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광석이 없다






오늘은 하늘이 맑지만 바람이 불고
햇볕이 비추지만 마음이 춥다.

내 엠피삼 속에 김광석은 오늘도 노래를 부르지만
오늘 그는 세상에 없다.

아. 슬픈 노래를 부르자.




김광석 - 슬픈 노래





내가 어떤 생을 살아야


일찍 양친을 잃고 어린 동생들과 이 세상에 남은 고모님은 책이 없이도 어린 동생들을 성장시키고 전쟁을 치러내며 아들을 낳아 길렀다. 그리고 지금 고달픈 인간생활을 피하지 않은 사람답게 당당하게 늙었다. 나의 소설은 무엇을 성장시킬 것인가. 내가 어떤 생을 살아야 먼 훗날 나의 소설도 고모님처럼 당당하게 늙을 것인가.

신경숙 - 모여 있는 불빛 中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나에게 또 누구에게 위로가 되리라고 믿는다. 그건 물론이다.
지혜로운 이가 온 마음을 다해 써내려간 글들과 그들의 언어는 나의, 또 어느 누구의 상처를 언제나 보듬어 줄테다.

무슨무슨 '론'을 붙일만큼 거창한 관점을 갖고 있는건 아니지만, 살아오며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지 하며 들고 있는 생각들은 있다. 그 생각들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낱말들이 동감이니 위로니 치유니 진심이니 하는 말들인데, 어떤 날은 그런 말들에 조차 동감하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고 진정으로 다가서지 못하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그런건 순전히 지혜의 문제라고 여겼다. 조금 더 지혜롭지 못해서, 아직 지식이 얇아서 일거라고 생각하며 자위했다.

그렇다, 난 여전히 어리고 미숙하니까. 라는 말은 겸손이라기보단 차라리 자위와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많은 시간들에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말들을 주워삼기다 보면 언젠가는, 또 그 다음에는 더 현숙해지고 깊어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하자고 지혜롭고 싶은걸까. 아니, 그보다 지혜로운게 무언지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알고는 있을까.

고달픈 인간생활을 피하지 않은 사람답게 당당하게 늙은 고모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무엇으로 나부터를 성장시킬 것인가를 생각했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나의 말들이 누구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진정이고 진심이란 그런것이다. 나부터 성장하는 것, 그렇게 게으르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 삶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는 것.


  

결산 - 올해의 음반 나머지, 올해의 영화


지난 포스팅에서 음반 결산을 마치자마자 떠오르던 음반들. 그러니까 30초만 먼저 떠올랐어도 바뀌었을지도 모를 그 음반들의 목록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 서운할 거 같아서. 아, 물론 내가.ㅋ

이소라 - No Name



슬픈 목소리로 읽어주는 그녀의 일기장.
이렇게 아픈 목소리라니.
그러고보니 올해는 유난히 언니들이 많이 돌아왔네.
장필순에 이소라, 오소영까지.
소라누이도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알 것 같다고 노래 할 날이 올까?라고 중얼거리다가
이런 슬픈 목소리는 운명이야. 라고 결론 내렸다. 물론 내 맘대로.


브로콜리 너마저 - 보편적인 노래




올 초는 오로지 브로콜리 너마저와 함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노래를 잘 만드는 밴드는 향후 몇 년간 없을거라는데 내 오른 손목과 가진 돈 전부를 걸겠다.
계피의 탈퇴가 아쉽지만, 덕원의 송메이킹은 어디간게 아니니까 다음 행보도 기대한다.
(라고 쓰면서 '잔인한 4월'을 들여다 본다. 확실히 계피가 아쉽긴 하다.)


