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라는 것이 본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이 요사하여서 언어로 표현 된 마음은 곧 그 언어 만으로 규정되어 버린다. 곧 언어란 사고를 공유 할 수 있게 하는
만큼 사고를 언어의 범위, 즉 공히 사고를 공유하는 만큼의 의미로 국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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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주체는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는 라깡의 말따위야 굳이 몰라도 인간은 언어 바깥에서 존재하지 못한다. 라깡은 언어 주체는 특정 기표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다. 이들 기표는 단추가 달린 쿠션의 손잡이(쁘엔 드 까삐똥)처럼 의미를 덩어리져 얽는다. 즉 어떤 문장의 끝에 도달했음을 알기전까지 그 문장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쁘엔 드 까삐똥이 없다면 문장은 끝없이 의미화 운동을 하겠지만, 있기 때문에 거기서 기표가 기표를 지칭하는 끝없는 과정은 멈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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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아닌 밤중에 봉창두드리는 얘기냐 하면,
표현 되기 전까지의 마음과 언어화 이후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말 이후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 할지는 문장이 끝날때까지 지켜보자는 얘기. 문장은 언젠가 반드시 끝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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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병에 걸린것처럼 책을 읽는다. 중간고사를 15분 앞둔 고등학생처럼 허겁지겁 우겨넣는다.
아무것도(어떠한 언어도) 모르는 것이 가장 완벽한 형태일테지만 설피 조금만 아는 것은 가장 공포스런 형태다.
결국 닥치는대로 배우고 읽고 익히는 수밖에.
허기. 알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차 있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알아야 살 수 있다는 허기.
배가 고픈 정준하가 우동 50그릇을 먹는 것처럼 몸으로 이것저것들을 우겨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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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병에 걸린것처럼 사람을 찾는다. 생이 15분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처럼 이 사람 저 사람을 찾는다.
결국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마치 지고의 진리인양 떠벌리고 다니지만 결국 사람은, 어쩌면 나는 관게 맺지 않고는 한 순간도 견딜수 없는 종족이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동안 나는 한순간도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허기. 혼자서 버티기에 세상은 외롭고 괴로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허기.
스타킹에 나온 강호동이 짜장면을 1분안에 먹어치우는 것처럼 누구와의 관계도 음미하지 못하고 그저 우겨넣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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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병에 걸린것처럼 음식을 먹는다. 진수성찬을 먹기위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황제처럼.
이건 '마치... 처럼'이 아니라 정말 병일지도 모르겠다. 비어있는 속을 음식으로라도 채우려는 망상증 같은거.
허기. 이건 정말 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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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는 금방 채울 수 있는 일이다. 위장이 비었으면 음식을 넣으면되고 머리가 비었으면 책을 읽으면 되고 마음이 비면 사랑을 하면된다. 다만 어제 배가 불러도 오늘은 다시 배가 고픈 것처럼 허기는 금박 쉬다시 나타나는데 문제가 있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맞다. 별 문제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헛소리 의미없는 푸념.
─ 내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한번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버지가 이미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김연수 - 청춘의 문장들>
아버지를 만났다. "쏘주 한 잔 사주세요" 유난스레 좋아하신다. 엄마 생일에도 결혼 기념일에도 야근에 술자리를 갖던 아버지는 날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에 무려 15분전부터 나와 날 기다리고 계셨다.(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는 차마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그냥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사실 정도만.)
권위를 치장하는 법과 무너져 내리는 법만을 오직 배운 이 사회의 아버지들처럼 우리 아버지 또한 굳은 얼굴과 사무적인 말투가 대단한 미덕인줄로 알고 있다. 그 권위주의와 행세주의가 싫었던 나는 곧잘 가시돋힌 말을 내뱉으며 우리 가족의 파행은 단지 아버지의 책임이라는 말로 나를 또 엄마를 위로하려했다. 잔이 두어순배 돌고 얼굴이 벌개진 아버지가 기분이 좋다고 말하며 웃어보일 때, 알아버렸다. '아. 위로받아야 할건 나뿐이 아니었구나.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구나.'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런 아버지의 모습들은 종종있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머릿속에 곧이 곧대로 박혀 오늘을 살아가는 근간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때쯤 아버지 회사 가족 야유회가 소요산 등산이었다. (세상에 가족 야유회가 등산이라니.) (아버지의 표현대로라면)근성없는 젊은 사원들이 등반을 포기하거나(전날의 숙취때문이었겠지) 중도 하산(애인이랑 다른 곳으로 샛겠지.)하는 와중에도 난 끝까지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거나 (10살 어린이에게 소요산은 마치 안나푸르나와 같았다. ㅡㅡ;;) 앞서간 일행에 서운해 할 때 아버지는 내 뒤에서(생각해보면 결코 나보다 앞서 걷지 않으셨다. 언제나 고개 돌리면 보일 곳, 등 뒤에 서계셨다) 말씀 하셨다. "천천히 가도 좋아. 끝까지 가자. 포기하지 않는다면 늦어도 괜찮아. 이 힘듦은 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야. 모두가 견뎌내고 있잖아." 정상에서 찍은 사진, 아직도 내 책상에 고이 간직한 그 사진에 아버지와 난 웃고 있다.
