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개의 문>, 용산참사의 소환장 - 무엇이 '용산'을 소환했나


영화 <두 개의 문>, 용산참사의 소환장
무엇이 '용산'을 소환했나



제작단체 - 연분홍치마
감독 - 김일란, 홍지유




# 서스펜스(Suspense)와 스릴러(Thriller)

서스펜스와 스릴러의 차이는 ‘관객이 범인을 알고 있는지 여부’라고 하면 간단하겠다. 주인공이 범인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긴박감을 느끼는 것이 서스펜스라면, 관객과 주인공이 모두 미지의 대상에게 공포를 느끼는 장르가 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야마’(글의 얼개)를 잘 잡으라고 했던가, <두개의 문>을 보고 리뷰를 쓰라는 말을 듣자마자 떠올렸던 야마는 ‘서스펜스’였다. 심지어 영화관에 앉기도 전에.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국가의 학살극에 관객들의 공분을 일으키고, 범인은 정권이요 주인공은 ‘진실을 잊지 않는 여러분’이라고 주장하는 그런 서스펜스. <두개의 문>이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라 기에 관객 모두 화내고 슬퍼하다 영화의 말미에는 “진실을 규명하고 정권에 책임을 묻겠다”는 결기어린 다짐이 샘솟는 그런 프로파간다를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범인을 알고 있다’ 영화 시작 전에 노트에 써 놓은 이 리뷰의 제목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글의 방향을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서스펜스가 아니었다. 영화를 볼수록 ‘범인’을 알 수 없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법정은 범죄를 증명하기보다는 범인을 찾는 과정에 가까웠다. 폭력과 야만의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경찰특공대들은 차라리 그것들에 몸을 내어준 숙주에 가까워보였다. 그들 역시 야만의 현장에 내던져졌다. 어떤 생명줄도 부여받지 못한 채. 스릴러다. 목숨을 노리는 살인마의 정체를 영화 속의 인물들도 영화 밖의 우리들도 모르고 있다. 스릴러 영화는 관객들에게 정체모를 살인마와 잔혹한 주검만을 쥐어준다. 구타가 있었는지 여부도, 시너가 얼마나 쌓여있었는지에 대한 판단도 본질이 아니다. 스릴러 영화의 본질은 오직 ‘누가’, ‘왜’

#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 울고 있는 내 친구여 /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 루시드 폴, 평범한 사람 中

그는 경동시장에서 장을 보고, 자전거를 타고 교회에 가고, 가게를 청소하던 레아 호프집의 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철거민이었고, 대책위원회의 고문이었고, 지금은 열사라고 불린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빚을 내 가게를 열었고, 하나하나 손때 묻혀 물건을 구입하고, 타일 한 장까지 직접 발라서 빚에도 불구하고 가게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평범한 사람이다.

그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덟 살 딸을 둔 아버지였고, 서른 한 살의 청년이었다. 무서워도 겁에 질린 티를 내서는 안 되는 경찰특공대였고, 망루까지 가는 길도 모른 채 등 떠밀려진 공무원이었다.

세상은 그들을 대척점에 놓고 대비시켜왔지만 사실 그들은 어떤 면에선 같은 편이다. 야만의 땅에 내몰려졌다 돌아오지 못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상황은 달랐지만 그들에게 역할과 상황을 준 이는 같았다. 그리고 그가 아마 이 스릴러의 살인마, 끝판 왕.





# 무엇을 보고 있었나

영화에 사용된 화면은 두 가지다. (영화 중간에 삽입되는 인터뷰 영상들은 제외하고) 하나는 칼라TV를 비롯한 진보언론들의 영상이고 또 하나는 경찰의 채증 영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채증영상을 통해 보이는 현장이다. 두 영상을 각각 씨줄과 날줄이라고 한다면, 두 실이 엮어내는 천이 성기거나 어색하지 않다.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었던 까닭이다.

경찰의 채증영상은 매우 흔들리고 혼란스럽다.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몰랐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염병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망루안의 사람들이 위대한 혁명을 바라는 투사나 사회의 전복을 바라는 폭도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들 역시 잔인한 살인마도, 피도 눈물도 없는 전투기계도 아니었다. 그 순간 그 곳에서 철거민들과 경찰특공대 양쪽 모두는 겁에 질렸고, 상황을 강요받았다. 그 곳은 마치 서로 죽일 것만을 강요받던 콜로세움.

앵글 한 번 변하지 않는 인터뷰와 흔들리는 채증영상. 영화는 집요할 정도로 그 혼란과 공포, 잔인함에 관객을 반복해서 끌어들인다. 경찰특공대의 그 그악스러운 잔인함은 어쩌면 공포심의 발로였을까.

# 여러분 부~자 되세요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은 대부분 노예였다. 그들은 싸울 것을 강요받았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권력은 그 열광을 지배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럼 콜로세움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살인자는 상대 검투사인가, 아니면 콜로세움 경기를 조장한 권력인가. 혹은 열광을 보내던 관객들인가.

2000년대 초반 한 신용카드 광고의 카피였던 “부~자 되세요”는 모델 김정은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카피는 온 나라의 주문이 됐다. 어딜 가든 사람들은 서로 부자가 되라고 말했다. IMF를 지나면서 신용카드를 비롯한 금융 자본의 비대화가 한국 자본주의의 최대 목표가 된 시점이다. 인생의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뿐이고, 인격은 그저 '돈'으로 추정됐다. 돈이 곧 삶의 유일한 목표이고, 종교가 되어버린 것.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6명의 사람들이 죽었을 때 ‘책임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외면했다. 철거민들의 죽음은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었고, 경찰의 죽음은 전문시위꾼 폭도들의 폭력 때문이 됐다. 이 외면과 전가의 무책임함에서 ‘대중’이라고 불리는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로마의 권력자들은 콜로세움으로 대중들을 통제했다. 그러나 그 살인 유희에 열광을 보낸 것은 대중이다. 열광이 호출한 잔인함.

“부~자 되세요”라는 주문이 호출 한 것은 무엇일까.





# 두 개의 문 - 선택

영화에서 ‘두 개의 문’은 얼마나 성급하게 경찰이 투입됐고, 이들의 안전조차 보장되지 못했는가를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하지만, 관객들에겐 또 다른 메타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하는 질문.

감독들은 기획의도에서 “관객대중 스스로 어떤 위치에서 이 사건을 경험하고 해석하고 기억하고 있는 지를 생각해 보는 것, 스스로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정에 동참시키는 것”을 이야기한다.

진상규명과정이란 경찰이 망루를 때렸는지, 시너가 얼마나 쌓여있었는지, 경찰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판가름 하는 일이 아니다.(사건의 정황과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보다, 용산으로 대변되는 이 풍경의 호출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 그건 가치의 전환이다. 인간적 삶에 대한 복원.

수전손택은 “꼭 강해지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소환장

‘스릴러’말고 다른 것으로 다시 야마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다. <두 개의 문>은 결국 주인공의 활약으로 살인마를 잡고 모두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도식적인 스릴러가 아니다. 이건 스크린 안에만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차라리 ‘소환장’에 가깝다. 관객을 배심원이 아니라 공범자, 혹은 주범으로 법정에 소환하는 듯했다. 그건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알약과도 같다. 영화는 현상을 전달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빨간약을 집어 드는 순간, 네오는 해방군이 됐지만 우리는 피고가 될테다. 그러나 반성의 기회는 주어질 것 같다.

아직 용산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MB정권이 건재해서도, 당시 경찰청장이 총선에 출마해서도 아니다. 아직 우리가 미처 반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은 거기부터다.


# 덧

1. 조금 더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싶다면 <두 개의 문> 배급위원이 되는 방법이 있다. 독립다큐멘터리의 제작환경에선 극장 개봉을 위한 최소한의 재정을 마련하는 일도 쉽지 않다. 제작단체 ‘연분홍치마’에 메일(ypinks@gmail.com)을 보내 후원금 3만원을 약정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영화를 볼 수 있다.

2. 아직 개봉하지 못한 <두 개의 문>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기회는 ‘인디다큐페스티벌’이다. 3월 24일과 27일 인디다큐페스티벌 용산특별전에서 상영된다.(http://www.sido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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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5508&page=1

단상


1.


영등포역, 그는 사람과 세상의 안녕을 끝없이 노래했지만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정말 눈길은커녕 욕설조차 주지 않는 철저한 외면.

조금 지나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섀도복싱을 하던 청년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면서 피식거렸다. 나도.
그는 저 사진속의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성금함에 돈을 넣었다. 다시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했다.

'이상한 사람'

자신의 가난을 아랑곳 않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이와 다른 사람의 눈길보다 대화가 필요한 이에게 말을 걸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2.
녹색당 창당대회에서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번거롭구나'

그 번거로움을 귀찮아하고 "뜻이 맞으니 그저 힘모으고 결의모아 믿고 맡기자"는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과분하다.

대중에 대한 신뢰. 같은 말을 믿지 않는다. 대중은 원래 우매하고 아둔하다. 정념적이고 즉물적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계몽하고 이끌만한 깜냥도 있지 않다. 나도 그 어리석고 우매한데다 정념적이고 즉물적인 대중이기 때문이다.

다만 공부하고 대화하며 쌓아갈거다. 그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말은 너무 잔인하다. 내게도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3.
희망광장 '꽃들에게 희망을' 콘서트를 취재하러 갔더니 허크와 윈디시티에 와이낫까지 나타났다.
취재를 핑계로 백스테이지에서 그들을 만났다. 아, 이런게 보람이구나.ㅋ

싸인받았다. 하하하.



