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cchio Primavera'에 해당되는 글 123건

단상


1.

며칠째 원고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작 진도는 못나가고 있다. 열심히 쓰고 있는데도 안 써지는 그런 최악의 상태는 아니고, 그냥 게으름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꾸 집중하지 못하고 딴 짓만. 뭔가 다른 글을 쓰면서 환기하려고 블로그를 열었다. 가끔 이렇게 블로그나 SNS에 잡설을 풀고나면 뭔가 타자에 관성이 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딴짓의 바운더리가 넓어질 뿐이라는 게 함정.


2.

딴 짓하면서 하는 일 중 하나가 틈틈 올 해의 앨범과 영화를 정리하는 일. 노는동안 밀린 영화며 노래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는데 아직 메모해둔 영화며 노래가 많다. 더구나 믿고있던 마지막 프로포즈마저 올 해는 없어서. 일단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와 정차식 정도가 확정. 며칠전엔 술마시며 정차식을 틀었더니 귀신 나올 것 같다고 하던데, 역시 귀곡락.


3.

오늘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를 나아 자진 출두했다. 화쟁위원회와 도법스님의 태도가 불만인 사람들이 많더라. 나도 좀 그렇고.


하지만 그보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렇게 전면에 나서 조계사에 칩거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먼저든다. 집회에 위원장이 직접 등장해 잠시간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위원장 수감이라는 위험을 감내할만큼 의미있는 것이었나 싶기도 하고. 사실 집회에 나서는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의 정세와 역량이 안정적인 투쟁지휘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왕 이렇게 됐으니 다음을 고민해야겠지만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09년의 옥쇄파업에서 2012년의 철탑에서 그가 보여준 투쟁의 신심을 믿고있다. 사실 아쉽지만 이정도의 투쟁도 한상균 집행부였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건 농담이 반 이상이지만, 수감생활하는 당분간 규칙적인 생활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면 좋겠다.ㅋ 


4.

요즘 '청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주로 만나고 있다. 대화의 주제도 그렇고. 만나고 돌아서면 늘 마음이 좋다. 그럼에도 꿈꾸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직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설레임과 두려움을 그대로 가진 사람들. 열심히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다치고 틀리고 반성하고 배우는 사람들.


고민하는 청년 페티쉬.라고 쿠사리를 먹긴 했지만, 언젠가 나도 들었던 그 얘기 '아직 괜찮아'라는 말을 해 줄 수 있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왔나 싶기도 하고.

(라고 했더니 "너도 진지충이었다"고 다시 쿠사리를 먹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ㅋ)


5.

주변의 선배들을 보다가 어떤 '벽'같은 걸 느꼈다.

'알고있는 사람'들. 그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건 공부와 그리고 성실함. 

고민하는 스무살들과 뭔가 알고 있는 오십먹은 아저씨들 사이를 냉탕과 온탕 넘나들듯. 

문득 설레었고, 그 아저씨들이 나를 내가 그 스무살들 바라보듯  봐준다면 좋은 기회겠다고 생각했다.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목표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성실하게 살아야지.


하지만 박민영 나오는 새 드라마가 시작한 게 함정.


   


굿바이레닌, 햄버거 이야기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 속에 나오는 무엇이 먹고 싶어지곤 한다. 

(그 태반이 술인 건 함정)


일테면 홍상수 영화 속의 소주들, 오션스 시리즈에서 브레드피트가 분한 러스티가 집어먹는 군것질들,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의 탕수육. 같은 거.


그 중에서 여지껏 영화를 보고나서 먹고 싶었던 가장 강력한 음식의 기억은 굿바이 레닌의 햄버거다.


영화 속, 통일 이후 동독을 잠식하는 자본주의의 상징은 포르노와 코카콜라와 버거킹이었다.


영화를 본지 이제 꽤 오래돼서 정확한 앞뒤의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자본주의에 꽤나 잘 적응한 동독의 관료가 자본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드라이브 스루로 버거킹의 치즈버거를 사서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의 정원에 수영복만 입고 누워 엄청 큰 햄버거를 우적거리던 장면.


흉물스럽게 나온 배, 디룩디룩 찐 살의 아저씨가 빤쓰만 입고 우악스럽게 큰 햄버거를 우적거리는 모습. 역겨울 정도로 탐욕스러운 장면이었다. 토마토 국물이 입가에 시뻘겋게 흘러내리고 케찹이나 마요네즈가 잔뜩 묻은 잔여물들이 막 배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그런 더러운 장면. 


하지만 그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햄버거가 미친 것처럼 먹고 싶었다.



굿바이 레닌을 본 건 2007년 말이나 2008년 초반쯤이었다. 학교에서 갓 도망나와서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살던 즈음. 살며 가장 우울했고, 가난했고, 혼란스러웠던 날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엔가 늘 허기져 있었다. 하루에 영화를 서너편씩 보고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블로그에는 하루에 2~3편씩 글을 썼다. 배가 고팠고 무언가를 계속 그리워하고, 그만큼 허탈해하고. 그 날 썼던 글을 다시 찾아 봤는데, 체제의 붕괴니 삶에 대한 적응이니 하는 되도 않는 말을 지껄여놨더라만, 그건 그 때의 마음이라고 치고.


지금 돌이켜보니 굿바이 레닌을 도서관에서 본 그 날은 그냥 배가 고팠던 것 같다. 

난 햄버거를 좋아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머니를 뒤져봤더니 딱 850원이 있었다. 버거킹의 왕따시만한 와퍼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집 앞 수퍼에서 '점보햄버거'를 집어들었는데 900원이었다. 이마저도 돈이 모자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공판장이 떠올랐다. 그 공판장은 식자재를 대량으로 살 때 종종 가곤 했는데 빵이나 과자 따위를 다른 수퍼들보다 100원쯤 싸게 팔았다. 수퍼에서 900원인 햄버거는 공판장에서라면 800원쯤이면 살 수 있겠지.


10분을 넘게 걸어간 공판장에서 햄버거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 어쩐지 처량하고 슬펐을 것 같지만 그런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는데 이걸 어떻게 데워 먹나 하는 연구만.


