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계절 - 누구나 대화상대는 필요한 법이잖아요





# 누구나 대화상대가 필요한 법이잖아요

톰과 제리는 그 이름에서 풍기는 아우라와는 달리 매우 이상적이고 행복한 부부다. 톰은 인자한 지질학자고 제리는 상담치료사다. 그들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요리를 하고 주말엔 농장을 돌보는 생활을 한다. 잘생기고 위트있는 변호사 아들이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며, 학식이 풍부하고, 탄소배출량을 고민할만큼 정치적으로도 깨어있다. 그야말로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이상적인 가정.

메리는 제리의 직장동료다. 제리가 일하는 병원의 비서직 사무원이고, 학식이 부족하고, 이혼했고, 부유하지 못하고, 외롭고, 알콜의존증도 조금 있고, 너무 수다스럽다. 메리가 금붕어 똥마냥 제리에게 붙어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리는 자신의 환자를 대하듯이 메리를 받아준다. 늘 Yes라고 말해주고 귀를 기울여준다. 메리는 그들 곁에 있음으로 그들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도 알고있다. 그녀는 결코 그들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얘기가 아릴정도로 와닿는다.
"누구나 대화상대가 필요한 법이잖아요"


# 우리는 모두 메리일지도


메리를 보면서 내가 메리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부끄럽고 슬펐다. 외롭고 얘기할데없어 어느 곳에도 들지 못하는. 사실은 이제 그만해야 하는걸 아는데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마치 눈치채지 못한것처럼 불청객이 되거나, 과도한 호의와 과잉된 적의로 주변을, 사실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

하지만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사정. 우리는 모두 완벽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에 달하지 못하는 메리같은 삶을 산다. 늘 이상을 설정해놓고 그 언저리를 맴돌다 지치고 슬퍼하고 쓰러지고 울고 이내 체념하고 죽어버리는. 하지만 이상적인 공동체나 삶이 있을까.톰과 제리에겐 불행과 결핍이 없을까. 결국 희구도 행복도 모두 허상일지 모르겠다.




# 마지막 장면

메리는 또 행복한 가족의 즐거운 한 때를 '목격'한다. 그렇다. 그건 목격이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그녀와 그들사이에 존재한다. 그 벽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며 메리는 속으로 운다. 그건 체념일까 갈망일까. 애써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거나, 억지로 행복하게 만들어 위로하거나, 위악적으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응시한 마지막 장면은(10초정도의 시간동안 아무런 소리도 내지않고 그녀의 얼굴만을 응시한다.) 내가 본 영화중 최고의 마지막 장면이다.

파수꾼 - 그건 싸움잘하는거랑 아무 상관없어



1. 그건 추억이었을까?
2. 정말로 다치지 않았니. 나도 너도.
3. 그럼 그건 폭력이었을까?
4. 그렇다면 피해자는? 또 가해자는?
5. 얼버무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는, 또 그러고 싶지는 않아.

5. 이제훈 대박.

만추 - 이 대책없는 낭만에 대한


솔직함이나 진심. 같은 말들을 좋아한다.
사람이나, 사랑, 관계. 같은 말도 물론이다.
하지만 그런걸 사실 잘 믿지는 못한다.

감정이 움직이는 그대로. 를 꿈꾸지만 사실 난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감정. 을 더 믿는 편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걸 부정하는 멍청이는 아니다. 다만 아직. 이라는 거지.
그래서 이 대책없이 낭만적이고 우직하게 순박한 영화가 좋았다.
마음이 움직이고, 결국 다시 삶을 살아가는 순간들이 반짝거리던.




버스를 타고 시애틀로 향하던 애나의 눈은 무관심보단 어쩌면 두려움에 가깝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무관심을 어떤 의지도 욕망도 없음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모든게 두려운게 아닐까. 하는.
상처가 크면 딱지도 크니까.

이런 생각은 영화가 한참 지나고 그녀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할때 더 확실해졌다. 그녀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더 세상을, 사람을, 또 자신의 삶을 동여매고 있구나. 그 안에 박제시켜 놓았구나. 다시 죽지 않으려고 스스로 죽었구나. 하는 생각들.


시간이 지나며 애나와 훈이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이 달라지고, 조금씩 자기 밖으로 나오던 애나가 사랑스런 춤을 상상하고, 마침내 눈물을 쏟으며 소리지를 때. 서로가 서로를, 마음이 마음을, 만남이 관계를 또 삶을 변화시킬거라는 이 대책없는 낭만이 스크린에 나타난다. 

영화를 볼 땐 대사에 집중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대사보단 애나의 얼굴, 그러니까 표정에 무게가 실린다. 그녀는 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표정이 자기를 지켜줄거라는 듯이. 그러다 한번씩, 범퍼카에서 달리면서 훈의 말도 안되는 대답에 피식거리며, 유령관광온 관광객들에게 놀라며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관계(들)은 변한다.

영화는 대책없이 낭만적이다. 3일의 외출동안 만난 남자와의 관계(그게 사랑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가 죽어있던 그녀를 깨운다. (훈이 애나에게 굳이 시계를 주는 이유는 그녀에게 멈춘 시간을 건네주는 의미일까) 무튼 시간이든 마음이든 감정이든 죽어 멈춰 있던 그녀를 깨워 변화시키는건 관계, 사랑, 사람. 이라는 그런 낭만.

