 자라 만들 미래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는 장면.

 


안녕, 김연아

스포츠 중계를 보려고 졸린 눈 부비며 깨어있었던 게 얼마만인지.


클래스가 다른 천재의 마지막 무대를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그건 기술의 클린이나 난도가 높은 점프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아름다움에 대한 경배. 냉정하게 기록을 따지는 '경기'가 아니라 서로의 아름다움을 견주고 순수하게 경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무대'에 대한 감사. 몇 년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군림한 여왕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그녀의 우아함에 한 번이라도 탄성을 질러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들었을테다.


메달의 색깔과는 관계없이 오늘도 최고로 아름다웠다. 마지막이라는 짠한 상황이 곁들여지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눈물이 찔끔할만큼. 김연아가 좋아졌던 건, 언젠가 얼음위에서 '기술'을 부린다고 생각되던 다른 선수들에 비해 그녀만이 '춤'을 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였다.  오늘도, '안녕, 할아버지'하고 춤추는 모습은 지난 몇 년간의 시간들을 그러니까 힘겹기도 영광스럽기도 때로는 지겨웠을지도 모를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양. 


아름다움의 가치는 메달의 색깔이나 몇몇 사람들의 점수 따위로 매겨지는 것은 아니겠다. 시간이 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의 오늘의 누구를 기억할지에 따라, 혹은 어느 한 사람이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지에 따라.


김연아의 뒤에서 더 힘들었을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악셀 성공도 축하한다. 은퇴하는 마오도 마침내 (메달따위와 관계없이) 기쁘고 행복했을 무대였음. 집착이네 발악이네 하는 저열하고 치졸한 조롱에도 끝내 도전하고 성공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조금씩 전성기의 나이를 지남에 따라 신체능력도 저하되고 어쩌면 생애 마지막 올림픽에서도 넘어지도 조롱받을지 모를 도전을 끝내 시도하고 마침내 성공하는. 삶에서 대부분의 도전이란 언제나 비루하고 가망없고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끝내는 성공해버리는 이야기. 일본의 청춘만화 스토리같고 좋다. 아름답고.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이번 심판진의 채점은 잘못된 것 같다. 아마 올림픽을 통해 왕년의 영광을 되살려보려는 푸틴의 삽질이 애꿏은 선수들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고 있는 거겠지. 분노하고 비판해야지. 다만 거기에 분해서 평창에서 두고보자느니 러시아를 어쩌겠다느니 하는 사람들을 보자면 조금 답답하다. 똥묻힌 놈이 싸우잔다고 같이 똥묻히자는 것 같아서. 사실 88년이며 2002년에 한국도 똑같거나 더한 짓 많이 했다. 그 치졸한 분풀이들이 오늘 보았던 아름다운 춤사위에 똥물을 튀길까 저어된다.


여튼, 아디오스 할아버지.했던 김연아의 다음 행보도 기대된다. 어디서든 발군이었던 클라스는 어느 곳으로 가도 빛난다는 내 지론은 거의 과학적 이론에 가깝다. 


이쯤에서 오늘의 그녀를 보고 생각나는, 

연화야 낙목한천의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소치 단상


1. 

올림픽 소식따위 전혀 모른 채 지내다가 오늘 처음으로 Tv를 켰는데, 왠 해괴망측한 광고가 하나 보이더라. 김연아가 피겨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김연아는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씨부리는. 개인과 국가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혹은 개인보다 국가를 항상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우리는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2.

쇼트트랙 선수 김아랑이 준준결승에서 2위를 차지해 준결승에 진출한 직후 서럽게 우는 장면을 봤다. 은메달을 딴 심석희는 울먹거리며 "금메달을 못 따 죄송하다"고. 도대체 우리는 저 어린 선수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인지,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렇게 서러운 눈물을 보이는 건지. 세계에서 스케이트를 두 번째로 잘타는 선수가 됐는데 잘하지 못했다고 여기게 하는 사회라니. 


3.

말 나온김에.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서 못마땅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더라. 귀화한 러시아인이니가 무조건 빅토르라고 부르라고 하는 사람부터 빙상계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든 견디고 대한민국 국가대표직을 유지하는게 옳았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안현수의 금메달이 속시원하고 빙상연맹을 향한 빅엿이었다는 말도 많다. 그러나 오히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학연이니 혈연이니 하는 패거리주의의 피해를 '승리'에 그대로 투영해 해소하고 환호하는 (양쪽 모두의) 저열함에 있다. 국가주의와 일등주의가 만들어낸 비정상성이 스포츠를 스포츠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4.

사실 김연아를 추켜세우고 영웅시하는 것도 그녀가 '1등'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냉정한 기록경기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스포츠에 대고 기술의 정확도니 난이도니 하는 말을 들먹이며 그녀의 라이벌들을 매도하는 (특히 일본인의 경우에는) 일이야 말로 이를 방증하는 일 아닌가. 우리가 아름답지만 한국인이 아닌 것, 또는 한국인이지만 1등이 되지 못한 자에 대해 열광해 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5.

사실 소치 올림픽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다.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이 얼마나 많은 인권활동가들과 동성애자들을 괴롭혔나. 그러나 정작 국내(주류언론 내지는 주류의 네티즌)에선 이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 올림픽 정신따위 개나 줘버린건지. 그래놓고 세계인의 축제라느니 어쩌니. 내 무한도전을 돌려줘. 저번에는 별그대도 빼앗아가더니.


6.

언젠가도 말 한 적 있지만 스포츠는 우정과 상생, 협력과 상호발전을 위한 것이다. 땀흘리고 노력하고 이기고 지고 다시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런 가치들. 인류의 공존과 공영 같은. 작금의 올림픽, 월드컵. 쿠베르텡 할아버지가 보면 귓방맹이 맞을 짓거리들. 스포츠를 스포츠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어쩌면.


7.

그래서 소치에 가 있는 모든 선수들이 내지는 지금도 땀흘리며 노력하는 모든 운동선수들이 E1의 광고와는 정확히 반대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니에요. 대한민국따위를 위해 당신이 있는게 아니라 당신을 위해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하고 당신이 즐거운게 최우선입니다. 


7-1. 

그러니까 이번 아시안 게임에 프로야구 선수들 너무 혹사시켜서 시즌 방해하지 말라고. 나라가 있어 니가 운동을 한다 같은 개소릴랑 저 멀리.             

단상


1.

강신주가 나온 힐링캠프를 찾아봤다. 흔히 '돌직구'로 표현되는 그의 화법이나(비단 그게 화법의 문제만은 아닐거라고 생각하긴 한다) '인문학 아이돌'로 불리는 그의 지위를 고려했을때 '힐링'을 주선한다는 예능프로그램으로서는 적절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난 강신주의 말들이 불편하기만 했다.


