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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우울만 남아있네


기분이나 마음이라는 것이 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냥. 그렇게 자꾸 다짐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된다. 

가벼운 우울만 남아있네. 

술을 마시거나 운동을 하거나 몸을 혹사시키면 기분이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 무엇이든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깨끗하게 하고 빨래를 돌리며 커피를 내렸다. 자리에 앉아 되는대로 이것저것을 쓰고 있다. 연필을 깎았고, 새 공책을 열었다. 블로그에도 무언가를 주저리주저리 써내리고 있지만 딱히 기분이 나아지진 않는다. 

누워서 음악을 들었다. 이상은을 들었고 못이나 스왈로우, 이소라를 들었다. 가만 돌이켜보니 어느 시절에 즐겨 들었던 플레이리스트였다. 기분이 문득 더 나빠져서 치웠다. 비투비를 들었지만 마음에 닿지는 않았다. 

다시는 울지 않으리.

누군가를 생각했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돈이나 집,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읽을 책과 만날 사람, 볼 영화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다만 살아가는 일이란 그런 것들의 종합이겠구나. 그래서 별 것 아니겠구나. 살면 또 살아지는 일이다. 하루씩 하루씩. 뭐 ㄱ렇게 대단한 하루가 있겠나. 다 별 거 아니다. 

제일 좋은 건 이상은의 노래다. 





190315


퇴근길.


그 때 아마 "마음이 쓰인다." 고 말했다.
"마음을 쓴다"고 하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후배의 기사를 고쳐주면서는
"피동형 문장은 되도록이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단다."고 말했다.

 
아, 다시 말할 수 있게 된다면 "마음을 쓰지 않는다" 고 해야겠다.
피동형 문장은 되도록이면 쓰지 말아야한다.

주어도 목적도 불분명해서 마음의 방향도 이유도 알 수 없게 되는 말들.

그저 변명이 되는 문장.

 
올바른 언어생활. 건강한 정신상태.


단상



1.

SNS를 없앴더니 독서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사실 그보다는 최근에 읽은 <세 여자> 때문이다. 허정숙과 주세죽과 고명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코를 박고 책을 읽다 내릴 지하철 역을 지나치기도 했다. 허정숙과 주세죽과 고명자. 그 이름들을 자꾸자꾸 생각했다. 이따금 박헌영과 김단야 같은 이름도 곱씹었다. 


신수정 교수의 추천사처럼, 소설가 조선희는 영웅들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여자들이 20세기에, 이 땅에, 살아있었다는 것만을 말해주었을 뿐이고, 그것만으로 단지 충분히 설레고 벅차기도 했다. 


 



2.

조계사 앞을 지나고 있을 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어떤 사람을 봤다. 강아지가 조계사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는 목줄을 급하게 당기며 "들어가면 안돼, 지옥간다"라고 말했다. 순간 지옥에 들어와 있는 줄 알았다. 사바하.


3.

최근 이직을 결정했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누가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니"라고 격려했지만, "고생을 굳이 돈주고 사게 생겨서 걱정"이라고 답했다. 


3-1.

최근 주변에 이직과 퇴직, 창업, 업종변화 뭐 이런 일이 잦다. 서른 중후반. 삶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판단'과 '결정'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이제야 비로소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 아니겠냐고. 바야흐로 '전환'과 '승부'의 시기다. 우리 모두 힘을 내요. 슈퍼파워까진 아니어도..


4.

요즘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는 <불량사제>와 <트랩>이다. 특히 <불량사제>는 모처럼 본방 날짜를 기다리며 챙겨보는 드라마다. 이하늬는 홍길동에서 장녹수 역할할 때부터 '어머, 이 언니 뭐람?' 싶었는데, 최근의 연기들에서는 독보적인 매력을 뿜뿜하고 있다. 김남길이야 뭐. 원래 멋있었지. 

<트랩>은 좋은 극본과 좋은 화면의 영화같은 드라마다. 오씨엔이 만드는 장르물은 늘 좋은 캐스팅의 여성 캐릭터를 굳이 쓸데없이 소모시키는 악덕이 있는데, <트랩>에서도 그런 기미가 보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용서 가능한 범위다. 하지만 이서진을 끼얹은 실책에 대해선 어떻게 만회할 건지 모르겠다. 그 좋은 캐릭터를 이서진이 삼시세끼에 나온 것처럼 혹은 다모에 나온 것처럼 혹은 왕초에 나왔을 때처럼 (다 똑같으니 어차피 어디든 뭐) 연기하면 짜증이 막 나기도 한다. 


5.

작금의 배경음악은 장고 맥크로이. 봄이 살랑살랑 올랑말랑 하면 적당히 섹시한 남자의 노래를 



190226




퇴근길. 늘 하루가 길다.

단상


1.


SNS


페이스북을 닫았다. 몇년동안 써놓은 글이나 저장해둔 사진들은 잘 백업했다. 내 글은 다 지우고 계정만 남겨놓은 채 몰래 몰래 남의 얘기는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그건 안되더라. 9년동안 쓴 수천 개의 포스트를 하나씩 일일이 지울 노력을 할 수 있다면 다르겠지만, 그런 노력씩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SNS에서 내 얘기를 하는 걸 일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쩗고 간결한 문장으로 유동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연습. 적재와 적소에서 적절한 글을 쓰는 연습. )사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중에 끼워맞춘 셈이다. 실제로는 재미있어서 했다. 따봉 많이 받고 싶은 관종짓이지 뭐.)


어느 날부턴가 선후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SNS에 쓰는 것 같은 글밖엔 못쓰게 돼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 몇년간은 실제로 말과 글이 대부분 SNS로 유통됐으니 그런 것들을 구분지을 일도 잘 없었고, SNS 말고는 글을 쓰는 일도 잘 없었다. 


'3줄이 넘어가는 글은 읽지 않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하지만 3줄의 글로도 사람들을 설득하는 연습'을 하려 했던 것인데, 어느샌가 3줄 이상의 글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 돼 버린 느낌이었달까. 


더 길고 친절하며 스킵하지 않고 끈질기고 진지한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SNS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다시 연필로 종이에 일기를 쓰고, 가계부를 적고, 메모를 꼼꼼히 하고. 


2.


여기도 초소  


얼마 전엔 어느 전문지 기자가 익명으로 쓴 글을 읽었다. 내용인즉슨 '스스로 주제파악을 하자'였는데, 전문지나 지방지, 인터넷 언론의 기자들은 선발과 수련의 과정이 종합 일간지나 방송국 기자들만큼 혹독하지는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옳은 말이지만, 주제 파악과 자학 혹은 자기연민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몇 달 전부터 전문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세계와 사람들, 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와 그저 대상화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 개인의 욕망, 개인의 상황, 처지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 어느 기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취재하는 일은 처음인데, 늘 기업이나 자본이라는 것은 사람보다 이윤을 앞세우고, 그 구조적인 이기심이 사람을 배제하는 결과를 만든다고 여겨왔다. 큰 틀에서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 구조를 만드는 것 역시 사람이며 그 구조를 지탱하고 복무하는 것은 사람, 노동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고 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전문지 기자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앞서 언급한 그 익명의 글과는 또 다른 어느 전문지 기자의 마찬가지로 익명의 글에서 '사회적 감시같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도 봤다. 기업의 이윤이나 국한된 분야의 이야기에만 천착하는 전문지 기자의 글에도 사회적 의미와 책무가 있지는 않을까. 내가 서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의미와 책무를 찾는 일. 서 있는 모든 곳이 전선이고 초소일 수 있지 않을까. 


3.


자격심


이전 직장을 같이 다니던 어느 기자가 있는데, 그 회사에서 나를 포함한 몇몇은 그를 참 싫어했다. 무시하기도 하고. 지금도 나는 그의 세계관이나 문장, 취재방식 어느 것에도 동의라지 않는다. 


그를 그토록 인정하지도 않고 싫어해서 오히려 그의 이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게 많았다. 그가 생각보다 안망하고 (난 그가 금세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잘 지내는데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삶이 잘 풀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현상을 개탄하거나 낄낄거리며 비웃곤 했다. 


