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럴줄 알았슈


#1
요즘 보는 드라마 '도망자'에 별반 중요치 않은 개그 캐릭터 형사가 즐겨쓰는 대사는 "내 이럴줄 알았슈".
나도 이럴 줄 알았는데.

#2
블로그에서건 일기장에서건 술자리의 잡담에서건 학생운동이 어쩌구 하면서 말을 뱉어대던 나를 싫어했다. 지나치게 질척거리고 어쩔땐 으스대는 내가 싫었다. 또 지난 내 생활과 삶이 오직 그 단 하나의 언어로 치환되는게 창피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그건 그저 소중하게 간직만 하고 있어야지. 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정말이지 질척거림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 둘 스미기 시작한 일들이 조금씩 걷잡을 수 없어지더니 난 지금 다시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아, 얼마나 웃긴 일일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제 자식의 목을 베어내는 계백장군마냥 '아프지만 떠나보낼께' 같은 신파스런 말이나 주워삼기더니 결국엔 다시.

명분이야 거창했다. 운동권의 구태를 벗겨내고 친구들, 후배들에게 새로운 고민을 연마할 공간정도는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대외홍보용 변명이나, 가진 것을 오로지 다 쏟아내고 또 승리하고 성취하는 기억을 갖고 싶었다는 자기위안용 핑계나. 아주 거창해서 번지르르하지만 사실 누가 들어도 코웃음 치기에 적절한 명분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게 사실 다 핑계란건 쉽게 알 수 있는 일. 난 그저 '자리'를 찾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마 인정 혹은 안정이 필요했던 것이겠다. 해왔던 일이라곤,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 뿐이니.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고 또 찾는 일조차 귀찮아서 안절부절이던 내게 아주 적절한 기회. 적절한 명분 만들기야 식은죽 먹기.

#3
이렇게 외롭고 지칠거라는거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니 생각따위 굳이 하지 않아도 지난 일기장을 조금만 뒤적거리면, 아니 그런 수고따위 또 굳이 하지 않아도 기억이라는게 있으면 머리가 아니더라도 몸이 기억하는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기만 했으면. 굳이 이렇게 또 애먼 밤을 벅벅 지새고 또 아프고 그러지 않아도 될텐데. 정말로 몸이 아파서 밥도 못먹고 병원까지 다니는 일 같은거 없었을텐데.

#4
취미로 타로를 보는 친구와 카드를 뽑아봤더니 한다는 말이 "네 슬픔과 처지를 인정해. 그것부터야."
기억에 남은 카드는 Five of Swords.의미는 초라함이라나 실패라나.

#5
나에게조차 이렇게 자신도 확신도 없으면서 어줍잖은 말들로 또 사람들에게 위로며 충고를 건넨다. 언제 철드니. 몇년째 똑같잖아. 어쩜 달라지고 변하는게 없을까.

#6
외로움을 가장 지독하게 느끼는 순간은 오히려 웃고 떠들고 있을때다. 이렇게도 대화에 굶주려 있었나, 아니면 이렇게 어지러운 말들이 아니면 관계맺고 소통하는 법도 잊어버리게된걸까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리고 진심이 담긴 단 한마디, 외롭다는 말을 토로할 대상따위 그 현란한 말잔치의 대상들틈에 있지 않다는걸 아는 순간. 그리고 그건 결국 아무도 없다는 의미라는걸 불현듯 알아버리는 순간. 모두에게 하는말은 곧 어느 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라는걸 알아버리는 순간.




  

다시 놀이터


말이 무섭고 내가 창피한건 변함없지만
그래도 다시 놀래요.

'왜냐면'을 생각해봤는데,
'왜냐면'이 없으면 어떤 것도 못하는게 싫어서랄까.
그니까 결국 심심해서란 말.


제목을 입력해 주세요.


병은 입으로 들고 재앙은 입에서 난다고
어느 만화책에서 봤는데.

말은 언제든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토해내는건 천성이려니 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경솔함.

솔직하고 진중해서 부끄럽지 않은 한마디를 뱉을수 있게 되거나
어떤 말이든 뱉어도 마음 무거워지지 않을 만큼 더 뻔뻔해지면 다시.


