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332건

세밑에, 2009년 올해의 음반

1.

세밑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여러부류의 술자리에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이다. 물론 다음날의 숙취와 가벼워지는 지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긴 하지만.
주말, 용감하게도 두 군데의 송년회를 마치고 떡실신 직전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길가에 앉아서 한참을 피식거렸다.

교육이니 정치니 경제니 하는 말들의 홍수를 만들어내던건 세상이 말하는 소위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무장한 저마다의 논리와 학식은 거창했고 대단했다. 이상이니 현실이니하는 말들. 노동이니 소외니 가치니 맑스니 케인즈니.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까지 힐끔거리게 만들 화려한 말들의 향연.

그러나 정작 고개가 떨궈진 곳은 휴일인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친구들의 어쩌면 소소한 이야기들. 생의 최전선에서 손에 기름을 묻히며 일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언어들. 논리니 이론이니 다위 하나도 모르지만 정작 굳세게 현실에 발을 박고 내일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었다. 
 
그것은 그런것이겠다. 노동의 가치니 평등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들은 책속이나 말들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삶을 살고 있는 위대함.


2.

세밑이라면 역시 결산.
온갖 곳들에서 다들 결산을 해대는데 난 딱히 없으니, 올해의 영화 / 음반이나 결산해볼까.
올해는 딱히 영화도 음반도 소원해서 많이는 안되고 한 다섯 개씩만.

당연히 순위따위는 없지만 먼저 생각나는대로 썼으니 깊은 인상 순이라고 볼수도.

음반.


브로큰 어스 블루스 밴드 - Blues Of My Soul



버클리에서 공부한 수재라고 해서 재미없고 공감안될 얘기들이 지루한 노래를 생각했는데, 웬걸.
적당할 만치 우울하고 적당할 만치 재미있다. 부담스럽고 억지스럽게 희망을 말하지 않아서 더 좋은.


장기하와 얼굴들 - 별일 없이 산다



작년 쌈싸페에서 처음 보고선 찜뽕해뒀었는데, 어느새 완전 아이돌이 됐더라능.
생활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와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가사는 그들의 가장 큰 매력.
왠지 이런밴드는 독점하고 싶은데. 심지어 장기하는 잘생겼잖아.


김창완 밴드 - Bus



산울림과 세상에 동접한 시기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그들을 놓치고야 말았다는건 아주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김창완 아저씨가 계속계속 노래를 불러주면서 놀아주는건 그 자체만으로도 신나는 일인데, 이런 앨범까지 내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

신곡이 5곡밖에 없어서 초큼 아쉽지만, 그래도 김창완.


오소영 - A Tempo



기억상실 이후로 한참이나 소식없이 지내던 언니의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복귀.
담담하지만 인상적인 목소리, 거창하지 않지만 깊은 이야기들.
악악악.
ps. 공감에서 무려 공연에 당첨됐지만 가지 못했다. 악악악.


서울 전자 음악단 - Life Is Strange



신중현의 아들들.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이 미안해지는 앨범.
'서울의 봄'같은 경우는 왠지 '완성'이라는 느낌마저도.
이렇게 본좌는 탄생해가는구나.


루시드 폴 - 레미제라블



마치려다가 며칠전에 나온 이 앨범이 눈에 밟혀서.
좋은 것과 재미있는 것은 분명히 다르니까.
분명 루시드 폴의 좋은 노래와 좋은 메시지는 재미없다.
'사람이었네'같은 오글거림이 이젠 여기저기 도처에 도사리고.
착하고 똑똑한 형의 좋은 노래에 심술이 돋는건 답답하기 때문일까.
사이좋은 사람들에게 부러 브로큰 어스 블루스 밴드의 노래와 붙여 들려주는건 같은 마음.


영화.


도 쓰려다가 시간이 벌써 어익후. 영화는 다음에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람. 돈주는 것도 아닌데.

3.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린다. 감기 조심하라고 사람들 걱정해주다 정작 나는 된통 감기에 걸렸다.
글루 와인이니 유자차니 병원안가고 감기약 안먹겠다고 쌩쑈중이지만 내일까지 이러면 약 먹는 수밖에.
감기조심합시다.




브로콜리 너마저 - 유자차

네팔에서 다시 만난 미누


원문출처 시사IN - 네팔에서 다시 만난 미누


네팔에서 다시 만난 미누


18년간 한국에서 살다가 졸지에 강제 추방당한 미누 씨를 네팔에서 만났다. 그는 “내가 걸었던 길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노드 목탄 씨(한국명 미누·38세)를 만난 것은 12월 초순 네팔 중부 굴미 지역 탐가스라는 도시의 조그만 레스토랑에서였다. 이주 노동자인 그는 18년간 한국에서 살다 하루아침에 강제 추방되었다. 이날 미누 씨는 검정 점퍼 차림이었다. 서울에서 강제 추방되기 전 다행히 친구들이 보호소로 옷가지 등을 가져다줘 그나마 한국 옷을 입고 서울을 떠나왔다고 한다. 안 그랬으면 정말 슬리퍼 바람으로 네팔에 도착할 뻔했다.

