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cchio Primavera'에 해당되는 글 123건

단상


1.


영등포역, 그는 사람과 세상의 안녕을 끝없이 노래했지만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정말 눈길은커녕 욕설조차 주지 않는 철저한 외면.

조금 지나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섀도복싱을 하던 청년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면서 피식거렸다. 나도.
그는 저 사진속의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성금함에 돈을 넣었다. 다시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했다.

'이상한 사람'

자신의 가난을 아랑곳 않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이와 다른 사람의 눈길보다 대화가 필요한 이에게 말을 걸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2.
녹색당 창당대회에서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번거롭구나'

그 번거로움을 귀찮아하고 "뜻이 맞으니 그저 힘모으고 결의모아 믿고 맡기자"는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과분하다.

대중에 대한 신뢰. 같은 말을 믿지 않는다. 대중은 원래 우매하고 아둔하다. 정념적이고 즉물적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계몽하고 이끌만한 깜냥도 있지 않다. 나도 그 어리석고 우매한데다 정념적이고 즉물적인 대중이기 때문이다.

다만 공부하고 대화하며 쌓아갈거다. 그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말은 너무 잔인하다. 내게도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3.
희망광장 '꽃들에게 희망을' 콘서트를 취재하러 갔더니 허크와 윈디시티에 와이낫까지 나타났다.
취재를 핑계로 백스테이지에서 그들을 만났다. 아, 이런게 보람이구나.ㅋ

싸인받았다. 하하하.



4.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자기 상태예요. 글쓰는 사람은 글로, 음악 만드는 사람은 음악으로 현재 상태를 스스로 노출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수용자들도 서서히 걸러지면서 나중에 든든한 보루가 되는 것 같아요. 일일이 상대의 기준에 맞춰 흔들리다보면 나는 나대로 소모돼 만신창이가 되고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그래, 얘는 원래 하라는 대로 하는 애니까”라고 의식해요. 포지션이 괴상하게 역전되는 거죠. - 고현정, 씨네21 

 이 누나를 싫어 할 수 없는 이유다.

5.
쓸 말이 많을 것 같아서 열었는데, 별로 할 말이 없구나.
중요한건 말리 아니라고 한다. 위에 인용한 저 기사에서 고현정 누나는 "너무 징징거리는 남자는 별로"라고도 하시더라.

그러니까 노래나 하나.



이영훈 - 하품

이문세 노래 만들어주던 이영훈 아님.ㅋ

단상


1.
“길거리에서 우연히 시체를 목격한 일은 잊힐 수도 있겠지만 햄릿의 죽음은 영원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에 의해 형식화되지 않은 인생 그 자체는 혼란스러운 경험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 로버트 매키

지난 주 한겨레21을 읽다가 고나무 기자의 칼럼에 밑줄을 그었다.(고나무 기자도 인용해온거지만, 어쨌든ㅋ) 신문이나 잡지를 오려본게 얼마만이더라. 이외수 아저씨는 혼을 바칠 예술을 찾을 때까지 자살을 미뤄두었다고 했다. 혼을 다 할 예술, 그걸 아직 몰라서 내 삶은 혼란으로만 남아있다.

2.
'몸과 삶의 소외를 극복하는 지혜- 고미숙, 경향신문


건강은 다름이 아니라 내 몸과 소통하는 일이다.
사랑은 당신과 소통하는 일이고, 신앙은 신과 소통하는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은 대상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일이다.
우주 삼라만상과 대화 할 수 있게된다면 그것이 아마 해탈일거다.

자본이나 기술에게 강요된 기준으로 자기 몸과 대화를 닫아버려선 안된다.
강요된 욕망이 아니라, 나를 살아가게 해 줄 지혜를 갖는 일이 중요하다.
이게 어떻게 여성의 문제이기만 할까.
다만 물론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유독 폭력적이긴 하지만.

3.
편집장과 대화하다가 녹색당에 가입했단 얘기를 했다.
편집장은 정치활동을 존중하고 녹색당과 생태운동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줬지만,
'제도권 정당'이 되기위한 녹색당의 활동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존의 제도를 부수기보단 그 제도를 일단 인정하고 시작하는 일의 한계성에 대한 지적이다.
맞는 말이었다. 주인집을 부수겠다면서 주인집 망치를 빌려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내 당 가입은 별반 깊은 고민 없이, 창당에 한 손이라도 얹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이제와 할 수 있는 말이라야 김종철 선생님을 비롯한 여럿 선생님들의 고민이 녹아있으니 잘 될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다는 무책임뿐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급진적이고 더 재미있는 생태운동에 대한 고민을 확장시키는 일이다.

일단 돌아오는 일요일 녹색당이 창당한다. 이 사회의 새로운 역사가 됐으면 좋겠다.

4.
앞으론 주로 사회관련 기사를 쓰게 될 것 같다.
워낙에 작은 언론사고 기자 한 명, 한 명이 맡은 분야가 광범위해서 특정 지을순 없겠지만.
지금은 아직 출입 할 수 있는 곳도 거의 없고, 일에 익숙하지 않은 수습나부랭이라, 사무실에 앉아서 다른 기사나 자료를 뒤져 기사를 작성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요즘은 주로 언론사들의 파업에 관한 기사다. 재밌는 작업이다. 글을 쓰고, 쓴 글을 누가 읽어주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인것 같다. 하지만 재밌는 와중에도 더 하고싶은 일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어찌 생각하면 즐거운 딜레마.일수도 있을까.

여튼 2005년, 통일전사 이후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5.
간만에 만화책을 왕창 빌려왔다. 심심파적으로 만화방에 들어갔던게 화근. 시간내에 다 보지 못한 만화책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빌려왔다. 대여점이 버스 두정거장 거리라는게 함정.ㅋ 뭐 여튼 빌리배트는 엄청 재밌다. 잘만 진행해 나가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최고작이 될 수도.

아, 내내 외면하다 이제사 본 아다치 미츠루의 모험소년도 추천. 진베도 모험소년도 아다치 미츠루는 혹시 단편에 더 큰 역량을 보유한거 아닐까
   
6.



꽃다지 - 노래의 꿈

단상


1.
이제 일한다. 뭐 잘.. 될거다. 응?

2.
그래서 당분간 조리사 자격증은 안녕. 계속 모래알로 밥해야겠다.

3.
이번주 한겨레21 커버스토리는 '진(중권)의 전쟁'. 재밌다. 근래 본 한겨레21중 제일 재밌는 듯.
진중권이 말을 밉게해서 문제지만, 딱히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공식입장은)사민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이지만, 사실 본질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미국식 자유주의자.라는 이택광 교수의 평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지만 한국사회처럼 상식도 합리도 없는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박노자, 김규항보다 더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말엔 더 크게 끄덕끄덕.
단기필마로 이 무식한 사회에서 먹물의 소임을 다하는, 정치력따위 전혀없는 그는 어쩌면 무사. 그 중에서도 문파와 계보를 갖지 않고 홀로 정처없이 싸움터를 찾아다니는, 혹은 싸움터를 만들고 다니는 강호의 외로운 낭인무사. 그를 딱히 응원하지는 않는다. 원래 외로운 낭인무사는 응원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강호를 유랑하다 어느 객잔에서 우연히 만나면 잘담근 죽엽청이나 한 주전자 배달해줘야지.ㅋ

