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18. 03:14 당신의 노래에 관한 소묘
언젠가 학생회실에서 들국화의 노래를 듣고 있을 때, 친구가 말했다. "역시 옛날 가수, 옛날 노래가 좋아"
우리세대에게 들국화는 옛날 가수, 옛날 노래였다. 우리는 들국화가 팀을 결성한 이후에 태어났고, 들국화가 해체한 이후에나 음반가게를 기웃거릴만큼 머리가 커졌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위대한 노래라는 것은 그 노래를 따라부르는 우리세대의 가수들이 한 말로 이해했다. 들국화가 위대한 밴드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100대 명반 1위에 들국화의 첫번째 앨범이 이견없이 올라가는 것을보면서도 그랬다. "역시 들국화는 위대한 밴드였나보군"
전인권 아저씨에 대한 인상은 더했다. 사자머리 산발한 약쟁이. 어느 결의 겉멋이었을까, 다른 이유였을까 난 또래 친구들보다는 그이를 더 좋아했지만, 그 호감이 진짜 위대한 보컬리스트로서 그를 사랑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사실 난 전인권의 라이브 무대를 제대로 본 적도 딱히 없었다.
(2003년 즈음 나온 인권 아저씨의 솔로앨범으로 그에 대한 사랑이 얼마간 커지긴 했지만) '들국화'를 처음으로 본 건 지난 여름 제주도였다. 강정평화대행진에 노래를 부르러 온 들국화, 그리고 전인권이 "The road is long~"하고 노래를 시작한 순간 들국화에 대한 다소 모호하고 다소는 티미했던 애정은 진짜가 됐다. 써놓고 보니 정말로 이렇게 유치한 표현이 없지만, 정말 그랬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마치 노래라는 것을 처음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몇 달이 지난 쌈싸페에서는 더 했다. 그렇게 줄줄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부른 공연이 있었나 싶었다. 과거에 젠체하느라 그것만이 내세상이이나 걱정말아요 그대 같은 노래들로 이런 저런 말들을 지껄였던 일들이 순간 부끄러웠다. 어느 순간, 들국화는 내게도 '옛날'이 아니게됐다.
# 따라가지 않고 '지나'가는
들국화는 신곡을 불렀다. 아직 앨범은 나오지 않았고 편곡 작업은 조금 남았겠지만.
그것만이 내세상이나 제발, 가장 좋아하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연주하는 들국화는 참말로 멋졌지만 이 날의 백미는 역시 신곡이었다.
멜로디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아마 미련하고 둔한 내 귀의 문제일테고.
다만 아릿하게 계속 남는건 그 노래의 노랫말,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던 아저씨들의 그 표정.
앞서간 이의 발길, 하늘의 별 빛. 을 '지나서'계속 걷겠다는.
그동안 잠자던 "노래야 깨어나라"는.
앞선이의 발길과 하늘의 지표를 따라 걷지 않고 그것마저 지나 걸어야 새벽이 다시 밝을 것이란 그 말이 어쩐지 그렇게 감격스럽고 고마워서. 아니 그보단 따라 걷는 것보단 당연히 지나 걷겠다는 그 표정이. 그렇게 노래든 별이든 꿈이든 찾아서 계속계속 꾸역꾸역. 그럼 다시 새벽이 아침이 올거라는 위로, 다짐, 자조. 그런 말들로 표현 안되는 그 것. 차라리 가르침, 조언. 살아봤으니, 살아가고 있으니 해 줄 수 있는 그런 말들, 노래들. 울렁울렁.
새 노래를 부르면서 드럼을 두들겨 패던 주찬권 아저씨의 모습이, 의자에서 일어나 목청껏 소리지르는 나이들었지만 젊은 그 가수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감격스럽고 고마웠다. 결코 답보하거나 퇴보하지 않겠다는. 연말에 수만명 채우는 공연장에서 노래할테니 꼭 와달라는 그 말이.
누가 한 광고멘트 였더라,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 김장훈
이 날은 마침 미국으로 떠나는 김장훈에게 들국화 형들이 해주는 송별무대. 걱정말아요 그대를 같이 부르며 눈물을 흘리더라.
사실 팬이라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는데, "새로운 꿈을 꾸겠다"며 소리지르는 김장훈을 보고 있자니, 그간 한 구시렁이 되려 미안해지더라. (며칠 후 두드림을 보고서는 그런 맘이 좀 누그러들기도 했다...하여간.) 저렇게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꿈을 외치는 가수에게 무슨 말이 얼마가 더 필요해서. 내가 살아온만치 노래한 그에게 노래가 어쩌니 하는 말은 또 얼마나 오만할까. 그저 좋아하고 듣고 보면 될 것을. 뭐, 그런 마음이 들게하는 노래.
# 들국화에 대한 부채
그날 아침 김장훈은 자기 SNS에 들국화 공연 출연 소식을 알렸고, 김장훈 팬들이 공연장 곳곳을 찾았다. 김장훈은 "인권이 형"에게 생색을 있는대로 내면서 자기 팬들을 들국화에게 분양하겠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김장훈이 팬들을 들국화에게 소개하는 것은 분양이 아니라 상환이겠다. 들국화가 다져놓은 땅에서 노래부르고 들으며 살아온 이들이 그 열매이거나 줄기와 같은 김장훈에게 찾아들었고 들국화를 토대로 자란 김장훈이 다시 어딘가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그러니까 김장훈은, 아니 그보다 거의 대부분의 노래부르는 이들은 들국화에게 종자를 분양받아 자기의 꽃과 열매를 틔웠고 그걸 다시 들국화에게 돌려주는 것은 분양이 아니라 상환이겠다고.
그렇게 우리들은, 그러니까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우리들은 모두 들국화에 대한 얼마간의 부채는 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들국화가 더욱 위대한 이유는 그 이자붙은 상환액으로 과거를 보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자를 만들기 위해 다시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있다는 것.
들국화, 그들은 그렇게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받았을 종자를 상환하며 그들을 지나 또 걷고 있다.
내 노래를 아냐고,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덧,
들국화를 보면 비틀즈가 생각난다. 들국화 1집앨범 커버는 묘하게 비틀즈 앨범을 오마쥬한 것처럼 보이기도.
언젠가 런던시민 수만명이 헤이쥬드를 떼창하는 장면을 봤다. 수상이고 축구선수고 가리지 않고 죄다 헤이쥬드를 외치더라. 언젠가 시청광장에 모인 수만명의 한국사람들이 그들의 노래를 떼창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 노래는 과거의 그것이 아니어도 좋겠다. 그들은 언제건 현역이니 아직 그들의 최고 히트곡은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에 대한 이 두근두근한 팬심이 몇 배쯤은 증폭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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