난 낭만을 동경하지만 동경은 이해의 반대말이니까. 갖고 싶지만 정체도 모르는 것.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모두의 자유. 관계와 감정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그건 그대로 건강하고 성실한 삶.

다만 헛갈리지는 말자. 모든 관계가 이처럼 낭만적일리도 또 당신을 살게하지도 않을테니.
다만 보지 못했어도 희망을 버리지도 말자. 감정이 움직이는 순간을. 그 찰라의 소중함이란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답고 짜릿하니까.


덧,
탕웨이는 아름답다.
좋은 연기를 찾고 싶다고, 어쩌면 연기는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는 인터뷰를 봤더니 더 아름답다.

덧2,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을 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왠지 뜬금없게.


버스, 정류장 -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





# 이제 만날 때가 됐다는 듯이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개봉 당시였다. 분당 총알이 400발 이상씩 소모되고, 핵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한번쯤은 있으며, 도시 전체(보통 LA나 NY)를 날려버릴 양의 액체폭탄에 대한 걱정으로 불철주야 피 흘리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헐리우드 영화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그 홍수에 화답하듯 그런 영화들에 열광하는 친구들과 몰려 다니던 시절이었다. 있어 보이는 척이 주고 일켠에 또 다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였던 취향 덕에 일단 지루해 보이고 친구들은 혹평을 평론가는 호평을 던질 것 같은 영화들을 기웃거리고 다녔다. 이 영화도 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나서 젠체하며 "나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그 순간의 우쭐함을 만끽하곤 이내 잊어버린 그 영화들 중 하나.

이 영화를 다시 만난건 지난 봄이었다. 2010년의 봄.
언젠가 2010년을 정의한다면 '무의미'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단 말을 친구에게 했었다. 정말 그즈음의 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무의미한 허송세월인줄을 알면서도 어떤 것도 하지 않는 무의미. 의미 없는 게으름. 집 밖은 커녕 방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 전화는 받지 않다가 이내 끊어버렸고(사실 끊겨버렸고) 귀찮아서 밥도 안먹었다. 담배도 잘 안폈다. 그 와중에 가지 않는 시간을 떼우려 영화들을 몇 편 다운 받아 보곤 했는데 그 안에 있었다.
정말, 이제 만날 때가 됐다는 듯이.

난 내가 아주 웃겼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고민거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치열한 삶의 반동에 따른 은둔도 아니었다.  내가 아주 못나고 게으른 놈이란 자괴감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기도 했지만, 정작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 말해보라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은둔을 즐기기도 했다. 별 말은 안하셨지만 가끔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던 엄마나, 밖으로 끌어내 보겠다고 야구티켓에 내 코드의 술집까지 찾아놨다는 친구들의 관심을 내심 즐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관심을 받고 싶었던 유아기적 외로움과 투정이었을까. 그래도 밖을 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라고 물으면 글쎄, 만사 귀찮아서. 가 가장 근거있겠다. 무엇도 명확한 이유가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외로움만은 진짜였다.
그러다 이 외로운 사람들의 영화를 봤다. 이제 만날 때가 됐다는 듯이.





# 그 외로운 사람들
재섭은 핸드폰을 사지 않는다. 여전히 삐삐를 들고 다니지만 정작 누구와 연락을 주고 받지는 않는다. 관계를 유지해 나갈 의사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누군가 삐삐를 쳐주길, 누군가 다시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철학이니 역사니 정통이니 하는 말들을 제법 지껄일 줄 알던 그는 세상의 루저다. 차 한대 살 여력도 마땅치 않고 어둔 골방에서 의미 없는 소설이나 끼적이는 동네 학원 강사. 그래서 그는 모든 이들을 하찮게 여긴(여기려고 한)다. 시를 모르는 것들, 대화가 되지 않는 것들, 속물들. 친구들에게 컴플렉스를 운운하던 그의 말은 허세이기도 하지만 진심이기도 하다.


소희는 진실을 믿지 못한다. "진실은 곧 거짓"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도 사실은 거짓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진실된 말과 관계를 희구한다. 사는게 무슨 의미냐던 그녀는 친구의 죽음을 아파한다. 어쩌면 그녀는 영화를 보러가자던 원조교재 상대에게조차 진실된 관계를 그리워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여관이나 가자던 그에게 환멸을 느끼는 반복을 볼 뿐이지만.  

그/녀는 외롭다. 고립돼 있지만 그 고립을 누구도 봐주지 않아서 더 외롭거나 어쩌면 그 고립을 자기가 자초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때문에 더 괴롭다. 혹은 내가 정말 외롭기는 한걸까. 하는 물음. 그 알량한 자기 확신조차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외롭고 또 괴롭다. 자기로 부터도 타자로 부터도 고립돼 있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재섭과 소희 얘기가 아니다. 내, 우리의 이야기다.




