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후기


1. 
신지예 후보와 녹색당에 표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사실 다른 선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공보물을 읽고 인터넷에 후보자 이름을 검색해보는 정도. 민주당에 단 한표도 주지 않는 선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간 했으나 별로 대단한 다짐은 아니었다.


1-1.
우리동네에선 지지정당인 녹색당을 찍을 수 있는 표가 단 2표 뿐이다. 주요 약력이 노무현과 문재인, 박원순인 사람들은 주로 '청년'이나 '서민' 같은 표어을 썼지만 그들의 정책에는 개발과 투기뿐이다. 인지부조화.


2. 
민주당을 찍지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무엇보다 궁중족발 때문이다. 궁중족발은 서울시장 후보들의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 4일 새벽에 지게차를 동원한 철거용역들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과저에서 활동가들은 부상을 입었다. 궁중족발 사장 내외는 갈 곳을 잃었다. 삶을 잃은 거다.


이 상황에 궁중족발로 향한 서울시장 후보는 신지예 뿐이었다. 김문수는 그때도 서울 곳곳을 재개발 하겠다는 정신나간 소리나 하고 있었다. 민주당과 박원순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안철수는 뭐. 굳이.

늘 그렇듯이 민주당에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이 주댕이만 그럴싸하게 나불거리기 때문이다. 사기를 치기 때문이다. 김문수는 차라리 그런 사기는 안치잖아. 그냥 순수하게 개새끼지.


박원순은 지난 해 궁중족발 사장님이 철거용역에 의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나자, "그런 사태가 다시는 있어선 안된다"며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같은 걸 만들었다. 도대체 그 인권지킴이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나. 지게차가 난입하고 활동가들이 다치고 쓰러질 때, 그걸 방조하던 경찰과 공무원들은 그 인권지킴이들과 일면식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한 건가? 하다못해 박원순은 후보이면서 왜 와서 단 한마디라도 그들을 위로하지 못했나? 그는 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현직 서울시장을 또 시장으로 뽑아야 할 이유가 뭔가. 옥바라지 골목에서도 그랬고 장위동에서도 그랬다. 그 번지르르하고 기름기 낀 말 말고 정말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


2-1.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부동산 대책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가장 화가 났던 건 TV에 나온 유시민이 "젠트리피케이션은 답이 없다. 어쩔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봤을 때다. 개새끼.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당시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던 주택임대차 보호법과 상가임대차 보호법을 "시정친화적이지 않은 정책"이라며 반대했다. 그 새끼는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없애야 집주인과 건물주들이 임대 사업에 매력을 느껴 공급이 활발해지면서 시장이 호조를 띌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이 꼴이다.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 관계에서 임대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나 다름없다. 그래 놓고선 이제와서 한다는 말들이란 게 건물주들이 양심적이길 바라는 것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느니. 시장이라는 자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 당의 젊은 정치인들은 개발, 뉴타운, 뉴딜 같은 말을 정책 구호의 가운데 자리에 놓고 있다.찍어주고 싶겠나. 차라리 자유당애들은 그런 눈에 빤한 거짓부렁은 안한다니까. 그러니 문빠라면 남경필을 찍으세요... 으응??


3.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민중당의 선거 펼침막이 붙어있다. "자유한국당에 단 한석도 주지 맙시다". 얼마전에 화제가 됐던 부산지역 민중당 후보의 영상에는 자유한국당사 앞에 압정을 뿌리는 퍼포먼스가 담겨있었다. 뭐하는 짓인가. 정당의 선거운동이 자기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정당을 파괴하는 것이 목표라는 건 참 치졸하고 지질하다.


십분 이해해서 반민주 반통일 세력인 자유한국당이 남한사회의 주요 모순이라고 치더라도, 그 앞에 압정을 뿌리는 식의 행동이 어떤 정치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나. 그게 선거국면의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투쟁인가. 어린애 장난같은 퍼포먼스로 얻을 수 있는 건 대중의 지지와 운동의 성과가 아니라 한순간의 웃음뿐이다. 순간의 유쾌함과 성과를 혼동해선 안된다. 심지어 난 그게 유쾌하거나 웃기지도 않았다. 적에게도 예의라는 것을 보일 필요는 있다. 천박한 싸움으로는 귀한 승리를 만들지 못한다.


더욱이 민중당의 당대변인과 후원회 사무국장이라는 이들이 매일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에서 이 사건을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하면서 "댓글에서 이를 비판하는 내용들은 다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는 놀랍기까지 했다. 지독할 정도의 자기완결성. "우리가 틀렸다"거나 "실수였다, 사려깊지 못했다"는 말은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다. 정당이라면, 운동하는 진보정당이라면 더더욱.


찾아보니 대부분의 민중당 후보들이 자유한국당에 의석을 주지 말자는 구호를 함께 쓰고 있었다. 중앙당 차원의 결정이었겠고, 지금 민중당 중앙이 어떤 노선으로 가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존재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아선 안된다. 존재의 의미는 자기 스스로 자기 안에서 찾는 것. 이거 그쪽에 있는 선배들이 옛날 고리쩍에 써놨던 문건에도 있는 말이다.


4.
이번 선거 최고의 장면은 신지예와 고은영이었다. 오늘 당장 녹색당의 영향은 미비할 것이고, 어쩌면 앞으로 수십년간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페미니즘은 박해받을 것이고 에콜로지는 멸시와 천시, 괄시, 심지어 등한시 당할 것이지만 그런 건 원래 오래도록 하는 일이다. 난 녹색당의 모든 정책에 동의하지 않고 정치전력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응원하고 비판할 것이다. 그런 건 원래 오래도록 하는 일이다. 싸우고 삐지고 그래도 또 합의하고 논의하며 쟁명하고.


가끔 녹색당 강령을 읽는다. 마음을 빨래하는 기분으로.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을 싹틔워 인류가 지구별의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초록빛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며,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우리는 지구별의 생명을 지키는 지구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등대이며, 녹색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함께, 공기의 순환이나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생명의 고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신지예와 고은영을 비롯한 모든 녹색당 후보들의 선전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