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의 5가지 진실 [녹색당 펌]

타임라인에는 뭐라 말하기도 힘든 사진들만 떠다니는데, 뉴스에선 월드컵만 떠들어댄다. 가나에 대패한 것보다 더 비참하고 슬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온 나라의 뉴스가 월드컵 특집이나 하고 있을 때냐고 되묻고 싶지만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다만 왜 할매할배들이 목숨줄까지 내걸고 (사실 이미 한전과 정부는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나 진배없다만) 송전탑을 반대하는지, 초고압 송전탑과 원전이 필요하기나 한건지 일단 알기나 하자. 방문자도 몇 명 안되는 블로그지만 오며가며 다들 한 번씩만 읽어주시라. 가능하다면 퍼 날라주셔도 좋고. 


취미와 관심사를 무시하자는 건 아니지만, 월드컵 상대국 선수들의 스탯 하나하나를 줄줄이 꿰찰만큼 읽어대는 시간과 걸그룹 스캔들 루머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쏟는 열의의 백분지 일이면 충분하고도 남을만큼 함께 분노할 수 있을테다. 


사실 월드컵과 걸그룹이 우리의 삶을 더 흥미롭고 즐겁게 해주지만 인권과 원전과 에너지 산업의 문제는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이다.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아니라 서울에서 에어컨 켜고 티비보는 우리의 생존권 말이다.




밀양 송전탑의 5가지 진실


밀양 송전탑의 5가지 진실
- 밀양 송전탑은 위조부품 핵발전소, 낡은 핵발전소 가동을 위한 것이다 -
정부와 한전은 오늘부터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려고 합니다. 
밀양 송전탑은 정말 꼭 필요하고, 시급하다고 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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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난 때문에 신고리3호기를 가동하고 밀양 송전탑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지만, 신고리3호기에는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제어케이블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조부품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정부와 한전은 제어 케이블을 바꾼다고 했지만 일정을 무리하게 잡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부품인 제어케이블은 900km에 달하는데 교체가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송전탑 공사를 늦추고 위조부품을 교체해야 국민들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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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신고리3호기가 완공된다고 하더라도, 밀양 송전탑은 필요없습니다. 밀양 송전탑 없이도 기존에 깔려있는 3개의 345kV 송전선로(고리-신울산, 고리-신양산, 고리-울주)를 통해 송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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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끝난 고리1호기만 폐쇄해도 송전선에는 여유가 더 많이 생기므로 추가 송전선 건설이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한전은 수명이 끝난 원전도 계속 가동한다는 전제하에서 송전선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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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과 전력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765kV 송전선 사고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765kV 송전선은 장거리 송전을 위해 건설하는 것인데, 한꺼번에 많은 전기를 보내는 만큼 끊어졌을 때 충격도 큽니다. 이러한 불안정을 하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추가건설을 하게 됩니다. 결국 많은 돈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경과지 주민들의 삶에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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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주민들은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한전은 계속 보상을 제시하지만 2,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이미 선진국들은 전기소비를 줄여나가고 있으며 지역에서 분산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추세입니다.




녹색당 NEWS - 만화로 보는 밀양 송전탑의 5가지 진실 : 진실5-시대착오.gif 
우리나라는 시대착오적인 시스템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방사능의 위험이 있는 원전을 대량으로 짓고, 온실가스를 대량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련된 대기업들의 이윤을 보장하는 것일 뿐, 국민 대다수의 이익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녹색당 NEWS - 만화로 보는 밀양 송전탑의 5가지 진실 : 진실5-복종.gif 


신규 송전선 건설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이런 최소한의 시스템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역주민들에게는 무조건 복종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러한 진실을 널리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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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친구들 페이스북 그룹 - https://www.facebook.com/groups/Miryangfriends/)


The Battle for Jeju Island: How the Arms Race is Threatening a Korean Paradise - By Robert Redford


미국의 가장 유명한 배우중의 한 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난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노래든 영화든 글이든 삶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명과 평화, 민주, 인권의 가치를 바다건너 나라의 일에 대한 연대로 표현해주는 이 나이든 배우이자 감독의 마음이 좋을 것이라는건 사실 그의 영화에서 이미 알았다.

세계최고, 유명인, 특히 미국 유명인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양반님네들이 이 세계최고의 유명인이 해주는 충고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조언대로 너무 늦지 않은 행동이 이 파괴행위를 막을 수 있을테다.

원문 링크
번역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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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The Battle for Jeju Island:
How the Arms Race is Threatening a Korean Paradise

Jeju Island

Imagine dropping fifty-seven cement caissons, each one the size of a four-story house, on miles of beach and soft coral reefs. It would destroy the marine ecosystem. Our imperfect knowledge already tells us that at least nine endangered species would be wiped out, and no one knows or perhaps can know the chain reaction.

That's what is about to happen on the pristine coastline of Jeju Island, a culturally and ecologically unique land off the south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It seems motivated by the United States' urge to encircle China with its Aegis anti-ballistic system -- something China has called a dangerous provocation -- and by the South Korean navy’s construction of a massive naval base for aircraft carriers, submarines and destroyers to carry Aegis

If you’re wondering why this isn’t better known, it’s certainly not the fault of Jeju villagers. Those tangerine farmers and fishing families have been camping out on the endangered coast for five years, putting their lives on the line to protect it. They include the legendary women sea divers of Jeju who harvest abalone on lungpower alone, knowing that oxygen tanks could cause them to over-harvest.

Save Jeju Island activists

But Jeju’s distance from the mainland has combined with military secrecy and misleading official reports to preserve the global ignorance locals have come to refer to as “the Jeju bubble.” As a result, hundreds of acres of fertile farmland have already been bulldozed to prepare for concrete, and caissons would extend this dead zone into the sea.

I learned about this last summer when I read an Op Ed in The New York Times called, “The Arms Race Intrudes on Paradise” by Gloria Steinem. As she wrote:

There are some actions on which those of us alive today will be judged in centuries to come. The only question will be: What did we know and when did we know it?

I think one judge-worthy action may be what you and I do about the militarization of Jeju Island in service of the arms race.

Jeju isn't just any island. It has just been selected as one of the Seven Wonders of Nature for its breathtaking beauty, unique traditions and sacred groves. Of the world's 66 UNESCO Global Geoparks, nine are on Jeju Island. It is also culturally unique with a tradition of balance between people and nature, women and men, that causes it to be called Women’s Island. It is also known as Peace Island.

Save Jeju Island grafitti

Now, the proposed base is near a UNESCO-designated Biosphere Reserve, which is also a nationally designed environmental protection area. Indo-Pacific bottle-nosed dolphins spawn there because of the rich biodiversity of the coast. The South Korean navy claims endangered species could be relocated and the coral beds reconstituted; something both scientists and villagers reject as absurd. The massive cement structures would not only crush all marine life, but block out sunlight critical to other ocean-based species, and the frequency signals from submarines would bring painful deaths to whales. It has also been a fact of life surrounding military bases that human cancer rates, violence and sexual violence have increased.

Save Jeju Island activists

I am moved and impressed that the residents near the coastline have been waging a fierce nonviolent struggle to stop the base. They’ve used their bodies to block bulldozers and cement trucks, sacrificed their personal freedom, been beaten and imprisoned, and paid heavy fines for “obstructing” the business of the navy and such construction companies as Samsung and Daelim -- all to protect their homeland and an irreplaceable treasure on this planet Earth. Though 94 percent of the villagers voted against the bas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s proceeding with construction. It is also bound by treaty to let the U.S. military use all its bases.

I think the least that environmentalists, peace activists and supporters of democracy can do is express our outrage. You can take action now by visiting the Save Jeju Island Campaign website.  As individuals, tourists, professionals and citizens, you may have added access to pressure points that only you know. For example, 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will be holding its World Conservation Congress on Jeju Island from September 6 to 15, 2012; something that should be used as leverage.

