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




"외기러 왔소, 불리러 왔소, 죽은 쇠를 받아다가 산 쇠를 만들러왔소"


'걸립'은 새 만신이 신내림을 받기 전 마을을 돌며 내림굿에 쓸 무구와 쌀을 얻는 일이다. 집안에 오래된 죽은 쇠를 받아다가 산 쇠로 만들며 집 사람들을 축원한다. "이 쇠 받아다 큰 만신 되세요". 하나의 만신이 탄생하는 과정은 마을이 힘을 모으고 희망을 축원하는 일이다. 만신의 굿과 기도란 개인의 부귀나 영화가 아니라 공동체, 나아가선 세계와 소통하는 일에 더 가깝다.


만신이 작두의 날을 타는 것은 마치 그녀들의 삶을 닮아있는 것 같다. 사람과 신의 경계에 위태하게 서있는 양. 어느쪽으로 기울 수도 없는 외롭고 고독하게 그저 가장 높지만 가장 위험한 곳을 살아내야 하는.


그래서 어쩌면 무속과 굿은 예술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것이겠다. 사후의 구원을 보장하며 엄숙한 합창에 헌금봉투를 내미는 이들에게 돼지머리에 만원짜리를 턱턱 붙이는 굿이야 천하고 해괴한 것이겠지만 사후에 올 세계가 아니라 지금 이자리에서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고 울고 웃게 만들어주는 굿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예술이고 연출일 수 있다.


박찬경 감독은 굿이 오늘날 영화를 비롯한 대중예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연출을 보인다. 다큐에 캐릭터가 들어서고 현실의 인물과 극의 인물이 만나는 순간, 그러니까 경계성이 무너지며 경계의 삶이 드러나는 그 순간 만신 김금화의 삶이 더 애잔하고 슬프고 감동스러워진다. 그게 가장 잘 들어나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쇠걸립 시퀀스다. 쇠를 얻으러 다니는 어린 넘세 김새론에게 "큰 무당이 되라"며 쇠를 건네는 출연진과 마을사람들과 스탭들.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김금화 만신까지. 지나간 시간과 사연이 올올이 풀어해쳐지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만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래요, 영화보는 거 좋아한다면 이 영화는 꼭 봅시다. 김금화 선생님이 쓴 '비단꽃 넘세'도 좀 읽구요.


덧,

영화의 말미에 등장하는 백현진이 부른 파경. 영화와 백현진의 목소리는 어쩌면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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