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 - 그런 것들과 싸우며 사는 거지



두려움은 낯선 것들에서 오는 법이다. 가보지 않은 길.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다가올 것, 알 수 없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이란 어쩌면 '기대'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어차피 슬픈 예감이란 틀리는 적이 없다.


안온함은 익숙함에서 오는 법이다. 벽지에 묻은 때와 장판의 무늬까지 눈에 익은 오래 산 집. 내 손길의 흔적이 묻지 않은 곳은 단 한군데도 없는 물건들. 내 손길과 눈길이 익숙한 사람의 체온 같은.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집은 사는 곳(住) 보다는 사는 것(買)이 돼버렸고 물건들의 수명은, 그러니까 핸드폰 같은 것도 약정 2년이 지나면 바꾸는 게 당연해졌다. 사람이야 뭐. 피상적 관계, 파편화, 이런 말들이 시덥잖아진 건 이런 말들을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니까. 


# 집, 차, 길


동거중인 수현과 지영은 더 싼 집을 찾아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다. "우리가 이 동네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지영의 물음에 수현은 "아니"라고 답했다. 지영의 모친은 이사를 다니면서 시세차익을 남겨 돈을 번다. 이사가 지긋지긋하다는 가족들의 말에 "이렇게라도 하니까 이만큼 산다"고 답한다. 가족들은 수긍한다. 수현의 부친이 사는 집은 허름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정도. 그 집에 사람이 사는 모습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집이란 정착의 공간이다. 삶의 익숙함을 만들어내고, 내일의 삶이 이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집이라는 공간의 전제다. 그러나 지영과 수현은 물론 영화 속 누구도 집에 정착하지 못한다.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을까 집이 정주보다는 탁족의 공간으로 변한 것이. 


집이 안온함의 공간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삶의 모든 순간에서 우리에게 편안함이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지영과 수현이 가장 오랜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차 안이다. 그러나 차란 결국 이동과 부유를 위한 도구다. 길 위에서 어딘가로, 또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향하는 것.  


영화 속 네비게이션도 없는 차안에서 그들은 언제나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매고 길을 잘못들어선다. "여기는 나도 처음 와보니까"라고 말하면서. 살면서 어느 공간인들 초행이 아닐까. 어느 시간인들 처음이 아닐까. 매 순간 우리는 두렵고 모르고. 어느 드라마 제목이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 연애, 결혼, 출산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대단해 보이지만,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단어가 대단히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연애와 결혼, 거기에 따르는 돈벌이 같은 뻔한 요소들로 이뤄진 지루한 클리셰에 불과할지 모른다. "순서대로 좀 하자 순서대로". 


결혼하고 애 낳고 애 키우기 위해 돈벌고 시세차익 남겨 집 옮겨가면서 삶의 '안정'을 만들고. 그런데 그 익숙한 클리셰의 나열은 정말 안정이고 안온함일까. 불안감을 시시각각 맞이해야 하는 안온함이 어디있어. 


가족, 가정. 안온함과 편안함의 상징같은 그곳마저 수현과 지영에겐 두렵고 낯선 곳이다. 모르겠어. 라고 말해버리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고, 자리를 피해버려야 하는 곳. 


수현의 모친이 "결혼은 살아보고 이 사람이랑 평생 살 수 있겠다 싶으면 해."라고 말하자 지영은 "살아보고도 모르겠으면요?라고 되묻는다. 수현의 모친은 대답해주지 못하고. 영화는 대답대신 지긋지긋하게 맞이하는 똑같은 두려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게, 지긋지긋. 낯선 것이 두려워 익숙한 것을 찾는데 그것이 안온함보다는 지긋지긋함이면 어쩌지. 안락함이란 어쩌면 지긋지긋함의 이음동의어.


# 그런 것들과 싸우면서 사는 거지. 


매순간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오늘에서 내일로 부유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결국 사는 것일까.


자기 엄마같은 엄마가 될까봐 아이를 낳기 두렵다는 지영에서 수현은 "그러지 않기 위해 싸우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 무서워죽겠으면서 임마.


집을 옮겨다녀야 하고, 관계는 피상적으로 변하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는 일상이라는 것은 왜 사라진 것일까를 생각했지만 어쩌면 실은 그런 것은 사라진 게 아니라 원래 없는 것이 아닐까. 삶이란 늘 어디에서 어딘가로 부유하는 것이고 매 순간이 낯선 것이라 늘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수현의 말처럼 우리는 매순간 그런 것들과 싸워야 한다. 삶이 고달픈 건 그 때문일까. 매순간이 낯설고 두렵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맞이하는 매순간이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어느 곳이라고 초행이 아닐까.


어차피 삶이 그런 것이라면 늘 낯선 두려움이 지긋지긋하게 벌어지는 이곳을 긍정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 아닐까. 두려움을 아주 잠깐이라도 설렘과 기대로 바꿀 수 있는 순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2016년 겨울의 광장이다. 광장에 선 지영과 수현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걷는다. "다들 반대쪽으로 가는 것 같아." 하지만 방향을 바꾸자 이번엔 다들 자기들이 원래 가던 쪽으로 가는 것 같다. 초행길. 


그 때의 광장은 그랬다. 다들 어디로 갈지 몰랐지만 어디로 갔고 어떻게 무엇인가를 해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그말인즉슨 어디로 가야만할지 몰랐다. 낯설었지만 또 두렵기도 했지만 조금, 아주 조금 설레고 기대하기도 했다. 


자기의 두려움을 모르겠다고 흘려버리지 않고, 무섭다고 긍정했을 때야 비로소. 


# 조현철


드라마 아르곤이나 마스터에서 조현철을 처음 봤을 때 독특하고 재밌는 목소리나 톤의 배우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쉽게 눈에 들어온 건 매드클라운을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둘이 형제라는 기사를 나중에야 봤다. 


눈에 확 들어오지만 자연스럽고 몰입시키지만 과하지 않은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두고보고 싶은 좋은 배우. 지난 번에 올해 최악의 영화 변산을 보면서 조현철 배우가 박정민 대신 캐스팅 됐으면 좋지 않았을 까 생각했는데, 특별출연하고 어쩌면 랩도 만들어준 게 아닐까 싶었던 매드클라운이 영화 속 랩을 대신 해주면 재밌었겠다 싶어서.ㅋ 변산의 수많은 악덕 중의 최고봉은 그 오글거리고 못하는 랩이었거든. 하지만 박정민은 좋아합니다. 








중앙역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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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젤 밑바닥인 거 같지? 아냐. 바닥같은 건 없어.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바닥으로 떨어져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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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눈을 감고 날 꼭 끌어안는다. 어떻게든 이 행위에 집중하려 애쓰지만 시커먼 건물의 그림자나 길 위에 널브러진 캔, 구겨진 종이나 담배꽁초 따위에 수시로 마음이 상한다. 벌거벗은 몸뚱이만 남은 사랑이 실은 이런 끔찍한 모습일 수 있다는 게 속상하다. 이 감정이 우리를 얼마나 더 구차하게 만들 수 있나.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몸을 비비고 움직이는 걸 멈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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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자가 있었을 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굴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런 걸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주먹 크기 만한 덩어리를 굴려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커다할게 만들 수 있었다. 기대와 가능성 따위는 쉽게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여자가 사라지자 그것들은 쉽게 허물어졌다. 여전히 그런 걸 희망이라 부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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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그런 말을 내뱉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게 내 진심인지 확신할 수 없다. 모든 건 지나가 버리고 지나가버릴 말들을 함부로 지껄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런 순간엔 또 나는 기어이 말하고 만다. 이젠 너무 많이 말한 탓에 닳고 바라고 헤진 말들을. 더 이상 여자와 내게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못하는 말들을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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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고 싶어진다. 사는 게 고통스러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삶이 아니라 죽지 않고 꾸역꾸역 견디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내가 얼마나 더 구차해지고 비굴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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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실거리는 어둠 속에서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가늠해본다. 한때 환한 등대 아래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은 적이 있다. 그곳에 닿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렸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역사의 불빛 대신 그것을 단단히 움켜쥔 거대한 어둠을 본다. 더는 그것의 깊이와 너비를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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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바닥이라고 누가 그러든. 바닥이 더 깊은 곳에 있다면, 지금 있는 여기가 바닥이 아니라면, 그럼 여기서 지금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그것을 여전히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는 몸을 비비고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희망이라고 부르든, 그것이 멈춰버리면, 그저 거대한 어둠. 


밤새도록 책을 읽은 게 얼마만이지. 그 눅눅하고 오갈데 없는 못난 사랑 얘기에 눈이고 마음이고 빼앗겨서는. 



 

613 지방선거 후기


1. 
신지예 후보와 녹색당에 표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사실 다른 선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공보물을 읽고 인터넷에 후보자 이름을 검색해보는 정도. 민주당에 단 한표도 주지 않는 선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간 했으나 별로 대단한 다짐은 아니었다.


1-1.
우리동네에선 지지정당인 녹색당을 찍을 수 있는 표가 단 2표 뿐이다. 주요 약력이 노무현과 문재인, 박원순인 사람들은 주로 '청년'이나 '서민' 같은 표어을 썼지만 그들의 정책에는 개발과 투기뿐이다. 인지부조화.


2. 
민주당을 찍지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무엇보다 궁중족발 때문이다. 궁중족발은 서울시장 후보들의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 4일 새벽에 지게차를 동원한 철거용역들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과저에서 활동가들은 부상을 입었다. 궁중족발 사장 내외는 갈 곳을 잃었다. 삶을 잃은 거다.


이 상황에 궁중족발로 향한 서울시장 후보는 신지예 뿐이었다. 김문수는 그때도 서울 곳곳을 재개발 하겠다는 정신나간 소리나 하고 있었다. 민주당과 박원순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안철수는 뭐. 굳이.

늘 그렇듯이 민주당에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이 주댕이만 그럴싸하게 나불거리기 때문이다. 사기를 치기 때문이다. 김문수는 차라리 그런 사기는 안치잖아. 그냥 순수하게 개새끼지.


박원순은 지난 해 궁중족발 사장님이 철거용역에 의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나자, "그런 사태가 다시는 있어선 안된다"며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같은 걸 만들었다. 도대체 그 인권지킴이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나. 지게차가 난입하고 활동가들이 다치고 쓰러질 때, 그걸 방조하던 경찰과 공무원들은 그 인권지킴이들과 일면식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한 건가? 하다못해 박원순은 후보이면서 왜 와서 단 한마디라도 그들을 위로하지 못했나? 그는 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현직 서울시장을 또 시장으로 뽑아야 할 이유가 뭔가. 옥바라지 골목에서도 그랬고 장위동에서도 그랬다. 그 번지르르하고 기름기 낀 말 말고 정말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나.


2-1.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부동산 대책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가장 화가 났던 건 TV에 나온 유시민이 "젠트리피케이션은 답이 없다. 어쩔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봤을 때다. 개새끼.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당시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던 주택임대차 보호법과 상가임대차 보호법을 "시정친화적이지 않은 정책"이라며 반대했다. 그 새끼는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없애야 집주인과 건물주들이 임대 사업에 매력을 느껴 공급이 활발해지면서 시장이 호조를 띌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이 꼴이다.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 관계에서 임대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나 다름없다. 그래 놓고선 이제와서 한다는 말들이란 게 건물주들이 양심적이길 바라는 것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느니. 시장이라는 자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 당의 젊은 정치인들은 개발, 뉴타운, 뉴딜 같은 말을 정책 구호의 가운데 자리에 놓고 있다.찍어주고 싶겠나. 차라리 자유당애들은 그런 눈에 빤한 거짓부렁은 안한다니까. 그러니 문빠라면 남경필을 찍으세요... 으응??


3.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민중당의 선거 펼침막이 붙어있다. "자유한국당에 단 한석도 주지 맙시다". 얼마전에 화제가 됐던 부산지역 민중당 후보의 영상에는 자유한국당사 앞에 압정을 뿌리는 퍼포먼스가 담겨있었다. 뭐하는 짓인가. 정당의 선거운동이 자기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정당을 파괴하는 것이 목표라는 건 참 치졸하고 지질하다.


