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민주주의, 싸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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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디어법이 통과됐다.고 한다.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도 지키지 않은 졸속 날림 구라 야바위 통과지만 어쨌든 통과는 통과. 라고 할테다.

미디어법이 통과된 날 밤, 평소 시크함을 인생의 기조로 관철시키겠다는 양 살아가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광우병 쇠고기가 들어왔을때도 이명박이 당선됐을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무섭다."

대리투표와 거짓졸속날림으로 진행된 표결과정에서 보이는건 분노와 웃음을 넘어 차라리 공포에 가깝다.
두려운건 미디어법의 통과나 다가올 미래라기보단 '국민'이라고 불리우는 우리가 뽑은 저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천고의 진리로 믿던 민주주의(그러니까 대의민주주의)가 얼마나 나약하고 허망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공포로 가득찬 순간이었다.

모름지기 모든 존재는 학습하기 마련인 법. 하루하루 지나며 성장하고 학습해야겠다. 민주주의란 누구 하날 잘 뽑아서 내 생을 편하게 날로먹겠단 심보의 집합으론 성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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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투표 영상이다. 다음에 올라간 영상은 애저녁에 지워졌다. 거기만 막으면 되는줄 알았나보다. 바보들.
우리는 유튜브에서 소녀시대와 폴포츠말고도 많은 것들을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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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틀째 언론노조의 집회에 참가중이다.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데 다들 어색한 옷을 입고 있는것 같더라. 투쟁의 현장에서 불리는 노래들이 팔뚝질을 동반한 진군가일 필요는 없다. 아니 차라리 그래선 안된다.

우리의 노래가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어설픈 개사곡 같은거 말고.
첨바왐바나 밥딜런, 우디거스리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노래를 싸움의 현장에서 불렀다.



0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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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줍지 않게, '삶은 본래 혼자야'.라는 거창하지도 않은 말을 거창하게 해버린 나는 돌아서는 순간부터 내내 후회다.
사실 친구에게 필요했던건 말 뿐인것도 알고 있는 '다독임'이었을거란걸 난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자면 그건 잘난 척에 지나지 않았다. 난 이미 그걸 알고 있어.

무협지를 읽다보면 천혜의 영약을 벅고도 무공을 잃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나오는데, 그건 영약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영약을 복용하다 폭발한 내공이 몸에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알아보는 일이란 쉽지 않지만, 무시해선 안될일이다.

내일은 사과해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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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히 알면서도 괜한자리에 찾아들어 몸도 마음도 지갑도 상처만 입고 돌아왔다. 바보같이.
당연한것을 받아내듯이 요구하는 그들과 자신들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는 그들의 태도에 질려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배기 모퉁이에서 왈칵 모든걸 쏟아버렸다.

난 외로움을 달래줄 무엇을 찾고 있었겠지만, 그들이 내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었다. 바보같이.
이런 주제에 누구에게 감히 충고질이야.

마지막 남은 정마저 이렇게 아프게 떼어야 하는 거라면 이제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고 그 정으로 살아가는 일따위 하고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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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은 용기다.
하지만 관계를 확실히 하지 않은 채 어영부영 하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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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예전엔 굉장히 자주였는데..ㅋ) 만나 한바탕 쏟아내고 또 주워오면 그걸로 또 한동안 살아간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이 있는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구토, 나를 위해 노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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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조 간부의 아내가 자살했다. 이로서 쌍용차 사태로 생을 빼앗긴 사람만 벌써 4명째.
정부는 공권력 투입을 결정했고 노동자들은 페인트가 가득한 공장안에서 다시 제 목숨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
빼앗고 빼앗다 이젠 빼앗을게 목숨밖에 남지 않아 목숨마저 빼앗는가,
빼앗기고 빼앗기다가 이젠 남은게 목숨밖에 없어서 그마저도 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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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의 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6개월이 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한 그들은 여전히 떠나지 못했을테다.
사실 더욱 서러운건 테러분자니 폭도니 하는 모함보다 이젠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 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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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반가운일이다. 소녀시대를 못보고 선덕여왕을 못보더라도 반가운일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 언론을 빼앗기면 모두 뺏기는 것이다. 유래없는 민간독재는 더욱 공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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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팍팍하다.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 쿨하게 외면할 깜냥도 안되는 겁쟁이로선 매일매일이 구토와 같다.
이 역겹고 답답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을까. 나를 위해 노래 불러주세요.