#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
서울 시내에 수백개의 버스 노선과 정류장이 있겠지만 사실 이용하는 정류장은 그리 많지 않다. 생활이 일차원적인 외로운 사람들이라면 더욱 더. 거기에 시간도 매일 어슷비슷하니 버스에서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매일 매일 같은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 이 사람들은 한 다다음 생애쯤엔 대단한 친구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같은 버스를 탄다는 것은 같은 곳을 향해 간다는 뜻이다. 그 버스를 같은 정류장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함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닮은 소희와 재섭이 있기에 가장 적절한 곳.

같은 버스를 탄 그/녀는 서로의 곁에서 목 놓아 눈물 흘린다. 아주 솔직한 울음. 조금 더 솔직했던 소희가 조금 먼저, 말도 행동도 운동신경도 마음도 조금 더딘 재섭이 조금 더 늦게. 그렇게 온전히 서로의 같은 방향을 같은 정류장을 확인하려는 듯 감독은 그 눈물을 오래도록 담아낸다.
(재밌었던건 재섭이 눈물 흘리던 우체통.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그 빨간 상자. 재섭은 우체통을 사이에 두고 소희와 이야기 나누다 눈물을 흘린다. 마치 편지 하듯이.)




눈물을 훔친 건 그 장면이다. 아, 같은 버스를 타고 눈물을 받아 줄 친구.
아니, 그보다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영화 이미지를 찾으려고 검색을 하다 '지루한 원조교재 영화'란 댓글을 봤다. 원조교재의 정의는 이미 영화 안에서 원조교재 아저씨가 내려줬다. 사랑없이 돈만 왔다갔다 하면 원조교재라고. 재섭과 소희는 사랑을 한다. 그 사랑이 연인의 마음이어도 좋고 동류의 인간에게 느끼는 우정이어도 좋고 사제간의 의리어도 좋다. 다만 그들이 사랑을 하는게 중요한거다. 그렇게 편협하게 정의 내리기에 사랑이란 말은 너무 예쁘고 아깝고 소중하다.
참고로 이 댓글을 본 포털은, 예전에 '사랑'을 검색했을 때 '이성간의 연애 감정'이란 편협한 정의로 난 짜증나게 한 그 곳이다. 내 이놈을 참.




# 김민정
아, 이렇게 예쁠수가.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렇게 잘 맞을수가. 마치 맞춰 입은 것처럼.
'아일랜드'의 시연도 그렇고 김민정은 상처받고 아파서 더 날을 세우는 그런 슬픈 역할이 잘 어울린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여배우다.
정유미나 백진희를 주목하고 있고 윤아나 신민아를 보면 정신 못차리고 하악거리지만
팬카페까지 가입한건 이 언니 하나다...ㅋ



# 이 영화에 이렇게까지 집착할 줄이야


이런 저런 말을 쏟아냈지만 그저 보고 있으면 맘이 설레는 영화다. 며칠전엔 버스 안에서 OST를 듣다가도 그런 맘이. 위로일까. 그런거였으면 좋겠다. 무튼 외로운 누구를 알게 된다면 이 영화 DVD를 내밀어 볼테다.









力士 - 김승옥


그래서 마침내 어느 쪽인가 한편이 틀려 있다는 생각이 나를 몹시 짓누르기 시작했다. 본질적으로는 두 쪽이 같지 않느냐는 의문이 나의 내부 한쪽에서 솟아나오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강한 힘으로 나를 끌고 가는 '어느 쪽인가 한편이 틀려있다'라는 집념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발전하여, 미리 그러기로 되어있었다는 듯이, 나는 이 양옥의 식구들 생활을 빈 껍데기에 비유하고 있었다. 빈 껍데기의 생활, 아니라면 적어도 방향이 틀린 생활, 습관적인 생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나를 끌고 갔다. 이 순간에 나는 꼭 무슨 행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한 행동이 누군가 좀 현명하고 인간을 잘 아는 사람에 의해서 심판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김승옥, '力士' 中



+

삶을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게으름이나 현명한 이에게 심판받고 싶어하는 허위와 허세.
그런 것들이 결국 삶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갉아 먹는다.
더욱 부지런해지고 더욱 진실되야 한다. 누구가 아니라 내 눈과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직시해야 한다.

연말 결산 놓친 영화 몰아보기 Vol.2 - 소와 함께 여행 하는 법, 치유보단 위로





# 그 지루한 성장

"네가 성장하고 있는 중이야" 라는 말은 커다란 위로지만 사실 무책임하다. 모든 순간이 성장의 순간임을 모르는 이 누가 있을까. 다만 그 더딘 성장과 치유의 과정이 미칠듯이 지루해서 속이타는거다.

세상은 너무 빨라서 시와 노래는 늘 뒤쳐진다. 심지어 난 뒤쳐질지언정 누가 불러줄 시와 노래를 부르지도 못한다.
사랑은 늘 은전처럼 말을 흩뿌리고 지나가지만 돌이켜보면 고이 접어 아련한 흑백사진의 빛깔보단 창피하고 쾨쾨한 녹이 눅진거리는 기억이다. 심지어 그건 사랑이었을까? 자신도 없다.

 세상은 역겹다. 불만투성이라 불만을 뱉어내지만 허무하고 무의미한 불평이다. 누구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모두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실 내가 제일 어리석다는것쯤 이미 알고 있다.