십분 이해해서 반민주 반통일 세력인 자유한국당이 남한사회의 주요 모순이라고 치더라도, 그 앞에 압정을 뿌리는 식의 행동이 어떤 정치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나. 그게 선거국면의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투쟁인가. 어린애 장난같은 퍼포먼스로 얻을 수 있는 건 대중의 지지와 운동의 성과가 아니라 한순간의 웃음뿐이다. 순간의 유쾌함과 성과를 혼동해선 안된다. 심지어 난 그게 유쾌하거나 웃기지도 않았다. 적에게도 예의라는 것을 보일 필요는 있다. 천박한 싸움으로는 귀한 승리를 만들지 못한다.


더욱이 민중당의 당대변인과 후원회 사무국장이라는 이들이 매일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에서 이 사건을 별 일 아니라고 치부하면서 "댓글에서 이를 비판하는 내용들은 다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는 놀랍기까지 했다. 지독할 정도의 자기완결성. "우리가 틀렸다"거나 "실수였다, 사려깊지 못했다"는 말은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다. 정당이라면, 운동하는 진보정당이라면 더더욱.


찾아보니 대부분의 민중당 후보들이 자유한국당에 의석을 주지 말자는 구호를 함께 쓰고 있었다. 중앙당 차원의 결정이었겠고, 지금 민중당 중앙이 어떤 노선으로 가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존재의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아선 안된다. 존재의 의미는 자기 스스로 자기 안에서 찾는 것. 이거 그쪽에 있는 선배들이 옛날 고리쩍에 써놨던 문건에도 있는 말이다.


4.
이번 선거 최고의 장면은 신지예와 고은영이었다. 오늘 당장 녹색당의 영향은 미비할 것이고, 어쩌면 앞으로 수십년간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페미니즘은 박해받을 것이고 에콜로지는 멸시와 천시, 괄시, 심지어 등한시 당할 것이지만 그런 건 원래 오래도록 하는 일이다. 난 녹색당의 모든 정책에 동의하지 않고 정치전력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꾸준히 응원하고 비판할 것이다. 그런 건 원래 오래도록 하는 일이다. 싸우고 삐지고 그래도 또 합의하고 논의하며 쟁명하고.


가끔 녹색당 강령을 읽는다. 마음을 빨래하는 기분으로.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을 싹틔워 인류가 지구별의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초록빛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며,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우리는 지구별의 생명을 지키는 지구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등대이며, 녹색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함께, 공기의 순환이나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생명의 고동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신지예와 고은영을 비롯한 모든 녹색당 후보들의 선전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11 - 친구 자취방


짜장면이나 한그릇 얻어먹을 셈이었어. 몸을 쓰는 일을 하는 데 내가 얼마나 무용지물인지는 니가 더 잘 알테니까. 이사하는 날 나를 굳이 부른 건 혼자 짐을 싸고 나르기 적적하니 와서 재롱이나 떨고 핑계김에 술이나 마시자는 네 배려인줄 알았지 뭐. 졸업하고 몇년이더라. 서른 몇 살이 어느새 훌쩍 넘어있었으니까. 아마 그 때를 떠올린 거야. 스무살 무렵에 그 스머프 반바지만한 네 자취방에 모여 앉아서 죽어라 부어 마시던 그 때 말이야. 


이사를 하니까 와서 손을 거들라던 네 전화를 받고 호기롭게 그러마 말했지만, 실은 그날 아침에 정말 무진장 가기 싫었드랬다. 일은 왜 그렇게도 바빴냐 말이야. 기자질이라는 게 그랬어. 특히 우리 회사는 더 그랬지. 주말이면 일은 더 많았단다. 뭔 놈의 집회는 그리 많고, 뭐 그걸 굳이 다 챙기려고 하는지. 그날은 모처럼 일정이 없는 주말이었어. 그래서 늦잠을 자고 싶었나봐. 집에서 일어나서 늬 집까지 버스를 타고 또 한시간은 가야 하는데, 넌 아침 9시까지 오라고 했잖아 임마. 알람 소리를 들으면서 이불 속에서 실눈을 뜨고, '급한 취재가 생겼다고 말하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걍 무시하고 자버린 다음에 나중에 쿨하게 사과할까' 같은 생각들을 하는 통에 잠이 깨버렸다. 씻지도 않고 비척비척 나와서 버스를 탔다.   


실은 너희 집을 다시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엔 너무 기억이 많아. 부끄러워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이제 그곳이 없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잘 모르겠으니 그냥 아침의 일정이 귀찮았던 걸로 해두자. 그게 제일 평범하잖아. 


# 방 한구석 먼지 쌓인 기타 


그러게, 난 어차피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우리 엄마도 이삿날이면 나한테 집 밖에 나가있는 게 더 도움이라고 말했다니까. 내가 늘 지정석처럼 앉던 구석에 또 앉아서, 그 구석에서 살았던 날들의 이야기를 꺼내 수다를 떠는 게 내 역할이었지 뭐. 이럴 줄 알고 너도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을 부른 거잖아. 누누히 말하지만 일은 원래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구. 


누구 누구가 애인한테 차이고 와서 엉엉 울다가 이불 위에 토하던 날, 군대가기 싫다고 새벽까지 술을 퍼마시다 결국 늦잠을 자곤 아침에 춘천까지 택시를 타니 퀵을 부르니 법석을 떨던 날, 너랑 나랑 주먹다짐을 한 날도 있었다. 분명히 내가 이겼지. 코피가 나면 지는 거라는 룰은 도대체 어느 동네 룰이냐. 니가 먼저 울었는데. 거기다 난 원래 코피가 잘 나는 타입이라니까. 그 때 우리가 왜 싸웠는지는 기억하느냐. 난 기억하지만 차마 너무 부끄러워서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지금에서 다시 분명히 말하건대 전지현이 더 예쁘다 임마. 


술을 참 많이도 마셨다. 어제 밤에 초록색 위액을 봤네, 난 피를 토했네, 붉은색 즙이면 그건 쓸개즙이네. 뭐 그런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도 밤이 되면 또 술을 들이 부었어. 스물 몇 살 때더라. 누구의 생일이었더라. 하여튼 누구의 스물 몇 번째 생일이었어. 넷이 앉으면 무릎과 무릎이 닿는 네 좁은 방에 7명이서 낑겨 앉아 술을 마시던 날. 생일이라고 굳이 양주를 마셔야 한다면서 싸구려 양주 몇 병을 사들고 들어와서 과일 안주랍시고 귤을 까먹었다. 그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날이 참 좋았어. 개미 오줌만큼도 안들어있는 양주병을 죄다 비우고 늘 그랬듯 소주병과 맥주캔이 방 여기저기에 다시 흩어졌고, 먹다 남은 라면국물과 냉동만두 따위가 널부러진 밥상. 그 밥상을 발로 슬슬 밀면서 눕듯이 앉아 노래를 흥얼 거리던 그날. 그 날 눈이 펑펑 왔던 건 기억이 난다. 뻑뻑 피워 올린 담배 연기 넘어 반지하 창문에 눈이 쌓이던 모습이 참 예뻤다. 우리가 불렀던 노래는 뭐였더라. 내가 김장훈을 고래고래 부르다 시끄럽다고 너한테 귤을 맞은 건 분명히 기억하는데. 


학교에서 도망나와 잠수를 탄 것도 그 구석자리였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서 며칠동안 밥도 안먹고 술도 안마셨다. 그냥 그렇게 침잠하고 싶었어. 그 땐 뭐가 그렇게 괴로웠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염없이 괴롭고 슬펐어. 하긴 그 때 우리는 온갖 것들이 다 아프다고 했고, 모든 것들이 다 사랑스럽기도 했어. 사흘째인가 나흘째인가 내가 "틀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던 네 말이 참 큰 위로였다. 나중에 넌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넌 늘 그렇게 날 위로해주곤 했었다. 


실은 내가 더 좋은 삶을 살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너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한 네 삶이, 스스로 삶을 꾸리고 지탱해가는 모습이 어느어느 문건 속에서 본 혁명이니 변혁이니 노동의 가치니 하는 말들 보다 훨씬 더 감격스러웠다.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 노동해방이 어쩌구를 지껄이던 내게, "이렇게 술을 마시고도 아침이면 꾸역꾸역 눈을 뜨고 일을 해야 하는 게 노동자의 삶"이라면서 "니가 읽는 책 속에도 이런 게 있길 바란다"고 말하던 것도 네 방의 그 구석자리였다. 


내가 너에게 위로가 됐던 날도 있었길 바란다. 그래, 그날처럼. 지금 생각해봐도 넌 참 모질게도 차였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순정마초인 네놈이 이별을 통고하는 그녀 앞에서 온갖 멋있는 척은 다 하고 돌아온 것도 모자라 우리 앞에서도 멋있는 척 폼잡다가 취해서 질질 짜는 걸 그 때 찍어 놨어야 하는데. 잡스가 조금만 더 일찍 노력해서 아이폰이 몇년만 더 일찍 나왔으면 그 희대의 명장면을 남겨놓을 수 있었을 텐데. 그날 니가 폼잡다 넘어지면서 쪼개진 변기 커버는 아직도 그대로네. 그때 우리의 위로는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지 못했느냐고, 왜 그 앞에서는 울지도 못하고 여기서 추태냐고 놀려댔지만, 우리가 그녀의 결혼식에 똥물이라도 뿌리겠다며 허황된 악다구니를 부렸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진짜였단다. 서툴러서 그랬다. 어쨌든 걘 너 버리고 만난 그 양반이랑 결혼해 잘 산다더라. 이제 너도 행복해야 한다. 침대 밑에 아직도 고이 모셔놓은 그 상자도 이제 그만 버리렴.

    

우리의 안주는 늘 너무 초라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그럭저럭 돈을 벌고 살았으니, 이제 그럴듯한 안주를 먹을 수도 있었을텐데, 그래도 우리의 안주는 계속 초라했다. 가끔 짜장라면을 끓여먹는 게 가장 스페셜한 안주였다. 면이 퍼지도록 졸여서 치즈와 계란을 범벅해 죽처럼 만들어 퍼먹던 그 우리의 스페셜 안주가 어느날 티비에 나왔을 때 호들갑 떨면서 저작권을 요구해야 한다면서 또 낄낄거리기도 했다. 간짜장 곱빼기를 시키고 짬뽕국물을 추가로 달라고 하면 자장면과 짬뽕을 다 먹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누가 냈더라. 기억나지 않으니 내가 낸 걸로 하자. 그건 정말 연필에 지우개를 붙인 이후 인류가 고안한 가장 좋은 아이디어였지. 우리는 그 싸구려 안주들에 줄창 술을 들이 부었다. 이과두주를 그라스에 따라 마시면서 황비홍의 주제가를 엉터리로 따라부르기도 했다. 사내란 응당 강해야 (男兒當自强) 한다면서. 


술을 마시고 울다, 싸우다, 노래를 부르다가. 우리의 이십대는 오직 그것들이었을까. 취하고 떠들고 속상해하고 슬퍼하다 토악질해내듯 다 쏟아내면 다시 살아나 또 집 밖으로 나서는 것. 생각해보니 그 스무살이 네 스머프 반바지만한 방구석에 다 쌓여있다.


# 여전히 난 스무살


어느 날부턴가 네 방에 우리가 모여 앉는 일이 줄어들었다. 누구는 차를 사고, 누구는 주택 청약을 시작하고, 누구는 장가를 가고, 어느 주식이 전망이 좋고 하는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 거리가 되면서였던 것 같다. 사실 제일 먼저 발길을 끊은 건 나였다. 난 그런 이야기들이 싫었거든. 여전히 나는 철없이 가난하고, 제 앞가림도 못하고, 통장에 수만원이 없어서 벌벌떠는 삶이라. 사실 그보다는 이런 초라한 삶에도 응원을 보내주는 너희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믿는다고, 세상에 내가 하는 말이 가장 똑똑하고 믿음직스럽다고 말해주는 너희들에게 늘 화가 났고 부끄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런 것에 화를 내는 게 부끄러웠다. 아마 몇 년 사이에 위로조차 받지 못할 만큼 내가 형편없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발길도 끊고, 연락도 뜸해졌다. 