Secrecy and hypocrisy have let this military base get under way. Facts and activism can stop it before it’s too late.

For more information and to get involved go to: SaveJejuIsland.org

Top photo: Matthew Hoey of SaveJeJuIsland.org sits at Guroumbi Rock, a spiritual site that is now being destroyed, Credit: Rain Jung. Second: Local activists guard the Guroumbi Rock site. Third: Street art. Bottom: Local activist Sung-Hee Choi puts her body in front of a bulldozer. Credit: SaveJejuIslan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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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

제주도를 위한 전투:
군비 경쟁이 어떻게 한국의 파라다이스를 위협하는가



수마일에 걸친 해안과 부드러운 산호초 위에 놓일 4층 높이의 시멘트로 만들어진 57개의 잠함(수중 작업용 상자)을 바다 속으로 집어 넣는 것을 상상해 보자. 이것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으로도 최소한 멸종위기에 빠진 9가지 종의 생물이 사라질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생태 연쇄 반응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한반도 남해안에서 떨어져 문화적으로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유일무이한, 태고의 상태를 간직한 제주도 해안선 위에서 막 벌어지려고 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이지스 탄도탄 요격 미사일 체계(중국측에서 위험한 도발이라고 주장한)로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미국측 주장과 한국 해군의 항공모함, 잠수함 및 이지스함을 위한 대형 해군 기지를 건설 야욕이 맞물려 동기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냐고 궁금하겠지만 이건 제주 주민들의 잘못때문이 아니다. 그 지역의 감귤 농부와 어부들은 이미 5년 동안 목숨을 걸고 위험에 처한 바닷가에서 야영을 하며 농성해 왔다. 그들은 산소탱크를 사용하면 과다 채취할 것을 염려해 자신의 호흡에만 의존해 전복을 따는 전설적인 제주 해녀들이 포함되어있다.

군사적 비밀성과 세상에 무지한 지역민을 오도하는 공식 보고서가결합되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는 "제주 경기 부양"의 미명하에 중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수백 에이커의 비옥한 경작지는 이미 콘크리트 작업을 위해 불도저로 밀어 냈으며 잠함들(caissons)은 이 죽음의 지역을 바다속까지 연장할 것이다.

나는 이 것을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작성한 뉴욕타임즈의 "파라다이스에 침투하는 군비 경쟁"이라는 기사를 통해 작년 여름에 알게되었다.

그녀는 '오늘날 살아있는 우리들이 해내는 어떤 행동들은 다가올 수세기에 걸쳐 심판받게 될 것이며, 오직 한가지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알았으며 언제 그것을 알았느냐라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나는 군비 경쟁에서 제주도의 군사화에 대해 심판할 가치가 있는 하나의 행동이 당신과 내가 할 그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는 그저 어떤 섬이 아니다. 여기는 숨막히는 절경과 유일무이한 전통 및 신성한 작은 숲으로 "7대경관"에 막 선택된 곳이다. 세계의 66개 유네스코 글로벌 지오파크 중에 9개는 제주도에 있다. 이 곳은 또한 여자의 섬이라고 불리는 원인이 된 여성과 남성, 자연과 인간 사이의 전통적 균형을 지닌 문화적으로 유일무이한 곳이며 평화의 섬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는 유네스코 지정 생태 보존지역이며 국립 환경 보호 지역 인근에 있다.인도-태평양 청백돌고래는 해안의 풍부한 환경 다양성으로 인해 그곳에서 번식한다. 한국 해군은 멸종 위기의 생물은 다른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으며 산호초는 복원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과학자들과 지역민들은 허황된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초대형 세멘트 구조물들은 모든 해양 생태계를 도태시킬 뿐 아니라 다른 해양 생물들에게 중요한 햇볕을 차단하며,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통신 신호는 고래들을 고통 속에 죽게 만들 것이다. 또한 군사지역 인근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암 발생율을 높이거나 폭력 및 성범죄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나는 그 해안선 인근의 지역민들이 해군기지를 중지시키기 위해 치열하지만 비폭력적 투쟁을 해온 것에 감동 받았다. 그들은 불도저와 시멘트 트럭을 막아내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이용했으며 그들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였지만 얻어 맞고 수감되거나 또는 삼성이나 대림 같은 건설회사의 공사 방해라는 죄목으로 큰 벌금을 물어내야 했다. 이것은 모두 지구상의 돌이킬 수 없는 보물과 그들의 고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94%의 주민들이 기지 건설에 반대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미국의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게 하기 위한 협정과 연계되어있다.

나는 환경주의자들, 평화 운동가들 및 민주주의 옹호자들이할 수 있는 최소한 행동은 우리의 분노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당신은 "제주도 살리기 운동 본부" 웹사이트를 방문함에 의해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개별적으로, 관광객으로서, 학자 및 시민으로서, 당신은 당신만이 아는 압력 포인트를 추가 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렛대로서 사용될 수 있게 자연보존국제연합은 2012년 9월 6일 부터 15일까지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 보존 회의를 연기하는 것등을 포함한다.

비밀 및 위선이 이 군사 기지를 수행하게 하였다. 진실과 행동으로서 더 늦기 전에 이것을 중지시킬 수있다.

좋은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 이렇게요



좋은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 김종철


창간 스무돌을 맞으며| 좋은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 김종철

수목(樹木)은 중력의 힘에 의해 아래쪽으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중력에 역행한다.
생명이란 비협력주의가 아닐까? ― 균터 안더스

창간 20주년을 맞는다. 되돌아보면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었으나 어느새 20년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창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의 규모나 살림살이는 별로 변한 게 없고, 생존을 위한 기반은 늘 불안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사회 속에서 중요한 매체가 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왔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잡지를 성심껏 지원해주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독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녹색평론》이 실제로 얼마나 쓸모있는 일을 해왔느냐일 것이다. 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물론 독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이 점에 관련해서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오늘날 언론이 처해 있는 위기상황이다. 언론은 지금 복합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지만, 최대의 위협은 상업주의적 압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기업 혹은 경영조직체로서 언론은 우선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비즈니스의 논리를 외면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미디어가 광고주라는 이름의 금권세력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인습적인 사고, 편견, 이념적 편향에 의거하여 언론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기대를 품고 있는 ‘미디어 소비자’의 욕구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언론 ― 매스미디어 ― 이 엄밀한 의미의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원래 언론·출판행위란 ‘반역’을 위해 시작된 활동이라는 사실이다. ‘반역’이란 물론 주류의 가치, 즉 지배적인 제도와 관습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뿌리에서부터 의심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출판을 가리키는 말(edition)과 반역행위를 가리키는 말(sedition)이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기성의 체제와 지배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언론은 예로부터 어용언론이라고 일컬어져왔다. 오늘날 언론이 광고주와 ‘미디어 소비자’에 기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언제라도 어용언론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은 자신의 본래적 사명 ― ‘반역행위’ ― 을 스스로 배반하는 행위를 강요당할 위기상황에 항상적으로 처해져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운명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소규모 매체밖에 없는지 모른다. 소규모일수록 외부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녹색평론》이 감히 그러한 독립매체에 속한다고 주장할 염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열심히 노력은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참사 이후 확연해진 원자력의 치명적인 문제와 그것을 둘러싼 온갖 허위, 속임수, 협잡에 대해서 대다수 미디어가 침묵하거나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녹색평론》이 비판적인 물음을 계속 던질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작은’ 매체 특유의 독립성 덕분일 것이다.