네팔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으나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맑아 저 멀리 안나푸르나가 시원하게 보였다. 그는 “한국 사람을 보니 너무 반갑다. 마치 가족 같다”라며 인사했다. 한국에서 추방되어 낙담하고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미누 씨는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유창한 한국말 솜씨나 얼굴 생김새는 흡사 한국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는 “이제는 오히려 네팔 말이 서툴다. 친누나가 카트만두에 사는데 내게 네팔 말을 더듬는다고 놀린다”라며 멋쩍어했다.

   
ⓒ정정호
미누 씨는 안나푸르나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에서 “네팔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운동을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콘서트 준비 중 갑자기 추방당해”


그는 한국 음식과 한국 친구들을 많이 그리워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단다. “강제 출국된 지난 11월23일은 강산에 콘서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가 열린 날이었다. 우리 밴드가 그날 출연하기로 해 친구들은 모두 거기에 가 있었다. 출입국관리소(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직원이 보호소 상담실로 부르기에 그냥 의례적인 상담이라고 생각했다. 난데없이 ‘빨리 한국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어디 연락도 못하고 상담실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급하게 출발 준비를 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동안에도 내가 언제 어디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지조차 몰랐다. 공항 도착 후에야 타이를 경유해 네팔로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출입국관리소 직원 3명과 같이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비로소 한국을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그는 타이 공항에서 10여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정부에서 급히 추방하느라 직항 티켓을 구하지 못한 듯했다.

미누 씨는 비행기 안에서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 친구들이 나중에 내가 떠난 사실을 들으면 얼마나 놀랄까 하는 생각에 더 마음 아팠다고 한다. 그날을 회상하는 미누 씨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미누 씨는 네팔 공항에 내릴 때 네팔이 낯설어 보였다고 한다. 수중에 한푼도 없어 한국 친구에게 연락해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카트만두에서 한국산 물건을 사서 가족에게 서울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그는 가족에게 불법 체류자로 잡혀서 쫓겨났다는 말을 하기 싫었다. “나중에는 결국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18년간 헛되이 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아버지 표정이 내내 어두웠다. 그래서 포카라에 있는 아버지 집에 오래 있지 못했다.”

   
ⓒ정정호
미누 씨(오른쪽)는 김영미 편집위원(왼쪽)에게 “한국인을 보니 반갑다. 마치 가족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여자친구 있었지만 결혼 포기


미누 씨는 사전적 의미에서 불법 체류자가 맞다. 하지만 18년간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이주 노동자 문화운동을 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10여 년 전 한국으로 온 이주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폭력과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 때리지 마라! 욕하지 마라! 우리도 인간이다”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주노동자운동협의회를 조직해 이주 노동자 인권을 찾기 위해 싸웠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첫 계기였다. “방송에도 나오고 격려도 받았다. 뜻을 함께하는 한국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자랑스럽다.”

미누 씨는 이 캠페인을 계기로 이주 노동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그전까지 이주 노동자라고 하면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다. 미누 씨는 인디밴드를 조직하면서 노래를 통해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미누 씨는 이주 노동자의 생소한 문화와 한국 사회의 문화 사이에서 다리 구실을 했다. 그는 5년 전부터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민을 위한 위성방송 MWTV에서 일해왔고 재작년부터 2년간 대표를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한국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나는 국적을 얻기 위해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었다. 결국 결혼을 포기했다.”

이런 미누 씨는 18년 만에 갑자기 강제 추방된 진짜 이유를 무엇이라고 알고 있을까? “불법 체류자 주제에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그들에게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미누 씨는 어느 사회든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 삶의 질이 높아져야 그 사회 질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불법 체류자도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다문화를 외치면서 다문화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선진국을 외치며 다문화를 보호한다고 하면서 정작 한국에 있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은 배려하지 않는다.”

미누 씨는 그가 한국에서 18년간 한국 사회에서 한 일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주었으면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14년 이상 그 나라에 체류하면 영주권을 준다. 미누 씨는 강제 출국 직전에 강제퇴거 명령 이의 신청을 했다. 그러나 평가를 받기도 전에 추방이 됐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미누 씨가 한국에서 사회활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며 공로상을 보냈다.

미누 씨는 네팔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운동을 할 계획이다. “아마 하늘이 나를 네팔로 보낸 이유는 여기서 인권활동을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도 이주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문화활동을 찾아보고 있다”라며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주 노동자를 위한 미디어 조직을 꾸려볼 계획이다. 그는 언젠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너는 자존심도 없니? 너를 쫓아낸 나라로 돌아가고 싶냐?고 했지만 한국은 내 삶의 터전이고 18년간 살아온 내 동네다. 내가 걸었던 길과 친구들이 한국에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즐겁게 살 것이다.”


++
불법체류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아예 합법과 불법의 테두리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미등록'자인 것이다.