네가 제일 서운해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니 전화를 부러 받지 않은 것도 니가 제일 서운해 하리라는 걸 알아서 그랬던 것 같아. 그러면서 말은 참 호화롭게 했다. 삶의 궤적이 달라졌으니 의무감 처럼 만날 필요는 없다고 말했었다. 의무감처럼 지켜야 하는 것이 어떻게 우정이냐고도 말했다. 의리 놀이 같은 것 좀 하지 말라고 젠체를 하기도 했고. 생채기같은 말들을 소금처럼 뿌려놓고 실은 나도 참 속상했단다. 왜 내 삶은 계속 이모양인지. 왜 나는 늘 가난한지. 왜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지, 왜 나는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술에 취해선 그런 말들을 일기장에 쓰는 날 밤에 전화기를 조물딱 거렸지만, 결국 너에게 전화를 하지는 못했다. 모두가 성장하고 있는데 나만 여전히 네 반지하 자취방에 있는 것 같았다. 실은 사과를 하고 싶었다. 너한테는 꼭. 

  

얼마만이더라. 너랑 통화를 한 것이.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사를 도와달라고 했고 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마하고 호기롭게 말했다. 아침에 네 방으로 가는 것이 싫었지만 그건 아침 일정이 힘들고 귀찮았기 때문이라고 하자. 일은 안하고 구석에 앉아 쫑알쫑알 떠들어댔던 것은 실은 너에게 하는 사과였다. 여전히 서툴어서 그렇다. 하지만 마음은 정말 진짜였단다.  네 방이 없어졌으니, 이제 나도 방구석에 쳐박아놓은 스무살에서 빠져나와야 하겠다. 너희들은 이미 훌쩍 커버렸는데, 나만 꽁하니 구석에 처박혀 세상이 어쩌구하는 말을 떠들어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니. 네 방을 정리할 때 날 불러주어서 참말로 고맙다. 나도 그 구석에 안녕을 말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 무엇보다 전화해줘서 고맙다. 


네 새집에는 볕이 잘들어 참 좋더라. 그 스머프 반바지에 비하면 축구장만큼이나 넓어진 집이 네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일곱명이 아니라 열댓명도 둘러앉아 술을 마실 수 있겠더라. 무엇보다 결혼을 축하한다. 어른이 됐구나. 삶에 사람을 들이는 일이, 누구의 삶 속에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지, 책임과 노력이 어떤 것인지 넌 참 잘 아는 사람이니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테다.


이제 아마 그 때처럼, 이과두주를 그라스에 부어마시던 때처럼 살 수는 없겠지.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서도 안되겠지. 하지만 그 때를 더 소중히 기억하면서 살자. 그리고 조금씩 더 좋은 어른이 되자. 


그래도 가끔 만나 황비홍 노래를 부르면서 술을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사내라면 응당 강해야지.


++


BGM은 토이의 <안녕, 스무살>

생각해보니 나 이 노래 부르다가도 귤 맞았던 것 같은데. 


 







 

단상




1.
사건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감금 및 집단 성폭력 사건'이 아닐까. 수많은 야동 사이트들에 그 사진들이 돌아다녔을 테고, 피해자의 고발이 없었다면 여전히 'OO녀'같은 별칭이 붙어서 사내들의 낄낄거림과 조리돌림 대상으로 온라인을 부유하고 있겠지. 그래선 안된다는 말을 하는 이들에게 발끈해서 나서는 모습, 사건의 실체가 다 파악되지 않았느니 하는 온갖 말들을 덧붙여 피해자를 낙인찍으려는 태도가 지금 딱 이 사회의 수준이다. 

이런 모습을 그저 이성과 지성의 부재, 소양의 부족 같은 걸로 이해해왔다. 그래서 더 멍청하다고 말했고, 우리는 조금 더 공부하고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더 건방지고 오만해 보일 수는 있겠다만, 난 오히려 내가 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이니 지성이니 소양이니. 그런 것들은 그저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아주 약간의 노력. 그런 것으로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근래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보고, 들으면서 부쩍 지치고 피곤해졌다. 문제는 어쩌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도대체 난 어떻게 저들을 혐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   

2.
삶이라는 것이 대단히 가치있어서, 그보다는 내 삶만은 대단히 가치있는 것이어서 어떤 궤도에 올라탈 이정표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땐 내가 소년만화의 주인공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럴 수밖에. 내 세계의 인식은 오직 나 뿐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저 조연, 주변부로 보일밖에.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그런 유치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 수준이었나보다. 역경에 처한 소년만화의 주인공에게 반드시 기사회생의 대찬스가 주어지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순간의 이정표가 올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직도. 

사는 일이란 게 그렇게 대수로울 것도 없고, 빅찬스 같은 것도 실은 없이 그저 꼬박꼬박 꾸역꾸역 꾸준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일이란 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 지루한 삶의 연속. 하지만 스피노자의 말마따나 하늘이 내려준 삶의 빅찬스란 그렇게 대단할 것도 거대할 것도 없을 일이다. 그저 내 욕망을 가늠하고 단 한순간, 찰나라도 반짝거리게 만들 힘. 그런 것이겠지. 그 정도는 만화 속 주인공이 아니어도 누구에게나. 

그러니까 결국, 악셀 한 번 밟아봐야 하지 않겠나.

3.
생각해보니 10년 전 이맘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왜 나아진 게 없냐고 투덜댈 게 아니라 다시 또 더 좋아지길 준비해야하겠다. 바야흐로 렙업의 시기. 진득하게 앉아서 읽고 보고 듣고 쓰는 연습.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몸은 튼튼하게 만들자. 

4.
'인연'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쌓이는 인연이란 결국 옷깃만 스쳐도 쌓이는 '업'이기도 한 것. 감당할 수 없는 업을 두려워해 인연은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모든 말과 행동이 인연을 쌓는 일이고, 동시에 업을 짓는 일이다. 조심스레. 신중하게. 말을 줄이고 몸을 아끼며.

5.
이런 시절엔 김장훈의 노래를 듣고 그 공연에 가고 싶어진다. 외롭고 쓸쓸하다가 막 웃겨버린.
유튜브에서 김장훈을 검색해더니 온갖 조롱만 쏟아져 나와서 속이 상했다. 좋은 노래를 부르는 좋은 사람으로 남아줬으면 좋았을텐데. 



머나먼 나라 - 사랑한다구요 젠장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머나먼 나라>다.


이 가난한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눈부신 햇살이 가득하고 졸음같은 풍요로움이 깃들어 따듯하고 유쾌하며 모든 사랑과 모든 평화가 있는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꿈꾸던 소년들의 이야기.


드라마의 배경은 후암동 언덕배기의 골목이다. 지금은 그 골목의 달동네 마을도 사라졌다. 졸음같은 풍요와 모든 평화와 사랑을 꿈꾸던 소년들의 머나먼 나라는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도 없다.


골치아픈 생각들을 하고나선 비관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다 문득 이 드라마가 생각났다. 주인공들이 세상을 등지는 비극적인 결말에도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는 분명 '희망'이다. 골목길의 끝에 있을 머나먼 나라. 그건 긍정의 힘이니, 힐링이니 하는 싸구려 진통제와는 다른 희망이다. 오늘의 고통을 직시하는 삶. 그 고통을 딛고서야 저 너머의 머나먼 나라를 응시할 수 있다는 희망.


그래서 삶의 희망에 관해 알량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은 너무 무모하고 오만하다. 삶의 무게를 긍정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위로따위 실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그저 할 일은 내 골목길 끝의 머나먼 나라를 그리는 일이다.


드라마는 격정과 광기의 80년대가 끝나고 90년대가 스며든 골목길을 배경으로 했다. 쌓아둔 연탄이 사라진 것 말곤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자조. 실패와 좌절의 90년대가 지나고 21세기가 스며든 오늘의 골목길이라고 다를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눈부신 햇살이 가득하고 졸음같은 풍요로움이 깃들어 따듯하고 유쾌하며 모든 사랑과 모든 평화가 있는 나라"를 꿈꿔야 한다. 사실 그것말곤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나.


++

고통을 전시하면서 그저 등장인물을 괴롭히는 것으로 현실을 운운하는 요즘의 드라마들은 실은 고통 포르노에 지나지 않는다.. 는 메모를 써놓았다. <나의 아저씨>같은 드라마. 누군가 쥐어주는 불민한 희망의 위로. 그건 사실 희망을 '쥐어줄 수 있는 그'에 대한 위로다. "사랑한다구요, 젠장"을 외치던 한수의 반짝거림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려운 근래의 TV 속.


하지만 그게 뭐 드라마 탓이겠나. 드라마와 영화는 반영의 현실인 법이다. 사랑한다구요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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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이제 2회를 봤을 뿐인데... 이 드라마는 48부작이다. 엉엉엉.

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10 - 인사동 노마드



인사동이야 유명한 한량들의 놀이터다. 천상병의 시를 처음 읽었던 고등학생 때, 천상병의 부인이 운영하는 '귀천'이라는 찻집이 인사동 어드메에 아직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설레하면서 인사동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찻집이야 뭐 별 거야 없더라만, 거기 앉아 모과차를 홀짝거리면서 괜히 시인이 여기 어디쯤 앉아서 쓰린 속을 부여잡고 '나의 가난은'같은 시를 쓰면서 또 철없는 술타령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일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 예술에 대한 동경.




좋은 예술은 좋은 삶에서 비롯한다고 여전히 믿는다.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믿는다. 믿는 일이란 아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의 것이니까.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는 작가들, 화가들,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그들의 예술에는 좋은 삶이 깃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것은 예술이 아닐 것이라고 애써 말한다. 


노래를 부르는 일, 시를 짓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는 일. 삶과 세계를 사랑해서, 그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서 더 좋은 세계와 사람을 상상하고 새로움을 그려내고 누구에겐가 건네고 또 받는 일. 오직 그런 일만을 예술이라고 부른다면, 그렇다. 어쩌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좋은 예술은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 반대로 좋은 삶이란 좋은 예술을 빚어내는 삶일 것이다. 그게 글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이런 바람을 무책임하고 막연한 동경이라고 꼬집어도, 무식한 환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블리치에서 말하길, 동경은 이해와 가장 멀리 있는 말이라고 했지. 난 아마 예술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ㅋ)


듣기로, 인사동은 좋은 시와 좋은 그림과 좋은 노래를 건네주던 예술가들, 한량들의 놀이터다. 놀이터였다. 과거에는 그랬다고 한다. 술에 취한 천상병이 시를 쓰고,  민병산이 '철학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던 시절. 그런 얘기를 어깨넘어로 귀동냥하거나 책으로만 주워들었지만, 듣기로 그 때는 그랬다고 한다. 지금의 인사동 모습에서 그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잔뜩 들어섰고, (스타벅스를 한글로 써서 인사동에 로컬라이징 했다고 마케팅하는 건 정말 너무 알량하지 않나.ㅋ) 휘황한 간판들 밑에 조악한 하회탈 모형과 효자손이 늘어섰다가, 외국인 관광객들은 호텔로 돌아가고, 한국인 젊은이들은 길 건너 종로의 술집으로 몰려들어가는 늦은 밤이 되면 모든 조명이 꺼지고 사람도 사라진다.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술 한되를 받아들던 한량들의 모습같은 거 사실 인사동이 아니라 어디에 있을까. 듣기로 그랬다.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있었는지, 있는지도 모를 예술에 대한 동경은 더 가소롭다. 




