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4. 12:30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덧, 정말로 은수미 의원 지역사무소에 박카스라도 하나 놓아드려야겠다.
2016. 2. 15. 21:18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모두를 위한 불평등 (Inequality For All) > - 당신 눈 앞의 칼을 봐요
미국에는 샌더스 열풍이 거세다. 출마 선언 당시 지지율 제로에 가깝던 샌더스가 대선이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에 거대 자본들의 후원을 받는 유력 후보 힐러리를 거의 따라잡더니 며칠 전 뉴 햄프셔 경선에선 기어이 힐러리를 앞질렀다.
기업들의 스폰인 ‘수퍼 팩’을 받지 않는 샌더스는 일반 시민 지지자들의 후원금으로만 캠프를 운영한다. 지난 1월에만 2천만 달러를 모았다. 1인당 평균 기부액이 30달러가 채 안된다고 하니 수백만 명의 기부자가 샌더스를 대통령으로 지지한 셈이다.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샌더스에 대한 지지가 도드라진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란 말이 사멸하다시피 한 미국사회에서 수십년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이 나이든 정치인에게 미국의 젊은이들은 왜 열광하는가.
# 불평등 – 신자유주의의 종말 선고
<모두를 위한 불평등>은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가 버클리에서 한 강의를 영화화 한 다큐멘터리다. 당시 강의의 제목은 ‘부와 빈곤’. 라이시는 미국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해 강조한다. 전후 생산 증대와 경기부양이 동시에 이뤄지던 시대를 지나1970년대 이후 미국사회는 소득 불균형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978년 미국 남성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4만 8천달러였고 소득 상위 1% 계층의 평균 임금은 39만 달러였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2010년, 미국 남성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3만 3천달러로 줄어든데 비해 소득 상위 1%의 소득은 두 배이상 증가해 110만 달러에 이른다. 오늘 미국 최상위 부자 400명의 부는 미국 전체 인구 절반의 재산 총량보다 많다. 사회 전체 부의 99%를 상위 1%의 수퍼 부자들이 독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시대상이다.
미국 전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파워 볼 복권의 당첨자는 당첨금을 받으면 일단 딸의 학자금 대출부터 상환하겠다고 말한다. 의료보험이 없이는 치솟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미국 국민들은 아플 ‘자격’도 없다. 집이 없어 모텔이나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매카시즘의 시대를 겪으며 사회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던 미국 사회가 샌더스에 열광하는 건 이런 불평등 사회에 기인한다. 2008년 월가의 복잡한 금융공식을 무기로 이뤄진 대 국민 사기극이 탄로나며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월가 점령으로 이어졌고 월가 점령의 실패는 결국 ‘사회주의’의 기호를 호출했다.
사실 미국 뿐이 아니다. 영국에선 좌파인 코빈이 노동당의 당수로 당선됐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그리스의 시리자 모두 좌파다. 마치 우리 모두를 부유하게 할 것처럼 떠받들여지던 신자유주의의 파산선고. 미국 공화당의 지지율 1위 후보 트럼프의 약진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파탄을 원인으로 왼쪽에선 사회주의를 소환한 것처럼, 오른쪽에선 국가주의를 소환했을 따름. 일자리와 소득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똑같다.
‘생산수단의 공유’를 주장하지 않는 샌더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단지 미국 민주당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정도의 스펙트럼이지만, 그 스스로 사회주의자로 포지셔닝하고 있는 것뿐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체제의 불만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증상이 바로 버니 샌더스와 파시스트 트럼프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
지난 해 인기를 끌었던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나 크루그먼이나 스티글리츠 같은 경제학자들. (피케티와 크루그먼이 사회주의자는 아니지만) 미국을 비롯한 1세계 정치권의 변화가 지적하고 있는 모든 결론은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다.
# 한국
소득 불균형, 1%의 나라, 부익부 빈익빈의 사슬. 한국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재벌들이 곳같에 수백조의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을 동안 수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은 해고당했고, 서울 도심에선 일가족이 가난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고공농성이 일상처럼 이어지고 도심 곳곳에 다 세지도 못할만큼 농성천막이 세워져 있지만 정부는 더 쉽게 해고하고 더 적게 돈을 주는 법안을 만들었다.
샌더스 열풍을 호출한 월가 점령 시위.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촛불 시위가 이뤄졌지만 그 결과는 상이했다. 촛불은 결국 부가 편중된 세상을 뒤집어엎자가 아니라 먹거리와 반 이명박이라는 소박한 한국 중산층의 순응적인 욕망으로 수렴됐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냉정하게 발길을 돌리던 시위대, 컨테이너 산성 앞에서 예비군복을 입은 젊은 사람들이 산성을 점령하고 넘어가려던 사람들을 점잖게 제지하던 모습, 그 중산층들의 순응주의는 촛불을 월가 점령과는 상이한 모습으로 조물했다. 그 결과 촛불은 실패했고, 현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점점 더 반동의 세월.
미국에서 부는 샌더스 열풍의 여파로 한국에서도 ‘한국의 샌더스’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첫주자가 ‘착한 부자’를 흉내내고 있는 철새 정치인 건 아이러니가 아니다. 촛불에서 드러난 한국 민중들의 그 순응주의와 어긋난 겨냥의 발로.
사실 샌더스와 시리자, 코빈 어떤 맥거핀에 불과하다. 극단에 달한 사회적 불평들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를 담지하는. 샌더스가 당선이 된다고 미국 사회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불평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저 민중들이 분노했음을 표현하는 단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불평등 지수로는 어디 내놔도 뒤질 것 같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맥거핀의 출현조차 요원하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라이시는 “이 문제를 한 방에 풀 수 있는 마법의 총알은 없다”고 말한다. 정치인 한 명 잘 뽑아서, 대통령 한 명 잘 뽑아서 사회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되진 않는 다는 것이다.그말인즉슨 대통령 한 명 때문에, 정치인들 몇 명, 정당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고작 그까짓 것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어긋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분노의 방향’이다. 라이시는 다시 말한다. “정치는 저기 어디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경제를 만들고 그 경제에서 살아가고 지탱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1%의 부자들이 아니라 99%의 당신, 그리고 나다.
# 그래도 역사는 변혁의 편입니다
“시민권, 투표권, 환경보호법, 특히 환경보호법은 그 닉슨 정부 때 만들어졌어요 그 닉슨이 서명한 법이에요. 역사는 언제나 사회를 변혁하려는 이들의 편입니다.” – 영화 중
70년대 이후로 장장 30여년을 군림한 신자유주의에 균열이 발견되기 시작한 건 어쩌면 2011년의 월가 점령 시위였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던 미국의 청년들이 몰려들었던 그날. 그 때쯤 한국에서도 촛불시위와 한미FTA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월가 점령운동도 촛불시위도 모두 실패했다. 한국에는 친기업 보수 정권이 들어섰고 노동자들은 계속해고되고 죽어갔다. 미국은 도시빈민이 급증했고 의료보험과 교육비의 부담은 계층간의 격차를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그 실패를 토대로 한 변화들. 대공황 시기 이후로 미국 민중들이 처음 경제를 입에 올렸던 그 날 이후 5년이 지나 거대 자본의 후원을 받지 않는 사회주의자 대선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주된 공약은 일반 의료보험과 교육비 문제 해결이다. 불평들의 씨앗을 자르겠다는 이야기. 그가 당선이 되더라도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자기의 바람이 무엇인지 직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촛불은 실패했지만노동운동이 거의 지리멸렬하게 끝난 지점에서 희망버스가 나왔다는 것, 비록 실패했지만 한미FTA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것,그건 한국 사회 주체 변화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여기에 바로 '희망'이 있겠다. 매우 작고 미미하지만, 거기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과거엔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에서 2명의 노동자가 죽었지만 해고 문제를 해결 못했다. 그러나 김진숙은 살아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대추리에 군인들을 보내 원주민들을 포박했지만 지금 제주 강정에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한다. 앞서서 정권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으로 모든 것을 수렴하려는 태도를 비판했지만 여기엔 이렇게 차이롸 주름이 존재한다. 들뢰즈는 영원회귀란 똑같은 사건이 영구적으로 재현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무수히 반복되는 전복과 봉합, 그렇게 봉합을 뜯어내며 새롭고 작은 균열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
역사는 라이시의 말처럼 변혁의 편이다. 희망을 믿고 변주를 이해하는 것. 다만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우리의 욕망, 그리고 오늘 우리가 서있는 곳의 맨 얼굴이다.
다시 들뢰즈가 말하길"욕망은 혁명을 '바라지' 않는다. 욕망은 그 자체로, 저도 모르게, 자신이 바라는 것을 바람으로써 혁명적이다. "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다. 정치인에게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바라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 샌더스든 안철수든 상징따위야 그다음에 골라잡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삶에 가장 깊숙히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은 저 불평등의 경제다.
2016. 1. 8. 01:13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기억하는 방식과 망각하는 방식 – 거미의 땅
사람은 게으르다. 게을러서 기억도 제멋대로다. 기억을 단순화 하면 편하다. 상처를 입힌 대상을 한 놈으로 압축하고,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대상도 그냥 한 놈으로 ‘퉁’치는 거다. 그게 남의 일이라면 더 쉽다. 그냥 말하고 스스로 납득하고 필요한 만큼 잊으면 된다. “네가 아픈 건 오직 그 놈 때문이야.”
그러나 사실 모든 상처는 사고의 중첩이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기억과 사연과 사건이 제각각의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은 도무지 게을러서 이 중첩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아프거나 너무 귀찮거나 또는 너무 부끄럽다.
수없이 많은 사고와 사연이 엮여 만들어진 상처가 다시 또 엮이고 엮여 묶인 건 ‘공간’이다. 너무 아프거나 너무 귀찮거나 또는 너무 부끄러운 기억과 사연, 사람을 매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간 자체를 철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니 그보다는 우리는 그렇게 하나하나씩 기억을 간소화하고 공간을 철거해왔다.
한 때 신문물과 외화벌이의 첨단에 있던 경기 북부지역의 기지촌들도 그렇다. 지금 그 공간 위엔 으리번쩍한 뉴타운이 들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잊었다.
# 개미처럼 일했고 거미처럼 사라졌다
바비엄마는 77세다. 30년이 넘게 파주 선유리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파는 선유분식을 운영 중이다. 그녀는 기지촌의 양공주로 일하던 20대에 26번의 낙태를 했다. 29살엔 결국 자궁을 드러냈다. 그 후유증으로 그녀의 건강은 온전치 못하다. 카메라는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배와 팔뚝에 주사기를 꽂아 넣는 장면을 잡아낸다.