Alexi Murdoch - Song For You

그건 취향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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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네 일이고 네 취향이고 네 문제이므로 내가 사사건건 시시콜콜 일일이 간섭할 이윤 없지.
라는 말은 사실 반만 맞는 얘기다.

난 사실 상대성이나 다원주의 같은 말에 절대적인 동의를 표하지 않는다. 그건 사실 다양성이라는 핑계로 상대에 대한 무관심을 합리화시키는 무책임이다. 분명 절대적이고 명확한 것들은 있다.

재작년 여름, 디워 논쟁이 한창일때 '그건 그들의 취향'이라는 보도를 휘두르며 디워를 비판 하는 사람들을 다양성도 인정하지 못하는 몰지각한 모리배로 치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일테면 김규항같은. 쿨게이라는 '부정적인' 수사를 들었을때 제일 먼저 김규항을 떠올렸었다. 변희재 같은 듣보잡은 제외하자.) 모든걸 취향의 문제로 뭉뚱그리는건 판단을 둔하게 하기 십상이다.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전가의 보도는 기준을 짓이겨 모두를 게으른 소경으로 만들곤 한다. 분명히 디워는 손발이 오글거리는 졸작이었고 디워에의 열광은 싸구려 애국심 이상은 아니었다.

분명하고 명백한 것은 있게 마련이다. 디워가 싸구려 애국심에 기인한 C급 아리랑 뮤직비디오였다는 사실과 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소녀시대가 원더걸스보다 예쁘다는 사실은 절대적이고 명확한 것이다.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판단의 영역이란 얘기.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두고 고민할때처럼 취향을 운운할 영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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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교육을 받아와서인지 21세기의 현대사회는 다원성의 사회임을 지나치게 인식하는 실수가 잦다.
다원주의에의 지나친 집착, 그러니까 취향이라는 말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본질을 호도하게 만들곤 한다.
사람들이 취향에 의한 선택을 하는 동안그 선택의 과정에 있었던 수많은 사실들은 잊혀진다. 알량한 취향의 자유로 본질은 은폐되는셈. 취향껏 커피를 고르는 동안에도 남미의 커피농장 노동자들은 착취당하고 있지만,스타벅스 컵홀더는 컵뿐 아니라 자유로운 소비자의 눈까지 가린다. 그건 명백히 가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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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취향에 대한 얘기를 하냐면,
그건 네 문제야. 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무책임하다.

소통이 될리 없다. 모든것을 서로의 취향의 문제로 돌려버리면. 싸움은 없겠지만 동시에 감응과 발전도 없어진다.
싫거나 좋거나를 분명히 하는 일은 귀찮고 피곤하고 에너지 소비도 많은 일이지만 동시에 건강한 일이다. 네 말도 네말도 맞다를 강조하던 황희정승은 사실 게으름뱅이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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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세상을 유지하는데 가장 우선되어야 할 덕목이겠지만
내것을 명확히 갖는 것은 세상을 나아가게 하는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겠다.
내것을 갖는 일은 곧 무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스크랩 [시사IN - 노동자가 소유한 ‘알짜 기업’이 한국에 있다]