이장혁 - Vol.2




끈적거리고 우울한 지하의 퀴퀴한 창고 같은 곳에서 들음직한 노래들을 좋아한다.
이장혁을 좋아한단 말이다. 섣부르게 위로니 희망이니 얘기하지 않고 담담하게
'우린 루저야, 그래서 뭐. 세상은 원래 그런거임'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되려 위로일때가 있다.
찌질한 목소리의 음푹숙인 고개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백치들 같은 노래는 듣고 또 들었다.
난 왜 이제서야 이런 형을 알았을까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이제라도 찾아냈으니 다행이라며 스스로 엉덩이를 쓰다듬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웃긴 얘기지만 1집의 호모포비아란 곡을 발견하고 갑자기 정이 쫌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형이 당금 무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뮤지션인건 부정할 수 없겠다.


문샤이너스 - 모험광 백서



로큰롤은 왠지 아련한 것이란 느낌이다. 70년대에 이미 끝나버린 비틀즈의 시대.
차차는 왠지 죽어있던 로큰롤을 구원해주는 느낌. 가장 신나고 가열찬 노래들.
그래도 Rock'n Roll이라고 대문짝에 박아 놓을만큼 다시 살아보게 해주는 노래들.
로큰롤.


다 쓰고 보니 결국 10개. 이럴거면 처음부터 10개 쓰지 왜 그랬니 응?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가족을 용서 할 수 있을까?
우린 서로 화해 할 수 있을까?
널 이해 해줄 수 있을지 없을진 모르겠지만 넌 무조건 이해해줘. 가 가족을 규정짓는 말이라면
가족은 용서도 화해도 없이 그저 사랑하며 살아가는 곳. 서로를 바꿀 필요 없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그저 신민아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하악하악


김씨 표류기



현대인의 고질병은 외로움이겠다. 무엇으로부터든 소외받는 고통은 말로 해 뭐해.
정재영은 짜장면으로 희망을 찾지만 그도 사실은 알고 있을거다. 짜장면은 진짜 희망이 아닌걸.
그는 섬밖으로 나서면 여전히 신용불량자에 루저다. 다만, 그가 짜장면에서 찾아낸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을 쓸 연필 같은 것. 희망은 그런것이겠다. 어디 명확히 하나 떨어진 옥수수 씨앗이 아니라 옥수수 씨앗일지도 모르는 비둘기 똥.

이해준감독은 전작부터 네이밍 센스가 맘에 안든다. 김씨 표류기라니. 스킵할뻔했다. 천하장사 마돈나도 그렇고.


3 X FTM



영화의 주인공을 얼마전에 버스에서 우연히 만났다.(발견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가슴을 빤히 쳐다보고야 말았다.
순간 너무 부끄러워서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난 그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마찬가지로 우리사회는 여전히 그런곳인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떠벌리며 사는 일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재밌다고 느끼기 시작한 1人.
그동안 왜 홍상수 감독 영화를 싫어했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플라토닉 펀치 바나나



단편이라 포스터가 없네. 인디포럼 출품작.
사랑은 제각각, 쾌락도 제각각, 아픔도 제각각.
그러니 이러쿵 저러쿵 하지말고 서로 사랑하자. 롸잇나우.


할매꽃



상처를 드러내는 고통과 앙금을 묻어두는 고통.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무엇이 치유인지, 치유란 것이 있기는 한건지.
다만 남은건 옳기만 한것도 그르기만 한 것도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살다보니 알겠더라는 어머니의 말씀.


어떤 개인 날



여성주의나 여성주의 영화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악다구니 뱉어내며 잘난척하는 고까운 여자들.
실제로 그걸 아예 부정하기만도 어렵다. 일각의 여성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니까.
어떤 개인날은 여성운동 출신의 감독이 만들었음에도 훨씬 담담하고 일상적이다. 거짓 희망이나 의도된 위로같은 건 없다. 다만 상처를 후벼 파는 것같은 날카로운 말들과 그리고 흐르는 눈물만.

반두비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친구가 되자. 라고 가르치면서
실상 미워하고 배척하고 버리고 죽이는 세상.
흰둥이만 대접받는 더러운 세상.
근데,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친구해요.