언젠가 강신주가 노숙자를 사회적으로 마비된 존재.라고 표현하면서 문제가 됐던 글도 그렇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던 강신주가 정말 노숙인들을 사회적으로 도태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을리 없다. 강신주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어차피 이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 이 악물고 강하게 버티는게 제일, 못하면 병신."쯤 아니었을까.


힐링캠프에서 강신주가 한 일이라곤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번지르르한 말을 제거하고 욕망을 직시하라고 주문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처녀 총각에게 "결혼이 하고 싶은 것이냐, 사랑이 하고 싶은 것이냐" 묻고, 자식에게 집착하는 아버지가 고민인 사람에게는 "아버지를 제거하고 싶은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사실 말인즉슨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이 그들에게 어떤 위로가, 아니 위로는 됐고, 그들의 삶에 어떤 도움이나 어떤 성찰의 계기가 됐을지 알 수 없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냐는거다.


사실 결혼이니 사랑이니,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니 하는 문제들에 대한 모종의 답은 이미 스스로 알고 있는 일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이 문제를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는 눈이었을지, 아니면 그저 다시 얼마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한 순간의 위무였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강신주의 말처럼 이 더러운 자본주의 사회, 앞뒤가 꽉막힌 가부장제 사회는 아무리 정신똑바로 차린 강한 개인이라도 버텨내고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그렇다면 강신주의 주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직시하고 괴로워하란 주문이다. 저 많은 자기계발서들과 힐링멘토 사기꾼들이 던지는 말들이 말 머리 앞에 달린 당근조각이라면 강신주의 말은 그저 앞을 보고 달리라는 채찍질이다. 둘 모두 달리기만 할 뿐 도착할 곳도 알 수 없는 말의 입장에서는 갑갑한 노릇일 뿐이다. 그저 공허한 잘난 척.


강신주의 책들을 좋아했었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같은 경우는 학교 후배들에게 몇 권을 선물하기도 했었다. 그의 직접적인 언어는 다소 난해하고 모호했던 그 철학의 언어들을 삶에 가까운 곳으로 인도해주는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오는 강신주의 책들을 사서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운동권 쿨게이 같은 그의 세계가 갑갑하게 느껴질 뿐인 탓이다.


2.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왔다. 영화의 만듦새나 여타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없게하는 소재들이 있고 이 영화가 그렇다. 그래서 실화가 소재인 영화는 참 싫다. 언제가 됐든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을 알았고, 어찌다보니 개봉 첫 날에 극장에 앉아있게 됐다. 분노해야 할 곳은 분노스러웠고 슬퍼야 할 곳은 슬펐지만 감정이 흐르고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과 극장 문을 나설 때, 이 영화를에구구절절한 사연을 덧씌워 분노와 행동을 추동하려는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 더 그랬다. 영하가 마음과 사람을, 나아가선 사회와 세계를 움직일 수 있고 그러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힘이 아니라 영화 외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참 싫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휘발시켜버릴 만큼 비극적이고 화나는 회사와 사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는 이 세계도 참.


그나저나 김민선은 언제까지 연기못할거야.


3.

그래서(1번과 2번을 통틀어) 얼마전에 본 수상한 그녀가 참 좋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은 심은경의 연기는 스무살 남짓의 여배우가 이렇게까지 잘하는건 반칙아닌가 싶은 (무슨 약을 드셨길래 이런 연기력을 보여주시나요) 생각마저 들게했다. 영화 속에서 사연과 사건은 섣불리 봉합되지 않았고 서로의 욕망과 한계는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그러니까 아들 잘 키우기위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나, 그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와의 고부갈등, 그 가족들 저마다의 욕망 같은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섣불리 해답을 제시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속 성동일은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교수로 나오지만 그도 마땅한 답을 내지 못했다. 결국 살아가며 견디고 또 가끔 넘기고 가끔 화해하며 버티는 것. 수학문제마냥 마땅한 답이 있는 일이라면,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영화고 인문학이고 있을 필요가 없지.


4.

블로그 유입경로를 살펴보면 '인간실격패 알고보니 부전승'이라는 술집을 검색해 들어온 인구가 가장 많다. 신촌 모처에 위치'했던'술집이고 좋아해서 몇 번 찾아가며 부정기적으로 연재하는 내 술집유랑기의 1번타자였던 곳인데. 없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술집은 곧 망한다는 속설이 다시 증명된 걸까 싶지만, 잘되서 다른 곳으로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로) 대신 그자리엔 살롱 노마드라는 비슷한 분위기의 술집이 들어섰더라. 노마드라는 이름만 보면 일단 혹하는 스타일이라 방문했더니 여기도 좋아. 단골이 된다면 유랑기의 6부나 7부쯤으로 써주겠어요.


5. 

엑스트라 출연했던 이송희일감독의 신작이 베를린에 초청받았단다. 내 스크린 데뷔는 국내보다 유럽에서 먼저. 월드스타라고 불러주시압..ㅋ 얼른 개봉해야 원근법을 무시하고 주인공이랑 똑같은 크기로 등장한 내 얼굴을 보러 갈텐데.


6.

전에 먹었던 알싸한 맛 오징어땅콩을 가는 곳마다 찾고 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단언컨대 시판되는 과자 중 최고의 맛이다. 이건 팩트다. (이게 팩트라면 엄청난 일이에요) 한남동 주변에서 알싸한 오땅을 파는 곳을 제보해 주신다면 후사하겠슴니다. 밤마다 매콤한 쌀로별만 우적거렸더니 입에서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7.

계획하고 있는 여행을 떠나기 전 술집 유랑기 3부와 4부가 동시에 업데이트 될 예정임니다. 두둥.



    

 




오늘 집에 돌아오는데 이 노래가 귀에 꽃혀서 몇 번이고 돌려들었네. 괜히.
난 이제 노브레인이랑 안놀지만 그래도 조선훵크는. 


다큐리뷰 - 식코, 감기도 못고치는 사회에 대한 조롱


의사는 한국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으로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대부분 “의술 보다는 인술”을 실천하라는 격언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가슴 아파 하고, 한 발 나아가서는 그 치료비 마련을 위해 애쓴다. 시골 보건소나 낙도의 공중보건의로 일하거나 ‘국경없는 의사회’같은 NGO에 들어 제 3세계 오지로 의료봉사를 떠나기도 한다. 그런 주인공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병원도 기업이야”, “병원은 흙파서 치료 하냐”란 대사가 어울리는 또 다른 의사 혹은 병원 경영자들이다. 그들은 병원 경영을 위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으며 이른바 ‘돈 되는 환자’를 유치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렇듯이 그들도 극의 말미에는 대오각성, 가난한 이들에게도 평등하게 의료행위를 실천하는 의사가 된다.