4.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자기 상태예요. 글쓰는 사람은 글로, 음악 만드는 사람은 음악으로 현재 상태를 스스로 노출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수용자들도 서서히 걸러지면서 나중에 든든한 보루가 되는 것 같아요. 일일이 상대의 기준에 맞춰 흔들리다보면 나는 나대로 소모돼 만신창이가 되고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그래, 얘는 원래 하라는 대로 하는 애니까”라고 의식해요. 포지션이 괴상하게 역전되는 거죠. - 고현정, 씨네21 

 이 누나를 싫어 할 수 없는 이유다.

5.
쓸 말이 많을 것 같아서 열었는데, 별로 할 말이 없구나.
중요한건 말리 아니라고 한다. 위에 인용한 저 기사에서 고현정 누나는 "너무 징징거리는 남자는 별로"라고도 하시더라.

그러니까 노래나 하나.



이영훈 - 하품

이문세 노래 만들어주던 이영훈 아님.ㅋ

단상


1.
“길거리에서 우연히 시체를 목격한 일은 잊힐 수도 있겠지만 햄릿의 죽음은 영원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에 의해 형식화되지 않은 인생 그 자체는 혼란스러운 경험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 로버트 매키

지난 주 한겨레21을 읽다가 고나무 기자의 칼럼에 밑줄을 그었다.(고나무 기자도 인용해온거지만, 어쨌든ㅋ) 신문이나 잡지를 오려본게 얼마만이더라. 이외수 아저씨는 혼을 바칠 예술을 찾을 때까지 자살을 미뤄두었다고 했다. 혼을 다 할 예술, 그걸 아직 몰라서 내 삶은 혼란으로만 남아있다.

2.
'몸과 삶의 소외를 극복하는 지혜- 고미숙, 경향신문


건강은 다름이 아니라 내 몸과 소통하는 일이다.
사랑은 당신과 소통하는 일이고, 신앙은 신과 소통하는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은 대상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일이다.
우주 삼라만상과 대화 할 수 있게된다면 그것이 아마 해탈일거다.

자본이나 기술에게 강요된 기준으로 자기 몸과 대화를 닫아버려선 안된다.
강요된 욕망이 아니라, 나를 살아가게 해 줄 지혜를 갖는 일이 중요하다.
이게 어떻게 여성의 문제이기만 할까.
다만 물론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유독 폭력적이긴 하지만.

3.
편집장과 대화하다가 녹색당에 가입했단 얘기를 했다.
편집장은 정치활동을 존중하고 녹색당과 생태운동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줬지만,
'제도권 정당'이 되기위한 녹색당의 활동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존의 제도를 부수기보단 그 제도를 일단 인정하고 시작하는 일의 한계성에 대한 지적이다.
맞는 말이었다. 주인집을 부수겠다면서 주인집 망치를 빌려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당 가입은 별반 깊은 고민 없이, 창당에 한 손이라도 얹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이제와 할 수 있는 말이라야 김종철 선생님을 비롯한 여럿 선생님들의 고민이 녹아있으니 잘 될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다는 무책임뿐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급진적이고 더 재미있는 생태운동에 대한 고민을 확장시키는 일이다.

일단 돌아오는 일요일 녹색당이 창당한다. 이 사회의 새로운 역사가 됐으면 좋겠다.

4.
앞으론 주로 사회관련 기사를 쓰게 될 것 같다.
워낙에 작은 언론사고 기자 한 명, 한 명이 맡은 분야가 광범위해서 특정 지을순 없겠지만.
지금은 아직 출입 할 수 있는 곳도 거의 없고, 일에 익숙하지 않은 수습나부랭이라, 사무실에 앉아서 다른 기사나 자료를 뒤져 기사를 작성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요즘은 주로 언론사들의 파업에 관한 기사다. 재밌는 작업이다. 글을 쓰고, 쓴 글을 누가 읽어주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인것 같다. 하지만 재밌는 와중에도 더 하고싶은 일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어찌 생각하면 즐거운 딜레마.일수도 있을까.

여튼 2005년, 통일전사 이후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5.
간만에 만화책을 왕창 빌려왔다. 심심파적으로 만화방에 들어갔던게 화근. 시간내에 다 보지 못한 만화책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빌려왔다. 대여점이 버스 두정거장 거리라는게 함정.ㅋ 뭐 여튼 빌리배트는 엄청 재밌다. 잘만 진행해 나가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최고작이 될 수도.

아, 내내 외면하다 이제사 본 아다치 미츠루의 모험소년도 추천. 진베도 모험소년도 아다치 미츠루는 혹시 단편에 더 큰 역량을 보유한거 아닐까
   
6.



꽃다지 - 노래의 꿈

김장훈 꽃서트 공연후기 - 꼰대 아니고 어른


1.
오래간만의 공연이었다. 2년쯤됐을까.
그동안 공연에 뜸했던 까닭은 당연히 경제적 이유다. 김장훈같은 대형가수(?)는 공연비가 비싸다.
아니다, 사실 팬심이 조금 줄었기 때문이다.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이 아주 조금은 변하기도 했고, 왠지 김장훈의 노래가 예전하고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나기나 로망스같은 노래는 지금도 별로다. 기대했던 레터 투 김현식 앨범도 영 마뜩치 않았고.
그것도 아니다, 유달리 도드라지는 그의 정치적(?)행보가 더 큰 이유였겠다. 매번 노래보단 독도나 기부, 봉사, 부국강병같은 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일이 싫었다. 그건 여러가지 의미에서였는데, 그의 노래를 매우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첫번째고(이게 정말 첫번째다), 둘째는 '국가'라는 허상에 천착하는 그의 태도가 싫었기 때문이다. '사노라면'을 부를 때 깔리는 애국가 전주나, 화면의 태극기도 영 싫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정치성향에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이 얼마나 웃긴 일인지 알고 있지만, 그거야 '가수의 철학과 삶이 그의 노래에 고스란히 베는 법'이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로 떼우고.
여튼 '꽤나 충성도 높은 팬으로 그에게 기대한 것이 컸기때문에 마뜩찮은 부분도 많았다.' 정도로 정리해두고. 한동안  그렇게 그의 공연에 잘 가지 않았다.

2.
꽃배달 사업의 런칭쇼를 겸하는 공연이라는건 공연장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친구가 알아서 예매까지 해뒀기 때문에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갔다. 잘 매치가 되지 않는 조합일것 같다. 김장훈과 사업이라니. 기억이 맞다면 돈에 대해선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무던하려고 했던 그였다. 싫어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무던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수억씩 적자를 보는 공연도 계속하고, 단 한번의 연출을 위해 수천씩의 장치비를 들이기도 했었다. 지하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쾌적 할 수 있도록 거액을 들여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적도 있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청소년들에겐 반값으로 티켓을 판매한다. 부러 돈을 가져다 버리진 않지만, 마찬가지로 자기 주머니에 돈을 채우는 일에 무던하려는 노력.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김장훈인데 사업 런칭쇼라니. "변했어"같은 생각이나 말따윈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는 공연을 위해서라고 했다. 자기는 공연비를 조금이라도 낮춰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볼 수 있으면 하는데 혼자서만 공연비를 낮출 순 없으니 또다른 수익창출의 길을 열어두려는 것이라고 했다. 당당하고 떳떳하게 공연비를 낮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웃고 말았겠지만, 김장훈이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 판단이나, 과학적 근거. 이런거 아니다. 오로지 팬심이다.ㅋ

다만 든 생각은 '무던하려는 강박'같은게 보이지 않았달까. 표현이 웃기지만, 무던하려는 노력보단 정말로 무던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돈을 벌고 또 돈을 쓰고, 다시 노력해서 돈을 벌고. 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모습. 이건 아마 팬심 아닐거다.

3.
삶과 철학이 노래에 그대로 묻어나는 법이라고 위에서 말했었다. 어제는 왠지 그의 노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가 가창력의 절대 기준으로 삼고 있는 고음(아..8단 고음 드립은 정말 안 웃긴데..ㅋ)에의 의지를 버렸다는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더 크고 더 높은 소리를 원했다. 하지만, 억지부리지 않아 보였달까. 뭐 이런건 지극히 주관적인데다 합리적 근거같은게 있을 수 없는 영역이니까. 다만 그의 노래가 마구마구 슬프고 처절하지 않았지만,(이건 어느정도는 선곡의 문제기도 함. 꽃서트에서 부른 노래는 주로 신나고 발랄한 노래들이었) 계속 듣고 싶어질만치 재밌고 즐거웠다. 일테면 'I Love You'.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는 별로 신통치 않았는데, 이렇다할 고음도 클라이막스도 없는 이 노래가 참 좋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무엇보다 연출과 선곡이 좋았다.
"끝 곡은 언제나 늘 당연히 무조건 '노래만 불렀지'"라고 말했었는데, '노래만 불렀지'가 끝 곡이 아니라서 참 좋았다.
김연우 덕분에(?) 예전보다 더 유명해진 '나와 같다면'을 더 뒤로 배치하는 마음, '여행을 떠나요'나 '그대에게' 같은 노래를 앵콜로 부르면서 신나하던 장면, 그리고 그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르던 마지막 장면도. 어떤 강박을 지나온 듯한 느낌. 그래서일까 '내 사랑 내 곁에'는 더 슬펐고, '그대에게'는 더 신났고.

체코필과의 협연으로 만든 레터 투 김현식이 못마땅했던건 아마 '과잉'때문이었다. 그 앨범 내내그런게 느껴졌다. 과한 소리 과한 연주. '김현식 노래니까 더 잘해야 돼.'라고 생각했었던 걸까.