뻔히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게 만들려니 추방할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합법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법의 테두리 안에 거둬야 하니까. 그렇게 되면 착취하고 맘껏 버리지 못하게 되니까. 결국 쓸만큼 쓰고 가져다 버리는 이 작태는 남한의 자본 스스로 이주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

신문에 무슨 기사만 나면 수구 꼴통이네 딴나라 차떼기당이네 하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키워들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엔 눈에 쌍심지만. 자국민을 위해서 그들의 인권쯤이야 알바 아니라는 그들의 태도는 말로만 세계시민이네 지구촌이네 인류공존이네를 떠드는 국수주의.

더 잘 사는 나라는 곧 더 많이 뺏은 나라인것을. 그렇다면 더 잘사는 나라들로 못사는 나라의 인민이 유입되는건 당연한 이치. 그것조차 고까우면 너네도 기회의 땅 아메리카로 가는 것을 포기해라.

말이야 이렇게 해도 생의 절반을, 나아가서 어른이 된 삶의 전부를 보낸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심정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뿌옇게 보이는.







가끔 이유없이 촛점을 완전히 놓은 사진을 찍을 때가 있다.

보이는 그대로를 찍는 것이라면,
세상은 가끔 저렇게 아무 이유 없이 뿌옇게 보이기도 한다.

누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고 즐겁게 떠들면서도
또 한켠이 갑갑하고 외로운 그런날에는.

어제, 눈오는 남도의 저녁이 그랬다.
올 겨울 눈다운 눈을 맞은 첫날이라 그런가보다하며 괜시리 콧잔등만 긁어냈던 밤.






고장난 고물 녹음기 - 노빠


노회찬, 그 답답한 녹음기 정치


아. 줄줄줄 쓰다보니 얼마전에 했던 얘기만 반복하게 되는. 답답한 녹음기도 아니고.
그래서 간략하게.

1. 노빠와 민주당은 진보가 아님. 진보정당과는 눈꼽만큼의 동질성도 없으므로 연대는 불가능.

2. 민주당과 노빠들이 진보연하는게 이명박보다 더 꼴보기 싫음. 노무현과 이명박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

3. 진보 정당 연대의 목표는 눈앞 선거의 승리가 아니라 (거창하게는)민중 정치 실현, (쉽게 말해)잘먹고 잘살자임.

3-1. 민주당과 노빠가 대단한 지분을 갖고 있지도 않음. 서거 정국의 노란풍선은 민주당지지가 아니라 노무현 개인에 대한 연민과 애정. 혹은 구태의 정치보복에 대한 분노 표출이었음.

4. 지방선거, 총선, 대선 몽땅 한나라당이 이겨도 나라 안망함.

5. 오히려 어설프고 명분 없는 연대로 그나마 한줌밖에 안남은 진보 정당이 지리멸렬하는게 훨씬 위험함.

6. 사람들이 백날 이래봐야 노빠들에겐 씨알도 안먹힐 거라는 걸 앎. 오직 방법은 개무시 크리.



엔트워프 중앙역





뭐지. 이 알 수 없는 훈훈함은.ㅎ

나도 길을 걷다 이런 광경을 마주쳤으면 좋겠다.
춤추고 노래하며 어울리는.
박수치다 말고 뛰어들어 귀퉁이에서 같이 춤 춰야지.

091211



##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갈구'를 부끄러울 만큼 칭찬해주는 친구의 얘기를 듣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에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하마터면 사실을 고백할 뻔 했다.

"걍 무식한게 들통나지 않고 싶은거야."

##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려워하고 있다.
'살아가는 것이란 그렇게 만만치 않더군'이란 말은 괜히 나온게 아닌가봐.

간절하거나, 절실하거나, 긴장하거나 하는 삶을 앞으로도 수십년간 살아야 하나고 생각하니 가슴이 뻑뻑하다.

여전히 어린애.
만만치 않음에 익숙한 어른이 되고싶다.

##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은 위대하다.
만들어진 것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일이야 입가진 자라면 누구에게든.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모든 이들에 대한 경외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도 동시에.

상상하고 그려내는 일에 대한 경외.

##


갖고 싶은 카메라. (中 하나)
크게 무리가 없다면 내년 봄소풍땐 X-370으로 찍은 사진을 볼 수도 있겠다.

##
그렇다 지금 일은 안하고 농땡이 부리고 있는 것이다.



QVL - Il Tempo Della Gioia

태안, 코펜하겐, 헌터스, 북친- 인간의 애증


##
태안사고 2년, 의항리에선

허베이스피릿호가 태안바다에 기름을 쏟은지 어제로 정확히 2년이다. 백만의 사람들이 보여줬다는 그 감동의 자원봉사가가 끝나고 나자 거짓말처럼 바닷'가'는 깨끗해졌고, 어업도, 생태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렇다, 그건 거짓말이다.

눈에 보이는 곳만 닦아내, 바닷속은 여전히 기름 알갱이들이 가라앉아 죽어있다. 생명들이 살 수 있을리 없다. 자식들 가르치고 시집보낸 굴이며 조개는 돌아올 줄 모른다. 다시 기름이 쏟아져도 사람들이 금방 또 나서 닦아줄거라 믿는지 정유업체는 아직도 한겹유조선을 바다에 띄워 수만 수억톤의 기름을 들여온다. 보상도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상건수의 0.9%, 신청액의 0.6%만이 보상받았을 뿐이다.

