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돈벌려고 쓰는 글을 하나 쓰고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져서 생활 사이클이 완전히 무너질만큼 부담스러워졌다. 어쨌든 내 손에서 나오는 글이니 어디 내놔서 부끄럽지 않은(글을 써본 역사가 없다만) 결과를 내놓고 싶은데, 시간이나 여건이 수이 허락치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여건에는 내 게으름도 큰 몫을 하고.. 여하간에 여태껏 져본 수많은 빚 중에 가장 부담은 역시 글빚이라는 결론.


2.

어두운 방안에 틀어박혀서 스탠드 불빛에 모니터만 바라보는 상황을 '영철이 모드'란 코드네임으로 부른다. 영철이는 드라마 마왕에 나왔던 캐릭터다. 어두운 방안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던 찌질이. 앞으로도 몇 주간은 더러운 영철이 내지는 담배피는 영철이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영철이는 단정하기라도 했었는데.



얘가 영철이다. 나도 지금 빨간 플러스팬을 들고 있다는게 흠좀무



3.

며칠동안 너무 영철이 모드로 있었다. 밖에 눈이 오는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는 상태. 졸리면 쪽잠자고, 배고프면 밥먹고. 심지어 담배도 보루로 사다놔서 담배사러 밖에 나갈 일도 없이. 며칠 만에 방밖으로 나와서 온통 눈이 내린걸 보다가 불현듯 밖에나가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폭('푹' 아니고 '폭'이다) 삭힌 홍어 한 점이랑 뜨끈한 홍어애탕 한 그릇, 

눈 녹기전에 뜨끈한 오뎅에 찬 사케. 

방어 한접시 회떠서 아껴가며 호호불어 먹거나, 

빈 소주병 꺾어 셈해가며  불판에 볶듯이 구운 십수장의 대패삼겹살.


바야흐로 술타령의 계절.


4.

얼마전에 동거남과 밥먹으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케이블채널에서 '태조 왕건'을 봤다. 연출이며 메이크업이 그렇게 촌티날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KBS1에서 하는 대하사극이 갖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마침 궁예아저씨 장면이라 카리스마도 작렬했었고. 그러다 요즘엔 정통파 우완 대하사극이 나오질 않는 것(사실 나오긴 나오고 있었으나 별반 힘을 못쓰고 있었던 거였다)같다며 나름의 분석들을 막 지껄였었다.


그러다 며칠전에 새로하는 정도전을 봤는데, 이거 재밌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나왔고, 용의눈물에서도 정도전의 철학이나 정치는 고려말과 조선초중기를 아우르는 가장 뜨거운 이슈였는데, 왜 지금껏 정도전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지기도 하고. (그의 사상이 끌었던 인기에 비하면 지금 지젝이나 강신주의 인기는 그야말로 보름달 앞의 반딧불인거다.)


잘 생각해보면 입헌군주정, 내지는 내각책임제 같은 선진적 사상을 이미 14세기에 만들어냈었고, 그가 세운 경국전이 수백년의 조선 법체계의 근간이었던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시대의 대박인재. 언젠가 정도전, 정약용, 이율곡 같은 역사 속 천재들을 나열해 놓고 누가 가장 천재적이었는지를 묻는 그런 쓸데없는 장면을 본 것 같은데, 압도적으로 정도전의 승이었다. 


여하튼 정도전 역할의 배우는 예전에 용의눈물에서 열연한 돌아가신 김흥기 아저씨가 짱( 이아저씨가 정도전 역할만 몇 번씩 하고 정도전의 정치철학사까지 깊이 이해하고 심지어 강연도 하던 무서운 아저씨임. 이른바 정도전 능덕)이라고 생각하는 건 변함없지만, 조재현의 그 과잉된 연기도 간만의 정동파 우완 대하사극에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박영규 아저씨가 연기하는 이인임도 카리스마 쩔고. 다만 아쉬운건 임호. 그 정몽주에 임호를 끼얹나. 임호가 연기할 수 있는 사극 역할은 숙종이나 선조 정도로 마무리하자. 

 

5.

강신주 이름이 나와서 강신준이 생각났는데,

어느 친구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자본과 강신준 교수가 번역한 자본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었다. 심지어 야밤에 전화해서. 

할 말이 없어서 한참 있다가 "김수행 교수 자본에 한자가 훨씬 많아"라고 대답하곤 끊었는데, 괜히 기분이 졸라 나빴다.


씨바,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6.

당장 아주 바쁜거만 좀 지나면 간만에 요리를 좀 해야겠다. 내 비장의 요리들은 예전에 알바하면서 어께너머로 익힌 이탈리아 음식들을 기반으로 내 쏘울과 감성, 게으름, 인간미 등등을 첨가한 필살 막장 레시피였는데, 새로운 체제로 외연을 좀 확장해 봐야겠다. 마침 난 이태원 주민이라 주변에 쏠쏠한 식자재들도 많이 있고. 다음의 도전 과제는 에스닉 푸드. 카다몸이나 클로브 같은 향신료들을 신기해서 몇 개 사왔는데, 아뿔싸 돌절구가 없슴니다. 


모쪼록 올 해에는 웰컴 투 에스닉 월드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과 손을 정갈히 해야지. 


7.

봄에는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동해에서 배타고 떠나는 블라디보스토크. 때마침 푸틴 형이 근혜누나랑 무비자 협정을 체결해줘서 더 감사하다. 푸틴 형, 근혜누나 짱짱맨 짱짱걸. 여유가 있다면 기차를 타고 크레믈린이랑 붉은광장 같은데도 가고 싶은데 어찌될지. 여하간 기다려라, 사상의 조국. 응?ㅋ


8.

바빠서 셜록 시즌3의 첫번째 에피소드밖에 못봤는데, 반응들이 영 시원찮다. 우리 셜록이 이렇게 찌질할리가 없어. 엉엉엉. 같은? 왓슨한테 너무 집착한다고. 두근두근. 난 사실 그 형이 찌질하게 집착하는게 좀 더 섹시할 거 같다.ㅋ 여튼 기다려라 셜록.


9.


사실 위에서 너무 미화했지만, 내 영철이 모드는 여기에 더 가깝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