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9. 04:10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떼
- 기록이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하여
흔히 다큐멘터리를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인 기록일까. 그보다 ‘객관’의 의미는 무엇일까, 차라리 ‘객관’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현상은 인식의 주체에 따라 다르게 보이며 그만큼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 코끼리의 다리와 귀를 각각 만진 맹인들의 우화는 어쩌면 현상의 인식과 실체적 진실의 결코 좁힐 수 없는 괴리를 나타내는 건 아닐까.
# 다이렉트 시네마
다이렉트 시네마는 미국의 프레드릭 와이즈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와이즈먼은 생생한 사건이 최대한 방해받지 않고 흘러가도록, 사건의 직접성을 포착할 수 있게 카메라 앞의 대상을 내버려두는 관찰자적 접근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카메라 앞의 모든 인공적인 요소들을 제거했다. 조명과 촬영장비, 스태프까지. 인위적인 모든 요소를 거부한 채 눈앞에서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는 작업방식이다.
에릭 바누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 A History the Non-Fiction Film>라는 저서에서 다이렉트 시네마에 대해
“다이렉트 시네마의 감독은 카메라를 상황 속에 던져놓고 위기의 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다이렉트 시네마를 옹호하는 예술가는 자신이 투명인간이 되길 꿈꾼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카메라가 접근할 수 있는 사건들 속에서 진실을 구축한다.” 고 설명한다.
프레드릭 와이즈먼, <티티컷 풍자극 Titicut Follies>, 1967
와이즈먼의 데뷔작인 ‘티티컷 풍자극’은 매사추세츠 주립병원의 간수와 치료사, 사회사업가 등이 재소자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84분간의 흑백 필름에 자세히 기록한다. 와이즈먼은 인터뷰와 내레이션, 자막 같은 ‘다큐멘터리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채 병원의 인권유린과 권력을 비판한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주장이다.
다이렉트 시네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관찰자적 순수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존재하는 한 대상은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꽁꽁 숨겨놓은 카메라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앵글 밖으로 나가버리는 야생의 맹수들을 보라. 몰래 카메라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눈치 빠른 연예인들도 사실 야생의 맹수와 같은 후각이 있겠다.)
영화는 편집의 과정을 거쳐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는 점에서 이미 순수한 관찰자의 시점은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보다는 관찰 대상을 선정하고 관객에게 이를 소개하겠다는 생각부터 ‘객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대상의 선정이란 오롯이 감독의 ‘의중’과 ‘의도’아닌가.
다이렉트 시네마의 대표 작품 격인 ‘티티컷 풍자극’ 역시 매사추세츠 병원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겠다는 와이즈먼의 의중과 의도가 반영된다.
결국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감독의 의도가 영화의 맹아인 것. 다이렉트 시네마가 주장하는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은 어떤 불순물도 첨가되지 않은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주장’하는 ‘진실’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제작방식에서 ‘사실의 적시’만을 견지한다하더라도, 이미 ‘순수’와는 멀어진다. 사실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에 애초에 순수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 시네마 베리떼
시네마 베리떼는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민속지학자인 장 루슈에 의해 시작된 다큐멘터리 제작 이론이다. 그는 플레허티가 ‘북극의 나누크’를 찍으면서 에스키모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연출자와 등장 인물간 상호작용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실천했던 것처럼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자 곧 사람과의 관계를 기록하는 것임을 경험에 의해 인식한다.
로버트 J 플레허티, <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 1922
시네마 베리떼는 주제와 연출자의 상호작용을 허용하고 심지어는 촉발시키기도 한다. 이 방법론은 카메라의 존재를 합법화시켰으며 감독에게 화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함께 책임지는 촉매자의 역할을 부여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감독이 특정한 순간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대신 그 순간을 예상하고 자극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시네마 베리떼 형식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장 루슈의 ‘어느 여름의 연대기’다. 영화는 감독인 장 루슈가 파리의 시민들에게 던지는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근본적인 질문 하나만으로 진행된다. 이 질문은 출연하는 시민들은 물론 감독인 루슈까지, 근원적 행복에 대해 자신을 점검하게 한다. 때로 감독은 촬영한 장면을 해당 인물에게 보여주면서 그 인물이 말했던 내용들을 수정하거나 더욱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장 루슈, <어느 여름날의 연대기 Chronique d'un été Chronicle of a Summer>, 1961
시네마 베리떼 형식은 우리가 익숙하게 ‘다큐멘터리’로 인식하고 있는 작품들에도 차용된다. 소개했던 ‘웰랑 뜨레이’에서 감독의 가족들이 내적과 학살의 기억을 가진 캄보디아의 마을공동체에 녹아들어가던 모습, ‘할매꽃’에서 감독이 외할머니의 사연을 받아들여가는 과정, 그리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묻던 모습이 모두 시네마 베리떼의 제작이론에 기반을 두었다 할 수 있겠다. (그들이 제작이론에 의거해 부러 그 같은 대화를 시작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취할 수밖에 없는 그 방식들을 루슈가 이론으로 정립한 것에 더 가깝겠다.)