우려했던건 이런 일이었다. 원인과 과실도 밝혀내지 않은 채 자원봉사 미담으로 사건을 왜곡했던 자본과 정부, 언론은 이제 아무런 것도 해주지 않는다. 태안의 주민들은 건강도 돈도 삶도 모두 잃은 채 한숨을 내쉬는 일밖에 남은게 없다.

사실 더 근본적인 물음은 사고가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무엇때문에 저 많은 기름이 바다위를 오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그날도 오늘도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소비, 더 큰 안락의 댓가가 결국은 목숨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한, 이런 일은 끊임없이 일어날 테다.

##
정부 “자발적 감축하되 성장에 필요한 만큼은 배출”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성장에 필요한만큼은 배출'이라는 미적미적한 카드를 들고 나섰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온실가스를 9번째로 많이 내뿜는 나라이고, 온실가스 배출 증가량에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런나라에서 심지어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기치를 내건 정부가 성장할만큼은 하고 되도록 줄여보긴 하겠다는 되먹지도 않은 말이라니.

물론 비단 어느 한 나라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온실가스 배출과 생태파괴는 이미 말로 담을 수 없을만큼이고, 일단 먹고 살기 바쁜 개도국들과 신흥 공업국들 또한 온실가스 따위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결국 생산을 늘리고 소비를 증대하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인 자본의 속성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는 것이다. 문제는 욕심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서 더 많이 죽여야 하는 제로섬게임. 결국 생산하고 소비하다 제 목숨까지 소비하는 셈.

##



일요일 일요일밤의 새 코너 '헌터스'에 대한 논란이 첫 방영 이후에도 잦아들지 않는다.
여론을 의식한 듯 첫 회 방송에선 멧돼지의 포획이나 사냥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등장하진 않았지만 근본적인 관점,
그러니까 인간의 이익을 위해 다른 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는 그릇되고 오만한 관점은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번식해 생태를 파괴하는 생물은 다름아닌 인간이다. 좁은 땅떵어리에 60억이 넘는 개채가 살며 모든 생태사슬을 끊어 놓고 있다. 멧돼지는 고래로 살아왔던 영역과 생존을 위한 본능만을 발휘할 뿐, 오히려 다른 존재를 위협하는 건 인간이다.

자기의 잣대로 다른 생명을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의 노예제도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 않는 사회의 발달, 신분철폐와 평등, 박애. 애초에 자신 아닌 존재의 생명 자체를 하찮게 여기고 있으니 노예를 죽이는 것쯤 아무렇지 않던 고대 귀족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
그렇다고 인간 자체를 증오하고 오직 인간의 절멸만이 답이란 무모한 주장을 하는 건아니다. 분명 인간은 어떤의미에서 조금 특별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머레이 북친의 말에 따르면 모든 오류의 시작은 (인간)사회와 자연을 분리하는데서 시작한다.
자연을 인간사회의 발전을 위한 정복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관점도, 인간의 원죄에 의한 자연 파괴를 막기위해 인간을 혐오하는 관점도 인간사회와 자연을 분리하여 사유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회'는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생물종과는 다르게 가진 특질이다. 동시에 인간의 사회라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이지만 그 의미는 엄청나게 다른)개미굴이나 늑대의 부족처럼 자연계의 일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면 무조건적인 개발주의든 근본생태주의든 양극단의 늪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인간이 생태계의 일부인 것을 간과하는 오만.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이다.

문제 인식의 시발점은 생태계 일부로서의 인간사회다. 정복하여 계급을 두고 착취하는 구조를 인간사회 내부에서 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로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생태계의 파괴나 부조화는 발생하고 있다.

##
고리적 생산량이 극심히 부족한 시절로 회귀할 수 는 없다. 다만 과하게 누려오던 것들을 포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지만 인간에 대한 증오가 답은 아니다.

결국 조금 버려야 한다. 조금 더 가난해 질 수 있어야 한다. 덜 생산하고 나눠 써야 한다.덜 먹고 덜 버려야 한다. 더 많이 걷고 더 여유 있어야 한다.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줘야 한다. 정복보단 공존을, 물질보단 정신을 우선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신은 그럴 수 없는 존재로 인간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더 노력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선.

##
헌터스를 기다리다 일밤의 또 다른 새코너 '단비'를 봤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가난한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를 보다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양치를 하던 아침나절이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물은, 뺏지 않으면 적어도 모자르지 않다.






신은 죽었다 - 니체

니체에게 딸이 있었을 줄이야


091203



책상 위 달력이 아직도 11월에 멈춰있는걸 보고 달력을 넘기려다가 그만뒀다. 멈추어라.


그저 필요했던건 위로였어.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까지 듣고 나도 눈물을 글썽였다.
난 가끔 위로받기 위해 상처받는다.