노동자가 소유한 ‘알짜 기업’이 한국에 있다
‘노동자가 주인인 기업’은 구호로나 존재하는 이상인가 싶었다. 하지만 실재한다. 당신의 부엌에 있다. 프라이팬, 밥솥, 냄비, 국자, 수저 등을 만드는 주방업계 대표 기업 (주)키친아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96호] 2009년 07월 13일 (월) 11:17:20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어떤 곡절로 노동자가 기업의 경영을 맡게 되었는지, 그것도 연간 700억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영업이익만 해마다 20억원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명품 기업이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듣자면 세월을 거슬러 가야 한다. 1980년대 산업재해와 불법해고,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만연하던 시절, 키친아트의 전신 기업인 경동산업은 스푼·포크·나이프 등을 생산하는 양식기 수출업체로 해외·국내 공장을 모두 합치면 직원 수는 7800명, 매출은 연간 1000억원대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실린 ‘손무덤’이라는 시의 소재가 되었을까. “올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대공원이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갔다 (중략)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들고/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기념 촬영을 요청하자 사장(전창협·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직원이 격의 없이 포즈를 취했다.
프레스 500대가 돌아가던 경동에서는 날마다 몇 사람씩 병원에 실려 갔다. 해서 매일 노동자 모집공고가 났다. 다쳐서 실려 가고,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속출했다. 야근, 철야는 또 어떤가. 한 달에 보름은 새벽 3시까지 일했고 여성 노동자들은 과로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래도 회사는 승승장구. 공정을 자동화하기 위해 설비투자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투자했고, 그중에서도 상당액은 비자금 용도로 흘러갔다. 당시 경동산업은 중견 건설사 삼환의 계열사로, 경영이 삼환 일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그러다 19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삼환은 경동에서 손을 뗐다.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비대위를 결성한 직원들은 ‘40년 기업’을 이대로 죽게 할 수 없다며 회사 측으로부터 공장부지, 미수채권, 기계설비, 상품재고, 브랜드 저작권 등에 관한 소유 권리를 넘겨받고 회사 경영을 맡게 되었다. 2001년 4월의 일이다.

출 발 당시 자본금은 5000만원. 남은 직원 280여 명의 퇴직금을 갹출해 마련했고, 그 뒤로 규모를 꾸준히 늘려 현재 자본금은 8억원이다. 회사 이름은 경동산업 시절 브랜드명이었던 키친아트를 가져왔다. 키친아트는 국내 최초로 삼중 바닥 냄비를 개발하는 등 시장의 신뢰가 높은 제품이었다. 노조는 경동의
   
ⓒ키친아트 제공
키친아트의 전신인 경동산업의 옛 건물. 그 앞마당에 노동자의 땀과 피가 어린 목장갑이 널려 있다.
빚은 털되 브랜드 가치는 살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큰 밑천이 되었다. 첫해부터 흑자였다. 매출은 700억원 규모였고 영업이익만 21억원을 냈다.

공동소유·공동분배·공동책임


인천 가좌동에 위치한 키친아트 건물에는 사훈 세 마디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다. ‘공동소유·공동분배·공동책임’ 이런 급진적인 모토가 정말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키 친아트가 채택한 공동소유의 방식은 이렇다. 현재 이 회사 주주는 260여 명. 총주식 수인 16만 주를 260명으로 나누면 주주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주식 수다. 대주주나 지배주주 개념은 없다. 꼭 N분의 1만큼씩 가지고 있다. 경동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직원은 모두 주주가 되었는데 지금 그들 대부분은 고령으로 퇴직한 상태이고 주주로서 회사 경영에만 관여하고 있다. 공동분배도 같은 방식이다. 이익금을 주주에게 똑같이 배당한다. 주식 관리는 여느 회사와 좀 다르다. 노동자 자주 회사로서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통제한다. 주식을 팔려면 주주 가족 이외 외부인에게는 양도가 불가능하며 한 명이 소유할 수 있는 주식 수도 3명분을 초과할 수 없다. 새로 들어온 직원의 경우 3년이 지나야 주식을 살 자격이 생기고 3년 뒤부터 주식 거래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공동책임. 이 회사에서는 모두가 사장이고 모두가 노동자이다. 물론 임원과 평직원의 구분은 있지만 적대적 대립 관계로서 노사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총에서 이사(3년 임기)를 뽑지만 대표이사 개인의 책임을 묻기보다 모두가 책임을 나누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의미만 좇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 이 회사가 흑자 경영을 할 수 있었던 핵심은 간단하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가치 경영에 집중했다. 특히 하청업체와의 관계는 눈여겨볼 만하다. 키친아트는 저가의 중국산 대신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의 국내 생산을 선택했다. 박선태 부사장은 “한 번도 하청업체를 배
   

신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경동산업이 부도나고 노조가 회사를 인수했을 때 업체들이 우리에게 물건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경동 시절에 결제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부도를 많이 맞았기 때문이다. 다시 물건을 대달라고 하니까 ‘또 부도내려고 왔냐’며 거절했다. 지금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어음발행 안 한다, 한 달 내 결제한다, 재고도 반반씩 안고 가자, 하청업체가 개발한 물건에 손대지 않겠다… 그렇게 설득했고 지금까지 그 약속은 모두 지키고 있다.”