일단 프라이팬을 꺼내 아주 약한 불로 달구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달궈진 팬에 햄버거를 올리고 뚜껑을 덮어 10분쯤 데웠다. 찜기에 찌기에는 물기가 많아 축축한 햄버거가 될 것 같았다. 결국 햄버거 번은 다 타고 정작 패티는 하나도 데워지지 않은 햄버거를 먹게 됐다. 그 햄버거는 너무 작아서 서너입만에 다. 콜라도 없이 맹물에 햄버거를 다 먹고 나서야 문득 신세가 처량해졌다.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그 때는 픽하면 울고 그랬는데. 



며칠 전에 어쩌다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한참을 신나서 이 얘기를 떠들어댔다.

지금도 가난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와퍼 하나 정도는 사먹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하여튼 그냥 잡담이다. 주말쯤엔 굿바이 레닌을 다시 보면서 햄버거를 먹어야지. 엄청 큰 놈으로. 지저분하고 탐욕스럽게. 


 

 



 



첫눈, 작은상자


1.
집에 들어오다 첫눈을 봤다.
올 해 첫눈을 함께 본 사람이 택시기사 아저씨라는 게 어쩐지 웃겼지만,
아저씨도 어쩐지 서글퍼보였으니 쌤쌤이다. 삶은 늘 이렇게 공평하다.

첫눈을 보면서 겨울의 시작을 생각하기보다, 가을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런가보다. 계절의 시작보다 계절의 끝. 
하긴 난 해변을 바다의 시작이 아니라 바다의 끝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계절이 끝나고, 시대가 지나고, 생의 단락이 한 번 더 접히고. 
삶과 얼굴, 그리고 뇌에도 주름이 한 줄쯤 더 새겨질 거다.

깔딱고개. 라던가 난 늘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에 서툴다.
하지만 첫눈이 계절의 끝자락을 알려주는 것처럼,
반갑고 예쁘게 끝과 시작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다시, 처음이라오.
 
2.  
첫눈을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홍대어름에 있다가 사라진 '작은상자'라는 술집이다.

지금은 없어졌는데, 홍대에 '작은상자'라는 술집이 있었다. 이름처럼 정말 작은 지하방이다. 세 명 정도가 앉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바와 테이블 두 세 개가 전부였다. 실내엔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스피커가 터질 듯이 음악소리를 키워놨었다.

처음 그 가게를 들어갔던 건 새벽 2시 30분쯤. 왜 날짜나 계절이 아니라 시간을 기억하냐면.

우리가 처음 작은 상자에 들어갔을 때,
머리를 길게 길러서 누가보더라도 '저 락커입니다'라는 환청이 들릴듯한 알바언니가 
"3시면 문을 닫아야한다"라고 축객령을 내렸다.

이름도 가게 모양도 들리는 노래도 다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다며 발걸음을 돌리는데 조그만 바에 구겨져 누워있던 아저씨가 말했다. "30분 동안 재밌게 놀다가면 되잖아요"

그러게, 어차피 술은 이미 진탕마셨겠다, 맥주 한 잔만 마시자고 들어온 거 30분이든 2시간이든 무슨 상관이야. 30분만 재밌게 놀면되지.ㅋ 그리고 우리는 출근 러시아워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가게 됐다능.ㅋ

그 이후에는 단골손님마냥 작은상자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작은상자는 엄청 불친절하고 엉성해서 메뉴판에 있는 안주라고는 소세지와 마른안주, 노가리 정도가 전부인데 그나마도 되는 건 거의 없다. 새우깡은 안떨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맥주도 마찬가지. 메뉴판엔 온갖 맥주 이름이 써있지만 있는 건 언제나 카프리 아니면 카스였다. 분명 자기들 공연장에서 남은 맥주 가져와 가게에서 파는 걸 거라는 추측도 했었다.

스피커 밑에 앉은 날은 노래소리가 너무 시끄러우니 볼륨을 조금만 줄여달라고 말했다가 "저희들이 들어야 해서 못줄여준다"는 반자본주의적 손님접대 멘트를 들어야 했다. 물을 한 잔 달라고 하면 편의점에서 1.5리터 생수를 사다줬다. 

망하기 십상이게 장사를 하더니 결국 망했다. 사진과 흔적 하나 남겨놓지 못했건만.

써놓고보니 뭐가 매력적이냐. 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겠지만 아마 사라져서 그런걸까. 
난 여기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앞으로도.

3.
그건 아마 그 시절들이기 때문일까.

첫눈 오는 오늘 같은 날, 그 불친절하고 비좁았던 술집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고, 찌질한 첫사랑 얘기를 하고, 더 찌질한 구남친 얘기를 하면서 낄낄거리다 삶에 대한 한탄이나 그래도 갖는, 혹은 가져야하는 일말의 희망에 대해 읊조렸다.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고 신청곡을 퇴짜맞거나 주인 아저씨가 말해주는 추천곡을 수첩에 적어넣었다.
아케이드 파이어나 짜르 같은 노래들.

그렇게 놀다가 동틀무렵에야 나선 거리에 눈이 내리면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걸판지게. 바지가 젖으면 지하철에서 민망하다는것도 잊을만큼 신이났었다. 춤을 추듯 미친 것처럼 낄낄거렸다. 

스무살 남짓한 삶이 버겁다며 되지도 않는 시를 짓고 읽고 외웠지만, 그래도 삶에는 한 줄 희망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어느 날 작은상자가 없어졌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게는 늘 망하게되더라니까. 

그래서일까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도 그 때쯤 그 부근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그런 얘기도 들었는데, 
"그 때 니눈이 반짝거리긴 했어"

옥상에서 눈 내리는 걸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들어온 방 안에서 거울을 보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제 숭숭 빠진 내 머리털과, 흐리멍텅한 눈. 

삶이라는 것에 그 때만큼 실망하지도 않지만 그 때만큼 희망적이지도 않은.
숨만 쉬어도 꿈틀거리는 게 있었는데, 이젠 희망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계절이 변하고 가게가 망하고 같은 자리에 소란스러운 프랜차이즈 주점이 들어오는 것처럼 삶과 사람, 사랑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다만 그 변화를 인정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다시 돌이키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주름의 골골에 새겨진 삶을 기억하는 것. 