"이게 다 성장의 과정이야 좋아질거야." 그건 차라리 골방의 수음 같은거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어쩌면 도피같은거다. 여행자를 두고 누구는 보헤미안이니 낭만적이니 하는 말들로, 누구는 역마살 든 금치산자 라는 말로 치장한다. 둘다 틀렸다. 여행자는 도망자다. 적어도 우리에겐, 또 나에겐. 
삶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내지 못하는 우매한 중생, 삶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도망자다. 플랜비따위 없는.
 

# 십우도

언제더라 십우도를 본 적이 있다. 소를 보고 찾고 돌아와 소도 나도 다시 잊는.
열번째 그림이 뭐라더라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그림이던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 결국 나야

소와 땡중과 옛사랑과 술과 여행과 꿈.
환상적인 목록이랄까. 천애절벽 작은 동굴에서 만난 영약과 무공비급 같은 기연. 그런게 인생에 있어주길 기대한다. 나만? 당신도 그렇잖아. 우리는 그렇게 헛된 망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음을 안다. 그런 절망, 그걸 철들었다고 하거나 어른이 됐다고 하거나.

결국 내가 할 일이다. 소는 여행을 함께 할 뿐 어느 말도 해주지 않는다. 여행 한번에 어른이 되는 일, 책 한권으로 깨달음을 얻는 일, 술로 세상을 잊는 일 모두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결국 내가 할 일이다. 자신을 보고 잊고 다시 돌아오는 일 모두 내가 할 일이다. 더딘 성장에, 그 지루함에 대한 절망에 위로가 되어는 주겠지만 결코 치유는 해주지 못한다. 치유와 성장의 주체는 결국 나. 떠나는 것도 보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나다.



# 환상

어느 순간부턴가 선호의 꿈과 현실이 얽혀서 어느게 환상이고 어느게 현실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돌아와 다시 밭을 가는 선호와 소의 얼굴이다.
대단한 깨달음도 대단한 고통과 고행의 여정도 없이 그저 담담히 돌아와 다시 웃으며 가끔 또 화나며 밭을 가는 그의 얼굴이다. 부처가 아닐 바에야 그게 중생의 삶이다. 그렇게 이 여행으로 선호는 더딘 성장과 치유를 또 한걸음 해냈다.

그럴 수 있을까?


# 임순례

임순례 감독은 이런 영화가 좋다. 우생순 같이 예쁘고 감동적인 영화 말고.
찌질하고 평범한 내 얘기를 조곤조곤 보여주는 그런 얘기들. 사실 이게 정말 예쁜 영화인거다.


# 김영필

영화 내내 "박해일인가?" 하는 생각이.ㅋ
알고보니 비열한 거리에도 공공의 적에도 나왔던 배우던데. 필모그래피를 보고 나니 생각이 났다.
이 양반 앞으로 이름이 보이면 한번은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카페 느와르 - 할 말이 많아서 결국 하나도 하지 못한




## 구원. 여러 이름의

"하느님 아버지 제발 저를 구원해 주세요."

결국엔 머리에 권총을 당겨 뇌수가 흘러나와 손 발이 마비됐지만 맥은 여전히 뛰고 있어 방혈도 소용없었던 베르테르와 매일매일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마리아를 닮은 소녀 모두 구원을 받았다.
다만 그 구원이 자포자기일지 희망일지는 바라보는 이의 손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십자가에 매달린채로 막을 내린 정원이의 연극처럼.

하지만 발신인 모를 편지를 전해받은 영수는 어쩌면 사랑을 잃지 않았을지도 몰라. 같은 희망.
그러니까 어쩌면 난 믿는 자일지도 몰라. 같은 희망.
나도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 갈 수 있을지도 몰라. 뱃속에 예수를 품고. 같은 희망.


## 롱테이크, 문학, 구어체, 낭만

서울 시내를 관통할 듯이 달려가는 롱테이크,
잠시의 쉼도 없이 사랑얘기를 뱉어내는 선화,
쾨테와 도스토옙스키와 모차르트와 브레히트와 라캉의 언어,

불타버린 남대문과 수돗물이 흐르는 청계천과 폐허가 된 한옥집과 동방박사들이 사는 여인숙.
낭만을 잃어버린 낭만의 도시, 서울.


## 오마쥬

수원에서 멀지않아 오산 못가 있는 도시가 고향인 남자,
복수의 도구로 망치를 준비하는 남자,
꽃병이 도무지 맞지 않아 조카를 빼앗아간 괴물을 잡지 못해 서러운 남자.
그이 기타등등등. 

이 영화광의 못말릴 오마쥬와 패러디들.


## 정성일

러닝타임이 3시간 20분이라는 얘기를 듣고 친구와 
"다신 영화 안만드려고 한 편에 다 때려 넣었나보다"라며 낄낄거렸는데
아직 정성일 아저씨는 자기 얘기를 시작도 하지 않은 느낌이다.

카페 느와르는 영화광 중년의 영화와 문학 편력기.쯤일까.
지난 시간을 모두 돌이켜 자기를 만들어준 영화와 이야기와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커밍아웃 같은거.


