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1
생일이다. 생일이라고 뭐 별게 있겠냐 싶고 차피 사람이 만들어놓은 기준의 '같은 날'일 뿐이라는 쿨한 척을 일삼지만, 내심 생일이 다가오면 기대하고 설레고 들뜨게 마련.

#2
생일이라고 이 사람 저 사람 모여들어 축하해준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 생일을 핑계로 만나서 우리끼리 즐거운 한 때. 를 연출하던 친구들이 집에 갈때 쯤 되자 선물도 못해 미안하다고 차비나 하라며 남들 몰래 주머니에 한두푼 찔러 넣어주는 만원짜리 한장이 고맙다. 갑자기 눈물이 날 뻔. 그런 번한 클리셰, 사소한 거에 감동하긴.

#3
여자친구의 뱃 속에 4개월된 아이가 자라고 있어, 월급의 거의 전부인 100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있는 친구의 얘기를 듣다가 나를 돌아봤다.
'우린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까'같은 철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잰체하던 내가 부끄러웠다.

#4
그 녀석들을 만나고 오면 항상 마음이 좋다. 모든 경우, 언제나라고 해도 좋다.
회사에서 자리 잡기 위해 새벽잠을 줄여 대형면허를 따거나, 대회를 위해서 하루를 고구마 반 개로 버티거나, 일요일에도 출근하여 가게문을 열고,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시동을 걸고 현장으로 나서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몇 권 되지도 않는 보잘것 없는 책을 갖고 세상 진리를 다 안 것마냥 으스대던 내가 항상 부끄럽다.

그들은 자기의 삶을 고달프다거나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의 가혹함도 잔인함도 알고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순응하고 저항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는 그 녀석들 앞에선 한마디의 입도 떼기 어렵다. 술만 거푸 들이키다 집에 오늘길에 고맙다는 문자나 보내는 찌질함 뿐이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5
그게 어디든, 친구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런 포스트를 쓰고 있는거다.

#6
용산이고 한다협이고 세종시고 지방선거고 불과 얼마전 같아도 거품을 물고 달려들 떡밥들이 난무하지만, 지금 난 내 문제만으로 벅차다.
그런건 다 부질없다. 는 말을 쉽게 뱉어내고 있다. 부질없는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지금의 난 늙은이 흉내를 내는 별로인 어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