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332건

강허달림



친구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라디오에서 그때 그사람이 흘러나왔다.
"잠깐, 이거 강허달림 목소리 아니야?"

그 때부터 친구 얘기는 듣는둥 마는둥. 모든 신경이 그리 향한다.

노래에 이렇게 자기를 싣는 목소리를 일찍이 들어본일이 있을까.
그녀의 노래는 말 그대로 내던진 모든 것이 그대로 날아와 몸통에 박히는 느낌.
달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빼곡히 들어찬 숨결조차 버거우면
살짝 여밀듯이 보일듯이 너를 보여줘
그럼 아니. 또 다른 무지개가 널 반길지.


아이고, 우리 슨상님





##
기억하는 첫번째 선거는 92년 대선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당시에 골목골목마다 붙었던 대통령선거 포스터는 신기한 풍경이었다.

아버지는 김대중 후보의 지지자였다. (후일에야 듣게 된 얘기지만, 아버지는 당시 민중 후보였던 백기완 선생을 지지했으나 '사표론'에 휩쓸려 김대중 지지로 돌아선 전형적인 비판적 지지자 였다.ㅎ) 집안에서고 어느 자리에서고 아버지는 공공연히 '김대중 선생님'을 뽑아야 민주화가 완성된다고 말했었다.

꿈뻑꿈뻑 졸면서도 아버지를 따라 개표방송을 보던 나는 아버지가 분개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김대중 선생님'은 처연하게 울었고 숙적이자 라이벌이자 동지이자 웬수인 김영삼이 당선됐다. 아버지는 분개하고 원통해했지만 나로선 '후보중에 제일 못생긴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참 폼 안나게 됐다'란 생각외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
중학교 시절 IMF가 터졌다. 온 국민이 나서서 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캠페인이 펼쳐졌다. IMF와는 상관없이 당시 우리 가족 경제는 내 출생 이후 최고의 호황기였기 때문에(그때 우리 부모님은 꿈에 그리던 내 집 장만을 하셨다.) 경제 위기에 대한 푸념은 사실 팝콘을 집어먹는 뉴스비평에서 한발짝도 더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 모든게 멍청하고 무능한 김영삼 탓이라고했다. 식탁에선 멍청한고 무능한 김영삼을 비꼬는 우스개가 가족의 화목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구제금융신청과 외자유치, 국민캠페인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선생님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흐뭇해 하셨고. 나도 덩달아 흐뭇해 했다. 아이고 우리 슨상님.

##
6월 13일 오후. 순안공항에 남한 대통령이 처음 발을 딛고 국방위원장과 뜨거운 악수를 하던 그 순간에 난 교무실에서 업드려뻗쳐있었다. 왜 혼나고 있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 내가 선생님들 들으라고 한 말은 정확히 기억난다.
" 아 왜 뉴스보느라 다들 난리야. 대강하고 빨리 와서 집에 좀 보내주지."
정확히 4년 후 그 장면을 볼때마다 환호하고 눈물흘리며 '자주통일의 필승보검, 민족의 빛 공동선언'이란 성명서를 쓰게 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었다.

##
일전에 아버지와 술을 마시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로 언쟁을 벌였다.
"그는 위기극복을 가장하여 국제 금융자본앞에 우리를 내 던지고 신자유주의 경제구조를 만들어냈어요. 결국 구조조정, 경영합리화라는 미명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죠. 가난한자들의 돈을 빼앗아 재벌의 배를불려준것이 어째서 위기 극복이죠? 그와 박정희가 다른점을 모르겠어요. 노벨평화상이 별건가요? 결국 다 국가와 자본의 신선놀음일 뿐이에요."
아버지는 예전처럼 분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고 말씀하셨다.
난  중얼거렸다. '도대체 뭘 배웠길래 선생님이야'

##
오늘 사무실에 앉아 푸짐했던 점심식사에 만족하며 배를 두드리고 있을때 속보가 흘러나왔다.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굉장히 슬펐다. 이해 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가 공동선언을 만들어내고 민주화를 이룩해내서 드는 안타까움따위는 아니었다. 공동선언은 가변적인 평화안착엔 기여했지만 그 자체로 문제를 내포하고(이 문제에 대한 인식은 차후에 다시 포스팅)있고, 민주화의 공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의 역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업적이 훌륭한 위인에게 바치는 경외도 인간적 감정이 물씬 드는 친구에게 보내는 안타까움도 아닌 이 감정은.