무튼 꽃서트의 노래들은 그랬다. 과잉하지 않는 노래. 적절했고, 힘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못나지 않았던.
꼰대같은 대충주의, 적당주의가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모욕같은거 당연히 절대 아니다. 최선을 다한 적당함. 이런거 얼마나 멋있나. 꼰대 아니고 어른. 앞으로 '형'말고 '아저씨'라고 부를까.ㅋ

5.
화면에 비친 김장훈의 얼굴이 자글거려서 좀 속상했다. 꽤나 시간이 지나갔음을 갑자기 알아버린 느낌. 하지만 나중에 잠깐 가까이서 얼굴을 봤는데, 잘생겼더라. 걱정은 패스. 하긴, 누가 누구 외모를 걱정하니.

사진은 정덤양. / 공연 당일에야, 덤양도 공연을 보러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역시 중국대륙을 뒤흔들었던 한류스타의 위엄이랄까.



6.

그 시간들과 사람들도 오랜만이었다. 자꾸 옛 일을 주절거리며 낄낄댔지만, 사실 그건 결코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때문에 가능했던 얘기다. 정말이지 세 얼간이들.ㅋ

2002년이나 2003년 어느 즈음의 대학로 모퉁이를 방황하던 건방진 청소년들은 지금, 처지를 비관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칼날을 갈고 있거나, 깨진 연애에 대한 슬픔을 개그소재로 삼거나, 서로에게 진심의 위로를 건낼만큼.의 지혜는 갖게됐다.

다시 10년쯤 지나서 또 오늘을 돌이켰을 때 낄낄거릴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다시 생겨서 좋았다. 오직 웃으면서 돌이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들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리워 하는 일이 욕망하는 일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도 그들도 알고 있다는 것 역시 참 다행이다.


7.

노래는 좋았던 I Love You. 로 할까하다가,
역시 나와 같다면. 하지만 굳이 어쿠스틱 버전으로 올리는 이유는
'나 이 냥반 꽤 예전부터 좋아했음'을 티내고 싶은 유치한 마음이라는 것도 솔직하게 고백해두자.ㅋ




8.

김장훈의 꽃민정음

꽃배달 서비스가 서로 달아 가격과 서비스가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마음을 전하고자 홀뺴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시러펴지 못할 노미 하니라
내 이를 어여삐녀겨
새로 꽃배달서비스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수비녀겨 날로쓰매
편안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

김장훈 꽃배달 '사랑'
http://www.janghoonflower.com
1644 - 0004


이건 팬심이다.ㅋ

신치림 - 모르는 번호






윤종신, 하림, 조정치가 합작한 신치림.
당연히 윤종신이 퓨로듀스하고 하림이 노래, 조정치가 연주할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림이 프로듀스했다고. 이 노래도 하림이 만들었다. 그래선지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의 느낌도 있고.
"나의 미련한 기억 속 추억이라 남아있는 건 헤어진 후에 제멋대로 쓰여진 다른 얘기" 같은 가사가.

뭐 일단, 소주 땡기네.
이제 윤종신이란 이름이 들어가기만 하면 기본적인 신뢰를 가져도 괜찮을 듯. 그게 예능이든 노래든. 어디서든 기본 이상을 해주는 사람이다. 다달이 곡을 내놓은 월간 윤종신 작업에서 보여진 성실함이 그 바탕이겠지. 며칠전에 티비에서 자기는 천재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또 그대로의 천재성.

감상포인트는 윤종신의 과잉된 연기와 조저치의 발연기를 가장한 자연스런 메소드 연기.
한라산 소주병과 사실 알고보면 각 일병정도에 안주도 식사용 뼈해장국 한그릇이 전부인데 무려 밤을 새워 뻗었다는 사실. 나 완전 예리한 남자다잉.

단상


1.
이제 일한다. 뭐 잘.. 될거다. 응?

2.
그래서 당분간 조리사 자격증은 안녕. 계속 모래알로 밥해야겠다.

3.
이번주 한겨레21 커버스토리는 '진(중권)의 전쟁'. 재밌다. 근래 본 한겨레21중 제일 재밌는 듯.
진중권이 말을 밉게해서 문제지만, 딱히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공식입장은)사민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이지만, 사실 본질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미국식 자유주의자.라는 이택광 교수의 평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지만 한국사회처럼 상식도 합리도 없는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박노자, 김규항보다 더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엔 더 크게 끄덕끄덕.
단기필마로 이 무식한 사회에서 먹물의 소임을 다하는, 정치력따위 전혀없는 그는 어쩌면 무사. 그 중에서도 문파와 계보를 갖지 않고 홀로 정처없이 싸움터를 찾아다니는, 혹은 싸움터를 만들고 다니는 강호의 외로운 낭인무사. 그를 딱히 응원하지는 않는다. 원래 외로운 낭인무사는 응원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강호를 유랑하다 어느 객잔에서 우연히 만나면 잘담근 죽엽청이나 한 주전자 배달해줘야지.ㅋ

4,
공감에 강허달림 공연을 보러갔는데, 어느 블로그에서 봤다는 2집음반 평을 얘기하더라. 듣으면서 '나랑 비슷한 평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 싶었는데.. 계속 듣자니, 아무래도 여기 들어왔다 간 것 같다.
깨달음은 앞으로 꼬박꼬박 김수현이나 유아인, 박민영, 신세경, 송중기 따위의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이 잔뜩 들어가는 글을 써서 그네들이 내 블로그에 들오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겠다는 것 쯤.
하지만 그동안 이 블로그에 제일 많이 등장한 이름이 김어준, 정봉주, 나꼼수라는게 함정.ㅋ

5.
한동안 '대화의 즐거움'이란 말을 생각했다. 대화가 즐거운 상대가 마땅치 않으니까.
그러니까 일테면 원피스를 얘기하면 나루토로 받아주고, 들국화를 떠올리면 김현식으로 이어주는 대화.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주는 호사를 바라지도 않는다. 개떡같이 얘기하면 못해도 개떡은 받아주는 대화.
찰떡같이 얘기했는데, '찰떡 맛있으니까 두번머거'이러고 앉아 있으면 귓방맹이 날아가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뭐 여튼, 얼마전엔 대화가 즐거운 어느 후배랑 술을 마시다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난 그냥 대화가 즐거운 말벗 몇몇 외엔 다 싫다고 했더니, 이 친구는 끝까지 사람들에게 말을 걸겠다고 한다.
오호, 인격자다. 사실 삶이고, 영화고, 운동이고, 뭐시깽이고 본질은 그것인데 말이다. 끊임없이 말을 거는 것.
근데, 알면서 왜 이러니.

6.
프로야구 승부조작에 엘지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하여튼 안좋은 일에는 결코 빠지는 법이 없다. 일본 고교야구 만화 에이스 투수 간지를 뽐내던 박현준이 지목됐다. 본인은 아니라고 극구부인하고 있다니까 지켜봐야겠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법이 없으니까 왠지 불안하다. 이 기회에 야구와 엘지에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면 좋겠지만, 아마 안될거야. 젝일.

7.
저번에 충동적으로(!) 시작한 술집유랑기의 2편과 3편을 각각 반절 정도씩 써놓고 더이상 쓰지 못하고 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냐. 그냥 쓸 말도 없고 귀찮은거지..ㅋ 자꾸 쓰다보니 한남동 시절 개골목 생각만 난다. 술집에 대한 얘기가 뭐 별다를게 있겠나. 결국 공간을 빌은 시간들에 대한 기억 얘기. 그렇다면 이렇게 저렇게 말도 일도많았던 그 할머니집 닭도리탕과 서비스 계란말이와 소주들이 가장 절절할밖에. 아, 개골목 가고싶다. 이젠 무슨 엄청 비싸보이는 수입 오도바이 가게가 된것 같던데.

8.
우리동네 편의점에서 주말 낮시간에 일하는 알바생은 참 친절하다. 이제 대학 2학년쯤 돼보이는 어린 여성.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명랑 쾌활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듯이 인사를 하고, 나갈때도 고개 숙여 인사한다. 덩달아 나도 반갑게 인사하게되는. 하지만 인사말고 그 외의 모든 부분에서 너무 서비스 정신에 입각해있는 모습은 보기에 마뜩찮다. 나도 편의점 알바 해봐서 알지만 그렇게 교육하니까 이 착하고 긍정적인(멋대로 성격파악 완료했음) 친구가 배운대로 일하는 것이겠지만. 편의점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도 무릎꿇고 주문받는 알바생들 난 부담스럽고 민망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114에 전화했을때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9.
휘트니 휴스턴은 죽었고 패티김은 떠났다(지만 1년동안 장기 투어 한다고) .
하지만 강허달림은 2집을 냈고 아이유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응?
늘 새로운 것은 있게 마련이고 다한 것은 떠나게 마련이다.
정해진 시각을 어김없이 지는 석양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 다시 또 떠오를 것을 아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이유 노래나. 슬픈인연. 이게 슬픈 노래의 거의 최고봉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장혜진이 부른 것보다 이게 훨씬 좋다. 이건 주관이라곤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올곧은 팩트다.
 

The Battle for Jeju Island: How the Arms Race is Threatening a Korean Paradise - By Robert Redford


미국의 가장 유명한 배우중의 한 명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난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노래든 영화든 글이든 삶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명과 평화, 민주, 인권의 가치를 바다건너 나라의 일에 대한 연대로 표현해주는 이 나이든 배우이자 감독의 마음이 좋을 것이라는건 사실 그의 영화에서 이미 알았다.

세계최고, 유명인, 특히 미국 유명인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양반님네들이 이 세계최고의 유명인이 해주는 충고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조언대로 너무 늦지 않은 행동이 이 파괴행위를 막을 수 있을테다.