백진희를 2009년의 (신인)여배우로 임명함미다. 땅땅땅.
신민아를 2009년의 여배우로 임명함미다. 땅땅땅.


그러고 보니 외국영화는 거의 한편도 보지 않았군. 내년엔 편식하지 않는 착한 어린이가 되겠어요.



세밑에, 2009년 올해의 음반

1.

세밑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여러부류의 술자리에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이다. 물론 다음날의 숙취와 가벼워지는 지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긴 하지만.
주말, 용감하게도 두 군데의 송년회를 마치고 떡실신 직전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길가에 앉아서 한참을 피식거렸다.

교육이니 정치니 경제니 하는 말들의 홍수를 만들어내던건 세상이 말하는 소위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무장한 저마다의 논리와 학식은 거창했고 대단했다. 이상이니 현실이니하는 말들. 노동이니 소외니 가치니 맑스니 케인즈니.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까지 힐끔거리게 만들 화려한 말들의 향연.

그러나 정작 고개가 떨궈진 곳은 휴일인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친구들의 어쩌면 소소한 이야기들. 생의 최전선에서 손에 기름을 묻히며 일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언어들. 논리니 이론이니 다위 하나도 모르지만 정작 굳세게 현실에 발을 박고 내일을 또렷하게 응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었다. 
 
그것은 그런것이겠다. 노동의 가치니 평등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들은 책속이나 말들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삶을 살고 있는 위대함.


2.

세밑이라면 역시 결산.
온갖 곳들에서 다들 결산을 해대는데 난 딱히 없으니, 올해의 영화 / 음반이나 결산해볼까.
올해는 딱히 영화도 음반도 소원해서 많이는 안되고 한 다섯 개씩만.

당연히 순위따위는 없지만 먼저 생각나는대로 썼으니 깊은 인상 순이라고 볼수도.

음반.


브로큰 어스 블루스 밴드 - Blues Of My Soul



버클리에서 공부한 수재라고 해서 재미없고 공감안될 얘기들이 지루한 노래를 생각했는데, 웬걸.
적당할 만치 우울하고 적당할 만치 재미있다. 부담스럽고 억지스럽게 희망을 말하지 않아서 더 좋은.


장기하와 얼굴들 - 별일 없이 산다



작년 쌈싸페에서 처음 보고선 찜뽕해뒀었는데, 어느새 완전 아이돌이 됐더라능.
생활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와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가사는 그들의 가장 큰 매력.
왠지 이런밴드는 독점하고 싶은데. 심지어 장기하는 잘생겼잖아.


김창완 밴드 - Bus



산울림과 세상에 동접한 시기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그들을 놓치고야 말았다는건 아주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김창완 아저씨가 계속계속 노래를 불러주면서 놀아주는건 그 자체만으로도 신나는 일인데, 이런 앨범까지 내주시니 그저 감읍할 따름.

신곡이 5곡밖에 없어서 초큼 아쉽지만, 그래도 김창완.


오소영 - A Tempo



기억상실 이후로 한참이나 소식없이 지내던 언니의 조용한, 그러나 분명한 복귀.
담담하지만 인상적인 목소리, 거창하지 않지만 깊은 이야기들.
악악악.
ps. 공감에서 무려 공연에 당첨됐지만 가지 못했다. 악악악.


서울 전자 음악단 - Life Is Strange



신중현의 아들들.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이 미안해지는 앨범.
'서울의 봄'같은 경우는 왠지 '완성'이라는 느낌마저도.
이렇게 본좌는 탄생해가는구나.


루시드 폴 - 레미제라블



마치려다가 며칠전에 나온 이 앨범이 눈에 밟혀서.
좋은 것과 재미있는 것은 분명히 다르니까.
분명 루시드 폴의 좋은 노래와 좋은 메시지는 재미없다.
'사람이었네'같은 오글거림이 이젠 여기저기 도처에 도사리고.
착하고 똑똑한 형의 좋은 노래에 심술이 돋는건 답답하기 때문일까.
사이좋은 사람들에게 부러 브로큰 어스 블루스 밴드의 노래와 붙여 들려주는건 같은 마음.