문득 그런 것들이 나의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혹은 부러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우 솔직하지 못한데다 너무 지질한 일. 타인의 얼굴에서는 나를 비춰 톺아볼 수 있는 일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거기서 내 얼굴을 비춰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싫어서 아마 지질하고 솔직하지 못했을까. 


내 얼굴을 그대로 들여다볼 일이다. 열심히 나를 연마하면 될 일이다.


4.


다이어트


다음 급여가 나오면 헬스클럽에 등록할 예정이다. 살을 빼고 건강해지기로 했다. 건강한 생각은 우선 건강한 몸에 있고, 둘 모두는 건강한 지갑에 달려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지갑도 건강해지겠다. 엥겔지수를 낮출 필요가 있어.


5.


다이어트2


몸의 살 뿐 아니라 관계에 찐 살도 좀 줄여야 한다. 의미없이 먹는 야식같은 관계들이 있다. 맺고 있는 관계들을 하나 하나 소중히 여기고 싶다. 그러려면 군더더기 같은 관계, 의미없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셀룰라이트 같은 관계들도 빼내야 하겠다.


   

단상

1.

이태원 한복판엔 '서울펍'이 있었다. 거길 많이 좋아하진 않았다. 시끄럽고 번잡해서. 그래도 종종 서울펍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낄낄거리면서 놀았다. 이태원은 그런 동네지. 서울펍은 이태원에 거의 처음으로 생긴 '펍'이라고 했다. 94년이라던가, 95년이라고 했나. 암튼 병맥주를 든 외국인이 포켓볼을 치면서 하이 파이브를 하는 장면을 TV말고 실제로 처음 본 건 서울펍이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장소라 최근엔 '태양의 후예'를 이곳에서 찍기도 했다.


얼마 전 서울펍 자리에 공사가 한창이길래 내부수리를 하는 줄 알았다. 좀 낡긴 했었어. 의자가 좀 편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쳤다. 공사가 끝나면 한 번쯤 또 가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얼마 후에 서울펍이 있던 자리에 '이바돔 감자탕'이 들어온다는 안내 현수막이 걸렸다. 이바돔 감자탕이라니.


이바돔 감자탕이라니. 뭐랄까. 책을 좋아한다던 그녀가 가방에서 김난도의 베스트셀러나 원태연의 시집을 꺼냈을 때 느꼈던 그 기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옥장판 카달로그를 내밀 때 느낄 수 있는 기분. 그런 거.


어제는 마침 그런 얘기를 했다. 이태원에 많던 LGBT바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 다들 높아가는 임대료 문제가 가장 컸을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난 그보다는 문화의 소비층이 더 편협해져 가는 것은 아니겠냐는 의문이 들었다. 클럽이나 라운지바 같은 곳들이 이태원 곳곳, 골목골목에 들어서 있다. 주말 저녁이면 거리를 꽉 채우고 있는 사람들. 거기서 몰개성을 발견하는 것이 어쩌면 오만하거나 꼰대같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사라진 서울펍과 LGBT바들 대신에 클럽과 이바돔 감자탕과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들어서는 것. '레시피는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이 무엇을 구매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요식업자가 지배한 거리. 그런 것들에서 우리의 취향은 오직 '소비'로 편협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1-1.

사실 몰개성의 척도는 맛없는 음식과 재미없는 영화와 구린 음악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바돔 감자탕은 정말 더럽게 맛없다. 이걸 증명하려고 어제 굳이 그 이바돔 감자탕에가서 술을 마셨다.


감각은 단련되는 것이고 지성은 쌓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면 덜 아는 것이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단련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롭고 맛있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야 한다. 탐미(耽美)와 구지(求知)는 차라리 인간의 본질적 의무다.


취향의 편협함, 지적 태만, 감각의 퇴행이 가져올 것은 어리석은 폭력이다.


어제 LGBT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난 "어쩌면 혐오범죄가 더 두려운 거리가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몰개성한 환락의 도시는 다양에 대한 혐오와 배제 폭력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바돔 감자탕 같은 걸 맛있다고 먹으면서 살면 오래동안 육수를 내고 시래기를 삶고 좋은 고기와 향긋한 들깨를 쓰는 감자탕에게 맛없다는 폭력을 일삼겠지. 그런 거다. 다.


1-2. 

이태원을 비롯해 홍대나 신촌, 서촌, 종로통, 을지로에 종종 가던 단골 술집들이 자꾸 문을 닫고 그 일대엔 이바돔 감자탕 같은 것들이 자꾸 문을 여니까 짜증이나서 하는 얘기다. 세상은 빨리 돌아가지만 더 복잡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바돔 감자탕을 먹고 나와 화가 잔뜩나고 술도 잔뜩 취해서는 "모두에게 모자를 씌워주고 싶어." 라고 말했다. 일행이 무슨말이냐고 물었다. "안경은 눈 나쁜 사람이 쓰는 거니까."


2.

그래도 어제 엘지가 두산을 이겨서 다행이다. 차우찬이 멋지게 완투승을 거둬서 다행이다. 한 시즌에 특정팀에게 전패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두산이 끝까지 봐주지 않고 경기해줘서 다행이다. 난 사실 마지막 경기니까 두산이 이웃집 애들 불쌍하다고 봐주면 그것대로 또 싫을 것 같았는데.


야구를 못할 수 있고, 꼴찌팀을 응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야구의 매력이 뭐관대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야구를 보느냐고 묻는다면 '오직 야구만이 다른 선수가 아니라 공과 겨루는 스포츠'라고 대답했다. 야구는 공보다 빨리 베이스에 도착하는 스포츠다. 상대가 아무리 빨라봤자 난 공보다만 빠르면 된다. 그래서 야구는 올곧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야구장 위엔 스무 개의 경기가 있다. 사실 덕아웃고 불펜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을 더 많은 경기가 있다. 그래서 경기에서 지더라도 이긴 것 같은 순간이 있다. 10점 차, 20점 차로 지더라도 단 한개의 안타가 승리가 되는 순간. 마찬가지로 143번의 패배에도 단 한 번의 승리가 이번 시즌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순간.


엘지가 두산에게 시즌내내 패배했을 때 화가났다기 보다는 그 수많은 운동과 경기에서 각자의 싸움에서마저 패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 화가 났다. 그까짓 포스트시즌 못나가면 어떠냐. 그래봤자 공놀이인데. 하지만 삶을 걸고 하는 경기에서 저녀석과의 싸움이 아니라 공과 하는 내 싸움에서 지는 것이 당연해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할 일.


2-1.

하지만 양상문의 모가지는 따겠어요. 한 시즌 지나니 잊은 줄 알았지 이놈아. 다음 FA에서 박용택에게 최고대우를 약속하고 최정을 데려오는 데 성공하면 용서해주마.


3.

아침마다 같은 지하철을 탄다. 7시 55분에 석계역을 지나는 응암순환 6호선의 8번칸. 그래서 거의 매일 아침 같은 사람들을 본다. 아침마다 스마트폰으로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거대한 백팩을 맨 아저씨.


며칠 전엔 그 아저씨와 싸웠다. 내릴 역을 지나쳤는지 그 만원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말치며 허둥지둥 내리더라. 사실 그 아저씨는 늘 그런 편이다. 그 커다란 백팩을 매고 두 세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내릴 때마다 사람들을 밀고 지나간다. 그 날은 전 날 예능이 무척이나 재밌었는지 키득키득 새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기어코 내릴 역을 지나친 것 같았다. 사람들을 밀치며 (사실 밀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기의 갈길을 뚜벅뚜벅 걸었고 사람들이 밀려나간 거지. 이게 더 나브다고 말하는 거다. 사람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더라. 숨도 안쉬어지는 만원 지하철인데.) 기어코 내린 그는 자기에게 밀려서 스크린도어와 지하철 사이에 넘어진 대단히 위험한 상황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다시 지하철에 탔다. 착각한 거지.