# 다이렉트 시네마와 시네마 베리떼
1930년대 이후로 다큐멘터리 제작방식은 격렬한 논쟁을 거치게 된다. 대상에 대한 서정적 관찰과 기록에 집중한 플래허티와 철저한 장인정신의 제작기술과 철저한 주관의식이 개입되는 지가 베르토프의 그것이다. 플래허티의 서정성도, 베르토프의 과장된 예술의식도 마뜩치 않았던 젊은 예술가들은 ‘프리 시네마 운동’이라는 새로운 문화 사조를 창출해낸다. 거기서 탄생하는 것이 시네마 베리떼와 다이렉트 시네마다. TV의 보급, 촬영과 음향장비의 발전 등의 변화에 맞춰 ‘기록’과 ‘현장성’에 방점을 찍은 미국의 다이렉트 시네마와 대상과의 관계에 작가의 미학적 관점을 반영하도록 노력한 프랑스 중심의 시네마 베리떼로 분화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서로 다른 극단에 있는 제작 기풍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제작이론의 뿌리가 사실은 같다는 것이다. 그들이 모두 추구하던 것은 대상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기반으로 ‘진실’을 탐구하는 예술이라는 정의가 확립돼 온 과정이다.
# 역사란 대화, 그리고 현실을 다듬는 망치
기록의 의미란 ‘사실의 축적’에 있다. 그리고 축적된 사실을 토대로 ‘진실’을 찾는 탐구의 과정이다. 진실이란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으며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바라보는 지점에 따라, 바라보는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바라보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고 또 새롭게 기록된다. 그렇게 다르게 해석된 또 다른 기록들의 계속된 축적. 그것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진실, 그리고 ‘역사’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첫 장에서는 역사의 정의에 대해 배운다.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가 객관적 의미의 역사라면 후자는 기록한 역사가의 세계관에 의해 해석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가 우직하게 사실을 기록함으로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이렉트 시네마와 같은 것이라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사관의 세계에 따라 사실의 이면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를 통해 진실을 탐구하려는 시네마 베리떼와도 같겠다.
다이렉트 시네마는 진실의 의미를 사실의 나열로 좁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구도자적 끈기가 오히려 더 그 실체에 가깝다. 와이즈먼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벨파스트, 메인’은 뉴잉글랜드 지역의 지역공동체를 끈질기게 담아낸 그 구도의 산물이다.
시네마 베리떼는 진리에 닿기 위한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다. 제멋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변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면의 진실을 캐내기 위한 노력이다. 감독들의 다양한 세계관과 의도는 왜곡과 편향이 아니다.
청와대 탱크 진격의 사실을 두고 쿠데타로 규정할지 혁명으로 규정할지는, 그 공과 과는 무엇인지 두고 다투는 건 현재의,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대의 몫이다. 그 치열한 쟁명과 토론의 축적이 빚어내는 것이 역사다. 역사란 단면이 아니고, 알량한 단편의 사실로 규정할 수 있을 만큼 진실의 무게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역사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행하는 것이다.
E. H 카의 말을 굳이 인용하자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여기에 브레히트의 한마디 조언을 덧붙이자면,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다듬는 망치다.” 지금도 역사는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현실을 다듬는 망치가 될 테다.
2015. 11. 8. 15:03 Vecchio Primavera
1.
이직을 결정했다. 새로운 직장으로 가는 설렘은 딱히 없는 것이 이전에 다니던 곳으로의 복귀다.
임금은 삭감했고, 근로환경도 딱히 나아질 게 없다.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들이 있지만 사실 그냥 다 뻘소리고, 개인적인 감정들의 문제까지 얽히면서 후다닥 에라 모르겠다의 결정 이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 살지는 않겠다고, 돌아가기 위해서만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파업에 나섰는데.
어떤 결정을 하든 그 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돌아간 곳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주체가 생략되고 능숙함과 현명함도 사라진 결정들. 지저분한 말과 말들, 감정들, 착각들, 오해들. 더이상 얽혀 있다가는 정말 병들어버리겠다는 생각. 도망이기도 하고 탈출이나 해방이기도 하다. 사실 이름이 뭐 중요하겠나.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
주량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자각증세가 나타난 건 지난 여름 쯤부터 였는데, 컨디션 난조 때문이라 애써 납득했지만 최근에도 자꾸 이러니 아무래도 뭔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개뿔, 체력도 떨어지고 건강도 나빠진 거겠지.
며칠 전엔 늘 술을 못마신다고 구박받는 구 동거남보다 먼저 항복선언을 하고 집으로 도망갔다. 그 다음엔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는데 두 병을 채 못비우겠더라. 취해서 흔들흔들.
휴가기간, 운기조식을 통해 주량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겠다. 내가 지금 술도 잘 못마시게 되면 가진 재주가 너무 없잖아.
3.
올리브 채널, 그 중에서도 올리브 쇼를 가장 열심히 본다. 집밥선생이 나와서 설탕 때려넣은 음식을 집밥이라고 포장하는게 영 못마땅 한데. (집밥의 개념이라는게 여성의 가사노동을 미화하는데 일조하는 참 맘에 안드는 개념이긴 하지만 그래도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잖아. 적어도 백 선생의 음식이야말로 가장 충실한 '외식'의 맛이니까) 음식과 재료에 최선을 다하는 요리사들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진경수와 남성렬 셰프의 요리들은 필기까지 해가며.
조만간 도야지 파스타에 도전합니다.
4.