그녀는 아들 바비를 낳고 다시 임신을 했다. 결혼을 약속했던 미군의 아이였다. 그러나 이 미군은 다른 남자의 아이인 바비를 미국에 데려갈 수 없다고 했고, 바비엄마는 다시 아이를 떼어낸다. 뱃속에서 7개월을 견디다 끄집어내진 아이는 종이상자 안에서 죽어간다. 바비엄마 박묘연과 바비는 죽어가는 아이의 곁을 지켰다. 이후 바비엄마는 기지촌 여성들의 대모로 살았다. 방송에 출연하고 기지촌의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세상은 냉정한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내 얘기엔 지어낸 것도 없고 숨기는 것도 없어. 누가 욕을 할지라도 이건 내 얘기니까. 우리는 개미처럼 일했고, 거미처럼 사라졌어”
박인순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갔었다. 그곳에서 두 딸을 낳고 생활했으나 알코올과 약에 찌든 미국인 남편은 그녀를 폭행하고 성판매를 강요했다. 박인순은 두 딸을 남겨두고 다시 기지촌으로 돌아왔다. 정신병처럼 보이는 무(巫)병을 얻은 그녀는 거리를 배회한다.
미술 심리치료를 받아 그림을 그리고 절에서 기도를 올리면서도 그녀는 때때로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는다. 대부분 미군과 포주에 대한 저주다. 포주는 글을 모르는 그녀의 돈을 갈취했다. 영화는 법당의 불경 외는 소리 위에 그녀의 저주와 욕설을 덧씌운다. 그녀는 평화와 안식을 갈구하면서도 자기 안의 분노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다.
“왜 때렸니, 왜 돈 안줬니, 이 망나니 미군아. 다 불태워 버릴 거야”
안성자는 흑인 혼혈로 태어났다. 엄마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랐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기지촌의 양공주가 됐다. 그녀는 많은 기지촌을 전전했고 그렇게 옮겨 다닐수록 빚은 늘어갔다. 보건증이 없어 보건소에 감금되기도 했다. 결혼을 약속한 미군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미국으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약혼자는 1년이 지나서야 편지로 파혼을 통보했다.
안성자는 KBS 인간극장 <애니의 사랑>편에 출연했지만 카메라는 그녀의 삶 전체가 아니라 흑인 혼혈로의 삶, 기지촌 양공주의 고달픈 과거만을 요구했다. 브라운관을 바라보는 세상이 그녀에게 요구하는 딱 그만큼의 이야기만.
# 그곳엔 유령이 산다 – 망각의 방식
박인순은 밤이면 이제 초라해진 뺏뻘 기지촌 거리를 헤맨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그녀는 골목을 걸으면서 벽에 낙서를 하거나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방에 돌아오면 불을 끄고 초를 켠다. 그리고 난해한 그림을 그린다. 가끔 괴성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박인순을 괴롭히는 건 무병으로 인한 두통이다. 그녀는 기지촌에서 머무는 수많은 유령들을 보고 느낀다. 기지촌의 골목에는 유령이 산다. 슬프고 분노한 사람은 죽어서 작은 입자가 되고 그 수많은 작은 입자들은 실체가 되어 그 골목 여기저기를 여전히 배회하고 있다. 그것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그 골목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 유령들이 실재하는 것이든, 고단한 삶을 살아온 박인순의 정신병이든 그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공간은 여전히 남아있고 박인순의 기억에 그 분노와 슬픔은 여전히 실재하고 있다. 그것을 유령으로 부르든, 정신병으로 부르든.
박인순과 바비엄마와 안성자의 상처는 모두 제각각이다. 마찬가지로 박인순이 보는 유령들의 상처와 분노 슬픔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기억해야 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그녀들의 (혹은 그들)의 기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우주가 얽혀 만들어낸 공간.
거미의 땅은 제목처럼 땅거미처럼 사라진 땅의 이야기다. 서울 경기 북부에 화려하던 기지촌 공간은 재개발과 뉴타운 정책으로 하나씩 지워졌고 잊히고 있다. 기지촌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주한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며 만들어졌다. 기지촌의 여성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양공주’로 영입됐지만 그 배경에는 군사정권의 체계적인 관리와 ‘포획’ (그건 포획이었다. 빈곤과 사회적 낙인, 배제, 망각은 당시의 정권이 그녀들을 대하던 방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적어도 그녀들은 당시 ‘사람취급’을 받지는 못했다.)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을 애국자니 산업역군이니 하는 말로 포장하던 한국 정부는 90년대 이후 기지촌 운영에 대한 관여 일체를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기지촌 공간은 철거됐다.
공간의 말소는 기억도 말소했다. 세상은 뱃속에서 끄집어낸 아이의 죽어가던 모습과 보건소에 갇혀 엄마를 그리워하던 고통, 포주에게 화대마저 빼앗긴 억울함을 그냥 ‘아픈 역사’로 퉁쳤다. 그리고 그 위에 호화로운 아파트를 짓고 그 아파트 값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기지촌의 흔적은 그저 땅값, 집값을 떨어뜨리는 악재로만 남았다. 세상이 기지촌을 기억하는 방식은 필요한 만큼을 망각하기 위해서다.
주한미군, 외화벌이 같은 정책적 필요성에 의해 말소되고 잊힌 그녀들은 재개발, 뉴타운 같은 또 다른 정책적 필요성에 의해 다시 말소되고 또 잊힌다. 저마다의 사연과 상처를 가진 수많은 유령들은 그렇게 단순하고 간편하게 망각된다. 철거된 공간에는 망각된 유령들과 그 유령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골목을 떠도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여전히.
# 세라와 애니, 과거와 오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안성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의 후반부다.
안성자는 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성자는 세라와 애니라는 두 개의 자아를 가졌다. 세라는 기지촌 친구 애니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지만 애니는 편지에 답을 하지 않는다. 세라는 애니에게 자신의 고통을 보여줌으로서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편지를 받은 애니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기지촌으로 돌아가 세라의 흔적을 되짚어보며 그 시간들의 실체, 고통을 직면한다.
세라는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었던 안성자의 과거, 애니는 그 외로웠던 애니를 마침내 인정하고 껴안을 수 있는 안성자의 오늘이다. 그녀는 외면하고 싶었고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대답하고 인정하고 마침내 감싸 안는다.
특별한 설명 없이 전개된 이 분열증적 화면들은 다큐멘터리의 문법을 무시하고 오히려 극영화의 연출로 전개되는 듯 보인다. 한참을 지켜보고 애니와 세라가 모두 안성자임을, 그리고 그녀가 마침내 자기 안에서 화해를 이루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깨달아 갈 때쯤 안성자는 폐허가 된 기지촌 보건소 건물에서 춤을 춘다.
과거와 현재, 애니와 세라를 오가던 안성자는 자신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공간에서 가장 아름답게 춤을 추며 현재와 과거를 인정한다. 그건 화해나 용서, 치유 따위의 안일한 말로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건 그저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이다. 지나온 삶의 고통도 번민도 그 갈등마저도 자신이었음을 인정하는 몸짓. 화해도 용서도 치유도 그 다음이다. 망각하고 침잠시키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내 마주하고 다투고 마침내 끌어안은 ‘기억’.
# 그건 아직 우리의 몫이 아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70년대 정권이 기지촌 운영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그리고 지금 그 흔적을 어떻게 지워 가는지 밝혀지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기도 했다. 금세 식어버리긴 했지만. 최근에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타결한 정부에 대한 거센 비난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기지촌 여성은 사실 주한미군에게 한국정부가 ‘제공’한 ‘위안부’와 같다. 그리고 그 기억을 지워버린.
망각은 쉽다. 그 고통을 단순화해 기억하기도 쉽다. 분노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분노를 바탕으로 그들을 위해 싸우는 일은 더욱 쉽다. 정작 어려운 건 그 기억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그 기억에서 나의 치부를 마주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저들과 싸우며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그들과, 혹은 나와 싸우는 것이 가장 어렵다.
용서와 화해를 섣불리 말해선 안 된다. 그건 우리의 몫이 아니다. 분노와 비난도 쉽게 말해선 안 된다. 그러기에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망각하고 외면하고 있다.
※ 이 글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2016. 1. 7. 12:54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2015. 12. 24. 18:07 부정기 연재 중 - 술집유랑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암굴같은 입구다. 롤링스톤즈며 밥 딜런, 데이빗 보위의 사진이 붙어있는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담배연기 자욱한 가운데 듬성듬성 테이블이 몇개 널부러져 있다. 음악소리가 크게 들려오는데 묘하게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고요함에 가깝다.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테이블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인장이 그런 테이블을 딱히 자제시키는 것도 아니건만 소란스러움은 아니다. 끈적거릴만큼 친밀하지도 않고 버름할만큼 데면데면하지도 않다.
# Midnight In Rock'n Roll
자고로 락스타란 불꽃처럼 살다가 떠나버려야 한다. 벽에 똥칠하며 오래도록 사는 건 락스타의 의무가 아니다. 그러니까 60년대의 3J처럼.
락커스에 처음 갔을 때 쯤 도어즈의 노래가 나왔다. Light My Fire.
짐 모리슨처럼 살고 싶었는데.
락커스의 벽에는 어느 시대를 살았던 어느 락스타들의 사진이 잔뜩 걸려있다. 어느 시대의 어느 누구인지를 특정할 필요는 없다. 다 락스타다. 무언가를 부쉈고 자기가 부서지는 삶을 살았던.
락커스에는 주로 3차쯤, 그러니까 술도 좀 오르고 이야기거리도 좀 떨어졌을 때 가곤했다. 그래서 락커스에서의 대화는 주로 벽에 붙어있는 락스타들의 시시껍절한 이야기들. 그러니까 주다스프리스트의 롭 할아버지와 프레디 머큐리가 서로를 놀려대고 씹어대던 이야기나 (롭 할아버지가 "프레디는 모터사이클 대회에 나가서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하자 프레디가 "그가 발레수트를 입고 발레공연을 한다면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던)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의 러브스토리 같은 얘기들에 멋대로 온갖 스토리를 가져다 붙이며 낄낄거리며 놀아대는. 약에 찌들어 자살한 락스타는 사랑할 수 있지만 무병장수하며 옛날노래로 투어나 도는 할배들은 용서할 수 없다며 놀아대는.
길 건너 종로통에 온통 소몰이 목동들이 흐느끼는 노래만 나오는 호프집이 가득하다. 간판도 막 소리를 지르고 있다. 들어오라고. 그 골목에서 한블럭만 도망치면 롹스피릿이 이렇게나 충만한 곳이 있다. 심지어 사장님은 존 레논을 닮았다. 정말이다. 깜짝 놀란다. 그래서 과장을 한움큼 정도만 보태서 얘기하면 락커스의 암굴같은 입구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시간이 건너뛰는 그 골목과 같다. SG워너비에서 도망쳐 진자 사이먼앤 가펑클을 만나러 왔습니다.
신청곡을 많이 내지는 않지만 가요만 아니라면 장르불문 거의 대부분의 신청곡을 다 틀어주는 편이고, (가끔 가요도 틀어준다. 그렇다고 SG워너비나 휘성 같은 걸 틀어주진 않아요) 신청곡 리스트에서 파생돼 주인님이 틀어주는 음악도 좋다. 마치 "너네 이 노래도 좋아하지?" 하는 것 같이.
# 나만 알고 싶은 집
좋아하는 술집 중에 누구든 다 같이 가서 술마시고 싶은 집이 있는가 하면, (이를테면 전봇대집은 누구라도 함께 가고 싶은) 되게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나누고 싶은 집이 있다. 락커스는 후자. 그러니까 비장의 술집이라는 거다. 이미 유명할대로 유명(하다고 하기에 홍대와 강남이 더 익숙한 제 또래의 친구들은 아무도 모르더라만요)한 곳이지만 그래도.