어쩌면 '존경'이겠다. 80이 넘는 세월동안 오직 하나의 신념.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 그것.에 모든것을바칠 수 있는 끈기와 의지. 거기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강인함. 그것에 대한 존경.
지금 이 마음은 존경할 것들이 점차 사라지는 세상에서 얼마남지 않은 존경의 대상마저 사라져버리는 아쉬움과 허탈함에서 나타나는 것이겠다.

그래, 그는 선생님인거다.

##
노무현의 노제가 있던 거리에서, 함께 거리를 걷던 누이에게 물었다. 누가 죽어야 또 사람들이 이리 슬퍼할까요.
글쎄, 김대중 선생쯤이나 되야 이만큼의 오열이 또 있겠지.
사람들에게서 눈물을 이끌어내는건 거짓 이미지나 화려한 업적이 아니다. 그건 오직 진정성. 난 노무현의 서거정구에서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김대중선생이 노통의 유가족을 보며 오열하는 장면에선 눈물을 훔치고야 말았다. 

##
다시 태어난다면 이란 말들을 하던데 난 그 냥반 다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겁의 세월동안 영면만 오직 휴식만. 삼가 명복을.




090817



Christophe Marc - My Misfit Ways



덥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를만큼.
당분간은 계속 덥다고 한다. 당분간은.
하지만 더위는 물러간다. 언젠가는.




선덕여왕 보는 재미에 빠져산다.

어느 유명 블로거는 아직 덕만에게 어떤 명분과 대의, 당위가 없음을 지적하며 후일 미실과덕만이 대결하기 위해선 당위와 대의를 갖춰야 할 것이라 말하더라만.
난 어느 대의와 당위보다 그저 욕망과 생존의 욕구만이 더 대립각을 날카롭게 해 줄거라 생각한다.

이 정권을 지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대의명분을 가진 정치력 싸움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 정치를 하는 진짜 날것의 정치.. 원래 정치란 그런거잖아. 나 살자고 하는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꾸 남자배우만 탐닉한다고 누구는 심지어 우려(?)까지 하더라만. 어쩔거야 눈에 띄는건 오직 요 형님인데.
하악하악.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미안 요 형님도.. 하악하악




변희재와 허경영에 대한 얘기로 하루종일 즐거웠다. 이렇게 웃기기라도 하면 그나마 참 다행.
생긴거 말고는 도무지 웃기지도 않는 그분은 도대체 어쩔거야.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은


밖은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 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것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샛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려 다닐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新刊書) 하나도 없는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아주 가끔 백석을 읽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눈가를 뜨겁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세통의 전화




늦잠에서 깬 주말 오후, 세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마다 외출을 요구했고 모두 똑같이 대답했다.
'피곤해, 쉬고싶어'

##
"오늘 815축전 안올거야? 빨리나와."
"피곤해, 쉬고싶어요"
"이제 아예 이런건 안나오기로 한거야?"
"그냥요, 피곤해서 쉬고싶어요"

그가 말하는 이런게 뭔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글쎄.

매번 똑같을걸 알면서도 또 매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심력을 소비하고 싶지 않아서.
이젠 피곤해요.

##
"술마시자, 애들 다 모였어"
"피곤해 쉬고싶어"
"자꾸 너만 빠질거야? 너빼고 다 모였단 말이야"
"미안해, 그래도 피곤하다."

그가 말하는 '모두'의 범주가 무엇인지 알고싶지 않지만.