그가 다시 탔을 때, 그의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항의를 했다. "무례하고 위험한 행동을 했다. 보여지는 연배에 비해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다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결단코 좌시하지 않겠다"라는 의미의 짧은 욕설. 짧은 순간이었지만 4가지 정도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는 성의없게 , "네, 네 ,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이어폰을 다시 꼈다.


내심 사람들이 같이 분노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침의 피로란 그런 것인가. 아침의 지하철은 질서와 예의, 안전 같은 것들이 철저히 무시되는 공간이지만 그 무시가 또 다른 질서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 이 지하철이 향하는 곳은 어쩌면 응암역만은 아니겠다. 라고 생각했다.


4.

미스터 선샤인을 열심히 봤다. 하지만 드라마는 엉망진창이었고, 김은숙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 스스로 지닌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만을 확인한 드라마. 라고 평가하겠다. 이 얘기도 쓰고 싶었는데, 앞에 분량이 너무 길다.. 피곤하기도 하고. 그건 다음 기회에. 투 비 콘티뉴.


4-1. 

하지만 김민정 누나는 엄청 예쁘다. 드라마는 김민정 누나를 캐스팅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었지.

단상


1.

4월에 마지막 월급을 받았고 벌써 내일 모레면 입추니까, 여름 한철을 백수로 살았다. 모아둔 돈이 있어서 유유자적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가난에 찌들어서 여기저기 돈꾸러 다니는 비루한 계절이었다. 직장을 나올 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을 많이 다친 건지, 상황이 안좋아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서 마음 바닥이 드러나자 마음에 담아뒀던 잔여물이 많았던 것도 알았다.  


며칠 전에 누가 추천해준 소설을 앉은 자리에서 밤새워 다 읽어버리고 어쩐지 이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됐다. 개연성 있는 생각은 아니고 그냥 밤새워 책을 읽고 났더니 뭔가 하나를 해냈다는 느낌이 든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동안은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지. 영화도 보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책을 읽을 것.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열심히 볼 것. 짧더라도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쓸 것. 영화와 드라마, 책을 보고 감상을 남길 것. 연필로 종이에 뭐라도 적을 것. 글을 쓸 때 남의 글을 배끼지 않을 것. 배달음식을 먹지 않을 것.


2.

결국 글을 써서 먹고 살아야 하고, 또 그렇게 살고 싶지만 요즘은 내가 쓰는 글이 부끄러워서 어디 내놓고 돈 달라고 하기가 어렵다. 들켜버렸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남의 말을 내 말처럼 '우라까이'해서 살았다. 농 반 진담 반으로 "우라까리를 해도 걸리지 않게 잘 포장하는 게 내가 가진 재주"라고 말했는데, 그런 재주는 애초에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배낀 자기는 알고, 원래 주인도 알고. 자꾸 하다보면 읽는 사람들도 알게 되겠다. 난 자꾸해서 읽는 사람들한테도 들킨 것 같고.


더 들키면 정말 큰일이겠다 싶어졌다. 애초에 내 깜냥 바깥의 이야기들을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것들,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 누나들이나 형들이 하는 멋있는 얘기들을 배껴오는 일. 나도 멋있을 줄 알았지 뭐야. ~~에 따르면, ~~가 말하길 같은 문장이 많아지는 건 내가 가진 언어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드러내는 좋은 척도겠다. 


할 수 있는 말을 할 것. 할 수 있는 말을 늘여갈 것. 모른다는 말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을 것. 모른다는 말 뒤에 숨지 않을 것.


2-1.

요전에 재밌게 읽은 책은 김혜진의 <중앙역>이다. 그 전에는 김금희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들은 모두 내 또래다. 기자사회에선 이제 비슷한 또래의 기자들이 이름을 조금씩 알려가고 있다. 좋은 시각과 마음을 토대로 좋은 문장으로 좋은 기사를 만든다. 전에는 '나도 기회만 오면', '나도 저런 여건과 자원이 있으면', '문장 자체는 내가 더 좋지 않아?' 같은 생각들을 했다. 맞다 다 질투였다. 


질투하지 말 것. 질투를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말 것.


3.

도통 많은 것들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요즘이지만 도통 관심을 끊을 수 없는 게 엘지트윈스다. 올 초에는 말도안되는 트레이드로 양상문의 모가지를 따버리고 싶다는 기도를 했는데, 시즌 초반에 성적이 잘 나오자 그런 저주는 한풀 꺾이기도 했다.


요즘 엘지는 선발 마운드가 무너지고 불펜은 이미 무너졌고 빠따는 무너지는 중이다. 오랜만에 박용택이 3할을 못치는 시즌을 볼 수도 있겠다. 양상문에 대한 저주를 다시금 퍼부어야 하나 싶다가도,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며 수양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내가 금지어 감독의 엘지 시절도 견뎌냈는데. 


그래도 시즌 마치기 전에 두산한테 한 번이라도 이겨봤으면 좋겠다. 특정팀 상대 시즌 전패기록이 한국 프로야구사에 있기는 한 거야?


4.

재밌게 보고있는 드라마는 <라이프 온 마스>와 <미스터 선샤인> 미스터 선샤인은 이병헌과 김태리, 무엇보다 김민정 누나 (사랑합니다. 사랑한다구요.) 때문에 보고 있다. 김은숙의 드라마는 그 '인기'때문에 오히려 갈수록 더 그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캐릭터의 서사를 짓뭉개지 말아주세요. 그 와중에도 이병헌과 김민정의 매력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인데 그 중에서도 김민정. 극에 등장하는 이병헌의 매력이야 워낙에 입증된 것이니까 그렇다 해도, 이제 스크롤에 이름 두번째로 올라가는 여주의 자리에서 살짝 물러난 김민정이 보여주는 매력이 어마어마하다. 


실은 김민정은 아역때와 아역에서 갓 벗어난 때, 그러니까 <카이스트>나 <술의나라>같은 걸 찍을 때 이후론 마냥 선하고 사랑스러운 역할을 한 적이 별로 없다. 늘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었고, 슬픈 구석이 있었고. <아일랜드>의 시연이나 <버스, 정류장>의 소희처럼. 이번 드라마에서도 그런데, 아비에게 팔려 외국 노인의 첩실로 살아야했던 재능도 사연도 많은 여인의 모습을 김은숙이 더 잘 그려주면 좋겠다. 김민정이 지금도 하드캐리하고 있다고요. 이 드라마 자체가 배우들의 하드캐리로 이뤄지고 있지만. 19세기의 조선에 망고빙수를 내놓는 성의와 고민없는 PPL을 보면 집필에 시간을 많이 쓰실 수 있을 것 같은데.


5.

더위 때문에 자꾸 가위에 눌린다. 땀에 절어서 깨곤 하는데, 며칠 전부터 그냥 에어컨을 켜고 자기로 결정했다. 전기료 아끼려다 장례치르면 그 돈이 더 비싸겠지. 하루종일 탄소와 똥만 배출하는 삶이 부끄럽지만 어쩌겠어요.

 


6.

잔나비. 요즘 제일 즐겨듣는 밴드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 남겨두겠소



단상




1.
사건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감금 및 집단 성폭력 사건'이 아닐까. 수많은 야동 사이트들에 그 사진들이 돌아다녔을 테고, 피해자의 고발이 없었다면 여전히 'OO녀'같은 별칭이 붙어서 사내들의 낄낄거림과 조리돌림 대상으로 온라인을 부유하고 있겠지. 그래선 안된다는 말을 하는 이들에게 발끈해서 나서는 모습, 사건의 실체가 다 파악되지 않았느니 하는 온갖 말들을 덧붙여 피해자를 낙인찍으려는 태도가 지금 딱 이 사회의 수준이다. 