《녹색평론》 독자들 중에는 ‘평론’이라는 이름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평론’이라고 굳이 고집해온 까닭이 없지 않다. 그것은 이 잡지 창간의 주요 목적이 ‘저항’에 있었기 때문이다. ‘평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상을 상대화하면서 철저히 의심하고, 질문하는 행위, 따라서 근원적인 의미의 저항을 뜻한다. 처음부터 《녹색평론》이 의도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사회와 세계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서,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질문을 통해서만 올바른 방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실로 다양한 의견 ― 현실에 대한 분석과 진단, 해법들이 개진되고 있다. 우리가 묻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분석, 진단, 해법들이 과연 안심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좌우의 이념과 논리를 가지고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정당하게 설명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판단 밑에서 작업해왔다.

예를 들어, 현재 이 나라의 ‘진보진영’이 거의 일치해서 제시하고 있는 ‘복지국가’ 논리에 대해서도 《녹색평론》은 계속 유보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물론 복지국가론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복지국가론이 기본적으로 경제성장과 생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는 이상, 그것이 빈곤과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방책으로서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복지국가 논리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극히 의문스럽다. 복지국가란 국가의 계속적인 세수(稅收) 증가를 전제로 해서만 실현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세수 증가는 경제성장과 고용의 안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석유공급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세계금융시스템이 뿌리에서부터 붕괴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경제성장이 계속되고,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적 고용이 확대된다는 게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설령 그러한 기적이 비록 단기간은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 궁극적인 결과는 생태적 자멸행위가 될 것임은 명백한 일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그렇다. 많은 논자들은 이것을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그들의 우려는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현상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고, 세대 간 인구비율 균형이 붕괴되어 최소한도의 복지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논리에 근거해 있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내포되어 있다는 게 문제이다. 그 결함이란 그들이 미래를 단순히 현재의 연장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은, 오늘날 온갖 징후로 보아서, 앞으로의 세상은 결코 현재상황의 단순한 연장이나 확대된 모습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거의 전적으로 값싼 석유에 의존해 있는 현재의 산업, 금융, 교역, 에너지, 식량 시스템은 물론이고, 이와 같은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정치, 문화, 교육 등 중앙집권적 시스템 전부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더 유지될 수 없는 날이 조만간 닥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우려는 순전히 공리주의적인 경제논리에 의거한 것이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그것은 또한 심히 비윤리적인 인간관·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은 이 세상에 어떤 시스템에 필요한 도구가 되려고 태어나는 게 아니다. 물론 개인이 행복한 삶을 누리자면 복지시스템을 협동적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개인의 독특한 인격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행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야만적인 폭력이 되고, 개인은 시스템에 복속된 부품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온 세계가 갈수록 인구과잉 문제로 고뇌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활력을 위해 인구증가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명백히 비윤리적인 사고방식이다. 세계 전역에 걸쳐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어디서든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환영해야 할 일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인구감소 자체가 아니라, 왜 지금 한국사회에서 출산 저하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이 사회에서 아기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 초인적인 용기와 고난을 각오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왜, 어쩌다가 이 사회가 미래로 가는 문을 닫아버린, 절망적인 사회로 떨어져버렸는가 ― 저출산 현상에 관련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현재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진보적’ 사상과 ‘개혁적’ 담론은 거의 예외 없이 근시안적 현실진단과 피상적인 처방에 머물러 있다. 이 불모적인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최대 원인은 그러한 사상·담론 속에 에콜로지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의 지식사회에는 아직도 에콜로지에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한 이들이 허다하다. 많은 지식인들은 아마도 에콜로지문제는 기술적으로 극복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들은 당장 급한 것은 먹고사는 경제문제이지, 에콜로지는 이차적인 문제라고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경제문제’가 이제는 ‘에콜로지’를 고려하지 않고는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국면에 지금 우리 모두가 처해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독일 시인 브레히트는 편협한 근시안적인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전쟁과 학살로 치닫고 있던 자기 시대의 상황을 “자신이 앉아있는 나뭇가지를 톱으로 베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의 행위로 묘사한 바 있다. 이것은 브레히트 시대보다도 오히려 오늘의 상황을 더 적실하게 드러내는 예리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늦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경제’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새로운 상식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다. 그동안 ‘경제’라고 하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지난 200~300년간 화석연료·핵에너지에 기반한 무한한 욕망 추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개념체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착오적인 ‘경제’ 개념을 척결하지 않는 한, 갈수록 심화되는 환경―자원―에너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도의 기초적 생존·생활도 불가능해지는 날이 곧 다가올 게 분명하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과 에너지에 의존하여 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착각이자 망념이다.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 생산력 증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통한 ‘발전’ 혹은 ‘진보’의 추구라는 낡은 공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우리의 생활방식을 자연의 본성과 리듬에 순응하는 순환적인 패턴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요컨대 산업자본주의 이전, 인류의 오랜 생활방식이었던 순환경제 시스템의 복구·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순환경제란 단순히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는 생활패턴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절제하고, 절약하는 것은 오랫동안 인류사회에서 기려온 덕행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어느 때나 존중돼야 할 생활자세이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개개인이 물자를 절약하는 미덕을 발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절약하더라도 재생 불가능한 자원은 언젠가는 고갈되기 마련이고, 오염된 환경은 결국 거주 불가능한 공간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인 지하(地下)자원 ― 원자력을 포함한 ― 에 의존하지 않고, 영구적 지속이 가능한 태양에너지 중심의 지상(地上)자원에 의존하는 생활패턴의 선택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가능하냐 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경제’의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순환적 생활패턴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자와 에너지 조달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총체적 방식에 있어서의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결국 정치적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용문제만 해도 그렇다. 좁은 의미의 경제문제로서만 볼 때, 부당해고, 실업, 비정규직 등 ‘일자리’ 문제는 자본과 노동 간의 문제로 환원되기 쉽다. 그리고 그 차원에 머물러 있는 이상, 고용문제의 해결은 난망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격심한 경쟁을 강요하는 글로벌경제시스템 속에서 기업은 단지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이윤 증대를 위해서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업은 윤리적 덕을 실천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한 말이다. 기업에 의한 기부, 지원, 자선사업이란 것도 결국은 더 많은 이윤 확보를 겨냥한 간접적인 투자행위일 뿐이다. 오늘날 기업 쪽에서 볼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비자의 존재이지 더 많은 노동자의 존재는 분명 아니다. 이미 시장은 과잉 생산물로 넘쳐나고, 자동화·기계화의 급속한 발달로 생산현장에서의 인간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는 아직도 초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고, 기업의 방종한 행태를 묵인하거나 조장하는 곳이 허다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애국심 따위에 호소하는 것으로써 기업의 해외이전을 막아낼 도리는 없는 것이다. 이 상황은 계속 확대·심화될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용문제의 전망은 실로 암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전태일의 시대에 노동자는 ‘착취’를 당했으나, 지금 김진숙의 시대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노동으로부터의 ‘배제’이다. 한때 이 나라 서민층 아이들의 꿈은 대통령, 판사,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규직’이 아이들(그리고 부모들)의 꿈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성장을 통해서 극복한다는 방법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 ‘복지국가’ 시스템을 통한 극복이라는 것도, 그것이 불가피하게 더 많은 성장을 전제로 하는 시스템인 이상, 역시 지속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주류였던 방법, 즉 대규모 산업시스템 속에서 일자리와 생계를 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소규모 지역 중심, 자립적 생산·생활협동체들을 광범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틀 속에서 태양에너지에 기반을 둔 순환경제를 구축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과 확산을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민주주의의 확립, 즉 보편적 이성이 존중을 받고, 합리적 상식이 통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독일은 흥미로운 참조사례를 제공한다. 후쿠시마 사태 후 원자력을 2020년까지 모두 폐기하기로 결정한 독일의 경우를 보면, 진정한 선진사회란 결국 합리적 상식이 살아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체르노빌에 이어 또다시 묵시록적인 핵 참사를 목도하면서 독일사회는 더는 원자력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정상적인 사고력을 갖춘 인간사회라면 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당연함이 쉽게 통하지 않는 게 또한 오늘의 세계 현실이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은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이 기회를 원자력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로 삼겠다는 한국정부나 아직도 원전문제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일본정부를 보면, 오늘날 이 세상이 악마적인 정신에 의해 깊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만큼 독일의 자세는 단연 돋보인다. 특히 주목할 것은 메르켈 독일 수상이 원전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안전위원회’와 함께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것, 그리고 윤리위원회 위원장에 자신의 정치적 적수를 임명함으로써 정파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정한 결론을 원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양심적인 행위라기보다 매우 합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자면 비판적인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 ‘윤리위원회’에는 원자력에 관여하고 있는 전문가·관계자는 단 한 사람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리위원회 구성 멤버는 가톨릭의 추기경, 프로테스탄트 목사,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을 포함한 몇몇 학자, 소비자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 등 17명이었다. 이 위원회에 참여했던 베를린자유대학 교수 미란다 슈라즈는 지난 6월 일본에서 행한 강연에서, 윤리위원회가 이렇게 구성된 이유는 “어떠한 에너지를 사용할 것인가는 전력회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정책을 이른바 관계당국이나 기업 혹은 전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생활하는 주체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지만, 이 당연한 논리가 새삼 극히 신선하게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비이성과 몰상식이 활개를 치는 사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 의석의 절반이 정당별 비례대표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독일의 ‘상식’을 말해주는 증거인지 모른다. 주의해야 할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회제 정당정치는 사실상 금권과두(金權寡頭) 정치를 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선거라는 것은 기득권층의 영구집권을 돕는 합법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선거를 폐지하고, 의회제 정당정치를 방기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행의 제도 내에서 최대한 민주주의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다. 그러한 시도의 하나가 비례대표제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1983년에 독일 연방의회에 녹색당이 진출하고, 2011년에 그 의회에서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압도적 표차로 가결하는 게 가능했던 것은, 독일사회의 일반적인 상식 이외에, 그 정치시스템이 갖는 합리성에도 기인하는 바가 컸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의석의 절반이 비례대표제에 의해 구성되었기 때문에 독일의회에는 이익집단, 특히 기득권층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적 선택과 결정의 공간이 그만큼 확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독일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는, 아직 불완전한 상태일지라도, 비교적 합리적인 정치시스템이 존재할 때 그 사회가 어떻게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하나의 모범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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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얘기하다 대의제 민주주의, 의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할라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든다. 그리곤 이내 꿈만꾸는 아나키스트.쯤으로 치부해버리며 이내 봉합. 그리고 결론은 선거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으로 정치적 소임을 다하자. 그렇게 만들어져서 참여정부였나.