드라마에서 ‘가난한 환자도 잘 돌봐주는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수익을 올리는데 치중하는 의사’가 결국은 패배하는 라이벌로 등장하는 까닭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즉 우리의 인식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이 없어 사람이 죽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는 믿음. 그러나 동시에 그런 ‘착한 의사’들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제는 그런 의사를 현실보다는 판타지의 세계에서나 찾아야 할지 모른다는 모종의 불안감도 익히 알기 때문이다.


# 늬들 어떻게 그러고 사니?


마이클 무어가 만든 <식코>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얼마나 형편없는 제도인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한에서 가장 처절하게 비난하는 영화다. 작업 중 중지와 약지 손가락을 잘린 남자가 병원비 때문에 약지손가락만을 봉합하기로 결정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이클 무어는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이 어떻게 환자들을 ‘죽여 왔는지’ 수 십 개의 사례를 나열한다. 마이클 무어를 따르며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을 살펴보자면 미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다. 그들은 보험신청을 더 잘 거부한 직원과 의사에게 더 높은 연봉을 주고, 아무리 시급한 환자여도 보험회사가 지정한 병원 외에는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우기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병원비 지불 능력이 없는 환자는 봉합도 끝나지 않은 환부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병원 밖으로 내쫓거나 보험금이 지급된 환자의 병력을 뒤져 보험금을 기어이 환수해가기도 한다.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난점을 살피는 마이클 무어의 태도는 차라리 미국인들에 대한 조롱에 가깝다. “늬들 어떻게 이러고들 사냐?”. 그 조롱은 비교적 공공의료체계가 잘 잡혀 있는 나라들과의 비교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인들이 조롱하거나 경멸하곤 하는 프랑스와 쿠바, 영국, 캐나다의 의료제도를 보여주며 미국인인 자신이 그들의 의료보장제도에서 얼마나 충격을 받는지를 극적으로 연출한다. 영화의 말미, 미국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쿠바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는 장면은 미국에 대한 조롱의 정점을 찍는다. 미국에서 200달러나 하는 약을 쿠바에선 단돈 5센트에 구입한 인물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눈물을 짓는다. (심지어 미국에서 의료보험보장을 받지 못해 쿠바에서 치료를 받은 이들은 미국정부가 ‘영웅’으로 호칭했던 9.11 사건의 구조대원들이다. 그들은 당시 테러범들이 수용돼 있는 관타나모 형무소만큼의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마이클 무어는 영화에서 “세상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 한다. “단지 아프면 치료를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웃과 더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 결국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 우리는 의료를 지킬 수 있을까 


<식코>가 우리나라에 개봉한 건 2008년이었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된 촛불의 시선이 의료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민영화로 점차 넓어지던 바로 그 때. 그리고 5년여가 지난 2013년, 정부는 원격의료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을 내놓으며 의료민영화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금 나오는 ‘의료민영화’ 논란은 그리 정확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의료는 이미 민영화돼 있기 때문이다. 의료 공급은 이미 94%가 민간병원에서 이뤄진다. 대부분의 대형 대학병원은 물론 동네의원들까지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이점을 강조하며 의료공공성의 핵심인 건강보험의 민영화 계획이 없으므로 ‘의료민영화’는 없다고 꾸준히 주장한다. 정부의 말마따나 건강보험민영화가 없는 한 의료민영화는 없다면 정말  ‘의료민영화’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다시 바꿔야 한다. “우리는 의료의 공공성을 지켜갈 수 있을까?” 


흔히들 한국의 의료보장제도가 미국의 그것보다는 월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 착각이다. OECD 국가들의 의료체계에서 한국은 미국과 함께 민간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분류된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현재 55% 정도다. (OECD 평균은 75%) 적자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환자를 내쫓아가며 문을 닫은 진주의료원 같은 공공병원도 전체 병원의 10%에 불과하다.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한 정부정책에서 영리병원에 투자한 자본이 병원을 통해 수익창출을 시도하기 시작했을 때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건강보험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아니라던 정부의 말도 한미 FTA 체결로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성장과 해외 의료법인의 국내시장 진출이 허용됐음을 떠올리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식코>에서 그렇게 잔인하고 치밀했던 미국의 의료보험회사들이 한국시장에 몰려오고 그들이 한국의 영리병원에 투자하며 수익을 거둬간다 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돈이 없어 환자가 죽어나가는 일은 한국에서도 이미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에서도 건강보험은 의료원가의 일부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은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각종 비급여 서비스와 과잉의료를 제공하는 변칙적 방법을 사용한다. 의료라는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력이 극히 취약한 소비자인 환자는 사실상 의사의 판단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잉진료와 비급여 서비스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다. 한 번에 수백만 원씩 하는 치료나, 수천만 원의 병원비가 없어서 환자가 죽거나 가산을 탕진하는 에피소드는 이미 한국사회의 클리셰다.


# 감기 걸려 사람이 죽어선 안 되는 거잖아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철학이다. 아니 그보다는 삶의 방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한미 FTA니, 무슨 정책이니, 계획이니 하는 말들 보다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돈 때문에 죽이지는 말자”는 마음. 고작 이런 마음에 철학이니 윤리니 하는 거창한 말들을 가져다 붙이기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공공(公共)’이나 ‘복지’라는 말만 나오면 경제수준이나 규모, 효율성이나 합리성 같은 말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다.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환자가 누워있는 병원의 문을 닫은 도지사도 있었다. 그런 이들일수록 대부분 ‘국격’이나 ‘선진국’같은 말은 두 손을 들고 환영하기도. 그러나 국격이란 적어도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는 일이 없는 나라에서 쓸 수 있는 말일테다. <식코>에서 공공의료의 좋은 예로 보여준 영국의 의료보장제도는 1948년에 시작됐다. 전쟁이 끝난 지 고작 3년 후. 온 나라가 폭격의 잔해도 치우지 못했던 그 시절에 영국은 적어도 아픈 사람만은 사회가 함께 치료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따라하고 싶어서 법과 제도를 총체적으로 수입하기로 결정한 ‘선진’ 미국은 ‘적국’ 쿠바보다 영아사망률도 높고 평균수명도 짧다. 무엇이 ‘선진’이고 국격일까.


근래에 보기 시작한 어느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힘들게 번 돈을 모두 병원에 기증하는 어느 청년에게 병원원장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자 그 청년은 “사람이 감기에 걸렸다고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드라마의 배경은 1930년대였다. 2014년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겨우겨우 빠져나온 감기 걸려 사람 죽는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페이스공감 기획 - 리플레이


EBS 스페이스 공감, 10주년 기획 - 리플레이


"공감은 2014년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며 그 시작 선에서 함께 출발했던 다양한 뮤지션들을 선정, 10년 전 세상에 나온 그들의 1집을 1번 트랙부터 차례대로 들어볼 수 있는 <리플레이> 시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는 음악의 가치와 10년 전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드리는 시간이자 또 다른 시작을 여는 자리"




일생 당첨이니 당선이니 하는 말들과는 무관하게 살아왔지만, 공감에서만은 좀 사랑받은 것 같다.

