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강신주가 나온 힐링캠프를 찾아봤다. 흔히 '돌직구'로 표현되는 그의 화법이나(비단 그게 화법의 문제만은 아닐거라고 생각하긴 한다) '인문학 아이돌'로 불리는 그의 지위를 고려했을때 '힐링'을 주선한다는 예능프로그램으로서는 적절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난 강신주의 말들이 불편하기만 했다.


언젠가 강신주가 노숙자를 사회적으로 마비된 존재.라고 표현하면서 문제가 됐던 글도 그렇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던 강신주가 정말 노숙인들을 사회적으로 도태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을리 없다. 강신주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어차피 이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 이 악물고 강하게 버티는게 제일, 못하면 병신."쯤 아니었을까.


힐링캠프에서 강신주가 한 일이라곤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번지르르한 말을 제거하고 욕망을 직시하라고 주문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처녀 총각에게 "결혼이 하고 싶은 것이냐, 사랑이 하고 싶은 것이냐" 묻고, 자식에게 집착하는 아버지가 고민인 사람에게는 "아버지를 제거하고 싶은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사실 말인즉슨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이 그들에게 어떤 위로가, 아니 위로는 됐고, 그들의 삶에 어떤 도움이나 어떤 성찰의 계기가 됐을지 알 수 없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냐는거다.


사실 결혼이니 사랑이니,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니 하는 문제들에 대한 모종의 답은 이미 스스로 알고 있는 일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이 문제를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는 눈이었을지, 아니면 그저 다시 얼마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한 순간의 위무였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강신주의 말처럼 이 더러운 자본주의 사회, 앞뒤가 꽉막힌 가부장제 사회는 아무리 정신똑바로 차린 강한 개인이라도 버텨내고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그렇다면 강신주의 주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직시하고 괴로워하란 주문이다. 저 많은 자기계발서들과 힐링멘토 사기꾼들이 던지는 말들이 말 머리 앞에 달린 당근조각이라면 강신주의 말은 그저 앞을 보고 달리라는 채찍질이다. 둘 모두 달리기만 할 뿐 도착할 곳도 알 수 없는 말의 입장에서는 갑갑한 노릇일 뿐이다. 그저 공허한 잘난 척.


강신주의 책들을 좋아했었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같은 경우는 학교 후배들에게 몇 권을 선물하기도 했었다. 그의 직접적인 언어는 다소 난해하고 모호했던 그 철학의 언어들을 삶에 가까운 곳으로 인도해주는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오는 강신주의 책들을 사서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운동권 쿨게이 같은 그의 세계가 갑갑하게 느껴질 뿐인 탓이다.


2.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왔다. 영화의 만듦새나 여타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없게하는 소재들이 있고 이 영화가 그렇다. 그래서 실화가 소재인 영화는 참 싫다. 언제가 됐든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을 알았고, 어찌다보니 개봉 첫 날에 극장에 앉아있게 됐다. 분노해야 할 곳은 분노스러웠고 슬퍼야 할 곳은 슬펐지만 감정이 흐르고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과 극장 문을 나설 때, 이 영화를에구구절절한 사연을 덧씌워 분노와 행동을 추동하려는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 더 그랬다. 영하가 마음과 사람을, 나아가선 사회와 세계를 움직일 수 있고 그러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힘이 아니라 영화 외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참 싫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휘발시켜버릴 만큼 비극적이고 화나는 회사와 사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는 이 세계도 참.


그나저나 김민선은 언제까지 연기못할거야.


3.

그래서(1번과 2번을 통틀어) 얼마전에 본 수상한 그녀가 참 좋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은 심은경의 연기는 스무살 남짓의 여배우가 이렇게까지 잘하는건 반칙아닌가 싶은 (무슨 약을 드셨길래 이런 연기력을 보여주시나요) 생각마저 들게했다. 영화 속에서 사연과 사건은 섣불리 봉합되지 않았고 서로의 욕망과 한계는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그러니까 아들 잘 키우기위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나, 그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와의 고부갈등, 그 가족들 저마다의 욕망 같은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섣불리 해답을 제시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속 성동일은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교수로 나오지만 그도 마땅한 답을 내지 못했다. 결국 살아가며 견디고 또 가끔 넘기고 가끔 화해하며 버티는 것. 수학문제마냥 마땅한 답이 있는 일이라면,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영화고 인문학이고 있을 필요가 없지.


4.

블로그 유입경로를 살펴보면 '인간실격패 알고보니 부전승'이라는 술집을 검색해 들어온 인구가 가장 많다. 신촌 모처에 위치'했던'술집이고 좋아해서 몇 번 찾아가며 부정기적으로 연재하는 내 술집유랑기의 1번타자였던 곳인데. 없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술집은 곧 망한다는 속설이 다시 증명된 걸까 싶지만, 잘되서 다른 곳으로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로) 대신 그자리엔 살롱 노마드라는 비슷한 분위기의 술집이 들어섰더라. 노마드라는 이름만 보면 일단 혹하는 스타일이라 방문했더니 여기도 좋아. 단골이 된다면 유랑기의 6부나 7부쯤으로 써주겠어요.


5. 

엑스트라 출연했던 이송희일감독의 신작이 베를린에 초청받았단다. 내 스크린 데뷔는 국내보다 유럽에서 먼저. 월드스타라고 불러주시압..ㅋ 얼른 개봉해야 원근법을 무시하고 주인공이랑 똑같은 크기로 등장한 내 얼굴을 보러 갈텐데.


6.

전에 먹었던 알싸한 맛 오징어땅콩을 가는 곳마다 찾고 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단언컨대 시판되는 과자 중 최고의 맛이다. 이건 팩트다. (이게 팩트라면 엄청난 일이에요) 한남동 주변에서 알싸한 오땅을 파는 곳을 제보해 주신다면 후사하겠슴니다. 밤마다 매콤한 쌀로별만 우적거렸더니 입에서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7.

계획하고 있는 여행을 떠나기 전 술집 유랑기 3부와 4부가 동시에 업데이트 될 예정임니다. 두둥.



    

 




오늘 집에 돌아오는데 이 노래가 귀에 꽃혀서 몇 번이고 돌려들었네. 괜히.
난 이제 노브레인이랑 안놀지만 그래도 조선훵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