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계절 - 누구나 대화상대는 필요한 법이잖아요





# 누구나 대화상대가 필요한 법이잖아요

톰과 제리는 그 이름에서 풍기는 아우라와는 달리 매우 이상적이고 행복한 부부다. 톰은 인자한 지질학자고 제리는 상담치료사다. 그들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요리를 하고 주말엔 농장을 돌보는 생활을 한다. 잘생기고 위트있는 변호사 아들이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며, 학식이 풍부하고, 탄소배출량을 고민할만큼 정치적으로도 깨어있다. 그야말로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이상적인 가정.

메리는 제리의 직장동료다. 제리가 일하는 병원의 비서직 사무원이고, 학식이 부족하고, 이혼했고, 부유하지 못하고, 외롭고, 알콜의존증도 조금 있고, 너무 수다스럽다. 메리가 금붕어 똥마냥 제리에게 붙어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리는 자신의 환자를 대하듯이 메리를 받아준다. 늘 Yes라고 말해주고 귀를 기울여준다. 메리는 그들 곁에 있음으로 그들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도 알고있다. 그녀는 결코 그들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얘기가 아릴정도로 와닿는다.
"누구나 대화상대가 필요한 법이잖아요"


# 우리는 모두 메리일지도


메리를 보면서 내가 메리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부끄럽고 슬펐다. 외롭고 얘기할데없어 어느 곳에도 들지 못하는. 사실은 이제 그만해야 하는걸 아는데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마치 눈치채지 못한것처럼 불청객이 되거나, 과도한 호의와 과잉된 적의로 주변을, 사실은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

하지만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사정. 우리는 모두 완벽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지만 어느 누구도 행복에 달하지 못하는 메리같은 삶을 산다. 늘 이상을 설정해놓고 그 언저리를 맴돌다 지치고 슬퍼하고 쓰러지고 울고 이내 체념하고 죽어버리는. 하지만 이상적인 공동체나 삶이 있을까.톰과 제리에겐 불행과 결핍이 없을까. 결국 희구도 행복도 모두 허상일지 모르겠다.




# 마지막 장면

메리는 또 행복한 가족의 즐거운 한 때를 '목격'한다. 그렇다. 그건 목격이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그녀와 그들사이에 존재한다. 그 벽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며 메리는 속으로 운다. 그건 체념일까 갈망일까. 애써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거나, 억지로 행복하게 만들어 위로하거나, 위악적으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응시한 마지막 장면은(10초정도의 시간동안 아무런 소리도 내지않고 그녀의 얼굴만을 응시한다.) 내가 본 영화중 최고의 마지막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