# 노마드



종로경찰서 옆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인사동 끄트머리로 향하면, 높은 담벼락을 뒷배삼아 "이제 어디로 쫓아낼테냐" 하고 묻는 것 같은 술집들이 있다. '가까스로'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그 집들엔 머리 희끗한 이들이 둘러 앉아 그 높은 담벼락 바깥의 세계에서는 도통 하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을 한다. 누가 보기는 하는 지 알 수 없는 연극 포스터들이 군데군데 덕지덕지 붙어 있다. 옛날 노래소리와 그 옛날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아마 그런 게 예술일까?. 모르겠다. 그들의 삶이 좋은 삶이었는지, 혹은 좋은 삶이 될지, 그냥 옛날을 그리워하고 세계에서 외면받는 것을 예술이라거나 풍류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니까 내가 괜한 '말' 따위에 집착하는 건 아닌지, 실은 모르겠다. 


어쨌거나 골목 한가운데 술집, '유목민', 노마드는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요즘처럼 덥지도 춥지도 않을 즈음이면 가게 바깥 골목에 자리를 벌이고 앉아서 소주잔이나 막걸리 사발 위로 담뱃재를 날리며 술을 마신다. 괜히 귀천에 앉아 천상병을 상상했던 것처럼, 거기 앉아서 시덥잖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나도 예술의 어느 한 구석에, 그 시절의 한량들이 벌이는 풍류의 한자락이라도 닿길 바라면서 가소롭고 알량한 허세를 부리는 거다.


인터넷에서 훔쳐온 사진이다. 앞으로는 이제 정말 사진을 열심히 찍겠습니다.



언제더라, 이삼년쯤 된 것 같은데. 그날도 골목 구탱이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 뒷자리에는 영화배우와 감독, 제작자들 일군이 앉아서 영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가끔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가끔은 어느 누구에 대한 험담을 상스런 육두문자를 섞어서 늘어놓고 있더라. 그 옆에는 환갑은 진즉에 넘었을 것 같은 남자들이 앉아서 음악얘기를 하고 있었다. 가끔 인권이, 현식이, 용필씨 같은 말들이 나오는 걸로 연배를 짐작했는데, 김현식 아저씨가 우리 엄마랑 동갑이니까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겠다. 


그날도 맞은 편에 앉은 친구의 얘기보다 옆테이블 소리에 더 흥미를 두는 못된 습성이 동해 그들의 얘기를 훔쳐듣고 있었다. 거개가 왕년에 자기가 얼마나 잘나가는 뮤지션이었는지 떠벌이는 자랑을 가장한 푸념이거나, 지금 잘 나가는 그 놈들이 얼마나 사기꾼이고 나쁜 놈들인지를 알려주는 험담을 가장한 질투이거나. 우리는 그 시시껍절한 소리들을 엿들으면서 나이듦과 낡아가는 것과, 부여잡아 썩어가는 것과, 나아가지 못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희망을 근거삼아 오직 새로운 상상력에 대한 긍정만이 예술이 아니겠느냐고 이야기했다. 맞아, 그 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그랬다. 아마 우리의 허세와 드러내기 부끄러운 동경이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 혹시나 우리도 늙어가지 않을까 무서워서, 혹시 우리의 삶에 정말로 예술이 깃들지 않으면 어쩌나 무서워서. 일부러. 


바이올린 가방을 든 초로의 남자가 골목으로 비척비척 들어선 건 더이상 얘기를 엿듣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인권이가 내 밑에서~~"라고 말하던 남자가 바이올린 남자에게 아는 체를 한다. 바이올린을 들춰맨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하고 그 테이블 옆에 서서 몇마디를 주고 받다가 이내 바이올린을 꺼냈다. 작은 스피커도 꺼냈다. 무슨 곡이었더라. 귀에는 익은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연주했다. 작은 스피커는 찢어질 듯 듣기 싫은 소리를 냈고, 연주는 썩 훌륭하지 않았다. 그래도 술에 취한 가을 밤, 인사동 어름에 흐르는 바이올린 소리가 어떻게 싫겠어. 박수를 보냈다. 


우리의 박수가 향한 건 연주자였지만, 박수를 받은 건 '인권이를 밑에 뒀던' 남자였다. 묻지도 않은 곡목으로 시작한 곡 설명을 한참하던 그는 "이제 사람들이 잘 아는 가요로 한 곡 해봐"라고 말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태도였지만 사양할 새도, 말릴 새도 없이 연주는 시작됐다. 광화문 연가. 중간중간 음정도 틀리고, 악보를 잊은 듯 듬성듬성 연주가 끊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연주를 마치면 열심히 박수를 쳐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연주는 노마드 사장님의 제지로 중단됐다. "민원 들어오니까 연주는 안됩니다". 그럴리가.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내가 이자리에서 몇 번이나 봤는데. 아무리 그래도 연주중인 곡을 중간에 끊으면 어쩌나. 무례해. 무례하다고.


내가 그 무례하다고 눈살을 찌푸려봤자 무슨 상관이야. 바이올린 남자는 별다른 항의없이 바이올린과 스피커를 챙겼다. 그리고 연주를 시켰던 남자에게 막걸리 한사발을 얻어마시고선 자리를 떴다. 종로경찰서 사이로 난 좁은 길. 올 때처럼 비척비척. 그 모습을 보면서 쓸쓸해보인다고 말하려다 이내 관뒀다. 그의 연주가 어쨌건, 막걸리 한사발이나 비척거리는 걸음이나 내가 뭐라고. 그걸 쓸쓸하다고 말해. 



광화문연가를 연주할 때 동영상을 찍었다. 캡처한 후 사진은 부러 뿌옇게 보정했다.



# 예술이라 부르는 유목생활



무슨 의미로 지은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목은 어쩌면 그 예술을 운운하는 한량들에게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어느 한 곳이고 발붙이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안주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하는 일. 모든 것의 변화를 꿈꾸고, 늘 다음의 것을 상상하고 새로움을 향하고, 그래서 지금 있는 자리에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 떠남을 전제로 잠시간 머무는 것. 그러면 예술과 여행과 삶은 다 비슷한 것 아닐까. 우리는 끊임없이 떠나요. 우리는 끊임없이 헤어져요. 우리는 계속 부족해요. 한순간도 온전하고 안온할 수 없어요. 


며칠 전, 어떤 예술도 어떤 현실보다 극적일 수 없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현실의 삶이란 늘 더 절실하거나 부박해서, 고작 재현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진짜'의 무엇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 얘기를 할 때 노마드의 바이올린 남자를 떠올렸다. 좁은 골목길의 비척거리는 걸음과 예술에 대해서, 찢어진 소리를 내는 고물 스피커와 연주에 대해서, 소음 민원과 막걸리 한사발에 대해서. 그의 예술과 쓸쓸해보인다는 말에 대해서 떠올렸다. 좋은 예술이란 좋은 삶에서만 기인할 것이란 동경, 어떤 예술도 현실보다 극적일 순 없겠다는 말. 그 말과 동경이 허술한 것은 어쩌면 예술과 삶이라는 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겠다. 고 오늘은 생각했다. 바이올린 남자의 비척거리는 뒷태와 찢어진 스피커와 광화문 연가.


<아이다호>라는 영화를 봤을 때, 리버피닉스가 분한 마이크 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평생 길을 맛보며 길위에서 잠드는 도로의 감별사. 길 자체가 집이고 목적지이며 경유지였던 그. 떠나고 또 떠나며 어느 한 곳에도 머무르지 않았던 그의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스콧, 마이크의 사랑을 지나고, 길위의 삶을 지나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간 그처럼 안주하게되고 멈추게 되는 것이 싫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 사진을 핸드폰이나 모니터 화면 속에 박아넣고 그런 삶을 운동이나 예술 같은 표상에 끼워맞추는 얘기들을 많이도 지껄였는데. 실은 스콧의 삶도, 마이크의 삶도, 내 살아가는 꼬라지도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오늘은 했다. 바이올린 남자가 마신 막걸리와, 소음에 대한 민원과 나의 가난은. 떠나는 것만으  





예술이 살아가는 일만 못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이 곧 예술이고 예술은 좋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이 그냥 예술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계속 부유하며 행복함을 좆겠지. 부유하며 좋은 시를 찾는 것처럼. 다만 우리의 부유는 더 나은 곳을 향한 유목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떠나온 자리를 황폐하게 만드는 분탕질이진 않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앞으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부박함이란 내일의 나아짐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어제있던 곳이 아니라 내일 있을 곳으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삶이란 그런 것이고, 삶이 곧 예술이라면 예술도 그런 것이겠지. 어제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 들뢰즈는 "사막이나 스텝을 늘리되 그곳에서 인간이 살 수 없게 만들지는 말라"고 했다. 우리는 부유하며 떠난 곳을 황폐하게 할 것이 아니라 부유하며 우리의 스텝을, 사막을 조금씩 늘려 그 곳에 사람이 살게해야 한다.고 오늘은 생각했다. 



# 2018 트랜디 한량


인사동에 가봐야 천상병이나 박이엽, 민병산 같은 이들은 없다. 그들이 없으니 인사동도 이제 예전같지 않다.고 말하는 늙은 남자들은 아직 있다. 하지만 2018년 오늘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한량의 미덕이라면 그곳에 과거의 누가 있건, 오늘은 오늘의 술을 마시고 오늘의 노래를 부르면 될 일이다.ㅋ


노마드는 음식이 정갈하다. 추천 메뉴는 콩탕이다. 비지찌개처럼 걸쭉하고 되직하지 않다. 고소한 콩냄새와 담백한 국물이 좋아서 소주든 막걸리든 막 오조오억병씩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방문에서 더는 콩탕을 팔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콩국을 얻어오던 거래처 사장님이 돌아가셨단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법이니 새로운 안주를 개발하자. 지난 번엔 두부김치와 생태탕을 먹었다. 맛이 없을리가 없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 미세먼지 대신 담뱃재 날리는 노상에 죽치고 앉아 술을 먹는데, 좋지 않을리가 있나. 이게 2018 S/S 트랜드 조선 한량의 참모습이다.   


BGM은 전범선과 양반들로 하지 뭐.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아무말 아무말 아무말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아무말 아무말 아무말

“그래서 청년의 문제가 뭔데?” 물으면서 <아무말 큰잔치>를 시작했다. 청년 문제를 주제로 매달 15매의 원고를 써내라는 도무지 무리한 청탁을 받았고, 청년 문제 같은 건 없다는 말로 첫 회 원고를 때웠다. 써놓고 보니 너무 아무말이나 지껄인 것 같아 내친김에 코너 이름도 <아무말 큰잔치>로 지었다. 지난 29호에서 시작했고 이 원고는 아마 40호에 실리게 될 테니, 1년 동안 그렇게 아무말이나 막, 그리고 잘 떠들어댔다. 아무튼, 지나 생각해보니 (실은 구색을 끼워 맞춰 보니) 코너 이름을 잘 지었구나 싶다.

애초의 기획의도였던 청년의 문제란 어쩌면 우리가 언어를 상실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아닐까. 400자의 트위터, 사진과 해시태그의 인스타의 세계에는 담을 수 없는 긴 이야기. 진지충의 오글거리는 이야기. 설명충의 따분하고 재미없는 이야기.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자기의 ‘배우론’을 이야기하던 젊은 배우에게 면박을 주던 진행자들을 봤다. ‘오그라든’ 손발을 내밀면서 “혹시 아직 싸이월드 하세요?”라고 묻더라. 그러게, 싸이월드를 하던 때만 해도 우린 사이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글거리는 이야기를 지금보다는 많이 나눴다. 삶이 어쩌고, 세계가 저쩌고. 내가 처음으로 PC통신이라는 걸 시작했을 땐 더 했다. 그때 파란 바탕의 ‘BBS’에서 만난 누나와 형들은 짤방 한 장, 3분 순삭되는 요약으로는 차마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떠들고 욕하고 싸우고 그랬던 것 같다. 원고지에 눌러쓴 주의와 주장을 투고하고 연애편지에 마음을 담던 시대는 더 진지하고 오글거렸겠지. 시대는 변하고 기술은 발달하고 거기에 맞춰 사람도 취향도 트렌드도 변해가겠지만 그 흐름의 방향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언어를 잃어가는 과정’이겠다.