며칠 전엔 혼자 마신 술에 취해 혼자서 노래방에 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자꾸 뭔가 빠트리지 않았냐는 눈빛을 쐈지만,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온갖 노래를 부르다 멈칫. 그래요, 나에게 없는 것을 그리워 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겠어요.
5.
당분간은 계속 질척질철, 구질구질, 찌질찌질. 할 것 같다.
괜찮다. 가을이니까. 어차피 겨울 오면 추워서 이러지도 못한다.
그리고 사실, 이거 조금 재밌다. 구질구질.
6.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2015. 11. 8. 14:04 부정기 연재 중 - 술집유랑기
게을러서 블로그질을 하겠냐 싶지만 그래도 술집 유랑기는 꼭 쓰겠단 다짐을 쭉 해오긴 했다. 정말이다.
'연간'을 빙자해 게으름을 포장하려 했지만 2편이 올라온지 벌써 2년이네.ㅋ 하지만 어쨌든, 3편.
고갈비집, 전봇대집, 봇대집, 간판없는 집 등등등. 저마다 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이 집의 진짜 이름은 '와사등'이라고 한다. 그래봤자 이 이름도 전해지는 이름이다. 주인 할머니도 이름에는 크게 연연치 않는 모양새다. 언젠가 진짜 이름을 물었더니 할머니도 "니 맘대로 부르라"하셨다. 종종 이곳을 찾는 친구들과는 고갈비집, 내지는 '카드되는 막걸리집'으로 통한다. 처음 여길 찾은 친구들은 외관만 보고 카드 결제가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능숙하게 카드를 긁는 주인 할머니가 인상적이었나 보다.ㅋ
60년째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해오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그 기억도 저마다다. 60년대, 산업화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고된 하루의 끄트머리에 찾는 대폿집으로. 7,80년대 거리의 뜨거움을 견뎌낸 이들에겐 숨죽여 부르던 노래가 새겨진 곳으로, 낙원상가의 가난하지만 즐거운 예술가들에겐 그들만의 아지트로, 나같은 애늙은이 한량들에겐 아버지와 형들의 이야기 속 그곳으로. 뭐 저마다. 제각각. 제 맘대로.
고갈비는 본래 잘 구워낸 고등어를 일컫는 말이지만, 고등어가 뭔지도 모르던 서울의 촌놈들은 고등어와 비슷하게 생긴 이면수어를 고갈비라고 부른다.(고 바닷가 출신 외할머니가 어릴 때 말씀해 주셨다) 고갈비집이란 이름에 걸맞게 가게에 들어가면 인원수에 맞춰 적당히 고갈비로 불리는 이면수와 막걸리를 내어주신다. 맛은 뭐 그냥 이면수어 맛이다. 바닷가에선 그냥 버리는 생선이라는데 이면수가 맛있어봐야 얼마나 맛있겠나. 막걸리도 사실 그냥 그렇다. 워낙에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사이다 풀어놓은 듯 달달하기만 한 막걸리가 그저 그렇다.만.
그래도 누군가 '술집'을 묻는다면 아마 1번으로 대답할 곳은 여기겠다. 그 이유는 아마 내가 생각하는 술집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모양이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종로 서울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을 것이고, 스무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여기서 몰래 마시던 술맛의 알싸함도 있겠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을 때도 여길 찾았고, 처음으로 데모에 따라나왔다가 똘망똘망 되바라진 질문을 던지던 후배들에게 잘난 체 설교하던 곳도 여기였다. 화장실엔 토악질의 기억이, 덧쓰이다 못해 이제는 읽지도 못할 낙서들 어디 사이에는 어느 부끄런 고백이 남아있기도 하다.
(어느 날, 술을 마실 때 내가 여길 가자고 하면 제가 그 쪽을 되게 맘에 들어하고 있다는 뜻임미다.ㅋ)
홍상수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여기가 눈에 익은 이들도 많다.
북촌방향에서 유준상이 혼자 술을 마시던 가게, 오 수정에서 이은주가 술을 마시던 곳이 여기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없다. 감독 중에서 가장 술마시고 싶게 만드는, 그래서 아무래도 본인이 술을 가장 좋아할 것 같은 감독도 홍상수라고 생각하는데. 그 홍상수의 영화에서도 인정받은 술집이라는 거다.ㅋ
몇 년 전이더라 불이 나서 문 앞의 전봇대는 없어졌다. 화재 이후 공사를 해서 입구만은 넓고 훤해졌다.
막걸리를 담아내던 양푼도 좀 깨끗해진 것 같고, 막걸리 맛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오래된 가게들의 오래된 단골들은 이런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다. 그건 기억 속의 '원형'을 혼자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겠다.
시간이 만든 주름 틈새에 켜켜이 쌓인 사연들은 저마다.
그 주름을 가로지르는 또 한 번의 시간들이 새롭게 쌓은 또 저마다의 이야기.
그렇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오래된 장소들을 만들고 쌓이고.
다만 그 주름 어느 한 귀퉁이에 내 이야기와 시간과 노래가 남았다면, 그깟 욕심이야 뭐.
비가 아직도 추적추적 오는데, 술을 마시러 가야겠다.
+
사진은 죄다 어디서 훔쳐온 겁니다.
술 마시느라 바빠서 사진을 찍은 적이 없슴니다.ㅋ
++
이제 유랑기를 꼬박꼬박 올리겠습니다.