이런 모습을 그저 이성과 지성의 부재, 소양의 부족 같은 걸로 이해해왔다. 그래서 더 멍청하다고 말했고, 우리는 조금 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더 건방지고 오만해 보일 수는 있겠다만, 난 오히려 내가 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이니 지성이니 소양이니. 그런 것들은 그저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아주 약간의 노력. 그런 것으로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근래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보고, 들으면서 부쩍 지치고 피곤해졌다. 문제는 어쩌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도대체 난 어떻게 저들을 혐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삶이라는 것이 대단히 가치있어서, 그보다는 내 삶만은 대단히 가치있는 것이어서 어떤 궤도에 올라탈 이정표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땐 내가 소년만화의 주인공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럴 수밖에. 내 세계의 인식은 오직 나 뿐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저 조연, 주변부로 보일밖에.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그런 유치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 수준이었나보다. 역경에 처한 소년만화의 주인공에게 반드시 기사회생의 대찬스가 주어지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순간의 이정표가 올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직도. 

사는 일이란 게 그렇게 대수로울 것도 없고, 빅찬스 같은 것도 실은 없이 그저 꼬박꼬박 꾸역꾸역 꾸준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일이란 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지루한 삶의 연속. 하지만 스피노자의 말마따나 하늘이 내려준 삶의 빅찬스란 그렇게 대단할 것도 거대할 것도 없을 일이다. 그저 내 욕망을 가늠하고 단 한순간, 찰나라도 반짝거리게 만들 힘. 그런 것이겠지. 그 정도는 만화 속 주인공이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그러니까 결국, 악셀 한 번 밟아봐야 하지 않겠나.

3.
생각해보니 10년 전 이맘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왜 나아진 게 없냐고 투덜댈 게 아니라 다시 또 더 좋아지길 준비해야하겠다. 바야흐로 렙업의 시기. 진득하게 앉아서 읽고 보고 듣고 쓰는 연습.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몸은 튼튼하게 만들자. 

4.
'인연'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쌓이는 인연이란 결국 옷깃만 스쳐도 쌓이는 '업'이기도 한 것. 감당할 수 없는 업을 두려워해 인연은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모든 말과 행동이 인연을 쌓는 일이고, 동시에 업을 짓는 일이다. 조심스레. 신중하게. 말을 줄이고 몸을 아끼며.

5.
이런 시절엔 김장훈의 노래를 듣고 그 공연에 가고 싶어진다. 외롭고 쓸쓸하다가 막 웃겨버린.
유튜브에서 김장훈을 검색해더니 온갖 조롱만 쏟아져 나와서 속이 상했다. 좋은 노래를 부르는 좋은 사람으로 남아줬으면 좋았을텐데. 



단상

1.

휴가가 끝났다. 휴가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제와선 뭣이 일상이고 어디가 비일상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화장실 문고리와 늘어난 팬티 고무줄마저 낯설다.


2.

휴가 중엔 두 편의 영화를 봤다. <공범자들>과 <택시 운전사>.

'기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다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기자질을 똑바로 못하고 있어" 운운하며 자괴감을 가장해 내가 실은 기자임을 확인하거나 받으려는 뻔뻔한 마음도 아니고, "내가 뭐라고"라며 주억거리다 초라한 스스로를 다독이려는 빈궁한 마음도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을지문덕한 기분. <공범자들>을 보고 나와서 길바닥을 휘휘 걸어다니느라 애꿎은 주차비만 날렸다. 

직업, 밥벌이에 자긍심과 애정을 쏟는 일.에 대해 생각했고 노력과 능력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그보다 더 거창한 단어들이나 훨씬 쪼잔한 말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 밤의 최고조는 아무도 나와 술을 마셔주지 않은 것이었다.


2-1.

<공범자들>엔 내가 콩알만하게 스쳐 나온다. 맨날 똑같은 옷만 입고 다녀서 한 번에 알아봤다. 어떤 얼굴들, 아는 얼굴, 반가운

얼굴들이 스쳐나올 때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고영주 아저씨가 배바지 입고 나오는 장면이 최고조로 흥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2-2.

모처럼 성당에 갔고, 이용마 선배가 쾌차하시길 기도했다.


3.

휴가의 본래 목적대로 검진을 받았고 예상한 결과를 받았다. 예상한 그대로의 결과를 받으려고 그 돈지랄을 했나 싶어서 "역시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아는군요"같은 개드립을 날리다가 살짝 혼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짜증이 좀 났고 그보단 사실 좀 무서웠다. 

사실 제일 큰 짜증은 내년이나 후년부터 적용될 거라는 엠알아이 의료보험이다. 돈 많이 벌어서 엠알아이 기계나 한 대 사고 싶다. 옛날에는 윤전기를 사고 싶었는데 말이야.


4.

일산으로 옮긴 스페이스 공감의 첫번째 공연을 다녀왔다. 예정은 크라잉넛과 로맨틱펀치의 합동공연이었지만 배인혁의 급환으로 크라잉넛의 단독공연이 됐다. 크라잉넛의 공연은 신났고 캡틴락은 여전히 철이 없었다. 크라잉넛은 22년째다. 오래가는 힘.에 감탄하다 크라잉 넛의 히트곡에 대해 생각했다. 인디씬에서 출발한 팀 중 대중적인 히트곡을 가장 많이 만든 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가장 본질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그 며칠 전에는 대중예술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부르지 않는 노래, 보지 않는 영화, 읽지 않는 만화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하는. 대중예술의 정수는 결국 대중성이냐는 질문. 그래도 <해운대>를 천만 관객이 본 건 납득할 수 없다. 퉤퉤퉤.


4-1.

일산으로 옮긴 공감은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고 (주엽역에서 2km나 떨어져있다. 버스를 타야한다. 무려.) 공간 자체의 매력도 반감된 느낌이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감'이다. 실제 거리는 모르겠다.)이 더 벌어진 느낌인데, 그건 객석이 반원형이었던 매봉 공연장이랑은 다른 객석 모양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LED 화면이 생겼는데 어찌 쓰셔야 할지 아직 연구가 되지 않은 듯 보였고, 무엇보다 조명이 너무 후지다. 관객 한명한테 핀조명을 쏘고 레이저를 발사하고... 무대에다 하시라고요. 가뜩이나 짜친 조명. 지미집이 머리위를 붕붕 날아다니는 것도 여전히 싫다. 언제고 한번은 헤드샷 할 것 같아.


잔뜩 투덜거렸지만 암튼 그래도 백피디님 감사합니다. 


5.

김현아가 원두 한보따리를 사줬다. 테라로사에서 파는 원두 중에 가장 맛있는 거라면서. 목욕재계를 마치고 정성스럽게 갈아 성심껏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다. 커피를 제대로 내릴 줄 안다면 더 맛있겠지. 아니, 지금은 맛이 없다는 게 아니고. 암튼 공부를 해야한다.


6.

모처럼 고요서사에서 책을 샀다. 

고요서사에서 주워오는 책들은 대개 다 좋다.


++

...

뭉뚝한 연필, 가느다란 연필, 부러진 연필로

새벽의 어깨선을 열심히 그리던 시간들도 모두

모두 갖다 버렸다

버렸더니 살겠다

내가 나를 연기하며 

(시도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연기를 하며)

그늘을 기억하는 일과

들어가 사는 일 사이에서 도르래를 굴리며

살 수는 있겠으나

...


-술래는 슬픔을 포기하면 안된다, 박연준



6-1.

숨어있는 책에서는 이남덕 교수의 한국어 어원연구 전집을 주웠다. 옛날 얘기같은 걸 기대했는데, 만주어와 퉁구스어가 잔뜩이다. 차가 생겨서 좋은 점은 두껍고 무거운 책을 사서 싣고 올 수 있는 일이다. 고맙고 즐거운 일이다.


7.

엄마랑 같이 동두천에 있는 이모네 집에 갔다가 대리운전을 불러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잠들었고 대리기사 아저씨와 어색한 듯 수다를 떨었다. "15만킬로나 탄 것 치고는 진동이 없고 소음이 적어요", "앞유리에 유막 제거를 해야겠네요" 같은 얘기들과, 본업은 덤프트럭 운전이지만 일거리가 너무 줄어 지난 주부터 대리운전 알바를 시작했다는 얘기, 그래서 하루에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한다는 얘기, 아직 초보라 대리기사 셔틀도 이용할 줄 몰라 그제 밤엔 10km나 걸어야 했다는 얘기. 