굳이 '우리'라는 굴레를 만들고 그 안에 이것저것 엮어넣어 피곤한 의무감을 만드는 일따위 지나치게 피곤해.

##
"성지훈씨, 인터넷 요금 연체가..."
"아, 죄송해요. 언제까지 넣어드려야 하죠?"
"blablabla"
"blablabla"

돈 버는 일에 매몰되어 사는 것처럼 재미없고 멍청한 짓도 없다며 유유자적 안빈낙도 가난한 삶을 살겠다며 큰소리만 빵빵. 정작 조금의 것도 놓지 못하고 가난한 삶따위 한순간도 견뎌내지 못할거면서.
돈을 벌어야지. 아, 피곤해.

##
셋 모두 피곤하단 말로 전화기를 놓았지만, 어쩌면 저 피곤해의 의미는 다를수도 같을수도.
데모를하고 사람을 만나고 돈을 버는 일. 살아가는 모든 일은 피곤한 일.

관계 맺고 소통하고(그 대상이 무엇이든) 다시 헤어지고 후회하고 또 다시.
아, 피곤해. 

##
대개의 경우, 사는 일이 힘들다는 말은 엄살이다. 어차피 그럼에도 살아갈 거잖아.
그래도 쉽게 넘길 수만은 없는 얘기들.

하지만 어차피 그럼에도 살아갈거니까.

##
The Dada weatherman. 피곤한 주말에 주구장창 듣고 있다.





김장훈, 봉중근, 애국주의 - 당신을 위해서만


그의 애국심은 언제나 조금 위태로워 보인다.

언제부턴가 '독도'에 아주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그와 그런 그를 추켜세우며 '김장훈을 국회로'같은 시시껍절한 말을 무책임하게 내뱉어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했는데, 기어이 노래를 못하게되는 한이 있어도 독도 문제는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그의 말에 마침내 '아차'싶다.

독도의 '소유'에 대한 논쟁과 대립은 사실 대다수의 우리들의 삶과는 무관한 일이다. 결국 한떨기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 그것에 우리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바다 저편 새들의 고향에 대해서까지 '소유'를 주장함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종속시키려는 자본과 국가주의의 탐욕이 정체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일부 일본 극우세력의 파시즘과 역사왜곡에 마땅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겠으나 그 접근이 '소유를 우리의 것으로 확정짓는'형태라면 이는 그 극우 파시즘을 우리 안으로 확장시키는 것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당면한 일본내 극우파시스트세력에 대한 지탄과 철퇴는 응당 가해져야 할 것이나 더욱 신중하고 엄격해야할 것은 우리안에 존재하는 파시즘이다. '우리 것'아닌 것들에 대한 배타성을 전제로하는 애국주의, 민족주의는 결국 자본과 국가의 탐욕에 순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중요한 것은 독도를 누구의 '소유'로 할 것인가 하는 의미없는 다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질문과 싸움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장훈은 독도를 포기한은 있어도(포기라는 말조차 웃기지만) 노래를 포기해선 안된다.(물론 그 발언이 그대로 그의 진정이 아니라 그만큼의 굳은 각오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있지도 않은 독도의 '소유권'보다 곁에 존재하는 그의 노래가 우리의 삶을 훨씬 더 위로하기 때문이다.



봉중근은 팔꿈치 부상의 와중에서도 팀을 위해 몸바쳐 경기에 나서겠다고 한다. 그의 숭고한 희생과 의지에 많은 팬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지만, 글쎄.

봉중근은 명실상부 국내 프로야구에 손꼽히는 에이스투수다. 95마일을 육박하는 그의 묵직한 직구와 예리하게 허를 찌르는 너클 커브는 명품중의 명품이다. 8개구단의 주전 타자 72명중 봉중근의 볼을 자신있게 쳐 낼 수 있다고 장담 할 자 얼마나 될까.