4편은 와사등 길건너 파고다 공원 옆에 유진식당이예요.
+++
아, 술집의 기본 정보 메뉴판입니다.
위치정보는.. 검색하면 나와요.
2015. 8. 13. 13:00 Vecchio Primavera
1.
영화를 보고나와 에어컨 잘 나오는 다방에 앉았다. 머리도 몸도 차갑게.
정직 1일차의 실감 같은 건 없다. 이미 23일째 제작거부 중이다. 그렇다고 마음의 동요가 없는 건 아니다.
이제 새로운 국면이 열릴 것이고, 아마 많이들 다치고 많이들 힘들어질 거다. 나와 동료들만이 아니다. 난 저쪽의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말을 뱉어내게 될 거고, 그렇게 모두가 쏟아내는 말의 홍수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지치고 힘들어질 거다. 그 모두 어쩌면 만신창이가 돼서 끝끝내 허물어질 수도 있을거고, 그래도 남은 것 한줄기를 미련스레 부여잡고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하나 좋은 결말은 아니다.
'국민TV 사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매우 단순한 문제다.
'제작 시스템을 비롯한 조직전반에서 소통구조가 망가졌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망가진 소통구조에 의해 묵살됐다. 조직전반 소통구조의 문제는 보도기능 폐기라는 형태로 돌출됐고 노조는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딱 이거다.
징계, 노조인정, 중재, 대화, 재정악화, 경영권, 시민사회, 협동조합, 대안언론, 보도가치..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저,
'그래도 이건 아니죠'
2.
고백하건대 난 국민TV가 출범할 때 코웃음을 쳤다.
"노빠들, 깨시민들 모여서 자기들끼리 쿵짝쿵짝한다고 뭐가 되겠어?"
작년 7월, 국민TV에 입사할 때의 내 마음가짐도 딱 그정도였다.
적당한 타협.
그래도 대안과 진보의 가치를 견지하겠다니까, 그러면서도 내 생활을 보장해 줄 수도 있다니까.
난 언제나 내 운동이 후퇴했다고 생각했다. 활동가로 살겠다는 입바른 허세야 스물살 시절의 객기고 치기였지만, 그래도. 늘 타협은 조금씩 현실에 가까운 쪽에서 이뤄졌고, 그 타협을 '성숙'이나 '철들었다' 같은 말로 꾸몄다.
가끔씩은 일종의 자조나 자학으로 나를 방어했다. '운동의 후퇴'같은 말은 진심이기도 하지만 그런 '방어용 수사'기도 했다. 여튼, 국민TV 입사는 그랬다. 또 한 번의 후퇴, 적당한 타협, 조금 더 세상에 익숙해지는 일.
혼란이 온 건 입사 후 얼마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국민TV에서 뉴스를 만드는 동료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말 외엔 더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능력의 이야기기도 하고, 사람 자체의 이야기기도 하고, 하여튼.
자체 주민투표를 개최한 삼척으로 취재를 갔을 때, '직접 민주주의의 현장을 맘껏 누리고 오라'던 그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하고 싶은 얘기를 알아주는 뿌듯함, 가르쳐주고 꾸짖어주는 고마움. 그러고보니 아마 그 순간이었나보다. 이 조직에 대한 '애정'이라는 게 생긴 건.
어느날 일기장에 후퇴를 한 게 아니었나보다.라고 썼다.
그보다는 후퇴를 후퇴가 아니게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3.
많은 말을 들었다. 걱정도 조언도 격려도.
(우리에게 가장 많은 '조언'과 '팁'을 주신 게 사측 노무담당자라는 게 이번 투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난 늘 출구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말을 했고,
이번에도 그 후퇴를 성숙이나 어른스러움으로 포장하려고 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동료들은 이번에도.
그래서 적어도,
단지 돌아가기 위해 돌아가진 않겠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살진 않겠다.
아주 단순한 것을 바로잡고 지키고 싶었을 따름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것.
각자 삶 속에서
아닌 건 아니라 하고
지킬 건 지키며 사는 삶에 대한 아주 당연한 바람.
'그래도 이건 아니죠'
4.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
5.
성명서를 써보려는데 이제는 할 말이 더 없어서 이런 글이나 끼적거리고 있다. 한시간이나..ㅋ 밥 먹으러 가야지.ㅎ
6.
후원을 받습니다. 전화를 주세요. 주로 현물로 받습니다.
2014. 12. 19. 11:30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8대 1이라니 이런 시부럴 노친네들이 단체로 망령이 들었나. 하는 생각과 성향이니 판결경향이니 임명주체니 하는 오만가지 것들로 뭐라도 분석해보겠다던 기사가 무슨 의미였나 싶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뽑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나라엔 원래 그리 거창한 민주주의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회는 자본과 권력과 군홧발로 살떨리는 독재가 가능한 시기도 아니다. 언제고 분명 치떨리게 부그러워질거다. 하지만 그래도 시부럴 노친네들이 단체로 망령이 들었나.
통합진보당에도 하고싶은 말.
진보정당의 꿈만 30여년이다.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만 있어도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었다. 지금 그 노동자와 농민, 진보정치의 이름은 어디로 갔나. 누구의 책임을 말하기 전에 그 쌓아왔던 시간과 거기에 묻힌 눈물과 피들을 명확히 기억했으면 좋겠다.