원문 링크
번역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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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The Battle for Jeju Island:
How the Arms Race is Threatening a Korean Paradise

Jeju Island

Imagine dropping fifty-seven cement caissons, each one the size of a four-story house, on miles of beach and soft coral reefs. It would destroy the marine ecosystem. Our imperfect knowledge already tells us that at least nine endangered species would be wiped out, and no one knows or perhaps can know the chain reaction.

That's what is about to happen on the pristine coastline of Jeju Island, a culturally and ecologically unique land off the south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It seems motivated by the United States' urge to encircle China with its Aegis anti-ballistic system -- something China has called a dangerous provocation -- and by the South Korean navy’s construction of a massive naval base for aircraft carriers, submarines and destroyers to carry Aegis

If you’re wondering why this isn’t better known, it’s certainly not the fault of Jeju villagers. Those tangerine farmers and fishing families have been camping out on the endangered coast for five years, putting their lives on the line to protect it. They include the legendary women sea divers of Jeju who harvest abalone on lungpower alone, knowing that oxygen tanks could cause them to over-harvest.

Save Jeju Island activists

But Jeju’s distance from the mainland has combined with military secrecy and misleading official reports to preserve the global ignorance locals have come to refer to as “the Jeju bubble.” As a result, hundreds of acres of fertile farmland have already been bulldozed to prepare for concrete, and caissons would extend this dead zone into the sea.

I learned about this last summer when I read an Op Ed in The New York Times called, “The Arms Race Intrudes on Paradise” by Gloria Steinem. As she wrote:

There are some actions on which those of us alive today will be judged in centuries to come. The only question will be: What did we know and when did we know it?

I think one judge-worthy action may be what you and I do about the militarization of Jeju Island in service of the arms race.

Jeju isn't just any island. It has just been selected as one of the Seven Wonders of Nature for its breathtaking beauty, unique traditions and sacred groves. Of the world's 66 UNESCO Global Geoparks, nine are on Jeju Island. It is also culturally unique with a tradition of balance between people and nature, women and men, that causes it to be called Women’s Island. It is also known as Peace Island.

Save Jeju Island grafitti

Now, the proposed base is near a UNESCO-designated Biosphere Reserve, which is also a nationally designed environmental protection area. Indo-Pacific bottle-nosed dolphins spawn there because of the rich biodiversity of the coast. The South Korean navy claims endangered species could be relocated and the coral beds reconstituted; something both scientists and villagers reject as absurd. The massive cement structures would not only crush all marine life, but block out sunlight critical to other ocean-based species, and the frequency signals from submarines would bring painful deaths to whales. It has also been a fact of life surrounding military bases that human cancer rates, violence and sexual violence have increased.

Save Jeju Island activists

I am moved and impressed that the residents near the coastline have been waging a fierce nonviolent struggle to stop the base. They’ve used their bodies to block bulldozers and cement trucks, sacrificed their personal freedom, been beaten and imprisoned, and paid heavy fines for “obstructing” the business of the navy and such construction companies as Samsung and Daelim -- all to protect their homeland and an irreplaceable treasure on this planet Earth. Though 94 percent of the villagers voted against the bas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s proceeding with construction. It is also bound by treaty to let the U.S. military use all its bases.

I think the least that environmentalists, peace activists and supporters of democracy can do is express our outrage. You can take action now by visiting the Save Jeju Island Campaign website.  As individuals, tourists, professionals and citizens, you may have added access to pressure points that only you know. For example, 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will be holding its World Conservation Congress on Jeju Island from September 6 to 15, 2012; something that should be used as leverage.

Secrecy and hypocrisy have let this military base get under way. Facts and activism can stop it before it’s too late.

For more information and to get involved go to: SaveJejuIsland.org

Top photo: Matthew Hoey of SaveJeJuIsland.org sits at Guroumbi Rock, a spiritual site that is now being destroyed, Credit: Rain Jung. Second: Local activists guard the Guroumbi Rock site. Third: Street art. Bottom: Local activist Sung-Hee Choi puts her body in front of a bulldozer. Credit: SaveJejuIslan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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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

제주도를 위한 전투:
군비 경쟁이 어떻게 한국의 파라다이스를 위협하는가



수마일에 걸친 해안과 부드러운 산호초 위에 놓일 4층 높이의 시멘트로 만들어진 57개의 잠함(수중 작업용 상자)을 바다 속으로 집어 넣는 것을 상상해 보자. 이것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으로도 최소한 멸종위기에 빠진 9가지 종의 생물이 사라질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생태 연쇄 반응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한반도 남해안에서 떨어져 문화적으로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유일무이한, 태고의 상태를 간직한 제주도 해안선 위에서 막 벌어지려고 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이지스 탄도탄 요격 미사일 체계(중국측에서 위험한 도발이라고 주장한)로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미국측 주장과 한국 해군의 항공모함, 잠수함 및 이지스함을 위한 대형 해군 기지를 건설 야욕이 맞물려 동기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냐고 궁금하겠지만 이건 제주 주민들의 잘못때문이 아니다. 그 지역의 감귤 농부와 어부들은 이미 5년 동안 목숨을 걸고 위험에 처한 바닷가에서 야영을 하며 농성해 왔다. 그들은 산소탱크를 사용하면 과다 채취할 것을 염려해 자신의 호흡에만 의존해 전복을 따는 전설적인 제주 해녀들이 포함되어있다.

군사적 비밀성과 세상에 무지한 지역민을 오도하는 공식 보고서가결합되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는 "제주 경기 부양"의 미명하에 중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수백 에이커의 비옥한 경작지는 이미 콘크리트 작업을 위해 불도저로 밀어 냈으며 잠함들(caissons)은 이 죽음의 지역을 바다속까지 연장할 것이다.

나는 이 것을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작성한 뉴욕타임즈의 "파라다이스에 침투하는 군비 경쟁"이라는 기사를 통해 작년 여름에 알게되었다.

그녀는 '오늘날 살아있는 우리들이 해내는 어떤 행동들은 다가올 수세기에 걸쳐 심판받게 될 것이며, 오직 한가지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알았으며 언제 그것을 알았느냐라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나는 군비 경쟁에서 제주도의 군사화에 대해 심판할 가치가 있는 하나의 행동이 당신과 내가 할 그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는 그저 어떤 섬이 아니다. 여기는 숨막히는 절경과 유일무이한 전통 및 신성한 작은 숲으로 "7대경관"에 막 선택된 곳이다. 세계의 66개 유네스코 글로벌 지오파크 중에 9개는 제주도에 있다. 이 곳은 또한 여자의 섬이라고 불리는 원인이 된 여성과 남성, 자연과 인간 사이의 전통적 균형을 지닌 문화적으로 유일무이한 곳이며 평화의 섬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는 유네스코 지정 생태 보존지역이며 국립 환경 보호 지역 인근에 있다.인도-태평양 청백돌고래는 해안의 풍부한 환경 다양성으로 인해 그곳에서 번식한다. 한국 해군은 멸종 위기의 생물은 다른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으며 산호초는 복원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과학자들과 지역민들은 허황된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초대형 세멘트 구조물들은 모든 해양 생태계를 도태시킬 뿐 아니라 다른 해양 생물들에게 중요한 햇볕을 차단하며,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통신 신호는 고래들을 고통 속에 죽게 만들 것이다. 또한 군사지역 인근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암 발생율을 높이거나 폭력 및 성범죄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나는 그 해안선 인근의 지역민들이 해군기지를 중지시키기 위해 치열하지만 비폭력적 투쟁을 해온 것에 감동 받았다. 그들은 불도저와 시멘트 트럭을 막아내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이용했으며 그들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였지만 얻어 맞고 수감되거나 또는 삼성이나 대림 같은 건설회사의 공사 방해라는 죄목으로 큰 벌금을 물어내야 했다. 이것은 모두 지구상의 돌이킬 수 없는 보물과 그들의 고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94%의 주민들이 기지 건설에 반대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미국의 군사적 용도로 사용하게 하기 위한 협정과 연계되어있다.

나는 환경주의자들, 평화 운동가들 및 민주주의 옹호자들이할 수 있는 최소한 행동은 우리의 분노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본다. 당신은 "제주도 살리기 운동 본부" 웹사이트를 방문함에 의해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개별적으로, 관광객으로서, 학자 및 시민으로서, 당신은 당신만이 아는 압력 포인트를 추가 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렛대로서 사용될 수 있게 자연보존국제연합은 2012년 9월 6일 부터 15일까지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 보존 회의를 연기하는 것등을 포함한다.

비밀 및 위선이 이 군사 기지를 수행하게 하였다. 진실과 행동으로서 더 늦기 전에 이것을 중지시킬 수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가련하고 무식한 꼰대들의 영화




# 온통 나쁜놈

보통 건달영화는 명료한 선악의 대비를 통해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보여주거나, 아니면 악한이 될 수밖에 없었던 타락의 사정을 보여주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악인의 압도적인 간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적 소임을 한다. 초록물고기가 두번째 같은 경우라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던 대부가 세번째 경우겠다.
그런데 이 영화엔 셋 다 없다. 타락의 과정도 없고 압도적인 간지도 없다. 선악의 대비 따위도 당연히 없다. 온통 처음부터 원래 나쁜 놈들뿐이다. 비리 세관원에 무식한 깡패다. 뭐 착한 놈이 있어야 타락의 과정도 있지.