걸출한 실력을 가진 봉중근에게 LG팬들이 거는 기대는 컸다. 8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 몇년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투수부문 수상, 소박하게는 탈꼴찌. 그런 부담을 고스란히 전해받아서일까, '팀을 위해'라는 말이 그의 입엔 아주 붙어 있다. 시즌 초반 인터뷰에서도 다승이나 삼진보다는 이닝을 많이 소화하는 것이 팀을 위한 길이라고 말하던 그는 '팀'의 의미를 과대 확장하여 해석한다. 그는 팀을 위해 던지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팬들을 위해서나 다른 누구를 위해서 던지지 않아도 좋다. 그는 그저 자신을 위해서만 던지면 된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 높은 연봉이든, 명예의 전당이든 그저 그는 자신을 위해야만 한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엔 도대체 정체도 모를 팀의 위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바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저 팀을 위해 조직을 위해 헌신을 강요받는 일은 지독한 폭력이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어리석은 짓임에야. 국기에 대한 맹세를 매 월요일 아침마다 강요받고, 조직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하는 영웅들의 영웅담을 교과서로 배우면 자란 우리는 조직에 헌신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만이 '절대 선'인줄로 착각하고 있다. 착각이다. 오히려 암묵적으로 헌신과 충성을 강요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건 선이라기 보단 차라리 악.

WBC가 시작되기 전, 김인식감독은 국가가 있어 야구를 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군말없이 대표팀 차출에 응하라는 엄포를 놓았다. 김인식 아저씨를 좋아하지만 그건 틀렸다. 국가가 있어 야구인생에 방해가 될지언정(군대같은거) 국가가 있어 그들의 야구인생에 도움이 되었던적은 결단코 없다. 지금도 WBC의 영웅들은 막판 체력저하와 잔부상으로 개고생중.


한겨레 지면을 통한 장은주 교수와 권혁범 교수의 애국주의 논쟁이 흥미롭다. 이택광 교수까지 덤으로 끼어들어 장은주 교수를 물리치는 형국. 장은주 교수의 민주적 애국주의란 개념은 모호하다. 결국 논의를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확립한 공화국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진행시키기 때문에 논리가 허공에 맴돌밖에.

애초에 민주주의는 가당치도 않은 개념이다. 다들 이 민주주의라는 말에 목메어 살지만 사실 그건 되게 거추장스럽고 어리석은 장치. 심지어 이루기조차 지난한. 하여 민주주의는 현실에선 그저 지향의 문제일 따름이다. 공고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공화국 따위 소설책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약간의 민주주의와 약간의 파시즘과 약간의 폭력과 약간의 저항이 어우러진 세상을 살며 애국주의를 말하는 것은 이미 숱한 근로인민들을 바탕으로 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포기하며 국가에 투항하겠다는 말과 같다. 오늘 국가는 투쟁의 대상이지 종속의 대상은 아니다.

대한민국 좀 싫어하면 어때. 그거까지 보듬는게 민주주의 아니겠어?



허기


##
요즘 병에 걸린것처럼 책을 읽는다. 중간고사를 15분 앞둔 고등학생처럼 허겁지겁 우겨넣는다.
아무것도(어떠한 언어도) 모르는 것이 가장 완벽한 형태일테지만 설피 조금만 아는 것은 가장 공포스런 형태다.
결국 닥치는대로 배우고 읽고 익히는 수밖에.
허기. 알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차 있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알아야 살 수 있다는 허기.
배가 고픈 정준하가 우동 50그릇을 먹는 것처럼 몸으로 이것저것들을 우겨넣고 있다.