오글거린다는 말이 나온 게 언제더라. 그 말이 나온 후부터 우리는 진지한 이야기를 견딜 수 없게 된 것 같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빠른 나라가 된 이후 텍스트의 자리를 이미지가 차지하게 된 것 같다. 긴 글을 올리고 삭제당하지 않기 위해 올리던 ‘짤림방지용 사진’이 이제 긴 글을 대신한다. 스마트폰과 트위터가 등장하자 400자가 넘는 글은 길다며 읽지 않는다. 조금 진지한 글이 올라오면 ‘진지충’, 조금 긴 글이 올라오면 ‘설명충’이라는 놀림이 따라붙는다. 쿨과 담백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사유의 언어는 유실됐고 비디오와 스킵과 유동성의 세계에서 텍스트에 정주하며 행간을 비집는 상상력의 언어는 도태됐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언어는 상실했다.

저마다 힙스터가 되겠다고 하지만 정작 몰개성화하는 일이란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기의 언어로 자기를 피력하지 못 하는 일이다. 수십 명이 같은 장소에 모여 비슷한 옷을 입고 모두 똑같이 급식체로 말하는 게 무슨 힙스터야. 타자를 혐오하는 일은 타인과 주고받는 언어가 사라진 일이다. 타인의 언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리 없다. 생리휴가를 말했더니 군대나 가라고 말하는 빈약한 언어 말이다. 세계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그 단순한 논리에 끼워 맞추지 못한 모든 것들을 배제하는 광기도 마찬가지. 그의 언어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세계에 선과 악만이 있고 우리 편이 무조건 좋은 편이라는 단순한 세계의 단순한 언어.
과거로 돌아가자, 스마트폰을 파괴해라, 옛날이 좋았어, 20대 이 ‘멍청한 개새끼’. 이런 얘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러다이트 운동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다만 우리가 쿨과 담백, 편의와 유행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위해 무엇을 버렸는지 상기해 볼 일이라는 거다.

우리는 ‘아무말’을 떠들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말’을 떠들어야 한다. 나는 청년의 문제는커녕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심지어 내 문제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떠들어야 한다. 나는 아무말을 떠들고 그걸 들은 당신은 내게 욕을 한 바가지씩 던져야 하고, 난 발끈해서 또 아무말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호작용이 쌓이고 쌓여야 우리는 서로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될 거다. 세계에 대해 질문하고 주장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3분 순삭을 위해 편집하고 잘라내는 자투리들에 실은 진실이 담길 수 있고, 400자로는 표현해낼 수 없는 더 진지하고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삶의 비밀 같은 게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진지하고 장황하고 느끼하고 오글거리는 아무말을 던져야 하고 그걸 견뎌내야 한다. 한없이 빈궁해지는 언어를 채우는 것만이 나와 당신과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아무도 자기를 잉여라고 부르거나 바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자기를 땡중이라고 부르는 스님들을 보면 대단한 고승대덕처럼 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다들 자기를 한없이 가벼이 여기고 잉여라고 여기니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만으로라도 아무말을 내뱉으며 조금 더 진지해지고 조금 더 허세를 부려보자. 진지충이라고 불리면 어떻고, 오그라든다고 놀림 받으면 또 어떤가. 사실 요즘 같을 때라면 그게 바로 힙스터다.

모쪼록 쓸데없이 진지하고 괜히 아무말이나 지껄이는 졸고에도 1년이나 지면을 내준 워커스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그 아무말을 읽으면서 작자에게 욕설 협박 메일 한 번 보내지 않은 선량한 독자 제현들껜 더 큰 감사의 말씀을. 우리 더 허세 부리고 더 진지하게 삽시다. 그럼 전 안티에이징과 보습에 바빠서 이만. 코 찡끗.




[워커스 40호]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영광의 시절은 언제였죠?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영광의 시절은 언제였죠?


박제. 철거되거나 주인이 이사 간 빈집 앞에 쌓인 쓰레기 무더기를 보면 가끔 박제들이 섞여 있다. 한때는 살아있었을, 그 이후에도 어느 부잣집 서재에서 자태를 뽐냈을. 하지만 버려진 박제는 흉물스럽다. 박제된 것들은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들이다. 썩어야 할 때 썩지 못한, 썩어서 새로운 것들의 시작으로 돌아가지 못한 흉물. 눈을 부릅뜨고 쓰레기더미 안에 처박힌 것들은 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영광의 시절은 언제였나요. 방부제를 아무리 발라도 시간은 흐른답니다.

# 1987

<1987>이 개봉하기 몇 년쯤 전이었던 어느 술자리에서, 왕년에 짱돌깨나 던지고 소주병에 신나 좀 부어봤다는 아저씨들과 함께 있었다. “우리가 86학번이야. 이한열이랑 동기라고.” 운동권 사투리를 (일부러 더) 구사하는 그들 사이에 앉아서 맞장구를 열심히 쳤다. “우와, 역시 선배님들.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맞장구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난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그들에게 난 투표도 안 하고 데모도 똑바로 못하는 ‘개새끼 20대’였다가, 지금은 N가지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불쌍하고 방황하는 30대가 됐다. 치열하고 뜨거웠고 가슴 벅찼던 그 거리에 나는 없었다. 난 그들이 만들어놓은 역사의 자장 안에서 태어나 그 역사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를 지닌 청년으로 존재하다, 의무를 망각한 ‘20대 개새끼’가 되어 소주잔을 들고 맞장구나 칠 수밖에 없었다.

난 <1987>이 사실 꽤 불편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운집에서 어떤 이는 여전히 기억이 생생한 그날을 떠올렸겠고, 어떤 이는 그를 계승한 2016년의 겨울을 떠올렸을 테다. 그 연상이 눈물로 이어졌겠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연관 지어지지도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무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미지였다. 민주주의를 열망한 대중들, 함께하는 대중들이 엮어낸 승리, 역사의 발전.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승리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민주주의의 사회에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제’라는 말을 떠올렸다. 가슴 벅찬 영광의 시절이라는 이미지는 87년 이후의 불민한 민주화를 망각시킨다. 스크린은 단면이다. 관객은 감독이 전시하는 스크린 한 면만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87년을 상찬하고 그 감격과 영광을 재현하는 서사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시하는 감독의 세계는 어쩌면 너무 조악했다. 감독은 그날의 역사에서 스크린에 보여줄 만큼에만 방부제를 발라 관객들에게 배달했다. 역사를 박제시키는 일.

어쩌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도 박제의 작업에 동참했다. 역사를 박제하는 일이란 과거의 축적이 주조한 현재를 함께 박제하는 일이다. 오늘과 어제를 분절하는 일. 나를 앞으로도 계속 ‘20대 개새끼’나 N포의 30대로 치하는 일. 나를 그 기분 더러웠던 술자리에 계속 남아있게 하는 일. 결국, 방부제를 치덕치덕 발라 어느 골방에 전시해 두었다가 귀찮아지면 버리고 떠나는. 박제된 과거는 내일을 빚지 못한다. 오늘을 살면서 과거에 붙잡힌 망령으로 살 수밖에.

# 2018

그 아재들을 가장 많이 만난 건 지난 겨울의 광화문이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그들은 ‘씨XX’, ‘병XX’, ‘닭대가리’를 연신 외쳐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그들은 (혹은 그들 중 일부는)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유력한 대선후보를 향하는 모든 비판에 일일이 날을 세웠다. “이제 민주진보 정부가 탄생했으니 잠자코 기다리면 다 좋아질 거”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여성과 인권을 이야기하면 프로불편러가 됐고 노동을 이야기하면 노동적폐, 수구좌파가 됐다. 대의제 이후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 철모르는 ‘정알못’이라고 불렀다. 박제된 과거, 호헌을 철폐하고 직선제를 쟁취하던 시절에 방부제를 바른 채 그 다음의 것들은 모두 망각해버린 듯. 감격과 영광의 덧칠 앞에서 오늘의 비극은 중요하지 않다. 아직 감옥에 있는 한상균도, 굴뚝 위의 노동자들도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영광의 시절을 재현하며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그 영광의 시절에 적이었던 이들을 굳이 끄집어내며 자기연민에 빠진다. 하지만 오늘은 2018년이다.

2018년은 1987년을 딛고 있다. 87년의 성과, 과오, 한계가 뒤섞여 자라다 시간이 지나 땅에 떨어지고 썩어서 2018년의 거름이 된다. 2018년도 또 썩어서 후일의 거름이 되겠지. 역사는 분절돼 있지 않고 흐르고 썩고 다시 태어나는 생태계 같은 거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에 방부제를 치덕치덕 발라 박제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 주인공 강백호는 감독에게 영광의 시절을 물으며 말했다. “내 영광의 시절은 바로 지금”이라고. 내 영광의 시절은 어쩌면 지금이거나 아니면 나중이거나. 어쨌든 1987년은 아니다. 당신들 영광의 시절을 전시하느라 나의 시간과 역사를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워커스 39호]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연애편지 잘 쓰는 법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연애편지 잘 쓰는 법



모든 말과 글은 사실 모종의 연애편지다. 내 마음을 너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또는 네 마음을 얻고 싶어서. 그래서 대부분의 글은 사랑을 과장하고 나를 부풀린다. 모든 연애편지가 그렇듯이. 어느 때는 위악을 떨기도 하고 저주와 증오의 말만 늘어놓기도 한다. 원래 연서라는 게 그렇지 않나. 한없이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오롯이 자기를 드높이고 싶은 허망 사이의 애절한 줄타기. 당신의 마음을 얻고 싶어요. 당신을 설득하고 싶어요.

근래에 쓴 글 중에 가장 많은 오해의 소지를 남겼던 건 지난 호 《워커스》의 아무말 큰잔치다. ‘그건 정말 여성주의인가요?’라는 제목이었다. 글을 쓴 애초의 목적은 어딘가 어긋나고 있는 것 같은 현재의 페미니즘에 대한 지적이었다.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또 다른 혐오가 실행되는 일, 그 혐오가 폭력을 발생시키는 일, 그 혐오와 폭력에 대한 비판을 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는 일에 대한 지적. 그 글이 본래의 의도대로 여러 독자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 글의 첫 독자로서 분명한 문제를 발견하고 반성해야 했다. 과한 감정, 비아냥, 충실하지 않았던 설명, 왜곡의 여지를 남겨둔 비유와 수사들. 무엇보다 진지하고 본격적이지 않았던 생각. 의도가 선했다고 변명할지언정, 몇 줄 되지 않는 글에서 내 ‘선한 의도’를 읽어달라고 (글쓴이가 직접) 사정하는 것은 얼마나 꼴사나운 일일까. (사실 지금의 이 비루한 고백도) 마치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넌 왜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느냐고 징징거리던 스무 살 언저리의 연애편지처럼. 그때도 난 유려한 말로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데 집중하고 과잉된 감정의 언어로 내 사랑을 과시하려는 데 몰두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연서를 쓰면서도 난 그녀를 맨 먼저 생각하지는 않았다.

바야흐로 말과 글이 범람하는 시대다. 하루에 인터넷에 유통되는 정보량이 제타바이트 단위를 가뿐히 넘어선다. 제타바이트라니. 그러나 이 수많은 말과 글은 발신자가 의도한 본래의 목적대로 수신자에게 가 닿았을까. 마음이 전달돼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충실한 설명으로 누구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었을까. 집회 현장에서의 그 수많은 발언은 그들이 말하는 ‘동지’들에게 가 닿았을까, 아니면 거리를 지나는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 온라인에 범람하는 수많은 말의 편린은 또 어떤가. 누군가를 조롱하려는 목적, 아님 말고 식의 유언비어.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 제 눈에만 맞는 안경을 쓰고 보는 확증편향. 기사라고 해서 다를까. 오프라인에서 우리가 지금 서로 주고받는 말은 또 얼마나 다르겠나. 그저 모두 나를 과시하는 말, 너에 대한 감정이 과잉된 말, 조악한 은유와 비유, 애초의 목적을 망각한 비아냥. 이런 것들로 정말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을까.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말과 글은 무슨 의미일까. 그야말로 아무말 큰잔치.

