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3. 06:02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군복을 벗고 찾아온 교정에는
막바지 진달래만큼이나 싱싱한 젊음들이 배타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네.
시험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언어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그때쯤 깨닫게 되지.
남몰래 도서관에서 시험지 채우는 연습을 하는 동안
세월은 시험지 채우기보다는 쉽게 흘러가지.
김영하 - 다시 은둔을 꿈꾸는 친구에게 (H의 결혼에 부쳐)
2.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좋다거나 아이큐가 높다는 얘기는 뇌세포의 개수가 절대적으로 많거나 뇌용량이 큰 것 보다는 '시냅스'의 문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냅스란 한 뉴런에서 다른 세포로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 지점을 뜻한다. 그러니까 뇌신경과 뇌신경사이의 전달통로.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이 연결통로가 다양할수록 머리가 좋다는 말일텐데, 그건 아마 사고의 유연함, 내지는 다각적 관찰, 혹은 이면을 볼 수 잇는 힘. 정도로 해석되겠다.
사람은 살면서 보통 (주입된 것이든 스스로 익숙해진 것이든) 자주 사용하는 사고체계, 그러니까 늘 사용하는 시냅스만을 사용하면서 나머지 것들은 퇴화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살던대로만, 편한대로만 살아서 우리는 조금씩 더 멍청해지고 있다는 이야기. 이게 과학적으로 맞는 것이든 아니든 그건 그 다음의 문제겠다.
3.
어쨌든 수다떨어서 밥먹고 살겠다고 나선 이상, "시험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언어를 상실"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사실 원고지 한 장, 어느 땐 (지금도) 이 포스팅 하나를 다 채우지 못해 끼적거리고 지우기를 수십번 반복하기 일쑤다.
4.
말을 앗아가는 것은 세상이나 사회.라기보다는 그것에 의해 빼앗기고 있다고 규정하고 단정하는 스스로인 게 더 정확하겠다. 나이드는 것은 세상을 조금 더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냉철하고 객관적이라는 것은 거기서 한발작 물러서는 것이라고, 한발짝 물러섰으니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 철이드는 것은 내 일이 아닌 일에 열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게 '쿨'하게 살아야만 견딜 수 있었을까. 혹은 '잉여'를 자처해야만 좀 덜 부끄러웠을까. 그렇게 어느새 사고는 단절되고 언어를 상실하고 시냅스가 끊어져 멍청해져서는. 인지부조화, 대가리를 짚더미에 쳐박고 내가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 세상도 나를 보지 않을거라 여기는. 닭들마냥.
5.
저 대자보가 회자되고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저 자리엔 비슷한 내용의 대자보들이 숱하게 붙었었을테고, 저 대자보를 쓴 친구도 이미(아마?) 저 자리에다 여러차례 무언가를 호소하고 바랐을거다. 다만 그걸 보지 '않은' 것은. 쿨하게 살아야만 견딜 수 있었고 잉여를 자처해야만 좀 덜 부끄러웠을 사람들, 나나 당신. 그렇게 할 말도, 들을 말도 조금식 빼앗겨버린 사람들.
(어쩌면 저 대자보 사진 뒤에 보이는 종이들이 어느 토익학원이나 유학원, 혹은 대기업 공모전 포스터일 것이란 짐작이 어렵지 않다.)
6.
새벽에 괜히 센치해져선 이런 되도않는 중언부언을 끼적이고 있지만 이건 올곧이 부끄러움이고 그래서 자기위안이다. 다만.
비록 어느 순간 행동하고 나서고 또 깨지고 쥐어박히고 하지는 못해도. 말만이라도 그것만이라도. 말만은 잃지 말아야지. 늘상 들었던 말이 "주댕이만 살아가지고"였으니 그나마 산 주댕이라도 고이고이 간직하고 살아야지. 그래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시험지를 채우거나 이렇게 누구 하나 읽지도 않을 잡설을 끼적이는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지.
7.
여담이지만, 대학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던 대자보도 그렇고 저 학교는 대자보 참 잘 쓰네.ㅋ
내가 쓴 (악필)대자보를 보고 굳이 뜯어와서 "학우들 우롱하지 말라"던 그 잔인한 기억이 문득 새록새록하구만. 대자보 꿈나무를 짓밟았어. 엉엉엉
2013. 6. 4. 00:30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자칭 지식인 변 모가 정대세를 공작원이라 부르며 쫓아내야 한다고 지껄이던 날, 피파는 인종차별 금지대책 테스크포스를 만들었다. AC밀란의 보아텡이 관중들로 부터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은 탓이다.