##
요즘 병에 걸린것처럼 사람을 찾는다. 생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처럼 이 사람 저 사람을 찾는다.
결국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마치 지고의 진리인양 떠벌리고 다니지만 결국 사람은, 어쩌면 나는 관게 맺지 않고는 한 순간도 견딜수 없는 종족이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동안 나는 한순간도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허기. 혼자서 버티기에 세상은 외롭고 괴로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허기.
스타킹에 나온 강호동이 짜장면을 1분안에 먹어치우는 것처럼 누구와의 관계도 음미하지 못하고 그저 우겨넣고만 있다.

##
요즘 병에 걸린것처럼 음식을 먹는다. 진수성찬을 먹기위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황제처럼.
이건 '마치... 처럼'이 아니라 정말 병일지도 모르겠다. 비어있는 속을 음식으로라도 채우려는 망상증 같은거.
허기. 이건 정말 허기다.


##
허기는 금방 채울 수 있는 일이다. 위장이 비었으면 음식을 넣으면되고 머리가 비었으면 책을 읽으면 되고 마음이 비면 사랑을 하면된다. 다만 어제 배가 불러도 오늘은 다시 배가 고픈 것처럼 허기는 금박 쉬다시 나타나는데 문제가 있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맞다. 별 문제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헛소리 의미없는 푸념.

090811



알게 된것과 느끼게 된것과 솔직함과 책임감에 대해 구구절절 써보았으나 열쩍어져서 그냥 지워버렸다.
다만 소중한 감정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토로할 수 있는 건 대단한 재능이라는 말만.


랜덤으로 음악파일 저장 폴더 전체를 재생시켰더니 이 노래가 나온다. 나 참 이거야.






이상은 - 둥글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내기때 처음 노래를 들었다.
가난한 우리의 사랑을 위해 노래하던 그녁의 목소리에 폭삭 젖었다.

조금 시간이 흘러 그들이 다시 부른 노래를 듣고서 어줍잖은 말과 글을 주절거렸다.
'그들의 노래가 뜨겁지 않아.'

며칠전 어느 술자리에서 말이 없어진 틈사이, 다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산다는 것은 위대해. 아, 나는 살고 있잖아.

용산에서 사람이 죽어나간지 200일이 되던날 용산역 광장 귀퉁이에 쭈구리고 앉아 나는 노래를 불렀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쌍용, 패배, 유턴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지독한 싸움이 끝났고, 결국 패배했다.
얻은 것은 상처뿐이고 잃은 것은 어쩌면 가진 전부이다.

쌍용차의 투쟁은 일개 사업체의 투쟁을 넘어서 한국사회 전체 노동운동의 향방을 쥔 싸움이었다.
그토록 처절한 싸움에서도 결코 고삐를 늦추지 않은 정부와 자본은 쌍용차를 어떤 '본보기'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쌍용차뿐 아니라 전체 자동차 업계, 나아가 남한에 존재하는 모든 산업체의 노동자들에게 '유연성'의 칼날이 밀려 들어올 테다. 예외는 없다. 쌍용차가 그랬던 것처럼.

강성노조를 구축하고 있는 현대차나 기아, 대우차들에게도 조만간 정리해고의 칼날은 짓쳐들어갈테다. 평택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 정리해고의 폭풍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단초가 된다. 어떤 노조깃발을 올리고 얼마나 강력한 투쟁을 만들어 내든 예외는 없다. 쌍용차가 그랬던 것처럼.

##
사실 98년 울산과 2001년 부평에선 정말이지 똑같은 사태가 벌어졌었다. 그때에도 노조는 총고용보장의 구호를 들고 단결 결사 투쟁을 외쳤지만 노조 지도부는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했다.
사태가 이지경까지 이르렀을때 노조의 총고용보장은 사측에겐 억지로만 인식될뿐이다.
'안 해줘도 되는 일을 내가 왜?'
고용을 보장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수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합리적 대안을 애초에 만들어 놓았어야 했다. 생각지도 못했을리 없다. 울산과 부평의 전투를 지나며 아무것도 학습하지 못했다는건 배운것도 안배웠다고 우겨대는 열등생의 외침과도 같다.
설사 옥쇄파업에 들어선 노조의 기조와 구호가 총고용보장으로 모아지더라도 그 옆에 자리잡은 사회 제단체의 요구와 구호는 달랐어야 한다. 자기들마저도 옥쇄하겠다는듯이 총고용보장 피켓을 들고서 싸움을 부추기는 소위 진보 단체, 정당이라는 사람들조차 열등생이다.

