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일단 엄마가 있는 성남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을지문덕한 기분. 아무 것도 한 것없이 또 시간만 보냈다.고 한탄했지만 그래도 한강변 산책하며 에로틱한 장면들은 많이 봤던걸 위로와 성과로 삼자. 이렇게 나는 욕정의 화신으로 일신우일신하고 있다.


2.

"너 요즘 모든 얘기의 결론이 돈이야"

적은 돈을 벌며 살아가더라도 원체 욕망과 취향이 소박해서 크게 상관없을거라고, 물질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고결한 삶을 살 것처럼 말했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의 나는 그렇게 속물이었나보다. 더구나 능력도 없는 속물. 


눈치채 달라고 구걸하는 순간이나 정작 누군가 눈치채 안쓰러운 눈이든 경멸하는 눈이든 귀찮은 눈이든 모종의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이 참 곤혹스럽고 부끄럽고 싫다. 한꺼풀씩 치부가 드러나는 괴로움. 여러해동안 나름 열심히 포장해놨던 삶이 벗겨져 결국 맨살이 드러났는데 그 맨살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3.

사실 가난한 삶이 문제가 아니겠다. 누군가는 외로움이라고 누군가는 고단함이라고 또 누군가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그 무엇. 결국 살아가는 일이 미숙하다. 살아가는 어려움, 먹고사는 어려움, 하루를 견디는, 누구나 다 하고 살아야 하는 그 일에 대한 공포심. 같은거.


4.

며칠 전엔 에로에로한 상황을 연출하다 결국 골문 앞에서 슈팅도 날리지 못하고 박주영이 되는 꿈을 꿨다. 오늘 아침엔 애지중지하던 염주가 산산조각나 시궁창에 빠져버리는 꿈도 꿨다. 정신분석에 빠진 누군가라면 무의식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새겨져 있어 그렇다.고 해석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그냥 치미는 욕정때문이라고 에둘러대자.


5.

"그대들의 능력 이상으로 유덕한 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그리고 가능하지 않은 일은 바라지 말라"

차라투스트라를 펼쳤더니 펼치자 마자 저 문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망할 해결의 책. 니체 이놈.


6.

정도전의 전도를 마치고 요즘은 유나의 거리를 열심히 본다. 어딘가 어색하고 괜히 진지해서 더 웃기거나 더 서러운 대사들이 좋다. 일부러 울라고 후벼파거나 인물들을 괴롭히지 않아서 좋고, 그걸 내 얘기라고 하기도 하지 않기도 어려워서 어정쩡하게 그저 한 숨이나 푹푹쉬며 지켜보게 되는 이야기도 좋다. 


그리고 뭣보다 노래. 사랑 따위로 위로가 안될만큼 외로운 순간에 부를 법한.


++

고통도 슬픔도 막연한 감정만 남긴 채 이 술처럼 넘어가길 바래.

하루 더 또 하루 더 참아내는 삶을 살아도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7.

날씨가 좋다고 남산 어드메를 뛰다가 아무래도 더위를 먹었나보다. 기운도 빠지고, 머리도 빠지고.

성남으로 돌아가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남한산성에서 닭죽이나 한 사발 후루룩 짭짭 먹고싶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