요몇년간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세상적 기준에서 보자면 아버지는 불륜을 저질러 가정을 파괴했고 그 여파로 엄마와 난 극심한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을 떠난 아버지는 날 만날때마다 무죄를 주장하듯이 엄마에게 비난을 퍼붓기 일쑤였고 어느새 머리가 굵어버린 난 비겁하고 치졸한 변명을 들을때마다 증오와 혐오를 키워갔다. 아버지에게 등록금이나 용돈을 받는걸 당연스레 여겼다. 그것이 이제와 남은 아버지의 마지막 책임이고 불행한 가정환경을 살고 있는 내가 보상받는 일이라 여겼다.
작년 여름,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동안 아버지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잠들지 못해 훤히 꿇린 휴게실 소파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아버지는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도 한마디 고맙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스스로 당연한 일이라고 합리화했다. 아버지이 죄책감의 발로일 뿐 부정같은 아름다운 낱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잔이 두어순배 더 돌고나자 아버지는 다시 엄마를 욕하고 내가 그동안 해왔던 운동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성씨집안 특유의 것인지, '난 아는데 너희는 몰라'신공을 발휘하시어 온 나라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사기꾼으로 만들어 버리셨고, 엄마를 천하에 다시없는 악녀로 만들었고, 당신을 가난때문에 하늘이 준 재능마저 묵혀버린 가련한 인생으로 포장하셨다. 전에 같았으면 당장 발끈하고 싸울 일.
하지만 오늘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아버지의 허세와 자기위안과 자기방어가 마치 '바둥거림'으로 보여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미 잃어벼렸을지 모를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모습에 조용히 화장실에 쪼그려 담배를 태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늙었다. 몇 해 안에 환갑이 찾아 올테고 그 때 금력도 권위도 잃을까 두려워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연신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더 잘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늘 미안할 뿐이라고 했다. 난 괜찮다고 했다. 낳아준것만으로도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사실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있는건 아니다. 누가 누구를 감히 이해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으랴. 여전히 아버지의 외도로 가정경제는 무너지고 있고, 엄마는 죽을만치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을것 같다. 적어도 아버지만은 죽어도 내 대중으로 인식하지 않겠다던 그 허망한 다짐을 모른 척 할 수 있을것 같다.
ps. 아버지는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내 블로그 주소를 물으셨다. 아무렇지 않게 알려드리려다가 이 포스팅을 보시게 될까 아직 알려드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적어도 나와 소통하려는 노력에 끊임이 없었다.
어줍지 않게, '삶은 본래 혼자야'.라는 거창하지도 않은 말을 거창하게 해버린 나는 돌아서는 순간부터 내내 후회다.
사실 친구에게 필요했던건 말 뿐인것도 알고 있는 '다독임'이었을거란걸 난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자면 그건 잘난 척에 지나지 않았다. 난 이미 그걸 알고 있어.
무협지를 읽다보면 천혜의 영약을 벅고도 무공을 잃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나오는데, 그건 영약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영약을 복용하다 폭발한 내공이 몸에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알아보는 일이란 쉽지 않지만, 무시해선 안될일이다.
내일은 사과해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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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히 알면서도 괜한자리에 찾아들어 몸도 마음도 지갑도 상처만 입고 돌아왔다. 바보같이.
당연한것을 받아내듯이 요구하는 그들과 자신들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는 그들의 태도에 질려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배기 모퉁이에서 왈칵 모든걸 쏟아버렸다.
난 외로움을 달래줄 무엇을 찾고 있었겠지만, 그들이 내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었다. 바보같이.
이런 주제에 누구에게 감히 충고질이야.
마지막 남은 정마저 이렇게 아프게 떼어야 하는 거라면 이제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고 그 정으로 살아가는 일따위 하고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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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은 용기다.
하지만 관계를 확실히 하지 않은 채 어영부영 하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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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예전엔 굉장히 자주였는데..ㅋ) 만나 한바탕 쏟아내고 또 주워오면 그걸로 또 한동안 살아간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이 있는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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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누구에게 위로가 되고 있다는 자기기만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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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잘 읽지 않는 신문 문화면에서 노브레인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이명박에게 홀랑 히트곡을 내어준 걔네랑 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은연 그래도 정이 가는 그이들이었는데,
구구절절한 변명에 그나마 남았던 마음까지 떠났다. 퉤퉤퉤. 이제 노브레인을 부러 다시 만날 일은 없을것 같다.