## 정유미

늘 그렇듯이 영화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여배우. 정성일이나 신하균 보다는 정유미가 가장 끌리는 이름이다.
5분정도 쉬지 않고 한 컷으로 서술(그렇다 그건 서술이다)하는 사랑이야기는 마치 곡예를 보는 듯, 눈 앞에 앉아 같이 수다를 떠는 듯. 눈물 닦아 주려고 손 내밀뻔 했다능.
 



목마른 계절


예전에는 완벽한 순간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 순간 때문에 우리가 긴 생을 견딜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놀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광경이 아름다워서였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니면 대학교 1학년 때, 아무 이유도 없었다.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었고 그것이 아늑하고 따스한 기분이었다.

또 밤을 새고 공부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닭이 일제히 울 때 느꼈던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도 잊을 수 없다. 머리가 증발하는, 혀에 이끼가 돋아나고 손이 얼음같이 되는, 그리고 눈이 빛나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완벽하게 인식에 바쳐진 순간이었다. 이런 완전한 순간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그것을 다시 소유하고 싶다. 완전한 환희나 절망, 무엇이든지 잡물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것에 의해서 뒤흔들려보고 싶다. 뼛속까지, 그런 순간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고 있다.

내가 지닌 여러가지 제안이나 껍질에 응결당함이 없이 내 몸과 내 정신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무한 속에 내던지고 싶다.
- 전혜린, 목마른 계절 中


순수한 열정, 그러니까 절망이나 환희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는 그 순간에 대한 갈증.
인간으로서의 자립과 성장에 대한 열정과 갈망.
오직 나로서 존재케 하는 삶에 대한 절실한 욕구.

어떤 언어로도 가져올 수 없는 진짜 삶에 대한. 눈물 나도록 절실한

연말 결산 놓친 영화 몰아보기 Vol.1 - 페스티발, 욕망으로 살아가기











어찌어찌 하다보니 올 해는 영화 한편 변변하게 보지 못하고 지나간다.
보고싶은 영화가 별로 없었어. 라고 하기엔 사실 열의도 정성도 금전도 없어서.
종강하고 다음 일정까지의 며칠동안 잉여력만 키우느니 놓친 영화나 챙겨보려고.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도 좋겠지만 일단은 어둠의 경로님.

연말 결산 영화보기(연말 결산 영화 순위보다 이게 더 재밌네) 첫 번째는 페스티발.
이해영 감독은 정말 좋은데 그 작명센스는 좀 어떻게 안되나? 김씨 표류기에 이어 이번에도
하마타면 스킵할뻔. 자기 이름을 좀 대문짝만하게 써놓던가.





## 변태나라 정상인

페스티발은 변태영화다. 온갖 변태가 우글우글 득시글득시글.
사실 가학을 즐기거나, 복장에 도착하거나, 갈라테이아에 집착하거나 하는 것들쯤 변태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건전하지 않은 것, 살기 좋은 나라를 방해하는 것들은 죄다 단속하라는 파출소장이나
자신을 남근으로만 증명하려는 남자(그것도 심지어 제복입은), 그리고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함을 변태로 규정짓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진짜 변태일테다.

그러니까 취향, 욕망, 사랑, 해방, 분출 이런 것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바로 우리들. 국격을 위해서 G20기간에는 음식물쓰레기도 버리지 못하는 이 경직된 사회가 변태의 세상. 우리는 변태나라 정상인.



▲ 장배는 등장인물중 유일한 진짜 변태다. 남성, 남근, 제복, 폭력, 허세로 점철된 그는 세상의 경직성과 폭력성 그리고 찌질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 욕망






누구나 자기 안에 넣고 사는 것. 성욕도 식욕도 구지에 대한 욕구도 지배 혹은 피지배에 대한 욕구도.
저마다 제각각인 욕망들이 얽히고 섞여서 만들어내는걸 관계라고 또 그 관계들이 엮이고 꼬여서 만들어 내는걸 세상이라고. 그렇다면 욕망을 이해하는 것이 자아실현의 첫걸음이겠다. 욕망이야말로 구도와 해탈의 길이기도, 생산과 번영의 거름이기도 한 법.

욕망을 제어하는 것을 규범이나 질서라는 말로 강변하고 그 제어가 철저할 수록 예의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재미없다고 그런 사회를 지루하다고. 지루한 사람과 사회는 무엇도 생산해내지 못한다. 아니 생산과 창조따위 어떻게 되든 말든 경직되고 답답한 세상에 살아 남을 수는 있겠지만 살아 갈 수는 없다.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사디즘이든 동성애든 양성애든 혹은 근친간의 사랑이든. 사람 아닌 생명과의 사랑도 생명 아닌 사람과의 사랑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해야 한다. 짧은 생이어서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할 테지만 적어도 내가 무얼 사랑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혹은 사랑하는 걸 사랑해야 한다.