‘말단노동 잔혹사’ 당당하게 담아낸 ‘사회 초짜’



[경향신문] 말단노동 잔혹사 당당하게 담아낸 '사회 초짜'


‘말단노동 잔혹사’ 당당하게 담아낸 ‘사회 초짜’
글 김재중·사진 김문석 기자 hermes@kyunghyang.com



‘3년 백수’ 끝 공기업 입사 유재인씨, 에세이집 출간 화제

유재인씨(28)는 공기업에 다닌다. 명문대 반열에 드는 대학을 졸업하고 꼬박 3년간 취업준비생, 다시 말해 백수로 빌빌대다가 입사했다.

모두가 선망한다는 공기업이지만 그가 맡은 일은 말단 행정직. 기안문서의 첫 문장 들여쓰기는 3칸, ‘첨부’의 폰트는 ‘제목’의 폰트와 같은 것으로 등등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대한민국이 걱정하는 ‘문제적 세대’에 속하는 그는 최근 펴낸 에세이집 <위풍당당 개청춘>에서 ‘대한민국 20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를 코믹하면서도 우울하게 그려냈다.

백수 생활에서부터 입사, 무한반복되는 ‘행정’과 조직의 모순, 신혼 생활까지 유씨가 쓴 200자 원고지 10장 내외로 써내려간 에세이들은 적나라하다. 눈칫밥 생활 3년 만에 하찮은 기안만 작성하고 하찮은 계약만 하면 힘들지 않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기 세금계산서를 누락시켰다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적도 있다. 노조 집행부로서 첫 회의에 참석해 ‘왜 비정규직 문제는 다루지 않느냐’고 물었다가 ‘이번 집행부는 초짜가 많아서 노조가 힘들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등장 인물들이 팀장·차장·부장 등으로 호명돼 있지만 워낙 적나라해서 회사에 알려지는 게 걱정되지는 않느냐고 물어봤다. “부담은 있었지만 제 책에 등장하는 그런 분들이 다른 회사에도 다들 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글엔 전반적으로 냉소가 흐른다. 하지만 이 냉소는 자타가 공인하는 정처없는 세대로서의 방어막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자신의 세대에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주문한 책에 대해 “우린 그딴 식으로 안하는데요”라고 잘라 말했다. 자신들은 ‘신자유주의가 왜 나쁜지를 책으로 배웠던 선배들’과 달리 기안문서의 폰트와 서체에 영혼을 혹사시키면서 신자유주의를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반미는 모르지만 ‘불온한 쇠고기는 안먹을래’라면서 촛불 들고 일어서는 게 자신들이라는 거다. 유씨는 이른바 ‘20대 논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동세대에 대해서도 “대다수 20대와 달리 진짜 특이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20대는 취직하기 전엔 취직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저도 그랬어요.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꿔야지라는 생각이 든 건 백수로 살 때가 아니고 오히려 취직하고 난 뒤였어요.”

백수 초년 시절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회에 내던져지자 작은 부조리조차 바꾸기 어려웠다고 고백하는 유씨는 ‘그러나 난 아직 20대’라고 다짐했다. 그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기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밤하늘의 별보다 더 촘촘하다”고 말했다. 속도감 있게 튀는 문체와 달리 새침해 보이는 유씨. 이상과 현실, 직장과 개인, 일과 생활 사이를 빗질해 솔깃한 얘깃거리를 끄집어내는 새로운 에세이스트가 막 세상에 등장했다.


++

"20대는 취직하기 전엔 취직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저도 그랬어요.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꿔야지라는 생각이 든 건 백수로 살 때가 아니고 오히려 취직하고 난 뒤였어요."

몸으로 배우로 뼈에 새긴 것들이 진짜. 혀에서 나오거나 또 머리에서 나오는 말보다 그런 곳에 스민 말들이 영혼을 울리는 법.
남들의 말을 잘 아는 똑똑한 형들을 부러워 하는데서 그칠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

++

어제 사과문에 이어 오늘은 멋진 언니와의 만남까지 소개해주는 경향신문. 화이팅일세.

봄비




비온다.

봄비라면 젖으며 가오리다.





100222


#1
아침마다 신문을 들고 지하철에 오른다. 이리저리 훑어가며 한부를 다 읽고 나면 정확히 도착. 하기 위해서 신문 읽는 속도를 조절하거나, 굳이 관심없는 기사나 광고에도 눈길을 보내곤 한다.