그건 체제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아둔함이거나 게으름이다. 김종철 선생 말대로 지금의 경제는 "지난 200~300년간 화석연료·핵에너지에 기반한 무한한 욕망 추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온 개념체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더불어 지금의 정치체제는 그 '경제'를 장악하는 이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과두로서 존재한다. 결국 바깥을 상상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뭇 공허하거나 현실감없을 수도 있는 얘기에 독일의 선례는 좋은 모델이 돼준다. 합리적 정치시스템, 윤리적 사회를 상상하고 지향하는 일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철학성향 테스트







감성적인 문필가 타입
| 센스, 감성, 열정
동물적 감각+논리적 이성까지 겸비한 당신은 욕심쟁이, 후후훗! 감각과 동시에 ‘쓰임’까지 고려하는 섬세함을 가진 당신. 동물적 감각을 중시하지만, 이 감각은 명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좋아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센스쟁이 타입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동물적 감각과 함께 빛나는 통찰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디 가서 미움 사기 십상인 타입+_+? 현대의 직업군에서 꼽자면 ‘디자이너’ 혹은 ‘설계자’에 가까운 이 부류의 철학자는?
= 흄, 들뢰즈, 마르크스, 아감벤
『철학 vs 철학』에서는?
8장 어느 경우에 인간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흄과 칸트
15장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헤겔과 맑스
26장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데리다와 들뢰즈
28장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슈미트와 아감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동시에 유명한 회의주의자.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흄이 애덤 스미스의 절친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그가 '회의주의자'가 된 이유는 '시니컬'하거나 '허무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단순히 광대하게 펼쳐진 우주 앞에서 지적 겸손함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일 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살던 당대에는 초월적인 신 없이 평화와 행복을 상상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주 유쾌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죽어 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성'에 꽤나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 적도 있었는데, 결국엔 '이교도'라거나, '무신론자', '회의주의자'(이건 사실 꽤 모욕적인 표현이다)라는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후대에 칸트에 의해 정직한 사유가로 재평가되고, 들뢰즈에 의해 감각의 위대함을 보여 준 철학자로 높이 평가받았으니, 니체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야 다시 태어난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련된 책]
맑스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상가를 딱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99%는 이 사람을 꼽을 듯. 적을 구워 먹어 버릴 것 같은 열정으로 글을 써 댔던 이 사람은 '천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말 놀랄 만큼 면밀한 분석을 수행했으면서도 문학적인 감수성은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는다. 맑스의 책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꼼꼼하고 정밀한 분석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걸 가지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역사 전체를 살펴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맑스의 일상은 가끔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가장 수입이 적을 때조차 당대의 중산층에 상응하는 정도였는데, 지출의 무능력과 사치로 인해 먼저 죽은 딸의 관조차 장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생활에서도 유능한 '천재'란 정말 없는 것인가?
[관련된 책]
들뢰즈
"그는 너무나 굳센 나머지 실망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 허무주의적인 세기말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질병과 죽음에도 역시. 왜 나는 과거에 그에 대해서 떠벌렸던가? 그는 웃었다.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여기 있다. 슬퍼하는 건 너야, 멍청아. 그가 말한다." (들뢰즈의 죽음 이후 『르몽드』에 실린 리오타르의 추도문)
들뢰즈에 대해 그 자신의 발언을 제외하고, 이렇게나 그와 그의 사유를 잘 표현한 말이 있었던가? 긍정적 삶의 대가였던 들뢰즈는 그 어떤 '부정적인 것의 긍정성'도 용납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것은 그냥 부정적인 것일뿐 그로부터 긍정적인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좋아하는 '반성'을 엄청나게 경멸한다. 반성은 우리를 위축시킬 뿐이다!
들뢰즈는 '글쓰기' 그 자체에 관해서도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보통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형식의 글쓰기 실험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이해'할 수 없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깊은 밤 고원 위에서 별 밭을 우러르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을 때 그의 저서 중 아무 곳이나 펴 놓고 읽어 보길 바란다. 말들의 미로 속에서 오바이트하거나, 오만가지로 펼쳐지는 생각의 잔치를 볼 수 있으리라!
[관련된 책]
아감벤
'벌거벗은 사람들', 오직 생명 그 자체만 남은 사람들.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개념들을 현대사회를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똑똑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하나의 사태를 다른 것들과 연결하는 통합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이 철학자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호모 사케르'를 현대로 소환함으로써, 현재의 '호모 사케르'를 드러낸다.
방랑하는 사람들, 자격 없고 소속 없는 사람들을 통해 자유와 대안까지 그려 볼 수 있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철학vs철학』이나, 아감벤의 다른 저서를 보시길! 어쨌든 우리 삶에서 '정치'를 사고할 때 주목해야 할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
[관련된 책]



문필가도 감성도 들뢰즈도 아감벤도 맑스도 다 너무 좋지만
나 이런 거창한 취향인거야?
기분은 좋지만 말이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추모공연 - 나는 행운아








의리있네, 이 딴따라들.
근데 더 의리있는건 사실 공연장 사장 형아들인가?
어쨌든 27일에 봅시다.