극중 자혜가 말하길,
"제 교복 입은걸 부끄러워 마세요, 못 입고 후회하는 것들 보다는 낫잖아요" 


## 탈주, 해방, 카타르시스. 결국 페스티발



사실 영화의 말미는 너무 뻔하고 교훈적이다. 지수와 장배는 왜 화해를 한건지 도통 이해 할 수 없고, 상두도 세상밖으로 너무 쉽게 나왔다. (물론 백진희가 엄청 예쁘니까 사실 이해는 안되고 공감은 했다.) 결국 건강하고 '정상적
'인 사랑을 하게된 그들의 결말은 아쉽지만

성동일과 심혜진 커플은 그 찝찝함을 날려줄만큼 유쾌하다. 가죽바지와 채찍을 손에 들고 하늘을 날아 휘파람으로 성동일을 부르는 심혜진은. 그리고 햇살이 화창한 대로에 앉아 쇠사슬을 건네고 받아드는 이 중년 커플의 유쾌함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 지는 것, 남의 욕망에 관심을 꺼두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너와 나 모두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영화에서 이해영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일까.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사는 하고 싶은 일도 못하게 하는 이 경직된 변태들의 세상에 던지는 말. 좀 재밌게 살자.

## 심혜진



다들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도통 왜 대단한지 모르겠고 예쁜지도 잘 모르겠던 이 여배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배우다.
억눌리고 인내하고 감추는 엄마.에서 드러내고 즐기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그리고 마침내

"살다보면 변태 엄마도 있는거야"
"우리 지옥 가자"

이 아줌마 멋있는 줄 몰랐어.


## 백진희




그런데 사실 이 영화를 본 가장 큰 이유는 백진희 때문이다. 이해영 감독이나 류승범이나 엄지원 보다 더.
반두비와 비밀의 화원에서 보이던 그 느낌 그대로지만 여전히, 이 어린 여배우는 엄청 예쁘고 똘똘하니까.

앞으로도 백진희 나오는 영화는 꼬박꼬박 챙겨볼거임.

그렇다고 소덕후에서 백진희로 갈아탄 건 아님.

락락락 - 더 아프게 살아야 한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 부활

올 해의 드라마는 별 이견없이 성균관 스캔들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연말에 찾아온 드라마 하나가 가슴에 덜컥하고 내려앉아.
"삼류기타가 바닥소리를 낼 수 있다"던 김태원 아저씨의 얘기들.





빗속으로 떠나간 첫사랑에게 읊조리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나를 알기에 더욱 슬픈 소녀"

아파서 약도 술도 담배도 노래도 친구도 사랑도.
그렇게 가슴에 맺히고 쌓여서 바닥소리를 내는 삼류기타리스트의 노래들이
밤을 지새게하고 눈물 흘리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하고.

내, 우리의 방황이 결핍에서 비롯된것이면
그것은 어쩌면 오직 아픔의 결핍이다.
짓이겨진것처럼 아프지 않아서, 바닥에 대가리를 쳐박아보지 않아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지금 내는 소리들은 그저 카피. 속주만 따라하며 우쭐한 밴드.
삶이나 사랑이나 혁명이나 방황,
아름다운 이름들에 대한 옹색하고 구차한 카피.

눈물이 흐르도록 아파야 한다. 그렇게 사랑하고 살아가야한다.
진심을 다해 또 무언가를 찾으면서.

안녕, 달빛요정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뿐인걸.

루저, 찌질이, 모질이, 바보, 병신 으로 치환되는 나. 바닥에서, 그러니까 결국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가슴아프지만 하나도 안힘든 우리를 위로해주던, 사실 우리이던 그가 떠났다.
하나도 안 힘들다. 그저 가슴아플뿐이지.

주성치와 함께라면 웃을 수 있다더니, 난 그와 함께라면 울 수 있었는데.

이웃집 좀비 - 그야말로 이웃집의 좀비들




#1
모처럼의 외출이 반가워 그저 집으로 돌아서기가 아쉬웠다. 남대문시장에서 출발해 회현동과 시청을 지나 종로와 을지로, 명동을 모두 배회하고서야 중앙극장 앞에 도착했다.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하나라도 있으면 보고 들어가야지. 라고 마음먹었지만 요즘 통 영화를 보지 않는게 단지 시간이 없어서만은 아니라는걸 내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갖지도 않았다.
어디서 풍문으로 들었던 제목에 재기발랄해 보이는 포스터, 그리고 시작시간이 2분도 남지 않은 영화를 발견하고서도 사실 조금을 망설였다. '이 영화를 볼까, 말까?'
시간이 10분 남짓만 남았어도 아마 보지 않았을것 같다. 사람들이 헐레벌떡 입장하고 영화가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서야 표를 사고 영화관으로 뛰어들어 앉았다. 제일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코트를 벗으면서도 영화에 대한 설레임같은건 없었다. 그저 내가 본 영화 목록과 영화봤다고 자랑질하는 리뷰가 블로그에 하나쯤 더 쌓이겠거니 하는 생각밖엔.

#2
좀비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많이 보지도 않았지만 이 영화가 다른 좀비영화들과 다르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막연한 공포와 미지의 대상, 그저 타자화된 그들을 마을 한 구석, 가족의 일원으로 들여놓은 일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생활밀착형 좀비. 한명의 자신과 수십억의 타인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수십억의 자신이 살아가는 곳.

[그 이후... 미안해요]같은 꼭지는 그런 얘기들을 가장 절실하고 가슴아프게. 서로를 죽고 죽이던 그들은 자신의 입장만을 강변한다. 그건 '입장바꿔 생각해봐'를 넘어, 자신만이 중심에 있다는 오만한 세계관이 빚어내는 인간사회의 비극 같은거.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무한히 반복될 그런 비극.