며칠전 신문을 넘기다 나도모르게 황급히 신문을 접어버렸다. '여행'이란 제목의 섹션과 그 넓은 하늘 사진을 발견해서다. 읽어내리면 견딜 수 없을거라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일은 예전에도 몇번이나 있었다. 업데이트 된 일촌 목록에서 어느 후배의 블로그를 클릭했다가 화면과 이미지들이 채 뜨기도 전에 창을 닫아버렸다. 업데이트 목록에 가득한 여행 사진들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최민식 아저씨가 나온 '히말라야'도 차마 보지 못했다. 비싼 돈을 주고 다운받아 놓은 파일을 두고두고 뭉개두다가 결국 지워버렸다.

일상의 무게때문만이 아니다. 결국 어디로도 출발하지 못하리란걸 알고 있다. 그건 성실함의 문제이기도 하고 용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일상의 번잡함이나 갑갑함이 주는 스트레스가 작지 않은 부분에 작용하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러니까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거나 혹은 않을거라는 걸 알고 있고 또 그 사실이 때문에 더욱 떠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딜레마, 모순, 시덥잖은 소리. 지금의 처방은 일단은 보지 않고 떠올리지 않는 일이다.

#2
그래도 이번엔 기어이 떠남을 계획하고 있다. 빼도박도 못하도록 여기저기 이런 얘기들을 흘리고 있기도 하다. 핑계 대지 못할 그런 장치들을 만들고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기어이. 다짐만 다짐만. 응?

#3
한 낮에 바깥에 있었더니 따듯한 바람에 햇살까지, 봄의 낌새를 넌즈시 던진다. 봄이 오면 설렌다.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엇이든.
새 싹이 자라고 꽃이 피어나는것처럼 다시 겨울이 되면 죽어버릴 것들도 다시 피어나라.

생각해보니, 한동안 핸드폰 바탕화면에 자리잡고 있던 말은

' 봄 되면 다시 피어날'





이웃집 좀비 - 그야말로 이웃집의 좀비들




#1
모처럼의 외출이 반가워 그저 집으로 돌아서기가 아쉬웠다. 남대문시장에서 출발해 회현동과 시청을 지나 종로와 을지로, 명동을 모두 배회하고서야 중앙극장 앞에 도착했다.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하나라도 있으면 보고 들어가야지. 라고 마음먹었지만 요즘 통 영화를 보지 않는게 단지 시간이 없어서만은 아니라는걸 내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갖지도 않았다.
어디서 풍문으로 들었던 제목에 재기발랄해 보이는 포스터, 그리고 시작시간이 2분도 남지 않은 영화를 발견하고서도 사실 조금을 망설였다. '이 영화를 볼까, 말까?'
시간이 10분 남짓만 남았어도 아마 보지 않았을것 같다. 사람들이 헐레벌떡 입장하고 영화가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서야 표를 사고 영화관으로 뛰어들어 앉았다. 제일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코트를 벗으면서도 영화에 대한 설레임같은건 없었다. 그저 내가 본 영화 목록과 영화봤다고 자랑질하는 리뷰가 블로그에 하나쯤 더 쌓이겠거니 하는 생각밖엔.

#2
좀비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많이 보지도 않았지만 이 영화가 다른 좀비영화들과 다르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막연한 공포와 미지의 대상, 그저 타자화된 그들을 마을 한 구석, 가족의 일원으로 들여놓은 일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생활밀착형 좀비. 한명의 자신과 수십억의 타인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수십억의 자신이 살아가는 곳.

[그 이후... 미안해요]같은 꼭지는 그런 얘기들을 가장 절실하고 가슴아프게. 서로를 죽고 죽이던 그들은 자신의 입장만을 강변한다. 그건 '입장바꿔 생각해봐'를 넘어, 자신만이 중심에 있다는 오만한 세계관이 빚어내는 인간사회의 비극 같은거.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무한히 반복될 그런 비극.

#3
'키노망고스틴'이란 영화제작집단은 초저예산이란 어려움을 무모한 상상력과 몸빵(?)이란 최대의 무기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제작비때문이었는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역할을 바꿔 스탭을 하고 배우들이 한 영화 안에서 겹치기 출연을 하는(심지어 연출자나 스텝들이 주연배우들인 경우가 좀 있었음..ㅎㅎ)일이 오히려 영화엔 도움이 된 것 같단 생각. 결국 이까 그 좀비와 지금 이 피해자와 저 구경꾼은 모두 같은 사람들이란 느낌이 들어서.