공장축산을 매장하라 - 전희식



공장축산을 매장하라

[기고] 공장축산을 매장하라! / 전희식


만약에 말이다. 시애틀 북미원주민 추장이 그랬던 것처럼, 구제역으로 살육당하는 소·돼지를 대표해서 1970년대를 살았던 늙은 소 한 마리가 연설을 한다면 오늘의 구제역 사태를 두고 뭐라 한탄할까?


전에 우리는 들판에서 풀을 뜯고 살았습니다. 논에서 쟁기를 끌었고 무거운 등짐을 장터로 옮겼습니다. 진실된 노동으로 한 통의 여물을 받았고, 짚 몇 단으로 일용할 양식을 삼아 고단한 하루를 넘겼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제사상이나 명절상에 귀한 음식으로 오르긴 했지만, 한 번도 식탐의 재료가 되어 사시사철 고깃집에 걸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달포 사이에 100만 마리나 죽임을 당해 언 땅에 파묻혔습니다. 매일매일 소주에 곁들여 우리를 뜯어 먹던 이들이 포클레인 삽날로 우리를 짓뭉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재앙을 왜 죄 없는 소·돼지에게 뒤집어씌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좁은 쇠창살 속에 가두어놓고 평생을 사료만 먹이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90% 이상을 외국에서 사온 사료를 먹이면서 눈앞에 펼쳐진 7월의 무성한 풀밭에는 제초제를 뿌려대고 우리는 단 한 입도 풀을 뜯지 못하게 한 게 누구입니까.

짝짓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는 강제 인공수정으로 새끼만 빼내 가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구제역이 왜 번지는지 정녕 모르고 하는 짓들입니까. 대량살육과 생매장으로 과연 구제역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나 하는지요? 예방 백신만 확보하면 이런 사태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에 기름 넣듯이 지금의 배합사료는 쇠고기 만드는 공장에 넣는 공업용 원료입니다. 우리는 원래 되새김 동물입니다. 위가 네 개인 우리는 되새김질을 해야 정상적인 순환작용, 소화작용을 합니다. 유전자조작(GMO) 옥수수를 갈아 만든 이따위 배합사료는 단백질 덩어리와 다름없습니다. 1:1로 균형을 이뤄야 할 오메가6 지방산이 오메가3보다 무려 66배나 많은 옥수수는 되새김질은커녕 목구멍을 넘기면서 흡수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몸은 망가지고 살만 찝니다. 막사 구석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항생제들은 우리 몸뚱이를 지탱하는 의족이자 의수입니다. 우리는 늘 약물중독 상태입니다.

소 한 마리가 구제역에 걸리면 반경 얼마 안에는 전부 몰살당해야 하는 이 비참을 누가 조성했습니까. 자식같이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살처분당했다고 통곡하는 축산농가에 할 말이 있습니다. 정녕 자식을 이렇게 키우는지 묻고 싶습니다. 영양제와 항생제로 자식을 키우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축사에서 나오는 순간 바로 도살장으로 끌려가 컨베이어벨트 쇠갈고리에 걸려 빙글빙글 돌면서 바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을 그들은 알 겁니다. 목숨이 다 끊기지 않은 채로 머리가 잘리고 사지가 조각납니다. 이런데도 자식처럼 키운다는 말은 우리가 듣기에 거북합니다. 인간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못해 원혼이라도 살아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좁은 이 땅에 소만 340만 마리나 됩니다. 갓난애부터 노인병원 와상환자까지 다 쳐서 14명당 한 마리입니다. 돼지는 1000만 마리나 됩니다. 세 끼 밥 먹고 살자고 이런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끝 모를 탐욕과 식욕을 부추긴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진정 파묻어야 할 것은 공장식 축산이며 돈벌이 목적의 산업축산입니다. 시급히 생매장해야 할 것은 과도한 육식문화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건강에 보탬이 되고 싶지 건강을 망치는 원흉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정 한 식구처럼 살고 싶은 것은 우리들입니다. '축산물'이 아니라 '가축'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유제류의 원혼을 위로하는 초혼제를 지내고 속죄하기를 호소합니다. 참된 속죄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마지막 한 마리의 소가 구제역으로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 한 마리 돼지가 파묻히기 전에.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전희식 농부·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한겨레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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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한 얘기지만 제 어미를 뜯어 먹고 자란 소가 멀쩡하길 바라는건 놀부심보.
그 소를 먹겠다고 그래서 그런 소를 '만들겠다고'나서는 인간들은 그냥 놀부.

제 자식의 손가락 끝에 박힌 나무가시도 견디지 못하면서.

‘말단노동 잔혹사’ 당당하게 담아낸 ‘사회 초짜’



[경향신문] 말단노동 잔혹사 당당하게 담아낸 '사회 초짜'


‘말단노동 잔혹사’ 당당하게 담아낸 ‘사회 초짜’
글 김재중·사진 김문석 기자 hermes@kyunghyang.com



‘3년 백수’ 끝 공기업 입사 유재인씨, 에세이집 출간 화제

유재인씨(28)는 공기업에 다닌다. 명문대 반열에 드는 대학을 졸업하고 꼬박 3년간 취업준비생, 다시 말해 백수로 빌빌대다가 입사했다.

모두가 선망한다는 공기업이지만 그가 맡은 일은 말단 행정직. 기안문서의 첫 문장 들여쓰기는 3칸, ‘첨부’의 폰트는 ‘제목’의 폰트와 같은 것으로 등등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대한민국이 걱정하는 ‘문제적 세대’에 속하는 그는 최근 펴낸 에세이집 <위풍당당 개청춘>에서 ‘대한민국 20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를 코믹하면서도 우울하게 그려냈다.

백수 생활에서부터 입사, 무한반복되는 ‘행정’과 조직의 모순, 신혼 생활까지 유씨가 쓴 200자 원고지 10장 내외로 써내려간 에세이들은 적나라하다. 눈칫밥 생활 3년 만에 하찮은 기안만 작성하고 하찮은 계약만 하면 힘들지 않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기 세금계산서를 누락시켰다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적도 있다. 노조 집행부로서 첫 회의에 참석해 ‘왜 비정규직 문제는 다루지 않느냐’고 물었다가 ‘이번 집행부는 초짜가 많아서 노조가 힘들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등장 인물들이 팀장·차장·부장 등으로 호명돼 있지만 워낙 적나라해서 회사에 알려지는 게 걱정되지는 않느냐고 물어봤다. “부담은 있었지만 제 책에 등장하는 그런 분들이 다른 회사에도 다들 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글엔 전반적으로 냉소가 흐른다. 하지만 이 냉소는 자타가 공인하는 정처없는 세대로서의 방어막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자신의 세대에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주문한 책에 대해 “우린 그딴 식으로 안하는데요”라고 잘라 말했다. 자신들은 ‘신자유주의가 왜 나쁜지를 책으로 배웠던 선배들’과 달리 기안문서의 폰트와 서체에 영혼을 혹사시키면서 신자유주의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반미는 모르지만 ‘불온한 쇠고기는 안먹을래’라면서 촛불 들고 일어서는 게 자신들이라는 거다. 유씨는 이른바 ‘20대 논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동세대에 대해서도 “대다수 20대와 달리 진짜 특이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20대는 취직하기 전엔 취직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저도 그랬어요.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꿔야지라는 생각이 든 건 백수로 살 때가 아니고 오히려 취직하고 난 뒤였어요.”