#3
'키노망고스틴'이란 영화제작집단은 초저예산이란 어려움을 무모한 상상력과 몸빵(?)이란 최대의 무기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제작비때문이었는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역할을 바꿔 스탭을 하고 배우들이 한 영화 안에서 겹치기 출연을 하는(심지어 연출자나 스텝들이 주연배우들인 경우가 좀 있었음..ㅎㅎ)일이 오히려 영화엔 도움이 된 것 같단 생각. 결국 이까 그 좀비와 지금 이 피해자와 저 구경꾼은 모두 같은 사람들이란 느낌이 들어서.

#4
'좀비하이'를 복용한 클리너 역할의 아저씨가 자꾸 눈에 익어서 누군지 곰곰히 생각하다 결국 검색해봤더니, 아하.
비운의 드라마 2009 외인구단에서 하극상으로 나왔던 아저씨였구나.

#5
그런데 집에 오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좀비란 놈들 자체가 본래 그런 이들 아닌가 하는 생각. 주변에 있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적'이 되어 몰려오는 일. 그 좀비는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여. 친구도 아니고 적도아닌 관계는 사실 살며 만나는 무수한 관계들. 그럼 이것들도 다 좀비인거임?
괜히 이러다 좀비영화 매니아 되는거 아니냐며....ㅎㅎ 벌써 로메로 아저씨 영화들 다 검색 끝냈다며...ㅎㅎ

#6
간만의 즐거운 시간. 앞으로는 영화도 책도 뭐든 더 열심히 봐야지. 내가 즐겁지 않으면 결코 즐거워지지 않는 법.

밥딜런 내한 우훗.!!



Bob Dylan - Positively 4th Street


‘포크록의 전설’ 밥 딜런, 역사적인 첫 내한…3월 31일 공연


#1
작년쯤, 3일연속 밥 딜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꺼이꺼이 우는 꿈을 꿨다.
도대체 왜?

#2
밥 딜런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3학년때. 생일선물로 뭘 갖고 싶냐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는 밥 딜런의 음반을 얘기했다. 엄마에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음반을 선물했던 초딩 3학년 시절의 기억은 이후 "우리 집에 밥 딜런이 있었다니"라는 감탄사로 변했다.

#3
아임 낫 데어.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그거 아는 게 뭐가 중요한지도 몰라도 되는 그 영화와 밥딜런과 그의 노래와 캐이트 블란챗에 하악거리며 또 밥 딜런을 주억거리기.

#4
Together Through Life.
아직도 남았나요. 여전히 남았겠죠. 못다한 노래들이.

#5
할아버지, 내가 왜 할아버지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응?

#6
호들갑 떨고나니 부끄럽다..ㅎㅎ

#7
그나저나 꺼내서 팔려면 간을 씻어 놓아야 하겠군요.

오, 사랑





이런 로망. 기타를 치며 부르는 오, 사랑 같은거.



지붕뚫고 하이킥 - All You Need Is Love





처음 하이킥 시즌2가 방영된다는 기사를 어느 포털의 메인에서 접하고서 탐탁찮아 했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로 수년간 변변한 인기 시트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MBC의 진부한 상술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죠. 대개의 경우 흥행한 영화나 드라마의 속편은 별다른 미덕 없이, 전작의 후광에만 기대려다 결국 모두에게 외면 받곤 했으니까요. 나아가 그렇게 의미 없는 속편은 전작에 대한 좋은 기억까지도 바래게 만들어 버립니다. 대개의 경우 그러하단 말입니다. 그렇게 대개의 경우를 중얼거리면서도 지붕킥 첫 주 방영분을 고스란히 봤습니다. 그것도 정좌하고선. 전작에 대한 변치 않은 애정 때문이었겠죠. 그리고 일주일치의 지붕킥을 몰아본 주말이 지난 월요일 저녁, 다시 TV앞에 앉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악! 이건 대개의 경우가 아니잖아.”

 

지붕킥이 재밌고 좋은 이유는 우리 사는 모습을 빼다 박은 듯 하기 때문이에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주는 박장대소 보단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는 동감과 여운의 미소가 있기 때문이죠.

 

## 해리와 미스터 순대. 그리고 우리

 

전 가여운 신애와 세경이 보다, 해리와 미스터 순대에게 더 많은 감정이입을 합니다. 온 집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갖은 구박과 핍박을 일삼는 해리는,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만 하는 우리 사는 모습을 닮지 않았나요? 심지어 해리는 그 작은 몸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 먹어대는 고기 탓에 늘 변비에 시달립니다. 지나친 육식과 불균형한 섭생. 그 때문에 나타나는 질병과 또 질병들. 그러고 보면 그것도 또한 우리 얘기구요. 무엇보다 해리의 외로움에 더 큰 싱크로를 느낍니다. 해리는 부잣집의 사랑받는 막내딸이지만, 사실은 참 외로운 아이죠. 잘못을 혼내주는, 아니 바로잡아 주는 사람도 없고 딱히 이렇다 할 친구도 없습니다. 많은걸 갖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고작 사소한 인형놀이를 함께 하거나 빠진 이를 같이 신기해 해주거나 잘못되고 틀린 행동에 대해 바로잡아 줄 친구도 어른도 없어요. 해리 얘기냐고요? 아니 우리 얘깁니다. 사람도 많고 가진 것도 많지만 사실은 외로워 죽겠는 우리들 얘기요.

