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같은 내 인생을 보고 첩혈쌍웅에 열광하고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었던 나의 세대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 김연수
김연수가 '나의 세대'를 뉴트롤즈와 첩혈쌍웅과 개같은 내 인생을 공유한 이들로 정의했던 저 글줄을 읽으면서 나의 세대를 대변해 줄 그 '무엇'은 무얼지를 생각해봤다. 할 일도 없이.
사춘기에 IMF를 맞이하고 주변인으로 밀레니엄을 겪어넘기던 우리는 공유할만한 기억이 영 마땅치 않다. 서태지의 천재성을 알아보기에 우린 너무 어렸고, HOT에 열광하자니 그들은 우리 모두를 관통하지는 못했다.
해서 우리들은 나처럼 김광석이나 김현식처럼 이미 죽어버린 지난 세기의 스타에 열광하는 애늙은이와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생을 바치는 오타쿠와 그 오타쿠와 애늙은이 모두를 비난할 줄 밖에 모르는 쿨게이들로 뿔뿔이 분열됐다. 무엇 하나가 나쁘거나 별로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우리 세대'를 관통시켜줄 무엇 하나를 아직(어쩌면 앞으로도) 갖지 못했다는 일종의 아쉬움 같은거다.
#2
그러고 보니 참 멋이 없는 세대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언니들처럼 조국의 통일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목놓아 노래를 부르고 거리를 뛰어다닐만 하지도 않았고, 90년대에 소위 X세대라고 불리우든 언니들처럼 각종 문화적 풍요속에서 청춘을 맞이 하지도 않았다. 통기타와 마이마이 대신에 MP3와 PMP을 손에 쥐었지만 그 속엔 노랫말보다 토익 강의 파일과 애꿏은 야동만 가득하다. 그리고서도 청춘의 대부분을 88만원짜리 비정규직으로 살고있다.
물질의 풍요속에 되려 피폐해지는 정신을 개탄하노라. 처럼 누가나 알만한 교과서 같은 소리는 아니다. 난 다만 푸념하는거다. '그 시절에 만약에'를 자꾸 상상하는 내가 별로 예뻐보이지 않아서 되려.
#3
생각해보면 웃기지도 않은 컴플렉스다. 김광석과 김현식의 동시대를 살지 못했다는 컴플렉스. 치열한 역사의 순간에 난 젖병이나 빨고 있었다는 컴플렉스. 이러다간 만적의 난에 왜 함께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컴플렉스까지 함께 할 판이다.
#4
지나간 세기의 것들에 대한 열광을 잠시 덮어둬야겠다. 어쩌면 지금 내 옆에서 같은 바람으로 목덜미를 식히는 어느 친구를. 오늘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