하지만 그래도 그때 그 반짝이던 눈이 서럽긴 하다. "내 눈알을 내놔"

4.
첫눈에 센치해져선 이런 글이나 끼적이고 있지만. 잠이나 자야한다. 시간이 몇시냐.ㅋ

5.
폭설로 인해 내일 출근 취소. 뭐 이런 꿈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첫눈에 소원비는 사람들, 이 소원도 좀 빌어봐요. 혹시 아나, 원기옥처럼 바람이 모여 소원이 이뤄질지.
지구인들아 힘을 빌려줘.

6.
어떤 노래를 들으면 좋을까 하다가
 



Balmorhea - The Winter


단상



1.

재입사 1주일 째. 출근은 여유롭고 일도 여유롭다. 손발이며 생각도 맞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겁고 일이 풀려가는 과정도, 진행되는 방식도 좋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어디가 서걱거리고 이따금 괜히 쓸쓸해지는 건 아직 새로운 장소가 어색하기 때문이라고 정해두자.


2.

사람을 잊거나 보지 않고 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 기억하고 만남을 지속하는 일이야말로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나를 포함해 사람들은 보통 타인에게 그렇게까지 성실한 노력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을 잊지 못할 거라는 둥, 잊혀지지 않는 다는 둥하는 얘기들은 죄다 거짓부렁이거나 입에발린 말, 자아도취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과 사연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의 순간과 감정에 더욱 솔직하고 충실해야 한다. 


3.

프리미어 12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봤다. 올시즌 엘지의 패망으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어떻게 쟤가 국대냐. 싶은 선수들이 있더라. 일테면 이현승 같은. 국대의 마무리는 아직 누가 뭐래도 임창용이어야 하는데. 어쨌든 술을 마시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국대 5선발 라인업을 어떻게 구성하겠냐는 쓸데없는 논쟁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역시 남자의 로망직업 3대장 중 최고봉은 야구팀 감독이다.


내가 생각했던 5선발은

류뚱 - 윤성환 - 김광현 - 장원삼 - 유희관


4.

겨울이 거의 왔는데 아직도 모기가 설쳐대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정말 신이 천지만물을 창조했고 그 때 모기도 만든거라면 아주 그냥 신을 가만두지 않을거다. 


5.

김영삼이 죽었고 온라인에서 사람들은 그를 과하게 애도한다. 모든 생명의 죽음은 애도받을 가치가 있지만 이렇게 그의 있지도 않은 공을 포장해줄 필요가 있을까.

그는 권력을 붙잡기 위해 야합도 서슴지 않았고, 학교를 봉쇄하고 대학생들을 때려잡으며 그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노동법을 날치기 해서 노동자들의 숨통을 옥좼고 IMF와 신자유주의를 수입했다. 


그가 투사이던 시대, 그가 대통령이던 시대는 차라리 희망이라는 게 있었다는 회고도 들었지만 그건 박정희의 시대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던 회고와 다르게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가 한 시대를 만들고 살아온 역사적 인물이라는 평가. 그리고 고집스럽고 외롭게 늙어간 노인이었다는 점만 기억하자.


6.

요즘은 계속 정차식의 노래를 듣는다.  

쓸쓸하기도, 후회되기도, 절망스럽기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도.

정차식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제일 좋았던 건 삐뚤어질테다나 춘몽이었는데, 아직 유튜브에는 없네.

7.
요즘 가장 즐거운 시간은 올리브쇼를 보면서 수첩에 연습해 볼 레시피를 쌓아가는 것.
다음 도전은 새우 맑은 찌개와 무수분 돼지고기 된장찜. 
고작 파스타나 볶는 남자가 아닙니다. 내가.

7-1.
하지만 생각해보니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봤자 먹어줄 사람이 없는 건 무척 슬프네요. 
요리는 개뿔 라면이나 끓여야지. 

8.


예전에는 '도라에몽'을 꿈꾸기도 했다. 해달라는 건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오지라퍼.

하지만 내가 아직도 호구로 보이냐.








단상


1.

이직을 결정했다. 새로운 직장으로 가는 설렘은 딱히 없는 것이 이전에 다니던 곳으로의 복귀다.

임금은 삭감했고, 근로환경도 딱히 나아질 게 없다.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들이 있지만 사실 그냥 다 뻘소리고, 개인적인 감정들의 문제까지 얽히면서 후다닥 에라 모르겠다의 결정 이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 살지는 않겠다고, 돌아가기 위해서만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파업에 나섰는데.

어떤 결정을 하든 그 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돌아간 곳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주체가 생략되고 능숙함과 현명함도 사라진 결정들. 지저분한 말과 말들, 감정들, 착각들, 오해들. 더이상 얽혀 있다가는 정말 병들어버리겠다는 생각. 도망이기도 하고 탈출이나 해방이기도 하다. 사실 이름이 뭐 중요하겠나.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

주량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자각증세가 나타난 건 지난 여름 쯤부터 였는데, 컨디션 난조 때문이라 애써 납득했지만 최근에도 자꾸 이러니 아무래도 뭔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개뿔, 체력도 떨어지고 건강도 나빠진 거겠지.

며칠 전엔 늘 술을 못마신다고 구박받는 구 동거남보다 먼저 항복선언을 하고 집으로 도망갔다. 그 다음엔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는데 두 병을 채 못비우겠더라. 취해서 흔들흔들. 

휴가기간, 운기조식을 통해 주량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겠다. 내가 지금 술도 잘 못마시게 되면 가진 재주가 너무 없잖아.   


3.

올리브 채널, 그 중에서도 올리브 쇼를 가장 열심히 본다. 집밥선생이 나와서 설탕 때려넣은 음식을 집밥이라고 포장하는게 영 못마땅 한데. (집밥의 개념이라는게 여성의 가사노동을 미화하는데 일조하는 참 맘에 안드는 개념이긴 하지만 그래도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잖아. 적어도 백 선생의 음식이야말로 가장 충실한 '외식'의 맛이니까) 음식과 재료에 최선을 다하는 요리사들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특히 진경수와 남성렬 셰프의 요리들은 필기까지 해가며. 

조만간 도야지 파스타에 도전합니다.


4.

며칠 전엔 혼자 마신 술에 취해 혼자서 노래방에 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자꾸 뭔가 빠트리지 않았냐는 눈빛을 쐈지만,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온갖 노래를 부르다 멈칫. 그래요, 나에게 없는 것을 그리워 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겠어요.


5.