첫눈이 왔으면 좋겠다. 첫눈이 내리는 날 눈을 보면서 따끈한 오뎅국물과 술을 마실거다

 


The Czars - Val

파업을 지지합니다

 
1.
철도노조의 파업이 끝났다. 결국 백기를 들고말았다. 불법을 운운하는 정부의 등쌀에, 수구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떠들어대는 '국가경제'에 협박당할 사람들의 예정된 광기에.

먹고살 안정된 일거리가 보장됐으면서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 의식으로 노동자들을 바라보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누구나 알듯 파업은 헌법적 권리다. 덜 가난하다거나 덜 괴롭다는 이유로 그 권리를 침해 할 수는 없다. 그런 논리로 따지고 들자면 실업자보다 나은 비정규직도, 노숙자보단 나은 철거민들도 두 손 놓고 아무런 불만 없이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는 가장 취약한 계층의 목소리엔 귀를 귀울였는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철거민 어느 한 곳에 하다못해 동정과 연민의 눈길이라도 보낸적이 있던가. 영하의 날씨에 옥상에서 제 몸이 타는 것도 아랑곳않는 늙은 아버지를 방화범, 살인자로 만들어버린 일이 불과 며칠전이다.

'그러게 선거 때 정신차리지 그랬어' , '다음 선거때 두고보자' 같은 의미없는 말들이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파업'이야말로 민중의 힘을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사실 문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업'을 필두로 하는 민중 개개인의 직접행동. 민주주의에서 주권을 실현하는 가장 큰 수단은 선거가 아니라 직접적 행동이다.

2.
좀 따지고 들면 정치파업이라는 말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그건 차치하더라도 난 철도노조의 파업이 정치파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기업 선진화 방안은 필연적으로 공기업 노동자들의 삶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철도의 적자는 부실경영과 정부정책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철도공사는 여타 국가에 비해 훨씬 많은 시설 관리비를 내는데다 벽지 운행등의 서비스를 위해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은 실제로 받지도 못하고 있다. 거기에 정부가 무리하게 공항철도를 인수케 함으로 철도공사의 적자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판국에 공기업 선진안 같은 하찮은 종이 쪼가리로 모든 적자의 원인을 노동자에게서 찾으려 하는건 어불성설이다. 노조가 파업에 나서는 것은 반정부투쟁보단 차라리 생존권투쟁인 것이다.

3.
기륭, 쌍용, KBS, 철도까지. 정부의 노조 길들이기는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 온 나라에 무노조경영방침을 도입할 셈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자본의 독재가 도래한 것이다. 이젠 무기력과 냉소가 가장 위험하다. 대통령만 다시 잘 뽑으면 될거라거나 선거때까지만 참자는 허황부터 버려야 한다. 먼저 할 일은 '인식'하는 일이다. 자신의 계급 정체성을 인식하고 무엇이 내 삶을 위한 일인지 인식하는 일이다. 그리고 포기없이 싸워야 한다.

다시 파업하라. 파업을 지지한다.

샘터분식






1.
그래도 아주 간만에 본 영화라 한마디 하려고 앉았는데 딱히 할 말도 없는 영화였다.

2.
'공간'을 중심으로 공간 위의 '일상'을 잡아내려는 의도는 보였으나 의도에만 그치고 만.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3.
매력적이었던건 '민중의 집'과 수줍은 안성민씨 정도였으나, 이 또한 영화적 재미는 별로. 차라리 샘터분식 사장님과 더 수다를 떠는 영화였다면 혹은 Jerry K의 공황장애에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난 그거 끝까지 궁금하던데.
전작에서부터 느끼는 거지만 감독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것이 영화인지, 프로파간다 영상인지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영화의 목적이 프로파간다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럼 돈을 받지 말아야지.

4.
내용이 아니더라도 편집이나 촬영에서부터 조금 더 신경을 쓰는게 어떨까. 장장 1년이나 찍은건데 노력에 비해 결과가 너무 아깝잖아요.

5.
졸았지만 졸만했다.
밤을 샌 다음날 봤던 영화들도 눈한번 깜짝이지 않고 봤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 책임 아님 퉤퉤퉤.

6.
그래도 태준식 감독의 다음 작품도 챙겨볼꺼다.




우리 이제 헤어져


 진보정당이 유시민 전략을 받아야 하는 이유

## 사표론 혹은 비판적 지지론

노도와 같았던 87년의 항쟁을 끝마치고서도 노태우가 대통령직을 승계받는 꼬라지를 물끄러미 지켜봐야 했던 이유는 양김의 분열이었다. 분열에 대한 공포와 승리에 대한 집착은 그때부터였다. 많은 이가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했다. '그들이 다시금 권력을 잡아  내 삶을 파괴할 모습'을 보게 되는 걸 두려워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될 놈'을 밀어주자고 다짐했다. 다음에, 다음에를 기약하면서.

다음은 계속 차일피일 미뤄졌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나 변변한 진보후보도 하나 내지 못한 지난 대선까지도 비판적 지지론과 사표론은 스멀스멀 고개를 디밀었다. 대선뿐이 아니었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 웃긴건 진보를 자처하며 비판적 지지론에 치를 떨던 이들조차도 정작 의회입성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선거연대를 운운하던 모습.

