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애국주의, 쌍용자동차

시끌시끌하기에 뭔가 봤더니 싸이의 무료 공연이다. 인도는 물론이고 8차선 대로까지 교통이 통제됐다. 
수만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울광장부터 광화문 네거리까지 발디딜 틈이 없다. 

공연이 열리는 서울광장 바로 맞은편엔 쌍용자동차 대한문 분향소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분향소는 사람들에 포위됐다. 그 기막힌 대비. 
원래 장례는 축제라고 했던가. 그 사뭇 다른 두 축제가 어쩐지 서글프다. 
이 와중에 쌍용자동차 문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들은 더 섦다. 
인파에 치어 저녁도 못먹었다면서. 

화가 난 건 경찰에게다.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할 수 없다며 일요일 오전에 열린 걷기행사에 1차선도 내주지 않았던 그 경찰이 직접 나서 8차선 도로를 막아준다. 
공간확보를 위해서일까, 전경차도 얼마 없다. 
차를 우회하라는 경찰의 호각소리는 스물 두 명의 생목숨과 수백만 비정규직들의 삶에 대한 권리보다, 함께살자는 그 소박한 외침보다 빌보드 싱글차트 2위가 훨씬 중요하다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 때 단 두어시간만 인도와 차도를 내어달라는 노동자들에게 경찰이 무슨 짓을 했던가. 
공동주최였던 우리 편집장은 소환장도 받았다. 

싸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이번 히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마룬파이브와 자웅을 겨루는 싱글넘버라니. 서울광장이 문화행사 공간으로 사용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의의나 의도가 기껍진 않지만)무료공연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상갓집 앞에서 깨춤을 추고 있다.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싸이의 노래에 해외의 언론들은 한국사회의 계급갈등을 풍자한 곡.이라는 평론을 했다고. 
싸이의 진짜 의도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 평론에 동의하고 싶다. 정말 그랬다. 

미국에서는 강남스타일이 정말 인기 있다고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기사들도 많이 있나본데, 
이 광기어린 애국주의 이벤트에 열광하는 한국의 광적인 애국자들도 봐줬으면. 

도대체 이 난데없는 무료공연의 의미는 뭐고 이 신드롬은 뭐냐. 

힘겹게 오른 버스에서 들린 라디오는 오늘 '싸이특집'이란다. 인터넷 뉴스며 SNS며 온통 싸이 이야기. 

심지어 '국가대표 가수'로서 싸이에게 주어진 막중한 역할을 엄중히 요구하는 글도 봤다. 미쳐돌아가고 있는거지. 


삼성, 월드컵, 올림픽, 싸이, 디워, 황우석 등등등. 

동원된 싸구려 국가 이데올로기에 침식당하는 것은 당신의 삶이고 노동이다. 


내가 버스 우회때문에 드립다 걸은게 억울해서 이렇게 툴툴거리는게 아니다. 진심이다. 

(안내도 없어서 버스 진행 역방향으로 한시간을 걸었다. 사실 엄청 억울하고 짜증난다.) 


그래도 싸이가 계속계속 잘돼서 빌보드 석권도 하고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 진심이 아니므니다.


10

싸이가 별로가 되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는 트윗을 하나 봤는데, 거기서 언급하는 예시가 김장훈이더라.

아 속상해서 정말.


덧붙이는.


- 공연이 끝나고 수만의 인파가 우르르 밀려나가면서 일대는 아비규환이었단다.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은 피케팅을 하다말고 메가폰을 잡고 장내 질서 정리를 했다고. "밀지말고 천천히, 빨리가면 위험합니다"


- 인파가 빠져나가자 남은건 쓰레기더미, 구멍나고 찢어진 분향소 천막 비닐, 깨져버린 화분들, 박살난 어쩌다 카페.

조합원들은 그저 청소하고 천막을 수리하고 다시 꽃을 심고. 어느 쪽이 더 자랑스러운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다.


- 이 와중에 공연을 보러온 시민들이 많이 서명에 동참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 그 힘이 무엇보다 강해져 마침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