당시 경기에서 보아텡은 자신을 향한 인종차별 발언에 분노했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나갔다. 심판도 경기를 중단했다.
피파는 즉각 축구계에서 인종차별적 행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보다 며칠 앞서선 현역 NBA선수로는 처음으로 제이슨 콜린스가 커밍아웃을 했다. 새로운 팀과 계약을 준비하는 예민한 시기였다. 현재 NBA 최고의 선수인 코비브라이언트는 제이슨의 용기를 지지하고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클린턴, 오바마 두 전현직 대통령도 그의 용기에 지지의 뜻을 보냈다. 전설의 선수인 매직존슨과 그의 아들도. NFL의 누구는 제이슨을 비난했다가 사람들의 뭇매에 곧바로 사과를 해야했다.
스포츠의 가치는 우정과 협력, 상생, 상호발전에 있다. 본인은 바라지 않는다지만 정대세는 이념이나 정치색 같은 것 없이 그저 그라운드를 뛰고 골을 넣고 함께 환호하는 즐거움으로 서로가 관계맺고 우정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렇다면 기분좋은 땀내가 나는 그라운드에 잠입해 똥내를 풍기는 공작원이 오히려 누구인지는 명확하다.
덧. 정대세의 소속팀은 삼성. 그가 JTBC를 종북좌파 방송이라 말한 것처럼 삼성 역시 종북 기업이라 비판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덧2. 정대세가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하는 까닭은 그가 자이니치, 즉 재일동포기 때문이다. 남한정부가 재일동포들을 어떻게 외면했는지, 많은 수의 재일동포들이 어째서 북조선을 자신들의 조국으로 여기게 됐는지는 또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있지만, 다큐 '우리학교'를 보면 더 좋겠다.
덧3. 일전에 얻어들은 성남일화의 황기청년단 이야기를 종종 살펴본다. 이 친구들, 근래부터 80년 5월을 기억하자며 응원 시작 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다고. 좋다좋아. 만일 여기에도 정치색을 운운한다면 정말로 공작 해버리겠어.더 보기
2012. 10. 5. 00:39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도대체 이 난데없는 무료공연의 의미는 뭐고 이 신드롬은 뭐냐.
힘겹게 오른 버스에서 들린 라디오는 오늘 '싸이특집'이란다. 인터넷 뉴스며 SNS며 온통 싸이 이야기.
심지어 '국가대표 가수'로서 싸이에게 주어진 막중한 역할을 엄중히 요구하는 글도 봤다. 미쳐돌아가고 있는거지.
7
삼성, 월드컵, 올림픽, 싸이, 디워, 황우석 등등등.
동원된 싸구려 국가 이데올로기에 침식당하는 것은 당신의 삶이고 노동이다.
8
내가 버스 우회때문에 드립다 걸은게 억울해서 이렇게 툴툴거리는게 아니다. 진심이다.
(안내도 없어서 버스 진행 역방향으로 한시간을 걸었다. 사실 엄청 억울하고 짜증난다.)
9
그래도 싸이가 계속계속 잘돼서 빌보드 석권도 하고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 진심이 아니므니다.
10
싸이가 별로가 되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는 트윗을 하나 봤는데, 거기서 언급하는 예시가 김장훈이더라.
아 속상해서 정말.
덧붙이는.
- 공연이 끝나고 수만의 인파가 우르르 밀려나가면서 일대는 아비규환이었단다.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은 피케팅을 하다말고 메가폰을 잡고 장내 질서 정리를 했다고. "밀지말고 천천히, 빨리가면 위험합니다"
- 인파가 빠져나가자 남은건 쓰레기더미, 구멍나고 찢어진 분향소 천막 비닐, 깨져버린 화분들, 박살난 어쩌다 카페.
조합원들은 그저 청소하고 천막을 수리하고 다시 꽃을 심고. 어느 쪽이 더 자랑스러운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다.
- 이 와중에 공연을 보러온 시민들이 많이 서명에 동참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 그 힘이 무엇보다 강해져 마침내는.
2012. 7. 24. 15:59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2002년에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가 우리동네에 유세를 왔을 때 난 맨 앞에 앉아있었다. 거기서 그는 "반미면 어떻고 친북이면 어떻냐 노동자 농민, 서민들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농민의 아들이다"라는 말도.