#4
'좀비하이'를 복용한 클리너 역할의 아저씨가 자꾸 눈에 익어서 누군지 곰곰히 생각하다 결국 검색해봤더니, 아하.
비운의 드라마 2009 외인구단에서 하극상으로 나왔던 아저씨였구나.

#5
그런데 집에 오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좀비란 놈들 자체가 본래 그런 이들 아닌가 하는 생각. 주변에 있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적'이 되어 몰려오는 일. 그 좀비는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여. 친구도 아니고 적도아닌 관계는 사실 살며 만나는 무수한 관계들. 그럼 이것들도 다 좀비인거임?
괜히 이러다 좀비영화 매니아 되는거 아니냐며....ㅎㅎ 벌써 로메로 아저씨 영화들 다 검색 끝냈다며...ㅎㅎ

#6
간만의 즐거운 시간. 앞으로는 영화도 책도 뭐든 더 열심히 봐야지. 내가 즐겁지 않으면 결코 즐거워지지 않는 법.

일하다가 몰래보는 병맛기사와 슬쩍 포스팅 - 유승준은 잘못하지 않았음



유승준 출연 '대병소장' 안보기 운동

기본적으로 기계적 중립을 지키겠다며 작위적 냉정함을 가장하는 글들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사건을 명징하게 꿰뚫는 냉철함이 기자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라고는 생각한다.

링크시킨 기사에서 유승준을 굳이 스티브 유라고 칭하거나, 퇴출당한 미국인이 은근슬쩍 국내로 복귀하려는 속셈을 기정사실화 하는 일들은 냉철함은 커녕 유치하기까지 하다. 정보 전달의 효율을 위해서라면 유승준이라는 호칭이 적당하고, 그의 속내 같은거 관심법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확실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추측성 기사는 조선일보 기사 다음으로 나쁜거라고 학교에서 안배웠나.

사건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게이트 키핑의 과정은 어쩌면 사건 그 자체와 발화자보다 청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대상을 지칭하는 언어와 표현이 이렇게 적나라하다면 말 할 것도 없다. 기사는 대중의 분노를 호출하는 글이 아니다. '전 남한의 군필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치고 싶거들랑 남보원이나 가시던지.

비단 이 기사뿐이 아니고 또 연예기사뿐이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기사들도 가끔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건 마찬가지다. 성명서 같은 글들을 쏟아 놓고 감정을 충동질하면서 진보니 미래니 사회적 책임, 연대니 하는 무책임한 말들만 뱉어 놓는 걸 보면 답답할때도 있다. 눈은 멀리 두어도 다리는 이곳을 딛고 있어야 한다. 다리마저 둥실떠서 부유하는 글들은 선동아니면 광고가 되기 십상이다.


어쩌다 보니 또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난 유승준이 큰 잘못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개인에게 이토록 오랫동안 입국금지 조치를 가하는 당국이 더 큰 잘못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중예술인이다. 대중들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면, 대중들의 눈밖에 나면 그만인 일이다. 그의 개인생활에까지 국가가 일일이 나서 감놔라 배놔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언론이 나서서 그 치졸한 간섭과 유치한 왕따놀이를 조장하는 일따위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가끔 이런 되도않는 기사를 보면 화가 난다. 정말 좋은 글을 쓰고 건강하고 넓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어느 장벽에 부닥쳐 기자의 꿈을 포기하는 걸 종종 보기 때문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달겨들어 보지도 못했지만) 그 장벽에 내 눈앞에도 어렴풋 보이기 때문이다.


 

궁합맞는 시민단체 찾기


자신과 궁합이 맞는 시민단체 찾기

인터넷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난 대안찾기 형.이라는구나.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모든 타입을 다 살펴본 결과, 맞는 것 같다.

조국의 통일이나 노동의 해방 같은 거창한 꿈보다
노래부르고 춤추고 시읽고 빵굽는 마을을 바라는게 더 낭만적이다.
정말 희망을 갖고 있는지는 자신 없지만.



추운 도심






샘표 지미원을 취재갔다가.

자그마치 10층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온거리가 다 보이더라. 

 

바람은 차고 비까지 내리는데,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와 사람들.

자그마치 '도심'은 그런거다.

 

시내, 도심, 번화가. 라고 불리우는 곳들에 가면 유난히 더 추위를 탄다. 더위도 마찬가지지만.

더위야 에어컨이 바깥으로 뿜어내는 열기때문이겠지만, 추위는 도대체 왜.