4,
공감에 강허달림 공연을 보러갔는데, 어느 블로그에서 봤다는 2집음반 평을 얘기하더라. 듣으면서 '나랑 비슷한 평을 하는 사람이 많구나' 싶었는데.. 계속 듣자니, 아무래도 여기 들어왔다 간 것 같다.
깨달음은 앞으로 꼬박꼬박 김수현이나 유아인, 박민영, 신세경, 송중기 따위의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이 잔뜩 들어가는 글을 써서 그네들이 내 블로그에 들오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겠다는 것 쯤.
하지만 그동안 이 블로그에 제일 많이 등장한 이름이 김어준, 정봉주, 나꼼수라는게 함정.ㅋ

5.
한동안 '대화의 즐거움'이란 말을 생각했다. 대화가 즐거운 상대가 마땅치 않으니까.
그러니까 일테면 원피스를 얘기하면 나루토로 받아주고, 들국화를 떠올리면 김현식으로 이어주는 대화.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주는 호사를 바라지도 않는다. 개떡같이 얘기하면 못해도 개떡은 받아주는 대화.
찰떡같이 얘기했는데, '찰떡 맛있으니까 두번머거'이러고 앉아 있으면 귓방맹이 날아가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뭐 여튼, 얼마전엔 대화가 즐거운 어느 후배랑 술을 마시다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난 그냥 대화가 즐거운 말벗 몇몇 외엔 다 싫다고 했더니, 이 친구는 끝까지 사람들에게 말을 걸겠다고 한다.
오호, 인격자다. 사실 삶이고, 영화고, 운동이고, 뭐시깽이고 본질은 그것인데 말이다. 끊임없이 말을 거는 것.
근데, 알면서 왜 이러니.

6.
프로야구 승부조작에 엘지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하여튼 안좋은 일에는 결코 빠지는 법이 없다. 일본 고교야구 만화 에이스 투수 간지를 뽐내던 박현준이 지목됐다. 본인은 아니라고 극구부인하고 있다니까 지켜봐야겠지만, 슬픈 예감은 틀린 법이 없으니까 왠지 불안하다. 이 기회에 야구와 엘지에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면 좋겠지만, 아마 안될거야. 젝일.

7.
저번에 충동적으로(!) 시작한 술집유랑기의 2편과 3편을 각각 반절 정도씩 써놓고 더이상 쓰지 못하고 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냐. 그냥 쓸 말도 없고 귀찮은거지..ㅋ 자꾸 쓰다보니 한남동 시절 개골목 생각만 난다. 술집에 대한 얘기가 뭐 별다를게 있겠나. 결국 공간을 빌은 시간들에 대한 기억 얘기. 그렇다면 이렇게 저렇게 말도 일도많았던 그 할머니집 닭도리탕과 서비스 계란말이와 소주들이 가장 절절할밖에. 아, 개골목 가고싶다. 이젠 무슨 엄청 비싸보이는 수입 오도바이 가게가 된것 같던데.

8.
우리동네 편의점에서 주말 낮시간에 일하는 알바생은 참 친절하다. 이제 대학 2학년쯤 돼보이는 어린 여성.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명랑 쾌활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듯이 인사를 하고, 나갈때도 고개 숙여 인사한다. 덩달아 나도 반갑게 인사하게되는. 하지만 인사말고 그 외의 모든 부분에서 너무 서비스 정신에 입각해있는 모습은 보기에 마뜩찮다. 나도 편의점 알바 해봐서 알지만 그렇게 교육하니까 이 착하고 긍정적인(멋대로 성격파악 완료했음) 친구가 배운대로 일하는 것이겠지만. 편의점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도 무릎꿇고 주문받는 알바생들 난 부담스럽고 민망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114에 전화했을때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9.
휘트니 휴스턴은 죽었고 패티김은 떠났다(지만 1년동안 장기 투어 한다고) .
하지만 강허달림은 2집을 냈고 아이유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응?
늘 새로운 것은 있게 마련이고 다한 것은 떠나게 마련이다.
정해진 시각을 어김없이 지는 석양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 다시 또 떠오를 것을 아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이유 노래나. 슬픈인연. 이게 슬픈 노래의 거의 최고봉이다.
나는 가수다에서 장혜진이 부른 것보다 이게 훨씬 좋다. 이건 주관이라곤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올곧은 팩트다.
 

단상


1.
담배를 사러가는데 별로 춥지 않았다. 심지어 얇은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나갔는데. 그러고보니 벌써 입춘도 지나 이월중순이다. 며칠 있으면 다시 봄. 봄이 설레기보다 겨울이 섦다.

2.
며칠 전엔 남에게 내가 쓴 글을 보냈다. 미루다 미루다 새벽녘에야 졸린 눈 부비며 쓴 글이라는 핑계가 구차하지만 그 핑계말곤 붙잡을 위안도 없이 졸렬하고 부끄러운 글들이었다. 정말이지 손발이 퇴갤할 것 같아. 사실 언제 쓴 글이라고 부끄럽지 않았냐만은, 그 부끄러움에도 강도란게 있는 법이니까. 그러고선 또 부끄럽지 않은 척, 후안무치하게 글쓰고 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지껄여댔는데, 그건 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이렇게 부끄러웠다고 토설하는 알량한 자기위안적 고백은 또. 침 세번 뱉는 것으로 모든 선언에 신뢰감을 부여하던 그 어린 놀이가 더 진정성 있어뵌다. 이건 대낮의 길 한복판에서 수음을 하는 짓.

3.
스물 일곱해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야식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출근도장을 찍고있을 이 시간에 치킨과 맥주생각이 간절하다. 물론 먹지는 않는다. 그럴 돈이 없는게 오직 한가지 이유다. 하하하.

4.
먹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올 해엔 자격증을 하나 따고싶다. 조리사 자격증. 자꾸 내 요리 실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동분자들이 나타난다. 난 모래알로 밥을 짓고, 솔방울로 탕수육을 만드는 인스턴트 음식계의 한복례. 맛있는 음식보다 종이쪼가리를 실존적 증거로 채택하는 우둔한 혓바닥들을 전부 아오지행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다시금 새벽별을 보며 연필을 잡기로 다짐했다. 요리실력을 증명하고자 국자와 후라이팬보다 연필과 참고서를 잡아야하는 이 문화적 후진국의 앞날이 심히 통탄스럽지만, 난 왜 또 그걸 굳이 증명하고 싶어서...응?
그냥 숙원사업인 대학가 인심좋은 털보뚱보 아저씨네 술집의 주방장겸 호스트겸 디제이를 위한 고되고 묵묵한 고련과정이라고 생각해야지.

5.
오래간만에 나온 강허달림 언니의 신보. 당연히 좋다.
하지만 왠지 같이 찌질하게 우울해서 위로되던 누나였는데, 어느 날인가 더 어른스러워지고 여유도 생겨서 그저 괜찮다고 얘기해주는 막내이모가 된 느낌이랄까. 그래도 당연히 좋다.
한국말로 노래하는 여성 중에서 지금은 이 언니가 (아마)1등 아닐까.


강허달림 - 꼭 안아주세요

6.
얼마전엔 생활이 궁핍하고 고되다며 질질짜는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들었다. 도시가스가 끊겨서 집안이 냉골이고 당장 내일 식비와 차비가 걱정이고, 통장에 기십만원도 없는 생활이 비참하다고 했다. 그 친구의 힘듦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얌마 그거 내 얘기잖아, 나 안 힘들면 병신인거냐?' 어쨌든 술값은 옆에 앉았던 돈 잘버는 친구가 냈다. 난 사실 그게 더 비참했다.