도착할 무렵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우산이랑 같이 만원짜리 한 장을 더 줬다. 그게 뭐라고 나도 한참을 쭈뼛거렸고 그 아저씨도 한참을 쭈뼛거리다가 돈을 받았다. 자는 줄 알았던 엄마는 뒷자석에서 하는 얘기들을 다 듣고 있었고, 잘했다고, 내가 주지 않았으면 당신이 주려했다고 말했다. 엄마랑 나는 돈을 주는 것 말고는 감사와 위로, 격려를 전할 방법이 없는 것이 좀 속상하다고 생각했고, 돈을 주는 것 이상의 격려가 어디있겠냐고 말했다. 부쩍 고단해져서 금세 잠이 들어버렸다. 비오는 데 차에 창문이 열려있는 것도 모르고. 덕분에 침수차량이 됐다.


8.

잠을 자야겠다. 상경하기 전에 침대 시트를 갈아놓고 간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내일은 또 뭐 살아지겠지. 새 시트에서 잤으니 새 날이면 좋겠다.

단상


1.

눈을 뜨자마자 티비 앞에 앉아서 정찬성의 복귀전을 기다렸다. 12시부터 시작하는 이벤트의 메인이벤터로 나온다는데 경기시간이 다 제각각이니 언제 시작하는지 알 수가 있나. 다 보면서 기다려야지.


격투기를 좋아하지만 좋아한대봤자 K-1과 프라이드를 좋아했던 거여서 프라이드가 망하고 UFC가 대세가 된 이후엔 격투기를 잘 보지 않았다. 링 위에서 '무도'를 하는 것 같았던 K-1이나 프라이드와는 달리 옥타곤의 철망에 사람을 몰아놓고 피를 튀기며 두들겨패는 UFC는 영 체질에 맞질 않았다. 아기자기했던 일본의 퍼포먼스와 스토리에 비해 '완전미국'이라고 써놓은 것 같은 퍼포먼스도 취향엔 안맞았고. 그러다 정찬성의 등장 이후로 UFC를 좀 보게 됐는데, 좀비라는 별명처럼 근성으로 승부하는 플레이를 좋아한다. 


UFC 4전만에 치른 타이틀 매치에서 어깨뼈가 탈구됐음에도 끝까지 해내려던 모습이 좋았다. 전설의 강타보단 그 강타를 견뎌내는 모습이 더 멋진 법이지 스포츠에선. 아무튼 크로캅이 곤자가에게 하이킥을 맞고 쓰러진 이후로 아주 오래간만에 좋아하는 격투기 선수가 생겼다. 오늘의 날카로웠던 카운터 어퍼도 좋았고.


그나저나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바다하리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그 형이 싸움은 제일 잘하는데.


2.

백수 생활의 낙은 역시 영화보기. 근래에 봤던 영화 중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이송희일 감독의 <미행>이다. 국가적 재난에서 희생된 피해자의 부모가 산으로 숨어드는 이야기. 누구나 세월호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단 한 번도 세월호를 직접 명시하지 않는다. 굳이 사건을 직접 호명하고 감정을 이끌어내고 고통을 전시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에 빠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산으로 숨어든 이들, 숨어들 수밖에 없던 이들, 그 와중에 그들을 또 헤집고 발로차는 이들을 응시할 뿐이다. 


오늘에 이르러 예술이 세월호를 바라보는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답.


3.

근래들어 건강이 영 좋지 않다고 느끼는데, 어디가 딱 아픈 건 아니고 그냥 늘 컨디션이 좋지 않다.. 는 정도. 아무래도 건강검진을 받고나서 더 그러는 것 같다. 혈압이 말도안되게 높이 측정되고 신장에 작은 용종이 있고.. 어쩌고 저쩌고. 사실 대단히 안좋은 결과는 아니다. 혈압은 다시 측정했을 때 꽤 정상치에 가깝게 나왔고 신장의 용종도 당장 걱정할 건 아니라는 의사소견이 있었다. 그보다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갈 때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을 공포감에 좀 떨었는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것.에 대한 공포같은 거다. 내가 내 몸을 컨트롤 할 수 없게 됐을 때, 무지막지한 돈이 들게 됐을 때, 내가 다 놔두고 떠나야 할 때, 어쩌면 졸라 아프게 떠나야 할 때. 갑자기. 


그런 생각들을 자꾸 하면서 막 잠도 설치고 그랬다. 형들은 한 살 씩 먹어가면서 이제 건강을 걱정할 나이가 돼가는 거라고 했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암튼 불안함 때문이라도 좀 건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얘기를 되게 독한 담배피면서 술에 잔뜩 취한채 기름진 안주를 앞에 두고 했다. 아마난 안될거야.


4.

백수 생활이 길어지다보니 조급증이 나면서 웬 이상한 회사에 면접을 봤다. 영 마뜩치 않았지만 제시한 보수가 꽤 괜찮아서 그러려니 몇 년 살면서 또 다른 길을 고민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면접에서부터 사짜 꼰대 냄새가 풀풀 났지만 그런 걸 견디는 비용까지 포함된 게 괜찮은 보수라고 생각해 출근을 하기로 했는데, 며칠 후에 전화가 와서는 "급여를 좀 내려서 와줄 수 없겠냐"고 하더라. 거의 절반 수준으로. 사람을 한 명 더 뽑아야 하는데 당장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당분간만 좀 이해해 달라면서. 그렇겐 안되겠다고 하니 열정, 희망, 미래.. 뭐 이런 말들을 뱉어내더라. 아니 아저씨 누굴 호구로 보시나요. 열정과 희망을 품고 열심히 하시라 말하고 끊었다. 세상엔 사기꾼이 너무 많다. 문제는 거기에 호구들이 자꾸 걸려드니 그런 놈들이 줄어들지 않는 거겠지. 아마 누군가는 같은 수작에 걸려들었을테다. 이 똥물에 튀겨죽일 놈들.


5.

요즘은 촛불집회에도 잘 나가지 않고 정치 이슈에서도 눈을 좀 떼려고 한다. 마음이 피폐해지는 것 같아서. 맨날 말로는 희망같은 단어를 주섬거리지만 희망의 부스러기, 끄트머리라도 잡기 어려운 탓이다. 대선 주자 몇 명을 지지하는 형태로, 누군가를 증오하고 배제하는 것으로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래서 어쩔건데?'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도 없으니. 어쩌면 지금 해야 할 건 좀 거리를 둔 채 더 똑똑해지고 더 품이 넓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희망을 말할 수 있을 때, 내 삶의 지표를 그려낼 수 있을 때. 말은 침묵보다 의미있을 때나 뱉어야 한다.


6.

어떤 걸 들어도 도통 집중이 안된다. 예전엔 노동요로 스크리모 하드코어를 들었는데 무려. 찾다 찾다 보니 클래식을 듣게 됐는데, 이게 생각보다 쏠쏠한. 열심히 공부하면서 들으면 또 새롭겠다. 요즘 가장 즐겨듣는 건 길 사함과 외란 쉴셔가 연주한 파가니니.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는 것처럼 친절한 연주. 서정적이고. 매끈하고.  


소나타 6번은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면서 귀에 익었던 그 곡이다. 


6-1.

클래식 얘기를 하다보니. 근래 TV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팬텀싱어를 볼 때다. 노래 한 곡이 이렇게 사람을 충만하게 만들어줄 수 있구나. 싶은 순간들. 주말 저녁 엄마와 팬텀싱어를 보면서 고훈정에 대한 사랑을 함께 고백하곤 했다. 공연하면 공연보러 가야지.


 

     


아버지

대낮부터 아버지와 술을 마시고 조금 취했다.


낮술에 취하면 애비에미도 몰라본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앞에 앉은 사람이 아버지라는 걸 까먹기 전까지만 마시면 되니까'하면서 안심하고 마셨더니 이 꼴이 됐다.


아버지는 나보다 좀 더 취한 거 같으니 내가 이긴 셈이다. 뿌듯하지는 않다.