당분간은 계속 질척질철, 구질구질, 찌질찌질. 할 것 같다.

괜찮다. 가을이니까. 어차피 겨울 오면 추워서 이러지도 못한다. 

그리고 사실, 이거 조금 재밌다. 구질구질.


6.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단상

1.

영화를 보고나와 에어컨 나오는 다방에 앉았다. 머리도 몸도 차갑게.
정직 1일차의 실감 같은 없다. 이미 23일째 제작거부 중이다. 그렇다고 마음의 동요가 없는 아니다.

이제 새로운 국면이 열릴 것이고, 아마 많이들 다치고 많이들 힘들어질 거다. 나와 동료들만이 아니다. 저쪽의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말을 뱉어내게 거고, 그렇게 모두가 쏟아내는 말의 홍수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지치고 힘들어질 거다. 모두 어쩌면 만신창이가 돼서 끝끝내 허물어질 수도 있을거고, 그래도 남은 한줄기를 미련스레 부여잡고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좋은 결말은 아니다.

'국민TV 사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매우 단순한 문제다.

'제작 시스템을 비롯한 조직전반에서 소통구조가 망가졌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망가진 소통구조에 의해 묵살됐다. 조직전반 소통구조의 문제는 보도기능 폐기라는 형태로 돌출됐고 노조는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이거다.

징계, 노조인정, 중재, 대화, 재정악화, 경영권, 시민사회, 협동조합, 대안언론, 보도가치..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저,

'그래도 이건 아니죠'

2.
고백하건대 국민TV 출범할 코웃음을 쳤다.
"
노빠들, 깨시민들 모여서 자기들끼리 쿵짝쿵짝한다고 뭐가 되겠어?"
작년 7, 국민TV 입사할 때의 마음가짐도 그정도였다.

적당한 타협.
그래도 대안과 진보의 가치를 견지하겠다니까, 그러면서도 생활을 보장해 수도 있다니까.

언제나 운동이 후퇴했다고 생각했다. 활동가로 살겠다는 입바른 허세야 스물살 시절의 객기고 치기였지만, 그래도. 타협은 조금씩 현실에 가까운 쪽에서 이뤄졌고, 타협을 '성숙'이나 '철들었다' 같은 말로 꾸몄다.

가끔씩은 일종의 자조나 자학으로 나를 방어했다. '운동의 후퇴'같은 말은 진심이기도 하지만 그런 '방어용 수사'기도 했다. 여튼, 국민TV 입사는 그랬다. 번의 후퇴, 적당한 타협, 조금 세상에 익숙해지는 .

혼란이 입사 얼마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국민TV에서 뉴스를 만드는 동료들은 생각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외엔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능력의 이야기기도 하고, 사람 자체의 이야기기도 하고, 하여튼.

자체 주민투표를 개최한 삼척으로 취재를 갔을 , '직접 민주주의의 현장을 맘껏 누리고 오라'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하고 싶은 얘기를 알아주는 뿌듯함, 가르쳐주고 꾸짖어주는 고마움. 그러고보니 아마 순간이었나보다. 조직에 대한 '애정'이라는 생긴 .

어느날 일기장에 후퇴를 아니었나보다.라고 썼다.
그보다는 후퇴를 후퇴가 아니게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던 같기도 하고.

3.
많은 말을 들었다. 걱정도 조언도 격려도.
(
우리에게 가장 많은 '조언' '' 주신 사측 노무담당자라는 이번 투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출구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말을 했고,
이번에도 후퇴를 성숙이나 어른스러움으로 포장하려고 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동료들은 이번에도.

그래서 적어도,
단지 돌아가기 위해 돌아가진 않겠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살진 않겠다.

아주 단순한 것을 바로잡고 지키고 싶었을 따름이다.
아닌 아니라고 하는 .

각자 속에서
아닌 아니라 하고
지킬 지키며 사는 삶에 대한 아주 당연한 바람.

'그래도 이건 아니죠'

4.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

5.
성명서를 써보려는데 이제는 말이 더 없어서 이런 글이나 끼적거리고 있다. 한시간이나.. 먹으러 가야지.

6.
후원을 받습니다. 전화를 주세요. 주로 현물로 받습니다.


단상



어느새 열두시가 넘었지만, 여튼 오늘은 전태일 열사의 44주기다. 

그리고 대법원은 2심을 뒤집어 쌍용자동차의 해고가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씨앤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미터의 전광판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고 때마침 한파주의보와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언론은 십 몇년 만의 수능한파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내 보기에 어쩌면 그 수험생들은 모두 예비 비정규직이다. 그들은 어쩌면 조작된 회계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6년을 거리에서 지내게 될지 모르고 어쩌면 파리목숨 같은 고용을 두려워하다 어느 철탑 위로 올라가게 될지 모른다. 

평화시장의 어린 시다들을 가슴 아파하던 전태일은 언제고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오늘 여전히 구천을 떠돌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어린 시다들은 지금 비정규직, 정리해고, 간접고용, 알바노동. 그런 말들로 여전히 있다. 44년동안. 

오늘의 대통령은 전태일 시대의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수많은 돈을 쓴다. 
이 윗줄, 우리시대의 대통령이라고 적었다가 이내 오늘이라고 바꿨다. 우리시대가 전태일의 시대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44년, 대한민국은 무엇이 달라졌나. 무엇을 했나. 그리고 나와 당신, 우리는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었나.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 

오늘, 대법원에서 하염없이 울었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전화를 걸어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그래서 앞으로 어찌 할거냐고 물으려 했다. 

다행인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그 그악스럽고 무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안도했다. 

아.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이렇게 시시껍절 아무 의미도 없는 낙서나 끄적이는 게 전부라서 서럽고 미안하다. 

다시 또. 무엇을 해야하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상

1.

블로그를 너무 오래동안 방치해 놓은 듯 싶어 스킨도 좀 조물딱 거리고 사진첩도 뒤적거려 새롭게 단장해봤다. 얼마전엔 티비에서 SNS의 짧은 대화에 지친 사람들이 다시금 블로그로 회귀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던데 (실제로 주변에 싸이월드나 네이버 블로그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몇몇 있기도 했다) 꽤 오래도록 챙겨놨던 블로그가 퍽 소중한 자산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2.