 

거기 마음이 차가운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라는 아주 비과학적인 학설을 밀고있다.

마음이 차가운 사람들이 뿜어내는 냉기가 온 동네를 차갑게 만드는 것.

실제로 군대와 수능날이 제일 춥잖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서 도심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적하고 아늑한 시골마을에서 살아갈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니까, 사람들은 부도심이나 위성도시 언저리쯤에 서식할 수밖에 없는거다. 

 

 

++

예전 알바하던 학원에서 애들한테 이렇게 가르쳐서 짤린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하철 망상








어둑해질 무렵에 지하철을 타고 잠실쯤을 지나면 지하철엔 사람들이 몇 명 남지 않는다.

불과 몇 시간전 콩나물시루를 코스프레하던 지하철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한산하다.

 

 

가끔 언제 어느 곳에나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머물고, 또 어디로 이리 바쁘게 향하는거냐.

그럴때면 또 그 많은 모든 생명의 삶. 이라는 되도않는 곳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는데,

그건 수 없이 많은 생명, 그러니까 삼라만상 저마다의 귀함에 대한 겸손보다는 차라리 공포에 가깝다.

저마다 소중하고 저마다 존귀하여 저마다 모두 주인임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일 따위, 불가능하다.

 

 

집에 돌아오는 오랜 시간이 자꾸 심심해서 지하철에선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잠이나 잘 것이지. 






생일


#1
생일이다. 생일이라고 뭐 별게 있겠냐 싶고 차피 사람이 만들어놓은 기준의 '같은 날'일 뿐이라는 쿨한 척을 일삼지만, 내심 생일이 다가오면 기대하고 설레고 들뜨게 마련.

#2
생일이라고 이 사람 저 사람 모여들어 축하해준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 생일을 핑계로 만나서 우리끼리 즐거운 한 때. 를 연출하던 친구들이 집에 갈때 쯤 되자 선물도 못해 미안하다고 차비나 하라며 남들 몰래 주머니에 한두푼 찔러 넣어주는 만원짜리 한장이 고맙다. 갑자기 눈물이 날 뻔. 그런 번한 클리셰, 사소한 거에 감동하긴.

#3
여자친구의 뱃 속에 4개월된 아이가 자라고 있어, 월급의 거의 전부인 100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는 친구의 얘기를 듣다가 나를 돌아봤다.
'우린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까'같은 철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잰체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4
그 녀석들을 만나고 오면 항상 마음이 좋다. 모든 경우, 언제나라고 해도 좋다.
회사에서 자리 잡기 위해 새벽잠을 줄여 대형면허를 따거나, 대회를 위해서 하루를 고구마 반 개로 버티거나, 일요일에도 출근하여 가게문을 열고,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시동을 걸고 현장으로 나서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몇 권 되지도 않는 보잘것 없는 책을 갖고 세상 진리를 다 안 것마냥 으스대던 내가 항상 부끄럽다.

그들은 자기의 삶을 고달프다거나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의 가혹함도 잔인함도 알고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순응하고 저항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는 그 녀석들 앞에선 한마디의 입도 떼기 어렵다. 술만 거푸 들이키다 집에 오늘길에 고맙다는 문자나 보내는 찌질함 뿐이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5
그게 어디든, 친구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런 포스트를 쓰고 있는거다.

#6
용산이고 한다협이고 세종시고 지방선거고 불과 얼마전 같아도 거품을 물고 달려들 떡밥들이 난무하지만, 지금 난 내 문제만으로 벅차다.
그런건 다 부질없다. 는 말을 쉽게 뱉어내고 있다. 부질없는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지금의 난 늙은이 흉내를 내는 별로인 어린애.




밥딜런 내한 우훗.!!



Bob Dylan - Positively 4th Street


‘포크록의 전설’ 밥 딜런, 역사적인 첫 내한…3월 31일 공연


#1
작년쯤, 3일연속 밥 딜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꺼이꺼이 우는 꿈을 꿨다.
도대체 왜?

#2
밥 딜런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3학년때. 생일선물로 뭘 갖고 싶냐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는 밥 딜런의 음반을 얘기했다. 엄마에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음반을 선물했던 초딩 3학년 시절의 기억은 이후 "우리 집에 밥 딜런이 있었다니"라는 감탄사로 변했다.