어린 나이였지만 그 말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난 희망돼지도 보냈고, 지지의 편지도 썼고, 노사모도 가입했다.
2.
다음 해, 수시시험을 보려고 갔던 어느대학에서 칸쿤에서 돌아가신 이경해 열사의 분향소를 봤다.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는 '농민의 삶'을 위해서 목숨을 끊어야 했다.
3.
대학 새내기 시절에 했던 세미나 중 가장 격렬했던 토론은 이라크 파병에 관한 토론이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남의나라 침략전쟁에 군대를 파병했고, 부안에 핵폐기장을 지으려고 했다. 부평에서, 포항에서, 여의도에서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죽어갔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던 이가 대통령인 정부에서 노동자와 농민을 차례로 죽였다. MB정권을 살인정권이라 부르지만, 사실 노무현 정권에 죽은 노동자가 훨씬 많다. 노동자 농민이 잘사는 세상을 약속했던 그는 어느날 "더이상 죽음으로 항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얼마전부터 지금까지 떠들썩했던 한-미 FTA도 노무현의 작품이다. 4대 선결조건에 스크린쿼터가 포함됐을 때 "영화인 여러분 자신없습니까?"라고 말했었던가.
4.
그리고 그는 대추리에 군대를 파병했다. 대추리에 모여있던 주민들과 신부님들과 평화활동가들과 농민들과 학생들은 '적군'이 됐다. 전장에서 적군을 포박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포박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도해야했다. 그 날 여러사람이 광주를 떠올렸다.
5.
노무현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희망돼지를 돌려달라고. 당신에게 걸었던게 희망이 아니었음을 알았다고.
6.
대학도 나오지 않은 시골 촌부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조금은 평등해질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대기업 사장 출신의 경제인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가 나아질거라고 생각했던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7.
청렴하고 깨끗해 '보이는' 기업인이 대통령이 되거나 '가장 훌륭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대통령'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가 대통령이 된다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거나 '변절한 노동운동가'가 대통령이 된다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다.
8.
주체의 문제다. 더 행복하고 싶고 '잘' 살고 싶다고 여기는 주체 개개인의 문제다. 모든 이가 정치주체가 되고 경제주체가 돼야하는 일이다. 대통령 한 명 잘 뽑아서 세상이 나아질거라는 믿음은 어느 으슥한 골짜기에서 무림기서를 얻어 천하제일 내공의 검객이 되겠다는 심보와 다르지 않다. 사실 이건 그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9.
잘되도 니 탓, 안되도 니 탓이라는 태도는 아주 편하지만 비겁하다. 민주주의란 원래 귀찮고 어렵고 성가신 일이다. 엄청 훌륭한 제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어쩌면 가장 태평성대를 이룰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하겠다고 그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면, 그 민주주의 하겠다고 이토록 치열하게 떠드는 것이라면, 그 성가심과 귀찮음 정도는 감내해야한다.
10.
그리고 공부하고 읽고 생각해야한다.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너는 그러고 있냐.란 비난은 듣지 않는걸로.ㅋ) 보다 실체에 가까운, 보다 정의에 가까운, 보다 행복에 가까운 선택을 위해서는 말이다. 여기서 선택은 투표, 선거에만 국한하는 말이 아니다. 선거는 어디까지나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
11.
여튼 쓸데없고 안어울리게 긴 글의 요지는 '안철수의 생각' 살 돈 있으면 참세상을 후원하라는 것 입니다. 아니면 여기저기 엄청 많은 장투사업장에 연대기금을, 그도 아니라면 희망식당에서 나한테 밥 사달라는, 30일부터 시작하는 제주 평화 대행진에 단돈 2만원 내고 참가하라는.
덧,
이걸 페이스북에 먼저 올렸었는데 선배가 댓글로 좋은 구호를 하나 달아줬다.
"우리의 지도자를 바꾸지 말고 우리의 삶을 바꾸자"
2012. 7. 21. 14:26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어제 2년 반만에 용산참사 촛불집회가 열렸다.
남일당은 폐허로 변했고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시 주차난 해소를 위해 주차장이 그토록 급히 필요해서 6명이나 사람을 죽였나보다.
2.
두개의 문은 5만 관객을 넘겼다.
개봉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영화에 5만의 관객이 몰린건 무엇보다 영화가 갖는 힘이겠지만 타이밍의 적절함과 배급위원회의 노력도 빼 놓을 수 없겠다.
