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10 - 인사동 노마드



인사동이야 유명한 한량들의 놀이터다. 천상병의 시를 처음 읽었던 고등학생 때, 천상병의 부인이 운영하는 '귀천'이라는 찻집이 인사동 어드메에 아직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설레하면서 인사동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찻집이야 뭐 별 거야 없더라만, 거기 앉아 모과차를 홀짝거리면서 괜히 시인이 여기 어디쯤 앉아서 쓰린 속을 부여잡고 '나의 가난은'같은 시를 쓰면서 또 철없는 술타령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는 일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 예술에 대한 동경.




좋은 예술은 좋은 삶에서 비롯한다고 여전히 믿는다.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믿는다. 믿는 일이란 아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의 것이니까.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는 작가들, 화가들,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그들의 예술에는 좋은 삶이 깃들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것은 예술이 아닐 것이라고 애써 말한다. 


노래를 부르는 일, 시를 짓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는 일. 삶과 세계를 사랑해서, 그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서 더 좋은 세계와 사람을 상상하고 새로움을 그려내고 누구에겐가 건네고 또 받는 일. 오직 그런 일만을 예술이라고 부른다면, 그렇다. 어쩌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좋은 예술은 좋은 삶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 반대로 좋은 삶이란 좋은 예술을 빚어내는 삶일 것이다. 그게 글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이런 바람을 무책임하고 막연한 동경이라고 꼬집어도, 무식한 환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블리치에서 말하길, 동경은 이해와 가장 멀리 있는 말이라고 했지. 난 아마 예술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ㅋ)


듣기로, 인사동은 좋은 시와 좋은 그림과 좋은 노래를 건네주던 예술가들, 한량들의 놀이터다. 놀이터였다. 과거에는 그랬다고 한다. 술에 취한 천상병이 시를 쓰고,  민병산이 '철학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던 시절. 그런 얘기를 어깨넘어로 귀동냥하거나 책으로만 주워들었지만, 듣기로 그 때는 그랬다고 한다. 지금의 인사동 모습에서 그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잔뜩 들어섰고, (스타벅스를 한글로 써서 인사동에 로컬라이징 했다고 마케팅하는 건 정말 너무 알량하지 않나.ㅋ) 휘황한 간판들 밑에 조악한 하회탈 모형과 효자손이 늘어섰다가, 외국인 관광객들은 호텔로 돌아가고, 한국인 젊은이들은 길 건너 종로의 술집으로 몰려들어가는 늦은 밤이 되면 모든 조명이 꺼지고 사람도 사라진다.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 술 한되를 받아들던 한량들의 모습같은 거 사실 인사동이 아니라 어디에 있을까. 듣기로 그랬다.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있었는지, 있는지도 모를 예술에 대한 동경은 더 가소롭다. 




# 노마드



종로경찰서 옆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인사동 끄트머리로 향하면, 높은 담벼락을 뒷배삼아 "이제 어디로 쫓아낼테냐" 하고 묻는 것 같은 술집들이 있다. '가까스로'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그 집들엔 머리 희끗한 이들이 둘러 앉아 그 높은 담벼락 바깥의 세계에서는 도통 하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을 한다. 누가 보기는 하는 지 알 수 없는 연극 포스터들이 군데군데 덕지덕지 붙어 있다. 옛날 노래소리와 그 옛날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다. 아마 그런 게 예술일까?. 모르겠다. 그들의 삶이 좋은 삶이었는지, 혹은 좋은 삶이 될지, 그냥 옛날을 그리워하고 세계에서 외면받는 것을 예술이라거나 풍류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니까 내가 괜한 '말' 따위에 집착하는 건 아닌지, 실은 모르겠다. 


어쨌거나 골목 한가운데 술집, '유목민', 노마드는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요즘처럼 덥지도 춥지도 않을 즈음이면 가게 바깥 골목에 자리를 벌이고 앉아서 소주잔이나 막걸리 사발 위로 담뱃재를 날리며 술을 마신다. 괜히 귀천에 앉아 천상병을 상상했던 것처럼, 거기 앉아서 시덥잖은 소리를 지껄이면서 나도 예술의 어느 한 구석에, 그 시절의 한량들이 벌이는 풍류의 한자락이라도 닿길 바라면서 가소롭고 알량한 허세를 부리는 거다.


인터넷에서 훔쳐온 사진이다. 앞으로는 이제 정말 사진을 열심히 찍겠습니다.