키 친아트는 단가가 싸다고 거래업체를 바꾸지 않았다. 차라리 단가를 제품가격에 반영해 불량을 줄이고 고급화하는 전략으로 나갔다. 여기에 ‘주방 예술품’이라는 마케팅 포인트가 결합해 “키친아트 제품은 여느 국산품에 비해 20∼25% 비싸지만 그만큼 믿고 쓸 수 있다”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키친아트의 직원은 총 27명. 이 적은 직원으로 4000종에 달하는 물건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하청업체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 덕분이었다. 

노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틀?


둘째, 키친아트의 신뢰 경영은 생산뿐만 아니라 판매에도 적용되었다.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외에도
   

키친아트에는 ‘키사모(키친아트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판로가 있다. 시중보다 싸게 파는 직거래 특판장은 퇴직한 키친아트 영업부 직원들이 맡는다. 이들이 정회원으로 있는 키사모는 하청업체 사람들도 옵서버로 참여시켜 파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상생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마케팅은 공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광고 외에 방송 광고는 하지 않는다. 사실 못한다는 편이 맞는 말이다. 수억원이나 하는 공중파 광고료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대신 키친아트는 2006년 공익재단을 만들어 수익금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회사 정관을 통과시켰다.

우 여곡절은 많았다. 키친아트로 새 출발할 당시 노조위원장 출신에 비대위원장을 지낸 자를 대표이사로 앉혔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주식 지분도 51% 몰아주었지만 공금 횡령 등 회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로 인해 결국 퇴출되었다. 일반 회사에서는 만연한 일이지만 노동자 소유 기업이었기에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박선태 부사장은 당초 <시사IN>의 취재 요청에 “부담스럽다. 아직 고민이 정리되지 않았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스무 살에 이 회사에 입사해 이제 마흔 중반이 된 그는 생산, 영업, 노조위원장을 거쳐 해고도 당했고 4년3개월 옥살이까지 해봤다. 지금은 경영자의 위치지만 아직도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된장국 먹는 기분이란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뿐이다. 우리 주주들 손가락 잃어가며 이 회사에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청춘을 바쳤다. 그들이 일군 회사를 망쳐놓을 순 없다. 우리 후손에게 대한민국에도 이런 회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키친아트에는 노조가 없다. 경영과 노동을 아우르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게 박 부사장의 생각이다. 지금까지처럼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축소 재생산’이 아니라 생산·판매·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하면서도 노동자 소유 기업의 틀을 유지하는 어떤 모델을 궁리 중이다. 그가 “키친아트는 아직 완성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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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졸린 눈 부비며 펼친 시사인을 보다가 잠이 깼다.
꿈만 꾼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
꿈도 꾸지 않으면 더 비참하게 변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꿈을 꾸어야겠다. 졸린눈 부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오늘은 이런 노래 하나




Spain - Nobody Has To Know

물폭탄이라고 불리는 비가 주룩주룩내리네요.
비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 비는 참 반갑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드거움은 뜨겁지 않은 사람에겐 견디기 힘든 것이거든요.
비가 그치고나면 다시 더 뜨거워지겠으니 비가 내리는동안 조금이라도 뜨거워질 준비를 해야겠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트리플, 송중기





##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난 홍상수 영화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아. 라고 얘기하곤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거다. 모두 잘 알지도 못하며 그저 지껄이기를 좋아한다. 그건 무지일수도 있고 허세일수도 있다.

모두 새 삶과 구원을 갈구하지만, 사실 새 삶이나 구원이 뭔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 어차피 알 수 있는건 없다. 구경남의 말처럼 자신도 똑바로 알지 못하는데 남을 알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세상의 이치 따위야. 구경남의 이름처럼 우린 그저 구경하며 살아가는거다. 결코 당사자는 아니다.