오늘은 아버지의 환갑 생신이다. 생활수준과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민전체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환갑의 중요도가 떨어지는...같은 개드립을 구사하려다 관두고, 아버지에게 아주 좋은 환갑잔치 상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했다.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그렇듯 조선 남자의 전통적인 꼰대질을 시전하셨다. 당신이 지내온 과거의 영광과 세상탓, 아버지와 잘 아는 누구가 어느 부처 고위직의 누구다 같은 거.


되게 홍상수 영화같은 술자리였고 어쩐지 쓸쓸해졌다. 어제 홍상수 영화를 봐서 그런가보다.

아버지 뒷모습을 괜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괜히 씁쓸해지는 클리셰같은 장면을 일부러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안바뀌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뒷모습을 계속 봐야했다. 이게 다 이재명 때문이다. 성남의 교통시스템은 정말 지랄맞다.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술을 깨러 인근의 다방으로 들어왔고 옆테이블엔 내 또래의 아이 엄마들이 앉아있다. 나한테 술냄새가 난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데, 내가 안들릴 줄 아냐. 내가 내 앞에 일행의 목소리보다 옆테이블 얘기에 집중하는 도청계의 소머즈인데. 하지만 미안하니 어서 나가야지.


어느 순간에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삶을 지탱시키는 힘이었다. 이해와 용서. 같은 말을 입에 주워담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누가 누굴 이해하고 용서해. 감히. 오늘도 아버지가 중얼거린 "삶은 각자 사는 거"라는 말, 증오도 애정도 마뜩치 않은 이 뜨뜻미지근한 마음. 명백한 타자화.


다만 서로의 삶을 살고 가끔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조금은 해보는. 

그리고 고희에는 오늘보다는 좋은 음식, 많은 사람들을 다짐하는 정도의. 그냥 그 정도.


회사에 도착하기 전까지 전환과 환기가 필요한데, 아무래도 컬투쇼를 들으면서 가야겠다.

단상

1.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를 봤다. 영화를 다 보고 크레딧에 오른 감독의 땡스 투에 '김태용'이 있는 걸 보고서야 알았다. '아, 이 김태용이 그 김태용이 아니구나' 어쩐지 영화 보는 내내 이상하더라니. 

1-1. 
<여교사>는 꽤 괜찮은 영화지만 아쉬운 지점들이 종종 있었다. 일테면 김하늘의 복수가 너무 단순하고 짜친 것. 그녀의 질투와 증오, 단념, 삶의 무게, 집착 이런 것들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는데 영화는 너무 손쉽게 이걸 해소해버린다. 하지만 가난하고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나이든 여자가 돈많고 예쁘고 다 가져서 나쁠 필요도 없는 애한테 할 수 있는 복수라는 게 그런 거 말곤 없는 것도 사실이지 뭐. 이 김태용 감독의 전작 <거인>도 좋아하는데 감독은 계급간에 발생하는 어쩔 수 없어서 미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짜증나고 보기싫지만 몰입할 수밖에 없다. 내가 흙수저라 그렇지 뭐. 어쩔 수 없다. 

1-2. 
<거인>에서 최우식은 정말 신의 한 수 였다. 하지만 이번엔 배우들이 좀... 김하늘은 늘 뭔가 아쉽고, 유인영은 '늘'이라고 말할만큼 뭘 본 것도 없다. 연기는 엄청 구리다. 몸매는 엄청 예쁨. 깜짝 놀랐다. 중간에 곽동연이 잠깐 나온다. 찌질한 고삐리로 나오는데 잠깐이지만 얘가 제일 눈에 띄는 배우. 김하늘도 이 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설행에 나왔던 임화영도 알게모르게 계속 눈에 띄는. 

1-3. 
2016년부터 여성의 영화가 강세라고 생각했다. <비밀은 없다>나 <우리들>, <미씽>까지. <여교사>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여성이 성적 욕망의 주체, 특히 롤리타 욕망의 주체로 나서는 지점은 그동안 한국영화에서의 성역할을 뒤집어 놓은 셈이다. 일종의 전복. (영화는 알게모르게 계속 이런저런 전복을 시도한다.) 다만 언급했던 다른 영화들과 달리 남성 감독의 영화라 그런지 여성의 욕망은 그저 남성에 의해 대상화된 연민의 시점에 그친다. 특히 유인영의 경우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한데, 난 김하늘을 비롯해 타자들이 걔를 보는 시각 말고 걔의 진짜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보여주지도 않고. 그런 건 유인영 때문은 아닐 거다. 

2. 
며칠 전에 모친이 만취한 상태로 귀가해서는 "노무현은 아무래도 타살당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나는 "당시에 그런 의혹도 있지만 대부분 의혹수준에서 멈췄고 나로서는 명백히 자살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사회적 타살'이니 하는 얘기를 하기엔 모친이 너무 취해있었다.) 하지만 모친께서 주장하시길, 당신은 그날 새벽 우연히 라디오를 들었는데 "당시 라디오에선 전 대통령이 타살로 죽었다고 보도하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자살로 보도내용을 바꿨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고 그날의 보도들과 지난 방송까지 찾아가며 보여드렸건만 모친께선 "기자라더니 헛똑똑"이라 일갈하시며 "모두 날조되고 조작됐다"고 강하게 주장하시었다. 당장 이에 대해 취재하라고도 말씀하시.... 암튼 그래서 얼른 어디든 취직해서 이거부터 취재해야하나 싶다. 내가 엄마 말 잘듣는 착한 아들이다. 

2-1. 
만취한 모친과의 황당한 에피소드로 웃어 넘길 수는 없는 게, 암시가 주는 확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하고 있다. 가끔 모친은 동창이나 동네 아주머니들과의 단체 카톡방을 보여주는데, 거기엔 이런 음모론이나 선동이 늘 넘쳐난다. 좌우보혁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던 우리 모친이 그랬던 것처럼 저마다 자기의 마음 속 무언가를 건드리는 그 이야기들에 격하게 반응한다. 쿼어퍼레이드 때, 호모들이 사탄의 나라를 만들려 서울을 점령했다는 메시지도 봤다. 그런 암시에 걸려들고나면 그 다음부터는 이성의 영역은 사라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사실 사람을 움직이고 설득하는 데 좋은 건 논리나 이성보다는 정념이다. SNS는 일반화 되고 정보접근 창구가 그로 단일화되는 세대가 늘어나면서 거긴 괴벨스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 같다. 

3. 
동네 카페에 앉아있는데 옆 자리에 초등학교 3,4학년쯤으로 보이는 남자 애와 엄마가 앉았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데 여념없는 남자 애는 오전 중에 2군데의 학원을 마치고 온 모양이다. 엄마는 베이글 샌드위치를 사주고 3번째 학원 학원버스가 오기를 함께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모자는 딜을 시작했다. 축구교실에 다니고 싶다는 아이에게 엄마는 거래조건으로 또다른 학원을 내밀었다. 아이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뭔가를 사달라고 했고 (잘은 알 수 없지만 게임기 이름 같았..) 엄마는 세부 모델명과 용량을 역으로 제시하며 가격을 인하해 수용했다. 사교육계의 임상옥, 육아계의 김만덕을 본 기분이다. 이곳은 개성인가요 베니스인가요. 