비리세관에겐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줄줄이 달려있다. 뭐 먹고살게 있다고 애는 그렇게 낳아놨는지. 부수입이 짭짤한 곳으로 오기 위해 이천이나 찔러줬다. 찔러준 놈이 있으니 받아먹은 놈도 있겠지. 사이좋게 다 같이 챙겨먹어 놓고 책임은 혼자지란다. 온통 나쁜놈밖에 없다.의리에 죽고산다는 건달들도 마찬가지다. 걔넨 원래 사회가 내놓은 쓰레기, 깡패아닌가. 그래서 비리세관은 늘 자기는 건달 아니고 공무원 출신이라는 말로 자신을 그들과 분리한다.

그러고보면 딱히 나쁜놈이라고 할 것도 없다.그들은 다 나쁜놈이니까 동시에 다 착한놈이다. 선과 악은 다분히 상대적인거 아닌가.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면 안된다는 도덕법칙? 그런건 정글에선 통하지 않는 법이다. 나쁜놈들만 잔뜩 모여있는 곳, 그건 정글이다.

그래서 딱히 그 시절은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아니다. 그냥 그들의 전성시대. 그래서 지금도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아니다. 좋은놈이 없는데 나쁜놈은 또 어딨나.그때나 지금이나 당하는 놈과 이기는 놈만 있을 뿐. 결국 이기는 놈 전성시대. 근데 이기는 놈이 전성시대인건 당연한 얘기잖아. 그러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늘 니네만 전성시대'.


# 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당신이 얼마나 아까운 인재인지, 얼마나 한스러운 삶을 살았고, 기회만 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부귀영화를 누렸을지를 열변하시는 아버지. 어디어디의 누구누구를 알고, 어디에서 무슨 직함을 달고있는 누구와 어떤 친분이 있고, 티비에도 출연하셨고, 동종업계에선 얼만큼의 권위를 갖고 있는지를 항상 자랑하셔야 하는 아버지. 하다못해 어느 동네의 어느 음식이 맛있고, 어디로 가기 위해선 어느 길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도 늘 알고계셔야 했던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마치 영화는 아버지를 보고서 만든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건 아마 우리 아버지들의 공통적인 허세고 꼰대스러움이겠죠. 그래서 특별히 당신을 미워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당신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요.

영화를 보면서 웃겼던 에피소드가 있어요. 주인공 최익현이 밥상에서 아들에게 영어 문장을 외게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났습니다. 앞으로는 영어가 살 길이라는 대사에서도요. 그건 마치 한 15년전 우리집 풍경이잖아요. 영어 책을 달달 외게하고 외우지 못하면 윽박지르며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당신과 제 모습말입니다. 더 웃긴건 당신의 예견대로 이제는 한문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도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웃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안타까운건 같은 시대와 같은 상황에서 최익현은 마침내 승자가 됐어요. 아들은 검사가 됐고 손자의 돌잔치를 유람선에서 할 만큼 부도 쌓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역시 청탁은 이루어지고 그를 통해 아버지의 권위는 보여집니다. 하지만 내 아버지 당신은 권위 대신에 늙어가는 모습만 있군요. 아마 제가 최익현의 아들처럼 검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겁니다. 당신 말대로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봤어야 했나봅니다. 하지만 너무 서러워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이 역시 우리 아버지들의 공통적인 비극이니까요. 뭐, 검사 아들 둔 아버지가 얼마나 있겠어요.



# 최민식과 하정우

최민식은 연기를 잘한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늘 부담스럽다. 과잉돼있달까. 벌겋게 부릅뜬 눈으로 침튀겨가며 소리지르는 광기어린 연기가 매 순간에 적절한건 아니니까. 이 영화에서도 그는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중년 남성의 허세와 꼰대기질을 드러내는데 그 특유의 과장과 과잉된 연기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 일상적이고 더 소시민적이면서 더 나쁜놈같기도 하고 더 착한놈같기도한 더 찌질한 연기.
를 바랐다면 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요.ㅋ 나 왠지 송강호라면 해냈을거 같은 기대를 했다면 명배우 최민식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요.ㅎ

하정우는 추격자부터 비스티보이즈와 황해까지, 매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건 조금 어눌한그의 발음이나 발성때문일수도 있지만. 여하튼 심각하게 폼잡으며 주먹말곤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다 가진양 허세를 부리던 건달두목 역할엔 아주 적절했다. 그리고 최익현은 절대가질 수 없었던 일대종사의 위엄도(건달세계에만 국한된). 중국집에서 최민식 독대하던 장면은 정말 좋았다. 하지만 왠지 하정우의 한계를 확인한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그보단 조연배우들의 연기가 더 눈에 들었다. 김성균이나 김혜은, 조진웅같은. 특히 김성균은 깜놀. 그 찢어진 눈을 더 찢어가거며 무게를 잡다가, 최익현을 파묻으며 낄낄거릴 때 연기라기보단 진짜로 최민식한테 불만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무사 무휼이야 뭐 워낙에.ㅋ

++
TV조선 자본이 투입됐다고 보지않겠다던 공지영은 좋은 영화 안보면 손해보는건 저 뿐이라는걸 모르나. 도가니에도 MBN자본 들어갔는데. 사실 이 영화가 그런 무식하고 가련한 꼰대들의 영화다.

단상


1.
담배를 사러가는데 별로 춥지 않았다. 심지어 얇은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나갔는데. 그러고보니 벌써 입춘도 지나 이월중순이다. 며칠 있으면 다시 봄. 봄이 설레기보다 겨울이 섦다.

2.
며칠 전엔 남에게 내가 쓴 글을 보냈다. 미루다 미루다 새벽녘에야 졸린 눈 부비며 쓴 글이라는 핑계가 구차하지만 그 핑계말곤 붙잡을 위안도 없이 졸렬하고 부끄러운 글들이었다. 정말이지 손발이 퇴갤할 것 같아. 사실 언제 쓴 글이라고 부끄럽지 않았냐만은, 그 부끄러움에도 강도란게 있는 법이니까. 그러고선 또 부끄럽지 않은 척, 후안무치하게 글쓰고 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지껄여댔는데, 그건 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이렇게 부끄러웠다고 토설하는 알량한 자기위안적 고백은 또. 침 세번 뱉는 것으로 모든 선언에 신뢰감을 부여하던 그 어린 놀이가 더 진정성 있어뵌다. 이건 대낮의 길 한복판에서 수음을 하는 짓.

3.
스물 일곱해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야식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출근도장을 찍고있을 이 시간에 치킨과 맥주생각이 간절하다. 물론 먹지는 않는다. 그럴 돈이 없는게 오직 한가지 이유다. 하하하.

4.
먹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올 해엔 자격증을 하나 따고싶다. 조리사 자격증. 자꾸 내 요리 실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동분자들이 나타난다. 난 모래알로 밥을 짓고, 솔방울로 탕수육을 만드는 인스턴트 음식계의 한복례. 맛있는 음식보다 종이쪼가리를 실존적 증거로 채택하는 우둔한 혓바닥들을 전부 아오지행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다시금 새벽별을 보며 연필을 잡기로 다짐했다. 요리실력을 증명하고자 국자와 후라이팬보다 연필과 참고서를 잡아야하는 이 문화적 후진국의 앞날이 심히 통탄스럽지만, 난 왜 또 그걸 굳이 증명하고 싶어서...응?
그냥 숙원사업인 대학가 인심좋은 털보뚱보 아저씨네 술집의 주방장겸 호스트겸 디제이를 위한 고되고 묵묵한 고련과정이라고 생각해야지.

5.
오래간만에 나온 강허달림 언니의 신보. 당연히 좋다.
하지만 왠지 같이 찌질하게 우울해서 위로되던 누나였는데, 어느 날인가 더 어른스러워지고 여유도 생겨서 그저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막내이모가 된 느낌이랄까. 그래도 당연히 좋다.
한국말로 노래하는 여성 중에서 지금은 이 언니가 (아마)1등 아닐까.


강허달림 - 꼭 안아주세요

6.
얼마전엔 생활이 궁핍하고 고되다며 질질짜는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 도시가스가 끊겨서 집안이 냉골이고 당장 내일 식비와 차비가 걱정이고, 통장에 기십만원도 없는 생활이 비참하다고 했다. 그 친구의 힘듦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얌마 그거 내 얘기잖아, 나 안 힘들면 병신인거냐?' 어쨌든 술값은 옆에 앉았던 돈 잘버는 친구가 냈다. 난 사실 그게 더 비참했다.

7.
예전에 엄청 좋아하며 따라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우리학교 총학생회장이었는데, 지금도 "그때 형이 삼계탕 사주면서 꼬시지만 않았으면 지금 이렇게 살고있진 않을거"라는 농담을 한다. 여하튼 내 대학생활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이다. 난 엄청 착하고 말 잘듣는 후배여서 그 양반도 나 되게 예뻐했던거 같다. 내가 그 양반 군대갔을 때 명절때마다 명절음식 싸들고 면회 다니던 그런 착한 후배다. 얼마전에 오래간만에 그 양반하고 술을 마셨는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된다는걸 억지에 억지를 써서 그 양반 사는 동네까지 찾아가서 술을 얻어마셨다. 내 생일이었다. 여전히 변변치못하게 살고 있는 내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사실 조금(보단 훨씬 많이) 못마땅했다. '변절'운운하는게 아니다.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키고 그 삶에 대한 확신으로 다시 스스로를 위안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에겐 그 시절의 운동도 그런 것이었을까. 또 당분간 만나지 않을 것 같다.

8.
낮잠을 자고, 시덥지 않은 책을 읽고, 개콘 재방송을 보면서 낄낄거리다 식은 밥에 남은 반찬을 몽창 때려넣고 특제 비빔밥을 만들어 우걱거리면서 뉴스를 봤다. 쌍용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앞으론 모래알로 밥을 짓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까끌거려서야.