언제더라, 이삼년쯤 된 것 같은데. 그날도 골목 구탱이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 뒷자리에는 영화배우와 감독, 제작자들 일군이 앉아서 영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가끔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가끔은 어느 누구에 대한 험담을 상스런 육두문자를 섞어서 늘어놓고 있더라. 그 옆에는 환갑은 진즉에 넘었을 것 같은 남자들이 앉아서 음악얘기를 하고 있었다. 가끔 인권이, 현식이, 용필씨 같은 말들이 나오는 걸로 연배를 짐작했는데, 김현식 아저씨가 우리 엄마랑 동갑이니까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겠다. 


그날도 맞은 편에 앉은 친구의 얘기보다 옆테이블 소리에 더 흥미를 두는 못된 습성이 동해 그들의 얘기를 훔쳐듣고 있었다. 거개가 왕년에 자기가 얼마나 잘나가는 뮤지션이었는지 떠벌이는 자랑을 가장한 푸념이거나, 지금 잘 나가는 그 놈들이 얼마나 사기꾼이고 나쁜 놈들인지를 알려주는 험담을 가장한 질투이거나. 우리는 그 시시껍절한 소리들을 엿들으면서 나이듦과 낡아가는 것과, 부여잡아 썩어가는 것과, 나아가지 못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희망을 근거삼아 오직 새로운 상상력에 대한 긍정만이 예술이 아니겠느냐고 이야기했다. 맞아, 그 사람들 들으라는 듯이 그랬다. 아마 우리의 허세와 드러내기 부끄러운 동경이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 혹시나 우리도 늙어가지 않을까 무서워서, 혹시 우리의 삶에 정말로 예술이 깃들지 않으면 어쩌나 무서워서. 일부러. 


바이올린 가방을 든 초로의 남자가 골목으로 비척비척 들어선 건 더이상 얘기를 엿듣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인권이가 내 밑에서~~"라고 말하던 남자가 바이올린 남자에게 아는 체를 한다. 바이올린을 들춰맨 남자는 꾸벅 인사를 하고 그 테이블 옆에 서서 몇마디를 주고 받다가 이내 바이올린을 꺼냈다. 작은 스피커도 꺼냈다. 무슨 곡이었더라. 귀에는 익은데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연주했다. 작은 스피커는 찢어질 듯 듣기 싫은 소리를 냈고, 연주는 썩 훌륭하지 않았다. 그래도 술에 취한 가을 밤, 인사동 어름에 흐르는 바이올린 소리가 어떻게 싫겠어. 박수를 보냈다. 


우리의 박수가 향한 건 연주자였지만, 박수를 받은 건 '인권이를 밑에 뒀던' 남자였다. 묻지도 않은 곡목으로 시작한 곡 설명을 한참하던 그는 "이제 사람들이 잘 아는 가요로 한 곡 해봐"라고 말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태도였지만 사양할 새도, 말릴 새도 없이 연주는 시작됐다. 광화문 연가. 중간중간 음정도 틀리고, 악보를 잊은 듯 듬성듬성 연주가 끊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연주를 마치면 열심히 박수를 쳐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연주는 노마드 사장님의 제지로 중단됐다. "민원 들어오니까 연주는 안됩니다". 그럴리가.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을 내가 이자리에서 몇 번이나 봤는데. 아무리 그래도 연주중인 곡을 중간에 끊으면 어쩌나. 무례해. 무례하다고.


내가 그 무례하다고 눈살을 찌푸려봤자 무슨 상관이야. 바이올린 남자는 별다른 항의없이 바이올린과 스피커를 챙겼다. 그리고 연주를 시켰던 남자에게 막걸리 한사발을 얻어마시고선 자리를 떴다. 종로경찰서 사이로 난 좁은 길. 올 때처럼 비척비척. 그 모습을 보면서 쓸쓸해보인다고 말하려다 이내 관뒀다. 그의 연주가 어쨌건, 막걸리 한사발이나 비척거리는 걸음이나 내가 뭐라고. 그걸 쓸쓸하다고 말해. 



광화문연가를 연주할 때 동영상을 찍었다. 캡처한 후 사진은 부러 뿌옇게 보정했다.