블로그를 처음 열었던 건 2007년, 이글루스. 그보다 앞서 고등학교 때 블로그인이나 싸이월드 블로그 같은 걸 쓰기도 했지만 제대로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을 했던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겠다. 싸이월드에 난무하는 사이좋은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사이좋은 사람들한테는 차마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끼적거렸다. 어께에 힘을 잔뜩 준 정치이야기가 태반이었고 사는게 어쩌니 사람이란 무엇이니 하는 어줍잖은 이야기나 영화와 노래 이야기같은 잡다하고 읽는 사람에겐 별 영양가도 없는 이야기가 즐비한 그런 블로그였다.


지금도 가끔씩 잠궈놓은 이글루스 블로그에 들어가서 그 때 지껄인 이야기들을 들춰보는데 손발이 오글거리고 얼굴이 빨개지지만 그 때는 분명 진심이었고 진지했던거다. 지금에는 도대체 왜 저런 말들을 지껄였을까 싶은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나 음악, 영화 취향들도 있다. 


친구나 후배들, 혹은 이제 몇 명 찾지도 않는 내 다락 골방같은 블로그의 독자들이 혹여 내 글이나 내 생각에 동의할 만한 면이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오로지 그 시시껍절한 포스팅과 가끔 개싸움같고 가끔은 진지했던 그 토론들의 공이다. 여튼 앞으로는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이야기.


3.

얼마전에 트위터를 돌아다니다 "요리 잘한다며 파스타 해주는 남자는 다 가짜며, 진짜 요리를 하는 남자는 나물을 잘 무치는 남자"라는 요지의 트윗을 읽고 대오각성, 집에서 오이지를 좀 무쳤다. 사실 여름 나물이라고 하면 고구마순이나 열무, 가지, 비름나물 같은게 진짜지만 일단은 집에 묵어가고 있던 오이지부터.ㅋ 


오이는 냉한 음식이라 몸의 열기를 내려주고 갈증을 해소한다. 거기다 이뇨작용과 해독작용이 있어 술독을 푸는데도 매우 좋다. 등산을 할 때 물대신 오이를 먹고, 한 때 오이소주가 유행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거다.


좋아하는 오이지무침은 소금으로만 살짝 간을하고 참기름과 다진마늘만 조금 넣은 것이지만 반찬 할만한 음식이 따로없어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넣은 짭조름하고 시뻘건 오이지와 소금간만 한 오이지 두 개를 뚝딱뚝딱 무쳤다...지만 헐 사진을 찍어놓지 않았다. 비주얼이 썩 훌륭했는데. 사진은 다음 기회에 첨부.


여튼 내가 이렇게 밑반찬과 나물무침에도 능숙한 남자. 파스타만 졸여대는 그렇고 그런 남자가 아님니다. 


4.

친구들이랑 정치나 철학같은 주제로 수다를 떨다보면 언제나 내 이야기는 "크로포트킨을 보라고, 만물은 서로돕는 법이야"같은 말로 매조지된다. 사실 내가 무슨 거창한 아나키스트나 생태주의자도 아니고 실은 들먹일만한 식자가 그 뿐이라서 그런거지만 실제로 만물에겐 서로돕고 살아가는 본성이 있으며 우리는 본성대로 서로를 짓밟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을 나눌 본성을 억누르며 서로를 적대하고 있다 여기는게 훨씬 행복하고 희망적이지 않을까. 희망따위가 완전히 거세된 세계관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겠나. 뭐 그렇다고. 그러니 맨큐의 경제학을 덮고 이반일리치와 크로포트킨을 읽으라.


내가 공부모임 발제문 준비하느라 눈알빠지게 혼자 책 읽은게 억울해서 그럼니다. 엉엉엉.


5.

열대의 밤, 잠도 안오고 땀이 삐질삐질 날 때는 우당탕탕 시끄럽고 소리지르는 노래를 들어야 합니다. 할로우잰을 좋아하지 않으면 여름을 제대로 나고있는게 아니에요. 흥, 쿨 따위.


     

단상

1.

일단 엄마가 있는 성남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을지문덕한 기분. 아무 것도 한 것없이 또 시간만 보냈다.고 한탄했지만 그래도 한강변 산책하며 에로틱한 장면들은 많이 봤던걸 위로와 성과로 삼자. 이렇게 나는 욕정의 화신으로 일신우일신하고 있다.


2.

"너 요즘 모든 얘기의 결론이 돈이야"

적은 돈을 벌며 살아가더라도 원체 욕망과 취향이 소박해서 크게 상관없을거라고, 물질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고결한 삶을 살 것처럼 말했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의 나는 그렇게 속물이었나보다. 더구나 능력도 없는 속물. 


눈치채 달라고 구걸하는 순간이나 정작 누군가 눈치채 안쓰러운 눈이든 경멸하는 눈이든 귀찮은 눈이든 모종의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이 참 곤혹스럽고 부끄럽고 싫다. 한꺼풀씩 치부가 드러나는 괴로움. 여러해동안 나름 열심히 포장해놨던 삶이 벗겨져 결국 맨살이 드러났는데 그 맨살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3.

사실 가난한 삶이 문제가 아니겠다. 누군가는 외로움이라고 누군가는 고단함이라고 또 누군가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그 무엇. 결국 살아가는 일이 미숙하다. 살아가는 어려움, 먹고사는 어려움, 하루를 견디는, 누구나 다 하고 살아야 하는 그 일에 대한 공포심. 같은거.


4.

며칠 전엔 에로에로한 상황을 연출하다 결국 골문 앞에서 슈팅도 날리지 못하고 박주영이 되는 꿈을 꿨다. 오늘 아침엔 애지중지하던 염주가 산산조각나 시궁창에 빠져버리는 꿈도 꿨다. 정신분석에 빠진 누군가라면 무의식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새겨져 있어 그렇다.고 해석해주지 않을까. 하지만 그냥 치미는 욕정때문이라고 에둘러대자.


5.

"그대들의 능력 이상으로 유덕한 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그리고 가능하지 않은 일은 바라지 말라"

차라투스트라를 펼쳤더니 펼치자 마자 저 문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망할 해결의 책. 니체 이놈.


6.