락커스는 이상하게 내밀하고 (어두워서 그른가) 묘하게 안락하다 (의자가 그렇게 작은데도!!). 어느 날 내가 술마시자며 락커스에 함께 가면 그 쪽을 되게 좋아한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막 의미를 부여해야 뭐라도 걸릴 것 같아서.ㅋ)
# 그 때
락커스에 가장 많이 드나들던 건 한 7~8년 전쯤. 그 땐 사흘에 한 번이 멀다하고. 낙원상가 옥상에 서울아트 시네마와 필름포럼이 있고, 인디스페이스는 중앙극장에, 시네코어도 그 부근에 있을 무렵이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이 살았던 그 때를 나는 허송세월 기(期)라고 부르는데, 매일같이 저 위에 늘어놓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교보문고에 배깔고 누워 책을 읽었다. 낮에는 중앙극장 옆에 있는 싸구려 커피집에서 커피를 사서 명동성당에 앉아 있었고 낙원상가에서 1500원짜리 국밥으로 배를 채우다 날이 저물면 락커스에서 술을 마셨다. 전화기도 없어서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돈도 없어서 늘상 걸어다녔다. 걷다가 공중전화를 보면 전화를 해서 누구를 불러내거나,(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동전을 산처럼 쌓아놓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허송세월이라고 말했지만 그 때는 참 소중했던 시절이다. 얻은 것만 있고 잃은 것은 없이 버린 것만 있는 때. 락커스는 그래서 좋다. 그 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공간들, 소리나 냄새, 마셨던 술이나 사람이 좋은 것.
그렇게 1년쯤 놀고 다시 복학하게 될 때 락커스도 문을 닫고 공사를 시작했다. 셔터에는 '봄이 오면 보자'고 써 있었나. 복학하고 봄이 오고 몇 달쯤 후 락커스를 다시 갔을 땐 내부 인테리어도 매우 멀끔해지고 공간도 더 넓어지고. 그래도 예전만 못하다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필요하면 바뀌어야 하고 넓어져야 하고 깨끗해져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고. 지난 것들에 천착하지 않고. 시절은 시절대로. 오늘은 오늘대로. 술집도 내 삶도.
# etc
1.
하지만 락커스는 좀 비쌉니다. 근래엔 편의점에서도 온갖 수입맥주들을 쉽게 살 수 있으니 기네스 한 병에 만원을 받고 필스너우르켈 한 병에 9천원을 받는 락커스는 확실히 비싸요.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으니 다른데서 술을 원껏 마시고 막차로 가거나, 아니면 아껴먹어야 합니다. 락커스에서 술을 먹고싶은만큼 먹었다가 기둥뿌리가 뽑혀본 경험에서 드리는 충심어린 조언입니다. 지금도 우리집에는 기둥뿌리가 하나 없어요.
2.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다 말해놨지만 '나만 알고 싶은 술집'의 기조를 지키기 위해 약도나 정확한 위치 같은 건 공유 안합니다. 그냥 검색하세요. 찾기 엄청 쉬워요. 다만 일요일은 문을 닫습니다. 일요일에 갔다 낭패보지 마시길.
3.
락커스가 문을 닫았다면 그 옆에 '오존'이라는 맥주집도 좋습니다. 이 연재에 끼워줄만큼 좋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아요. 동행인이 에어로스미스보다 림프비즈킷을 더 좋아한다면 오존 쪽이 더 괜찮을 겁니다. 거긴 밥도 팔아요. 맛은 없지만.
4.
늘 그렇듯이 사진은 인터넷 어드메에서 불펌. 그래도 한 장은 직접 찍은 사진임니다. 친구랑 술마시다가, 쟤는 지 사진이 이렇게 쓰이는 줄 모르겠지. 초상권 따위 난 몰라요.ㅋ
5.
스토리지 사이트가 유료화되면서 음악을 올릴 방법이 없네. 기껏해야 유튜브 링크.
The Doors - Light My Fire
2015. 12. 16. 01:01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올해도 영화 / 음반 결산.
돈도 안주는데 이런 거 참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돈 주면 더 열심히 해요.
어쨌든 영화 음반 각 10개씩.
# 영화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홍상수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많은 걱정을 하게된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더 나은'상황을 고려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더 나은 상황을 고려하느라 진심이나 솔직함 같은 건 선택의 고려 요소가 아니게 된다.
그동안 홍상수의 영화는 선택의 그 덧없음을 보여줘 왔던 것 같다. "그렇게 따져봤자 어차피 안될거야. 병신들아" 같은 느낌. 이 영화라고 '어차피 안될'상황이 나아졌겠냐만 그래도 어차피 안될 상황에 대한 위로 정도일까. 우리의 삶은 어차피 안될 거고 실망할 테지만 지금 이순간 솔직할 수 있다면, 삶에 조금은 충일할 수 있다면 그래도 아주 약간, 이 뭣같은 삶에서 희망의 부스러기라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올해의 영화.
이 영화를 보러 들어가던 날의 생각과 그리고 다시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이 느낌을 흘리고 싶지 않아요.
- 자객 섭은낭 / 侯孝賢, Hsiao-hsien Hou
거장이라는 이름은 공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비정성시와 연연풍진 (특히 연연풍진)은 살며 본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영화기도 하다. 허우샤오시엔이 무협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장풍 쏘고 낙엽밟아 날아다니는 무협은 아닐 것을 알았다.
영화의 무협은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고 섭은랑이라는 인물 역시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 자객이라는 비인간적 직업이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고 존재했을 때 나타날 갈등 고민 연민이 그대로 담겨있으며 서기는 그 감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 (서기 누나는 여전히 완전 멋있다.)
화려함보다는 수려함에 가깝고 침통보다는 아련에 가까운 화면이 백미다. 새로운 무협영화 장르가 개척됐고, 그 첫번째는 이 영화다.
- 스파이 브릿지 / Steven Spielberg
냉전시대 이야기고, 스파이 얘기인데 심지어 스필버그가 만들어서 별로 보고싶지 않았는데.
반공영화는 아니고 미국 만세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삶을 위대하게하고 세상을 유지시키는 것은 정의로움과 그 정의를 지켜내는 신념이라는 아주 당연한 상식에 대한 영화.
신념은 내용이 아니라 신념 그 자체만으로 위대하고 사실 온전한 진실과 정의는 어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는 장면처럼. 그 장면에는 모두 4개의 시선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 거울속에 비친 남자, 자화상 속에 그려진 남자,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는 나까지.
(그래서 모든 것엔 옳거나 그름이 없다는 양비/양시는 아니다. 그 믿는바를 지켜내려는 모든 신념이 위대하다는)
톰 행크스는 스필버그의 페르소나임에 틀림없고 스필버그는 거장임에 틀림이 없나보다. 그래도 난 ET가 여전히 제일 좋은데.
-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사람 '사이', 극과 다큐멘터리 '사이',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 '사이', 스크린과 관객 '사이', 카메라와 배우 '사이', 배우와 배우 '사이', 말과 말 '사이'
사이에 관한 영화이고 영화란 본질적으로 그 사이를 포착하고 담아내는 작업임을 알게하는.
그 사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도 감독과 관객 저마다 제각각일테고 그 제각각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사실 삶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영화는 시종일관 선량하고 예쁘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으니 로맨스 영화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낮선 사람과의 사랑은 비포 선라이즈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뭐가 됐건 영화를 보고 나와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삶이 늘 그렇지 뭐. 현실은 시궁창. 젠장.
- 버드맨 / Alejandro Gonzalez Inarritu
다시 사랑받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보단 사랑받은 적이 있기나 했던가.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버드맨의 가면 같은 건, 그러니까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같은 건 어쩌면 사랑을 받기 위한게 아니라 하기 위한 것.
삶은 늘 역설로 흐르고 인과는 무시되는 것처럼 보이거나 가끔은 정말로 무시되기도 하지만 삶의 불확실성이야말로 불확실한 삶에 세상이 주는 가장 따듯한 위로.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기는 참 힘들고 사랑은 주기보다 받고 싶은 법. 사실 영화 한 편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질까.ㅋ
이냐리투는 그동안 죽음과 감정이 베베꼬이는 영화들을 만들어내더니 버드맨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어냈다. 아닌게 아니라 좋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은 이렇게 변하고 발전하는구나.
- 킹스맨 / Matthew Vaughn
'매너 매잌스 맨'. 올 상반기 최고의 유행어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오락영화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통쾌함과 뻔뻔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007도 사실은 실체를 모르고 (어쩌면 007에게 지령을 줄 것같은) 있을 듯한 고급 요원들이 아서왕과 기사의 이름을 받고 수제 양복과 포마드 잔뜩발라 넘긴 머리를 하고 앉아서 벌이는 그.
스냅백과 블링블링 악세사리를 차고 앉아 햄버거를 먹고 스마트폰을 무기삼아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과 대비되는 정갈함.
뭐 내용이 필요한가. 그 잔혹한 액숀신에 흐르는 엘가 같은 게 이 영화의 요체고 전부다.
그리고 콜린 퍼스의 간지. 갓양남의 전형일까.
- 소셜포비아 / 홍석재
영국의 퍼기경은 SNS를 인생의 낭비라고 표현하셨다. (그러니까 퍼디난드 이 양반아 축구 좀 잘하지.)
혹자는 SNS를 시간(S) 낭비(N) 서비스(S)의 줄임말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트위터와 페북을 끊고 모두 싸이월드 블로그의 세계로 돌아오세요)
소셜포비아는 스릴러 같거나 추리물 같지만 매우 엉성하다. 그렇다고 그 엉성함이 흠결은 아니고.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 첨예화되어 하나의 정언명령이 된다. "다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윤리학의 유일한 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 세계가 보거나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은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 나 자신으로 말하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밖에서도 다 보이는 집을 짓고 싶어 했던 한 로마인이야말로 가장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병철 <투명사회>
영화가 보여주는 건 우리사회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SNS의 폐해들이다. 마녀사냥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바보같은 말과 행동들이 이를 통해 전파되고 있는지. 음모론 같은 거.
엉성한 남자애들이 나오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엉성하게 흘러도 어색하지 않고 실제 세계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것도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어쨌든 결론은 이 세계에서도 우리들은 모두 패자에 불과하다는 것.
인디영화씬의 핫피플 변요한과 이주승이 동시에 나온다.
그러고보니 이제 얘들은 인디영화씬의 핫피플이 아니라 그냥 핫피플이지.
- 베테랑 / 류승완
얼마전에 개봉한 내부자들이 노렸던 건 베테랑이 가졌던 지위였겠지만 그러려면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안됐지.