순이의 말처럼 그저 지금이면 된다. 위악이니 위선이니 하는 것들말고 젊은 남자랑 자고 싶었고 그건 단지 질투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될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건 자유라고 침까지 튀겨가며 얘기했으니 그저 자기에게 충실하게 살면 될 일이다.





## 트리플

막장드라마 열풍이 불더니 사람들은 감당하기 힘든 모든 형태의 소재를 막장이란 말로 때려넣고 있다.
친구의 아내와 (호적상의)친오빠를 를 향한 사랑이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막장으로 부른다고 한다.
진짜 막장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모든 형태의 사랑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세상 그 자체다. 드라마 속의 쉽지 않은 사랑들은 차라리 순수함이다.

소일거리 삼아 보는 드라마 였지만, 벌떼처럼 비난하는 네티즌들 때문에 더 열심히 보고 있다. 이건 또 무슨 막장 심보인가 싶지만, 뭐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놈인걸.

감정에 솔직함은 미덕이다. 관습 통념 규범등등등 따위에 얽메여 자신을 부정하는 일만큼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데다 괴로운 일은 없다. 그건 그야말로 불행해지는 지름길. 세상엔 사랑의 형태도 종류도 과정도 귀결도 무궁하다. 굳이 한가지 형태만(그것도 가장 비겁하거나 용기없거나 폭력적이거나) 고집할 필요따위 없다. 사랑하면 사랑하는거다. 대상이 무엇이든.




##  송중기

이윤정 감독은 파릇한 남자배우를 고르는 눈이 뛰어나다. 태릉선수촌에선 이민기가 그랬고 커피프린스 1호점에선 죽어버린 이언이나 김동욱, 김재욱이 그랬다.(좀 다른 느낌에서지만 어쨌든 다들 괜찮은 남자배우임엔 틀림없다.)

이번엔 송중기다. 천방지축같은 진부한 표현밖에 생각나지 않지만 그의 담백한 매력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굉장히 잘생긴 얼굴로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다니. 사실 지금은 오직 그만 보이고 있다.
(알고보니 쌍화점에서 조인성의 오른팔로 나왔던 그 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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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서도 꾸벅거리면서도 찌질하게 빌빌거리는 내 걱정뿐인 선배에게 무심결에 말했다.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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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력의 문제다. 방전이라기보단 플러그가 뽑힌 상태.랄까.
어느 코드를 꽃아야 다시 팔팔거리고 힘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 외로움의 실체는 어느 곳에도 꽃히지 못하고 부유하는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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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력을 기다리다간 죽어버릴거란걸 알고 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찾아나서 지탱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그럴거라 믿고 싶은) '내 것' 앞에서 주저앉을 거란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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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진탕 마셨는데 취하지 않는다. 이것 참 괴로운 일이다. 술마시는 일조차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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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노무현의 49재다. 그는 정말 오늘에는 하늘로 떠났을까. 그도 외로워서 헐떡이고 있진 않을까.

090706


Sigur Ros | Untitled #1 (a.k.a. v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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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누구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는 자기기만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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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잘 읽지 않는 신문 문화면에서 노브레인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이명박에게 홀랑 히트곡을 내어준 걔네랑 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은연 그래도 정이 가는 그이들이었는데,
구구절절한 변명에 그나마 남았던 마음까지 떠났다. 퉤퉤퉤. 이제 노브레인을 부러 다시 만날 일은 없을것 같다.
한예종 사태를 비롯하여 문화예술계에 좌파운운하는 몰상식한 말의 홍수가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난 사실 모든 예술인은 좌파여얀다고 생각한다. 좌파라는것이 가진것을 오직 긍정하는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의 창조에 몰두하는 쪽이라면 끊임업이 새로운 자기를 만들고 창조해야 하는 예술인이야 말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좌파다. 그의 지지정당이 무엇이든 맑스를 읽었든 안읽었든. 그냥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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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길래 노래를 흥얼거렸다. 비가오면 생각나는 그사람~~♪
비가와도 생각나는 것이 부침개말곤 딱히 없는 것은 좀 불행한 일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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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공판이 다가오고 있다. 가얄지 말아얄지 아직 모르겠지만 마음은 오직 귀.찮.다.