정도전의 전도를 마치고 요즘은 유나의 거리를 열심히 본다. 어딘가 어색하고 괜히 진지해서 더 웃기거나 더 서러운 대사들이 좋다. 일부러 울라고 후벼파거나 인물들을 괴롭히지 않아서 좋고, 그걸 내 얘기라고 하기도 하지 않기도 어려워서 어정쩡하게 그저 한 숨이나 푹푹쉬며 지켜보게 되는 이야기도 좋다. 


그리고 뭣보다 노래. 사랑 따위로 위로가 안될만큼 외로운 순간에 부를 법한.


++

고통도 슬픔도 막연한 감정만 남긴 채 이 술처럼 넘어가길 바래.

하루 더 또 하루 더 참아내는 삶을 살아도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7.

날씨가 좋다고 남산 어드메를 뛰다가 아무래도 더위를 먹었나보다. 기운도 빠지고, 머리도 빠지고.

성남으로 돌아가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남한산성에서 닭죽이나 한 사발 후루룩 짭짭 먹고싶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단상

1.

이번 사고가 터지고 가장 마음이 먹먹했던 기사.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남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고통. 
하지만 살아야지, 먹고 놀고 웃으며 그래도 살아야지.

2.
말이 넘쳐난다. 저 위정자들의 유체이탈 화법이야 이제 하나하나 옮겨적는 일도 지치니 잠시간 뉴스를 끊고 심호흡,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해야하겠다. 우리가 할 일은 짧고 굵게 분노하다 지치는 것이 아니라 길게 슬퍼하며 오래기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속죄. 

누구 하나를 악마화 하고 몰아붙이는 것으로 분노를 소모해서도 안된다. 사고는 정권의 탓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 탓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들었거나 유지했거나 납득하고 체념하고 다른 세계로의 가능성을 체념한 우리 모두의 탓이기도 하다. 1년짜리 비정규직 선장과 선원들이 배와 함께 장렬히 최후를 맞이하는 해적만화 같은 책임감을 발휘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비용절감과 규제완화만이 절대의 선인양 온 나라가 발벗고 나서는데, 합리와 효율이라는 말에 이미 생명과 안전은 배제되는 이 신자유주의의 세계에서.

책임의 소재를 가리고 적절하게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것은 냉정한 분노와 정확한 진단이다. 

3.
가뜩이나 봄을 타고 있는데, 온나라가 초상집이니 마음이 더 심숭생숭하다. 낮에는 괜히 티비에서 나온 서른즈음에를 듣다 울컥해버렸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불안과 우울, 서른해 남짓 나를 대표해온 키워드가 이런 것이라니 참 서글프기도. 아까는 운동 중에 한남대교 다리 위에서 담배를 태우며 멍하니 서있는데, 뭔가 걱정스러워 보였는지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더라. "야경 참 예쁘죠?". 그 에쁜 풍경에 내 몫이라곤 하나 없는 것 같아서 괜히 더 울컥했다. 하지만 대답은 해맑게.

4.
이와중에 엘지는 승률 2할5푼을 찍으며 최하위. 며칠전엔 빈볼에 이은 벤치클리어링으로 구설수에. 좀 작작하자.

5.
몇 주 밀렸던 참좋은시절을 몰아서 다시 봤다. 요 몇 년간 그 시간대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좋은 드라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김희선과 윤여정이 참 돋보이고 예쁘다. 애잔하고 슬프다 피식 웃게되는 몇시간을 집중하고 있는데, 김희선이 밥을 먹는 식당장면에 이송 감독의 남쪽으로 간다 포스터가 잡힌다. 포커스가 완전히 나가서 글자고 그림이고 잘 안보이지만 실루엣만으로 포착해낼 수 있어야 진정한 덕후입니다. 내 덕력의 가이없는 성장이 뿌듯할 따름.

6.
며칠 전엔 고즈넉하고 어두운 바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입구엔 지미헨드릭스가 걸려있었고 들어설 땐 김광석이 흘러나왔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트래비스니 콜드플레이니 하는 브릿팝부터 QVL이나 뉴트롤즈 같은 프로그래시브에 서태지와 다프트펑크까지 대중없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는데, 노래가 나올적마다 반응을 보이니 흥이난 사장님이 대뜸 90년대 댄스뮤직 퍼레이드로 방향을 선회했다. 친구와 대화 중에 듀스니 Ref니 하는 팀의 이름이 나온걸 아마 사장님이 들었나보다. 시간도 늦어 가게 안엔 만취한 사람과 만취할 사람만 남아있었는데, 그 탓인지 사람들이 흐느적 흐느적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졸지에 밤과음악사이가 돼버린. 얼결에 나도 일어나 꼭지점 댄스같은 춤을 뒤뚱뒤뚱 추며 그 가게의 웃음거리가 돼주었다. 뭐 여튼 재밌게 잘 놀았다고. 시절이 어떠니 우울이 어떠니 해도 술을 마시고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춤도 추고 그러는 겁니다.

7.
그래서 내 장래희망인 대학가 허름한 술집의 털보 뚱보 사장겸 셰프겸 DJ가 이뤄졌을 때 꼭 틀고 싶은 오늘의 노래는 이거.
      



단상


1.

요즘 내게 닥치는 문제들에 대해서 이래저래 끼적여보다가 중언부언이 되는 것 같아 관뒀다. 다만 끼적여 눈으로 읽고 나니 문제는 머릿 속이 엉켜있어 너무 산만하고 두서없다는 것. 해야 할 말을 안하거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있다. 의미없는 말이(만) 많아졌고,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재미도 없고 실없는 농담만 지껄이는 중. 돌아서면 후회할 일과 말.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는 느낌이다. 그보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글도 말도 중언부언. 재미없는 농담을 끝없이 지껄이는 남편을 살해한 여자에 대한 소설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뜨끔했다. 여튼.


이래저래 생각을 하다 자존감의 부족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렸다. "이 말을 해도될까"라는 마음, "이렇게 말하면 관심받을 수 있을거야"란 마음. 같은 거. 생각을 정지시키는 우울한 삶도 사실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고, 사실은 자존감이 떨어진 결과기도 하고. 여튼 살을 빼기로 했다. 연애도 하고. 말을 줄이고, 글을 늘리고. 돈을 아껴쓰고, 일찍 일어나고, 열심히 씻고, 택시를 타지 않고. 


2.