4. 
<로그 원>이 개봉하고 주변에 거기 열광하는 덕들이 종종 눈에 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하나도 보지 않은 나로서는 데면데면하다. 사실 스타워즈 뿐 아니라 허리우드의 '시리즈'들에 다 시큰둥한 편이다. 세계관을 끊임없이 늘려가는 마블의 히어로물도 작년쯤에야 가까스로 시작했고,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심지어 해리포터 시리즈도 안봤다. 이쯤되니 주변에서 무식하다고 하도 성화라 뒤늦게야 공부하듯이 몰아서 본다. 007을 며칠에 걸쳐 처음부터 가까스로 정주행했고, 미션 임파서블도 마찬가지로 시간들여 깜지쓰듯 정주행했다. 그렇지만 좋아서 몇 번이고 돌려본 시리즈가 하나 있는 데 '오션스' 시리즈다. 오션스 시리즈의 미덕은 밤새도록 떠들어댈 수도 있을텐데. 방바닥 뒹굴며 나초에 치즈찍어 먹으며 오션스 트웰브를 보는 게 주말을 보내는 가장 완벽한 방법 중 하나다. 러스티 형 짱짱맨. 암튼 버니 맥 아저씨가 죽고 더이상은 오션스 시리즈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안타까웠는데 새로운 오션스 시리즈가 나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오션스 8> 대니 오션의 동생이 이끄는 여성 사기단 이야기라는데 캐스팅이 어마어마하다. 산드라블록과 헬레나 본햄 커터, 앤 해서웨이에 다코타 패닝, 케이트 블란챗도 나온다. 아, 리한나도. 세상을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또 이렇게 하나 늘었다. 

5. 
역시 해야할 일이 있으면 쓸데없는 소리가 길어진다. '이제 그만하고 집중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세탁기 안의 빨래도 널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마 난 안될 거야... 벌써 아홉시네.



단상

1. 

밤새 있어서 24시간 하는 카페에 있었다. 3~4 쯤엔 취객들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는데 5시쯤 되자 고등학생들이 몰려들어 책을 펴놓고 시험공부를 한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고전문학 교과서를 들고 수미상관에 대해 한참을 떠들어댄다. 공부를 핑계로 앉아서 수다 떠는 열중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시험 봤으면 좋겠네.


2. 

집으로 오면서 배가 고파서 분식집 앞에서 오뎅을 주워먹었다. 오뎅 2개를 먹는동안 김밥을 사가는 손님이 10명도 지나갔다. 돈통을 미리 쌓아논 김밥 옆에 놔두고 손님이 알아서 돈내고 김밥을 집어가는 시스템. 저렇게 김밥 줄을 들고 버스며 지하철을 타겠다. 바쁜 와중에도 아침은 먹겠다는 사람들. 그렇게라도 하루를 버티겠다는 사람들. 생의 의지 같아서 어쩐지 경외감이 들기도. 어쩐지 서글프기도. 어쩐지 조금 부럽기도. 어쩐지 배가 고프기도.


3. 

오늘은 가을야구 시작. 엘레발이라고 놀림당할까봐 시즌 중반까지 엘지의 가을야구 탈락을 점치는 냉철한 팬의 포지션을 가장해왔다. "전력상 6~7 정도가 적합해 보이는데, 팬심이 있으니 6 정도 하면 좋겠어"라고 말하면서. 9연승 기간 이후에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며 쿨게이를 표방해왔지만 그래도 가을야구하니 좋다. 유광잠바는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못입지만, 제가 91 엘지트윈스 어린이 야구단 출신입니다.


3-1. 

나온김에. 오래도록 엘지팬하면서 맘고생 많았다. 금지어 18  Shake It 김재박으로 이어지는 엘지의 암흑기, 고난의 행군을 견뎌오면서 가장 싫었던 순위보다는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일테면 우규민 헤드샷 사건. 머리에 타구맞고 기절한 우규민 보고 낄낄거리다 결국 교체도 안해준. 금지어의 인격이 쓰레기인 그때 결정.) 유지현을 베팅볼 투수 취급하며 강제 은퇴시킨 , 김재현에게 각서 받은 , 그리고 기타친다고 이상훈 쫓아낸 . 엘지 감독들과 프런트가 짓들이다. 사실 엘지가 구단의 프랜차이즈를 제대로 대우해서 끝을 아름답게 적이 번도 없다. 원년부터 있던 팀에 영구결번이 김용수 명이다. 그나마 김용수 아저씨도 프론트는 굳이 은퇴시키겠다고 은퇴시키려고 바락바락 기를 썼었다. 선수들을 대하는 실리도 없고 명분도 없고 의리도 없다. 암튼 지긋지긋하고 너무 싫은 투성인데 ...


3-2. 

여튼 얘기를 꺼낸 라뱅 때문이다. 라뱅은 라면수비니 팀워크 브레이커니 여러가지 오해를 받지만 KBO 최고의 타자( 하나) 분명하다. 돌아가신 하일성 아저씨가 좋아했는데. 엘지에서 유일하게 30-30 해낸 선수이기도 하고 왕년엔 팀의 리드오프보다 도루를 많이 하고 출루도 안타도 많이 했다. 그야말로 적토마. 엄청 빠르고 싸움도 잘하는. 이런 선수를 시즌 내내 2군에 처박아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그건 전적으로 감독의 팀구상이니까 놔두고


필요한 예의와 배려였다는 말만. 20년동안 팀을 지켜온 선수에게 명예롭지 못한 마무리를 강요하는 무례함과,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 치졸. 선수의 미래와 삶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 그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마저 무시하는 안일함


만일 유지현 코치 처럼 1년짜리 푼돈 계약서를 내밀거나, 이상훈처럼 온갖 모욕을 줘가며 다른 팀으로 떠밀거나, 김재현 처럼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거나. 암튼 그러기만 해봐. 내가 한때는 쌍마의 네임드 키워였는데. 쌍둥이 삘딍에 똥뿌리는 사수대, 백순길 체포결사대 내가 조직한다고.  


4. 

고즈넉한 아침이었는데, 야구 얘기가 나오니 흥분을 해버렸.. 암튼 타이거즈 성님들, GG합시다요.


5. 

요즘 녹색당에서는 청소년 흡연권을 두고 아재들과 전투가 한창이다. 서울대병원 농성장 흡연구역에서 청소년 녹색당원 몇 명이 담배를 피웠는데 그게 못마땅했던 아재들이 담배 끄라며 윽박을 질렀고 청녹당원들이 반발하면서 불거진. 경찰 침탈 막자고 모인 자리에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됐다. 


며칠 계속 시끄러워서 그 아저씨들 하는 얘기를 좀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그냥 빻은 소리. 끔찍한 나이주의, 청소년을 계도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못난 태도 같은 것들은 워낙 다들 지적하니 놔두고. 가장 웃긴 부분은 “자기는 충분히 진보적이지만 청소년이 어른들 앞에서 담배 피는 꼴은 못보겠다”는 말과 “자기는 청소년의 흡연권을 인정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청소년 흡연권을 인정하는 정당은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말. 도대체 ‘깨어있는 진보적 시민 자격증’은 어느 공기관에서 발급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좌파, 진보로 규정하면서 “내가 이렇게 진보적이라서 아는데 넌 틀렸어”라는 말을 너무 쉽게한다. 


내가 당원이긴 하지만 사실 녹색당과 녹색당원들은 별로 진보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않다. 생태주의 운동을 환경보호 운동과 크게 구분하지 않고 있는(혹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 노동이나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민주당 정도의 스탠스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난 ‘녹색’이라는 패션으로 당원들을 꽤 많이 유입한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여기기도 하는데, 나쁜 의미는 아니다. 다만 앞으로 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거지. 암튼 그래서 ‘녹색당원 = 급진좌파’라는 도식을 스스로 만들어서 완장처럼 찬 사람들을 보면 참 갑갑하다. 좀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분들이 녹색당의 원내진출(멀리는 정권창출도 보시던데…)을 강하게 바라시는데, 그 원내진출을 위해서는 사소한 인권침해나 가치관의 양보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시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청소년들이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 일, 성소수자들의 권익, 여성들의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묻고 싶은 건, 그런 거 안 할 거면 왜 굳이 힘들게 녹색당을 하고 있나. 사실 그정도 ‘진보시민을 자처하며 자기만족을 얻고 조금 고생하면 원내진출은 물론 정권 창출도 할 수 있는 당’은 따로 있지 않은가 말이야. ‘진보정당’에서 방점은 정당이 아니라 진보에 찍혀야 한다. 진보정치 하려고 정당 만든 거지 정당 하려고 하는데 진보정치 쪽에 T.O.가 나서 진보정당 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특히 녹색당은 강령에서도 ‘반정당의 정당’을 명시한다. 정권창출이 아니라 살기좋은 지구와 뭇생명들과의 화해가 정당의 목표라고. 