영화.


도 쓰려다가 시간이 벌써 어익후. 영화는 다음에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람. 돈주는 것도 아닌데.

3.

날씨가 춥고 눈이 내린다. 감기 조심하라고 사람들 걱정해주다 정작 나는 된통 감기에 걸렸다.
글루 와인이니 유자차니 병원안가고 감기약 안먹겠다고 쌩쑈중이지만 내일까지 이러면 약 먹는 수밖에.
감기조심합시다.




브로콜리 너마저 - 유자차

엔트워프 중앙역





뭐지. 이 알 수 없는 훈훈함은.ㅎ

나도 길을 걷다 이런 광경을 마주쳤으면 좋겠다.
춤추고 노래하며 어울리는.
박수치다 말고 뛰어들어 귀퉁이에서 같이 춤 춰야지.





신은 죽었다 - 니체

니체에게 딸이 있었을 줄이야


샘터분식






1.
그래도 아주 간만에 본 영화라 한마디 하려고 앉았는데 딱히 할 말도 없는 영화였다.

2.
'공간'을 중심으로 공간 위의 '일상'을 잡아내려는 의도는 보였으나 의도에만 그치고 만.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3.
매력적이었던건 '민중의 집'과 수줍은 안성민씨 정도였으나, 이 또한 영화적 재미는 별로. 차라리 샘터분식 사장님과 더 수다를 떠는 영화였다면 혹은 Jerry K의 공황장애에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난 그거 끝까지 궁금하던데.
전작에서부터 느끼는 거지만 감독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것이 영화인지, 프로파간다 영상인지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영화의 목적이 프로파간다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럼 돈을 받지 말아야지.

4.
내용이 아니더라도 편집이나 촬영에서부터 조금 더 신경을 쓰는게 어떨까. 장장 1년이나 찍은건데 노력에 비해 결과가 너무 아깝잖아요.

5.
졸았지만 졸만했다.
밤을 샌 다음날 봤던 영화들도 눈한번 깜짝이지 않고 봤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 책임 아님 퉤퉤퉤.

6.
그래도 태준식 감독의 다음 작품도 챙겨볼꺼다.




햇빛 비추는 날





우리들 함께 견뎌온 날들이
내겐 가장 그립고 소중해.

++
처음 들었을 때부터 오늘까지 이 노래는 이상하리만치 귀에 남아 눅진거린다.
이상했던건 2002년에 처음 공연을 보고 싸인을 받았는데, 싸인 위에 난데없이 '햇빛 비추는 날'이라고 써준 일.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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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모든 사람중에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사람.
끝간데 없이 외롭거나, 갇혀있듯 지루한 11월의 첫날은 하릴없이 그의 노래를 들어야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곳으로 설레이며 가자.


 



김현식 - 넋두리(Sick in Bed)

지붕뚫고 하이킥



Paolo Pavan - Looking For a Way Out


'하이킥' 시즌2라는 진부한 홍보를 맘에 안들어 하면서도 꾸역꾸역 티비앞에 앉아 지붕뚫고 하이킥을 봤다. 전작에 갖는 흥미와 애정때문이었겠다. 별다른 의미도 없이 흥행작을 울궈먹는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안녕프란체스카 시즌3가 그랬던것처럼.)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로 다시 변변한 시트콤을 못만들고 있는 MBC가 띄운 의미없는 한 수라고 궁시렁거리면서 티비앞에 앉아있는데 "어라, 이거 뭔가 좀 다른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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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옮겨 놓은 것 같은 - 메타포

신애와 세경은 갈데없는 신세로 우여곡절 끝에 이순재의 집에 식모로 들어간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골자는 이 자매의 서울 생활기, 혹은 성장기쯤이겠다.
거의 매회의 갈등은 가난한 이 자매를 구박하는 주인집 딸 해리의 핍박에서 시작된다. 해리는 집안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 이 집안에 있는 것은 모두 자기 소유임을 간절하게(그렇다. 그건 간절하게에 가깝다.) 주장하고 신애와 세경의 인신마저도 소유하려 한다. 동시에 신애와 자신의 계급적 차이를 항상강조하며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모두에게 인정받으려한다.