영화는 시종일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악을 꾸짖는다. 분명 우리사회의 모순을 규명하는데는 더 많은 언어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사실 2시간 남짓의 오락을 위해서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통쾌한 일침과 꿀밤.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부를 수 있고, 그 새끼한테 꿀밤 날려주는 좋은 형에게 박수치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구조. 여기에서 필요한 건 깊이가 아니라 정확함이다. 황정민과 유아인, 유해진은 모두 정확했고 그래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유행어가 될 듯한 명대사까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같은. 이건 사실 강수연이 술 마실 때 배우들과 종종하는 건배사라고 한다)
장점이 명확한 만큼 한계들도 비교적 뚜렷한데,
구조적 모순에는 침묵하던 경찰조직이 '내 새끼'가 다치자 몽땅 나선 다는 점이나, 일상적 폭력을 희화하고 있다는 점이나,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감안할 수 있는 범위'보다 과한 마초적 언어들이라든가.
(그래서 사실 이 목록에 넣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한국영화도 너무 없고...)
- 잡식가족의 딜레마 / 황윤
우리는 늘 고기를 먹지만 그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고기 역시 생명이고, 그 생명의 존엄성을 갖는다. 사실 존재하는 모든 먹거리는 다 생명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의 죽음을 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때문에 온정적인 태도로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삶을 인정할지 묻는 것. 그리고 내 생이 어떤 죽음을 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감사히 여기는 것, 나 역시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아는 것.
인간은 본래 채식을 하는 생물이 아니므로 나 역시 원칙적인 채식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대인의 섭생이 과도한 육식에 매몰돼 있고 그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자본이 소용되고 있으며 지구 생태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야. 현재 지구에는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와 돼지가 있고 그네들이 뿡뿡 내뿜는 방귀와 가스들이 메탄가스란 이름으로 지구를 병들게 한다. 그들이 먹어재끼는 옥수수가 토양을 갉아먹고 있기도 하고.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자본주의가 부채질한 풍경이고.
황윤 감독은 이번 총선에 녹생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이 포스팅에는 그녀와 녹색당의 선전을 바라는 마음이 아주 많이 담겼지만 사전 선거운동은 아니다.
- 아무르 포 / Jessica Hausner
폰 클라이스트는 천재 극작가였지만 자살했다. 생전에는 아무도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고 극도로 가난했던데다, 조국인 프로이센은 식민지나 마찬가지였고, 연애도 잘 안됐다고 한다. (게이였다는 얘기도 있고) 여튼 그는 베를린의 어느 강변에서 유부녀와 함께 동반자살했는데, '유부녀와 동반자살한 천재 극작가'라는 모티프는 그동안 몇 번이고 영화화 됐어도 이상할 게 없는 소재되겠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말이야.
영화 속 클라이스트가 실제의 클라이스트와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영화는 주로 동반자살한 유부녀 헨리에테 포겔의 입장에서 그려지는데 이 언니가 좀 멍청하다. 난 동반자살로 표현되는 자살 대부분이 사실은 살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남의 손에 맡길만큼 유약한 건 결국 멍청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게다가 둘은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에반해 클라이스트는 또라이 기질이 코믹스러울 정도로 유쾌한데, 압권은 보는 사람마다 동반자살을 제안하는 장면. 그 유쾌함이 혁명 이후의 유럽과 그 지독하고 갑갑한 세상을 살아가는 천재의 염세를 잘 그려내고 있다.
덧,
전주영화제에서 히트를 했다는 소문에 전주는 못갈지언정 어둠의 경로를 통해 힘겹게 구했는데, 자막 ㅆㅂ.
# 음반
- 모노톤즈 / Into The Night
청년폭도맹진가와 청춘98을 듣고 자란 차차키드에게 모노톤즈는 평가나 왈가왈부의 대상은 아니다. 그야말로 락스타, 경배의 대상. 로큰롤은 차차고, 차차의 음악은 로큰롤이다. 여기서 로큰롤은 일개 장르따위가 아니라 삶의 태도 같은 건데, 로큰롤을 들었을 때 행복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차차의 말처럼.
문샤이너스 해체이후 차차가 박현준과 밴드를 만들었다는 소문, 보컬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 음악이 거의 완성됐다는 소문, 박현준이 결국 밴드에서 나갔다는 소문. 뭐 이런저런 소문들만 들으면서 간간이. 하지만 모노톤즈가 나온다던 락페스티벌에도, FF에서 했다는 데뷔공연에도 가지 않았다. 삶은 로큰롤이 없이도 굴러갔고 더이상 로큰롤은 곧 행복을 의미하지도 않았던. 블로그 이름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름을 바꿀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았던 날들. 하지만 다시 모노톤즈의 노래를 듣고있다. 그리고.
모노톤즈의 노래를 뭐라고 말해. 그게 뭐든 난 다시 시작했고, 공연날짜를 기다리고 있고, 또 사랑을 찾을 거고, 행복해질 거다. 가끔 방황해도 괜찮고, 질퍽하거나 암울해도 괜찮다. 그래서 다시, 그렇게, 로큰롤하게. 삶을 행복하게 살아도 괜찮다.
그래도 Let's Rock'n Roll
- 강허달림 / Beyond The Blues
강허달림은 독보적인 블루스 보컬이다. 사실 한국은 블루스 풍토가 워낙에 척박해서 마땅히 대중적인 블루스 보컬 하나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만.
2집에서 어쩐지 이모같은 노래로 살짝 엇나갔던 노래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쓸쓸하고 사무치는. 블루스는 그래야 제 맛. 그보다는 어떤 노래를 불러도 블루스가 되는 보컬이 된 느낌일까. '기슭으로 가는 배'나 '이슬비', '거리' 같은 트랙을 들었을 때 그런 느낌이 선연하다.
리메이크란 원곡의 후광에서 멋어나지 못하거나 어설픈 도전으로 이도저도 아닌 우스꽝스러움이 되기 십상인데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아 좋았다. 마치 처음부터 자기 노래였다는 듯이.
얼마전에 본죽 광고에 강허달림의 노래가 나오던데,
무엇보다 강허달림이 꿋꿋하게 블루스 보컬이었으면 좋겠다.
- Kendrick Ramar / To Pimp A Butterfly
켄드릭 라마를 처음 들은 건 몇 해 전 '컨트롤 비트 대전'때문이었다. 사실 힙합은 그렇게 즐겨 듣는 편도 아니고. 어쨌든 켄드릭 라마는 컨트롤 비트 이후 "새 앨범이 나왔다니 들어는 봐야지" 정도.
켄드릭 라마의 랩은 어떤 의미에서 랩보다는 선언이나 연설과 같다고 생각했다. 'I'나 'King Kunta'같은 트랙들. 돈 많이 벌고, 예쁜 여자하고 섹스하고, 약이나 쭉쭉 빨아먹고 다니는 걸 자랑하는 게 전부인 노래가사랑은 다르게.
무엇보다 전자음에 기반하거나 훅이 강한 멜로디만 넘실대는 주류힙합.(이라고 표현하기에 내가 뭘 딱히 대단히 많이 듣는 건 아니다만, 나 같은 애가 찾지 않아도 들었으면 주류힙합이겠지)에선 잘 들을 수 없는 음악. 펑크나 재즈에 가까운 사운드들도 매력적이다. 신나고 잘한다.의 느낌을 넘어서 분명 한 획, 내지는 거장의 냄새가 폴폴.
(I를 듣다가 마틴 루터 킹을 생각했는데, 자기는 쿤타킨데라네. 역시 나 같은 범인과는 다르다.ㅋ)
비트나 따라하지 말고 좀 제대로 따라했으면 좋겠다.
- 정차식 / 집행자
"귀신 나올 것 같다"던 얘기처럼 그의 음악은 귀곡락이다. 듣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그렇다고. 코드 몇 개를 펼쳐놓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옮겨적으면 그게 노래.라니 그게 작곡이냐 신탁이지.ㅋ
정차식의 음악은 격려, 위무 이런 것들하고는 상관이 없다. 노래는 지난 '황망한 사내'에서보다 더욱 처절하고 고달파졌다. 할렐루야라니. 절대자인 아버지에게 구원을 갈망할만큼.
하지만 힐링이니 하는 거짓부렁 상품이 넘쳐나는 와중에 차라리 죽도록 힘들다며 "무엇을 선택해도 후회되며 어디로 가려해도 꿈이라 허무하다"는 말은 차라리 위로에 가깝다. 나도 사는 게 좆같애. 힘내라고, 내가 너를 힐링해 주겠다고 덤비는 사기꾼들 틈새에서 그만 오직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느낌. 한 번만 더 내게 힘내라고 말하면 침을 뱉어주겠어요.
- Bob Dylan / Shadows In The Night
예전에 며칠 연속으로 밥딜런이 죽는 꿈을 꾼 적 있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가장 죽지 않았으면 하는 뮤지션이 밥딜런인가보다. 이 나이 든 히피는 여전히 한 순간도 안주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영광 같은 건 모른다는 듯이 연이어 앨범을 내놓다가 36번째 정규앨범마저 내놨다. 36집 가수라니.
시나트라의 노래들을 다시 부른 10곡으로 채워진 앨범은 이 노래가 원래 시나트라의 노래였나 싶다. (My Way는 없다.ㅋ) 전형적인 헤테로섹슈얼 마초 남성이었던 시나트라와는 또 다른. 시나트라의 도시적 우울함, 그러니까 30년대 뉴욕 뒷골목, 마피아와 시가같은 목소리보다는 더 관조적이고 더 쓸쓸하다. 70이 넘은 노인이 지나간 세월을 조망하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은 Auyumn Leaves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온갖 드라마 같은데서 늘 끈적끈적 흐르는 노래인 이 곡을 더할 수 없게 담백하게 불러버린다. "가을 정도 지나는 게 뭘 그리 거창해"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이든 히피의 목소리가 짙은 허무따위는 아니다. 오히려 삶을 관조해서 더욱 희망적인. That Luck Old Sun 같은 노래.
저 나이든 행운의 햇살처럼,
천국을 배회할 일 말곤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아주세요.
할아버지처럼 늙고 싶네요.
- 혁오 / 22
눈독 들이고 있던 밴드가 유명해지는 건 기분이 나쁘면서 동시에 좋은 일이다. 장기하나 국카스텐 같은. 이젠 지들 입으로 '나만 알고싶은 밴드'라고 말하는 혁오도 그 중 하나 '였다'. 망할 무한도전.
여튼 정규앨범 한 장 내지 않은 주제에 기똥찬 음악을 해내는. 이걸 어떻게 구분해야하나. 소울도 아니고 펑크도 아닌 것이 가만 듣다보면 알앤비같기도 하고. 여튼 제일 좋아하는 트랙은 'Hooka'인데 끈적거리면서 느끼하지 않은 오혁의 보컬이 가장 매력이다. (공드리가 제일 좋아. 라고 누가 말하길래 후카 끝나면 공드리 나와. 로 정리했다.. 이래저래 다 좋다는 얘기다.ㅋ) 요즘 표절 얘기도 나오고 방송에 너무 노출돼 이런저런 하마평에 시달리는 모양이더라만, 결국 나온다는 그 정규앨범이 모든 걸 설명하겠지.