백수 초년 시절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회에 내던져지자 작은 부조리조차 바꾸기 어려웠다고 고백하는 유씨는 ‘그러나 난 아직 20대’라고 다짐했다. 그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기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밤하늘의 별보다 더 촘촘하다”고 말했다. 속도감 있게 튀는 문체와 달리 새침해 보이는 유씨. 이상과 현실, 직장과 개인, 일과 생활 사이를 빗질해 솔깃한 얘깃거리를 끄집어내는 새로운 에세이스트가 막 세상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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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취직하기 전엔 취직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저도 그랬어요.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꿔야지라는 생각이 든 건 백수로 살 때가 아니고 오히려 취직하고 난 뒤였어요."

몸으로 배우로 뼈에 새긴 것들이 진짜. 혀에서 나오거나 또 머리에서 나오는 말보다 그런 곳에 스민 말들이 영혼을 울리는 법.
남들의 말을 잘 아는 똑똑한 형들을 부러워 하는데서 그칠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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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사과문에 이어 오늘은 멋진 언니와의 만남까지 소개해주는 경향신문. 화이팅일세.

[곤돌라 펌] 우리는 철거 당하고 있다


우리는 철거 당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영진위는 이번에 독립영화를 철거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 철거에 성공하고 있다. 인디스페이스를 철거했고, 미디액트를 철거했고, 한국 영화인들의 또다른 산실인 영화 아카데미를 축소 재편, 혹은 철거하려고 한다.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은 '시네마테크와 그의 친구들' 오프닝 행사에 가서 "3D 극장이 본격화 되는 이 때에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가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하며 철거에의 의지를 천명했다. 어쩜 그리 똑같나, 재개발업자들의 단골 주장 되겠다. 자칭 평론질로 밥 빌어먹은 이력의 소유자가 스스로 영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저 발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광부와 영진위는 3D 시장을 한국에 안착시키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이 와중에 독립영화며, 예술영화며, 2D 영화들이며, 영화 인력풀이며를 전적으로 쓸모 없는 것들로 치부하는 양상이 적나라하다.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양상을 '낡은 것'이라 치부한 채 도태되어야 할 철거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이 그러하며,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대한 감각과 경험이 거의 부재한 자칭 젊은 우익들에게 개국공신에게 나눠주는 전리품인 양 10년 성과물들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그렇다. '한예종 사태'는 영화판 철거의 시작이었다.

그래놓고, '100분토론'에 나가서 이명박 정부는 민간 영역과 정부 부처의 소통이 가장 원할한 정부라는 터무니 없는 궤변을 늘어놓고, 현 영진위가 마치 영화판 사람들과 원할하게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거짓말의 향연을 벌였다. 어디서 많이 보아오지 않았나? 뒤로는 철거 연장을 든 채 앞에서는 시민 여러분과의 소통 어쩌고 하는 저 잿빛 재개발 정치인들 말이다.

대통령이란 사람은 삽질의 기술을, 문화를 담당하는 저 공무원들은 3D의 원천기술을 우리네 유일한 삶의 원천인 양 설파하고 있는 이 살풍경한 시대에 '예술'은 철거되고, 기술의 수사만 횡행하고 있다. 하긴 어디 영화판 뿐이랴, 곳곳이 철거 투성이다. 곳곳이 용산이다. 과연 이 정부를 '철거 정부'라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게 없겠다. 그래, 이랬으면 좋겠다. 왜 구태여 '영화진흥위원회'라는 타이틀을 고수하는가. 이 참에 영진위는 아예 문광부와 통합해 '3D진흥위원회'로 개명하고, 향후 남은 철거 일정을 고시해주길 바란다.

워낭소리의 흥행에 힘입어 손수 미디액트까지 왕림하셨던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지원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배제와 선택"이었다. 덧붙여 "많은 사람들에게 적은 액수의 지원을 하는 것보다 확실한 쪽을 밀어주는 게 낫지 않겠나."고도 말했다. 알고 보니 "확실히 듣보잡들"을 밀어주고 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철거의 논리다.


이송희일 - 곤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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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줘, 독립영화

2008년을 맞이할 즈음의 겨울에 나는 그야말로 한량이었다. 주어진 일도 없고 주어질 일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도 안하고 슬리퍼 바람에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아카이브에서 교과서나 똑똑한 감독님들 인터뷰에서만 보던 제목의 영화들을 찾아서 한참을 보고
열람실에가서 배깔고 누워(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한시간쯤 읽다보면 자연스레 몸의 고도가 낮아지는것이...흠흠) 고전 명작과 역시 똑똑한 형들의 인터뷰에서 거론 되던 제목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어느 날에는 아침 댓바람부터 인디스페이스로 출근해서 그 날 인디스페이스에서 하는 영화들을 죄다 보고 오기도 했다. 그 즈음의 계절엔 영화제도 많아서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나 서독제나 시네마 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여성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까지 영화제란 영화제는 다 찾아다니며 기웃거렸다. 인디스페이스에 앉아서 영화시간을 기다리며 주워 듣는 풍문이나 넥스트 같은 종이 쪼가리들은 그런 정보들이 차고 넘쳤다. 그 해에 여성영화제 자활을 지원하기도 했다. 떨어졌지만..ㅎ

그런 한량세월이 수개월이 누구에게는 한심해 보이고 누구에게는 찌질해 보였을지어도 돌이켜보면 그렇게 '유익했던'시간들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소중하다.

그때 봤던 그 영화들의 관객수를 다 합친다 하여도 해운대가 한 극장에서 동원한 관객보다 많을까. 그 영화들의 모든 수익을 더해봐야. 아니, 경제적인 수익이 있기나 했을까 그 영화들에. 그러나 그 영화들은 이렇게 소중한 영화들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소중하다.

자본주의의 총화라고 불리지만 영화는 오직 상품이 아니다. 위로와 치유, 해소와 사랑 같은 역할은 '오직 상품'이 감당할 수 있는게 아니다. 

또 어느 계절인가 내겐 그렇게 찌질하고 능청스럽게 영화를 보러 다닐 계절이 올테다. 그 영화들과 책들에서 또 위로 받고 치유하고 성장해 가며 다음 계단을 노려보게 될테다. 그런 날이 왔을 때 돈 되는 영화, 조폭과 3D와 예쁜 여배우와 PPL만 남은 영화들만 극장 간판에 걸려 있다면 대단히 슬퍼질테다. 그러면 정말이지 난 아마 삐뚤어지고 말테야.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용관이 형이.




  

네팔에서 다시 만난 미누


원문출처 시사IN - 네팔에서 다시 만난 미누


네팔에서 다시 만난 미누


18년간 한국에서 살다가 졸지에 강제 추방당한 미누 씨를 네팔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걸었던 길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노드 목탄 씨(한국명 미누·38세)를 만난 것은 12월 초순 네팔 중부 굴미 지역 탐가스라는 도시의 조그만 레스토랑에서였다. 이주 노동자인 그는 18년간 한국에서 살다 하루아침에 강제 추방되었다. 이날 미누 씨는 검정 점퍼 차림이었다. 서울에서 강제 추방되기 전 다행히 친구들이 보호소로 옷가지 등을 가져다줘 그나마 한국 옷을 입고 서울을 떠나왔다고 한다. 안 그랬으면 정말 슬리퍼 바람으로 네팔에 도착할 뻔했다.

네팔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으나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맑아 저 멀리 안나푸르나가 시원하게 보였다. 그는 “한국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갑다. 마치 가족 같다”라며 인사했다. 한국에서 추방되어 낙담하고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미누 씨는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유창한 한국말 솜씨나 얼굴 생김새는 흡사 한국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는 “이제는 오히려 네팔 말이 서툴다. 친누나가 카트만두에 사는데 내게 네팔 말을 더듬는다고 놀린다”라며 멋쩍어했다.