그렇다면, 그간 일련의 정치협상들은 모두 진보나 혁명을 위한 것들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건 단지 금뱃지 패티시였다. 어떻게든 금뱃지를 탐하려는 저열한 욕심.들 주제에 진보니 개혁이니 집권저지니 비판적지지니 하는 말들을 입에 올려왔던거다. 어느 진영에든 노골적인 금뱃지 페티시 환자들이 넘쳐나는데 대의와 명분과 미래와 우리를 위해서 일단 지금은 닥치고 요기 붙어라 루저들아 라는 외침에 홀랑 넘어갈 바보가 어디있겠는가.

## 진보의 약진, 그리고 몰락

진보정당의 약진이라고 한다면 역시 2004년 총선의 결과다. 13%의 지지를 받고 두자리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탄핵과 민주당과 노빠들의 공이었다고 자처하기에는 글쎄. 난 유시민이 사표를 운운하며 민노당 찍으면 또 한나라당이 이긴다고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연하다. 내가 그러고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ㅡㅡ;;) 민노당 당게와 아고라를 오가며 사표론을 들먹이며 비판적 지지를 외치던 그 많던 불망의 밤들을 분명 기억하고 있는데 모든게 민주당의 공이라니.

진보의 몰락이라던 지난 대선의 2%지지와 분당은 한나라당의 탓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와 개혁을 자처하던 지난 정권이 보여준 행태라는 것이 아프간, 이라크도 모자라 대추리에까지 군대를 파병하고, 대량해고와 비정규직법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한미 FTA까지 채결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일단 지난정권과 민주당도 진보를 자처했으니 진보니 뭐니 하는 딱지가 붙은 모든 집단에 응징의 철퇴가 가해진건 어쩌면 당연한 일. '초록은 동색일지도 모르지만 쟤네와 우린 달라'라는 말조차 꺼내보지 못한 진보정당에 제일 큰 책임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판국에 진보정당의 약진은 민주당 덕, 몰락은 한나라당 탓.이라는 해괴막측한 논리를 들고 나온다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발딱발딱 일어나 게거품 물어댈판이다.

## 백마 엉덩이와 흰말 궁둥이

초록은 동색이다. 행정수도 이전과 4대강사업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또 비핵개방3000과 대추리 파병또한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행정수도이전은 지방 발전 계획이라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미명으로 또다시 작위적으로 근대화된 도시를 만들겠다는 단순무식한 발상에 다름없었다. '발전'이라는 미명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발상. 또 발전이라는 것이 오직 근대화되고 물질화되는 형태로만 나타나야 한다는 어리석고도 오만한 믿음. 개발이라는 당치도 않은 미명으로 강바닥을 해집겠다는 4대강 사업은 그런 개발주의, 물질주의를 부모로 둔 행정수도의 쌍생아와도 같다. 이제와선 노무현 정권에 입안됐다는 이유만으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몰상식이 짜증날 뿐이다.

평화를 졸로 보고 경제를 숭배하고 생태를 외면하는 곳.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닮은 차원을 넘어 완전히 똑같다.
연대가 이루어져야 할 곳은 오히려 그들이다. 난 그들이 속시원하게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똘똘 뭉쳐줬으면 싶다. 괜히 헷갈리지 않게.

앞서 말한것처럼 반MB전선은 진보니 혁명이니 개혁이니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금뱃지 페티쉬 환자들의 사이좋은 위장술. 비슷하고 공감해서 짜여진 연대가 아니라 오직 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짜여진 연대. 공감을 얻을 수 있을리 없다. 

## 진보의 목적 - 그러니까 무엇을 위해서

정당의 목적은 물론 정권창출에 있다. 그러나 진보의 목적이 정권창출과 의회진출에만 있느냐. 글쎄 과연.
대의를 이루는 쉬운길을 놔두고 왜 어려운 길로 돌아가냐 묻는 비담에게 스승 문노는 말했다.
"쉬운길로 가선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대의인 것이다"

진보정당이 모든 진보운동의 주력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의회진출과 정권창출은 정당의 목적일 순 있겠으나 진보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진보의 목적, 동력은 '명분'이다. 이것저것 다 재쳐두고 의회에 진출하고 정권을 창출한다고 만사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당은 찾을 수 있겠으나 진보는 찾을 수 없는.
시작이고 끝은 아다시피 더 낮은 곳에 있다. 국회의원 금뱃지보다 마을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이장님이 훨씬 진보의 명분에 가깝다. 이거고 저거고 일단 닥치고 의회진출부터.가 아니다.

의석과 정권을 잃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저들의 놀음에 놀아날 필요는 없다. 이미 저들이 되어버렸다면 할 말 없게 되는 거지만.

## 우리 이제 헤어지자

때만되면 이런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아깝기' 때문이다. 쌓아왔던 것, 버텨왔던 것 가진 것들을 내주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줘야 할 건 버려야 할 건 다 버리는 것이 진보다. 쌓고 또 쌓아서 만족하는건 그야말로 꼰대들의 턱기 아닌가.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면 이젠 가진것도 없지 않은가.

