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나라 - 사랑한다구요 젠장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머나먼 나라>다.


이 가난한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눈부신 햇살이 가득하고 졸음같은 풍요로움이 깃들어 따듯하고 유쾌하며 모든 사랑과 모든 평화가 있는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 꿈꾸던 소년들의 이야기.


드라마의 배경은 후암동 언덕배기의 골목이다. 지금은 그 골목의 달동네 마을도 사라졌다. 졸음같은 풍요와 모든 평화와 사랑을 꿈꾸던 소년들의 머나먼 나라는 여전히 어쩌면 앞으로도 없다.


골치아픈 생각들을 하고나선 비관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다 문득 이 드라마가 생각났다. 주인공들이 세상을 등지는 비극적인 결말에도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는 분명 '희망'이다. 골목길의 끝에 있을 머나먼 나라. 그건 긍정의 힘이니, 힐링이니 하는 싸구려 진통제와는 다른 희망이다. 오늘의 고통을 직시하는 삶. 그 고통을 딛고서야 저 너머의 머나먼 나라를 응시할 수 있다는 희망.


그래서 삶의 희망에 관해 알량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은 너무 무모하고 오만하다. 삶의 무게를 긍정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위로따위 실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그저 할 일은 내 골목길 끝의 머나먼 나라를 그리는 일이다.


드라마는 격정과 광기의 80년대가 끝나고 90년대가 스며든 골목길을 배경으로 했다. 쌓아둔 연탄이 사라진 것 말곤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자조. 실패와 좌절의 90년대가 지나고 21세기가 스며든 오늘의 골목길이라고 다를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눈부신 햇살이 가득하고 졸음같은 풍요로움이 깃들어 따듯하고 유쾌하며 모든 사랑과 모든 평화가 있는 나라"를 꿈꿔야 한다. 사실 그것말곤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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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전시하면서 그저 등장인물을 괴롭히는 것으로 현실을 운운하는 요즘의 드라마들은 실은 고통 포르노에 지나지 않는다.. 는 메모를 써놓았다. <나의 아저씨>같은 드라마. 누군가 쥐어주는 불민한 희망의 위로. 그건 사실 희망을 '쥐어줄 수 있는 그'에 대한 위로다. "사랑한다구요, 젠장"을 외치던 한수의 반짝거림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려운 근래의 TV 속.


하지만 그게 뭐 드라마 탓이겠나. 드라마와 영화는 반영의 현실인 법이다. 사랑한다구요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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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이제 2회를 봤을 뿐인데... 이 드라마는 48부작이다. 엉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