#3
아임 낫 데어.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그거 아는 게 뭐가 중요한지도 몰라도 되는 그 영화와 밥딜런과 그의 노래와 캐이트 블란챗에 하악거리며 또 밥 딜런을 주억거리기.

#4
Together Through Life.
아직도 남았나요. 여전히 남았겠죠. 못다한 노래들이.

#5
할아버지, 내가 왜 할아버지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응?

#6
호들갑 떨고나니 부끄럽다..ㅎㅎ

#7
그나저나 꺼내서 팔려면 간을 씻어 놓아야 하겠군요.

[곤돌라 펌] 우리는 철거 당하고 있다


우리는 철거 당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영진위는 이번에 독립영화를 철거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니, 철거에 성공하고 있다. 인디스페이스를 철거했고, 미디액트를 철거했고, 한국 영화인들의 또다른 산실인 영화 아카데미를 축소 재편, 혹은 철거하려고 한다.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은 '시네마테크와 그의 친구들' 오프닝 행사에 가서 "3D 극장이 본격화 되는 이 때에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가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하며 철거에의 의지를 천명했다. 어쩜 그리 똑같나, 재개발업자들의 단골 주장 되겠다. 자칭 평론질로 밥 빌어먹은 이력의 소유자가 스스로 영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저 발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광부와 영진위는 3D 시장을 한국에 안착시키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이 와중에 독립영화며, 예술영화며, 2D 영화들이며, 영화 인력풀이며를 전적으로 쓸모 없는 것들로 치부하는 양상이 적나라하다.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양상을 '낡은 것'이라 치부한 채 도태되어야 할 철거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이 그러하며,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대한 감각과 경험이 거의 부재한 자칭 젊은 우익들에게 개국공신에게 나눠주는 전리품인 양 10년 성과물들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그렇다. '한예종 사태'는 영화판 철거의 시작이었다.

그래놓고, '100분토론'에 나가서 이명박 정부는 민간 영역과 정부 부처의 소통이 가장 원할한 정부라는 터무니 없는 궤변을 늘어놓고, 현 영진위가 마치 영화판 사람들과 원할하게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거짓말의 향연을 벌였다. 어디서 많이 보아오지 않았나? 뒤로는 철거 연장을 든 채 앞에서는 시민 여러분과의 소통 어쩌고 하는 저 잿빛 재개발 정치인들 말이다.

대통령이란 사람은 삽질의 기술을, 문화를 담당하는 저 공무원들은 3D의 원천기술을 우리네 유일한 삶의 원천인 양 설파하고 있는 이 살풍경한 시대에 '예술'은 철거되고, 기술의 수사만 횡행하고 있다. 하긴 어디 영화판 뿐이랴, 곳곳이 철거 투성이다. 곳곳이 용산이다. 과연 이 정부를 '철거 정부'라 불러도 하등 이상할 게 없겠다. 그래, 이랬으면 좋겠다. 왜 구태여 '영화진흥위원회'라는 타이틀을 고수하는가. 이 참에 영진위는 아예 문광부와 통합해 '3D진흥위원회'로 개명하고, 향후 남은 철거 일정을 고시해주길 바란다.

워낭소리의 흥행에 힘입어 손수 미디액트까지 왕림하셨던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지원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배제와 선택"이었다. 덧붙여 "많은 사람들에게 적은 액수의 지원을 하는 것보다 확실한 쪽을 밀어주는 게 낫지 않겠나."고도 말했다. 알고 보니 "확실히 듣보잡들"을 밀어주고 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철거의 논리다.


이송희일 - 곤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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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줘, 독립영화

2008년을 맞이할 즈음의 겨울에 나는 그야말로 한량이었다. 주어진 일도 없고 주어질 일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도 안하고 슬리퍼 바람에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아카이브에서 교과서나 똑똑한 감독님들 인터뷰에서만 보던 제목의 영화들을 찾아서 한참을 보고
열람실에가서 배깔고 누워(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한시간쯤 읽다보면 자연스레 몸의 고도가 낮아지는것이...흠흠) 고전 명작과 역시 똑똑한 형들의 인터뷰에서 거론 되던 제목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어느 날에는 아침 댓바람부터 인디스페이스로 출근해서 그 날 인디스페이스에서 하는 영화들을 죄다 보고 오기도 했다. 그 즈음의 계절엔 영화제도 많아서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나 서독제나 시네마 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여성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까지 영화제란 영화제는 다 찾아다니며 기웃거렸다. 인디스페이스에 앉아서 영화시간을 기다리며 주워 듣는 풍문이나 넥스트 같은 종이 쪼가리들은 그런 정보들이 차고 넘쳤다. 그 해에 여성영화제 자활을 지원하기도 했다. 떨어졌지만..ㅎ

그런 한량세월이 수개월이 누구에게는 한심해 보이고 누구에게는 찌질해 보였을지어도 돌이켜보면 그렇게 '유익했던'시간들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소중하다.