   
ⓒ정정호
미누 씨는 안나푸르나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에서 “네팔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운동을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콘서트 준비 중 갑자기 추방당해”


그는 한국 음식과 한국 친구들을 많이 그리워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단다. “강제 출국된 지난 11월23일은 강산에 콘서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가 열린 날이었다. 우리 밴드가 그날 출연하기로 해 친구들은 모두 거기에 가 있었다. 출입국관리소(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직원이 보호소 상담실로 부르기에 그냥 의례적인 상담이라고 생각했다. 난데없이 ‘빨리 한국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어디 연락도 못하고 상담실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급하게 출발 준비를 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동안에도 내가 언제 어디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지조차 몰랐다. 공항 도착 후에야 타이를 경유해 네팔로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출입국관리소 직원 3명과 같이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비로소 한국을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그는 타이 공항에서 10여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정부에서 급히 추방하느라 직항 티켓을 구하지 못한 듯했다.

미누 씨는 비행기 안에서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 친구들이 나중에 내가 떠난 사실을 들으면 얼마나 놀랄까 하는 생각에 더 마음 아팠다고 한다. 그날을 회상하는 미누 씨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미누 씨는 네팔 공항에 내릴 때 네팔이 낯설어 보였다고 한다. 수중에 한푼도 없어 한국 친구에게 연락해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카트만두에서 한국산 물건을 사서 가족에게 서울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가족에게 불법 체류자로 잡혀서 쫓겨났다는 말을 하기 싫었다. “나중에는 결국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18년간 헛되이 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아버지 표정이 내내 어두웠다. 그래서 포카라에 있는 아버지 집에 오래 있지 못했다.”

   
ⓒ정정호
미누 씨(오른쪽)는 김영미 편집위원(왼쪽)에게 “한국인을 보니 반갑다. 마치 가족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여자친구 있었지만 결혼 포기


미누 씨는 사전적 의미에서 불법 체류자가 맞다. 하지만 18년간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이주 노동자 문화운동을 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10여 년 전 한국으로 온 이주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폭력과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 때리지 마라! 욕하지 마라! 우리도 인간이다”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주노동자운동협의회를 조직해 이주 노동자 인권을 찾기 위해 싸웠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첫 계기였다. “방송에도 나오고 격려도 받았다. 뜻을 함께하는 한국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자랑스럽다.”

미누 씨는 이 캠페인을 계기로 이주 노동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그전까지 이주 노동자라고 하면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다. 미누 씨는 인디밴드를 조직하면서 노래를 통해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미누 씨는 이주 노동자의 생소한 문화와 한국 사회의 문화 사이에서 다리 구실을 했다. 그는 5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민을 위한 위성방송 MWTV에서 일해왔고 재작년부터 2년간 대표를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한국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나는 국적을 얻기 위해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었다. 결국 결혼을 포기했다.”

이런 미누 씨는 18년 만에 갑자기 강제 추방된 진짜 이유를 무엇이라고 알고 있을까? “불법 체류자 주제에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그들에게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미누 씨는 어느 사회든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삶의 질이 높아져야 그 사회 질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불법 체류자도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다문화를 외치면서 다문화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선진국을 외치며 다문화를 보호한다고 하면서 정작 한국에 있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은 배려하지 않는다.”

미누 씨는 그가 한국에서 18년간 한국 사회에서 한 일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주었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14년 이상 그 나라에 체류하면 영주권을 준다. 미누 씨는 강제 출국 직전에 강제퇴거 명령 이의 신청을 했다. 그러나 평가를 받기도 전에 추방이 됐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미누 씨가 한국에서 사회활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며 공로상을 보냈다.

미누 씨는 네팔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운동을 할 계획이다. “아마 하늘이 나를 네팔로 보낸 이유는 여기서 인권활동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도 이주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문화활동을 찾아보고 있다”라며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주 노동자를 위한 미디어 조직을 꾸려볼 계획이다. 그는 언젠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너는 자존심도 없니? 너를 쫓아낸 나라로 돌아가고 싶냐?고 했지만 한국은 내 삶의 터전이고 18년간 살아온 내 동네다. 내가 걸었던 길과 친구들이 한국에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즐겁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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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아예 합법과 불법의 테두리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미등록'자인 것이다.

뻔히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게 만들려니 추방할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합법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법의 테두리 안에 거둬야 하니까. 그렇게 되면 착취하고 맘껏 버리지 못하게 되니까. 결국 쓸만큼 쓰고 가져다 버리는 이 작태는 남한의 자본 스스로 이주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

신문에 무슨 기사만 나면 수구 꼴통이네 딴나라 차떼기당이네 하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키워들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엔 눈에 쌍심지만. 자국민을 위해서 그들의 인권쯤이야 알바 아니라는 그들의 태도는 말로만 세계시민이네 지구촌이네 인류공존이네를 떠드는 국수주의.

더 잘 사는 나라는 곧 더 많이 뺏은 나라인것을. 그렇다면 더 잘사는 나라들로 못사는 나라의 인민이 유입되는건 당연한 이치. 그것조차 고까우면 너네도 기회의 땅 아메리카로 가는 것을 포기해라.

말이야 이렇게 해도 생의 절반을, 나아가서 어른이 된 삶의 전부를 보낸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심정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회에 나가면 알게되는 43가지 진리

1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다
2 헌신하면 헌신짝된다
3 참고 참고 또 참으면 참나무가 된다
4 포기하면 편하다
5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6 아니면 말고
7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8 목숨을 버리면 무기만은 살려주겠다
9 가는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
10 잘생긴 놈은 얼굴값하고 못생긴 놈은 꼴깝한다
11 공부는 실수를 낳지만 찍기는 기적을 낳는다.
12 까도 내가 까
13 난 오아시스를 원했고 넌 신기루만으로 좋았던거지
14 동정할 거면 돈으로 줘요
15 "내 너 그럴줄 알았다" "그럴줄 알았으면 미리 말을 해주세요"
16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17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18 대문으로 가난이 찾아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도망간다
19 "내 부모에게 욕하는건 참아도 나에게 욕하는건 참을 수 없다"
20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21 일찍 일어난 벌레는 잡아먹힌다
22 먼저 가는건 순서가 없다
23 똥차가고 벤츠온다
24 효도는 셀프
25 먹는 것이 공부라면 세상에서 공부가 가장 좋습니다
26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다.
27 개천에서 용난 놈 만나면 개천으로 끌려들어간다
28 이런 인생으론 자서전도 쓸 수 없다
29 새벽에 먹는 맥주와 치킨은 0칼로리
30 늦었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늦은거다
31 성형수술하고 나아진게 아니라 하기 전이 최악이었다
32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할 필요는 없다
33 되면 한다
34 남자는 애아니면 개다
35 성공은 1%재능과 99% 돈과 빽만 있음 된다
36 지금 쟤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가 더 걱정이다
37 예술은 비싸고 인생은 드럽다.
38 고생끝에 골병난다.
39 하나를 보고 열을 알면 무당눈깔이냐?
40 원수는 회사에서 만난다.
41 돌다리도 두들겨보면 내손만 아프다
42 재주가 많으면 먹고살만한길이 많다
43 티끌모아봐야 티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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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과도할정도로 의도된 시니컬이 있지만, 그래도.