7.
예전에 엄청 좋아하며 따라다니던 선배가 있었다. 우리학교 총학생회장이었는데, 지금도 "그때 형이 삼계탕 사주면서 꼬시지만 않았으면 지금 이렇게 살고있진 않을거"라는 농담을 한다. 여하튼 내 대학생활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이다. 난 엄청 착하고 말 잘듣는 후배여서 그 양반도 나 되게 예뻐했던거 같다. 내가 그 양반 군대갔을 때 명절때마다 명절음식 싸들고 면회 다니던 그런 착한 후배다. 얼마전에 오래간만에 그 양반하고 술을 마셨는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된다는걸 억지에 억지를 써서 그 양반 사는 동네까지 찾아가서 술을 얻어마셨다. 내 생일이었다. 여전히 변변치못하게 살고 있는 내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사실 조금(보단 훨씬 많이) 못마땅했다. '변절'운운하는게 아니다.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키고 그 삶에 대한 확신으로 다시 스스로를 위안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에겐 그 시절의 운동도 그런 것이었을까. 또 당분간 만나지 않을 것 같다.

8.
낮잠을 자고, 시덥지 않은 책을 읽고, 개콘 재방송을 보면서 낄낄거리다 식은 밥에 남은 반찬을 몽창 때려넣고 특제 비빔밥을 만들어 우걱거리면서 뉴스를 봤다. 쌍용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앞으론 모래알로 밥을 짓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까끌거려서야.

9.
목수정씨 좋아했는데, 이제 별로 안좋아하련다.
정명훈 사건에서 드러난 태도는 예민함의 발로라고 생각했고, 그 예민함이 남한사회처럼 두루뭉술이 미덕인 사회에선, 특히 좌파에겐 더욱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예민함이 다소 감정적으로 발현되는 것도 토론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일이고 지속되는 토론은 결국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예민함과 정연한 논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수정씨가 선언하듯 사건을 종결하고 블로그를 닫았을 때도 예민한 감수성에 진중권의 비수같은 말들이(사실 그의 언어에 따듯함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같은게 없는건 사실이니까) 상처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목수정씨는 얼마전 다시 블로그를 열었다. 그리고 '나꼼수와 비키니 사건'에 대한 글을 포스팅했다. 그녀는 이 일을 두루뭉술하게 넘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포용과 관용이라고. 어디에서도 예민함은 찾기 어렵다. 어느 순간에, 어느 지점에만 예민하고 또 다른 순간엔 다시 두루뭉술, 포용과 관용을 운운하는 태도에서 명확한 정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사실 자신에 대한 공격과 자신이 애초에 상정한 '적'에게만 발로되는 공격성으로 해석하는게 되는 것이 어쩌면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야초부터 나꼼수를 옹호하는 태도도 영 마뜩치 않은 판이었다.
그녀의 책들을 통해서 그녀의 삶이나 그녀의 글, 바라는 세상에 대해 동조하고 또 그녀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호감은 말한 것처럼 그녀가 갖는 예민함이 바탕이었다. 아끼고 좋아하는 팬심에서 하는 말이다. 좀 정신차리고 살자.

10.
하이쿠나 한 편.

이 세상은 /
나비조차 먹고 살기 위해 바쁘구나

단상


1.
난생처음으로 당원가입을 했다. 녹색당원이다.
난 정당정치에 회의적이지만 그것은 오직 권력획득만을 지상의 목적으로 하여 개개의 정치주체를 타자화 시키는 기성의 정당들. 나아가 스스로 진보정당, 좌파정당이라 칭하면서도 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당들과 '그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이고 회의다.
권력보단 가치와 진보에 방점을 찍는 정당에 대한 기대는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정당적 정당'에 대한 김종철 선생님의 고민에 동의한다.

여하튼 이번에야 알았는데 5개도시에서 각 1000명 이상씩, 5000명의 당원을 갖추지 못하면 정당으로 발기하지 못한다고 한다. 부랴부랴 고정수입도 없는 주제에 가입한 이유다. 딱히 지지 정당이 없다면 당 가입을 고민해주시라. 우리 사회도 변변한 녹색당을 가져볼 때가 이미 지났다.

2.
한겨레21 ; 19세 미만 청소년들은 보지 마시오

'폭력을 가르치는 만화'라는 말에 헛웃음을 짓지만 사실 씁쓸한 일이다.
폭력을 가르치는 것은 교실 안과 밖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들이다. 그 폭력을 받아들이는 일과 행사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세상이, 또 그 폭력 자체가 다시 폭력을 잉태하고 대물림한다.
만화가 폭력을 가르친다는 말은 틀렸다. 다만 이것은 폭력을 가리킬 뿐이다. 가르치는 것과 가리키는 것의 차이도 모르다니, 학교에서 폭력말곤 배운게 없나보다.

3.
가슴응원 운운해서 뭔가 봤더니 또 나꼼수고 정봉주다.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통해 성적 환상을 유도함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여성을 오직 성적 대상으로만 삼는 일이다. 그것은 여성을 엄연한 정치주체로서 인식하지 않고 타자화하는 것이다. 맘에 안드는 것은 이런 마초이즘이 남한사회에서 진보를 자처한다는 것이고, 분노하는 지점은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똥멍충이들이 스스로를 영웅시하는 것이다. 진지함을 혐오하고 낄낄거리면서 즐겁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네를 운운하면서 이번엔 표현의 자유니 하는 뜬구름 잡는 얘기를 들고나오는 짓거리라니.

링크의 글이 이 사건에 대한 분노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듯.

4.
결국 엠피쓰리를 샀다. Cowon S9.

중고라 이렇게 으리번쩍하진 않다.


G마켓에서 싸구려 중국산을 사려고 했으나, 중고나라에서라면 같은 가격에 좋은 메이커 제품을 살 수 있다는 조언에 광클질. 2천만 스마트폰 유저들의 과거 엠피쓰리는 어디로 간 것이냐는 나의 한탄에 대한 대답은 중고나라가 갖고 있었다. 무려 3만원에 저 좋은 엠피삼을 겟하여 이제 나도 다시 귀가 풍족한 남자가 됐다. 얼마전에 나온 달림언니 음악을 계속 못듣고 있었는데, 어제 오늘 온종일 강허달림을 들을 수 있었다.ㅋ


5.

어제 술자리에서 온갖 말들이 오갔지만 가장 피치가 올랐던건 역시 드라마 얘기.

하이킥의 결말에 대한 예상을 쏟아냈는데, 납득을 얻어냈다. 그건 90회쯤 되면 구체적으로 설을 풀어보기로 하고. 어쨌든 가장 초미의 관심사인 이적의 아내에 대해 난 크리스탈을 예상한다. 이건 맑스주의적 문화분석과 라캉적 정신분석학에 의거한 데카당스적이고 다다이즘에 닿은 에솔로지 연구의 일환이다. 그러니까 헛소리란 얘기.ㅋ


6.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가 두 무리의 남자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첫번째 무리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소년들이었다. 주제는 당연히 여자였고, 그 중의 한 명이 꽤나 진지하게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듯 했다. 그 또래의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욕설일색인지 알고있기에 단 한마디의 욕설도 뱉지 않는 그들의 대화에서 그 순수함과 진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런거지않나, 그녀를 상대로 음란한 상상을 하거나 거친 표현을 하는 일 자체가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거.