정동영에 문성근 같은 정치인들이 대선정국에 맞물려 영화관을 찾아주고
현병철같은 인사도 비록 쫓겨나긴 했지만 영화관을 찾았다. 심지어는 경찰들도 단체관람을 했다고. 영화가 가진 힘이다.
이 관객 증가추세라면 10만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거기에 공동체 상영이나 상영관 추가확보가 더 진행된다면 어쩌면 더. 더 많은 사람들이 '돈내고' '시간들여' '마음아파'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건 용산참사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보다 '좋은영화'를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건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필름이다.
3.
어제 촛불문화제에 강허달림 언니님이 왔다.
(팬심돋게) 내가 제일 먼저 알아보고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가수가 아니라 개인 참가한 시민으로 온 그녀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팬심을 제거해서 봐도 그 태도는 정중했다. 인터뷰 신청한 내가 무례해보일만큼)
그녀 2집의 '멈춰버린 세상'은 용산참사를 위무하는 노래다.
++
가느다란 길 같이 걸었던 길
그 길에 내몰린 사람들
벌겋게 달아오른 불꽃에 멈춰버린 세상
내 모든 걸 주고도 남아 바뀔 수 만 있다면
나 아닌 누구의 삶이 유지될 수 있다면야
같은 공간, 같은 눈빛, 같은 웃음소리 나누던
촉촉이 젖은 길 흘린 눈물만큼 비린세상
기자들이며 팬들을 우르르 몰고와서 사진 한 방 찍고 떠나는 유명한 사람들에 비하면
그녀는 확실히 덜 유명하지만 집회의 맨 뒷자리에서 끝까지 집회를 바라보던 그 마음만은 진짜인게 보인다.
늘 얘기하지만 노래는 딱 그만큼만이다. 살아가는만큼 살아본만큼 바라보는만큼.
그녀의 노래가 사랑스러운 이유. 라고하면 너무 팬심돋는 맨트인걸까.ㅋ
4.
강허달림 얘기가 나와서.
그녀는 내가 아직도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는 '레드마리아'의 OST도 불렀다.
(본인은 페미니스트 가수라고 불리거나 규정되는 것을 마뜩치 않아하는 것 같아 그렇게 부를 수는 없지만)
그녀는 경직된 규정, 소외, 허한 마음에 대한 위로.(를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텐데)를 노래한다.
언제가도 얘기했지만 그녀가 부른 '독백'을 듣고서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었다. 엉엉엉
여하튼 인터뷰를 거절하고 거절받은 그녀와 나는 잠시잠깐의 어색함을 겪어야 했는데
내가 바로 팬심돋게 싸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일전에 그녀가 내 블로그에 방문해서 내 앨범평을 보고선 내가 보러간 공연에서 앨범평을 얘기했던 에피소드도. 그렇게 팬 인증을 하고서야 명함을 받아주셨. 다음에 또 어딘가에서 만나면 기어이 인터뷰 해주셨으면. 이번에도 자기이름 검색하다 또 이 글을 봐주셨으면.ㅋ
5.
이것도 언젠가 얘기했던 것 같은에 난 모든 예술가는 좌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좌파를 있는 그대로만을 긍정하지 않고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상상하고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예술가는 가장 근원적인 좌파일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삶이 늘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일이라면 살아가는 모든 이가.
그래서 모든 삶이 곧 예술이라는 거잖아.
7.
김석기를 비롯한 이들에게 고발운동이 시작됐다. 이른바 '나는 고발한다' 에밀졸라의 유명한 경구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역사의 공범과 역사의 목격자. 두 개의 문이 다시 앞에 있다.
경찰특공대에게 두 개의 문은 혼란이었지만 우리에게 두 개의 문은 용기다. 진실이고 선언이고 다짐이다.
8.
남일당이 있던 곳은 공터로 변해 주차장으로 쓰인다.
그리고 그 흉물스러운 주차장 바리케이트 한 귀퉁이에도 꽃이 피었더라.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 다시 피는 꽃.
2012. 4. 12. 06:42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괜히 동해서 선거평가.