5번 7번 8번 17번은 정말 진리인듯. ㅎㅎ


스크랩 [시사IN - 노동자가 소유한 ‘알짜 기업’이 한국에 있다]

노동자가 소유한 ‘알짜 기업’이 한국에 있다
‘노동자가 주인인 기업’은 구호로나 존재하는 이상인가 싶었다. 하지만 실재한다. 당신의 부엌에 있다. 프라이팬, 밥솥, 냄비, 국자, 수저 등을 만드는 주방업계 대표 기업 (주)키친아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96호] 2009년 07월 13일 (월) 11:17:20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어떤 곡절로 노동자가 기업의 경영을 맡게 되었는지, 그것도 연간 700억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영업이익만 해마다 20억원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명품 기업이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듣자면 세월을 거슬러 가야 한다. 1980년대 산업재해와 불법해고,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만연하던 시절, 키친아트의 전신 기업인 경동산업은 스푼·포크·나이프 등을 생산하는 양식기 수출업체로 해외·국내 공장을 모두 합치면 직원 수는 7800명, 매출은 연간 1000억원대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실린 ‘손무덤’이라는 시의 소재가 되었을까. “올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대공원이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갔다 (중략)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들고/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기념 촬영을 요청하자 사장(전창협·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직원이 격의 없이 포즈를 취했다.
프레스 500대가 돌아가던 경동에서는 날마다 몇 사람씩 병원에 실려 갔다. 해서 매일 노동자 모집공고가 났다. 다쳐서 실려 가고,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속출했다. 야근, 철야는 또 어떤가. 한 달에 보름은 새벽 3시까지 일했고 여성 노동자들은 과로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래도 회사는 승승장구. 공정을 자동화하기 위해 설비투자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투자했고, 그중에서도 상당액은 비자금 용도로 흘러갔다. 당시 경동산업은 중견 건설사 삼환의 계열사로, 경영이 삼환 일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그러다 19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삼환은 경동에서 손을 뗐다.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비대위를 결성한 직원들은 ‘40년 기업’을 이대로 죽게 할 수 없다며 회사 측으로부터 공장부지, 미수채권, 기계설비, 상품재고, 브랜드 저작권 등에 관한 소유 권리를 넘겨받고 회사 경영을 맡게 되었다. 2001년 4월의 일이다.

출 발 당시 자본금은 5000만원. 남은 직원 280여 명의 퇴직금을 갹출해 마련했고, 그 뒤로 규모를 꾸준히 늘려 현재 자본금은 8억원이다. 회사 이름은 경동산업 시절 브랜드명이었던 키친아트를 가져왔다. 키친아트는 국내 최초로 삼중 바닥 냄비를 개발하는 등 시장의 신뢰가 높은 제품이었다. 노조는 경동의
   
ⓒ키친아트 제공
키친아트의 전신인 경동산업의 옛 건물. 그 앞마당에 노동자의 땀과 피가 어린 목장갑이 널려 있다.
빚은 털되 브랜드 가치는 살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큰 밑천이 되었다. 첫해부터 흑자였다. 매출은 700억원 규모였고 영업이익만 21억원을 냈다.

공동소유·공동분배·공동책임


인천 가좌동에 위치한 키친아트 건물에는 사훈 세 마디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다. ‘공동소유·공동분배·공동책임’ 이런 급진적인 모토가 정말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키 친아트가 채택한 공동소유의 방식은 이렇다. 현재 이 회사 주주는 260여 명. 총주식 수인 16만 주를 260명으로 나누면 주주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주식 수다. 대주주나 지배주주 개념은 없다. 꼭 N분의 1만큼씩 가지고 있다. 경동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직원은 모두 주주가 되었는데 지금 그들 대부분은 고령으로 퇴직한 상태이고 주주로서 회사 경영에만 관여하고 있다. 공동분배도 같은 방식이다. 이익금을 주주에게 똑같이 배당한다. 주식 관리는 여느 회사와 좀 다르다. 노동자 자주 회사로서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통제한다. 주식을 팔려면 주주 가족 이외 외부인에게는 양도가 불가능하며 한 명이 소유할 수 있는 주식 수도 3명분을 초과할 수 없다. 새로 들어온 직원의 경우 3년이 지나야 주식을 살 자격이 생기고 3년 뒤부터 주식 거래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공동책임. 이 회사에서는 모두가 사장이고 모두가 노동자이다. 물론 임원과 평직원의 구분은 있지만 적대적 대립 관계로서 노사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총에서 이사(3년 임기)를 뽑지만 대표이사 개인의 책임을 묻기보다 모두가 책임을 나누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의미만 좇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 이 회사가 흑자 경영을 할 수 있었던 핵심은 간단하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가치 경영에 집중했다. 특히 하청업체와의 관계는 눈여겨볼 만하다. 키친아트는 저가의 중국산 대신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의 국내 생산을 선택했다. 박선태 부사장은 “한 번도 하청업체를 배
   

신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경동산업이 부도나고 노조가 회사를 인수했을 때 업체들이 우리에게 물건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경동 시절에 결제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부도를 많이 맞았기 때문이다. 다시 물건을 대달라고 하니까 ‘또 부도내려고 왔냐’며 거절했다. 지금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어음발행 안 한다, 한 달 내 결제한다, 재고도 반반씩 안고 가자, 하청업체가 개발한 물건에 손대지 않겠다… 그렇게 설득했고 지금까지 그 약속은 모두 지키고 있다.”

키 친아트는 단가가 싸다고 거래업체를 바꾸지 않았다. 차라리 단가를 제품가격에 반영해 불량을 줄이고 고급화하는 전략으로 나갔다. 여기에 ‘주방 예술품’이라는 마케팅 포인트가 결합해 “키친아트 제품은 여느 국산품에 비해 20∼25% 비싸지만 그만큼 믿고 쓸 수 있다”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키친아트의 직원은 총 27명. 이 적은 직원으로 4000종에 달하는 물건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하청업체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 덕분이었다. 

노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틀?


둘째, 키친아트의 신뢰 경영은 생산뿐만 아니라 판매에도 적용되었다.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외에도
   

키친아트에는 ‘키사모(키친아트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판로가 있다. 시중보다 싸게 파는 직거래 특판장은 퇴직한 키친아트 영업부 직원들이 맡는다. 이들이 정회원으로 있는 키사모는 하청업체 사람들도 옵서버로 참여시켜 파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상생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마케팅은 공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광고 외에 방송 광고는 하지 않는다. 사실 못한다는 편이 맞는 말이다. 수억원이나 하는 공중파 광고료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대신 키친아트는 2006년 공익재단을 만들어 수익금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회사 정관을 통과시켰다.

우 여곡절은 많았다. 키친아트로 새 출발할 당시 노조위원장 출신에 비대위원장을 지낸 자를 대표이사로 앉혔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주식 지분도 51% 몰아주었지만 공금 횡령 등 회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로 인해 결국 퇴출되었다. 일반 회사에서는 만연한 일이지만 노동자 소유 기업이었기에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박선태 부사장은 당초 <시사IN>의 취재 요청에 “부담스럽다. 아직 고민이 정리되지 않았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스무 살에 이 회사에 입사해 이제 마흔 중반이 된 그는 생산, 영업, 노조위원장을 거쳐 해고도 당했고 4년3개월 옥살이까지 해봤다. 지금은 경영자의 위치지만 아직도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된장국 먹는 기분이란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뿐이다. 우리 주주들 손가락 잃어가며 이 회사에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청춘을 바쳤다. 그들이 일군 회사를 망쳐놓을 순 없다. 우리 후손에게 대한민국에도 이런 회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키친아트에는 노조가 없다. 경영과 노동을 아우르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게 박 부사장의 생각이다. 지금까지처럼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축소 재생산’이 아니라 생산·판매·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하면서도 노동자 소유 기업의 틀을 유지하는 어떤 모델을 궁리 중이다. 그가 “키친아트는 아직 완성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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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졸린 눈 부비며 펼친 시사인을 보다가 잠이 깼다.
꿈만 꾼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
꿈도 꾸지 않으면 더 비참하게 변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꿈을 꾸어야겠다. 졸린눈 부벼 두 눈 시퍼렇게 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