정말 꼭 보고싶었던 공연은 대부분 당첨이 됐고, 당첨빈도나 횟수도 주변 친구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내가 당첨되놓고 시간이 안되서 친구들 보내준 공연도 좀 된다.ㅋ


공감에서 (특히 헬로루키에서) 처음 만나 반해버리곤 지금껏 좋아하는 팀도 있고,

장사익 아저씨나 김창기 아저씨 같은 여간해서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노래도 공감 덕에 들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허클의 공감 공연은 3번쯤 본 것 같다. 


얼마전 공감이 축소될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사태를 맞아 염통이 쫄깃해졌었지만, 다행히 잘 해결된 것 같고, 해결을 축하라도 하듯 이런 기똥한 기획이. 공감이 처음 문을 연 2004년에 난 대학에 입학했고, 좋아하는 여자애도 생겼고 술도 무진마셨고, 노래도 엄청 들었다. 그 때 좋아하던 이들의 1집을 다시 리플레이하는건 아마 여전히 주억거리며 차마 놓지 못하는 그 스무살을 다시 떠올리게 해줄 것 같아.


그 시절에 곧 들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매우 좋아하는 이장혁이나 MOT 같은 팀들의 1집앨범이 2004년에 나왔었고, 이번에 첫 타자로 나서는 가리온의 1집도 04년이다. 일단 가자, 매봉역으로.ㅋ


(여기서 공감당첨 필살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공감에서 꼭 보고싶은 공연이 있다면 그 앞까지 딱히 대단히 보고싶지는 않지만 눈길은 가는 공연들을 몇 개 더 신청함니다. 신청탈락이 4~5회 정도 쌓인 다음 꼭 보고싶은 공연의 선정순서가 오도록. 부작용은 그닥 가고싶지도 않았는데다, 시간마저 애매한 공연이 당첨되고 그 공연에 결석하면 당분간 당첨에 엄청난 불이익이. 결국 인생은 타이밍이란 얘기지요.ㅋ)


 


 

단상



1.

돈벌려고 쓰는 글을 하나 쓰고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져서 생활 사이클이 완전히 무너질만큼 부담스러워졌다. 어쨌든 내 손에서 나오는 글이니 어디 내놔서 부끄럽지 않은(글을 써본 역사가 없다만) 결과를 내놓고 싶은데, 시간이나 여건이 수이 허락치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여건에는 내 게으름도 큰 몫을 하고.. 여하간에 여태껏 져본 수많은 빚 중에 가장 부담은 역시 글빚이라는 결론.


2.

어두운 방안에 틀어박혀서 스탠드 불빛에 모니터만 바라보는 상황을 '영철이 모드'란 코드네임으로 부른다. 영철이는 드라마 마왕에 나왔던 캐릭터다. 어두운 방안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던 찌질이. 앞으로도 몇 주간은 더러운 영철이 내지는 담배피는 영철이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영철이는 단정하기라도 했었는데.



얘가 영철이다. 나도 지금 빨간 플러스팬을 들고 있다는게 흠좀무



3.

며칠동안 너무 영철이 모드로 있었다. 밖에 눈이 오는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는 상태. 졸리면 쪽잠자고, 배고프면 밥먹고. 심지어 담배도 보루로 사다놔서 담배사러 밖에 나갈 일도 없이. 며칠 만에 방밖으로 나와서 온통 눈이 내린걸 보다가 불현듯 밖에나가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폭('푹' 아니고 '폭'이다) 삭힌 홍어 한 점이랑 뜨끈한 홍어애탕 한 그릇, 

눈 녹기전에 뜨끈한 오뎅에 찬 사케. 

방어 한접시 회떠서 아껴가며 호호불어 먹거나, 

빈 소주병 꺾어 셈해가며  불판에 볶듯이 구운 십수장의 대패삼겹살.


바야흐로 술타령의 계절.


4.

얼마전에 동거남과 밥먹으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케이블채널에서 '태조 왕건'을 봤다. 연출이며 메이크업이 그렇게 촌티날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KBS1에서 하는 대하사극이 갖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마침 궁예아저씨 장면이라 카리스마도 작렬했었고. 그러다 요즘엔 정통파 우완 대하사극이 나오질 않는 것(사실 나오긴 나오고 있었으나 별반 힘을 못쓰고 있었던 거였다)같다며 나름의 분석들을 막 지껄였었다.


그러다 며칠전에 새로하는 정도전을 봤는데, 이거 재밌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나왔고, 용의눈물에서도 정도전의 철학이나 정치는 고려말과 조선초중기를 아우르는 가장 뜨거운 이슈였는데, 왜 지금껏 정도전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지기도 하고. (그의 사상이 끌었던 인기에 비하면 지금 지젝이나 강신주의 인기는 그야말로 보름달 앞의 반딧불인거다.)


잘 생각해보면 입헌군주정, 내지는 내각책임제 같은 선진적 사상을 이미 14세기에 만들어냈었고, 그가 세운 경국전이 수백년의 조선 법체계의 근간이었던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시대의 대박인재. 언젠가 정도전, 정약용, 이율곡 같은 역사 속 천재들을 나열해 놓고 누가 가장 천재적이었는지를 묻는 그런 쓸데없는 장면을 본 것 같은데, 압도적으로 정도전의 승이었다. 


여하튼 정도전 역할의 배우는 예전에 용의눈물에서 열연한 돌아가신 김흥기 아저씨가 짱( 이아저씨가 정도전 역할만 몇 번씩 하고 정도전의 정치철학사까지 깊이 이해하고 심지어 강연도 하던 무서운 아저씨임. 이른바 정도전 능덕)이라고 생각하는 건 변함없지만, 조재현의 그 과잉된 연기도 간만의 정동파 우완 대하사극에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박영규 아저씨가 연기하는 이인임도 카리스마 쩔고. 다만 아쉬운건 임호. 그 정몽주에 임호를 끼얹나. 임호가 연기할 수 있는 사극 역할은 숙종이나 선조 정도로 마무리하자. 

 

5.

강신주 이름이 나와서 강신준이 생각났는데,

어느 친구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자본과 강신준 교수가 번역한 자본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었다. 심지어 야밤에 전화해서. 

