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 몇편

1. 아수라


20년 동안 본 정우성 중 가장 안멋있음.
멋진 배우들로 멋진 장면을 만든다고 멋진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니다.
영화는 현실을 짚고 딛고 지적하지만 늘 그 너머의 것을 봐야한다.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으로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는 척 가장하는 건 비윤리적이다.
사실 이 영화가 현실의 통증을 정말로 보려했는지도 알 수 없다.
주지훈이 수훈갑. 하지만 이번에도 망했어요. 다섯손가락 같은 거나 찍더니.
잘나가는 무비스타로 언제쯤 돌아올 겁니까. 엉엉엉.


2. 고산자


강우석의 악덕은 크게 두 가지다. (잘게 쪼개면 더 많다는 말.)
하나는 영화를 겁내 못만든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러면서 영화를 계속 만든다는 거다.
다른 작가와 감독에게 갔으면 더 좋은 영화가 됐을 소재와 배우들을 가져다가 엉망진창 지랄염병을 만들어 놓는다. 지난 번에 '전설의 주먹'이 재미 없으면 다시는 영화를 안만든다기에 쌩돈 내고 그 영화라 부르기에 민망한 두 시간짜리 동영상을 다 봤는데. 그거 보고 이제 강우석은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안심했는데.

암튼 이번에도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라는 꽤 괜찮아보이는 소재를 들고선 영화라 부르기에 민망한 두시간짜리 동영상을 만들었다. 차승원이 이렇게까지 지루해보일 줄이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으니 그냥 탐관오리와 왜적들만 들들 볶아서는.. 감독의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신 거라고 봅니다 전.

눈에 띄는 건 전국팔도 경치와 남지현. 한국에는 가볼 땅이 아직도 저렇게 많다. 해외여행은 당분간 포기. 내 우산도를 꼭 가보아야겠소. 남지현은 또래의 배우들, 그러니까 심은경이나 박은빈에 비해 성장이 좀 더딘 편인 것 같. 그래도 이 영화에서 신동미와 함께 가장 영리하게 연기하고 있는 배우. 아재들보다 낫다.


3. 그림자들의 섬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

노동은 한 번도 빛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보다는 노동자들이 빛의 구역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배를 만들었고 그 배를 팔아서 이 나라는 돈을 벌었지만 정작 배를 만든 사람들은 그 배의 거대한 그림자 안에만 있었다.

노동운동의 이미지는 늘 그랬다. 피, 붉은 머리띠, 눈물, 억울함, 결연한 의지, 강고한 투쟁, 죽음, 죽음. 하지만 노동자는 사실 일하고 월급받아 밥을 먹고, 삶을 지탱하고 성취를 이루고 가끔 좌절해도 다시 살아남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자체로 삶에 빛을 받는 사람들이고. 삶의 주체여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김주익이나 곽재규 최강서, 김진숙.

'사람'에 대한 조명이라는 점에서 인터뷰가 끌고가는 서사의 방식이 매우 적절했다. 굳이 분노하게 하려는 프로파간다가 아니어서 좋았던 건 그들이 일상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모두의 일상이고 사람은 모두 노동자라는 이 단순한 사실이, 그림자의 섬에 갇혀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려는 당연한 노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