9.
목수정씨 좋아했는데, 이제 별로 안좋아하련다.
정명훈 사건에서 드러난 태도는 예민함의 발로라고 생각했고, 그 예민함이 남한사회처럼 두루뭉술이 미덕인 사회에선, 특히 좌파에겐 더욱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예민함이 다소 감정적으로 발현되는 것도 토론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일이고 지속되는 토론은 결국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예민함과 정연한 논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수정씨가 선언하듯 사건을 종결하고 블로그를 닫았을 때도 예민한 감수성에 진중권의 비수같은 말들이(사실 그의 언어에 따듯함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같은게 없는건 사실이니까) 상처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목수정씨는 얼마전 다시 블로그를 열었다. 그리고 '나꼼수와 비키니 사건'에 대한 글을 포스팅했다. 그녀는 이 일을 두루뭉술하게 넘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포용과 관용이라고. 어디에서도 예민함은 찾기 어렵다. 어느 순간에, 어느 지점에만 예민하고 또 다른 순간엔 다시 두루뭉술, 포용과 관용을 운운하는 태도에서 명확한 정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사실 자신에 대한 공격과 자신이 애초에 상정한 '적'에게만 발로되는 공격성으로 해석하는게 되는 것이 어쩌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야초부터 나꼼수를 옹호하는 태도도 영 마뜩치 않은 판이었다.
그녀의 책들을 통해서 그녀의 삶이나 그녀의 글, 바라는 세상에 대해 동조하고 또 그녀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호감은 말한 것처럼 그녀가 갖는 예민함이 바탕이었다. 아끼고 좋아하는 팬심에서 하는 말이다. 좀 정신차리고 살자.

10.
하이쿠나 한 편.

이 세상은 /
나비조차 먹고 살기 위해 바쁘구나

비키니응원 논란에 대하여 - 뿌리 깊은 나무는 도대체 어디로 본거야


지난 주말 비키니응원 논란을 보다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생각났다. 좀 뜬금없이. 남한사회 똥멍충이 마초이즘의 여성에 대한 객체화에서 로자를 떠올리는 건 사실 그녀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ㅋ

맑스의 친구였고 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대장 격이던 베른쉬타인을 수정주의라 비판하고 그 레닌과도 맞짱을 뜨던 이 혁명가는 장애를 가진 유대인이다. 그리고 여성.

로자는 그랬다. 그녀는 여성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유대인이라서, 코뮤니스트라서 받아야 하는 온갖 모순을 직접 맞닥뜨려야 했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의 삶의, 세상의, 혁명의 온전한 주체에서 비껴 서지 않았다.

언젠가 로자가 스파르타쿠스단을 이끌던 혁명가, 레닌에게 거의 유일하게 대항 할 수 있었던 이론가로서의 평가보단 흔치않은 '여성 혁명가'로서만 소비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끝까지 그녀는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보다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로 존재한다. 더욱 속상한 일은 그 객체화의 주범이 그녀를 동지라 말하던 이들이란 사실이다.

남한사회는 여러모로 많이 구리지만 그중에서도 젠더문제에 대한 인식은 구림오브 구림, 병신큰잔치. 여성의 성이 정치주체인 남성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성들에게 호출되는 것은 참여가 아니라 도구화다. 자발적인 참여니, 표현의 자유니를 운운해선 안 된다. 그 행위, 그러니까 여성의 특정 성징을 통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서로 말 안 해도 알고 있잖나. 그렇게 표현의 자유가 소중하다면 왜 성범죄는 여성들의 야한 옷차림 때문이고 여성들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거냐. 여성이 성의 주체로서 나서는 일은 음란이고,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객체화 되는 일은 자유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얼마나 오만하고 안하무인한 모순인가.

자신만은 그 유치한 마초이즘의 수혜자가 아니라는 알량한 자기위안 또한 역겹다. 이미 남한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것을 깨트리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것은 이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공범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사회가 얼마나 남성 우월주의적 가부장제인지를 인식조차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지보다는 외면, 죄악에 가깝다. 그러면서 그것은 진보라는 가치로 에둘러 포장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누구더라, '춤 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저 즐거운 진보운동을 운운하는 꼼꼼한 분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기도하다. 난 그 유치한 장단에 춤 출 수가 없다. 그건 유쾌보단 유치에 그보단 폭력에 가깝기 때문이다.

'고작 이런 사건 하나로 분열을 일으키면..' 운운할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젠더의 문제는 고작을 운운할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그건 이 사회의 인권과 민주를 가늠하는 바로미터. 그리고 무엇보다 주체의 확장만이 운동의 본질이라 것을 잊지 않는다면 이런 여성의 성에 대한 도구화는 다신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정치주체의 확장을 그렇게 얘기하던 뿌리 깊은 나무는 도대체 어디로 본거야. 우라질.

단상


1.
난생처음으로 당원가입을 했다. 녹색당원이다.
난 정당정치에 회의적이지만 그것은 오직 권력획득만을 지상의 목적으로 하여 개개의 정치주체를 타자화 시키는 기성의 정당들. 나아가 스스로 진보정당, 좌파정당이라 칭하면서도 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당들과 '그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이고 회의다.
권력보단 가치와 진보에 방점을 찍는 정당에 대한 기대는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정당적 정당'에 대한 김종철 선생님의 고민에 동의한다.

여하튼 이번에야 알았는데 5개도시에서 각 1000명 이상씩, 5000명의 당원을 갖추지 못하면 정당으로 발기하지 못한다고 한다. 부랴부랴 고정수입도 없는 주제에 가입한 이유다. 딱히 지지 정당이 없다면 당 가입을 고민해주시라. 우리 사회도 변변한 녹색당을 가져볼 때가 이미 지났다.

2.
한겨레21 ; 19세 미만 청소년들은 보지 마시오

'폭력을 가르치는 만화'라는 말에 헛웃음을 짓지만 사실 씁쓸한 일이다.
폭력을 가르치는 것은 교실 안과 밖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들이다. 그 폭력을 받아들이는 일과 행사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또 그 폭력 자체가 다시 폭력을 잉태하고 대물림한다.
만화가 폭력을 가르친다는 말은 틀렸다. 다만 이것은 폭력을 가리킬 뿐이다. 가르치는 것과 가리키는 것의 차이도 모르다니, 학교에서 폭력말곤 배운게 없나보다.

3.
가슴응원 운운해서 뭔가 봤더니 또 나꼼수고 정봉주다.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통해 성적 환상을 유도함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여성을 오직 성적 대상으로만 삼는 일이다. 그것은 여성을 엄연한 정치주체로서 인식하지 않고 타자화하는 것이다. 맘에 안드는 것은 이런 마초이즘이 남한사회에서 진보를 자처한다는 것이고, 분노하는 지점은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똥멍충이들이 스스로를 영웅시하는 것이다. 진지함을 혐오하고 낄낄거리면서 즐겁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네를 운운하면서 이번엔 표현의 자유니 하는 뜬구름 잡는 얘기를 들고나오는 짓거리라니.

링크의 글이 이 사건에 대한 분노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듯.

4.
결국 엠피쓰리를 샀다. Cowon S9.

중고라 이렇게 으리번쩍하진 않다.


G마켓에서 싸구려 중국산을 사려고 했으나, 중고나라에서라면 같은 가격에 좋은 메이커 제품을 살 수 있다는 조언에 광클질. 2천만 스마트폰 유저들의 과거 엠피쓰리는 어디로 간 것이냐는 나의 한탄에 대한 대답은 중고나라가 갖고 있었다. 무려 3만원에 저 좋은 엠피삼을 겟하여 이제 나도 다시 귀가 풍족한 남자가 됐다. 얼마전에 나온 달림언니 음악을 계속 못듣고 있었는데, 어제 오늘 온종일 강허달림을 들을 수 있었다.ㅋ


5.

어제 술자리에서 온갖 말들이 오갔지만 가장 피치가 올랐던건 역시 드라마 얘기.

하이킥의 결말에 대한 예상을 쏟아냈는데, 납득을 얻어냈다. 그건 90회쯤 되면 구체적으로 설을 풀어보기로 하고. 어쨌든 가장 초미의 관심사인 이적의 아내에 대해 난 크리스탈을 예상한다. 이건 맑스주의적 문화분석과 라캉적 정신분석학에 의거한 데카당스적이고 다다이즘에 닿은 에솔로지 연구의 일환이다. 그러니까 헛소리란 얘기.ㅋ


6.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가 두 무리의 남자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첫번째 무리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소년들이었다. 주제는 당연히 여자였고, 그 중의 한 명이 꽤나 진지하게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듯 했다. 그 또래의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욕설일색인지 알고있기에 단 한마디의 욕설도 뱉지 않는 그들의 대화에서 그 순수함과 진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런거지않나, 그녀를 상대로 음란한 상상을 하거나 거친 표현을 하는 일 자체가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거.

갈아탄 버스에서 만난 두번째 무리는 서른을 갓 넘긴 듯 보이는 직장인들이었다. 지들끼리 속닥거리며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내가 비록 한쪽 귀가 안들리지만, 이런 얘기는 엄청 잘 잡아냄) 갖은 음담패설과 어디 여자가 예쁘고 어디가 비싸다는 얘기를 하면서 낄낄거리는 이들을 보다 문득 아까 봤던 소년들이 생각났다. 그 소년들은 나중에 저런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랑의 대상과 욕구의 대상, 결국 여성을 대상으로서만 바라보는 시시껍절한 멍충이 마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7.



Travis - Driftwood

어제 술자리의 잡설들 중 또 하나.
"오아시스도 없으니 이젠 트래비스가 1등인가?"
"아직 보노 영감님도 계심.ㅋ"

뭐 어쨌든 트래비스.