이는 마치 유산계급이 무산자를 핍박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에 가깝다. 존재에 대한 인식보단 소유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군중속에서도 고립된채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처럼 해리도 가정에서 고립되어있다. 유복한 가정의 사랑받는 막내딸인듯 보이지만, 저마다의 삶과 생활로 어느 누구도 해리의 잘못과 집착에 응징을 가하지 않는다. 결국 엄마의 꿀밤으로 소동은 마무리되지만 엄마조차도 해리의 잘못이 무언지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는다. 결국 해리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무엇과도 소통하지 못하고 물질만을 맹신하는 욕심쟁이 현대인들처럼.

너무 많은 것들을 삼키기만 할 뿐 쏟아내지는 못하는 우리처럼 해리의 작은 몸은 감당하지 못할 고기때문에 늘상 변비에 시달린다. (사실 과도한 육식같은 잘못된 섭생때문에 변비에 시달리는건 바로 우리들 자신아닌가)


##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하이킥엔 엄격한 계급이 존재한다. 그것이 금력에 의한 것이든 가부장적 권위에 의한 것이든 학력 혹은 나이든 관계없이 하이킥은 무엇으로든 계급을 규정짓고 지배하려는 서슬퍼런 계급투쟁의 과정이다.

가짜학력으로 과외선생노릇을 하고있는 황정음은 학력이 들통나지 않으려 애쓴다. 가짜 서울대생인 그녀에게 진짜 서울대생 지훈의 "몇학번인데요?"라는 말은 친근감의 표현보다는 추궁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가장 쿨한 캐릭터를 표방하는 지훈조차도 은연중 자신의 우월적 지위와 카르텔을 확인하려는 질문인것이다.

정보석은 이순재의 신임을 얻기 위해 세경과 경쟁하고, 해리는 신애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고자 끊임없이 신애를 핍박한다. 결국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물고 뜯고 싸우는 세상의 축소판.


## 가족의 정체

하이킥 오늘 방송분의 에피소드는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가족의 의미에서 기인하는 갈등들.  각자 "가족이라면 이래야지"를 외치지만 사실 그건 가족안에서 자기가 주도권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의 발로. 그 욕망을 예의니 상식이니 하는 말들로 치장해 봤자.

애초에 가장의 권위라는 말로만 가족의 형태를 얽메이려드니, 서로가 가장이 되고자 할 수밖에. 결국 누가 주도하든 고리타분한 가부장제다. 권위와 권위만이 맞붙어 싸우는.
가족이란 본래 그렇게 불완전한 공동체다. 에피소드의 끝무렵 해리의 나레이션처럼 가족은 선택하지 못한 최초의 공동체. 그 공동체의 빛나는 부분을 발견하게 해주는건 배려와 소통이다.


## 그래도 따듯한, 그래서 더 세상과 같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처럼 그래도 세상은 따뜻하다. '뭐가 따뜻한데?'라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더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분명 세상은. 학교에 가고싶은 세경을 위해 새 참고서를 몽땅 버려주는 준혁처럼, 갈 곳없는 세경자매에게 기거이 방을 내주는 줄리엔처럼. 세상은 분명히 따듯한 곳이어서 우린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저마다 한걸음씩 내딛어 지금은 비록 아니어도 언젠간 더 좋은 곳을 찾고자 발버둥치면서 살아가는 세상.

지붕뚫고 하이킥의 제목은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차용해왔다고 한다. 다른 세상을 찾기 위핸 지붕을 뚫는 것처럼 알을 깨는 것처럼 지금 사는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 발 한 발의 하이킥이 언젠간 지붕을 뚫을거라고 믿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 한 발 한 발의 하이킥을 매일 저녁 즐거운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다. 