갈아탄 버스에서 만난 두번째 무리는 서른을 갓 넘긴 듯 보이는 직장인들이었다. 지들끼리 속닥거리며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내가 비록 한쪽 귀가 안들리지만, 이런 얘기는 엄청 잘 잡아냄) 갖은 음담패설과 어디 여자가 예쁘고 어디가 비싸다는 얘기를 하면서 낄낄거리는 이들을 보다 문득 아까 봤던 소년들이 생각났다. 그 소년들은 나중에 저런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랑의 대상과 욕구의 대상, 결국 여성을 대상으로서만 바라보는 시시껍절한 멍충이 마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7.



Travis - Driftwood

어제 술자리의 잡설들 중 또 하나.
"오아시스도 없으니 이젠 트래비스가 1등인가?"
"아직 보노 영감님도 계심.ㅋ"

뭐 어쨌든 트래비스.

단상


1.


이것이 명절의 진수.jpg

이번 명절, 불패의 신화를 새로썼다. 모친은 예년처럼 판을 뒤집진 않았지만 나중엔 정색하며 똥비를 흔들면 따따블이란 규칙을 내세웠다. 잃을수록 판을 키우고싶은 마음을 억제해야 돈을 딸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알려드렸으나 끝끝내 평정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쓰리고를 맞으셨다.

돈을 딴 사람이 술을 사기로했기 때문에 치킨과 맥주를 샀지만, 잃은 돈을 주량으로 만회하겠다는듯이 들이키는 모친의 과음으로 딴 돈의 배가 넘는 돈을 탕진해야했다. But 이것이 명절의 진수. 명절음식따위 떡국 없어도 오늘만 같으라는 마음이면 그것이 명절. (아, 이건 한가위용 격언인가?ㅋ)

2.



Two Door Cinema Club - This Is The Life

요 며칠 내도록 듣고있는 투 도어 시네마 클럽.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치는 예쁜 아일랜드 소년들.
제길, 이건 뭐 거의 판타지잖아.ㅋ

어쨌든 나이도 어린 것들이 바락바락 이것이 삶이라며 외치는 소리가 듣기 싫지 않다.
사실 어린 날은 (예수나 부처가 아니라면) 삶의 진실이 이것이라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유일한 시절이니까.

3.
명절 아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싸움을 보았다.
내용인즉슨 할아버지의 자신은 처가에 해야 할 도리는 다한 더할나위 없는 모범사위였다는 주장에 평생을 살면서 당신의 부모님 제사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한서린 분노가 부딪히며 만들어진 대결이었다.

결혼생활을 60년이 넘게 해오면서도 잊지 못하는 한이라니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 짐작도 할 수 없겠단 안타까움과, 진심으로 자신은 처가에 도리를 다했다는 할아버지의 조금은 황당한 당당함에 대한 안타까움이 떠올랐으나 사실 안타까움보다는 웃겼다.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것이 평생의 한이었던 할머니가 왜 명절에 친정엘 가냐고 엄마에게 윽박 지르며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던 기억이 선하기 때문이다. 또 웃으면서 자기는 외가집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며 할머니 편을 들던 아버지가 며칠전 내게 할아버지와 똑같은 대사를 (신기하게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야말로 외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소름끼치도록 철저한 이중잣대.

3-1.
요즘 화제인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다. 그건 작금의 사태가 제도의 미흡함이나 처벌의 경중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에 피해를 입은 또다른 피해자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폭력을 또다시 누군가에게로 전이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폭력으로부터 배운 것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의 정당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력은 전염되고 대물림된다. 결국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

웃긴 것이 명절 아침 노부부의 싸움을 보면서 비슷한 것을 생각했다.
가해자는 잘못을 기억하지 않고, 피해자는 정당화의 과정을 거쳐 다시금 가해자로 둔갑한다.
사실 그건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과 사유의 과정도, 타인과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과정도 없기 때문이다. 서러움과 분노가 다시 다른 약자에게 행해지는 폭력으로 변화하는 과정. 그것이 모든 폭력의 발생 과정이다.

4.
말나온김에 가족얘기 하나 더.
외가와 친가 양쪽에 소위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이혼과 별거, 재혼, 사별까지. 얼마전 할머니는 내게 50이 넘은 자식의 재혼을 위한 상견례까지 해야하는 당신의 팔자를 한탄하셨다. 그러면서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된 손주들의 결혼걱정과 (거~~~의)연이 끊어진 사돈댁 손주(그러니까 내 외사촌들)의 결혼소식까지도 걱정하셨다.

내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긍정에 염증을 내고, 결혼제도를 회의하는 까닭은 전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합리적인 것이지만, 이런 가정환경이 영향을 전혀 주지 않은건 아니겠다. 평생을 두고 어떻게 변할지 모를 마음만을 담보로 관계를 장담하고 책임지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 마음 담보만으로는 부족해서 법적 구속력까지 만들어 놓은게 결혼의 정체라서 담보가 신용을 잃었을 때 얼마나 귀찮고 애매한 문제들이 나서는가. 오직 가족만이 최고라고 울부짖듯 강변하는 이 사회는 그 행위 자체로 얼마나 스스로 납득하고 세뇌하고 있는가. 결혼따위, 가족따위.

5.
여행을 한 번 더 가야겠다.
이번엔 당황이나 혼란같은거 말고 정말 훌쩍 다녀와야지.

120118 - 갑자기 떠난 보령 기차여행


언제나 그랬듯이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바람 쐬러.란 말이 가장 정확한 나들이의 이유였다.
어디라도 좋으니 무작정 뜨고 싶었고, 기차가 타고싶었고, 항구가 보고싶었다.
그렇게 장항선 노선을 살펴보다 무심결에 클릭한 청소역.
역 이름과, 열차 시간과, 운임과, 청소가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라는 정보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채 출발.
 





기차는 아주 오래간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멀리가는 기차는.
철도원이나 편지같은 영화와 많았던 드라마가 심어준 간이역에 대한 환상은 그냥 환상이다.
간이역은 그냥 간이역이다. 다만 여기 내리는 승객은 나 혼자였고, 역장 아저씨 혼자서 역을 지키고 있었고, 하루에 정차하는 기차가 단 세 대뿐이라는 것쯤.ㅋ

기차여행에 대한 추억은 아마 대성리나 강촌으로 가는 경춘선 엠티코스가 가장 흔하겠지만,
내 기차여행의 추억은 통일호 입석 밤기차를 타고 강원도 어딘가로 가던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다. 얼마전에서야 엄마에게 들으니 그 여행은 동네 아줌마들이 아저씨들을 죄다 따돌리고 애들만 데리고 몰래 떠났던 낭만 여행. 그러고 보니 그 때 엄마를 비롯한 그녀들은 삼십대였구나.



관광안내도를 보고 찾은 항구는 오천항이다. 무려 '보령 8경'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관광안내도에 박아뒀더라만, 사실 딱히.

항구가 보고싶었던건 아마 어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인것 같다.
글줄이나 읽었다며 세상아 덤비라 선언하는 한량들에 비한다면 자연에서 삶을 영위하는 어부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심지어 그들은 종종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에 잡아먹히기도 하는데. 매 순간 거대한 존재 앞에 겸손해질 마음. 그런 의미에서 농부와는 또 다른 위대함.



어느 항구나 마찬가지지만, 항구 곳곳엔 폐선박들이 널부러져있다.
물 위를 떠나는 순간 존재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들.
'영광'이란 이름의 폐선이 기묘했다.
낡은 영광을 부여쥐고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렇다고 살아있는 건 아니다.


항구 바로 옆에는 충청 수영성이 있다.
요즘 말로하면 충청지역 해군사령부쯤 되는건가.
건물들은 거의 다 소실됐고 성벽과 사진의 건물 한 채만 남아있다. 진휼청이라던가.
그나마 그것도 설계도면을 보고 진휼청일 것이라고 유추한 거란다.