절에 갔다가 법화경을 한 권 얻어왔다. 조금씩 조금씩 머리맡에 두고 읽어야겠다. 경전 읽어서 좋은 일이 생길거라는 마음보다는 뭐든 다시 읽는 습관을 들여야지,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지. 책을 제대로 끝까지 읽은게 언제적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3.

JTBC에서 하는 밀회를 보기 시작했다. 유아인과 김희애가 협주하는 장면이 마치 격정적인 베드신 같았는데, 그렇게 느끼라고 만든 장면이었나보다. 그런 대사가 나중에 나오더라. 재밌고 좋은 드라마를 보는 일, 그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끼적거리는 일. 이 찌질한 일이 지금 내가 하는 가장 행복한 일이다. 


4.

하지만 가장 행복한 일을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돈 버는 일을 해야지. 사실 내가 가장 우울하고 힘든날은 주머니에 돈이 없는 날이다. 빚지는 것도 쩔쩔매는 것도, 돈 때문에 고민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흥청망청 놀아재끼는 일부터 줄여야지. 술을 줄이면 살도 빠지고 돈도 아끼고. 


5.

운세사이트에서 사주를 보는데, 내 애정운을 이렇게 설명해놨더라


[계일생(癸日生) 남성들은 다소 나약하고 소심한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성이 나타나도 머뭇거리다가 구애의 시기를 놓치고는 후회하기도 합니다. 지하로 흐르는 물, 즉 음기가 강한 물이기 때문에 숨겨지는 것이 많고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면이 많은 까닭입니다. ]


소심하고 찌질한건 이미 사주에서 예견된 바였다... OTL


6.

오늘은 만우절. 하루종일 내게 농담한 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다. 사실 나도 딱히 농담한마디 하고 싶은 사람도 기깔나는 개드립 아이디어도 없다. 내 꿈이 무려 개드립의 마술산데. 그래서 그냥 짤방으로 대체.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만우절에하는 사랑고백은 대부분이 진심일거다. 그래서 난 고백하지 않을거다.ㅋ 다만 만우절을 핑계삼아 고백해주세요. "라면먹고 갈래? 불닭볶음면도 있어" 엉엉엉. 제발. 엉엉엉.


8.


거짓말하면 역시 god.




단상


1.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을 진즉에 포기했다. 무슨무슨 주의니 하는 말들을 드립다 읽어봤자(사실 그렇게 드립다 읽지도 않는다ㅋ) 변혁도 다른 세계도 이미 요원하다. 그것이 사회나 세계같은 거창한 것이든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든 모든 변혁과 진보는 어차피 곧 봉합되고 원점으로 회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포기'는 아닐테다. 봉합된 세계는 다시금 뜯겨나갈 것이고 봉합과 탈주가 무수히 반복되는 동안 생긴 작고 미세한, 정말이지 너무너무 작고 미세해서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균열들의 축적이 마침내는 변혁이고 다른세계일 것이라는 희망을 믿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그 희망을 '믿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떨었던 수다와 심각하게, 혹은 낄낄거리면서 나눴던 토론이 지금 당장의 변화를 추동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책에서 읽은대로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고 자괴하는 일도 좋다. 그 자괴가 알리바이로 작용하고 자기변명꺼리로 이용되는 일도 나쁠 것 없다. 다만 희망을 믿을 수만 있다면. 오늘내일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말이다. 오래가는 힘, 오래도록 희망을 부여잡을 수 있는 힘. 그건 아마 쉽게 실망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마음에서 나올 것이다. 시간을, 마음을, 이야기를, 공간을 쌓고 또 쌓자. 조금씩 조금씩. 낙숫물이 주춧돌을 뚫어버릴 듯, 우씨 노인이 산을 옮기듯, 소녀시대가 꾸준히 예뻐지듯. 


그래서 오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다만 외로움이다. 희망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시간을, 마음을, 이야기를, 공간을, 관계를 앗아가버리는 그런 모종의 외로움. 오래도록 희망을 믿고 시간을 쌓아나가기 위해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더 나은 우리가 건강해야한다. 하여 결국 하고싶은 말은 외롭지 않게 즐겁게, 오래도록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게, 재밌게 놀자는 것. 그러니 소개팅을 굽신굽신.ㅋ     


2.

연애음주주간. 물론 내 연애는 아니고 남의 연애문제에 감놔라 배놔라 하느라 일주일간 하루도빼놓지 않고 부어라 마셔라 흥청망청 술을 마셔댔다. 그 연애문제들에 시덥지 않더라도 뭔가 위로를 건네고자 얼마 있지도 않은 멜랑콜리한 사연들을 끄집어 쥐어짜내느라 적잖이 고통스러웠던. 마른오징어에서 물짜내는 것마냥. 


여튼, 그 덕에 지난 내 애정사를 톺아보며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모두 맛보고나니 우울감보다는 어쩐지 후련한 기분이다. 내가 얼마나 바보같고 폭력적이었는지, 또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에는 얼마나 비겁하고 용기 없었는지를 모두 기억해낸 듯. 그래, 사랑만이 오직 우리가 해야할 일.


3.

집안의 대소사며 회사의 망할 상사이야기, 시시콜콜한 연애문제까지 살며 겪는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에게 "좀 덜 친하게 지내자"고 말했다. 다시금 적당한 거리두기. 서로에 대한 의존이 너무 많이져서, 서로의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서 (걔도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다만, 여튼.) 어쩌면 각자의 삶에 스스로 충실하지 못하고 나가선 서로의 삶을 갉아먹고 잠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니까, 걔 소개팅과 새 연애를 치졸하게 방해하는 나를 봤다는 얘기다. 괜한심술과 투정, 질투.


사실 한 5년 전쯤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있었는데. 언제까지 이런 실수를 계속 반복해갈진 모르겠고 아마 또 한 5년쯤 지나서 이런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언제나 친구에게 "외로움을 긍정하고 견뎌낼 수 있는 법을 배우자"고 말했다. "오직 그것만이 이 외로운 세상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지켜내며 외로움으로부터 침식당하지 않을 방법"이라면서. 이제 그 말을 나 스스로에게 돌려줘야지. "외로운 마음을 인정하고 견뎌내자" 


4.

그래서 이번 주의 노래는 뜨거운 안녕.ㅋ

하지만 노래는 성시경이 부른게 더 좋은데, 싸이의 그 유치하고 저질스런 추임새 랩만 빼면.ㅋ



5.