바더마인호프 - 폭력, 혁명, 모순과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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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적군파

호치민과 체 게바라를 연호하는 그들의 이상은 간단하다. 자본에 의한 착취, 성에 의한 수탈, 국가에 의한 폭력등등. 모든 파쇼적이고 악랄한 행위들. 인민, 즉 나와 너 내 친구들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항의와 저항. 고래로 '운동'이나 '혁명'이라고 불리운 것들은 모두 같은 범주에 있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를 관통하는 적군파의 성립배경에 조금 다른점을 찾자면 그 이름만으로도 후덜거리는 '68'.에 있달까.
해서 망이 망소이의 난과, 독일적군파와, 2008년 여름의 촛불은 그 본질에서 대동소이하니 독일 적군파를 공포의 대상, 테러리스트, 악마집단으로 이해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본래 혁명은 폭력적인 법이다.
마오가 이르길 "혁명은 결코 고상하거나 아름다울 수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계급을 뒤엎는 폭력적인 행위다.”
혁명은 그렇다. 혁명은. 혁명을 꿈꾸는 이들만을 탓할 순 없다. '혁명'을 꿈꾸지 않으면 '개혁'도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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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의 발단

영화는 67년 가두시위중 사망한 오네조르크를 조명하며 시작한다. 시위도중 경찰에 의해 사망한 대학생,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정부. 80년의 광주와 87년의 이한열을 닮은 그 장면들은 가끔 눈물이 흐를만큼 뜨겁다.

마인호프의 성명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자초한 일'이다. 은행에 대한 테러는 금융독점에의해 인민들을 수탈하는 행위이므로,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외면한채 권력에 굴종한 판사에게, 경찰에게, 기업에게, 국가에게.
애초에 근원을 따져보자면 이 모든 폭력과 테러의 발단의 고리는 '저들'에게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더욱 슬픈건 그 고리가 무엇인지, 무엇을 끊어내야 하는지 저들은 정말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쯤.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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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 모순, 붕괴

호쾌하고 뜨거운 영화의 전반부를 지나 본격적인 적군파 활동이 시작되면서부터 갈등은 생겨난다.
모든 일과 사상엔 모순이 존재하는 법이고 모순을 극복해 내는 과정을 겪으며 숙성되는 법이다. 거기에 혁명이라고 예외일까.

혁명은 자기에 대한 확고함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때문에 혁명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기 전체를 부정하는 것. 때문에 모순도 자기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썩어간다.
인간은 '자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 자기를 부정하느니 현실을 부정하는 일이 더 쉽다.

신화란 그렇게 만들어진다. 관념으로 만들어진 혁명은 교조적이다. 결코 현실일 수 없는.
어느 순간엔가 잘못임을 알게되겠지만 잘못을 인정하기란 목숨을 끊는 일보다도 어렵다. 마침내는 아주 슬픈 눈을 하고 죽어갈 밖에. 저 사진속의 눈처럼. 저런 눈을하고도 '난 민중을 위해 살았고 죽을거야'란 자기도 안믿는 얘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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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할것이냐

테러리즘이 무조건 나쁘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옳다고 말하기도 마찬가지지만. 정답은 없는거니까.
다만, 시골 마을에서 호미를 잡고 노동자 농민들과 혁명을 토론하던 남미횽아들과 쏘고 찌르고 태우고 부숴서 혁명을 이끌려던 유럽횽아들중에 누가 지금 우리 곁에 남았는지를 돌이켜 볼일이다.


## 사실 남일이 아니다

영화가 얘기하자는건 적군파의 과격한 테러가 불러온 참상과 몰락도, 그렇다고 그시절로의 향수를 자극하는 저열한 프로파간다도 아니다. 다만.