- 이승열 / SYX
지난 앨범이 너무 실험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유앤미블루 시절이나 솔로 1,2집 정도의 정서로 조금은 돌아온 느낌. 이거말곤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그냥 마냥 좋은데. 올 해 가장 많이들은 앨범. 이자 올 해의 음반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지난 V 부터 뭔가 확고해진 형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기다리던 유앤미 블루는 이제 물건너 갔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보다는 이제 기다릴 의미가 없겠다는 느낌에 더 가깝겠다. 한국에서 '음악'을 가장 잘하는 남자. 라고 부르고 싶은.
'a letter from'은 세월호 이야기다.
깊은 물 속에서 온 편지.
- Jamie XX / In colour
트랜스나 EDM을 영 듣질 않아서 가끔 뒤처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클럽을 안다니는 게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클럽에서 날 안받아 줄거라는 게 문제, 나이트가 더 체질이라는 게 더 큰 문제) 하지만 영 뚱땅거리는 소리가 익숙해지질 않았다.
올 여름에 EDM을 좀 '공부'하고 싶어져서 친구에게 물었더니 Jamie XX를 추천해줬다. 이걸 듣고도 맘이 동하지 않으면 다 텄으니 그냥 LA 메탈이나 들으라며. 다행히 다 트진 않았는지 이후에도 이 앨범을 꽤나 많이 들었는데, 특히 노동요로 이만한 게 없었다. 하반기에 나온 내 대부분의 글들은 대부분 여기에 힘입은. (지금도.ㅋ)
클럽사운드에도 우아함이.
얼마 전에 데미안 라이스를 폄훼하다 반성했던 일도 있고. 음악엔 편견을 두면 안된다.
- 김사월 / 수잔
김사월을 처음 본 건 우연히 따라간 김사월 X 김해원의 공연. 어쩐지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인디씬의 여성 솔로에게 포크는 드문 장르가 아닌데, 그게 너무 지나쳐서 이제는 좀 지겨울 지경. 이런 상황에서 김사월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예쁘기만 하지 않은 노래지만 예쁘다. 이 말도 안되는 문장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김사월의 앨범 커버에 있는 사진을 봐도 그렇다. 예쁘지 않은데 예뻐. 이상하게 예뻐.
퇴폐적이지만 참 곱다.
- Steve Hackett / Wolflight
프로그래시브는 폼잡고 싶어서 듣기 시작했다. 뉴트롤즈나 QVL같은.
그러다 학교 앞에 '르네상스'라는 펍의 사장님한테 물려서. (그 아트록밴드 르네상스 맞다. 신도시의 대학가 앞에 르네상스라니!!) 프로그레시브의 세례를 받게 됐는데, 괜히 QVL 노래를 신청했던 게 화근이었다. 여튼 거기서 맥주 공짜로 엄청 얻어먹었다. 스티브 해킷도 그 때 그 사장님이 소개해준. 씨디도 한 장 주셨다.
아무튼 스티브 해킷 할아버지는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는 록음악계의 흰수염해적. 힘이 괴물같아서 아직도 엄청난 대작들을 막 쏟아낸다. 'Love Song to A Vampire'같은 거. 9분이 넘는데 후반부는 심지어 메탈 사운드도 나온다.
아트록 앨범들은 대부분 한바퀴를 다 듣고 나면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고전파 클래식은 듣다가 간간히 졸기라도 하지. 이건 뭐 졸만 하면 쾅쾅거리니까.ㅋ
여튼 올해의 아트록 앨범을 끝으로 연말 정산도 끝.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2015. 12. 11. 01:04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2009년의 여름, 평택. 그는 거기 있었다. 해외 먹튀 자본이 떠난 후 2천여 명의 해고자가 나온 공장 구석. 한 때는 국내에서 가장 튼튼한 자동차를 만들던 그 공장의 구석에 그가 있었다.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이끌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던 국가폭력에 맨 몸으로 맞선 노동자들의 맨 앞에 그가 있었다.
2015년의 겨울, 조계사. 그는 거기 있다. 그는 전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개혁’에 맞섰고, 개사료보다 싼 쌀값에 항의하다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해매는 농민을 위로하고 그 책임자를 찾자고 말했다. 그 죄로 그는 희대의 범죄자가 됐고 결국 절간 한 구석에 숨어 곡기마저 끊어야 했다.
한상균. 2009년에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지부장이었고 지금은 민주노총 위원장인 그가 서있는 곳은 7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갇혀있다.
# 2009년
2004년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쌍용 자동차는 중국의 상하이 자동차에 인수됐다. 그러나 상하이차는 2008년 돌연 자본 철수를 결정한다. 건실한 국내 자동차 제조사였던 쌍용차의 핵심 기술과 인력을 중국으로 빼돌린 이후였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경영하던 4년 동안 단 한 푼의 돈도 투자하지 않았다는 건 상하이차가 철수한 이후에 드러났다. 전형적인 ‘먹튀’였다.
상하이차의 철수 이후 구조조정의 칼바람에서 2천여 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 희망퇴직이니 무급휴직이니 하는 말들이 동원됐지만 평생 기름밥 먹으며 ‘삶’을 이어온 노동자들로선 삶의 공간을 빼앗긴 셈이었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해 간 ‘산 자’와 그렇지 못한 ‘죽은 자’로 나뉘었다. 어제까지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같은 대폿집에서 소주병을 두들기던 동료들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회사는 ‘산 자’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정리해고 반대와 회생 방안을 요구하던 해고자들의 집회 바로 옆에서 산 자들의 관제 데모가 열렸다. 77일간의 옥쇄파업에는 ‘구사대’가 동원됐다. 손 안대고 코 풀기에는 분열만큼 좋은 방법도 없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신동기 씨는 ‘산 자’였다. 그는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었지만 77일간의 옥쇄파업에 동참했고 결국 괘씸죄로 회사에서 잘렸다. 그는 “인간적인 도리까지 저버리면서 돈을 벌라면, 차라리 도둑질을 하고 만다”고 했다. 노동자의 연대, 단결, 투쟁 같은 학습된 언어가 아니라 형들과의 의리, 사람의 도리를 말하는 듬직한 동네 형들의 언어로.
신동기 씨의 언어는 곧 해고당하고 77일 동안 공장을 점거하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언어이고, 한상균의 언어다. 땀 흘리며 일하고, 일한만큼 받고,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는 당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언어.
그러나 2009년의 여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벌어진 일은 당연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을 일이 아니었다. 헬기에서 뿌려대는 최루액과 테이저건 곤봉과 군홧발은 그들을 짓이겼다. 그건 ‘짓이겼다’는 사람에게는 쓸 수 없을 것 같은 표현으로도 모자란 광경이었다. 그보다, 그날 그곳에서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칭하는 건 노동자들과 경찰 양 쪽 모두다)
77일의 파업을 이끈 한상균은 3년형을 받아 수감됐고 만기를 채워 출소했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20여 명의 ‘동료’들이 죽었다. 동생과 동료들은 그가 감옥에서 나온 뒤 ‘동지’가 됐다. 한상균은 출소 후 ‘동지’들과 함께 다시 초고압이 흐르는 공장 주변의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같은 눈높이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하늘 위의 섬과 같은 곳이었다.
# 2015년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이 붙은 집회의 선두에 한상균이 있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늘리고 파견업 허용업종 확대와 임금피크제 확대시행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안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일하고 싶다고, 일한만큼 받고 싶다고, 같은 일을 하면 같은 돈을 받고 싶다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2009년부터 7년이나 지났지만 바람은 같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도 똑같았다.
한상균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과 그 과정에서의 집회로 이미 체포영장이 나와 수배생활 중이었다. 민중총궐기 집회를 마친 한상균은 경찰의 체포시도를 피해 조계사에 들어갔다. 조계종단은 세속의 풍파를 피해 부처님의 가피에 몸을 의탁한 그를 품어주겠다고 나섰고 경찰은 겹겹이 조계사를 에워쌌다.
2009년, 2012년과 마찬가지로 한상균은 고립됐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한상균의 직함은 쌍용차 노조위원장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달라졌고,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70만 명의 노동자로 늘어났지만 그의 말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도, 그를 대하는 세상의 눈도 달라지지 않았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상균은 쭉 고립돼 있었다. 그보다는 노동자들은, 아니 차라리 그냥 우리들은 고립돼 있었다.
사실 한상균이라고 썼지만 한상균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돈 벌어 먹고 사는 힘없는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에 가깝다. 한상균은 ‘당신과 나’다. 당신과 나는 2009년의 쌍용차 공장에, 2012년의 철탑 위에, 2015년의 조계사에 있다.
# 당신과 나의 전쟁
당신과 나는 강경한 투쟁을 일삼는 노동자들에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로는 진보를 떠드는 어느 회사의 부장님일 수도 있고, 그 부장의 잘난 체에 아니꼬워 하는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일 수도 있다. 거리에 나와 복면과 밧줄을 든 투쟁하는 노동자일 수도 있고 집회 현장에 나갈 시간도 없이 야간노동을 해야 하는 파견직 노동자일 수도 있다. 이미 애초에 정리해고 당한 실직자일 수도 있고 실직이라도 당해보고 싶은 취준생일 수도 있다. 숨죽여 지내는 공장 안의 산자일 수도 있고 산자이면서도 투쟁의 목소리를 높였다가 괘씸죄로 해고당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건 당신과 나의 전쟁이다. 당신과 내가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함께 싸우는 전쟁.
영화는 옥쇄파업이 끝난 뒤 여전히 복직을 위해 손 팻말을 든 해고 노동자들을 외면한 채 묵묵히 전자 출입문에 출퇴근 카드를 찍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노동자들을 묘사하며 끝을 맺는다.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13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궐기’라는 이름으로 서울 한복판에 몰려들었던 날이 지나갔다. 13만의 맨 앞에 서있던 사람,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노인,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 경찰이 찾아온 학생들, 집에 가는 길에 체포된 젊은이. 이들과 당신과 나는 다른 이들일까. 우리는 손 팻말을 든 쪽일까 아니면 묵묵히 출퇴근 카드를 찍는 쪽일까. 아니 그보다 이런 구분은, 당신과 나와 저들을 나누는 구분은 누구의 언어일까.
당신과 나의 전쟁은 어떻게 ‘당신과 나’의 전쟁, ‘우리’의 전쟁이 될 수 있을까.
# 한상균
이 글을 쓰고 있던 날은 12월 7일이었다. 그 때까진 한상균의 거취가 결정 나지 않았지만 이 글을 송고하는 10일 오전, 한상균은 자진출두해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감옥에 있더라도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하고 호송차에 올랐다.
언론에서는 장삼이사의 말잔치가 다시 시작됐다. 강경노선만을 고집하는 운동권의 구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다.
그래서 이제 당신과 나와 한상균은 ‘우리’가 될 수 있을까?
2015. 12. 11. 00:59 Vecchio Primavera
1.
며칠째 원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작 진도는 못나가고 있다. 열심히 쓰고 있는데도 안 써지는 그런 최악의 상태는 아니고, 그냥 게으름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꾸 집중하지 못하고 딴 짓만. 뭔가 다른 글을 쓰면서 환기하려고 블로그를 열었다. 가끔 이렇게 블로그나 SNS에 잡설을 풀고나면 뭔가 타자에 관성이 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딴짓의 바운더리가 넓어질 뿐이라는 게 함정.