할 말이 없어서 한참 있다가 "김수행 교수 자본에 한자가 훨씬 많아"라고 대답하곤 끊었는데, 괜히 기분이 졸라 나빴다.


씨바,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6.

당장 아주 바쁜거만 좀 지나면 간만에 요리를 좀 해야겠다. 내 비장의 요리들은 예전에 알바하면서 어께너머로 익힌 이탈리아 음식들을 기반으로 내 쏘울과 감성, 게으름, 인간미 등등을 첨가한 필살 막장 레시피였는데, 새로운 체제로 외연을 좀 확장해 봐야겠다. 마침 난 이태원 주민이라 주변에 쏠쏠한 식자재들도 많이 있고. 다음의 도전 과제는 에스닉 푸드. 카다몸이나 클로브 같은 향신료들을 신기해서 몇 개 사왔는데, 아뿔싸 돌절구가 없슴니다. 


모쪼록 올 해에는 웰컴 투 에스닉 월드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과 손을 정갈히 해야지. 


7.

봄에는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동해에서 배타고 떠나는 블라디보스토크. 때마침 푸틴 형이 근혜누나랑 무비자 협정을 체결해줘서 더 감사하다. 푸틴 형, 근혜누나 짱짱맨 짱짱걸. 여유가 있다면 기차를 타고 크레믈린이랑 붉은광장 같은데도 가고 싶은데 어찌될지. 여하간 기다려라, 사상의 조국. 응?ㅋ


8.

바빠서 셜록 시즌3의 첫번째 에피소드밖에 못봤는데, 반응들이 영 시원찮다. 우리 셜록이 이렇게 찌질할리가 없어. 엉엉엉. 같은? 왓슨한테 너무 집착한다고. 두근두근. 난 사실 그 형이 찌질하게 집착하는게 좀 더 섹시할 거 같다.ㅋ 여튼 기다려라 셜록.


9.


사실 위에서 너무 미화했지만, 내 영철이 모드는 여기에 더 가깝다.


10.






올해도 이런 짓이나 하고 놉니다 - 2013 영화/음반 결산


언제까지 이런짓이나 할른지 모르지만, 여튼 올해도 1년동안 좋았던 노래랑 영화들. 결산.


(오토플레이로 노래 걸어놨어요, 시끄러우면 맨 밑으로 내려가서 꺼주시압)


# 영화


1. 설국열차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생존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생태계인 열차를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열차밖으로 나가선 결국 북극곰에게 잡아먹힐 뿐이라고. 그러나 북극곰이라는 생명체가 이미 (그것도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가) 살아가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열차의 운행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 사고다. 생태계의 주인은 인류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는 지구의 '암세포'같은 존재에 가깝다. 여하튼, 결코 나아질 수 없는 이 세계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이 세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지만.


새로운 지구에 새로이 발을 디딘 어린아이들(신 인류의 조상)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흑인 남자아이와 벽 너머를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연상의 동양소녀. 인류가 지향해야 할 혹은 인류가 가장 꿈꾸는 형태의 조합 아닌가. (사실 앵글로 색슨이 멸종한게 아주 초큼 통쾌했었다ㅋ)



2. 노라노




역사란 고루하거나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또 내일을 주조하는 것이라는 사무치는 교훈. 꼰대질하는 늙은이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나눠주는 어른들. 그보다는 계속계속 지혜로워지며 함께 살아갈 나이들었지만 늙지 않는 언니들과 그녀들의 예술. 


엄마를 극장으로 끌고가게 하는 힘. 

"엄마, 노라노 입어봤어요?"



3. 카운슬러




카운슬러의 감독이 코엔형제라고 착각했던 건 매카시의 극본을 처음 본 영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러니까 이건 리들리 스콧보다는 매카시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선명하게 기억나던. 그러니까 우리에게 공포와 폭력, 그런 것들을 가져오는 운명앞에 우리는 얼마나 가련하고 나약하고 하잘것 없는 존재인지, 또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를 잔인하고 집요하게 보여주는데 혈안이 된 영화다. 


그건 인간이, 혹은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갖는 근원적 비극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다지 의미있는 일도 아니다. 죽이는데 죽어야지. 그리고 그 죽음이란 것도 사실 별거 아니다. 드럼통에 시체를 담아 이쪽 저쪽 국경을 옮겨 다니거나 죽은 시체를 쓰레기장에 버리거나 하는, 그러니까 죽음이란게 (누군가에겐) 그렇게 하잘것 없고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삶이라는 것도 어느 누구에겐 퍽이나 쓸모없다는 그런 얄밉게 정확하고 냉정한 이죽거림.


문학작품처럼 받아들여질 법한 대사들도 그렇고 치타가 약한 짐승들을 사냥하는 걸 또 지켜보며 그 치타를 키우는 카메론디아즈도 그렇고 탄성이 나올법한 장면들이 숱하다. 그리고 페넬로페 크루즈는 엄청 예쁘고 카메론 디아즈는 늙어서 더 섹시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브래드 피트. 헐 대박.



4. 더 헌트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사냥을 하는 일은 없다. 언제나 떼를 지어 포위망을 이루고 도망갈 곳을 잃은 한마리의 사냥감을 죽인다. 더 헌트는 사냥에 관한 영화이며 인간이 무리를 이뤄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사냥의 대상이 되는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낸다. 우리가 오직 옳은 것이라고 믿었던 공동체나 혹은 다수결, 민주주의 같은 말들이 실은 무엇보다 어리석고 폭력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인간사회에서 대개의 경우 사냥감은 합리적 비판과 준엄한 재판 대신에 감정과 알리바이(난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다는)를 위해 결정된다. 그리고 결정된 사냥감을 향해 드러내는 이빨이나 가학성은 놀랍도록 잔인하며 그 잔인함은 대게 정의나 도덕, 혹은 이성같은 말들로 포장된다. 영화에서 어른들은 주인공의 아동성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거짓말을 시인하는 소녀에게 "너무 두려운 사건이라 네 무의식이 그날의 기억을 지운거"라는 되도않는 심리학 지식을 들먹이는 장면에선 실소를 넘어 공포심까지 들었다.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에 속하려고 발버둥친다. 대게 공동체에서 버림받아 상처받지만 상처를 주는 배제와 소외 역시 공동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5.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더이상 '이야기'를 치밀하게 짜는 일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홍상수의 영화들은 도리어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플롯이나 서사에 따르는 구조라기 보다는 캐릭터와 그에 다르는 자연스런 상황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에 가까운데 아마 캐릭터만 주고 그날의 상황이나 배우의 연기에 많은 것을 맡기는 그의 작업방식에 따른 것이기도 하겠다.