알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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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또 혹시 받은 상처에 무엇으로든 위로가 되고 싶다는 친구를 비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 상처 주지 않고 살 길은 없으며, 그 상처에 섣부른 치유를 들먹이며 덤벼들단 오히려 곪고썩어 더 아프게 되거나 혹은 앞으로 더 작은 상처 조차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만들게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모두를 사랑하여 모두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섣불리 다짐하던때가 떠올라 다시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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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직 몰라'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며 반응하곤 했었다. 도대체 무얼 얼마나 더 알아야 하는 건가요.
어느 날 마치 복수 하듯이 친구에게 '넌 아직 몰라'라고 쏘아붙였지만, 그날 밤에 다시 알았다. 난 아직 하나도 모르는구나. 내가 알게 된 걸 네가 똑같이 알 필요는 없는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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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알것 같아요.라고 노래부르는 장필순 언니님의 공연을 보고왔다. 제주도에서 손에 흙묻히며 사는 장필순 언니의 간만의 노래가 CCM이라 초큼 시껍했지만 그래도 장필순인데. 초원에서 손에 흙묻히며 노래만들고 노래부르고 사는 언니의 담담하지만 명쾌한 소리가 좋다. 그건 어쩌면 부러움. 아. 알 것 같다니. 하지만 이내 다시 의문. 이제서야 알것 같은건 어느 누구도 알 것 같다고 말하기엔 너무 모른다는 것인데. 나 또 여전히 아직도 모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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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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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순수하고 소중했던건 그때였다. 모두를 사랑하겠다며 나서던 때. 누구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건 순수하게 열정이고 선의이기도 했다. 동시에 어리석음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오늘 내 눈은 그때만큼 또렷하진 않다. 지금 아는걸 그때 알진 못했지만, 그때 가진걸 지금도 가졌냐고 물으면 글쎄. 알아서 얻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알아서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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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좋은 책 한권 읽어서 돈오하는 헛된 희망은 버렸지만, 죽을때까지 고민하고 궁금해하는 수밖엔 없다. 조금이라도 알려면. 삶의 지혜를 얻는 일은 지난하고 무던하다. 이제 알아버린건 그것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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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는 어느 토크쇼에 나와서 이미지를 위해 수업에 지각을 해도 뛰지 않고, 사발째로 국물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빵터지고야 말았다. 웃음 포인트는 '실제와는 너무 다른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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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본주의는 사용가치보다는 이미지를 소비하는데 주력한다. BMW 롤렉스 루이비똥. 결국 사용가치보단 그들이 내포한 이미지를 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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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애초에는 실제에서 파생되어 고착됐겠지만, 그 자체로 실체일 수는 없다.
이는 곧 이미지와 실제를 혼돈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가게는 고사에만 나오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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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BBK를 국밥으로 막았다. 그리고 오늘의 위기를 서민중도정책과 오뎅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 결국 이미지다.
서민 중도 정책이란 양머리는 먹음직스럽다. 양머리를 내거는 것만으로도 학을떼는 노친네들도 있으나 차치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뭐라 시비 걸 수 없는 말이다.
시장바닥에서 오뎅을 먹는 대통령도 친근하다(물론 외모때문에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재계인사들과 값비싼 호텔오찬회동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할건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여지는 것이다. 실제로 오뎅을 먹으며 대형마트규제는 법적으로 불가하다는 말을 내뱉는 그의 내용물은 개고기다. 최저임금이 깍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전기세 수도세는 빠싹오르는데 무상급식을 위한 예산은 삭감됐다. 도대체 어디서 서민정책을 찾고 어디서 중도를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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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의 이미지 관리담을 보며 모두가 웃을 수 있는건 이미지일뿐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를 희화시킬정도로 그의 실제가 끔찍하지는 않기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실제가 끔찍한들 나랑은 별 상관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되도 않는 이미지 관리담을 보면서도 웃어 줄순 있겠지만, 마음이 씁쓸한건 어쩔 수 없다. 더구나 그의 실제를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의 실제는 곧 내 삶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Let's Rock'n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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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라는 건 지나고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말의 홍수는 흔적만 남긴다.
홍수가 두려웁다면 애초에 둑을 쌓아버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홍수로 갈아엎고 씻어내고 상처주지 못하면 새로움과 성장의 비옥도 있을 수 없을테다.
다시 원점.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다 자위하는건 고작해야 꼬리를 무는 말장난의 향연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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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에 결국 구사대가 투입됐다
서민정책을 운운하던 쥐새끼가 오뎅을 쳐 잡숫는 동안에도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앓고 있다.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블로그에 리본 달 자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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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정체구간인 한남대교부터 남산터널까지의 길에서 110번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서있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앉은 창가에선 학교 정문이 보였고 공교롭게도 그 안의 공사현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공교롭게도 한창 포크레인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잔인한 장면이다. 지지리 궁상인것 알고 있지만, 스무살이 온전히 보관된 공간을 잃는다는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술에 취해 널부러지던 학생회실도, 꽃놀이라며 앉아 놀던 봄날의 노천도, 그애에게 좋아한다 고백하던 도서관 광장도 사라지는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피식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리 그리운건 내가 지금 심히 외로워서인가. 그리운 것은 그깟 알량한 공간이 아니라 그 날의 설렘들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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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인턴은 생각보다 훨씬 널널할뿐더러 어려울것도 없다. 학교에서 하던걸 그대로 하는 듯하다. 유인물을 복사하고 우편물을 발송하고 선전전을 진행한다. 거창한걸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좀 더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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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서약을했다. 이내 썩어 문드러질 몸, 누구에게 다시 생명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간이며 폐에 쌓인 지방이니 니코틴이니 하는 것들을 좀 줄여두는게 좋을 것 같다. 정작 열었더니 다 썩어있으면 죽어서도 부끄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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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푹푹찌고 늘어지는 한낮에 음습하고 우울한 노래를 듣는다. MOT이나 이장혁, 앨리엇스미스같은. 땀이 비오듯이 나고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미는 기분. 이걸 지나면 무슨일이 있어도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 주사맞기 전에 맞는 볼기짝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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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역시 로큰롤. 마이앤트매리를 들으며 출근하고 문샤이너스를 들으며 일하고 눈뜨고코베인을들으며 퇴근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면 언제나 큼지막한 글씨로. 그래도 Let's Rock'n Roll!!