2.
딴 짓하면서 하는 일 중 하나가 틈틈 올 해의 앨범과 영화를 정리하는 일. 노는동안 밀린 영화며 노래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는데 아직 메모해둔 영화며 노래가 많다. 더구나 믿고있던 마지막 프로포즈마저 올 해는 없어서. 일단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와 정차식 정도가 확정. 며칠전엔 술마시며 정차식을 틀었더니 귀신 나올 것 같다고 하던데, 역시 귀곡락.
3.
오늘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를 나아 자진 출두했다. 화쟁위원회와 도법스님의 태도가 불만인 사람들이 많더라. 나도 좀 그렇고.
하지만 그보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렇게 전면에 나서 조계사에 칩거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먼저든다. 집회에 위원장이 직접 등장해 잠시간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위원장 수감이라는 위험을 감내할만큼 의미있는 것이었나 싶기도 하고. 사실 집회에 나서는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의 정세와 역량이 안정적인 투쟁지휘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왕 이렇게 됐으니 다음을 고민해야겠지만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09년의 옥쇄파업에서 2012년의 철탑에서 그가 보여준 투쟁의 신심을 믿고있다. 사실 아쉽지만 이정도의 투쟁도 한상균 집행부였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농담이 반 이상이지만, 수감생활하는 당분간 규칙적인 생활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ㅋ
4.
요즘 '청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주로 만나고 있다. 대화의 주제도 그렇고. 만나고 돌아서면 늘 마음이 좋다. 그럼에도 꿈꾸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직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설레임과 두려움을 그대로 가진 사람들. 열심히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다치고 틀리고 반성하고 배우는 사람들.
고민하는 청년 페티쉬.라고 쿠사리를 먹긴 했지만, 언젠가 나도 들었던 그 얘기 '아직 괜찮아'라는 말을 해 줄 수 있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왔나 싶기도 하고.
(라고 했더니 "너도 진지충이었다"고 다시 쿠사리를 먹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ㅋ)
5.
주변의 선배들을 보다가 어떤 '벽'같은 걸 느꼈다.
'알고있는 사람'들. 그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건 공부와 그리고 성실함.
고민하는 스무살들과 뭔가 알고 있는 오십먹은 아저씨들 사이를 냉탕과 온탕 넘나들듯.
문득 설레었고, 그 아저씨들이 나를 내가 그 스무살들 바라보듯 봐준다면 좋은 기회겠다고 생각했다.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목표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성실하게 살아야지.
하지만 박민영 나오는 새 드라마가 시작한 게 함정.
2015. 12. 11. 00:29 Vecchio Primavera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 속에 나오는 무엇이 먹고 싶어지곤 한다.
(그 태반이 술인 건 함정)
일테면 홍상수 영화 속의 소주들, 오션스 시리즈에서 브레드피트가 분한 러스티가 집어먹는 군것질들,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의 탕수육. 같은 거.
그 중에서 여지껏 영화를 보고나서 먹고 싶었던 가장 강력한 음식의 기억은 굿바이 레닌의 햄버거다.
영화 속, 통일 이후 동독을 잠식하는 자본주의의 상징은 포르노와 코카콜라와 버거킹이었다.
영화를 본지 이제 꽤 오래돼서 정확한 앞뒤의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자본주의에 꽤나 잘 적응한 동독의 관료가 자본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드라이브 스루로 버거킹의 치즈버거를 사서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의 정원에 수영복만 입고 누워 엄청 큰 햄버거를 우적거리던 장면.
흉물스럽게 나온 배, 디룩디룩 찐 살의 아저씨가 빤쓰만 입고 우악스럽게 큰 햄버거를 우적거리는 모습. 역겨울 정도로 탐욕스러운 장면이었다. 토마토 국물이 입가에 시뻘겋게 흘러내리고 케찹이나 마요네즈가 잔뜩 묻은 잔여물들이 막 배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그런 더러운 장면.
하지만 그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햄버거가 미친 것처럼 먹고 싶었다.
굿바이 레닌을 본 건 2007년 말이나 2008년 초반쯤이었다. 학교에서 갓 도망나와서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살던 즈음. 살며 가장 우울했고, 가난했고, 혼란스러웠던 날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엔가 늘 허기져 있었다. 하루에 영화를 서너편씩 보고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블로그에는 하루에 2~3편씩 글을 썼다. 배가 고팠고 무언가를 계속 그리워하고, 그만큼 허탈해하고. 그 날 썼던 글을 다시 찾아 봤는데, 체제의 붕괴니 삶에 대한 적응이니 하는 되도 않는 말을 지껄여놨더라만, 그건 그 때의 마음이라고 치고.
지금 돌이켜보니 굿바이 레닌을 도서관에서 본 그 날은 그냥 배가 고팠던 것 같다.
난 햄버거를 좋아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머니를 뒤져봤더니 딱 850원이 있었다. 버거킹의 왕따시만한 와퍼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집 앞 수퍼에서 '점보햄버거'를 집어들었는데 900원이었다. 이마저도 돈이 모자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공판장이 떠올랐다. 그 공판장은 식자재를 대량으로 살 때 종종 가곤 했는데 빵이나 과자 따위를 다른 수퍼들보다 100원쯤 싸게 팔았다. 수퍼에서 900원인 햄버거는 공판장에서라면 800원쯤이면 살 수 있겠지.
10분을 넘게 걸어간 공판장에서 햄버거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 어쩐지 처량하고 슬펐을 것 같지만 그런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는데 이걸 어떻게 데워 먹나 하는 연구만.
일단 프라이팬을 꺼내 아주 약한 불로 달구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달궈진 팬에 햄버거를 올리고 뚜껑을 덮어 10분쯤 데웠다. 찜기에 찌기에는 물기가 많아 축축한 햄버거가 될 것 같았다. 결국 햄버거 번은 다 타고 정작 패티는 하나도 데워지지 않은 햄버거를 먹게 됐다. 그 햄버거는 너무 작아서 서너입만에 다. 콜라도 없이 맹물에 햄버거를 다 먹고 나서야 문득 신세가 처량해졌다.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그 때는 픽하면 울고 그랬는데.
며칠 전에 어쩌다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한참을 신나서 이 얘기를 떠들어댔다.
지금도 가난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와퍼 하나 정도는 사먹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하여튼 그냥 잡담이다. 주말쯤엔 굿바이 레닌을 다시 보면서 햄버거를 먹어야지. 엄청 큰 놈으로. 지저분하고 탐욕스럽게.
2015. 12. 1. 14:14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부처님의 제자 중에 제바달다라는 남자가 있었다. 본래 부처님의 사촌형제인데 석가집안에서 일종의 에이스였던 거다. 인품좋고 인물좋고 똑똑한. 여시아문을 말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기억해 경전을 작성한 아난존자의 친 형이기도 하다. (불경에 보면 아난존자의 미친 꽃미남 외모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니 제바달다도 엄청 꽃미남이었을 거다)
부처님이 성불이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제바달다도 부처님을 따라 출가했는데 출가 이후에도 그 빼어난 재능으로 종단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그러다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악행을 저지르다못해 제 스스로 부처를 자처하고 종국에는 부처님을 해하려 하다가 지옥에 떨어졌다. 제바달다가 떨어진 지옥이 유명한 무간지옥이다. 고통만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최악의 지옥.
하지만 중요한 건 악인 제바달다가 지옥에 떨어진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부처님은 후일 제바달다의 이야기를 설법하시며 그 역시 성불할 수 있으며 수행을 쌓아 먼 훗날엔 천왕여래로 성불할 거라고 했다.
악인 제바달다의 이야기는 부처님이 축생 용녀의 성불을 약속한 이야기와 함께 전해지는데, 어떤 악행을 지었더라도, 어떤 존재일지라도,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모두의 마음엔 불성이 있으며 수행하고 마음을 닦으면 성불의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일러준다.
그래서 절집에선 함부로 사람을 내칠 수 없다. 부처를 해치려하고 오역죄를 저지른 악인에게도 부처님 집은 문을 열어준다. "성불 하세요" 하면서.
2.
어떤 종교든 마찬가지지만 불교는 기복신앙이 아니다. 돈을 내고 기도하고 절을 한다고 내세의 행복, 현세의 행운을 약속받고 싶은 마음은 종교의 미덕을 갉아먹는 일이다. (기복신앙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또 다음에 할 기회가 있겠다. 기복의 마음과 태도 전반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불교는 차라리 철학에 가깝다. 그래서 불자의 수행은 절집 문을 지키는 게 아니라 절집에 담긴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있다
쓰다보니 제바달다와 달리 진짜 종단의 에이스 수제자였던 수보리 존자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부처님이 천계에서 설법을 마치시고 지상으로 귀환하실 때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을 마중하러 나갔다. 지금 공항에 마중나가는 거랑 비슷하게ㅋ 하늘에서 오시는 거니만큼 높은 산 꼭대기로 내려오셨는데 제자들의 팬심에 가장 정상에서 가장 먼저 부처님을 맞이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수보리 존자는 1등 경쟁엔 관심 없었지만 그래도 마중은 나가려고 뒤늦게 길을 나섰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내가 맞이하려는 건 무엇인가. 부처님의 몸인가 부처님의 법인가'
이 질문이 '공'사상의 핵심이라고 한다. 이를 깨달은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제자들 중 해공제일이라고 불리게 된다.
여튼 산꼭대기에서 부처님 맞이 1등 로얄석을 차지한 비구니에게 부처님은 땅에 발을 딛자마자 "나를 제일 처음 만난 건 네가 아니라 수보리다. 그가 오직 나의 실체를 맞이했다"고 말씀하셨단다.
그래도 고생했는데 칭찬이라도 먼저 한마디 해주시지.ㅋ
아무튼 절집을 문간을 지키는 것과 자비와 사랑, 존중을 설하셨던 부처님의 말씀을 보는 것. 어느게 불자의 공부인지는.
3.
종교계에서 정치적으로 보수의 색채를 띄는 건 공부가 부족해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수님은 노예노동과 빈부격차를 타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셨고 부처님은 전인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신분제 철폐 활동가였다.
우리 공부 열심히 하고 성불합시다 신도님들.
2015. 11. 29. 21:26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1. 자객 섭은낭
허우샤오시엔은 친절하지 않다. 굳이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다만 보여주고 공감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서사를 해설하는데 품을 들이는대신 치밀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이 극을 이끌어간다.
내면을 관조하는 데에는 대사보다는 배우의 치밀한 연기가, 풍광이, 영화 속의 장치들이 작용한다.
느린 호흡과 진행, 순차적이지 않은 시퀀스의 배열 같은 걸 두고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일종의 여백의 미 같은 것. 상상력으로 채워넣으면 될 일.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영상미란 이런 것이다 라고 단정하는 듯한 그림들 앞에 지루할 틈이나 있을까.