여하간 해원은 근래 홍상수의 영화에서 가장 '예쁜'여자였는데 유부남을 만나는 언니를 미쳤다고 표현하면서 정작 자신은 유부남을 사랑하거나.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며 이선균의 속물근성을 비난하는 동시에 자신은 결혼상대로 적합한 미국교수에 호감을 표현하는 것 같은 종잡기 '충분한'그 꼴보기 싫음에 기인하는 바가 크겠다. 원래 썅년들이 예쁜법이다.


누구의 딸도 아니고 싶었던 해원은 사실 누구의 애인이거나 딸이거나 제자이거나. 하는 관계 밖에서는 살 수 없는, 혹은 살아본 적도 살아갈 능력도 없는. 그런 보통의 여자애, 라기 보단 보통의 사람. 늘 우리는 독립과 주체를 꿈꾸지만 한 순간도 종속되고 소속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최근의 홍상수 영화에서 '꿈'이나 '상상'이 주된 소재로 쓰이는데,(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꿈을 꿨다 깼다하는 해원처럼 잘 어울리는 이도 없더라. 정은채도 예쁘고. 



6. 러시안소설



영화보다는 한 편의 소설같은 영화는 그 문장(대사라기 보다는)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듯한 영상들로 흥미를 배가한다. 흑백과 같은 톤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전반부는 러시아 소설마냥 급하지도 경쾌하지도 않은 속도로 꾸역꾸역 이야기를 전개한다.


과장된 자의식과 꼭 그만큼 유난스런 컴플렉스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캐릭터들과 그들을 부추기는 주변부의 조화가 병맛같은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가면서도 부대끼거나 억지스럽지 않게한다. 사실 러시아 소설이 그렇지않나. 장황하고 엄숙하지만 뚝 덜어져서보면 병맛같은 상황. 심지어 이름도 지랄같고.


두번재 오프닝 시퀀스가 등장하고 나오는 총천연색의 현시점은 어쩐지 전반부의 남자애들처럼 들뜨고 산만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뭐. 어쩐지 급하게 마무리한 것 같은 성긴구석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그대로 읊어 나가던 카페 느와르가 떠오르기도 하고. 지루해질 것 같으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소설책, 이거 재밌자고 쓴게 맞다.  



7. 홀리모터스



영화와 세계에 대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감독 자신에 대한 자기고백. SF와 뮤지컬 가족드라마를 넘나드는 '오스카'( 참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혹은 감독 자신의 꿈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현대의 영화의 연장이다. 통일되는 주제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실 어떻게 보면 무슨 말인지도 모를만큼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놀랄만큼 영화의 거의 모든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고 영화란 결국 꿈의 연장임을 또 감독과 배우란,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 일반들 역시 꿈을 꾸고 그에 열광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곧 다가올 '자정' 모든 것이 끝날 자정에 대한 부담과 걱정. 


재미있는 것은 카락스의 영화를 보면서 종종 일으키곤 하는 이미지의 착각인데, 카락스의 전작(은 폴라X라고 말하겠지만 도쿄 3부작의 '메르드'가 있다. 사실 이 광인, 메르드의 이미지가 홀리 모터스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로 이어진다) 메르드를 보고 나는 갑자기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순간 깜짝 놀랐는데, (전적으로 외모 때문이다) 예수와 닮은 메르드에 대해 말하다 불현듯 체와 예수의 공통점을 발견하려고 애쓰기도 했었다. 홀리모터스의 메르드를 보고도 같은 생각을 하다가, 몽유병에 걸린 귀신이 극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에선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말하던 맑스를 떠올렸다. 뭐, 가져다 붙이자면 못할 것도 없겠으나, 이거 좀 병이다.ㅋ


8. 아티스트 봉만대



여배우의 몸을 전시하고 섹스신과 어색한 연기, 개연성없는 상황을 즐비하게 늘어놓고 남성 관객 일반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지도 못하니까 요즘 고삐리들은 에로영화 안보고 일본 AV를 보는거 아니냐)시키려는 목적만을 갖는 저열함. 이 한국의 에로영화를 바라보는 스테레오 타입이면서 동시에 비교적 정확한 분석.되겠다.


'에로영화'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기 일수인 상황에 (실제로 색안경 끼고 봐도 할 말없어지는 에로영화들이 즐비한 것도 현실) 봉만대의 존재는 어쩌면 감사할 일이다. 봉만대의 영화는 적어도 개연성 없이 배우들의 몸을 소모하거나 그들을 남성관객 일반의 눈요기로 전락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정말 야하다" 야한게 그저 훌렁훌렁 옷을 벗기는 것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 일까.


에로영화라기 보다는 에로영화 현장에 대한 페이크 다큐에 가까운 영화는 실제로 어떻게든 색안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독과 배우들과 현장에 대한 관찰이다. '노출'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은이나 곽현화 이파니는 물론이고 (그녀들에게 그런 편견을 주입한 것도 그것을 이용하고 좋아하는 것도, 그리고 그래서 또 그 편견을 경멸하는 것도 오직 남성임을 영화는 여실히 드러낸다) 십여년동안 대표작이 여전히 번지점프를 하다인 여현수까지 배우들의 적나라한 고민과 한계를 필터없이 보여준다. 이는 봉만대 감독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인데, 에로라는 장르영화에 애정과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임하는 감독 자신을 '떡감독'이라 칭하는 웃픈대사가 영화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라디오스타에 나왔던 봉만대에서 드러났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면서도 동시에 그 설움과 그럼에도 갖는 'B급'들의 열정에도 소홀하지 않다. 다소 성긴 이야기와 구성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그런건 얼마든지 웃어넘길만큼의 미덕들이 있다.


9. 힘내세요, 병헌씨



청춘이나 꿈, 위로, 격려 같은 말들에 얼마나 신물이 나면 얼마전엔 서점에서 "청춘으로 사느라 힘들었지"같은 제목의 책도 목격했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혹은 그게 아니라도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꿈이 괴로운 것은 비단 우리가 청춘이어서가 아니며 그래서 청춘이 그렇게 아름답게 포장되거나 대상화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원래.


똥마렵다고 연출부에서 잘린 병헌씨는 되도 않는 헛소리로 시간을 보내는 백수한량이고, 어쩌다 운좋게 얻어걸린 시나리오로 데뷔를 하려다 결국엔 좌절된 어이없는 인상이며, 임신한 아내를 두고 바람피우다 이혼당한 못난 남자고, 그럼에도 어께에 힘이 잔뜩 들어가 강형철 따위.라고 말하는 찌질한 군상이다. 그러니까 곧 '나'고 어쩌면 '당신'이다.