1. 설레발치던 야권연대는 참패. 정권심판은커녕 지들이 심판당했.. 결국 정책적 차별성을 보여주지도, 인적 쇄신을 해내지도 못한 채 무조건 '우리도 나쁘지만 쟤들이 엄청나빠' 프레임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증명 한 선거. 대선때 뭐라도 하고 싶다면 분노나 원망보다 일단 반성을. 하지만 그거 절대 못할거라는 걸 알기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이대로면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맞이 할 수도 있을 듯?ㅋ
2. 통합진보당은 민노당 시절부터 지켜오던 동남권 라인을 상실. 울산에서도 창원에서도 거제에서도. 남은건 관악, 노원 같은 민주당이 던져준 떡밥. 이제 확실한 민주당 2중대로 자리잡았다. 예전엔 노동당 2중대, 지금은 민주당 2중대. 2중대 밖에 할게없는 당인가보다. 이로서 한국엔 노동자 정당이 사라졌다.
3. 진보정당의 개박살. 진보신당은 1%, 녹색당은 0.4% 정확히 92년으로 회귀했다. 백기완선생이 92년 대선에서 1.5%받았다고 했었나.
4. 하지만 괜찮다. 진보신당은 21만명이 넘는 이들에게, 녹색당도 10만에 가까운 이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 철폐와 탈핵과 생태주의와 인간적 삶의 복원에 동의해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 한번이라도 쉬운적 있었나. 김순자 아줌마가 더욱 힘을 불끈내주길, 김종철 선생님이 더 중요한 얘기를 좀만 더 쉽게 써주시길, 언젠간 그 문건에서나 보던 적녹동맹이 이루어지길 기대할 힘이 생겼다.
5. 오타까지 배낀 문대성과, 제수를 성폭행하려던 개새끼까지 당선됐다. 뭐 그렇다는거다. 이 정도로는 멘붕따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을 6명이나 죽인 김석기가 출마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저정도 쯤이야 뭐.
6. 그래도 이게 사는건가
7. 선거운동한답시고 쌍차 분향소에 조문도 안간 자칭 진보정당이지만, 한일병원 노조와 쌍차, 홍대, 재능, 강정, KEC 그밖의 모든 폭력에 저항하고 있는 곳에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
8. 정진'후'는 어떻게든 당선이 되는구나. 정진'우'를 바랐지만.
9. 난 처음으로 대한민국 0.5%가 됐다. 뭐 나름 뿌듯해.
10. 자세한건 내일 기사에서....물론 선배들이 쓸거다.ㅋ
11. 이 사진은 마음이 짠하네.
2012. 4. 10. 20:47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전봇대 뒤에 숨어있던 남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여성을 납치한다. 남자는 납치한 여성을 강간하고 무참히 살해한다. 피해 여성은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경찰은 애꿎은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수사 책임자가 옷을 벗고 물러나지만 여파는 잦아들지 않는다. 이 와중에도 경찰은 사건의 본질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사건은 오리무중이고 진짜 범인은 음흉하게 다음 범죄를 기획한다.
지난 1일 벌어진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줄거리다. 기시감이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와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은 놀랄만치 닮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건의 배후엔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경찰’이고 조금 나아가면 ‘정권’이고 어쩌면 ‘국가’ 혹은 ‘체제’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장면을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아”
영화 ‘살인의 추억’의 주인공들은 끈질긴 수사 끝에 범인이 등장하는 시점을 알아낸다. 비 오는 날, 라디오에서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흘러나오면 범인은 범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마침내 범인이 등장 할 시점을 포착하지만 결국 희생자가 발생한다. 촘촘한 포위망을 구축해야 할 경찰력이 시위진압을 위해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살인의 추억’의 배경이 됐던 5공 말기, 경찰은 시골 아낙이나 지켜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정권을 위협하는 이들을 고문해야 했고(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가끔씩은 성고문도 해야 했고(권인숙 성고문 사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러내기 위해 철거민(상계동 철거민 탄압)들을 쫓아내야 했다.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의 경찰들도 바빴다. 그들은 꼼꼼히 라디오를 챙겨들을 필요도 없이 피해자가 위치정보를 매우 상세하게 알려줬고, 7분이 넘는 시간동안 피해자와 전화가 연결돼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전해 듣고 있었지만 단순한 “부부싸움 같았다”던 담당 경찰관은 상황을 수수방관했고, “단순 성폭력 사건인 줄 알았다”던 형사과장은 다음날 사건이 다 종결된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하다. 이들은 바다 건너 제주의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진압’해야 했고,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 최루액과 테이저건을 쏴야하는 데다가, 크레인을 점거한 노동자와 그녀를 돕겠다고 몰려든 ‘외부세력’들을 쫓아내야 했다. ‘부부싸움’이거나 ‘단순 성폭력’일지도 모르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엔 이들에겐 할 일이 너무 많았다. ( 서천호 경기경찰청장은 강정에 수 백 명의 경찰력을 투입했고, 과잉진압 논란이 있던 ‘희망버스’ 당시 부산경찰청장 이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평택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당시 경기경찰청장이었고, 진압의 공을 인정받아 서울 경찰청을 거쳐 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영화가 ‘동네 바보 형’ 한 명을 잡아다가 두들겨 패서 거짓 증언을 만들어내는 모습과 신고전화 녹취시간과 경찰출동 여부 등 금방 드러날 거짓말로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모습도 닮아있다. 이들도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 하지만, 이들의 ‘사건해결’은 일반적인 의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에겐 ‘사건이 불거지지 않는 것’이 ‘해결’이지 않을까. 그들이 지키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정권’, ‘국가’, ‘체제’같은 것들 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이건 ‘기시감’이라는 단순한 현상으로 설명 할 수 없다. “이 장면을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아”라는 신기한 감정으로 치부하기에 이 반복은 너무 구조적이고 치밀하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는가
눈 밖에 난 인물이라면 그가 연인의 딸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는 대화까지도 엿듣는 국가다. 공무원이고 노조고, 정치인이고, 언론사고 ‘닥치고 사찰’하는 국가다(굳이 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정권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맨 앞장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충성’을 맹세시키던 국가다.