브로콜리 너마저








늘 듣고싶은 노래가 있다는건 행복한 일이다.
무기한 활동정지 떡밥으로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다 이내 돌아온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봄볕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는것같다.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켜켜이 쌓자. 울지말고.
그래, 이 차를 다 마시고 우리 봄날으로.

여름


아주 늦은 밤 평상에 앉아 맥주와 수박을 먹을때, 무릎위엔 모기향과 담배에서 품어져 나오는 독한 냄새를 뚫고 들어온 불굴의 모기가 살포시 앉아있고, 수다를 떠느라 모기가 다리를 무는지 발가락을 무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싶다.

오히려 여름은 쾌적한 계절이다. 몰래 숨겨놓은 추위도 급작스러운 변덕도 없이 그저 내리꽃히는 태양과 쏟아지는 빗줄기만 있다. 본래 여름은 솔직하고 아늑한 계절이다.

한낮 도심 한가운데를 걷다 극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네모난 콘크리트 덩어리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럽지 못한 열기와 물기 하나 없어 머릿속 까지 말려버리는 것 같은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과 햇빛 한 모금, 땀 한방울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한 지독한 화장품 냄새와 이 모든 불쾌감을 만들어 놓고도 불쾌하다 짜증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어디론가 숨고 싶을 만큼 불쾌해진다.

아침 일찍 산에 올랐다. 이슬을 가장한 보슬비가 내렸고 나무는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었고, 골마다 물이 흘렀고 이름 모를 풀들과 꽃과 나무와 땀과 물과 그런 생명, 생명, 생명. 살아 있는 것.