뭐, 이런 저런 것들에서 자꾸 떠오르는 말은 '지나가면 사라질 것들'이었다.



수영성에서 본 오천항 전경.

그리고 이 사진을 찍다가 겨우 깨달은 사실은 오천항에서는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천항은 방조제앞 만에 만들어진 항구인 것이다.
서해인데 무려 낙조를 못 볼 수는 없었다. 결국 의지해야 할 것은 다시 관광안내도. 보령은 관광객 유치에 꽤나 열을 올리는건지 가는 곳곳마다 대문짝만한 관광안내도가 세워져있다.
감사함미다 보령군수님(시장인가?).




관광안내도의 은혜를받아 학성 해변으로 건너왔다.
지도상에선 방조제만 건너에 바로라 엄청 가까울줄 알았는데, 멀다. 겁내 멀다.
이 먼 길을 찾아오는 파란만장 버라이어티한 과정이 사실 이번 나들이의 핵심 얘깃꺼리지만,
그건 패스. 너무 구차하고 힘들고 길다.

다만 깨달음은 남한은 돈으로 안되는게 없는 사회다. 시골은 서울에 비해 굉장히 불편하다. 쯤이랄까.ㅋ 





여하튼 사람 한 명 없는 학성리 해변을 이리저리 어슬렁 거리며 노래부르고 담배피고 사진찍고.
오래된 기차역과, 폐선과, 늙은 어부와, 사람없는 서해바다와, 낙조는 앞으로의 일 보다 지나간 시간들을 더 떠올리게 한다.

다만 누구나 저리 아름답게 저물 수 있는 것도, 끝마쳤기때문에 내일이면 찬연하게 떠오를 수 있는것도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있다.

무려 새 해인데 동해로 가서 일출을 볼걸 그랬나.ㅋ


하루에 세 번 있는 차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역 앞 다방에 들었다.
나 스타벅스는 안가지만, 별다방은 가는 남자임.

한참을 혼자서 멍하니 앉아있자니 주인 아줌마가 누구 기다리고 있냐고 묻는다. 기차시간 기다리는 중이라고 대답하는데 왠지 웃겼다. 기차를 기다리든, 사람을 기다리든 기다리는 사람 얼굴은 매 한가지일텐데, 저 아줌마는 내가 당연히 사람을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어지간히 외로워 보이거나, 그 아줌마가 늘 사람 곁에서 살아가거나.

커피를 시켜놓고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낄낄거리다 문 닫는다는 주인아줌마의 압박에 계산을 하려는데 아줌마가 눈을 부라린다. 카드 결제가 되는 다방이 어딨냐며. 천 오백원짜리 커피마시고 카드 내밀면 어쩌냐며 짜증을.
700원짜리 삼각김밥도 카드로 결제하는 나지만, 왠지 엄청난 대죄를 지은 것 같아서 굽실굽실. 결국 다음에 드리기로 했다. 다음이 도대체 언제일까.





밤의 청소역은 오전과는 또 다른 모습.
일리가 없잖아. 그게 그거지.ㅋ 다만 이번엔 같이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역장아저씨 퇴근을 기다리는 이미 전작이 있는 친구가 사무실에 역시 있었다는게 오전과는 다른 점.

나보다 먼저와서 대합실에서 책을 읽고있던 저 청년은 내가 대합실에 들어가니 인사하면서 난로를 내 쪽으로 밀어줬다. 어색하게 고맙습니다.  무려 잘생겼었는데. 돌아오는 기차에서 몇 마디라도 좀 더 해볼걸. 난 늘 이런게 문제.


어쨌든 이렇게 갑작 나들이는 끗.
알콜 한 방울 섭취하지 않은 건전하고 바른 나들이 문화를 지'양'합시다.
역시 여행의 매력은 알콜.



++덧



오천항 일대를 휘적거리다 셀카 한 장.
얼굴을 가리니 미남이구나.

단상


1.
생명의 가치를 지키자던 수녀님은 체포되고, 국가보안법은 애먼 청년을 구속했다. 어떤 노동자는 제 몸에 불을질러 결국 목숨을 잃었고, 며칠 후는 국가권력에 의해 도심 한복판에서 불타죽은 이들의 3주기다. 심지어 그 아들은 살인죄로 수감중이다. 30년 전쯤의 얘기가 아니다. 이게 2012년 대한민국의 살풍경이다.
이런 일들은 고작 대통령 때문에 발생했거나 저 간악한 미제의 간교나 초국적 기업들의 악랄한 신자유주의 수탈 때문이 아니다. 당신과 나의 탓이다. 수전손택은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가난을 부추긴다고 애기했다.
당신과 내가 알게모르게 좇고있는 성장과 성공의 신화, 모르는 척 소비하는 수천억배럴의 시체썩은 기름들, 알량한 연민의 눈길이나 몇 시간의 '봉사'로 만족하는 허위와 허식이 사실은 이 모든 일들을 부추기고 있다.
할 일은 보일러를 끄고 긴팔 내복을 갖춰입는 일, 주식시세표, 부동산 시세표, 뉴타운 예정지, 처세술, 재테크, 알량한 자기계발서를 내던지는 일, 조금 더 가난해질 일.

2.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사람들이 멍청해'
세상의 온갖 부조리들이나, 맹목적 신앙으로 이성을 잃은 종자들이나,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며 자기는 마치 세상밖에서 살아가는 양 히히덕거리는 모질이들이나, 아직도 원더걸스가 소녀시대보다 예쁘다는 미학적 맹인들을, 그러니까 스스로 '대중'이라 부르는 치들을 보면서 늘 '멍충이!!!'라고 말한다. 그걸 지켜보던 어느 후배가 이르길,
"형은 여전히 사람들한테 많은 희망을 갖고있나봐요. 역시 빨갱이."

이거 뭐 이러다 훈민정음이라도 만들 기세.ㅋ

3.
요즘 유행인 인디언식 이름짓기. 내 이름은 '지혜로운 태양의 죽음'
이건 주사파의 몰락을 예언하는 이름 아니냐며.. ㅎㄷㄷ
이름이란건 정체성의 발현이다. 서술형의 이름, 자연에 자신을 투영하여 그 지혜를 빌리려는 자연친화적 사상은 현명하고 아름답다. 지금 이런게 유행인것은 어쩌면 도무지 삶의, 자기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이들의 유희일지도 모른다.

덧붙여, 인디언이라는 말은 틀렸다. 그건 아메리카를 인도로 착각한 어리석은 유럽인들의 언어. 타자화된 언어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정확한 표현.

4.
며칠 전 하이킥에 신세경이 나온 에피가 좋았다. 3시즌의 몇몇 에피에 나타난 지난 시즌의 흔적들을 보면서 김병욱 감독이 결말에 쏟아진 질타에 신경질이 좀 났었겠단 생각을 했었는데, 타히티가 아니라 타이완으로(이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태평양의 작고 낙후된 섬나라가 아니라 최첨단을 달리는 아시아의 중심으로 떠난다는 점.) 무사히 떠나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경이의 편지는 그 질타들에 대한 대답같기도. 아니면 던져주는 떡밥같기도. 옛다 먹고 떨어져라.ㅋ
여하튼 다시 불꺼진 주방에서 곰국을 끓이는 세경이를 보자니 마음이 을지문덕. 저 친구는 어린나이에 어떻게 저런 얼굴을 할 수 있을까. 하긴 TAKE5 뮤비에서도 저런 얼굴이었던거 같다. 눈물나는 얼굴.