그래서 그가 좌절하지 않고 끝내는 운좋게 얻어걸린 시나리오로 입봉하고 흥행한 상업영화 감독이 되길 바랐지만 어차피 안될거라는 걸 영화 시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애가 성공하면 안되는 거다. 찌질하고 못나고 게으른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듣고 싶은 말은 "잘될거야" 같은 의미없고 막연한 위로나, 어차피 다 알고 있는 귀찮은 잔소리가 아니라 "힘내라"는 단 한마디였다. 사실 그거 아니면 할 것도 없으니. 병헌씨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성공하길 바라진 않지만, 그가 영화를 꾸준히 계속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  


10. 지슬



어떤 영화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5월의 광주를 소재로 삼아 욕지기 나오는 영화 따위나 만들었던 어느 작품들에 대해 경멸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지슬에는. 제주 토박이 감독이라 할 수 있는 표현들과 대사들에서 그 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쩌면 필름도 제주도에서 만들어진걸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4.3에서 희생된 그 모든 넋들에 대한 진혼곡이었던 영화는 어느 편에 서서 분노를 부추기지도 뜨거움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죽어간 모든 이(군인이든 양민이든)들의 넋을 위로하는데만. 그래서 뜨거움을 강요하고 선악을 굳이굳이 구분하려던 몇몇의 (정치적) 영화들에서 보이는 거북함이 없다. 다만.


때마침 지난 4월, 제주를 찾아 항쟁의 유적지를 둘러본 직후 영화를 봤다. 아직 우리 사회엔 미처 정산하지 못한 일들이 숱하다.  그들은 무엇때문인지 죽어야했고 무엇때문인지 감춰지거나 외면당하거나 왜곡돼야 했으며 무엇때문인지 아직도. 


11. 그밖에,


블루재스민이나 화이, 사이비, 베를린, 우리선희 같은 영화들도 참 좋았지만 힘들어서 패스. 10개 채웠잖아.ㅋ

전설의 주먹, 감기 같은 올해의 (대)망작들도 한마디씩 써볼까 했지만 힘들어서... 좋은 영화도 안쓰는데 뭐. 

하지만 강우석은 전설의 주먹이 재미없으면 앞으로 영화를 안만들겠다고 공언했으니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퉤퉤퉤.



# 음반


1. 들국화 - 들국화



전설의 귀환. 몇몇 사람들이 "수작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내놓아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건 취존의 영역. 그들은 전설이라고 하여 음악 외적인 것들로 그들을 평가(저평가든 고평가든)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일견 동의. 사실 나도 들국화의 앨범을 올곧이 음반 자체로서만 평가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들국화의 1집을 들으며 자란 세대들에게 이번앨범의 의미와 들국화를 상상하며 자라 이제서야 비로소 들국화를 만나게 된 이들에게 이 앨범의 의미는 분명히 다르다.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을 분리시키라고 한다면 그건 억지. 


그래서 들국화의 이번 앨범은 내게 전설의 위용을 그대로 확인시켜주는 음반이다. '걷고걷고'같은 노래는 환갑의 나이든 '형등'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꼰대가 아니라 선배임을 알려주는. 더욱이 재채기 같은 곡들은 그들이 어쩌면 나이도 먹지 않은게 아닐까 싶어지는 노래다. 


주찬권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아마 공연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아듀 주찬권 공연이라도 한 번 쯤 해줬으면 싶은 팬으로서의 욕심이 있다.


(앨범 녹음을 다 끝내놓고 불현듯 떠나버린 주찬권, 어느 땐 그 위력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몇 장 만들지 못한 들국화의 새 앨범을 위해 하늘이 주찬권 아저씨에게 소명을 줬다가, 소명을 다한 그를 데려간 건 아닐까.. 뭐 그런 공상도 해본다. 여튼 아저씨..엉엉엉)


2. 윤영배 - 위험한 세계



종탑이나 망루, 구럼비, 자본주의, 국가주의 같은 말들을 이렇게 서정적이고 담담한 목소리로 부를 수 있다니.

그의 노래를 듣고 누가 "민중가요 흉내내는 겉 멋"이라고 혹평했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서정성이라는게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남녀간의 오매불망한 마음만을 노래하는데서 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시대'나 세상을 이야기한다고 그대로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로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분명 그동안의 경향성이 그래왔던게 사실이라면 윤영배의 음악은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그러니까 서정적인 민중가요라든가(이런 표현은 쓰면서도 심히 거슬린다) 하는데 닿아있다. '좀 웃긴' 앨범부터 그랬지만 윤영배는 어저면 조동익 조동진 이후 가장 걸출한 포크가수인 것 같다. 


3. 조용필 - Hello



들국화를 비롯해 유독 '전설'이라 불릴만한 이들의 귀환이 많았던 해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화제는 역시 조용필 (JYP...같은 농담하면 안되겠지?ㅋ) 가왕이 왜 가왕인지, 그가 왜 여전히 현역인지. 세월이 묻어서 녹이되고 지난 날의 영광을 붙잡고 산다면 추해지겠지만 세월의 먼지와 주름을 골골이 새겨 숙성시킨다면 그게바로 '장인'이겠다. 여전한 용필오빠. 혹은 옛날보다 더 멋있는 용필오빠.


(여담이지만, 우리 엄마는 용필오빠의 앨범이 나온 날 바로 조인성에 대한 애정을 거두셨다. 그냥 걔는 귀여워 한거지 용필오빠를 향한 팬심은 거둔 적 한 번도 없었다는 명언을 남기시기도. 때마침 조인성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아줌마 팬들의 인기를 잃어가는 중이었다는 말은 패스ㅋ)


4. 장필순 - Soony 7



올 한 해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은 역시 장필순이겠다. 신보 발매직후 찾았던 공감에서도 느꼈지만 그녀의 음악은 이전보다 훨씬더 사색적이고 고요하고 평온하다. 그렇다고 노래가 지루하거나 평이하게 흐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녀가 사는 곳을 들먹이며 제주의 바람같은...을 운운하면 너무 유치하니까 빼버리더라도 마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평온한 자연 속의 노래들.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줄곧 귀에 곷고 있었던 거겠고. 특히 '눈부신 세상' 같은 노래는 아마 올 해의 단 한 곡.


5. 이승렬 - V



고백하건대, 이승렬쯤 좋아해주지 않으면 음악 듣는게 아니지. 같은 마음이 없는건 아니다..ㅋ

열광하는 유앤미블루나 그의 솔로1집과는 다분히 차이나는 이번 앨범은 이런 고백을 이끌어낼만큼 낯설었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생소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운드 모음집. 좋아하는 그의 보컬과 세련되고 안정적인 멜로디에 빠졌던 팬의 마음에서 지나간게 더 아쉬운 그런거다. 왜, 난 소녀시대의 노래중에 다시만난세계를 제일 좋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달까.ㅋ


여튼 나올거라는 소문만 무성한 유앤미블루의 앨범도 얼른얼른. 이승렬은 이제 솔로에선 예전으로 회귀할 것 같지 않았거든. 하지만 좋습니다, 이번엔 진짜라구요.