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1 - 신촌, 인간실격패 알고보니 부전승


블로그의 가장 큰 미덕은 알찬 정보의 손쉬운 전달이라는데
내 블로그는 그동안(고삐리때 쓰던 블로그인부터 싸이월드와 이글루스를 거치는 동안 내도록) 허랑방탕한 자학일기와 누구나 아는 시시껍절한 정치얘기, 되도않는 내 멋대로의 영화얘기가 주를 이뤘다. 그건 인터넷 클릭질 몇 번으로 얻을 수 있는 남의 얘기들이거나, 아니면 남이 관심없는 얘기들. 그래서 오랫동안 기획했던 정보전달의 글쓰기, 술집 유랑기.를 연재하기로 맘 먹었다.('오랜 기획'은 뻥이다.ㅋ 어제 술마시다 찍은 사진 몇 장에서 불현듯 떠오른 기획이라 얼마나 갈지는 나도 모른다.ㅋ)

이렇다할 전공지식도 없고, 그렇다고 어느 한분야에 대한 덕질도 변변치 못하여 할 수 있는거라곤 주야장창 찾아다니는 술집 유랑기뿐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술집 고르는 솜씨는 좀 매의 눈이다. 내가 추천하는 술집에서 시덥잖은 반응을 보인 사람은 거의 없다능. 이건 팩트다.ㅎ (사실 이것도 주변에 취향이 비슷한 사람만 모여 있어서 그런거임.ㅋ)

어쨌든 연재 그 첫번째의 영광을 차지한 곳은 신촌의 '인간실격패 알고보니 부전승'
오랫동안 단골로 발길을 하던 곳 중에서 심사숙고끝에 골라 연재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말했다시피 어제 술먹다 찍은 사진때문에 급조된 기획이므로 그냥 어제 술마신 집부터 시작이다.ㅋ 그렇다고 마구잡이 함부로 골라 시작하는건 아니다. 여기 되게 좋다.



가게 전경이다.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는 그대로 두고 고개만 돌려 찍은 무성의한 사진이지만 사실 저게 가게의 전부다.



지금은 사라진 신촌의 기찻길을 즐겨 찾는다. 이젠 많이 줄었지만 기찻길을 따라 늘어섰던 고깃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근처의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서 남들이 20년전에나 읽었을 법한 책들을 사모으곤 한다.(사모을 뿐 읽지는 않는다는게 함정.ㅋ)


그 날도 그렇게 헌책방에서 시간을 떼우고 나서는 중이었다. 늘 뭐하는 곳인지 몰라 관심도 두지 않던 골목 한켠의 건물에 왠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명의는 이외수 선생이었는데 내용인즉슨

"세상엔 거지와 거장이 있다. 예전엔 거지도 거장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엔 거지만 있고 거장은 없다. 거장이 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거지의 단계를 지날 수밖에 없는데, 예전엔 이 아직 거장이 되지못한 거지에게 공술과 외상술을 주던 술집이 빈번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채 거장이 되지 못한 거지에게 술과 음식을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를 기형도나 고흐쯤으로 여기는 젊은 예술가를 빙자한 청년루저들이 봤으면 눈을 희번덕거렸을 그 글줄에 나도 눈을 희번덕거리다 가게로 들어섰다. 그게 이 곳과의 첫 조우.



뒷모습만 보이는 파마머리가 사장님이다. 저 테이블에도 뭔가 악기를 가져가서 연주해주시는 중이었다.



입구부터 시끌시끌하더니 안으로 들어섰는데도 별반 신경쓰지 않는다. 조금 지나서야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과 정체모를 악기를 두드리던 사장님이 나타나선 술은 알아서 꺼내 먹고, 안주는 그날 그날 가능한 안주 한가지만 있으니 먹으려면 먹고 말라면 말라고 한다. 영 마땅치 않으면 시켜 먹거나 사다 먹어도 되고, 그것도 마땅치 않으면 그냥 앉아서 놀다가 가도 된단다.

이거 문자로 옮겨놓고나니 엄청 불친절하고 거만한 그림이 그려지지만 전혀 아니다. 저건 아주 친절하고 상냥한 어투였고 불친절보단 '편할대로 거리낄 것 없이 놀다가세요'의 뉘앙스였다. 옳커니.


술을 마시고 있자니 사장님이 뭔가를 들고 다가와선 말을 건다. 그는 음악치료사로 일을 하는 뮤지션이고 이 공간은 낮엔 작업실로, 밤에는 술집이 되는 곳이란다. 그러면서 연주해주는 이름모를 악기. 네팔에서(티벳이었나) 건너왔다는 그 악기는 집에 손님이 오면 환영하는 의미로 연주해주는 악기란다. 그리고는 밥그릇 모양이지만 굉장한 소리를 내던 악기와, 가야금을 닮았지만 전혀 다른 소리가 나던 악기, 실로폰을 닮았지만 역시 전혀 다른 소리가 나는 악기까지 보여주고 연주해준다. 아주 신났다.(내가 신난건지, 사장님이 신난건지는 밝히지 않겠음ㅋ)


입구현판이다. 치밀한 스토킹짓으로 사장님 블로그를 찾아내서 말없이 훔쳐왔다.ㅋ 하지만 예상컨데 아마 사장님도 이 블로그를 발견해낼 것 같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응?


이런저런 텍스트가 여기저기에 붙어있다. 온갖 말들이 하고자 하는 단 한마디는 좀 더 편하게, 맘대로, 자유롭게.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규칙. 그것이 서로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통제하고 재단하고 규격화시키려는 꼰대들의 규칙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비껴가려는, 사실 술도 그래서 마시는 거잖아. 일탈. 먹지말라니까 더 먹고 싶어지는게 술과 담배인건데. 어쩌면 이렇게 거창하게 일탈이니 자유니 하는 진부한 말들에 "그렇게까지 대단한 공간은 아니구요"라고 그는 말할지 모르겠다(처음 갔을때 그가 한 말 그대로다.기대속에 들어왔다니 이렇게 말했다) 그냥 놀자고 만든 공간이지만, 사실 그 '그냥'이 중요한거 아닌가. '그냥'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그냥 살아가는 이들에게 세상은 인간실격패를 주겠지만, 그건 사실 알고보면 부전승.ㅋ

다음 덤벼라, 계속 그냥 살아주마.ㅋ





같이 갔던 후배들. 초상권따위 난 몰라요.




++
아, 앞으로 이 연재엔 공간에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은 노래를 하나씩 붙여줘야겠다.
(길게 주절거릴 것도 없이 오토플레이 시켜놓으면 페이지를 보자마자 노래가 나오겠지?ㅋ)

 
 

절룩거리네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단상


1.


이것이 명절의 진수.jpg

이번 명절, 불패의 신화를 새로썼다. 모친은 예년처럼 판을 뒤집진 않았지만 나중엔 정색하며 똥비를 흔들면 따따블이란 규칙을 내세웠다. 잃을수록 판을 키우고싶은 마음을 억제해야 돈을 딸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알려드렸으나 끝끝내 평정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쓰리고를 맞으셨다.

돈을 딴 사람이 술을 사기로했기 때문에 치킨과 맥주를 샀지만, 잃은 돈을 주량으로 만회하겠다는듯이 들이키는 모친의 과음으로 딴 돈의 배가 넘는 돈을 탕진해야했다. But 이것이 명절의 진수. 명절음식따위 떡국 없어도 오늘만 같으라는 마음이면 그것이 명절. (아, 이건 한가위용 격언인가?ㅋ)

2.



Two Door Cinema Club - This Is The Life

요 며칠 내도록 듣고있는 투 도어 시네마 클럽.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치는 예쁜 아일랜드 소년들.
제길, 이건 뭐 거의 판타지잖아.ㅋ

어쨌든 나이도 어린 것들이 바락바락 이것이 삶이라며 외치는 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사실 어린 날은 (예수나 부처가 아니라면) 삶의 진실이 이것이라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유일한 시절이니까.

3.
명절 아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싸움을 보았다.
내용인즉슨 할아버지의 자신은 처가에 해야 할 도리는 다한 더할나위 없는 모범사위였다는 주장에 평생을 살면서 당신의 부모님 제사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한서린 분노가 부딪히며 만들어진 대결이었다.

결혼생활을 60년이 넘게 해오면서도 잊지 못하는 한이라니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 짐작도 할 수 없겠단 안타까움과, 진심으로 자신은 처가에 도리를 다했다는 할아버지의 조금은 황당한 당당함에 대한 안타까움이 떠올랐으나 사실 안타까움보다는 웃겼다.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것이 평생의 한이었던 할머니가 왜 명절에 친정엘 가냐고 엄마에게 윽박 지르며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던 기억이 선하기 때문이다. 또 웃으면서 자기는 외가집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며 할머니 편을 들던 아버지가 며칠전 내게 할아버지와 똑같은 대사를 (신기하게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야말로 외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소름끼치도록 철저한 이중잣대.

3-1.
요즘 화제인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다. 그건 작금의 사태가 제도의 미흡함이나 처벌의 경중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에 피해를 입은 또다른 피해자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폭력을 또다시 누군가에게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폭력으로부터 배운 것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의 정당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력은 전염되고 대물림된다. 결국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웃긴 것이 명절 아침 노부부의 싸움을 보면서 비슷한 것을 생각했다.
가해자는 잘못을 기억하지 않고, 피해자는 정당화의 과정을 거쳐 다시금 가해자로 둔갑한다.
사실 그건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과 사유의 과정도, 타인과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과정도 없기 때문이다. 서러움과 분노가 다시 다른 약자에게 행해지는 폭력으로 변화하는 과정. 그것이 모든 폭력의 발생 과정이다.