##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산별노조를 달성하는 것이 노조의 힘이 강력해지고 전체 노동 운동 대오의 연대가 강력해 질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에 이르러 금속노조에는 좁쌀 만큼의 연대 대오도 있지 않았다. 고작해야 공동투쟁이라는 공허하고 하나마나한 구호만이 남았을 뿐이다.
사실 민주노총의 소위 귀족노조들이 과연 연대가 무엇인지나 알고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그들이 자기 회사 비정규직들의 투쟁에조차 언제 손 한 번 내밀어 준적이 있었나.
이제 다시 닥쳐올 또 다른, 하지만 꼭 같은 정리해고의 바람에서 어느 누구도 손내밀어 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전개하게 될테다. 그건 그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 그렇게 연대는 깨졌다.

##
쌍용차를 비롯 현대차등의 자동차 산업 노조들은 매 투쟁의 목표를 성과급 확장과 임금 인상에 두고 싸웠다. 당장의 주머니싸움에(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임금투쟁은 노조의 기본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투쟁임에 동의한다)골몰한 나머지 고용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정부정책을 수립해 나가는 중 장기적 투쟁을 등한시 했다. 그 결과 사측의 정리해고를 막아 줄만한 어떤 제도적이고 합리적인 장치의 도움도 얻지 못하고 인정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사측이 어려워졌을때에도 고용을 유지하며 함께 방법을 찾아 나갈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고용을 보장 승계할 기금을 미리 마련하는 것과 같은 현실적인 대안이 있어야 했다. 자동차노조가 내일의 두꺼운 지갑을 위해 포기한건  내 평생 날 지켜줄 통장의 목돈이다.

##
지독한 싸움이 끝났고 결국 패배했다.
누구는 이제 아무런 미련도 없어 떠난다고 했고, 누구는 그래도 살아 싸워야겠다고 했고, 누구는 죽었고, 누구는 울었다.
아무런것도 남지 않았다. 패배의 기억밖엔. 그러니 이제 새기고 가꿔야 할 건 패배의 기억이다. 패배의 기억은 곧 성장과 학습의 동력이다. 패배에 익숙해짐은 나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칼을 가는 일이다. 설픈 거짓 승리에 도취되어 무뎌지는 칼을 절망과 패배의 기억으로 벼려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유턴해선 안된다. 다시 또 아무런것도 배우지 못하고 충분히 절망하지 못하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선 안된다.

지독한 싸움이 끝났고 결국 패배했다.
이제 남은 것조차 없지만 오늘 얻은 상처가 후일의 칼날이 되어 줄 것이다.


이게 왠 떡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구하나 뽑기도 그렇잖아. 일단 고고씽.
그래도 일단 문샤이너스와 허크.

Antifreeze


─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 줄 그런 사람을 찾는거야.
Antifreeze - 검정치마


쌓아놓은 책들을 뒤적거린다.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튀어나와 내 마음과 꼭 같은 말로 토닥여줄 위로를 찾는거다. 하지만 '내 마음과 꼭 같은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조건이 붙은데다 독서량마저 극심히 빈곤하니 그런 주옥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을리가. 애꿏은 책장만 너저분해지고 있다. 이렇게 무엇으로든 나를 위로하고 치유해주고 싶을때가 종종 있지만, 그럴때마다 적절한 무엇인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지각 직전의 아침, 이어폰을 꽃을 생각도 못해서 퇴근할때까지 내내 재생된 엠피삼을 퇴근길에 꽃았다. 배터리가 달랑달랑하더니 몇 곡 연주하지 못하고 이내 꺼져버린다. Antifreeze.