# 예술이라 부르는 유목생활



무슨 의미로 지은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목은 어쩌면 그 예술을 운운하는 한량들에게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어느 한 곳이고 발붙이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안주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하는 일. 모든 것의 변화를 꿈꾸고, 늘 다음의 것을 상상하고 새로움을 향하고, 그래서 지금 있는 자리에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 떠남을 전제로 잠시간 머무는 것. 그러면 예술과 여행과 삶은 다 비슷한 것 아닐까. 우리는 끊임없이 떠나요. 우리는 끊임없이 헤어져요. 우리는 계속 부족해요. 한순간도 온전하고 안온할 수 없어요. 


며칠 전, 어떤 예술도 어떤 현실보다 극적일 수 없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현실의 삶이란 늘 더 절실하거나 부박해서, 고작 재현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진짜'의 무엇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 얘기를 할 때 노마드의 바이올린 남자를 떠올렸다. 좁은 골목길의 비척거리는 걸음과 예술에 대해서, 찢어진 소리를 내는 고물 스피커와 연주에 대해서, 소음 민원과 막걸리 한사발에 대해서. 그의 예술과 쓸쓸해보인다는 말에 대해서 떠올렸다. 좋은 예술이란 좋은 삶에서만 기인할 것이란 동경, 어떤 예술도 현실보다 극적일 순 없겠다는 말. 그 말과 동경이 허술한 것은 어쩌면 예술과 삶이라는 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겠다. 고 오늘은 생각했다. 바이올린 남자의 비척거리는 뒷태와 찢어진 스피커와 광화문 연가.


<아이다호>라는 영화를 봤을 때, 리버피닉스가 분한 마이크 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평생 길을 맛보며 길위에서 잠드는 도로의 감별사. 길 자체가 집이고 목적지이며 경유지였던 그. 떠나고 또 떠나며 어느 한 곳에도 머무르지 않았던 그의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스콧, 마이크의 사랑을 지나고, 길위의 삶을 지나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간 그처럼 안주하게되고 멈추게 되는 것이 싫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 사진을 핸드폰이나 모니터 화면 속에 박아넣고 그런 삶을 운동이나 예술 같은 표상에 끼워맞추는 얘기들을 많이도 지껄였는데. 실은 스콧의 삶도, 마이크의 삶도, 내 살아가는 꼬라지도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오늘은 했다. 바이올린 남자가 마신 막걸리와, 소음에 대한 민원과 나의 가난은. 떠나는 것만으  





예술이 살아가는 일만 못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이 곧 예술이고 예술은 좋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이 그냥 예술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계속 부유하며 행복함을 좆겠지. 부유하며 좋은 시를 찾는 것처럼. 다만 우리의 부유는 더 나은 곳을 향한 유목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떠나온 자리를 황폐하게 만드는 분탕질이진 않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앞으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부박함이란 내일의 나아짐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떠날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어제있던 곳이 아니라 내일 있을 곳으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삶이란 그런 것이고, 삶이 곧 예술이라면 예술도 그런 것이겠지. 어제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 않는 것. 들뢰즈는 "사막이나 스텝을 늘리되 그곳에서 인간이 살 수 없게 만들지는 말라"고 했다. 우리는 부유하며 떠난 곳을 황폐하게 할 것이 아니라 부유하며 우리의 스텝을, 사막을 조금씩 늘려 그 곳에 사람이 살게해야 한다.고 오늘은 생각했다. 



# 2018 트랜디 한량


인사동에 가봐야 천상병이나 박이엽, 민병산 같은 이들은 없다. 그들이 없으니 인사동도 이제 예전같지 않다.고 말하는 늙은 남자들은 아직 있다. 하지만 2018년 오늘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한량의 미덕이라면 그곳에 과거의 누가 있건, 오늘은 오늘의 술을 마시고 오늘의 노래를 부르면 될 일이다.ㅋ


노마드는 음식이 정갈하다. 추천 메뉴는 콩탕이다. 비지찌개처럼 걸쭉하고 되직하지 않다. 고소한 콩냄새와 담백한 국물이 좋아서 소주든 막걸리든 막 오조오억병씩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방문에서 더는 콩탕을 팔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콩국을 얻어오던 거래처 사장님이 돌아가셨단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법이니 새로운 안주를 개발하자. 지난 번엔 두부김치와 생태탕을 먹었다. 맛이 없을리가 없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 미세먼지 대신 담뱃재 날리는 노상에 죽치고 앉아 술을 먹는데, 좋지 않을리가 있나. 이게 2018 S/S 트랜드 조선 한량의 참모습이다.   


BGM은 전범선과 양반들로 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