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6. 03:32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올림픽 소식따위 전혀 모른 채 지내다가 오늘 처음으로 Tv를 켰는데, 왠 해괴망측한 광고가 하나 보이더라. 김연아가 피겨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김연아는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고 씨부리는. 개인과 국가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혹은 개인보다 국가를 항상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우리는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2.
쇼트트랙 선수 김아랑이 준준결승에서 2위를 차지해 준결승에 진출한 직후 서럽게 우는 장면을 봤다. 은메달을 딴 심석희는 울먹거리며 "금메달을 못 따 죄송하다"고. 도대체 우리는 저 어린 선수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인지,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렇게 서러운 눈물을 보이는 건지. 세계에서 스케이트를 두 번째로 잘타는 선수가 됐는데 잘하지 못했다고 여기게 하는 사회라니.
3.
말 나온김에.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서 못마땅한 사람들이 많은가 보더라. 귀화한 러시아인이니가 무조건 빅토르라고 부르라고 하는 사람부터 빙상계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든 견디고 대한민국 국가대표직을 유지하는게 옳았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안현수의 금메달이 속시원하고 빙상연맹을 향한 빅엿이었다는 말도 많다. 그러나 오히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학연이니 혈연이니 하는 패거리주의의 피해를 '승리'에 그대로 투영해 해소하고 환호하는 (양쪽 모두의) 저열함에 있다. 국가주의와 일등주의가 만들어낸 비정상성이 스포츠를 스포츠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4.
사실 김연아를 추켜세우고 영웅시하는 것도 그녀가 '1등'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냉정한 기록경기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스포츠에 대고 기술의 정확도니 난이도니 하는 말을 들먹이며 그녀의 라이벌들을 매도하는 (특히 일본인의 경우에는) 일이야 말로 이를 방증하는 일 아닌가. 우리가 아름답지만 한국인이 아닌 것, 또는 한국인이지만 1등이 되지 못한 자에 대해 열광해 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5.
사실 소치 올림픽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다.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이 얼마나 많은 인권활동가들과 동성애자들을 괴롭혔나. 그러나 정작 국내(주류언론 내지는 주류의 네티즌)에선 이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 올림픽 정신따위 개나 줘버린건지. 그래놓고 세계인의 축제라느니 어쩌니. 내 무한도전을 돌려줘. 저번에는 별그대도 빼앗아가더니.
6.
언젠가도 말 한 적 있지만 스포츠는 우정과 상생, 협력과 상호발전을 위한 것이다. 땀흘리고 노력하고 이기고 지고 다시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런 가치들. 인류의 공존과 공영 같은. 작금의 올림픽, 월드컵. 쿠베르텡 할아버지가 보면 귓방맹이 맞을 짓거리들. 스포츠를 스포츠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어쩌면.
7.
그래서 소치에 가 있는 모든 선수들이 내지는 지금도 땀흘리며 노력하는 모든 운동선수들이 E1의 광고와는 정확히 반대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니에요. 대한민국따위를 위해 당신이 있는게 아니라 당신을 위해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하고 당신이 즐거운게 최우선입니다.
7-1.
그러니까 이번 아시안 게임에 프로야구 선수들 너무 혹사시켜서 시즌 방해하지 말라고. 나라가 있어 니가 운동을 한다 같은 개소릴랑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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