“우리가 ‘잘했음’이나 ‘잘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중략)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따르면 우리는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독창적인 비유와 은유, 감정을 드러내는 언어는 사실 화자의 의도를 왜곡할 뿐이다. 사실에 충실한 묘사를 위해서 대상을 성실하고 솔직하게 관찰하는 것, 나의 감정을 강변하는 표현보다 대상을 올곧게 그려내는 표현을 찾는 것. 좋은 말과 글이란 그런 것일 테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연애편지도 그렇게 쓰이겠지.

그럼에도 ‘사실’과 ‘진실’에 도달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말하고 쓰는 이의 생각과 감정을 읽고 듣는 이에게 온전히 전달하기도 어렵다. 사실 마음을 전달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서로 다른 사람인걸. 지젝은 그래서 “수신자에게 온전히 도달하는 편지는 차라리 부치지 않은 편지”라고도 했다. 쓴 사람 본인이 아니고서는 편지의 내용이 타인에게 어차피 제대로 전달될 리 없다는 뜻일까. 그럼에도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싶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고, 당신이 내 생각에 동조해주길 원한다. 설득하려 하고 설명하려 한다. 그렇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설명충.

다시, 모든 말과 글은 모종의 연애편지다. 당신의 마음을 얻고 싶고 내 마음을 당신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하는 일.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안간힘. 소통의 노력. 나를 부풀리지 않고 솔직하게 내보이는 일, 대상을 가감 없이 관찰하는 일, 그리고 사실에 충실한 묘사. 어차피 안될 것을 알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의 마음을 건드리려고 하는 노력. 연애편지를 써야겠다. 어차피 난 설명충이니까. 성실하게 관찰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서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마음을 다해. 스무 살 때보단 좋은 편지를 써야지.


[워커스 38호]



[워커스_추가기고] 그 세계 바깥의 페미니즘

[워커스_추가기고] 그 세계 바깥의 페미니즘



‘쇼타로 컴플렉스’와 ‘로리타 콤플렉스’는 다른 것이냐는 주제를 두고 한동안 온라인이 시끄러웠다. 어느 방송에서 한 여성철학자가 쇼타콤과 로리콤을 동일 선상에서 볼 수 없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젠더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대상이 되는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를 기반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어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로리콤이나 아동성애 같은 심각한 주제는 물론 데이트 비용 부담, 여성 전용 주차장, 여성부의 존재 같은 이제 꺼내기도 지겨운 케케묵은 이야기들까지. 젠더 권력에 대해, 사회적 맥락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으면 어정쩡한 ‘이퀄리즘’따위에 빠지기 십상이다. “밥값 더치페이도 안하는 메갈들” 같은 빻은 소리나 하게 되겠지.


# 바야흐로 ‘페미니즘 리부트’


근래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바야흐로 갈등의 시대인 것처럼 보인다.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는 비약적인 양적 확장을 이뤘다. 이제 사회 곳곳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그 양적확장이 곧 질적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적어도 ‘온라인 공간’에서만큼은 그렇게 보인다. (페미니즘 논의의 확장에 SNS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의 역할은 막중했다. 운동의 주요 전선은 여전히 라인 위에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온라인상에서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그 갈등과 대립이 불러온 폭력과 차별에 대한 논란은 페미니즘 운동 전체에서도 매우 높은 의미량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건 ‘권력’과 ‘젠더권력’을 혼동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성소수자에 대한 페미니즘 일각의 배척이다. ‘쓰까페미(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을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부르는 말)’와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의 대립. 


최근엔 한 학자가 학회에서 논문발표를 저지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레디컬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주로 그 학자의 발표를 반대하며 학회를 ‘압박’했다. 그 학자가 ‘성소수자로서의 여성혐오’를 조장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들이 말하는 ‘성소수자로서의 여성혐오’란 게이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용어들이나 트랜스젠더들의 성별정체성을 옹호하는 일이었다. ‘압박’이 이뤄졌고 ‘권력’이 작동했다. 이것은 기울어진 ‘젠더권력’이라는 사회적 맥락 위에서 이해해야 할 일일까. 아니면 ‘권력’을 통한 억압이라는 기성의 구조가 외피를 바꿔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일일까.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한 연예인 지망생의 SNS도 최근의 화제였다. (그 연예인 지망생은 이런저런 사건들로 데뷔 전임에도 매우 유명하다.) 유명한 사람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여성인권에 대한 게시물을 SNS에 종종 올리다보니, 그녀에겐 꽤 많은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SNS에 몇몇 트랜스젠더로부터 받았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내용인즉슨 “트랜스젠더도 여성이니 우리의 인권에 관한 게시물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 그녀는 “트랜스젠더는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분들만 안고 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 하는 이들에게 “넌 여성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발언이다. “나의 운동에서 당신들을 배제하겠다”는 발언이기도 하다. 존재를 단정하고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것을 어떤 이름이든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발화의 형태가 온건하든 급진적이든, 운동의 요체는 소외된 주체를 복원하는 일에 있다. 그것은 나의 운동이 다른 무엇을 소외하는 일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젠더권력’의 불공평함을 바로 잡기 위해 또 다른 ‘권력’으로 폭력과 차별, 착취와 억압을 허용하는 것은 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그게 제대로 ‘젠더권력’의 불공평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나는 지정성별 남성의 이성애자이고 뚱뚱하고 지성 피부에 탈모가 온 남성이다. 난 남성으로서 젠더권력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학벌이 없는 흙수저 노동자로서 이 사회의 계급구성의 하단부에 놓여있다. 난 이성애자로서 주류에 있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로서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선 배제되고 있다. 내 다양한 정체성들은 서로 어떤 것들과 접속하고 교차하는지에 따라 소외를 이중으로 가속시키기도 하고 중화시키기도 한다. 교차성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킴벌리 크랜쇼는 ‘교차로에서의 교통사고’를 예로 들었다. 교통사고가 교차로에서 일어날 경우, 사고는 오직 한 방향에서 온 차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 때로는 모든 방향에서 오는 차로 인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 사고는 더욱 커진다. 사고의 수습방법도 다양해지고 책임추궁의 방식도 달라진다. 페미니즘 운동뿐이 아니라 모든 운동은 사실 서로의 관계, 그리고 주체들의 배치에 따라 생성될 수밖에 없다. 굳이 운동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존재하는 모든 일이란 타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억압된 여성이 착취당하는 노동자에서 자기의 억압을 인식하듯, 소외된 노동자가 배제된 장애인에게서 자기의 소외를 발견하듯. 이 모든 것들은 관계를 맺고 있고 어느 하나만이 자기의 정체성일 수는 없다. 각자의 다양한 정체성이 어떤 배치를 이루고 어떤 기재와, 어떤 욕망과 접속하고 교차하는지에 따라 삶의 양식도, 그 삶의 양식을 바꾸기 위한 운동도 발생한다. 


레디컬 페미니즘이 의미 있었던 지난 세기는 페미니즘이 ‘조개 줍는 소리’로 치부되던 당시의 운동에 저항하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8~90년대를 관통하며 레디컬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운동이 고유의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이 남성이 전유하던 운동의 부속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은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대다. 노동이 해방되면 여성도 해방된다던 당시 꼰대 아재들의 주장과 ‘자궁달린 여자만 여자’라며 ‘당신이 아닌 자들’을 배제하는 지금의 주장은 얼마나 다른가. 세상을 단 하나의 책으로 이해하고 단 하나의 창으로 관찰할 순 없다. 한국사회, 아니 사실은 이 세계 전체가 기울어진 젠더권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오직 그것만이 문제고 나머지는 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XX염색체와 자궁을 가진 존재들만이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여성이고 나머지는 다 배부르고 편한 소리 늘어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 모니터 바깥으로 


고백하자면, 이건 다시 쓰는 원고다. 수정이 늦어 원래 썼던 원고가 이번호 <워커스>에 실렸다. 이 글은 아마 인터넷을 통해서만 유통될 테다. 난 수정되지 않은 지난 원고에서 “여성주의는 따듯한 마음과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여성주의만 진짜 여성주의라고 광광우럭 하는 꼴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지 않으면 생존조차도 힘에 부쳐야했던 여성에 관해 사유해 본적도 없는 속편하고 배부른 한남충의 ‘진짜 페미’인정 운운. 뭐 그런 거. 진의가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그 한계를 극복해 더 많은 이해와 연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그러면서 종종 칭찬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고. 


내가 하려는 노력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 바깥을 끊임없이 살피려는 노력이다. 젠더권력을 날 때부터 가져서 실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삶을 애써 보려하는 노력. 거기서 나의 폭력을 떠올리고 당신이 받았던 억압을 상기하려는 노력. 내 삶의 모순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고 당신의 싸움에 함께 연대하려는 노력. 그렇게 나와 당신이 같은 세계에 살고 있으며 당신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실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있음을 깨닫는 노력. 그렇지만 당신의 존재와 나의 존재는 특수성을 지니며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노력. 내가 생각하는 노력은 그런 것이다. 그저 페미니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혹은 운동은 바깥을 향해야 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든 그 바깥에도 고통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신의 고통이 또 다른 폭력과 차별과 착취를 용인해주는 자유이용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창의 모양에 따라 세계는 달리 보이지만 진짜 세상은 창으로 보는 세상보다 훨씬 더 많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하다못해 창문은 또 얼마나 많은가. 


말했듯 '넷페미’는 지금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한 전선이다. 수없이 많은 주의와 주장, 말과 글, 이미지가 온라인을 떠돈다. 사회적 조류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실제 세계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넷페미의 운동과 투쟁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에서 유통되는 모든 것들이 정말 모든 것은 아닐 수 있다. ‘온라인의 언니들’ 덕분에 코르셋을 벗었다지만, 하지만 정말 당신은 정말 코르셋을 벗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맘에 들고 편한 코르셋으로 갈아입은 것은 아닌지.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그건 정말 여성주의인가요?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그건 정말 여성주의인가요?


최근에 목격한 몇 가지 일로 혼란스러워졌다.

 

#1

그리 친하지 않은 지인 A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얼마 전 공중화장실에 적힌 낙서에서 어느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화장실 담벼락의 낙서가 가질법한 악덕에 매우 충실한 낙서다. 번호의 주인은 남성일 것으로 추정됐다. 그녀는 그 전화번호를 저장했고 저장된 전화번호는 번호 주인의 SNS계정으로 이어졌다. A는 그 SNS 계정의 화면을 갈무리해 자신의 SNS에 공개했다. 번호 주인의 SNS를 공개하면서 A는 그를 ‘몰카범’으로 지칭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가 몰카범이 아닐 가능성, 그 번호의 주인이 그의 신상을 파악한 이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피해자가 될 가능성에 대해 지적하자 그녀는 “그에게 해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몰카 범죄는 나쁘다.

 

#2

한서희라는 연예인 지망생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유명해졌다. 유명한 사람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여성인권에 대한 게시물을 자신의 SNS에 종종 올리다보니, 그녀에겐 꽤 많은 메시지들이 도착했던 것 같다. 한 씨는 자신의 SNS에 몇몇 트랜스젠더로부터 “트랜스젠더도 여성이니 우리의 인권에 관한 게시물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트랜스젠더는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분들만 안고 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트랜스남성(FTM)이 보낸 것도 아니었을 텐데, 왜 여성분들만 안고 가겠다고 굳이 답했을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가끔 SNS는 인생의 낭비다.