한예종 사태를 비롯하여 문화예술계에 좌파운운하는 몰상식한 말의 홍수가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난 사실 모든 예술인은 좌파여얀다고 생각한다. 좌파라는것이 가진것을 오직 긍정하는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의 창조에 몰두하는 쪽이라면 끊임업이 새로운 자기를 만들고 창조해야 하는 예술인이야 말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좌파다. 그의 지지정당이 무엇이든 맑스를 읽었든 안읽었든. 그냥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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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길래 노래를 흥얼거렸다. 비가오면 생각나는 그사람~~♪
비가와도 생각나는 것이 부침개말곤 딱히 없는 것은 좀 불행한 일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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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또 혹시 받은 상처에 무엇으로든 위로가 되고 싶다는 친구를 비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 상처 주지 않고 살 길은 없으며, 그 상처에 섣부른 치유를 들먹이며 덤벼들단 오히려 곪고썩어 더 아프게 되거나 혹은 앞으로 더 작은 상처 조차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만들게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모두를 사랑하여 모두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섣불리 다짐하던때가 떠올라 다시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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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직 몰라'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며 반응하곤 했었다. 도대체 무얼 얼마나 더 알아야 하는 건가요.
어느 날 마치 복수 하듯이 친구에게 '넌 아직 몰라'라고 쏘아붙였지만, 그날 밤에 다시 알았다. 난 아직 하나도 모르는구나. 내가 알게 된 걸 네가 똑같이 알 필요는 없는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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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알것 같아요.라고 노래부르는 장필순 언니님의 공연을 보고왔다. 제주도에서 손에 흙묻히며 사는 장필순 언니의 간만의 노래가 CCM이라 초큼 시껍했지만 그래도 장필순인데. 초원에서 손에 흙묻히며 노래만들고 노래부르고 사는 언니의 담담하지만 명쾌한 소리가 좋다. 그건 어쩌면 부러움. 아. 알 것 같다니. 하지만 이내 다시 의문. 이제서야 알것 같은건 어느 누구도 알 것 같다고 말하기엔 너무 모른다는 것인데. 나 또 여전히 아직도 모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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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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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순수하고 소중했던건 그때였다. 모두를 사랑하겠다며 나서던 때. 누구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건 순수하게 열정이고 선의이기도 했다. 동시에 어리석음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오늘 내 눈은 그때만큼 또렷하진 않다. 지금 아는걸 그때 알진 못했지만, 그때 가진걸 지금도 가졌냐고 물으면 글쎄. 알아서 얻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알아서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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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좋은 책 한권 읽어서 돈오하는 헛된 희망은 버렸지만, 죽을때까지 고민하고 궁금해하는 수밖엔 없다. 조금이라도 알려면. 삶의 지혜를 얻는 일은 지난하고 무던하다. 이제 알아버린건 그것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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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라는 건 지나고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말의 홍수는 흔적만 남긴다.
홍수가 두려웁다면 애초에 둑을 쌓아버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홍수로 갈아엎고 씻어내고 상처주지 못하면 새로움과 성장의 비옥도 있을 수 없을테다.
다시 원점.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다 자위하는건 고작해야 꼬리를 무는 말장난의 향연같은 것이다.
++ 쌍용에 결국 구사대가 투입됐다
서민정책을 운운하던 쥐새끼가 오뎅을 쳐 잡숫는 동안에도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앓고 있다.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블로그에 리본 달 자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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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정체구간인 한남대교부터 남산터널까지의 길에서 110번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서있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앉은 창가에선 학교 정문이 보였고 공교롭게도 그 안의 공사현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공교롭게도 한창 포크레인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잔인한 장면이다. 지지리 궁상인것 알고 있지만, 스무살이 온전히 보관된 공간을 잃는다는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술에 취해 널부러지던 학생회실도, 꽃놀이라며 앉아 놀던 봄날의 노천도, 그애에게 좋아한다 고백하던 도서관 광장도 사라지는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피식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리 그리운건 내가 지금 심히 외로워서인가. 그리운 것은 그깟 알량한 공간이 아니라 그 날의 설렘들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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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인턴은 생각보다 훨씬 널널할뿐더러 어려울것도 없다. 학교에서 하던걸 그대로 하는 듯하다. 유인물을 복사하고 우편물을 발송하고 선전전을 진행한다. 거창한걸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좀 더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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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서약을했다. 이내 썩어 문드러질 몸, 누구에게 다시 생명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간이며 폐에 쌓인 지방이니 니코틴이니 하는 것들을 좀 줄여두는게 좋을 것 같다. 정작 열었더니 다 썩어있으면 죽어서도 부끄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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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푹푹찌고 늘어지는 한낮에 음습하고 우울한 노래를 듣는다. MOT이나 이장혁, 앨리엇스미스같은. 땀이 비오듯이 나고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미는 기분. 이걸 지나면 무슨일이 있어도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 주사맞기 전에 맞는 볼기짝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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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역시 로큰롤. 마이앤트매리를 들으며 출근하고 문샤이너스를 들으며 일하고 눈뜨고코베인을들으며 퇴근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면 언제나 큼지막한 글씨로. 그래도 Let's Rock'n Ro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