세금을 내고, 법규를 준수하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것은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 곳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을 국가가 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결과 오늘 날 돌아온 건 치안의 바깥으로 내던져지는 결과다. 어느 경우엔 몸과 마음을 다 바친 국가에게 사생활이 파헤쳐지거나 직접 폭력을 당하기도 한다. 교과서는 분명히 우리의 안전한 삶과 행복을 위해서 국가가 존재한다고 가르쳤는데, 실상은 그 반대다. ‘국가’(로 대변되는 그 무엇)의 존속과 안위를 위해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경찰과 군대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따금 그들은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는 것일까.
‘살인의 추억’의 시대와 ‘수원 성폭행 살인사건’의 시대 사이엔 30년에 가까운 시간이란 간극이 있지만, 여전히 동시대라 불러야 한다. 사람보다 국가가 우선시 되거나 국가를 위해 사람이 무시되는 시대. 공권력의 의미가 ‘공익’을 위한 권력보단 ‘공인’을 위한 권력으로 이해되는 시대.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이 지겨운 반복의 주범은 사실 우리이기도 하다. 몰이해 혹은 무지는 망각이나 단념보다 더욱 큰 죄악이다. 무엇이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왜 화를 내야하는지 알지 못하는 일.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는 말의 기저엔 부부간의 폭력은 개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일한 의식이 깔려있다. “단순 성폭행인줄 알았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 성폭행 사건은 긴급을 요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을까.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경찰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무책임한 사람들의 반응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고도 말하고 있다. 10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유가족은 “그러게 왜 밤중에 돌아다니냐는 악성댓글이 달리고, 언론들은 멋대로 사건을 부풀린 자극적 기사를 내고 있다”고 말하며 “이런 일들이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일에 무던해질 대로 무던해진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도 무던해졌는지 모르겠다. (이 유가족이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도 애초에 프로그램 공식 웹사이트에 그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그가 익명을 요구하자 부랴부랴 실명을 삭제했다)
감수성의 문제다. 자신과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고통의 정도를 인지하는 능력의 문제다. 부족한 감수성은 타인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인지하지 못하게끔 한다. 국가가 살인을 방관해도, 부부간의 폭력을 일상으로 치부해도, 성범죄의 책임을 오직 피해자에게 전가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시대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문제의식조차 없는데 어떻게 나아갈까. 그저 지긋지긋한 반복뿐이다.
살인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 “미치도록 잡고 싶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살인의 추억’ 메인포스터가 하는 말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잡을 수 없었던, 오늘날 수원에서 또 한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경찰이 수사보다 축소를, 사과보단 은폐를 선택하게 했던 ‘그 것’. 그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지만 ‘그 것’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어딘가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다.
어쩌면 ‘그 것’은 가까이에 있을지 모른다. 부부간의 폭력은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머리에, 성폭력의 원인은 피해 여성에게 있다고 말하는 당신의 혀 끝에, 피해자의 처신을 운운하는 댓글을 달고 있는 당신의 손 끝에.
추억은 과거에 머물러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때 추억이 된다. 반복되는 것은 추억이 아닌 현실이다. 우리가 전부 달려들어 죽인 그녀. 우리에게 이 살인만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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