5.
요즘은 역시 아이유.
사실 아이유 이번 앨범은 지난 내 멋대로 올 해의 음반 선정에서도 고려했던 수작. 삼촌들이 그저 귀엽고 깜찍하기만해서 예뻐하는게 아니다.ㅋ 그녀는 훌륭한 목소리와 감수성을 가진 흔치않은 보컬이다. 3단고음보단 낮은 음역대의 담담한 노래들이 사실 더 그녀에게 어울리는데. 그나저나, 김광진에 윤상이라니. 이번 앨범은 삼촌들의 그녀에 대한 조공.

난 노래든 연기든 글이든 살아가고 자기안에 쌓여있는 만큼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노인들의 노래와 연기를 더 좋아하는거. 하지만 이렇게 어린 친구가 그걸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모습이, 거기다 자질까지 갖춘 예쁜 소녀의 모습이 좋은건 당연한 일이다. 굳이 최고로 잘나가는 가수가 아니어도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가 되고싶다는 말이나, 공부를 못해서 대학엔 못가지만 대신 작곡 공부 열심히 하겠단 다짐, 이 당연한 얘기들을 칭찬해 주는게 더 부담스럽단 말. 그건 삶의 태도다. 삶을 건강하게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덧붙여 열심히 책을 읽고, 알랭 드 보통을 읽는 중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봤을 때 더더욱 호감. (소시의 서현이도 처세술책 말고 이런걸 읽으렴)


IU - Last Fantasy

5.
컴퓨터를 너무 함부로 썼더니 버벅거리는데다, 결정적으로 키보드의 스페이스바와 엔터키가 이빨 빠지듯 빠져버렸고, 이물질이 많이 들어갔는지 잘 안눌리는 키도 있고, 시프트키도 말썽이다. 덕분에 오타작렬.
교훈은 컴퓨터 앞에서 담배도 피우지 말고  뭐 먹지도 맙시다.

단상


1.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 이성복

나는 왜 40대 농부의 처가 허리를 구부리고 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따스한데.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 브레히트)

전에 고등학교 때 한참 정치에 꿈이 부풀어 있을 때,
국회의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학 갓 들어가 예술이니 사상이니 미쳐 있을 때,
유명 화가의 전시회에서 심오한 질문을 해댔다. 화가는 한참 쳐다 보더니 쌩까버렸다.
다시는 글 안 쓴다고 군대에 가서는 한참 뜨고 있던 여류시인에게 오밤중에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정중히 전화를 끊었을 때, 그때도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지금 이렇게 끼적거리는 잘난척도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2.
타임라인에 공지영이 우수수하기에 무언지 찾아봤더니,

"나꼼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엄청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내 딸과 또래 친구들이 정치에 관심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데에 나꼼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확인했다. 단식이니 길거리 농성이니 투신이니 삼보일배니 하는 식의 자학적인 운동은 죄송하지만 그만하고 시위 자체가 축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나꼼수와 내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또 언론사가 이토록 비열하고 이토록 무기력한 꼴은 유신 때 사춘기를 보냈지만 그때도 보지 못했다. 이 절망적인 시대에 나꼼수가 언론의 역할을 대신 한다고 보기 때문에 돕기로 한 것이다." - 한겨레인터뷰 中

하지만 오늘 현대차의 노동자는 분신을 시도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자학적 운동이다.
나도 자학같은 운동이 달갑지않다. 누구라서 그러지 않을까. 누구라서 축제와 같은 운동이 반갑지 않을까. 하지만 몸뚱아리, 목숨밖엔 내놓을 것이 없는 이들에게 그것마저 하지 말라고하면 그들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치면 사실 김진숙의 고공농성이 가장 대표적인 자학적 운동방식 아닌가.
자학적 운동이 없어도 되는 세상을 바란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특히 남한사회는 자학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이,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살겠다고 올라선 곳에서 불에 타죽은 이들의 3주기가 다가온다.

공지영이 깊은 사유를 통해 뱉은 말이라고 생각치 않는다.(사실 그녀가 깊은 사유라는걸 하긴 할까 하는 생각을 요즘은 자주 한다.) 그저 나꼼수 열풍에 무엇이든 끼워 맞추는 말들이었을테다. 이건 나꼼수의 결정적 폐해들 중 하나다. 모든것을 즐거움의 영역으로만 소환하려 한다. 조금 진지하면 몹쓸 것인양. 그렇다면 스스로 쇼고, 코미디임을 인정하면 괜찮을텐데. 웃고 떠드는 긍정의 힘은 먼저 절망을 고스란히 긍정하는 일부터 시작이다. 외면은 긍정과 엄연히 다르다.

3.
어제, 오늘 블로그 방문자 수가 갑자기 늘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며칠 전에 쓴 영광의재인 리뷰가 디씨인사이드 박민영 갤러리에 옮겨져 있더라. 역시 박민영 오덕인증글 다운 위용.ㅋ 앞으로도 이렇게 종종 (어느 갤러리나 팬카페에 옮겨질) 연예인 덕질 인증글을 포스팅해서 방문자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이.ㅎㅎ 나 요즘 방문자와 댓글에 목마른 블로거임. 주변의 충고대로 네이버로 이사갈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고려중인.
(하지만 냉혹한 갤러들, 댓글 하나 남겨주지 않다니. 그 갤러리는 차가운 도시남자들만 모여있는 것이냐.ㅋ)

4.
긴 세월을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 사랑을 기다려 줄 그런 사람을 찾는거야.

기다리느라, 굳이 찾아나서진 않는다.




단상


1.
사민주의, 한국 진보파 이념 최대치

레디앙의 최장집교수 인터뷰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대변하고 또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남한사회에서 사회주의의 추구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사민주의,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가 남한 사회 좌파이념의 최대치라는 얘기.
일견 동감하기도하고, 또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유럽의 사민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돌이킨다면 마냥 동의할 수만은 없다. 북유럽의 사민주의는 급진 사회주의 혁명노선의 결과다. 사회주의 운동과 그에 대한 자본주의의 타협의 산물이란 얘기. 결코 '사민주의자'들의 체제내변혁에 선량한 자본가들이 감화설복되어 만들어진 체제가 아니다. 지금이야 유럽식 사민주의가 시민사회의 상식이 되어 있다지만, 그 상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상식적이지는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회가 변증법적 논리에 의해 발전해 나간다면 테제에 반하는 안티테제를 던져야 합이 도출되는 법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합을 가지고 과정도 없이 들이밀면 뭐하나.
덧붙여 말하면 난 사민주의 역시 마뜩치 않다. 그건 결국 계급의 타협. 아다시피 타협이란 그 체제를 공고히 할 뿐이다. 뭐, 대한민국과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하면 주저없이 북유럽을 고르긴 하겠지만.ㅋ

2.
뿌리깊은 나무가 끝나고 이제는 빠담빠담이다. 통영항구와 정우성과 한지민과 김범은 있기만 해도 그림이더라.

3.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황지우, 수은등 아래 벚꽃)
트위터 시봇이 계속 시를 읽어주는데 저게 눈에 확 들더라. 엄마야.

4.
정봉주 구출운운할 시간에 송경동 시인 안부도 좀 물어줬으면. 참말로 목숨걸고 정권에 맞서 이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셨으면, 진짜 목숨걸고 노동자들의 삶을 지켜주던 시인도 좀 지켜주시지. 아, 욕나와.