그래, 그렇게 거창하고 불같은 사랑을 바라고 있진 않다. 대개의 경우 거창하고 불같이 뜨겁고 아름다운 것들은 너무 빨리 사라져버리니까. 다만 조금 더 평범하고 소소하고 나른하지만 그래서 더욱 생명력있고 끈질기고 소중한 그런 사랑을 찾는거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지하철에 앉아 어디 갈데 없이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종종 외롭고 쓸쓸하다.
남들보다 이른 퇴근시간에 일과를 마쳤음에도 머리위에 쨍쨍한 햇볕은 아주 잔인하다.


아버지


─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김연수 - 청춘의 문장들>



아버지를 만났다. "쏘주 한 잔 사주세요"
유난스레 좋아하신다. 엄마 생일에도 결혼 기념일에도 야근에 술자리를 갖던 아버지는 날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 무려 15분전부터 나와 날 기다리고 계셨다.(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는 차마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그냥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사실 정도만.)

권위를 치장하는 법과 무너져 내리는 법만을 오직 배운 이 사회의 아버지들처럼 우리 아버지 또한 굳은 얼굴과 사무적인 말투가 대단한 미덕인줄로 알고 있다.  그 권위주의와 행세주의가 싫었던 나는 곧잘 가시돋힌 말을 내뱉으며 우리 가족의 파행은 단지 아버지의 책임이라는 말로 나를 또 엄마를 위로하려했다. 잔이 두어순배 돌고 얼굴이 벌개진 아버지가 기분이 좋다고 말하며 웃어보일 때, 알아버렸다.
'아. 위로받아야 할건 나뿐이 아니었구나.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구나.'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런 아버지의 모습들은 종종있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머릿속에 곧이 곧대로 박혀 오늘을 살아가는 근간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때쯤 아버지 회사 가족 야유회가 소요산 등산이었다. (세상에 가족 야유회가 등산이라니.) (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근성없는 젊은 사원들이 등반을 포기하거나(전날의 숙취때문이었겠지) 중도 하산(애인이랑 다른 곳으로 샛겠지.)하는 와중에도 난 끝까지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거나 (10살 어린이에게 소요산은 마치 안나푸르나와 같았다. ㅡㅡ;;) 앞서간 일행에 서운해 할 때 아버지는 내 뒤에서(생각해보면 결코 나보다 앞서 걷지 않으셨다. 언제나 고개 돌리면 보일 곳, 등 뒤에 서계셨다) 말씀 하셨다.
"천천히 가도 좋아. 끝까지 가자. 포기하지 않는다면 늦어도 괜찮아. 이 힘듦은 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야. 모두가 견뎌내고 있잖아."
정상에서 찍은 사진, 아직도 내 책상에 고이 간직한 그 사진에 아버지와 난 웃고 있다.


요몇년간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세상적 기준에서 보자면 아버지는 불륜을 저질러 가정을 파괴했고 그 여파로 엄마와 난 극심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을 떠난 아버지는 날 만날때마다 무죄를 주장하듯이 엄마에게 비난을 퍼붓기 일쑤였고 어느새 머리가 굵어버린 난 비겁하고 치졸한 변명을 들을때마다 증오와 혐오를 키워갔다.  아버지에게 등록금이나 용돈을 받는걸 당연스레 여겼다. 그것이 이제와 남은 아버지의 마지막 책임이고 불행한 가정환경을 살고 있는 내가 보상받는 일이라 여겼다.

