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김연아

스포츠 중계를 보려고 졸린 눈 부비며 깨어있었던 게 얼마만인지.


클래스가 다른 천재의 마지막 무대를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그건 기술의 클린이나 난도가 높은 점프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아름다움에 대한 경배. 냉정하게 기록을 따지는 '경기'가 아니라 서로의 아름다움을 견주고 순수하게 경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무대'에 대한 감사. 몇 년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군림한 여왕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은 그녀의 우아함에 한 번이라도 탄성을 질러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들었을테다.


메달의 색깔과는 관계없이 오늘도 최고로 아름다웠다. 마지막이라는 짠한 상황이 곁들여지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눈물이 찔끔할만큼. 김연아가 좋아졌던 건, 언젠가 얼음위에서 '기술'을 부린다고 생각되던 다른 선수들에 비해 그녀만이 '춤'을 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였다.  오늘도, '안녕, 할아버지'하고 춤추는 모습은 지난 몇 년간의 시간들을 그러니까 힘겹기도 영광스럽기도 때로는 지겨웠을지도 모를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양. 


아름다움의 가치는 메달의 색깔이나 몇몇 사람들의 점수 따위로 매겨지는 것은 아니겠다. 시간이 지났을 때 많은 사람들의 오늘의 누구를 기억할지에 따라, 혹은 어느 한 사람이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지에 따라.


김연아의 뒤에서 더 힘들었을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악셀 성공도 축하한다. 은퇴하는 마오도 마침내 (메달따위와 관계없이) 기쁘고 행복했을 무대였음. 집착이네 발악이네 하는 저열하고 치졸한 조롱에도 끝내 도전하고 성공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조금씩 전성기의 나이를 지남에 따라 신체능력도 저하되고 어쩌면 생애 마지막 올림픽에서도 넘어지도 조롱받을지 모를 도전을 끝내 시도하고 마침내 성공하는. 삶에서 대부분의 도전이란 언제나 비루하고 가망없고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끝내는 성공해버리는 이야기. 일본의 청춘만화 스토리같고 좋다. 아름답고.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이번 심판진의 채점은 잘못된 것 같다. 아마 올림픽을 통해 왕년의 영광을 되살려보려는 푸틴의 삽질이 애꿏은 선수들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고 있는 거겠지. 분노하고 비판해야지. 다만 거기에 분해서 평창에서 두고보자느니 러시아를 어쩌겠다느니 하는 사람들을 보자면 조금 답답하다. 똥묻힌 놈이 싸우잔다고 같이 똥묻히자는 것 같아서. 사실 88년이며 2002년에 한국도 똑같거나 더한 짓 많이 했다. 그 치졸한 분풀이들이 오늘 보았던 아름다운 춤사위에 똥물을 튀길까 저어된다.


여튼, 아디오스 할아버지.했던 김연아의 다음 행보도 기대된다. 어디서든 발군이었던 클라스는 어느 곳으로 가도 빛난다는 내 지론은 거의 과학적 이론에 가깝다. 


이쯤에서 오늘의 그녀를 보고 생각나는, 

연화야 낙목한천의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