똑바로 보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전자 신분증을 도입해 시민들을 통제하는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국가와 자기만족과 기만으로 가득찬 혁명으로 모두를 속이는 오만, 빼앗기고도 빼앗긴줄 모르는 무지와, 빼앗지 않기 위해 빼앗는 허세, 허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너무 많이 비슷한것들.

폭력은 그렇게 지금도 우리안에, 우리 사회안에 버젓이 기생하고 있다.


++덧

영화를 보다 며칠전에 케이블티비에서 본 '쏜다'와 장면이 겹치는 황당함을 겪었는데,
그 황당함이란 전혀 매치 되지 않을 것같은 영화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함이 첫번째였고, 상황이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이 다시 상황을 만들어 종래엔 허무해져 버리는 이 웃기지도 않는 매치가 갖는 설득력이 두번째였다.


칼자국 - 엄마


어느 날, 나는 내가 진정으로 배곯아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리둥절했던 적이 있다. 궁핍 혹은 넉넉함을 떠나, 말 그대로 누군가의 순수한 허기, 순수한 식욕을 다른 누군가가 수십 년간 감당해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놀라웠던 까닭이다. - 김애란, '칼자국' 中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담배 한개비 물고 화장실로 향하다 잠결에 아장아장 쫓아오는 강아지 몸통을 걷어찼다.
"그러게 왜 알짱대냐"라며 생각해보니 엄마가 집에 없구만. 밥통에 밥이 비었으니 밥달라는 얘기였다.
강아지 밥을 퍼담다 보니 주방 밥솥엔 내 먹을 밥이 한가득. 냄비엔 콩나물국이 한가득. 어제 먹은 술에 또 밤새 끙끙거렸나보다.

당연스레 받고 있는것들, 당연스레 누리고 있는 것들.
숨쉬고 있는 일과, 오른팔이 움직이는 일과, 앞이 보이는 일과, 살아있는 일들. 이런 것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살아가기때문에 존재의 가치조차 외면하게 되는 것들. 살아가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물었을때, 공기나 오른팔이나 생명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내 허기를 채워주던 그녀의 존재를 인식이나 하고 살아갈까. 나는, 우리는.

중학교때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할때 한자로 쓰기 쉬운 엄마 이름이 반가웠다. 잊지 않겠구나. 이름을 잊지 않을 수 있다는게 무에 그리 반가웠을까만. 실존하는 그녀를 인식할 수 있다면 더욱 감사할수도. 실존하는 '나'를 인정하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경외할 수도 있을테지.




Ozzy 아저씨의 Mama I'm Coming Home.
엄마 나 왔어요.

연아야. 아, 연아야.





연화(蓮花)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픠였나니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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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가 뭔지도 모른다며 굳이 너를 외면하고 있었더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의 그 연기를 오늘에는 보고야 말았구나.
알듯 모를듯한 그 미소를 머금고 빙판위에 덜어지니 그야말로 낙목한천의 오상고절,
아름다와 차마 말로 담지 못했네.

억지스럽지도 않고 부담스럽지 않은 그 몸짓과 웃음은
정말 순간을 즐기고 있다 여기게 했어.




연인들, 키친



정인, Bobby Kim - 사랑할 수 있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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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랑하자. 사랑할 수 있을때.
그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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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에서 양산이 탐탁치 않던 소녀는 얼굴도 채 나오지 않았지만 백진희. 반두비의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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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1등은 신민아. 그야말로 반짝반짝.
기대할건 정유미. 보고있자면 콩닥콩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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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좋았고 배우들도 다 좋았고 기분도 좋음.
영화를 보고 시간이 지나자 남는건 불어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던 주지훈.
와이키키에서 오지혜가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의 아성에 버금가는.
 

Smashing Pumpkins - Mayonaise






Fool enough to almost be it
And cool enough to not quite see it

아직은 모르는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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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고 가끔 이 형들 땡긴다.
그래봤자 이곡을 비롯해 몇몇개지만.

어디 신청했다가 까여서 걍 가져왔음.ㅎ
혼자듣고 혼자 불러버릴테다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