2. 검은 사제들
호러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가장 명확히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
엑소시즘 같은 거야 수입된 장르인데, 그게 한국 땅에서 한국인 신부들에게, 그것도 한국사회의 가톨릭 교회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조율될 수 있는가를 매우 적절한 균형감각으로 진행하고 있다. 쓸데없이 거창한 이야기들을 하지 않아서 좋았고 디테일한 부분들 (일테면 사제와 부제들의 일상적인 모습들, 꼰대스런 군상들)까지 명민하게 잡아내서 더욱 흥미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동원. "사제복은 그런 핏이 날 수 있는 옷이 아니"라는 어느 신부님의 절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강동원은 반칙이긴 하다 좀. 돼지를 안고 있어도 케미가 쩔어.
아무튼 섹시하고 연기잘하는 중년배우.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강참치가 이 영화의 미덕 1등.
3. 내부자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오락영화로서 다가서고자 했다면 재미가 없고 흥미진진하지도 않으니 실패.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면 얄팍하니 실패. 배우들의 간지로 승부하고 싶었다면 캐릭터를 더 섹시하게 만들었어야지. 그것도 실패. 대 망작.
이병헌의 사투리 연기가 재미있었다. 만 네이티브 호남인이 사투리 너무 어색해서 확 깼다.고하니 수긍해야지. 하여 미덕없는 대 망작 확정.
4. 혼자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여물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들을 직시할 수 있다면.
하지만 그것보다 좋은 건 잔여물을 남기지 않을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
있지도 않은 위협들. 사실은 내가 쳐 죽인 자아.
우리가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으니 꿈에 의존하거나 아니라면, 영화를 만들거나.
2015. 11. 29. 17:24 부정기 연재 중 - 술집유랑기
본래 5편은 종로의 락커스를 하려했지만, 뭐 이게 돈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쓰고 싶은 순서야 내 맘이지.ㅋ
요 며칠 학교 이야기를 많이 했더니, 그 때 사람들을 계속 만났더니, 한남동을 지나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오고 있으니.
개골목이라는 괴랄스러운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입학도 하기 전이었다. 오래도록 우리 옆집에 살던 형은 우리학교 화학과 96학번이다. 나도 한남동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자 그 형은 제일 처음 내게 "엄마 걱정하시니까 개골목같은데 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 땐 개골목이 뭐 어디 유명한 술집 이름쯤 되는 줄 알았다.
그 때 그 형의 충고란 실제로는 술 많이 먹고 다니지 말라는 농담섞인 말이었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개골목으로 대변되는 '그 정서'를 조심하라는 선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보게된다. 아무튼 괴랄한 골목이었고 거기에 기생한 괴랄한 삶, 또... 어쨌든.
# 박제
개골목은 단국대학교 정문에서 한남역 방향으로 술을 찾아 걷기 시작하고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는 걸을 수 없겠다 싶을 때쯤 나타나는 작은 골목이다. 80년대 영화에나 나올법 한 낡고 허름하고 종종 더러운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저마다 가게들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각 과마다, 무리마다 멋대로 부르는 이름들로 더 많이 불리는. 사실 각각의 무리들마다 가는 집은 거의 정해져 있어서 "개골목에 가자"는 곧 그 집을 가자는 얘기니까 이름같은 게 굳이 필요 없다.
그러니까 개골목은 골목 전체가 마치 하나의 술집처럼 인식되곤 했는데, 그건 개골목이 어떤 '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면 거꾸로 그렇게 골목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되는 현상이 이같은 문화를 만들어낸 것일 수도.
아무튼 개골목에는 그 골목에서만 통용되는 '정서'가 있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굳이 해보라면, 아마 '박제'. 그곳에선 사람도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 음식도 박제된다. 머무름. 모든 시간의 흐름을 거부하는 듯한. 그리고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마침내 제대로 썩지도 못하고 사라지거나, 혹은 버려지거나. 박제가 돼 더 오랜 시간을 버텨내지만 결국 색이 바래고 사람들은 잊어가고 외면했던 시간에 두들겨 맞아.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다.
# 두 발로 걸어가게 하지 않는다
개골목이라는 이름은 "네 발이 되기 전엔 나갈 수 없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이 얘기를 해준 선배들은 그네들의 선배한테 그렇게 전해들었을 테고. 그 선배들도 뭐 마찬가지겠지. 그게 뭐 중요한가. 어쨌든 정말로 네 발로 기기 전엔 나오기 힘들다. (물론 난 네발로 기어서 나온 적 없다. 내가 바로 개골목 최후의 승자.)
소주는 다른 술집보다 쌌다. 그 때 다른 술집들에서 보통 2500원이었던 거 같은데 여긴 2천원이었다 그 밑이였나. 안주라곤 꼴랑 닭도리탕 하나인데 (벽에 붙여놓은 메뉴판엔 삼겹살이니 부대찌개니 있지만 시켜본 적도 없고 시키면 나올지도 의문이다.) 닭도리탕 국물에 밥까지 볶아먹고도 부족해 냄비를 박박 긁는 주제에 소주를 더 달라고 하면 주인 할머니가 옛다 먹어라하는 표정으로 계란말이를 대자로 부쳐주신다. 그럼 또 소주를 댓병은 더 마시고, 안주가 또 부족해지고 결국 깍두기를 국물까지 퍼먹고 바닥까지 긁어먹는 '악순환'이라 쓰고 '일상'이라 읽는 일이 펼쳐진다. (그래봤자 계란말이를 또 주지는 않는다.)
닭도리탕은 솔직히 맛있지 않았다. 닭을 초벌로 익혀서 기름을 빼거나 육수를 미리 뽑거나 하는 수고 같은 건 애초에 기대도 해선 안되고 그냥 토막낸 생닭과 갖은 채소와 양념을 한 냄비에 넣고 맹물 부어서 끓여준다. 익기까지 시간도 오래걸리고 닭이 익는 동안 감자는 푸석 부서지고 당근은 흐물거리게된다. 누가 먹더라도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맛. 그런데 그걸 그렇게 먹고 다녔다. 사실 맛이 뭐가 중요하겠나. 어차피 두어시간 쯤 지나면 다 토해버릴 것들.ㅋ 개골목 초입 공터에는 온갖 싸움박질 소리와 발악발악 부르는 노래소리 (그건 발악에 가까웠기 때문에 발악발악이 옳은 표현이다)와 함께 토악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여간 개골목에서 술을 먹는다는 의미는 "오늘 하굣길에 가볍게 맥주나 한잔 하자"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늘 먹고 죽자, 술마시고 니가 죽건 내가 죽건 나는 책임을 지지 않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내일 아침 안전하게 학생회실에서 눈을 뜰거야"의 의미에 가깝달까. 정말 신기하게도 개골목에서는 아무리 술에 꽐라가 돼도 다음날 아침이면 무사히 학생회실 생활방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래, 신기해 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게 다 나같은 마당쇠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와 땀방울이었음을 그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다. 씨바.) 같이 술마시던 나를 따돌리고 일문과 여학우들하고 개골목에서 놀다가 만취가 돼선 개골목 앞 트럭밑에서 자고 있는 총학생회장을 업고 학생회실까지 옮겨놓은 것도 나였다. (우린 기계과 개강총회 뒷풀이에 있었다. 무려 기계과. 총학생회장 그는 나를 기계과에 버려두고...)
# 박제된 공동체의 흔적
"네 발로 기어나가야 한다"면서도 그렇게 술들을 퍼 마실 수 있었던 건 그런 노력의 축적이었다.
"니가 말은 그렇게 해도 날 버리고 가진 않을 거잖아."
그건 막연한 신뢰감의 표출이었고 그 신뢰가 본심이었든 관성이었든 아니면 허세나 동경 뭐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좀 웃기는 감정이었든 어쨌든 그 때 거기서 같이 술을 마시는 친구들에겐 그런게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 전부터 '대학생'이나 '청춘'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집단의 특권이었거나 아니면 강요됐던 그것. 공동체, 유대감, 의리, 낭만 뭐 그런 거.
그래서인가 우리는 거기서 다같이 노래를 불렀다. 큰소리로.
주로 민중가요를 개사한 '과가' 같은 거였다.
같이 있음을 과시하고 동질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개골목엔 여기저기서 피, 심장, 조국, 미제 뭐 이런낱말이 가득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제일 시끄러운건 행정학과 애들이었다. 그네들은 과가로 '동지가'를, 학생회 사회부 애들은 '결전가'를 불렀는데, 그 노래들을 엄청 시끄럽고 결의에 차서 부르는데 술에 취해 혀는 꼬부라진 뭐 늘 그런 웃기는 상태였던 거 같다. 하여튼 어깨동무하고 팔뚝질하면서 동지가를 부르다가 갑자기 막 토하고 울고 업고가고.
그 진상의 나날들. "하지만 같이 진상을 부리는 게 청춘의 낭만이고 특권이잖아"라고 강변하는 듯한 모습.
(우리과 과가는 '조국과 청춘 두번째'를 개사한 노래였다. 이게 원래 엄청 빡쎈데 여성비율이 높은 과 특성상 부르기만 하면 곱고 예쁘게 뽑히는게 문제였다. 나중엔 그게 아예 자리를 잡아 새로운 편곡이 나와버린 느낌. 나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ㅋ)
그러나 사실 그 때 이미 공동체는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있었다. 못된 구태만 남은 공동체의 흔적.
우리는 함께 살기 보다는 각자 살다 가끔 모여 술을 마시는 관계였다. 동지같은 낮부끄런 말은 꺼내본 적도 없다. 노래를 불렀지만, 그냥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가졌던 환상, 선배들이 강요한 유대감, 마뜩치 않게 여겼지만 억울해서 나도 후배에게 강요했던 그것. 그것들을 어떻게든 보위하려 했던 감정이 모이는 곳이었다. 우리의 개골목은. 환상을 지켜내거나, 아니면 그 환상에 잠깐만 들어가 보거나. 어쨌든 공동체가 존재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 있었다. 그 환상을 가진 우리들은 개골목 밖에선 박제된 이들이었고, 개골목은 박제를 잠깐 생명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 그 어줍지않은 환상
낡고 허름하고 더러운데다 맛도 없는 개골목을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건 그 아주 오래된 대학생, 청춘의 모습을 닮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저기서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면 마치 이제는 지나가버린 그 시절을 우리에게로 소환해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환상. 같은 거였다.
2천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우리는 (적어도 나는) 늘 그런 콤플렉스 비슷한 것이 시달렸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선배들처럼 조국통일이나 노동해방을 외치기엔 어딘가 쑥쓰러웠고,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선배들이 열광했던 문화적 풍요도 없었다. 김연수는 뉴트롤즈와 첩혈쌍웅과 개같은 날의 오후에 열광하던 세대를 '나의 세대'라고 말하더라만, 우리에겐 함께 열광하고 공유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들지 않는 철없는 어린이가 되거나, 빨리 나이들어버린 애늙은이가 됐다. 어느 쪽이든 시간의 흐름을 잡아채고 머무는 박제의 상태.
# 버려지는 박제
철거되거나 이사간 집에서 나온 쓰레기 무더기를 보면 가끔 박제들이 섞여있다. 한 때는 살아있었을, 그 이후에도 어느 부잣집 서재에서 자태를 뽐냈을. 하지만 버려진 박제는 흉물스럽다.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썩어야 할 때 썩지 못한. 두 눈을 부릅뜨고 쓰레기 더미 안에 쳐박힌.