6. 강아솔 - 정직한 마음



강아솔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흔해빠진 '홍대 여신'을 연상한게 비단 내 잘못만은 아니다. 기타를 매고 예쁜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에 그동안 덧씌워놓은 이미지는 그런거 아니었나. 다만 강아솔의 음악을 듣고서 그녀가 그런 '흔해빠진' 누구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낀 까닭을 뭐라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이번 앨범 제목처럼 '정직한 마음'때문일 수도 있겠고. 그녀가 단지 예쁘고 '잘 팔리는'노래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테다. '엄마'나 '남겨진 사람'같은 트랙에서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관계에 대한 그녀의 정직하고 착한 마음이 느껴지는 때문일테다.


우클렐레나 오카리나 같은 악기 써가며 예쁘고 상큼하게, 그러니까 대학 새내기들이 싸이월드 배경음악에 걸어놓을 법한 사운드들을 부러 만들어내지 않아서 그런 마음이 더 잘 닿는 것이겠지. 여튼, 언젠가의 와우북페에서 랩퍼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아.. 진짜로 랩음반 내줬으면 좋겠네..ㅎㄷㄷ


7. 이효리 - Monochrome



핑클은 나에게 빛이고 과학이며 진리였으며 곧 신앙이다. 그래서 사춘기 때부터 줄곧 꿈에 효리가 등장하면 연애대상이었고 다소간 야한 상상도 곁들여지는 발칙한 소년이었는데..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꿈에 이 누나가 나오면 연애를 하는게 아니라 연애'상담'을 하고 있다. 내가 인식하는 그녀의 포지션이 이제 그렇게 바뀐거겠지. 이건 그녀가 나이들었다거나 섹시하지 않다는게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이고 가장 매력적인 여성이다. 무려 거기에 현숙함가지 더해져 이젠 넘사벽이 된..엉엉엉 이상순 나쁜놈.


언젠가 토크쇼에서 동물보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공장식 축산과 반련동물 시장의 비대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봤는데, 이 누나가 패션으로 생명권보호를 소비하는게 아니라는 확신을 다시 한 번 갖게됐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매력속으로..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그러면서 기대했던 것은 그녀의 노래였다. 난 노래란 사는만큼 불러지는 것이라 믿는 낭만주의자여서 더욱 넓어지고 현숙해진 그녀의 노래가 좋을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를 품었고 역시 빛이고 과학이고 진리인 그녀는 내게 응답을 주셨다. 아멘, 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앨범 전체가 좋은 트랙들로 꽉 차있었고, 여러가지를 시도하며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란 느낌이 확실히 전해지는 앨범이었다. 특히 미스코리아 같은 노래는 더. 앨범 전체에 묻어있는 롤러코스터의 냄새는 그녀의 남편의 도움이겠고 그걸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옛날 DSP시절부터의 안티놈들의 분열책동과 악선전이 있었지만 그게 뭐 어때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마음과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모해가는 그녀에게 아낌 없이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 이효리를 국회로... 이상순 나쁜놈 엉엉엉


8. Sigur ros - Kveikur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시규어로스'와 비욕의 나라.라고 표현하던 친구가 아이슬란드의 펍에도 제이슨므라즈가 흐르더라.는 통탄을 뱉어냈었다. 그래, 술마시며 노는 펍에서 시규어로스는 무리야.


하지만 이번 앨범의 시규어로스는 펍마저도 정복할 심산인가보다. 보고있나 므라즈. 

서정성, 간결함, 신성, 아이슬란드의 찬바람. 같은 말들로나 표현되던 그들의 음악은 보다 격정적이 됐고, 한 걸음 더 세련되졌다.  이야 겨우 익숙해진 것 같은 그들의 '말'도. 기품과 우아함을 포함한 모종의 격정.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써놓고도 참 조야하다.


지난 여름 시규어로스의 공연을 가지 못한게 일평생의 한으로 남겠지만, 또 오겠지?   


9. Arcade Fire - Reflektor



이번 앨범에 대해 댄서블해졌느니 리듬이 어쩌구 하는 말들을 막 하더라만, 잘 모르겠으니 패스. (흠좀무)

하지만 기존의 앨범들이 지나면서 망작을 내버리는게 (대) 유행인 시절에 꾸준히 좋은 또 일관성있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건 엄청난 미덕이다. 게다가 남의 나라말로 하는 노래는 별로 듣지도 않는 나같은 아이에게 아케이드 파이어의 존재는 대 축복. 내가 앨범을 챙겨 듣는 남의 나라 '현역'밴드가 있어효..ㅎㄷㄷ


기존의 앨범들에서 보여주던 훨씬 폭발적이고 열기띈 음악에 대한 아쉬움들이 있겠지만, 이들도 나이를 먹어가고 동시에 음악도 변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낟. "아, 그랬어, 그럼 다음은 뭐야?"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좋아하는 팀이 있는 건 참 복받은 일이다. 


우리의 선배들이 라디오헤드나 콜드플레이, 좀 더 위로가서 U2에게 가졌던 그런 마음들을 꾸준히 나도 가지고 가다 십 몇년 후엔 아케이드 파이어도 레전드가 될 날이 오면 좋겠다.


10. GD - Coup d'etat



난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과소평가 받는 음악인 중 하나로 GD를 꼽는다. 그가 패션센스 예능감, 스타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가장 큰 매력인 음악을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방송이나 공연에서 기깔나는 간지를 보여줄 때마다 열광하면서 동시에 안타까운 맘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저러면 또 음악은 듣지도 않고.."하는 팬심 때문이다.


이번 앨범은 그의 음악적 성취와 그의 상업적 성취가 가장 적절한 비율로 섞여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했다. 삐딱하게 같은 트랙은 우리가 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신나고 가장 보편타당한 노래였다. 방송에서 부르면서 팬들은 물론 관객 일반 모두를 열광시킬. 동시에 늴리리야나 Black 같은 곡들은 그가 작곡자나 프로듀서로서 얼마나 좋은 감각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곡이겠다.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아이돌.


GD에 대한 호불호는 취존의 영역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GD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취존의 영역이 아니다.


11. 그밖에,


우리 지은이의 이번 영리한 앨범이나, 김오키, 나윤선 같은 앨범들이 좋았다. 특히 나윤선의 앨범은 상찬이 자자했지만 그래서 더욱 나는 뭐. 좋은거 알겠는데, 나까지 좋아해야해.? 하는 마음도 약간. EXO나 샤이니, F(x)도 역시 좋았다. 이로서 난 SM의 노예 인증. 





Sigur Ros - Brennistei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