어쩌면 이제 우리 사는 도시 한가운데로 여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이 혹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풍요를 맹세하는 생명의 단련이라기 보단 차라리 살의.

 

다시, 바람이 불까?


이런저런 헤프닝속에 노무현 추모 공연이 열렸다.

원래 예정됐던 연세대에서의 공연이 취소되고 결국 성공회대로 공연장소가 옮겨지는 과정을 두고서도 탄압이니 책동이니 하는 쌍팔년도식 수사들이 주구장창 등장하더니만 무대에 오른 신해철은 삭발과 문신, 눈물로 이어지는 우미관식 신파로 화룡점정했다.

먼저 떠난 좋아하는 사람을 추모하고 그를 기리며 노래부르고 눈물흘리는 일을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노래와 춤, 웃음의 형태로 고인을 기억하고 떠나보내는건 매우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염려하는건 과연 오늘 그니들의 추모가 그를 떠나보내기 위한 것인지 소환하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설의 고향에서 굳이 망자를 소환하는 이유는 보통 두가지였다. 망자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한을 풀어주기 위함이거나, 산 자의 입신양명을 위해 거짓된 소환으로 망자를 욕보이거나. 오늘 노무현을 다시 여의도 한복판으로 불러들이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조금씩 식어가는 것 같던 추모 정국은 어제의 추모공연으로 다시금 타오를지도 모른다. 어차피 MB와 딴나라당의 캐삽질퍼레이드야 여름 지나면 가을 오는 것처럼 약속받은 것이니까 퍼레이드에 발맞춰 이 정국을 잘 끌고 가면서 조금씩 인기몰이만 해 나간다면 10월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자체 선거와 초큼 오바하면 다음 정권까지도 노려볼 수 있을테다. 감사하게도 노무현은 5월말 6월초, 민주주의든 뭐든 그저 상징화하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가장 감정적이 되는 때에 돌아가셔 주셨으니 이마저 금상첨화라. 그러나 그건 바람일까. 그건 노빠들을 다시 여의도로 실어다 줄 정치적 바람을 수는 있겠으나 우리의 바람(want)일 순 없다.

세칭 386, 노무현이란 알리바이를 내세우고 유시민이란 얼굴마담을 내세운 그들은 이미 '우리'에서 멀어진 존재다. 주식과 부동산과 룸살롱과 권위주의로 무장한 그들은 이미 그들의 혁명을 종결한 87년부터  이명박을 위시한 저들과 다르지 않다. 가장 뜨악한건 저들 스스로도 그걸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괴리. 그들은 스스로의 정치적 입장과 계급이 자신들의 이상적 말과 얼마나 괴리 되어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민주화의 투사 혁명전사인 줄로 믿고 있겠지만 이미 그들의 혁명은 끝났고 그들은 편입'했다'. 지난 영결식과 노제에서 다시 노무현을 광장으로 소환하던 장면은 실은 경악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이는 마치 현 시국의 모든 책임을 이명박 '개인'에게 지우고 다시 그를 처단할 수호령으로 노무현을 소환하는 샤머니즘처럼 보였다.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유령은 산 채로 유령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다시 숨을 불어 넣어줄 바람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명박 개인도 노무현 개인도 아니다.

우리의 바람이 뭔지 살펴야 한다. 우리가 타고 날아야 할 바람이 뭔지도 알아야 한다. 권위주의의 해체는 국가 기관내에서의 텃세 해산이 아니라 국가 권위라는 몽롱하고 조악한 모든 권위의 해체임을 알아야 한다. 권력의 이양은 그곳에서 저곳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저들에게서 우리로의 이동임을 알아야 한다. 결국 '나'를 위한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다시 불어온 노풍이 호기라는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반 MB전선 같은 유치하고 의미없는 것을 짜낼 호기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더 나은 삶이 무언지 돌아볼 호기라는 말이다.

북서풍을 등에지고 대선단을 이끌던 조조의 대군은 정체를 드러낸 동남풍에 홀라당 다 타버렸다. 우리의 바람인 줄 알고 잘못 탔다간 언젠가 드러난 저들의 바람의 정체에 홀라당 타 버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