지금 자기들이 흘리는 피눈물 말고.
2014. 12. 16. 00:38 연습장
2014. 11. 14. 01:00 Vecchio Primavera
2014. 10. 10. 11:28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2014. 10. 2. 20:00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2014. 9. 22. 03:30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유행하는 인생의 책 열권 꼽기에, 어쩌다 지명돼서.
1. 오래된 미래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역시 오래된 미래다. 라다크는 여전히 언젠가는 가보고싶은 곳 1위다. 생명과 공동체라는 말을 생각해보게 된 건 오직 이 책 이후다. 책 열 권을 꼽는 건 좀 어려웠지만 한 권을 꼽는다면 단연 이 책이다.
2. 자본주의 공산주의 - 이원복
; 지금은 이원복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여튼 내게 공산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알려준 건 이 책이다. 어린 나이에 훔쳐 본 삼촌 방 책장의 살짝 빨간 책들 중에 유일했던 만화책.
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 해결의 책. 아무렇게나 펼쳐서 막 읽어도 좋아요. 해결의 책처럼.
4. 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
; 무릇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본성이란 서로를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부조하며 공존하는 것이라는 입증. 혹은 입증이 아니라 단지 바람일 뿐이라도,
우리가 본래 가진 우정과 사랑을 다시 되찾자는 것, 인간 본래의 삶을 복원하자는 말이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보다는 훨씬 좋아보인다. 희망을 갖는 것.
5. 검은 고독 흰 고독 - 라인홀트 매스너
; 박민규는 자신의 소설에 라인홀트 매스너를 등장시켰던 적이 있는데,
그 소설의 등장인물 중 라인홀트 매스너는 지구에 유일한 '안주하지 않는 인간' 이었던 것 같다. 홀로 고독하게 어떤 것의 도움도 없이 낭가파르밧을 오르던 남자의 고독한, 하지만 그 고독이란 자신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자신을 긍정하게 하는. 뭐 그런 이야기. 몇 번이고 밑줄 그어가며 읽었다. 그리고 종종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친구들을 보기도 하고.
6. 노마디즘 (과 꼬뮨주의를 비롯한 이진경이 들뢰즈를 말하던 책들)- 이진경
; 사실 두꺼워서 가방에 넣기도 힘든 이 책을 그대로 다 이해했다는 건 아니고. 들뢰즈와 노마디즘, 차이와 반복, 주름 같은 말들에 내 멋대로 붙인 해석은 "그럴 수도 있지 뭐". 경직되지 않은 채 무한히 확장되는 욕망, 그리고 반복되는 그러나 완전히 동일하게 재현되지는 않는 세계에 대한. 구조에 끼워맞추고 분석하고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
여전히 어렵지만, 들뢰즈를 한국말로 이해시켜주는데 큰 도움이었던 이진경. 사실 이진경의 사사방도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줬지만, 뭐 그건 차치하고.
7.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 머레이북친
; 무슨무슨 주의자라고 불리는 게 달갑지도 않고 사실 뭐 그런 거창한 주의나 주장도 없지만 굳이 꼽으라면 사회생태주의자. 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말을 발견한건 다 머레이 북친의 책에서.
8. H2 - 아다치 미츠루
; 내가 살며 배워야 할 건 전부 만화책에서 배웠다. 이제는 대사까지 줄줄 외워버린.
내 이상형은, "내 이상형은 히까리야"라고 하는 말을 알아듣는 여자.
9. 우리글 바로쓰기 - 이오덕
; "말을 마음대로 마구 토해 내는 사람, 그렇게 토해 내는 말들이 모두 살아 있는 구수한 우리 말이 되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말에서 비로소 잊었던 고향으로, 우리의 넋이 깃들인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 이오덕.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했더니 이 책을 선물해줬었다.
10.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 한 그루씩 나무를 심자. 공사말고 농사짓자. 이윤보단 생명을. 언제고 꼭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겁니다. 이 얘기들이 모두 나무를 심은 사람 안에 있다.
2014. 8. 24. 01:55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이송희일 감독의 새 장편영화이고, 올 해 가장 기다렸던 영화다.
1.
너 외롭지 않냐. 라고 물었고 그 대답은 결국 영화의 말미에 나왔다. 떠나지마.
영화 속 어느 한 명 외롭지 않은 이가 없다. 사실 사는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모두 (아마) 외롭다. 외롭다는 말을 건낼 사람도 한 명 없을만큼.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이,
사실 곁에 누군가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단지 서로가 외롭다는 사실을 나눌 수 있는 이를 친구라고 부른다.
너 외롭지 않냐. 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친구가 없으면 세상은 어쩌면 정말로 세상은 끝이겠다.
그 끝간데 없는 외로움을 토설할 이마저도 사라진다면.
2.
나중에 알게됐는데 영화 속 선생님으로 나왔던 현성은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에 무소속으로 나왔던 배우였다.
(그래서 영화관 옆에 있는 카페에 임순례 감독님이 앉아계셨던 건가?ㅋ)
용주와 기웅이, 기택이나 성진이가 외롭고 슬픈만큼 현성이 연기한 담임선생님과 학주도 외롭고 슬퍼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장어즙과 하체운동, 해병대로만 자기를 과시할 수 있었던 찌질이. 친구가 뭐가 중요하냐는 말, 서울대 가라는 말을 그렇게 슬픈 얼굴로 하던 담임 선생님.
