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음반결산에 이어 올 해의 영화도 결산하려 했으나 도저히 귀찮고 힘들어서 포기. 그냥 '남쪽으로 간다'와 '백야', '서칭 포 슈가맨', '다른 나라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 정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단 말만. 귀찮아서 영화보고 감상문도 하나 쓰지 않은 한 해였네. 2012년의 키워드는 '태만'으로 해야겠다.


2.

살면서 1년이나 일을 한 건 처음이고 몸과 마을을 움직인 총량은 어느 해보다도 많을텐데, 2012년은 태만의 해. 그만큼 2012년의 나는 귀찮아하고 게을렀다. 기껍지 않았다는 뜻. 태만의 기준은 그렇게 양이 아니라 질로 결정되는 것. 기본적으로는 근성부족. 아마 난 갑자원은 죽어도 못갈거야.


3.

우울감이 다시 몰아치는 계절. 지난 가을을 무사히 넘긴다 싶었더니. 이 지루하고 외로운 가난과 우울함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 난 평생 연애따위는 하지 못할거야. 아마.


4.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는데, 이 우울한 날 같이 술마실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기 보다는 이리 따지고 저걸 재느라 걷어내고 나니 남는 이름이 없어지는. 내가 멀리두지 않으면 모두가 가깝다는 말은 진리. 하지만 멀리두고 싶은 사람 투성인걸. 혼자 술마시면 팔자가 기구해지겠지만, 팔자가 기구해서 혼자 술을 마시는 법. 


5.

하지만 술 값도 아깝다. 

그러니 동정할거면 돈으로 주세요.


6.

트위터 팔로우를 대대적으로 바꿔야겠다.

용산이고  강정이고 현대차고 쌍용이고 한진이고 그밖에 이리저리. 

세상이 얼마나 엄혹한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괴로운지.

이제는 분노보다는 피로감이. 그걸 한 번 다 훑고나면 심신이 피로해진다. 


7.

성유리, 이주승 주연의 누나를 봤다.

성유리 엄청 예쁘다. 영화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그보다 오래된 동네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과 탕수육이 더 인상에. 심지어 그 중국집은 삶은계란도 올려주더라. 지금은 무려 2013년인데 말이야.


8.

주로가는 영화관은 시네큐브와 인디스페이스. 제일 좋아하는 영화관은 인디스페이스.

멀티플렉스에서 트는 대형 배급사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즐기지 않는 이들이 찾는 극장은 좀 한정적이다. 시네큐브나 서울아트시네마, 스펀지하우스 등등일텐데, 극장마다 걸어주는 스타일은 또 다 다르다.

백두대간이 운영하던 시절부터 예술영화를 틀어주던 시네큐브나 일본/프랑스 영화를 주로 걸던 스펀지 하우스.가 가장 고상해 보이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건 인디스페이스에 걸리는 국산 독립영화들. 그 찌질한. 


우연히 들었다 마음이 먹먹해졌던 '아스라이'같은 영화가 고프다. 


9.

수요일 기나긴 일과시간을 한 허리 베어내어 잘 말린 이불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술마시는 금요일밤 막차시간 다가오면 굽이굽이 펴낼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