 

미스터 순대는 황혼의 로맨스를 이뤄가는 로맨틱 마초입니다. 황혼 로맨스의 상징인 멋들어진 콧수염도 기르고 있죠. 다리가 좀 짧긴 하지만 이 정도면 숀 코네리인들 부러울까요. 그러나 로맨틱 마초인 미스터 순대는 동시에 구시대적 가부장이기도 합니다. 체면과 권위, 자기과시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겠다고 가정의 생활비를 강제적으로 줄이고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을 가족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도 하죠. 며칠 전엔 심지어 자기를 욕보였다고 20년 넘게 성실히 일한 우리의 봉실장을 해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장의 권위, 사장의 권위를 운운합니다. 그에게 가정이나 직장이란 그렇게 장의 권위만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곳 인가 봅니다. 이 사람을 보면서도 저는 우리들 사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들을 전부 포함 할 수 있는 그 말이요. 바로 ‘소통의 부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소통이 뭔지 모르는 것 같은 또 다른 어느 ‘장’을 떠올리지 않아도 바로 우리부터 가족 간에, 친구 간에, 직장에서, 사회에서 너무 소통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요?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는 않고 정작 내 얘기를 듣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있지 않은가요? 너무 비약입니까? 저 오바인가요?

 

## 세경이와 정음이. 그리고 우리

 

지붕킥의 인기를 책임지며 뭇 남성들은 물론 뭇 언니들의 마음 까지도 설레게 하는 미모의 그녀들은 극중에선 가장 약하고 힘없는 아이들로 나옵니다. 놀기 좋아하고 허영 많은 지방대생과,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식모.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녀들은 세상이 말하는 루저일지도 모르죠. 그래선지 그녀들은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 것도 있어 보입니다. 다른 이의 호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경이도, 학벌 얘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음이두요.

외모도 영 별로고 뚱뚱한데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하고 심지어 영어도 잘 못하는 저는 그녀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해요. 세상의 기준대로라면 저 역시도 루저일테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그녀들에게 더 마음이 가고 어떨 땐 콧날이 시큰해져서는 괜스레 콧잔등만 긁어내리고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여전히 세상은 돈 많고 명문대 나온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만 좋아하니까요. 에잉~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 메시지

 

지붕킥의 매력중 하나는 에피마다 한 번씩 등장하는 알듯 모를 듯 한 메시지들입니다. 자옥 아줌마와의 이벤트 비용을 메우려는 미스터 순대의 노력 편에서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한 세경이의 노력이 빛을 발했습니다. 세경이는 세제대신에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고, 난방을 끄고, 변기에 벽돌을 넣고, 과소비하던 사과를 줄이고, 식단을 간소화 하죠. 식구들은 불편해 하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웃음의 포인트는 가정은 나 몰라라 하며 또 자옥아줌마에게 밍크를 사주는 미스터 순대에게 있었지만 전 사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반성을 초큼 했습니다. 빈 방에도 불을 켜거나 난방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남기고 하던 생활들에 대해 말이죠.

지붕킥은 그렇게 어느 곳엔가 갖은 메시지들을 들여 놓습니다. 가족, 여성, 환경 같은 얼핏 재미없어 보이는 그런 얘기들을 매우 재미있는 소재로 만들어서요. 웃자고 만든 시트콤을 이렇게 진지하게 바라보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제작진이란 말임미다.ㅋ




##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해요. 사랑하는 그들과 사랑하는 우리

 

전 지난 연말 MBC 연예대상에서 준세커플에게 베스트 커플상 투표를 했습니다. 예쁘잖아요. 걔들.ㅋ 제가 진짜 지붕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은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학벌차도 가난도 나이도 무엇도 상관없이 그들은 그래도 사랑을 해요. 우리처럼요.

 

늘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해리와 신애는 어느 새 알 수 없는 단짝이 됐고, 왠수 같던 지훈이와 정음이는 연애를 시작했어요. 까칠한 준혁이는 첫사랑을 앓고 있고 세경이는 가슴 아픈 외사랑을 합니다. 백수날건달 광수와 인나도, 보석 아저씨와 현경이 아줌마도 티격태격하면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죠. 미스터 순대와 자옥 아줌마도 황혼의 로맨스를 즐기구요.

 

우리도 그렇게 사랑을 합니다. 왠수 같은 아이를, 더 왠수 같은 남편을, 밉상인 친구를. 서럽고 아픈 세상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하기 때문에 살아가고 있어요. 서로 상처주고 서로 위로해주면서 세상이 준 상처를 서로 치유해주면서 그렇게요.

 

어쩌면 세경이와 신애는 쉽게 아빠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어요. 정음이와 지훈이는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헤어질 수도 있고, 미스터 순대는 가족의 반대를 못 이기고 언젠가 다시 가슴 아픈 이별을 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래도 그들은 다시 또 사랑을 할 겁니다. 상처받고 넘어져도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처럼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던가요??ㅎㅎ

 

 

 

 

 

 



Beatles - All You Need Is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