6. 

짧게 쓰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어. 일단 자야겠다. 짤방은 여러모로 답답해서 준비한.




단상

1.
들국화 1집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다. 조덕환 아저씨가 만든. 들국화가 재결합 할 때 곧 조덕환 아저씨도 다시 합류할 거라고 아저씨들이 그랬었는데... 조덕환 아저씨는 들국화가 다시 재결합하면 앨범에 실으려고 'Long may you run'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들국화는 없다. 그 노래는 조덕환 아저씨의 새 싱글에 실렸다.

노래는 끝나고 사람을 죽게 마련이다. 들국화의 노래는 이제 과거에 있으니까 하염없이 좋아지기만 할거다. 너무 좋아만 하다가 노래가 낡고 녹슬지 않도록 경계 해야겠다. 그리고 또 다음 노래를. 전인권 아저씨는 밴드를 새로 시작했고 최성원 아저씨는 라디오 DJ가 됐다. 또, 다시, 계속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나이따위야 상관없이. 나이들어도 낡지 않고, 머물러도 녹슬지 않는 삶. 또 새로이 살아야지. 계속 계속 살아야지.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2.
저녁엔 강변북로를 지나는데 한강과 남산 너머로 막 석양이 지고 있었다. 보라색도 아닌 것이 자주빛도 아닌 것이. 무협지에선 그런 광경을 보고 영감을 얻으면 막 무공을 새로 창안하기도 한다. '자하신공' 뭐 이런 거.ㅋ 여튼 그 색깔이 하도 신기하고 예뻐서 핸드폰을 꺼내서 찍으려다가 화면에 담긴 색을 보고 관둬버렸다. 그 색이 아니잖아. 카메라에 찍겠다고 바둥거릴 시간에 잠깐이라도 더 보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도 그 광경을 남겨놓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들었는데, 문득 그래서 사람들은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계덩어리 아니라 마음에 담긴 건, 기계덩어리 아니라 마음으로만 건드릴 수 있는 법이다.

3.
알파고에 대해 얘기하다가. 이세돌이 했던 말 중에 가장 멋있었던 건 "바둑의 낭만을 지킬 것"이라고 했던 그 말. 인공지능과 컴퓨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낼 것이다. 아마 곧. 문학과 예술의 영역을 지켜내며 기계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감성의 영역을 말하지만 사실 사람들도 진짜 그 바닥의 감정을 겪어봤는지 그걸 흉내내는 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다 기형도와 김현식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도 그렇고. 그럴 때 떠오르는 말이 낭만이다. 사람인 우리가 합리와 원칙, 이성의 완성에서 지켜낼 수 있는 건 고작 '낭만'이다. 합리와 이성, 그리고 예술과 고뇌 같은 양 극단의 것들 말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 굳이 치밀하거나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 낭만의 의미가 무언지는 각자 생각하자고요. 낭만적으로다가.ㅋ 그래서 오늘의 장래희망도 낭만의 화신입니다.

4.
지난 번 절에 갔을 때 얻어온 곤드레를 넣고 밥을 지었다. 그 김에 냉이와 쑥, 참나물을 사다 무치고 모시조개와 냉이를 넣고 국도 끓였다. 시장에서 괜히 기분을 내고 싶어서 나물값을 깎아달라고 졸랐는데, 정색한 아줌마한테 덩칫값 못한다고 혼났다. 덩치와 나물값이 무슨 상관인가요. 하지만 기분좋은 밥상. 봄은 밥상머리에서 온다.

5.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기만책이라고 단정했다. "문화산업은 소비자의 모든 욕구가 실현될 수 있는 것처럼 제시하지만 그 욕구들은 문화산업에 의해 사전 결정된 것"이라는. 그는 결국 즐거움이 체념을 부추길 것이고 체념은 다시 즐거움으로 잊힐 것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현대 자본주의의 개성은 다 사이비라고도 했다.

하지만 벤야민이 그랬다.
"어느 여름날 한낮에 휴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어느 한순간 이들 현상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이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숨 쉬는 것이다."

똑똑하고 잘난 아도르노 같은 형들의 얘기에 사실 더 눈이 가고 수긍하게 되지만 벤야민과 같은 세계에 살고 싶다.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는 삶.

프로듀스 101을 보다가 그 처절한 대중기만의 현장에서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그래도 김세정이 짱인데.





단상

1.
며칠 전에 외국인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들어왔길래 누군가 들여다 봤다.
그녀는 10여명의 페이스북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모두 '지훈'. 아마 어느 지훈을 찾고 있나보다. 사진이 프로필에 걸려있으니 본인 확인이 대단히 어렵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온갖 지훈들에게 연을 대고 있더라. 괜히 온갖 말을 맞춰가며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상상했다. 어쨌든 그녀가 찾고 있는 지훈을 만날 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낭만적이어라. 야밤에.


2.
이세돌이 알파고에 이겼다. 이세돌이 때는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패배했네, 이건 사기극이네 뭐네 말들이 많아 볼썽사나웠는데 속이 시원하더라. 이세돌은 바둑 두는 프로그램이랑 대국을 했고 그렇듯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그냥 이세돌의 바둑.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그냥 이세돌에 대한 팬심으로 그의 승리를 진심 축하하고 싶다.

이세돌의 이름이 부쩍 많이 들렸던 그가 10대의 나이로 32연승을 거두며 최우수기사상을 받았던 3 시절. 그래서 지금도 '이세돌 3'이란 호칭이 제일 익숙하다. (마찬가지로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의 단수가 귀와 입에 익어서 아직도 유창혁 6단과 이창호 7단ㅋ 90년대 초중반에 바둑학원에 다니고 아버지가 두는 바둑을 어깨넘어로 구경하고 그랬다.) '당차고 되바라진 말만큼이나 현란한 행마' 같은 이세돌에 대한 평가를 주로 봤는데 아마 그런 좋았나보다. 아성이었던 이창호를 이길 때도 유독 그에게만은 존경심을 표할 때도 좋았다. 내가 천재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그러니까 그냥 팬심. 또래의 바둑 두는 형에 대한. 아무튼 이세돌 9단이 5국에서도 좋은 바둑을 뒀으면 좋겠고 이기든 지든 그의 바둑이 계속 그의 바둑이었으면 좋겠다.


3.
내일이면 창간호가 나온다. 어쩐지 후덜덜. 거기 실린 글들을 사람들이 (무려 돈내고!!) 읽게 해도 괜찮은가 싶고. 거짓말은 없었는지, 고민없는 문장은 없었는지, 띄어쓰기는 했는지. (맞춤법은 선배들이 교정을 봤을테니 .) 더해서 고단한 작업을 앞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후덜덜. 복잡한 심경인데 그렇다고 이제와 어쩔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응원해 주세요. 좋은 책을 만들거고요. 재미있는 글을 겁니다. 일단 지금 다짐은 그래요.


4.
내일 아침 책이 나오기도 하고, 해야할 일들도 있고, 아침 일찍부터 출근 자신도 없고해서 사무실로 왔다. 놀멍 쉬멍 일해야지. 가끔 사무실에 야밤에 혼자 있는 짓을 하는데,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연필에서 나는 소리, 내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말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니터 불빛말곤 사위가 어두울 . 그냥 오롯이 혼자 있는 같을 . 번거로운 것들과 더는 이야기 하지 않아도 같은 기분.
삶은 본래 이토록 외로운 것이라는 각인이라도 하겠다는 . 하지만 담배는 나가서 핍니다.


5.
요즘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노래를 듣고. 하지만 지나간 일들이야 어차피. 그리고 돌아올 일들 따위도 어차피. 묵은 감정은 청산해야 하는 일이고 잔변감이야 해소하면 일이다. 다만 순간에 다할 최선. 관계와 기억을 눅진눅진 녹으로 만들진 말아야지. 그래서 지금은 손지연을 듣는다.



++
어차피 영원하진 않을텐데 내가 미워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