5.
아이폰이 올 해의 운세를 봐줬는데 만사형통하단다. 애정운은 무려 첫사랑과의 재회. 흐음. 언제나 이발 직후의 단정한 머리모양을 유지해야겠다.

6.



자꾸 욕하고 다녀서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나 김장훈 엄청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 가난한 날이 노래가 되어.

단상


1.
새 해다. 멋있는 척하려고 날짜를 만들어 따지는일 따위 모두 인간들의 언어이지, 시간은 그저 도도히 흐를뿐 특별하지 않은 날도, 특별한 날도 없다는 말을 뱉은 적도 많지만. 새 해가 설레는건 마찬가지고 당연하다. 하루하루가 새롭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니 이렇게 특별한 날의 힘을 빌어서라도 새로워져야지.
한 살 더 병신이 됐다는 자학도 하지만, 사실 병신이고 싶지는 않다. 올 해엔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2.
더 예쁘고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 그 말이 모두 진심인 사람, 아는 것이 많지만 알고싶은 것이 더 많은 사람, 세상에 겸손하지만 또 세상에 주눅들지 않는 사람, 허세도 자학도 하지 않는 사람, 자기를 팔 만큼 가난하지도, 남을 살 만큼 부유하지도 않은 사람,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읽는 사람, 낙관하지 않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 폭력을 거부하는 사람, 남을 향한것도 나를 향한 것도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관찰력이 좋아 머리모양의 변화를 금세 알아맞히는 사람, 길을 걷다 발 밑의 꽃을 밟지 않는 사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눈이 쉬운 글을 마음에 어렵게 써내리는 사람, 늘 냉장고에 음식을 남겨놓는 사람,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

3.


새해맞이 연회 With 모친.
삼겹살과 소주 만찬에 이은 골뱅이무침과 맥주.
삽겹살 먹고 남은 쌈 채소를 몽창 때려넣어 부족한 섬유질을 충당하고, 떨어진지 몰라서 미처 준비 못한 소면은 라면사리로 대체. 충분히 맛있었다. 역시 요리는 도전, 쏘울, 인간미, 융통성.

4.
"마무리에 재미있으면 올 해도 재밌었던거야"
"새 해맞이가 재미있으면 내년도 재밌겠네?"
"당연하지, 술잔 비었어"
 
엄마는 늘 지혜롭다.

5.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행복한 2012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 사실 2012년에 지구가 정말로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더이상 삶의 이유를 찾는 일, 사실 귀찮았거든요. 다만 나 혼자 죽으면 주변에 대한 민폐일지도 모른다는 시덥지않는 그런 생각을 했으니, 차라리 지구가 멸망한다면... 같은 그런 마음이었어요.

술이 조금 올라서 그런건지 다만 더 살면서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겠단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모두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행복하고 싶습니다.ㅎ

6.


올 해의 첫 곡은 내가 찾는 아이.

단상


1. 나는 원래 자타가 공인하는 효리빠인데(나 무려 핑클 전집을 테잎으로 소장하고 있는 남자임) 요즘 효리누나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다. 정치적 발언이나 소신행보 때문인거 맞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녀의 발언이 대단히 좌파간지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녀의 행보가 문소리나 김여진처럼 이 현장과 저 현장을 오가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뭣이 그녀에게 더 하악거리게 만드는 것이냐 묻는다면 그녀의 '태도'다. 일전에 동물보호활동을 하는 그녀가 가죽의상을 입고나와서 뭇매(이런 식상한 표현이 좋겠다. 그건 식상한 반응이었으니까)를 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변명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배우고있고 더 많이 배우고싶다고. 이제야 관심이 생겼으니 조언해주고 격려해주면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이 솔직하고 단순한 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이런경우에 사람들은 일단 변명하거나 화내기 일쑤다. 정말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어하는 마음이, 그리고 그걸 솔직하게 드러내는 당당함이 이 누나에게 더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누나가 서른을 넘길즈음부터 보여오던 모습들이 워낙에 신뢰를 갖게하는 모습들이었지만 요즘 완전 하악모드랄까. 예전엔 '효리꿈'이라고하면 '효리랑 연애하는 꿈'이었는데, 얼마전에 꾼 '효리꿈'은 무려 이 누나한테 상담받는 꿈이었...ㅡㅡ;;;

2. 모든 엘지팬들의 습성은 일단 7월쯤되면 의기소침해지다가 9월쯤엔 야구를 끊고 11월부턴 댓글도 안다는 은둔형열독자로 스토브리그 소식을 접하다 거물 FA나 용병을 건지면 엘레발을 쳐주다 시범경기와 시즌초반까지 돌풍의 핵으로 사는 것의 반복이다. 한 10년간 그래왔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20년차 엘지팬인데내 팬생활의 절반을 그렇게 보내다니.. 다만 올 해는 뭔가 다르다. 일단 FA를 안데려오고 전력 보강이 없다. 누수 또 누수만 있을뿐. 하지만 예년과 다르다는 이유로 뭔가 될 것 같단 마음이 들다니 이젠 나를 포함한 엘지빠들은 단체로 정신감정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 같다. 엉엉엉

3. 요즘 탕수육들은 찹쌀이니 소고기니 사천이니 하는 말들을 앞에 붙이고 뭔가 특색을 시도하는데, 가끔 동네 중국집, 그러니까 일품향이나 북경반점따위의 이름을 달고있는 중국집의 고기와 튀김옷이 정확히 5:5비율을 이루는 탕수육이 땡길때가 있다. 그런 탕수육은 이사하는 날 바닥에 신문지 깔고 목장갑끼고 짜장면이랑 같이 먹어주는게 간진데. 아님 학생회실 바닥에서 이과두주 안주로 아껴 호호 불어먹거나. 어쨌든 이시간에 배고파서 갑자기 탕수육 생각이 났다고.

4.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다 '완경'이란말을 했더니 전혀 알아먹지를 못하더라. '폐경'이라고 말해줘야 알아먹는. 일상의 언어들이 갖는 폭력성을 경계해야 한다. 폐경은 여성의 월경이 끝나는 일을 상실의 의미로 표현하는 언어다. 완경은 월경이 끝나고 여성으로서의 삶의 전반기를 완성하고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가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 뿐 아니라 일상의 언어에서 인식하지도 못하는 폭력성(젠더의 문제인 경우가 가장 많지만 그 외에도 무수하다)을 예민하게 인지하고 고쳐가야한다. 사실 그것이 진보의 알파고 오메가다.

5. 술이 세지는 느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마치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을 타통해 반로환동 환골탈태하는 느낌이랄까. 이제 다 덤벼라. 내가 제일 잘먹어.

6.


돌아다니다 발견한 짤방.
에휴 말을 말자.

요즘 가끔 이런 심정일때가 많아. 라고하면 엄청 건방져 보이겠지?

단상


1.
루피가 뽀로로 친구인줄은 몰랐다. 제길. 뽀로로 열심히 봐야했는데...

2.
늘 그렇지만 아주 작은 격려 한마디.가 힘이 된다. 스스로 내지 않으면 사그라들 알량한 힘인 줄은 알고있지만 그래도 고마운 일이다.

3.
운이 좋았다. 정말. 이젠 고민을 해야한다. 생각을 잘 정리해봐야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하는 일. 헛바람과 설레발로 또 시간을 허비해선 안된다. 이건 어쩌면 기운을 차릴 수 있는 계기였다. 이렇게 얻은 기운을 어디에 어떻게.