인정할건 인정하고 딱부러지게 말해야 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놀아라. 우린 너네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 시시껄렁한 유혹에 넘어갈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음은 딴 집에 가있으면서 몸만 내게 와 부비며 용돈 타가는 옛날 애인하곤 헤어져야 한다. 그게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다.

햇빛 비추는 날





우리들 함께 견뎌온 날들이
내겐 가장 그립고 소중해.

++
처음 들었을 때부터 오늘까지 이 노래는 이상하리만치 귀에 남아 눅진거린다.
이상했던건 2002년에 처음 공연을 보고 싸인을 받았는데, 싸인 위에 난데없이 '햇빛 비추는 날'이라고 써준 일.

대중추수주의에 대한 추억



MB “인기·인심 얻는 데 관심없다”



우리학교는 재단의 비리, 방만한 경영, 어른의 사정등의 이유로 초유의 학교부도 사태를 맞은 적이 있다. 그 초유의 사태를 해결코저 재단과 학교당국이 생각해낸 방법이라는 것이 '캠퍼스 이전'이었다. 서울시내에서 땅값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던 땅을 몽창 팔아서 빚을 갚고 헐값에 사두었던 변두리 귀퉁이로 학교를 통째로 옮기는 막돼먹은 퍼포먼스. 당연히 학생들은 결단코 반대해 나섰고 90년대를 관통하며 지지부진 늘어진 이 싸움이 학교의 전통처럼 자리잡아갔다. 그러던중 20년만에 운동권 학생회가 총학생회 수권에 실패하고 어용(이라 짐작되는) 총학생회가 들어서자마자 총학생회장은 이전 합의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싸움이 끝난 것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왔던 학교 이전이 확실시되자, 더이상 투쟁의 방향성조차 잡아낼 수 없었고 마침내 온 학교의 학생회 일꾼들이 모여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중론은 현실을 수용하고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15년을 백지화와 반대만을 외쳐왔으니 대표체로서 '이후'에 대한 준비가 있었을리 없다. 소소한 생활환경적 준비에서부터 이후의 학자투쟁에 대한 전망까지 무엇하나 마련된게 없는 상태였다. 아무런 준비없이 시장나가는 소마냥 끌려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이제부터라도 내일을 준비하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물론 학생회에 바라는 학우들의 의견도 거기에 모아져 있었다.

난 패배한 총학생회선거에서 학자정책을 맡았다. 때문에 조직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운동권들의 습성대로 패배 후 비공식적으로 만들어진 새조직에서도 학자정책을 맡고 있었다. 이후의 투쟁방향을 토론하자며 모인 그 자리도 내가 제안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패배이후 현실인식과 이후를 대비하자는 말들이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론과 대세였음에도 난 패배주의라 단정지으며 말을 꺼냈다.

"패배주의다. 상황이 어찌됐든 옳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인데 상황논리에 밀려서 정작 해야 할 투쟁을 도외시 하겠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학우들이 원하는대로 모든 투쟁을 진행하겠다는 말은 어느 것도 책임지고 헌신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하고 비겁한 대중추수주의일 뿐이다. 결국 소 끌려가듯 끌려가더라도 끝까지 저항하며 우리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단념하고 걸어서 따라가서는 안된다. 그 끝모를 저항이 대중들에게 우리의 진정성과 순수성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고백하건대 당시 써냈던 학자운동총론에도 [골 터질때까지 싸운다. 안되면 될때까지 싸운다.]로밖에는 요약되지 않는 말들을 써내렸었다. 실제로 그런 생각뿐이었다. 우리가 옳으니 아니, 결국 내가 옳으니 이대로 싸워나간다면 언젠가는 알아줄거야.라는 막연하고 헛된 믿음이었다. 마치 오늘은 오해받더라도 후일엔 기억되는 선지자를 코스프레 하고 있었다. 그 코스프레의 시작은 끝간데 없는 자기확신. 그건 오만이었다.

그 되도않는 일장연설이 먹혀들었는지 그 날부터 새로운 캠퍼스에 등교를 하게되는 날까지 다들 머리통이 터지도록 싸웠다. 앞에서는 학교당국과 재단, 어용(이라 짐작되는)총학생회를 규탄하며 이미 구부능선을 넘어 현판식만 마치면되는 신캠퍼스 이전을 백지화하라고 소리치며, 뒤로는 새 캠퍼스에서 살아갈 방편을 물어오는 학우들을 만나는 후배일꾼들만 죽어나는 판이었다. 그/녀들은 어지러워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도 몰른다고 말했다. 그럴수밖에. 나도 그게 뭐하는 짓인지 몰랐으니까. 난 그 말도 안되고 억지스런 쑈를 보면서도  애써 이게 진정성이고 모든것을 결의한 투쟁이라고 자기합리화 했다.

결국 새로운 캠퍼스를 맞닥드리고나서 모든 것은 명확해졌다. 아무런 준비없이 목청껏 있는 힘껏 치대온 팔뚝질은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이전이후 1년간은 그 공백을 매워내느라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학우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갓끈이나 고쳐매고 있던 우리를 외면했다. 총학생회 선거에서 다시 패배했다.