(사실 나는 영화에서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기를 바랐었다.)
"세친구의 무소속이 어른이 된다면 저 담임의 모습일까."하는 글을 읽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세친구들도 서로를 잊어갈테고 외롭다는 말을 건낼 이도 없이 세상을 견뎌내는 어른이 된다면 외롭다는 말을 하지도, 들어주지도 못하는 어른이 되겠구나. 그리고 또 똑같은 과정은 아이들에게.
3.
어떤 면에서 영화가 끝까지 가지 않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서로에게서 위로를 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거나 납득하거나, 그마저도 아니라면 까닭이라도 알아채는 일이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생떽쥐페리는 비행하다 결국 사라지듯 죽었다. 빛을 찾아 날아가는 일이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않은 것이 아쉬운 건지 아니면 더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에서 눈물을 흘리던 소년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그 끝을 굳이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할 수나 있을까. 용주가 엘리베이터에서 주저앉아 눈물 흘릴 때 숨이 턱하고 막혀왔는데. 희망, 친구의 한 마디 눈길과 손길. 그까짓 거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 영화에서마저 끝을 운운하나. 싶은 마음도.
4.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좋았다. 이건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사실 해피엔딩이 뭐라고.
불안하고 무섭고 외로워 죽겠는데 부여잡은 건 고작 서로의 손밖에 없는 상황, 그나마 이 손도 언제까지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그 어두컴컴한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어쩐지 행복하게 들렸다. 이건 해피엔딩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해피엔딩 따위 모르겠지만 그저 살아가야 한다면 그 손이 아이들에게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 흐르던 그 음악이 행복하게 들렸던 건 아이들이 부여잡은 가냘프고 위태로운 희망에 대한 찬가. 같아서일까.
5.
기웅이를 연기한 이재준이 잘 생겼다. 카메라가 비추는 방향에 따라 계속 다른 얼굴이 나오는 느낌이었는데,
어떤 순간순간에 기깔나게 잘생긴 눈이 보인다. 수염도 좋고. 내가 수염 페티쉬가 있어서 그러는게 아니다. 하악하악.
그밖에 이송감독의 영화가 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신인배우의 연기력. 이 아쉽겠지만 어쩐지 이번 영화를 계기로 다음, 혹은 다다음 영화 쯤에서는 유명하고 연기도 잘하는 주연배우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후회하지 않아보다 더 상업적으로 흥행 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었고)
6.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인물은 게이어플로 만난 용주의 친구다.
이름이 안나왔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용주를 짝사랑하던 귀요미.
생글 웃던 이 귀요미가 눈물 흘릴 때. 넌 등을 보이지 마.
7.
이 영화의 베스트 컷이다.
박미현 배우의 연기가 영화를 통틀어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력을 합친 것만큼 좋기 때문이다.
는 공식입장이고
진짜 이유는 그냥 아는 사람들만 아는 걸로 하자.ㅋ
2014. 7. 9. 02:38 Vecchio Primavera
1.
블로그를 너무 오래동안 방치해 놓은 듯 싶어 스킨도 좀 조물딱 거리고 사진첩도 뒤적거려 새롭게 단장해봤다. 얼마전엔 티비에서 SNS의 짧은 대화에 지친 사람들이 다시금 블로그로 회귀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던데 (실제로 주변에 싸이월드나 네이버 블로그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몇몇 있기도 했다) 꽤 오래도록 챙겨놨던 블로그가 퍽 소중한 자산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2.
블로그를 처음 열었던 건 2007년, 이글루스. 그보다 앞서 고등학교 때 블로그인이나 싸이월드 블로그 같은 걸 쓰기도 했지만 제대로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을 했던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겠다. 싸이월드에 난무하는 사이좋은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좋은 사람들한테는 차마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끼적거렸다. 어께에 힘을 잔뜩 준 정치이야기가 태반이었고 사는게 어쩌니 사람이란 무엇이니 하는 어줍잖은 이야기나 영화와 노래 이야기같은 잡다하고 읽는 사람에겐 별 영양가도 없는 이야기가 즐비한 그런 블로그였다.
지금도 가끔씩 잠궈놓은 이글루스 블로그에 들어가서 그 때 지껄인 이야기들을 들춰보는데 손발이 오글거리고 얼굴이 빨개지지만 그 때는 분명 진심이었고 진지했던거다. 지금에는 도대체 왜 저런 말들을 지껄였을까 싶은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나 음악, 영화 취향들도 있다.
친구나 후배들, 혹은 이제 몇 명 찾지도 않는 내 다락 골방같은 블로그의 독자들이 혹여 내 글이나 내 생각에 동의할 만한 면이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오로지 그 시시껍절한 포스팅과 가끔 개싸움같고 가끔은 진지했던 그 토론들의 공이다. 여튼 앞으로는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이야기.
3.