 

#3

지인 B가 지하철 안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SNS에 썼다.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 여성에게 다른 여성이 ‘여자의 자존심’을 운운하며 지하철에서 화장을 해선 안 된다고 면박을 주었고 그 면박은 다른 승객들이 ‘남 이사 어디서 화장을 하든 무슨 상관이냐’며 제지하고 나서면서 멈췄다는 일화. 댓글에서 다른 지인 C는 화장을 할 때 나는 냄새가 불편하니 공중의 공간에서 화장을 하는 건 지양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놨다.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구조적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있었다. “모두 화장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결론이 나려던 찰나, 새로운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남 아재들이 등산복 입고 막걸리 냄새를 피우는 건 어쩔 거냐”는 요지의. “화장에서 무슨 냄새가 나냐”고 묻는 댓글도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역시 SNS는 가끔보다 더 자주 인생의 낭비인 것 같다.

 

# 그게 정말 여성주의인가요?

 

여성주의를 ‘따듯한 마음’이나 ‘위로의 말’ 같은 걸로 정의했었다. 물론 학술적으로도, 또 운동적으로도 정확한 정의는 아니겠다. 다만 여성주의 텍스트들을 읽고 주변의 여성주의자들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억압당하는 여성의 지위를 발견하고, 차별받는 장애인들로부터 배제된 여성의 존재를 인식하는. 그렇기 때문에 시혜나 연민이 아니라 손을 내고 연대함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 여성주의의 본질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여 여성주의 운동은 모든 폭력과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며 소수자에 연대하고 어떤 존재도 지워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래 여러 논쟁들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틀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궁과 유방을 달고 태어난 여성만을 챙기는 것이 여성주의라는 주장, 세상의 모든 문제는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때문이라는 단편적인 시선. 저항을 빙자한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생산해내는 지긋지긋한 악순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상태는 어떤 언어도 배우지 않은 상태고 가장 위험한 존재는 단 한권의 책만을 읽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내가 도무지 뭘 모르기 때문일까. 정말 그게 여성주의 인가요?

 

사실 ‘진짜 여성’을 운운하는 건 ‘진짜 남자’를 빙자하는 남근주의의 거울상에 불과하다. 여성주의 운동이 여성으로서의 존재를 확인하고 남성에 의한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라면 다른 이들의 ‘존재의 확인’과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조롱하고 재단할 수는 없다. 아주 간단한 논리. 누구도 때릴 수는 없다는 주장을 하려면 당신도 누구를 때리면 안 된다. “쟤가 날 때리는 건 싫지만, 내가 널 때리는 건 상관없어. 넌 맞아도 싸니까.”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김치녀를 욕하면서 화장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 한남충과 다를 건 뭔가. 피해는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는 면죄부가 아니다.

 

사실 이번 원고를 쓰기 시작할 때는 조금 화가 나 있어서 “페미니즘을 자처하기 위한 이들은 시험이라도 봐라”같은 뻘소리를 지껄여볼까 생각도 했다. 990점 만점의 페미니즘 시험에서 850점을 넘지 못하면 SNS에 관련 포스팅을 못하게 하는 법조항이라도 만들자는 아무말 큰잔치. 하지만 조건이 붙은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 아주 피곤하고 복잡한 일이지만 인권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다. 속시원하자고, 불편하다고 멋대로 괴롭히고 죽이면 안 된다. 운동의 역사는 그 다짐을 공고히 해온 논의의 축적이다. 나도 그래서 시험보자는 얘기 결국 안했잖아.

 

당신들이 페이스북 안에서 그린 여성주의가 정말 여성주의인지 모니터 밖의 세상을 보라.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당신의 삶은 '스튜핏'하지 않다.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당신의 삶은 '스튜핏'하지 않다.


‘스튜삣’ 소리에 들고 있던 치킨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야밤에 혼자 1+1 두 마리 치킨을 먹으면서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통장에 얼마가 남았는지 걱정하면서, 동시에 얼마는 남았으니 치킨은 1마리보다 2마리를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고 고독한 뚱땡이의 길.

엄마는 늘 말했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언제 집사고 언제 장가갈래?” 사실 내가 장가를 못가는 건 비단 집이 없고, 돈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 너무 구차해서 앞으로 아껴 쓰겠다고 대답했다. 결혼은 뭐 혼자서 하나.

월세방을 구하러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이 김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좀 큰 전세를 얻으라”고 했다. “열심히 일하면서 차근차근 갚으면 대출금은 금세 갚을 수 있다”면서.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대출을 받기도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순진하고 해맑은 사람이라고 (좋게좋게) 생각했다. 그 순간에는 좀 짜증이 났던 건 이제 지난 일이니까 뭐.

‘스튜핏’과 ‘그레잇’이 유행이다. 사람들이 보내온 영수증으로 재무상담을 해주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그 인기에 힘입어 공중파 방송까지 진출했다. 스튜핏과 그레잇이라는 유행어를 배출한 이 방송은 근래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다. 20여 년의 방송 생활 동안 근검절약과 저축, 재테크의 달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아온 김생민은 커피를 마시지 말고, 야식을 먹지 말고, 가죽점퍼를 사지 말고 그 돈을 모아 저축을 하라고 말한다. 차근차근 성실하게 내일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삶을 예찬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대신 작은 성취를 이루고 다시 조금 더 큰 목표를 설정하는 순리의 삶을 권장한다.

“우리는 ABCDEF로 F에 도착하기 위한 과정을 밟습니다. 이건 정말 중요해요. 0.01%의 친구들이 A라는 행위를 하고 F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에 접근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마치 계단을 밟듯 차근차근 가야 우리의 열매를 지킬 수 있고 수확이 지속 가능합니다.”

김생민은 영수증을 보내오는 사연 신청자들에게 조금씩 노력하면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칭찬한다. 눈앞의 작은 목표를 실천하면서 큰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설득이다. 사람들은 그런 김생민의 격려와 위로, 위트있는 설득에 열광한다. 실제로 그는 길었던 무명의 시절을 딛고 타워팰리스를 산, 살아있는 재테크의 증거물 아닌가. SNS에는 김생민의 격려와 질타에 감응한 이들의 고백이 수두룩하다. 고독한 뚱땡이의 길을 걷고 있던 나도 들고 있던 4개의 닭다리를 보면서 ‘나 혼자 먹는 야식에 왜 닭다리가 4개나 필요한가’라고 자괴해 버렸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 닭다리 4개를 포기하면 난 월세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이번 겨울을 조금만 더 춥게 지내면 난 장가를 갈 수 있나. 고양이 치약을 사지 않으면 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 그건 ‘뽕’이잖아

이 방송이 유행한 후 한 언론은 <김생민의 ‘절실함’이 2017년에 빛을 발한 이유>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어쩌면 ‘이번 생은 망했다’는 비관이 팽배한 시대가 가고, 성실이 미덕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돌아오는 걸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헬조선, 비정규직, 탈조선의 정서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노력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땀과 인내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희망의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김생민 현상은 그 전조와도 같다는 것. 희망과 노력, 땀과 인내라는 말은 참 아름답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힘을 내고. 아침이면 택시 대신 지하철을 타기 위해 1시간을 일찍 일어나고. 음. 어디서 많이 보던 얘기인 것 같은데.

사실 어쩌면 김생민의 ‘절실한 노력론’은 그냥 다시 새마을운동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얘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고, 요즘 것들은 노력을 안 한다는 꼰대들의 얘기와도 맥이 통한다. 다만 이젠 포기마저 지긋지긋한 이들의 자기 위안이랄까. 일종의 ‘뽕’이다.

유수의 명문대를 나와서 굴지의 대기업에서 그럴듯한 연봉을 받는 한 친구의 얘기를 빌어보자. 대학을 졸업한 27살에 취업해 8년 동안 열심히 적금한 그 친구는 현재 통장에 4천만 원의 잔고가 있다고 했다. 4천만 원에 가까운 연봉으로 시작해 지금은 5천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는 그는 술도 잘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차도 없고, 집도 없다. 가끔 맥주 두 캔을 사 들고 야구장에 (심지어 가장 싼 외야석에 앉는다) 가는 게 취미의 전부라는 친구는 ‘마흔 전에 자기 명의의 집을 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친구무리 중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한 그가 ‘집을 사겠다’는 목표를 처음 얘기했을 때 우리는 모두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한 달에 200만 원을 저축하면 1년이면 2,500만 원이니까 10년만 모으면 3억 원, 대출을 조금 끼면 그래도 서울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 하나는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8년이 지나 아등바등 4천만 원을 모은 그 친구는 여전히 집을 사는 게 목표하고 말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김생민도 김생민의 방송을 듣는 이들도 커피값을 아끼고 택시비를 아껴서 집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다. 그건 그저 위로고 격려다. 그보다는 유희거나 자조일 수도 있고, 희망이나 긍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뽕’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이 외통수 같은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작은 마취제. 대마초도 못 피우게 하는 나라에서 이런 ‘뽕’은 참 잘도 권장한다.

# 우리 보통의 삶

재테크 노하우 전수라는 ‘뽕’의 기능 말고 사실 김생민이 진행하는 방송의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보통’이 무엇인지 던지는 질문의 기능이다. 김생민은 방송마다 “깊이 생각해보라”고 한다. 커피에 대해, 옷에 대해, 다이어트에 대해, 고양이 치약에 대해, 감자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 당신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김생민은 그런 사유를 ‘그런 소비는 당신의 말초신경을 잠시 자극해 쾌락을 줄 뿐 실은 행복이 아니’ 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커피 마실 돈을 아껴서 저축하면 월세에서 반전세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고, 당장의 소비를 참으면 내일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건 삶의 행복을 ‘집을 사고 돈을 모아 결혼하고 노후를 풍족하게 보내는 것’이라 규정한 전제에서 가능하다. “언제 집사고 언제 결혼할래”라고 묻는 우리 엄마가 제시한 삶의 ‘정상성’과 같은 전제다. 이런 삶의 전제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이 그리는 삶의 궤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기업에 다니며 10년을 숨만 쉬며 돈을 모아도 5천만 원을 모으기 힘든 세상에서, 그 고연봉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세상에서, 5천만 원으론 집을 사기는커녕 전셋값도 안 되는 세상에서 그런 삶의 지향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삶에서 오늘의 닭다리를 포기해 20년 후에도 있을지 없을지 모를 내 집 마련의 자금을 모으는 건 무슨 의미일까. 김생민에게 되묻고 싶다. 희망, 내 집 마련, 미래, 저축 같은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 보통의 삶은 모순된 욕망의 연속이다. 오늘의 닭다리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10년 후의 미래를 포기하기도 어렵다. YOLO가 유행하지만 그건 실은 되는대로 막 살라는 말에 가깝다. YOLO도 저축도 어려운 삶도 있다. 난 지난 《워커스》 기획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사채시장과 장기판매 루트까지 알아봐야 하는 삶에 대해 쓰기도 했다. 다양한 삶의 양태는 다양한 욕망, 다양한 결핍, 다양한 행복을 의미한다. 그 욕망들은 모순되기도 하고 허황돼 보이기도, 때론 안타까울 정도로 절실해보이기도 한다. 그 모든 것들에 어떻게 스튜핏과 그레잇을 외칠 수 있을까.

20년간 스타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근면과 성실을 무기삼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김생민의 삶을 존경하고 또 응원한다. 그가 주는 위로와 격려로 내 얇은 지갑의 허전함을 잠시 달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먹지도 못할 1+1의 치킨과 쓸데없을지 모르지만 큰맘 먹고 구입한 만년필이 주는 위로와 격려가 있음도 사실이다. 원래 야식과 선물의 의미는 길티플래져인 걸.

희망 같은 불온한 말로 서로를,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괜찮다. 미래 같은 불확실한 것 대신에 오늘의 즐거움을 따라도 괜찮다. 더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을 견뎌내도 좋다. 당신의 삶을 향해 “그레잇”이라 외치겠다. 그러니 갈팡질팡 아직 삶의 궤적을 정하지 못한 보통의 우리, 모순된 삶에 서로 “스튜핏”을 외치지도 말자. 우리의 삶은 고작 그런 것으로 어리석어지는 게 아니다.