4.
날이 추워서 감기에 걸렸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고, 보고싶어서 전화를 걸고, 집에오려고 차를 탔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과정이, 결과가. 날로 먹으려 들어서 안된다. 해야지, 살아야지.

5.
오늘같은 날은 역시 시규어로스.


Sigur Ros - Illgres

단상

1.
뿌리깊은 나무를 보다 이도의 꿈에 문득 조소를 보냈다. 글을 읽는다해서 모두 언어를 갖게되진 않는다. 지금 수백년후의 백성들이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어린백성들은 이르고자 하는 바 있어도 '그들'의 언어만을 사용해야한다. 법이나 제도, 진영, 합법이나 비폭력같은 말은 역시 저들의 언어다. 청춘이니 희망이니 멘토니 통합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들은 저들의 '꼼수'고 포장이다. 언어를 상실한다는 것은 그런것이다. 이도도 말했지만, 우리의 언어로 제대로 말해야 한다. '지랄'이라고.

2.
나꼼수 여의도 콘서트에 3만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고한다. 거북하다. 그들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지만(사실은 아니다 그들의 선의도 조금은 의심한다)그들의 지성은 확실히 의심한다. 그들이 정말 FTA를 반대한다면 그들은 나꼼수에 열광해선 안된다. 어제 여의도에서 김어준과 아이들이 뭐라고 말했을지는 안들어봐서 모르겠지만, 그들의 스탠스는 명확하다. 그들은 '노무현은 좋지만 이명박은 싫어'가 전부다. FTA반대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여야 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한 도다른 대안에 대한 상상력이어야 한다. 사회의 모순은 체제에 있지 정권에 있지않다. 이명박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다른 점을 갖는 부분은 '권위주의'와 '노골적 몰염치'정도다. 신자유주의의 총아인 FTA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며 만들어졌고 성장했다. 이명박이 한 일이라곤 비준하고 부시 골프카트 몰아준 일 정도가 전부다. (고작 그거하고 이렇게 욕먹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인물은 인물이야) 본질따위 안중에도 없이 표면에만 천착하는 일, 그리고 그 천착을 이용하려는 꼼수는 사기다.

3.
더불어 멘토니, 희망이니,청춘이니, 닥치고니 하는 타령들 좀 이제 그만. 안철수와 박경철에게서 더이상 뭘 배우잔 말이냐. 도대체 청춘이 이런것이며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닥치고 정치나 하라는 폭력적 언사에서 뭘 배워야 하지? 그건 강박이다.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가 거론될 때 안철수가 3백명의 멘토를 가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시껍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삶의 지혜를 물을 단 한명의 친구도 어려운데 난.위에서 얘기한것처럼 자신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이도와 우리소이가 그 개고생하면서 글자 만들어주면 뭐하나. 자기언어로 글 한줄, 세상의 단면도 읽지 못하는 수백만의 멘티들만 만들어냈다. '닥치고'라는 말은 너의 언어를 봉인하라는 말이다. 좀 닥쳐라.

4.
티비를 켰더니 조선TV가 나온다. 헉. 한참을 찾아 헤맨끝에 나의 사랑 KBS드라마를 찾았다. 무려 96번. 리모컨질하다가 손가락 관절에 물찰 기세.내 재인이를 돌려줘 엉엉엉. 근데 얘네 살아남을수는 있을까?

5.
아침이라기엔 좀 이른시간, 그러니까 6시반쯤에 담배사러 갔다가 눈발인지, 빗방울일지 모를 것들을 맞으면서 한참쭈구리고 앉아 지나는 사람을 구경했다. 동도 채 트지 않은 시간에 사람들은 분주했다. 부지런한 사람들. 문득 날짜를 생각해보니 12월, 겨울의 첫날이다.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참을 앉아있다가 집으로 들어오는데 문득 이기선의 시가 생각났다.
"두 눈을 부릅떴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앓을 만큼 앓아야 병이 낫던 시절이었다 "

6.
MAMA는 못봤지만 소시무대의 클립이라도 봐주는게 참된 소덕의 자세. The Boys는 오글거리는 가사에 짜증이 나다가도 아이들이 팔뻗고 걸어오면 심장이 덜컹한다. 하악하악. 어쨌든 영어가사가 더 간지나네. 이거 사대주의임?


꿈이야기


1.
꿈을 꿨는데, 중학교때 우리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던, 지금은 건달이 됐다는 소식을 건너건너 들을 수 있던 놈이 나왔다. 난 그닥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된(선생님들로부터 당하는 폭력은 제외하고) 청소년기를 보내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폭력 그 자체에 대한 공포는 버젓이 있었나보다.

꿈에서 난 그에게 굉장히 굴종했고 비겁했고 그리고 자존심 상해했다. 그것은 내가 갖는 폭력의 이미지에 가까운것 같다. 저항하려 애쓰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굴종할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폭력의 성질이 본래 굴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 했다. 꿈에서도, 깨고 나서도. 그건 물리적 힘과 권력에 대한 동경, 마초적 본성. 난 그 물리적 힘이라는 것이 사실은 굉장히 부질없는 것이고 타인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권력은 타도의 대상이라고 여겨왔지만, 사실 내 자아는 그걸 그리고 있었던거다.
하긴, 영화나 드라마에서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악당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던 주인공을 보면서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해 순간의 권력을 챙겨내는 장면을 상상한 적도 많다.

생각해보니 이건 내 무기력이나 비겁함, 위선, 이중성에 대한 자학이었다. 자학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는 비겁함이다. "직시하고 있으니까 굳이 건들고 말하지마"같은.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끄적이면서 얻는 자기만족, 골방의 수음.
이전에 운영하던 블로그 이름은 자학일기였다.

2.
나도 꽃에서 이지아는 꿈을 꾸지 않아도 살 수 있는것 아니냐며 고함쳤다.
결국 드라마에서 이지아는 꿈도 꾸고 그걸 이뤄갈 단초도 얻고 희망도 얻는 해피엔딩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난 지금 꿈도 희망도 재능도 의지도 없다. 갖고 싶은 것도 버리고 싶은 것도 없다. 외롭지만 그것도 별 상관없다. 관계의 부담과 성가심보다는 훨씬 좋다. 다만 이런 상태를 한심함이라고 부르거나 안타깝다 말하는 일들을 납득하지 못하겠다. 꿈을 꾸지도 희망을 갖지도, 생에 대한 열정을 갖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벤야민은 인생은 살만한 값어치가 있어서 사는게 아니라 자살할 만한 값어치가 없어서 사는것이라고 말했다. 자살할 만한 값어치도 느끼지 못하는 삶도 있는거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건 인지부조화다. 난 희망도 꿈도 재능도 열정도 갖는 일이 싫은게 아니라 못하는거다. 그래서 싫은척 쿨한척 하는거다. 이게 The 구려.

3.
외면하거나 직시하거나. 그건 오직 한번만 선택할 수 있는 수능시험 같은건 아닐거다. 난 직시하기도 외면하기도 한다. 흔들흔들. 일일드라마같은 삶이 부럽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꿈을 위해서 한 발 내딛는. 광기에 찬 자살도 부럽다. 세상을 조소해줄 용기가. 열정만 못한 재능을 탓하는 괴로움조차 부러움의 대상이다.

좀 똑바로 산 다음에 얘기해. 라고 꼰대같은 잔소리를 누가 늘어놓는다면 죽여버릴거야. 물론 그럴 용기도 없이 쿨한척 웃어주겠지만 하하하.

4.
영화나 음악은 회피와 도피의 가장 좋은 수단이다. 예쁜 연예인이나 사회적 분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데모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신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