작년 여름,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동안 아버지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잠들지 못해 훤히 꿇린 휴게실 소파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아버지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도 한마디 고맙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스스로 당연한 일이라고 합리화했다. 아버지이 죄책감의 발로일 뿐 부정같은 아름다운 낱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잔이 두어순배 더 돌고나자 아버지는 다시 엄마를 욕하고 내가 그동안 해왔던 운동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성씨집안 특유의 것인지, '난 아는데 너희는 몰라'신공을 발휘하시어 온 나라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사기꾼으로 만들어 버리셨고, 엄마를 천하에 다시없는 악녀로 만들었고, 당신을 가난때문에 하늘이 준 재능마저 묵혀버린 가련한 인생으로 포장하셨다. 전에 같았으면 당장 발끈하고 싸울 일.

하지만 오늘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아버지의 허세와 자기위안과 자기방어가 마치 '바둥거림'으로 보여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미 잃어벼렸을지 모를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모습에 조용히 화장실에 쪼그려 담배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늙었다.
몇 해 안에 환갑이 찾아 올테고 그 때 금력도 권위도 잃을까 두려워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연신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더 잘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늘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난 괜찮다고 했다. 낳아준것만으로도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사실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있는건 아니다. 누가 누구를 감히 이해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으랴. 여전히 아버지의 외도로 가정경제는 무너지고 있고, 엄마는 죽을만치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을것 같다. 적어도 아버지만은 죽어도 내 대중으로 인식하지 않겠다던 그 허망한 다짐을 모른 척 할 수 있을것 같다.

ps.
아버지는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내 블로그 주소를 물으셨다. 아무렇지 않게 알려드리려다가 이 포스팅을 보시게 될까 아직 알려드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적어도 나와 소통하려는 노력에 끊임이 없었다.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 삶의 한쪽 귀퉁이에 남은 주름이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주름이나 흔적처럼 살다가 사라진다. 목이 메고 마음이 애잔해지는 것은 모두 늦여름 골목길에 떨어진 매미의 죽은 몸처럼 자연스럽게 생기는 여분의것에 불과한데, 지난 몇년간 나는 거기에 너무 마음을 쏟았다. 이젠 알겠다. 역사책의 갈피가 부족해 거기까지 기록하지않은 게 아니었다. 마음 둘 필요없는 주름이나 흔적이기 때문이다. (p51)

─ 그날 밤, 내 머릿속에는 뒷산에 꽃아두고 온 모종삽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비스듬하게 땅에 꽃혀 있을 모종삽. 그 모종삽처럼 살아오는 동안, 내가 어딘가에 비스듬하게 꽃아두고 온 것들. 원래 나를 살아가게 만들었던 것들. 그런 것들. (p80)

─ 그해 겨울, 나는 간절히 봄을 기다렸건만 자신이 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은 깨닫지 못했다.(p131)

─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난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p164)

─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나는구나. 다시 돌아갈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로구나.(p242)


청춘이라니. 아.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제목이라니.
하지만 아. 청춘, 이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후덜거리는 낱말이라니.

청춘은 마치 흑백필름 같다며 우리 청춘의 이야기를 흑백으로 찍어버린 어느 영화 감독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실 그렇다. 청춘을 마치 신록과 5월과 강렬한 햇빛과 예쁘고 고운 기억들로 치장하는 이 있다면, 장담컨데 그는 청춘을 살아보지 않은 자일테다.

청춘은 무채색이고 괴롭고 또 외롭고 아무일 없이 무료하고 무기력하며 작은 일에 분노하고 기뻐하며 자신의 사랑만이 오직 세상에 유일한 사랑이라 여기는 오만하고 어리석고 여리고 가여운 시절이다.

하지만 살아가며 어느 한 순간이라도 오만하고 어리석고 여리고 가엽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 그래, 우리는 늘 청춘의 가운데를 살고 있다. 아니 삶은 곧 청춘일지도 모른다.


삐뚜루 보면야 암것도 아닌 얘기들이지만 김연수의 스무살 시절들에 적잖이 위로받는건 사실이다. 허겁지겁 밑줄까지 쳐가며 읽은 책을 덮고나니, 이렇게도 허망할수가. 남는게 없다.
그야말로 청춘의 문장들.

여기 사람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 여기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