[워커스 36호]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서울에서 집 구하는 이야기, 살면 또 삽니다만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서울에서 집 구하는 이야기, 살면 또 삽니다만


이사를 마쳤다. 땀과 먼지와 피로와 앞일에 대한 걱정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히고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짧았던 지방생활을 마치고 이사한 집은 석관동의 작은 옥탑방이다. 원래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방이었는데, 주인아저씨를 잘 구슬려 보증금 700에 월세 30만원에 계약했다. 며칠 동안 혜리와 설현이 광고하는 앱을 주구장창 들여다봤다. 전국 모든 복덕방의 공적이라는 네이버의 <피터팬 카페>도 엄청 들락거렸다. 감히 500에 30으로 서울에서 방을 구하겠다고 나섰을 때 겪어야 했던 수모와 좌절, 체념과 납득과 극복의 대 서사시.

# 500에 30으로 한남동에 가보니

졸업한 학교가 있었던 한남동엔 아직도 친구들이 남아있다. 단골가게들도 여전하고.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던 곳도 한남동이라 이번에 집을 구하면서 처음 찾은 곳도 이곳이다. 방구하는 어플을 실행했다. 방이란 방은 “다 있다”는 혜리의 말을 굳게 믿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 2칸을 검색했더니 결과는 ‘0’이었다. 이럴수가.

현대차 정 회장님과 삼성 이 회장님이 거주하시는 한남동은 대표적인 부촌으로 알려졌지만 남산자락에 위치한 고지대에다 워낙 오래된 동네라 싸고 허름한 집이 많다. 대학생 때는 그 틈새를 이용해 자취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한남동에 낡았지만 넓고 깨끗한 집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했다. 이슬람 사원과 보광동 도깨비 시장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 산비탈 사이의 집들엔 이주노동자와 젊은 사회 초년생들과 소규모 공장들이 가득했다.

내가 찾던 허름한 집들은 한남동-보광동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 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동네엔 빈집들이 늘어났다. 이미 노인인 집주인들은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은 쪽과 재개발로 경제적 도움을 받길 기대하는 쪽으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 대학생, 혹은 인근의 LGBT바나 유흥주점 종사자들로 구성된 세입자들은 집세를 올려주거나 떠난다. 십수년 전의 기억을 근거로 그럴듯한 집을 구해보려 했던 내 생각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는 철부지의 철없는 망상이었을까.

# 500에 30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강서구, 금천구, 양천구 같은 서울 서남부 지역은 서울에서 대표적으로 집세가 저렴한 지역이 . 그런 줄 알았다. ‘여기라면 그럴듯한 방에 살 수 있겠지’.

500에 30, 방 2칸의 조건에 기대보다 훨씬 많은 방이 나온다. ‘27개의 방이 있습니다’. 이제 신월동민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27개의 방 중 26개가 반지하 혹은 1층 같은 반지하, 또는 채광 좋은 반지하 내지는 습기 없는 반지하였다. 반지하에 살 순 없지.

‘반지하가 뭐 어때’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가정경제가 급격히 내리막길을 달려 집을 줄이고 줄이다 마침내 반지하까지 진출했던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등장한 바퀴벌레 무리가 식탁 밑을 유유자적 지나 내방으로 들어가는 걸 봤을 때도 ‘지구엔 원래 인류보다 바퀴벌레가 먼저 살기 시작했다’고 여기며 괜찮았다. 지나가던 초딩이 창문너머로 빤스만 입고 누워 코를 골던 나를 구경할 때나, 술 취한 아저씨가 거실 창문에 오줌을 갈길 때도 참을 수 있었다. 창문 앞에 주차한 트럭의 배기가스가 집안으로 들어올 때쯤이었나, 침대에 곰팡이가 슬어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던 때였나, 습기가 가득한 방에서 처음 가위를 눌렸을 때였던 것도 같고. 아무튼 그 언저리 언제쯤 ‘반지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번듯하게 찍어놓은 사진, 기대보다 넓은 방, 생각지도 못한 옵션, 저렴한 월세. 반지하 방에 붙은 이 좋은 조건들은 다 ‘반지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사람들도 알고 있는 거다. 반지하는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 반지하 방들에도 입주자들은 나타났다. 온갖 말로 세입자를 유혹하던 매물은 하나씩 계약종료의 딱지를 붙여 나갔다. 더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할 여유가 없는 사람, 그 방이라도 감지덕지 살 수밖에 없을 사람, 반지하의 그 ‘악덕’들을 감내하면서도 그 동네에 살아야 하는 사람, 혹은 반지하가 얼마나 살기 힘든지 아직 모르는 사람. 여러 이유가 있겠다만 반지하에도 사람은 산다. 가난이나 주거환경, 기본권 뭐 이런 말들을 떠올려봤지만 다 의미없는 말들이다. 그냥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하면서 분노할 일도 아니고 동정할 일도 아니다. 그냥 이 드넓은 서울 땅에 바퀴벌레와 곰팡이와 집안을 들여다보는 낯선 이들을 견뎌내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

# 사람이 산다

6년 전 처음 자취방을 구할 때 ‘보증금 500만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500이 없어서 친구네 집에 얹혀 살거나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번에 가까스로 얼마간의 보증금을 모아 (사실 빚을 내서)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는 ‘보증금이 2천만원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증금의 사전적 의미는 “어떻게 해도 모자란 돈”인 것인가.

초등학교 2학년, ‘슬기로운 생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기본적인 삶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배웠다. 가끔 살아가는 게 벅차거나 두렵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건 대단한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가 아니다. 월세 내는 날이 다가올 때, 통장 잔고가 0에 가까운 월급 전야에 배가 고플 때, 한겨울에 가스가 끊겼을 때. 그런 사소해 보이는 일들을 대면하면 ‘세상 무엇도 내 삶을 응원해주지 않는다’는 냉정한 사실을 알게 된다. (어차피 다음날 월급이 들어와 치느님을 영접하면 또 잊힐 것들이지만.)

여하튼 이번에 구한 집은 매우 마음에 든다. 채광이 좋고 습기도 없다. 너른 옥상을 마당처럼 쓸 수 있고 빨랫줄도 무려 3줄이나 있다. 여긴 한남동처럼 힙한 동네가 아니지만 인근의 대학가엔 예쁜 카페와 맛집이 꽤 있다. 여긴 습하고 어두운 반지하가 아니지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옥탑이다. 30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월세지만 그 저렴한 월세를 위해 200만원이나 더 빚을 내야했다. 집은 늘 그렇듯 만족스럽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다음 월세날이 오면 난 또 ‘세상은 나를 응원하지 않는 것 같아’ 같은 생각이나 주억거리고 있겠고, 또 ‘2천만원만 더 있으면’ 같은 소리를 지껄이겠지. 그렇지만 분노할 일도 아니고 동정할 일도 아니다. 그냥 그곳에, 한남동이나 석관동이나 신월동이나. 반지하든 옥탑이든 루프탑이든. 그냥 사람이 산다.


[워커스 35호]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결국은 흔해빠진 먹는 이야기

[워커스_아무말큰잔치] 결국은 흔해빠진 먹는 이야기

1.

며칠 전, 집에 동료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해먹었다. 메뉴는 조개 술찜과 토마토 파스타였다. 시장에서 조개를 한 봉지 샀다.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하고 조개껍데기에 묻은 펄을 칫솔로 일일이 닦아냈다. 마트에 가면 세척은 물론 해감까지 완벽히 해서 포장해 놓은 ‘상품’들이 널렸지만 굳이 펄이 묻은 조개를 샀다. 우리 고장에서 나는 토마토를 골라 몇 시간 동안 졸여 소스를 만들었다. 냄비 앞에 서 있는 몇 시간 동안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먹는 사람들은 내 이런 고생을 몰랐겠지.

가급적이면 패스트푸드나 외식 대신 집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으려 노력한다. 직접 재배한 풀을 뜯어 밥상에 올리진 못하지만 되도록 가까운 곳에서 자란, 누가 어떻게 키웠는지 알 수 있는 풀과 고기를 쓴다.

회사 구내식당 벽에는 동학 교주 최시형이 남겼다는 경구가 붙어있다. ‘밥 한 그릇을 잘 먹으면 만 가지 일을 알게 된다.’ 먹는 일이란 결국 내가 자연에 의탁하지 않으면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라는, 밥 한 그릇은 결국 내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아는 일이라는, 그러니까 일종의 생태주의 철학이다. 먹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공장에서 눈만 껌벅이다 죽어간 동물들에 생각이 미치게 되고, 산에서 채취한 나물의 성기고 거친 뿌리에 담긴 시간을 귀히 여기게 된다.

자본주의는 과정을 소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철저한 분업. 무엇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감춰두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노동이 어디에 어떻게 투여되고 어떤 결과물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온전히 자신을 이루던 삶을 쪼개, 삶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다른 곳’에서 만들어져 배달된다.

밥상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서 자란 풀이 누구의 손에서 가공돼 어떤 곳을 거쳐 판매되고 어떤 방식으로 조리돼 지금 내 앞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음식을 해 먹는 노력은 소외된 과정에 다시 집중하려는 노력이다. 내가 먹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내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사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어른들이 그렇게 강조하던 ‘밥상머리 교육’도 그런 의미였다. 농부가 여든여덟 번은 손길을 줘야 만들어진다는 쌀 한 톨의 이야기. ‘네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먹으렴.’

2.

수제 과자와 케이크를 파는 친구가 있다. 하루는 작업실에 놀러 가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파티셰들은 죄다 우아하고 세련됐길래 걔도 그럴 줄 알았더니 밀가루 범벅에 손에는 화상 자국이 그득했다. 땀도 뻘뻘 흘리고. 가공된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화 중 전설의 레전드는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던 민중에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대꾸한 일이다. 사실 이 일화에서 팩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계급이 부여한 삶의 조건이다. 딱히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어도 귀족들은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민중에게 ‘그럼 과자를 먹으라’고 말했을 테다. 그들에게 빵과 과자는 그저 하인들이 주방에서 들고 오는 것일 테니까.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 어느 집에서 어떻게 태어나 무엇을 보고 배우며 자랐냐에 따라 사람의 의식이 달라진다. 교과서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자유 의지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삶의 조건이 의식과 언어를 집어삼킨다. 밥상머리는 그런 의미다. 삶의 결을 만들어 주는 일. 매일 마주하는 것들, 삶의 가장 근본인 ‘밥’ 앞에서 건져 올리는 의식과 언어.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권력자들이 뭔가 특별히 의도해서 ‘빵이 없으면 과자를’이라고 말한 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자라났던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밥상머리엔 빵과 과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땀을 흘리며 밀가루를 반죽하고 오븐에 손을 데는 과정, 노동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3.

‘밥하는 동네 아줌마’를 운운했던 국회의원이 있다. 삼성의 법무팀에서 일하던 변호사 출신인 그녀에게 밥 짓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먹을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외했고 먹을 것을 만드는 이들을 소외했다. 결국, 공산품처럼 예쁘게 플레이팅 된 파편만을 먹거리 전체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밥상머리엔 과정을 소외한 파편화된 세계만이 있다. 삼성 법무팀만 중요해 보이는, 어쩌면 21세기 대한민국의 마리 앙투아네트. 하여 그녀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실은 삶의 본질이고 그가 의존하고 있는 세계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밥은 만든다고 하지 않는다. 밥은 ‘짓는다’고 한다. 짓는다는 건 삶을 이루는 바탕이 되도록 새롭게 일으키는 몸짓이나 모습이다. ‘먹고살다’는 말은 한 단어다. 띄어 쓰지 않는다. 삶이란 먹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다.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입을 벌려야 하고 무엇이든 입안에 채워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먹는 이야기는 결국 가장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그만큼 삶의 근원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야기다.


[워커스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