처음 '학습'을 하던 때 받은 책은 '학생회 운영의 원칙과 방도'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종종 나오는 어휘가 대중추수주의에 빠져선 안된다는 말이었다. 무조건 대중들이 원하는대로 행동해선 혁명이고 나발이고 결국 아무것도 못한채 쫑나기 십상이라는. 선배들도 그렇고 나도그렇고 그 말이 깊이 와닿았었나보다. 이후 뭔가 학우들의 의견이 어떻고 하는 말이 나타나면 '대중추수주의'라는 간편한 말로 뭉개버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만하면 빨갱이를 운운하던 꼰대들처럼. 그 편리한 무기를 무기라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그건 지독한 자기확신이었다.

대중추수주의란 말은 확고한 자기확신없인 가능하지 않다. 물론 무조건 대중들만을 쫓는 인기영합, 포퓰리즘은 어디서든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사랑이든 삶이든 혁명이든 정치의 영역이든 모든 곳에서 자기애와 확신은 명확해야 하는것도 맞는 일이다. 그러나 확신만큼 오만한 것이 없는 것 또한 맞는 일이다. 정도가 지나친 자기애로 자기를 민족의 태양으로 만들어버린 사례도 있지 않은가. 인민들이 굶고 있으니 지금하는 짓들 당장 멈추고 인민들 밥부터 주시오. 라고 말하면 그는 무어라고 할까. 대중추수주의라고?

인기따위 신경쓰지 않겠다는 MB의 말을 보고 있다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가장 싫어해 양극단에 서있는 그들은 사뭇 닮았다. 자기 신념에 대한 흔들림없는 확신.(무엇을 향한 어떤 신념인지가 중요한건 아니다. MB에게 신념이 있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의 이익, 자본의 이익만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았다면야.) 한 줄의 의심도 하지 않으니 끝없는 평행선을 달릴밖에. 대중의 말따위야 한낱 우민(愚民)들의 의미없는 하소연일뿐.
결국 선지자를 코스프레하는 대책없는 책임감과 헌신에 혀를 내두르다가 지난 시간이 떠올라 얼굴이 빨개진다. 잃어봐야 알게 될 것들. 그러나 나야 고작 대학생활5년과 학생회를 잃었다지만 저들이 잃을건 수천만명의 삶인데.

난 여전히 정답을 알지 못하겠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를 확신하는 일과 남을 받아안는 일의 적절한 경계선따위 도대체 어떻게 짐작해야 할까. 그러나 한개 두개 만들어진 오답노트 같은 것들은 있다. 확고한 신념같은 것들.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하는.생각.
신념을 표피로 드러내 마침내 영웅이되는 옛날 이야기도, 목숨은 내놓을지언정 신념은 내놓지 않는 신념의 강자들이 이루어낸 혁명의 시대도 내가 감당하기에 난 너무 소시민적이다. 난 언제나 틀리고 틀린문제 또 틀리기도 하고 찍어서 맞춘걸 알고서 맞춘듯 으스대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 모두를 거스르는 신념 같은거 난 두렵다. 오답을 놓고도 결국 정답으로 증명해낼 지혜와 의지가 있는 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인간사 예수와 석가 이후로 그런 인간이 있기는 했나?   





사과즙 글씨
정을 의심하여 반을 내세우고 합이 도출되어 다시 정이되는 변증법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논리라고 말하던 고교때 국사선생님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정체를 숨긴 주사파였던것 같지만, 변증법이 아름다운 논리라는건 여전히 동의하는 바이다. 흔들림없이 '정'을 세우는 일, 거리낌없이 '반'을 받아안는 일, 그리고 마침내 합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내는 것이 진보하는 일이다.
 

  

091110


##
김연수의 책을 읽다가 '하이쿠'가 멋스럽게 느껴졌다. 가끔 하이쿠를 뒤적거린다.

반딧불이 반짝이며 날아가자 ´저길 봐´하고 소리칠 뻔했다 나 혼자 인데도 - 다이기

##
마땅히 읽을 만화책도 없는데 잠이 오지 않으면 백석을 읽기도 한다.
가을이라 그런가.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찬바람이 불어오면 따스했던 호빵이 몹시도 그리웁게 되므로 호빵을 찐다. 이사하면서 전자렌지를 처분하여서 냄비에 물을 붓고 찜기를 올리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전자렌지로 데운 인간미 없는 맛보다는 훨씬 맛있고 따듯한 호빵을 먹을 수 있다.

##
무기력, 허황, 허영, 오만같은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다. 항상.
솔직하고 겸손한 사람을 말하면서 정작 살아가는 모양은 그야말로 잉여.
아, 잉여라는 말은 참 가슴아프다. 너무 적확해서. 채 소모되지도 못한 인간.
그 찐득거리는 수렁에서 벗어나 바삭하게 살아가는 꿈을 꾼다. 그러나 이또한 허황. 잉여의 특징.
바삭거리는 삶 따위 없다는거 알고 있다. 바스라지는 삶이라는건 있겠지만.







Rufus Wainwright - Going To A 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