얼마전에 트위터를 돌아다니다 "요리 잘한다며 파스타 해주는 남자는 다 가짜며, 진짜 요리를 하는 남자는 나물을 잘 무치는 남자"라는 요지의 트윗을 읽고 대오각성, 집에서 오이지를 좀 무쳤다. 사실 여름 나물이라고 하면 고구마순이나 열무, 가지, 비름나물 같은게 진짜지만 일단은 집에 묵어가고 있던 오이지부터.ㅋ
오이는 냉한 음식이라 몸의 열기를 내려주고 갈증을 해소한다. 거기다 이뇨작용과 해독작용이 있어 술독을 푸는데도 매우 좋다. 등산을 할 때 물대신 오이를 먹고, 한 때 오이소주가 유행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거다.
좋아하는 오이지무침은 소금으로만 살짝 간을하고 참기름과 다진마늘만 조금 넣은 것이지만 반찬 할만한 음식이 따로없어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넣은 짭조름하고 시뻘건 오이지와 소금간만 한 오이지 두 개를 뚝딱뚝딱 무쳤다...지만 헐 사진을 찍어놓지 않았다. 비주얼이 썩 훌륭했는데. 사진은 다음 기회에 첨부.
여튼 내가 이렇게 밑반찬과 나물무침에도 능숙한 남자. 파스타만 졸여대는 그렇고 그런 남자가 아님니다.
4.
친구들이랑 정치나 철학같은 주제로 수다를 떨다보면 언제나 내 이야기는 "크로포트킨을 보라고, 만물은 서로돕는 법이야"같은 말로 매조지된다. 사실 내가 무슨 거창한 아나키스트나 생태주의자도 아니고 실은 들먹일만한 식자가 그 뿐이라서 그런거지만 실제로 만물에겐 서로돕고 살아가는 본성이 있으며 우리는 본성대로 서로를 짓밟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을 나눌 본성을 억누르며 서로를 적대하고 있다 여기는게 훨씬 행복하고 희망적이지 않을까. 희망따위가 완전히 거세된 세계관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겠나. 뭐 그렇다고. 그러니 맨큐의 경제학을 덮고 이반일리치와 크로포트킨을 읽으라.
내가 공부모임 발제문 준비하느라 눈알빠지게 혼자 책 읽은게 억울해서 그럼니다. 엉엉엉.
5.
열대의 밤, 잠도 안오고 땀이 삐질삐질 날 때는 우당탕탕 시끄럽고 소리지르는 노래를 들어야 합니다. 할로우잰을 좋아하지 않으면 여름을 제대로 나고있는게 아니에요. 흥, 쿨 따위.
2014. 6. 29. 18:32 Vecchio Primavera
1.
일단 엄마가 있는 성남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을지문덕한 기분. 아무 것도 한 것없이 또 시간만 보냈다.고 한탄했지만 그래도 한강변 산책하며 에로틱한 장면들은 많이 봤던걸 위로와 성과로 삼자. 이렇게 나는 욕정의 화신으로 일신우일신하고 있다.
2.
"너 요즘 모든 얘기의 결론이 돈이야"
적은 돈을 벌며 살아가더라도 원체 욕망과 취향이 소박해서 크게 상관없을거라고, 물질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고결한 삶을 살 것처럼 말했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의 나는 그렇게 속물이었나보다. 더구나 능력도 없는 속물.
눈치채 달라고 구걸하는 순간이나 정작 누군가 눈치채 안쓰러운 눈이든 경멸하는 눈이든 귀찮은 눈이든 모종의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이 참 곤혹스럽고 부끄럽고 싫다. 한꺼풀씩 치부가 드러나는 괴로움. 여러해동안 나름 열심히 포장해놨던 삶이 벗겨져 결국 맨살이 드러났는데 그 맨살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3.
사실 가난한 삶이 문제가 아니겠다. 누군가는 외로움이라고 누군가는 고단함이라고 또 누군가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그 무엇. 결국 살아가는 일이 미숙하다. 살아가는 어려움, 먹고사는 어려움, 하루를 견디는, 누구나 다 하고 살아야 하는 그 일에 대한 공포심. 같은거.
4.
며칠 전엔 에로에로한 상황을 연출하다 결국 골문 앞에서 슈팅도 날리지 못하고 박주영이 되는 꿈을 꿨다. 오늘 아침엔 애지중지하던 염주가 산산조각나 시궁창에 빠져버리는 꿈도 꿨다. 정신분석에 빠진 누군가라면 무의식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새겨져 있어 그렇다.고 해석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그냥 치미는 욕정때문이라고 에둘러대자.
5.
"그대들의 능력 이상으로 유덕한 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그리고 가능하지 않은 일은 바라지 말라"
차라투스트라를 펼쳤더니 펼치자 마자 저 문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망할 해결의 책. 니체 이놈.
6.
정도전의 전도를 마치고 요즘은 유나의 거리를 열심히 본다. 어딘가 어색하고 괜히 진지해서 더 웃기거나 더 서러운 대사들이 좋다. 일부러 울라고 후벼파거나 인물들을 괴롭히지 않아서 좋고, 그걸 내 얘기라고 하기도 하지 않기도 어려워서 어정쩡하게 그저 한 숨이나 푹푹쉬며 지켜보게 되는 이야기도 좋다.
그리고 뭣보다 노래. 사랑 따위로 위로가 안될만큼 외로운 순간에 부를 법한.
++
고통도 슬픔도 막연한 감정만 남긴 채 이 술처럼 넘어가길 바래.
하루 더 또 하루 더 참아내는 삶을 살아도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7.