4.
말나온김에 가족얘기 하나 더.
외가와 친가 양쪽에 소위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이혼과 별거, 재혼, 사별까지. 얼마전 할머니는 내게 50이 넘은 자식의 재혼을 위한 상견례까지 해야하는 당신의 팔자를 한탄하셨다. 그러면서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된 손주들의 결혼걱정과 (거~~~의)연이 끊어진 사돈댁 손주(그러니까 내 외사촌들)의 결혼소식까지도 걱정하셨다.

내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긍정에 염증을 내고, 결혼제도를 회의하는 까닭은 전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합리적인 것이지만, 이런 가정환경이 영향을 전혀 주지 않은건 아니겠다. 평생을 두고 어떻게 변할지 모를 마음만을 담보로 관계를 장담하고 책임지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 마음 담보만으로는 부족해서 법적 구속력까지 만들어 놓은게 결혼의 정체라서 담보가 신용을 잃었을 때 얼마나 귀찮고 애매한 문제들이 나서는가. 오직 가족만이 최고라고 울부짖듯 강변하는 이 사회는 그 행위 자체로 얼마나 스스로 납득하고 세뇌하고 있는가. 결혼따위, 가족따위.

5.
여행을 한 번 더 가야겠다.
이번엔 당황이나 혼란같은거 말고 정말 훌쩍 다녀와야지.

120118 - 갑자기 떠난 보령 기차여행


언제나 그랬듯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바람 쐬러.란 말이 가장 정확한 나들이의 이유였다.
어디라도 좋으니 무작정 뜨고 싶었고, 기차가 타고싶었고, 항구가 보고싶었다.
그렇게 장항선 노선을 살펴보다 무심결에 클릭한 청소역.
역 이름과, 열차 시간과, 운임과, 청소가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라는 정보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채 출발.
 





기차는 아주 오래간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멀리가는 기차는.
철도원이나 편지같은 영화와 많았던 드라마가 심어준 간이역에 대한 환상은 그냥 환상이다.
간이역은 그냥 간이역이다. 다만 여기 내리는 승객은 나 혼자였고, 역장 아저씨 혼자서 역을 지키고 있었고, 하루에 정차하는 기차가 단 세 대뿐이라는 것쯤.ㅋ

기차여행에 대한 추억은 아마 대성리나 강촌으로 가는 경춘선 엠티코스가 가장 흔하겠지만,
내 기차여행의 추억은 통일호 입석 밤기차를 타고 강원도 어딘가로 가던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다. 얼마전에서야 엄마에게 들으니 그 여행은 동네 아줌마들이 아저씨들을 죄다 따돌리고 애들만 데리고 몰래 떠났던 낭만 여행. 그러고 보니 그 때 엄마를 비롯한 그녀들은 삼십대였구나.



관광안내도를 보고 찾은 항구는 오천항이다. 무려 '보령 8경'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관광안내도에 박아뒀더라만, 사실 딱히.

항구가 보고싶었던건 아마 어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인것 같다.
글줄이나 읽었다며 세상아 덤비라 선언하는 한량들에 비한다면 자연에서 삶을 영위하는 어부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심지어 그들은 종종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에 잡아먹히기도 하는데. 매 순간 거대한 존재 앞에 겸손해질 마음. 그런 의미에서 농부와는 또 다른 위대함.



어느 항구나 마찬가지지만, 항구 곳곳엔 폐선박들이 널부러져있다.
물 위를 떠나는 순간 존재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들.
'영광'이란 이름의 폐선이 기묘했다.
낡은 영광을 부여쥐고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다.


항구 바로 옆에는 충청 수영성이 있다.
요즘 말로하면 충청지역 해군사령부쯤 되는건가.
건물들은 거의 다 소실됐고 성벽과 사진의 건물 한 채만 남아있다. 진휼청이라던가.
그나마 그것도 설계도면을 보고 진휼청일 것이라고 유추한 거란다.

뭐, 이런 저런 것들에서 자꾸 떠오르는 말은 '지나가면 사라질 것들'이었다.



수영성에서 본 오천항 전경.

그리고 이 사진을 찍다가 겨우 깨달은 사실은 오천항에서는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천항은 방조제앞 만에 만들어진 항구인 것이다.
서해인데 무려 낙조를 못 볼 수는 없었다. 결국 의지해야 할 것은 다시 관광안내도. 보령은 관광객 유치에 꽤나 열을 올리는건지 가는 곳곳마다 대문짝만한 관광안내도가 세워져있다.
감사함미다 보령군수님(시장인가?).




관광안내도의 은혜를받아 학성 해변으로 건너왔다.
지도상에선 방조제만 건너에 바로라 엄청 가까울줄 알았는데, 멀다. 겁내 멀다.
이 먼 길을 찾아오는 파란만장 버라이어티한 과정이 사실 이번 나들이의 핵심 얘깃꺼리지만,
그건 패스. 너무 구차하고 힘들고 길다.

다만 깨달음은 남한은 돈으로 안되는게 없는 사회다. 시골은 서울에 비해 굉장히 불편하다. 쯤이랄까.ㅋ 





여하튼 사람 한 명 없는 학성리 해변을 이리저리 어슬렁 거리며 노래부르고 담배피고 사진찍고.
오래된 기차역과, 폐선과, 늙은 어부와, 사람없는 서해바다와, 낙조는 앞으로의 일 보다 지나간 시간들을 더 떠올리게 한다.

다만 누구나 저리 아름답게 저물 수 있는 것도, 끝마쳤기때문에 내일이면 찬연하게 떠오를 수 있는것도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있다.

무려 새 해인데 동해로 가서 일출을 볼걸 그랬나.ㅋ


하루에 세 번 있는 차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역 앞 다방에 들었다.
나 스타벅스는 안가지만, 별다방은 가는 남자임.

한참을 혼자서 멍하니 앉아있자니 주인 아줌마가 누구 기다리고 있냐고 묻는다. 기차시간 기다리는 중이라고 대답하는데 왠지 웃겼다. 기차를 기다리든, 사람을 기다리든 기다리는 사람 얼굴은 매 한가지일텐데, 저 아줌마는 내가 당연히 사람을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어지간히 외로워 보이거나, 그 아줌마가 늘 사람 곁에서 살아가거나.

커피를 시켜놓고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낄낄거리다 문 닫는다는 주인아줌마의 압박에 계산을 하려는데 아줌마가 눈을 부라린다. 카드 결제가 되는 다방이 어딨냐며. 천 오백원짜리 커피마시고 카드 내밀면 어쩌냐며 짜증을.
700원짜리 삼각김밥도 카드로 결제하는 나지만, 왠지 엄청난 대죄를 지은 것 같아서 굽실굽실. 결국 다음에 드리기로 했다. 다음이 도대체 언제일까.





밤의 청소역은 오전과는 또 다른 모습.
일리가 없잖아. 그게 그거지.ㅋ 다만 이번엔 같이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역장아저씨 퇴근을 기다리는 이미 전작이 있는 친구가 사무실에 역시 있었다는게 오전과는 다른 점.

나보다 먼저와서 대합실에서 책을 읽고있던 저 청년은 내가 대합실에 들어가니 인사하면서 난로를 내 쪽으로 밀어줬다. 어색하게 고맙습니다.  무려 잘생겼었는데. 돌아오는 기차에서 몇 마디라도 좀 더 해볼걸. 난 늘 이런게 문제.


어쨌든 이렇게 갑작 나들이는 끗.
알콜 한 방울 섭취하지 않은 건전하고 바른 나들이 문화를 지'양'합시다.
역시 여행의 매력은 알콜.



++덧



오천항 일대를 휘적거리다 셀카 한 장.
얼굴을 가리니 미남이구나.

재주소년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한 4~5년 전쯤엔 파스텔 뮤직 류의 음악이 (대)유행이었다.
요조로 대변됐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소규모의 음악에 요조의 보컬이 차지했던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나 캐스커, 짙은, 에피톤 프로젝트, 한희정 등등의.
저이들의 음악을 한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미묘한 유사성이 있다. 이른바 파스텔 류.랄까?ㅋ
이런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건 여심을 흔드는 노래.ㅋ 실제로 여신이라는 요조나 한희정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더 많은 듯하다.ㅎ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남자들이야 그저 핫팬츠의 걸그룹에게 하악거리기나 하지 뭐.

여튼간에 재주소년은 그 파스텔 류의 선두에 서있던 팀이자 가장 좋아하는 팀.
왜냐고 묻거나 재주소년이 다른 이들하고 다른게 뭐냐 물으면 할말은 딱히.
얘넨 일부러 이런것 같지는 않아. 쯤?

일부러가 무슨 의미냐면
부드럽고 말캉말캉한 보컬에 간드러지는 가사로 작심하고 맘을(여심을) 녹여버리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음악을 싫어하진 않음. 난 그런 계산이 정교하다면 정교한만큼 하악거려주는 솔직한 남자임.) 얘들은 진짜로 말캉말캉하고 '간드러지는'이란 악의적 표현이 닿지 않는 서정이 있단 말이지. (만약 그게 일부러라면 앞서 밝힌대로 티나지 않을 만큼의 정교함에 또 박수를 보내겠어.)

어쨌든 내 베스트 넘버는 이 곡. 겨울의 첫 날이나 명륜동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 노래.


덧,
일찍 일어나겠다고 너무 일찍 자서 너무 일찍 일어난 관계로 랜덤플레이를 돌렸더니 이 노래가 나오길래,
신새벽에 남 몰래 쓰는 것처럼 포스팅하기.
민주주의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