시절을 고이 보내지 못하고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박제가 돼버린 것들은 흉물스럽고 딱 그만큼 안쓰럽다. 어떤 욕심이 그것들을 썩어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나.
겪어보지도 못한 지난 시절을 그저 말만 듣고 그리워했던 건 시대를 박제로 만들게 한다. 흘러가고 사라지는 것이 자연이라는 것을, 생명도 시간도 세계는 그렇게 흐르고 변화하고 썩고 다시 태어나는 게 순리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고집스럽게 낡게된다.
개골목에서 보냈던 스무살 시절을 그리워할 수 있는 건 그 시절의 어리석고 소중했던 마음을 이제는 인정하고 지나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개골목이 있던 자리는 이제 비싼 수입 오토바이 매장과 뭐가들어설지 아직 모르는 공사장으로 변했다. 학교가 옮겨간 후에도 2년정도 더 자리를 지키던 몇몇 가게들도 이제 없어졌다. 최후까지 남아있던 개골목 할머니집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 깍두기에 곰팡이가 슬어있는 걸 보고 더이상 개골목을 찾지 않았다. 하긴 그 무렵 할머니집도 문을 닫았다. 음식도 가게도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마련이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사랑. 깍두기는 익어야 맛있지만 곰팡이가 슬면 버려야 한다.
# 여담
1. 개골목에서 술마신 얘기를 이렇게 거창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지껄였지만, 이건 내 감상일 따름이다. 개골목에 얽힌 추억은 개골목을 들락거린 사람 수만큼 많을 테다. 그냥 난 그랬다고요.
2. 개골목에 얽힌 더럽고 야한 얘기들도 많은데, 차마 쓸 수가 없다. 그거 쓰면 거의 일베감.
3.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해 어디어디 학회나 동아리의 단체손님을 독점하던 한남복집은 96년 H의장 정명기 의장의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다. 그래서 한동안 집회 뒷풀이 장소로 많이 쓰였다고. 하지만 내가 살던 시절의 이야기는 아니다.
4. 오늘은 닭도리탕에 소주를 마시겠다.
5. 사진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걸 그냥 퍼왔다. 너무 예전일인가, 사진 하나 없네.
2015. 11. 26. 03:54 Vecchio Primavera
Balmorhea - The Winter
2015. 11. 24. 20:20 부정기 연재 중 - 술집유랑기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내려 인사동 방향으로 걷다보면 낡고 허름한 해장국 집들을 잔뜩 볼 수 있다. 1500원에서 비싸야 3000원 남짓한 해장국 집들에는 할아버지들이 가득차 있다. 조금만 더 가면 길거리에 앉아 햇볕을 쬐거나 바둑과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훈수를 두는 할아버지들이 있다.
종각 지하철역이나 종로2가 버스정류장에 내려 낙원상가 방향으로 걸어오면 같은 곳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 보이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인사동에 관광 온 젊은 외국인들과 낙원상가에 악기를 사러온 뮤지션들, 서울 도심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유진식당은 그 사이 한가운데에 있다.
탑골공원에 모여앉은 노인들을 자본주의 시대의 퇴적물로 이해하건, 낙원상가를 찾은 젊은 뮤지션들을 낭만과 미래가 아직 채 피지도 않은 예쁜 꿈으로 치장하건 그들 모두는 배가 고프고 돈이 없다.
그래서 유진식당의 미덕은 '싼 가격'이다. 사실 그게 거의 가장 완벽하면서도 유일한 미덕.
# 장정 3명이 아무리 흥청망청 먹어도 5만원
가장 최근의 유진식당에서 주문한 내역을 떠올려보니,
[소수육 2접시 + 녹두부침 1접시 + 냉면 곱빼기 2그릇 + 소주 2 병]
이렇게 해서 45,000원이다.
쥐꼬리 같은 연금이나 자식들에게 눈치받아 받은 쥐똥만한 용돈을 쥔 노인들이 모여앉아
설렁탕 한그릇에 막걸리 한사발. 유진식당의 단골들이란 그런 노인들이니 이보다 비싸질 수는 없을게다.
(냉면 가격은 비교적 최근에 올랐다. 얼마 전까지는 냉면도 4천원이었다.)
장정 둘이 앉아 배가 터질 것 같이 먹고 술도 알딸딸 올랐건만 고작 5만원도 나오지 않는 것. 이것만한 미덕이 어디 있을까. 요즘 냉면집이라고 하는 것들이 죄다 한 그릇에 만 몇천원씩 받아가니까, 냉면에 만두 한접시만 먹어도 5만원 돈은 훌쩍 넘어버리기 십상이다.
(며칠 전에 갔던 강남 평양면옥에서 냉면 2그릇, 만두 한접시를 먹고 똑같은 돈을 냈다. 4만 5천원.)
사실 유진식당의 냉면맛은 그렇게까지 훌륭하지 않다.
육수는 슴슴한 맛 대신에 진하고, 높은 염도가 그대로 느껴지는 편이고, 육향도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다.
면도 메밀 함량이 조금 부족해 평양냉면이라기엔 면이 탱탱한 편이다. 자고로 냉면은 입술로도 끊어질만큼 부드러워야.ㅋ
하지만 가성비로만 따지면 서울시내 모든 냉면집 중 으뜸. 7천원에 이만큼 맛있는데 사실 이러니 저러니 토다는 것도 나쁜 짓인듯. 게다가 소주와 막걸리가 2천원이라니.
유진식당은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충분히 즐기기 위해선 낮부터 앉아 놀아야 한다.
그야말로 낮술 특화 업체.
# 삼각주
사실 이정도 가성비와 맛을 담보해내는 가게들은 꽤 많다. 아.. 꽤는 아니고, 그래도 좀 있다..ㅋ
유진식당을 좋아하게 된 건 처음으로 식당에 갔던 날의 풍경 때문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애 하나가 냉면에 소주를 먹고 있었다.
수염은 길렀다기 보다는 자르지 않은 모양이어서 자세히 보면 꽤 앳된 얼굴이었다. 잘 봐줘여 스물 예닐곱. 야상잠바에는 땟국물이 막 줄줄 흐르고 있었고, 신발도 다 떨어진 컨버스 단화였다.
그 남자애가 소주를 먹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냉면은 정말 맛있게 먹더라.
바로 옆 테이블엔 할아버지가 혼자 앉아 있었는데, 어린 남자애가 소리내 울기 시작하면 꼰대적 마인드로다가 잔소리나 시덥잖은 위로라도 할법한 상황이었지만 늘상 보는 일이라는 듯이 슬쩍 한 번 흘겨보고는 자기 설렁탕에 집중하더라. 니가 울건 말건 나는 설렁탕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듯.
울고있던 남자애도 그 남자애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던 할아버지도 사연은 모른다.
그 날 나와 친구들은 술을 마시면서 그 남자애는 기타를 팔았을 거라는 둥, 그 돈으로 평소에 좋아하던 냉면을 먹고 있는 거라는 둥, 할아버지는 옛날에 이미 기타를 팔아본 경험이 있을 거라는 둥 온갖 소설을 짜내봤지만 몽땅 다 지루한 클리셰고.
다만 그 기묘한 대비. 눈물을 흘리는 젊음과 그걸 이해해서인지, 무감해서인지 모를 노인의 무관심.
그 둘이 대비돼 보이기도 묘하게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장소.
퇴적물들이 모여 이룬 일종의 삼각주 같은 느낌.
# 퇴적됐거나, 퇴적되고 있거나, 퇴적될 것이거나
오근재는 탑골공원을 '퇴적공간'이라고 불렀다.
공인된 조직에서 일정한 수입을 얻지 못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
우리는 종종 '노인'을 나이든 사람.으로 규정하지만, 사실 나이듬이란 사회가 규정하는 것이다.
"더이상 당신은 우리사회에 필요없어"라는 표딱지 같은 거.
그래서 탑골공원 언저리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그 나이를 떠나서 노인일지 모른다. 더이상 사회의 호명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 일정한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 공인된 조직에 편입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 모두. 지금 우리는 급류에 휩쓸려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언젠가 하류에 모여 결국 퇴적될 모래더미. 그러니까 퇴적되거나 퇴적되고 있거나 언젠가는 퇴적될. 그렇게 모인 모래더미들이 쌓여있는 삼각주에서 마침내 만날.
그 때가 되면 유진식당에서 싸구려 냉면과 소주를 놓고 만납시다.
하지만 지난 시절의 영광을 얘기하진 말아요.
2015. 11. 24. 02:15 Vecchio Primavera
1.
재입사 1주일 째. 출근은 여유롭고 일도 여유롭다. 손발이며 생각도 맞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일이 풀려가는 과정도, 진행되는 방식도 좋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어디가 서걱거리고 이따금 괜히 쓸쓸해지는 건 아직 새로운 장소가 어색하기 때문이라고 정해두자.
2.
사람을 잊거나 보지 않고 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 기억하고 만남을 지속하는 일이야말로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보통 타인에게 그렇게까지 성실한 노력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을 잊지 못할 거라는 둥, 잊혀지지 않는 다는 둥하는 얘기들은 죄다 거짓부렁이거나 입에발린 말, 자아도취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과 사연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의 순간과 감정에 더욱 솔직하고 충실해야 한다.
3.
프리미어 12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봤다. 올시즌 엘지의 패망으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어떻게 쟤가 국대냐. 싶은 선수들이 있더라. 일테면 이현승 같은. 국대의 마무리는 아직 누가 뭐래도 임창용이어야 하는데. 어쨌든 술을 마시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국대 5선발 라인업을 어떻게 구성하겠냐는 쓸데없는 논쟁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역시 남자의 로망직업 3대장 중 최고봉은 야구팀 감독이다.
내가 생각했던 5선발은
류뚱 - 윤성환 - 김광현 - 장원삼 - 유희관
4.
겨울이 거의 왔는데 아직도 모기가 설쳐대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정말 신이 천지만물을 창조했고 그 때 모기도 만든거라면 아주 그냥 신을 가만두지 않을거다.
5.
김영삼이 죽었고 온라인에서 사람들은 그를 과하게 애도한다. 모든 생명의 죽음은 애도받을 가치가 있지만 이렇게 그의 있지도 않은 공을 포장해줄 필요가 있을까.
그는 권력을 붙잡기 위해 야합도 서슴지 않았고, 학교를 봉쇄하고 대학생들을 때려잡으며 그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노동법을 날치기 해서 노동자들의 숨통을 옥좼고 IMF와 신자유주의를 수입했다.
그가 투사이던 시대, 그가 대통령이던 시대는 차라리 희망이라는 게 있었다는 회고도 들었지만 그건 박정희의 시대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던 회고와 다르게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가 한 시대를 만들고 살아온 역사적 인물이라는 평가. 그리고 고집스럽고 외롭게 늙어간 노인이었다는 점만 기억하자.
6.
요즘은 계속 정차식의 노래를 듣는다.
쓸쓸하기도, 후회되기도, 절망스럽기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도.
정차식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예전에는 '도라에몽'을 꿈꾸기도 했다. 해달라는 건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오지라퍼.
하지만 내가 아직도 호구로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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