날씨가 좋다고 남산 어드메를 뛰다가 아무래도 더위를 먹었나보다. 기운도 빠지고, 머리도 빠지고.
성남으로 돌아가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남한산성에서 닭죽이나 한 사발 후루룩 짭짭 먹고싶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2014. 6. 11. 18:35 주워담은 말들
타임라인에는 뭐라 말하기도 힘든 사진들만 떠다니는데, 뉴스에선 월드컵만 떠들어댄다. 가나에 대패한 것보다 더 비참하고 슬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온 나라의 뉴스가 월드컵 특집이나 하고 있을 때냐고 되묻고 싶지만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다만 왜 할매할배들이 목숨줄까지 내걸고 (사실 이미 한전과 정부는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나 진배없다만) 송전탑을 반대하는지, 초고압 송전탑과 원전이 필요하기나 한건지 일단 알기나 하자. 방문자도 몇 명 안되는 블로그지만 오며가며 다들 한 번씩만 읽어주시라. 가능하다면 퍼 날라주셔도 좋고.
취미와 관심사를 무시하자는 건 아니지만, 월드컵 상대국 선수들의 스탯 하나하나를 줄줄이 꿰찰만큼 읽어대는 시간과 걸그룹 스캔들 루머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쏟는 열의의 백분지 일이면 충분하고도 남을만큼 함께 분노할 수 있을테다.
사실 월드컵과 걸그룹이 우리의 삶을 더 흥미롭고 즐겁게 해주지만 인권과 원전과 에너지 산업의 문제는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이다.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아니라 서울에서 에어컨 켜고 티비보는 우리의 생존권 말이다.
2014. 5. 22. 16:53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영화 '잼 다큐 강정'에서 송강호 박사는 인도네시아의 한 해변에 떠내려온 번개표 형광들을 발견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는 멀리 있는 듯,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분절되지 않고 연결돼 있다.
2.
세월호 참사이후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청해진 해운은 물론 해경을 비롯한 관료사회, 나아가 정권까지 그 분노의 화살이 몰아친다. 잊지않겠다고,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당연한 일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하고, 사회와 세상을 이렇게 방치한 책임을 우리도 나눠가져야 한다. 그러나.
3.
가끔 무엇을 잊지 않고 무엇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조금은 뜨듯미지근한 내 마음이나 행동들도 그래서다. 세월호 참사의 주범은 고작 박근혜정권이나 관료주의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박근혜정권을 만들어낸 힘, 관료주의를 유지시켜주는 힘. 생명보단 이윤을 더 중히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 힘에 대한 근원적 질문 없이 이어지는 애도와 분노, 슬픔은 그저 알리바이를 만들고 오늘의 무력함과 상실감을 외면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4.
다시 세월호 참사를 맞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먼저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언어로 주조한 미래에 우리의 아이들이 살 수 있게 해야한다. 경쟁보단 우정, 이윤보단 생명, 체념보단 저항, 걸스데이보단 그래도 소녀시대 같은 언어들.
5.
인터넷을 기웃거리다가 저 짤방을 보고 식겁했다. 고승덕이 알려주는 공부법이란 제목으로 떠돌던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가 반찬먹는 시간도 아까워 비빔밥을 만들어먹고 하루 17시간을 공부만 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니까. 그 고승덕은 현재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출마해 꽤나 선전하고 있다.
6.
고승덕이 선전하는 이유는 아마 하버드니 최연소 3시 패스니 하는 그의 쟁쟁한 스펙들 때문이겠다. 교육을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한국사회에서 어쩌면 그야말로 교육의 승리자. (같은 보수 후보인 문용린 현 교육감은 지난 선거 유세에서 서한샘, 강성태 같은 사교육 업자들을 불러놓고 "조용히 공부 잘 시켜 서울대 보내는게 교육의 본령"이라는 발언도 했다.)
7.
그러나 경쟁자를 떠올리며 잠을 줄이고 고통을 이겨내 공부하는 세상을 방관하는 것은 세월호의 아이들을 잊지 않는 것도 가만히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한참 동떨어진 이야기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아마 규제를 줄여서라도 화물을 더 싣고, 책임감을 줄여서라도 비정규직 선원들을 뽑고, 업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구조를 조금 늦출 수도 있는 어른이 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처럼.
8.
고작 대통령 따위, 도지사, 시장 따위 누가되든 상관할바 없다. (사실 정몽즙이 시장이 되는게 좀 끔찍해서 투표를 할 생각이지만) 그러나 교육감에게 주어진 권한은 이 사회 교육정책의 기조를 좌우지 할 수 있는 어마무시한 것이다. 전북과 경기같은 지역에서 (미약하고 성에차진 않지만) 교육개혁의 발화점들이 보이는 것이 그 증거겠다.
굳이 그람시를 들먹이지 않더라고 교육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헤게모니를 어찌할 방법은 없어보인다. 더구나 멀끔하고 간지나는 진보교육감이 들어선다면 그곳을 진지삼아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수도 있겠고.
9.
그러니까 원순이형한테서만 희망을 찾지 말고(사실 그 형님은 거의 당선느낌이던데.. 과연 몽즙이 아들 ㅎㄷㄷ) 교육감 선거에서도 좀 희망을 찾아보자는 얘기. 조희연 검색 ㄱㄱ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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