그때 봤던 그 영화들의 관객수를 다 합친다 하여도 해운대가 한 극장에서 동원한 관객보다 많을까. 그 영화들의 모든 수익을 더해봐야. 아니, 경제적인 수익이 있기나 했을까 그 영화들에. 그러나 그 영화들은 이렇게 소중한 영화들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소중하다.

자본주의의 총화라고 불리지만 영화는 오직 상품이 아니다. 위로와 치유, 해소와 사랑 같은 역할은 '오직 상품'이 감당할 수 있는게 아니다. 

또 어느 계절인가 내겐 그렇게 찌질하고 능청스럽게 영화를 보러 다닐 계절이 올테다. 그 영화들과 책들에서 또 위로 받고 치유하고 성장해 가며 다음 계단을 노려보게 될테다. 그런 날이 왔을 때 돈 되는 영화, 조폭과 3D와 예쁜 여배우와 PPL만 남은 영화들만 극장 간판에 걸려 있다면 대단히 슬퍼질테다. 그러면 정말이지 난 아마 삐뚤어지고 말테야.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용관이 형이.




  

오늘을 살아야 한다


#1
개같은 내 인생을 보고 첩혈쌍웅에 열광하고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었던 나의 세대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 김연수

김연수가 '나의 세대'를 뉴트롤즈와 첩혈쌍웅과 개같은 내 인생을 공유한 이들로 정의했던 저 글줄을 읽으면서 나의 세대를 대변해 줄 그 '무엇'은 무얼지를 생각해봤다. 할 일도 없이.

사춘기에 IMF를 맞이하고 주변인으로 밀레니엄을 겪어넘기던 우리는 공유할만한 기억이 영 마땅치 않다. 서태지의 천재성을 알아보기에 우린 너무 어렸고, HOT에 열광하자니 그들은 우리 모두를 관통하지는 못했다.
해서 우리들은 나처럼 김광석이나 김현식처럼 이미 죽어버린 지난 세기의 스타에 열광하는 애늙은이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생을 바치는 오타쿠와 그 오타쿠와 애늙은이 모두를 비난할 줄 밖에 모르는 쿨게이들로 뿔뿔이 분열됐다. 무엇 하나가 나쁘거나 별로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우리 세대'를 관통시켜줄 무엇 하나를 아직(어쩌면 앞으로도) 갖지 못했다는 일종의 아쉬움 같은거다.

#2
그러고 보니 참 멋이 없는 세대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언니들처럼 조국의 통일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목놓아 노래를 부르고 거리를 뛰어다닐만 하지도 않았고, 90년대에 소위 X세대라고 불리우든 언니들처럼 각종 문화적 풍요속에서 청춘을 맞이 하지도 않았다. 통기타와 마이마이 대신에 MP3와 PMP을 손에 쥐었지만 그 속엔 노랫말보다 토익 강의 파일과 애꿏은 야동만 가득하다. 그리고서도 청춘의 대부분을 88만원짜리 비정규직으로 살고있다.

물질의 풍요속에 되려 피폐해지는 정신을 개탄하노라. 처럼 누가나 알만한 교과서 같은 소리는 아니다. 난 다만 푸념하는거다. '그 시절에 만약에'를 자꾸 상상하는 내가 별로 예뻐보이지 않아서 되려.

#3
생각해보면 웃기지도 않은 컴플렉스다. 김광석과 김현식의 동시대를 살지 못했다는 컴플렉스. 치열한 역사의 순간에 난 젖병이나 빨고 있었다는 컴플렉스. 이러다간 만적의 난에 왜 함께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컴플렉스까지 함께 할 판이다.

#4
지나간 세기의 것들에 대한 열광을 잠시 덮어둬야겠다. 어쩌면 지금 내 옆에서 같은 바람으로 목덜미를 식히는 어느 친구를. 오늘을 살아야 한다.

#5
Jamendo에 이어서 블레이어. 마치 보물찾기 하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