프로야구 개막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리즈의 공백이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 한 번이라도 만족스런 전력으로 시즌을 시작한 적 있었나.ㅋ 그간 10년 정도는 엘지에 없었던 말인 '유망주'들이 한것 자라주고 있다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낸 노장들도 한껏 사기가 충천했다니 신심을 갖고 시즌을 지켜보겠다. 


시범경기 마지막날 처음으로 잠실을 찾았는데, 기아로 이적한 이대형의 모습이 늠름하더라. 어려운 시절 꿋꿋하게 팀을 지켜준 의리있는 남자 이대형이 승승장구하길 온마음으로 바란다. 시즌당 도루도 한 70개씩하고 4할출루에 3할타율도 기록했음 좋겠다.그러다 다음 FA에는 거액을 받고 친정팀으로 금의환향 하기를.


이쯤에서 내 멋대로 엘지트윈스의 베스트 나인.


1. 박용택 (중)

2. 오지환 (유)

3. 정의윤 (좌)

4. 조쉬 벨 (3)

5. 이병규9 (DH)

6. 이진영 (우)

7. 이병규7 (1)

8. 현재윤 (포)

9. 손주인 (2)

P. 류제국


김용의나 문선재, 정성훈, 윤요섭 같은 이름이 너무 아깝지만 일단 베스트 멤버는 저쯤 아닐까.

김용의 문선재의 불확실한 포지션을 정리하고 박경수와 권용관이 더해진 내야의 힘을 좀 더 키우면 공격력은 올 해도 최고 수준일듯. 문제는 선발진인데, 개막선발로 내정된 김선우는 여전히 조금 못미덥다. MLB의 써니 시절은 사실 이미 진즉에 지났는데.

(하지만 그래봤자 우승은 삼성이 하겠지요)


5. 

정도전, 참좋은시절, K팝스타, 일박이일까지. 주말, 특히 일요일에 챙겨보고 있는 TV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아져서 고단하다. 참좋은 시절과 K팝스타는 벌써 2회나 밀렸어. 얼른 따라가야지.ㅋ


6. 

주말에 TV나 보는건 내가 연애도 못하고 외로움에 사무쳐서 그럼니다. 바야흐로 고독이 몸부림치는 계절. 하트는 이제 그만보내주세요. 애니팡만 하고 있는 내가 너무 처량함니다. 엉엉엉




단상



1.

돈벌려고 쓰는 글을 하나 쓰고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이 점점 커져서 생활 사이클이 완전히 무너질만큼 부담스러워졌다. 어쨌든 내 손에서 나오는 글이니 어디 내놔서 부끄럽지 않은(글을 써본 역사가 없다만) 결과를 내놓고 싶은데, 시간이나 여건이 수이 허락치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여건에는 내 게으름도 큰 몫을 하고.. 여하간에 여태껏 져본 수많은 빚 중에 가장 부담은 역시 글빚이라는 결론.


2.

어두운 방안에 틀어박혀서 스탠드 불빛에 모니터만 바라보는 상황을 '영철이 모드'란 코드네임으로 부른다. 영철이는 드라마 마왕에 나왔던 캐릭터다. 어두운 방안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던 찌질이. 앞으로도 몇 주간은 더러운 영철이 내지는 담배피는 영철이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영철이는 단정하기라도 했었는데.



얘가 영철이다. 나도 지금 빨간 플러스팬을 들고 있다는게 흠좀무



3.

며칠동안 너무 영철이 모드로 있었다. 밖에 눈이 오는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는 상태. 졸리면 쪽잠자고, 배고프면 밥먹고. 심지어 담배도 보루로 사다놔서 담배사러 밖에 나갈 일도 없이. 며칠 만에 방밖으로 나와서 온통 눈이 내린걸 보다가 불현듯 밖에나가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폭('푹' 아니고 '폭'이다) 삭힌 홍어 한 점이랑 뜨끈한 홍어애탕 한 그릇, 

눈 녹기전에 뜨끈한 오뎅에 찬 사케. 

방어 한접시 회떠서 아껴가며 호호불어 먹거나, 

빈 소주병 꺾어 셈해가며  불판에 볶듯이 구운 십수장의 대패삼겹살.


바야흐로 술타령의 계절.


4.

얼마전에 동거남과 밥먹으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케이블채널에서 '태조 왕건'을 봤다. 연출이며 메이크업이 그렇게 촌티날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KBS1에서 하는 대하사극이 갖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마침 궁예아저씨 장면이라 카리스마도 작렬했었고. 그러다 요즘엔 정통파 우완 대하사극이 나오질 않는 것(사실 나오긴 나오고 있었으나 별반 힘을 못쓰고 있었던 거였다)같다며 나름의 분석들을 막 지껄였었다.


그러다 며칠전에 새로하는 정도전을 봤는데, 이거 재밌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나왔고, 용의눈물에서도 정도전의 철학이나 정치는 고려말과 조선초중기를 아우르는 가장 뜨거운 이슈였는데, 왜 지금껏 정도전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지기도 하고. (그의 사상이 끌었던 인기에 비하면 지금 지젝이나 강신주의 인기는 그야말로 보름달 앞의 반딧불인거다.)


잘 생각해보면 입헌군주정, 내지는 내각책임제 같은 선진적 사상을 이미 14세기에 만들어냈었고, 그가 세운 경국전이 수백년의 조선 법체계의 근간이었던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시대의 대박인재. 언젠가 정도전, 정약용, 이율곡 같은 역사 속 천재들을 나열해 놓고 누가 가장 천재적이었는지를 묻는 그런 쓸데없는 장면을 본 것 같은데, 압도적으로 정도전의 승이었다. 


여하튼 정도전 역할의 배우는 예전에 용의눈물에서 열연한 돌아가신 김흥기 아저씨가 짱( 이아저씨가 정도전 역할만 몇 번씩 하고 정도전의 정치철학사까지 깊이 이해하고 심지어 강연도 하던 무서운 아저씨임. 이른바 정도전 능덕)이라고 생각하는 건 변함없지만, 조재현의 그 과잉된 연기도 간만의 정동파 우완 대하사극에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박영규 아저씨가 연기하는 이인임도 카리스마 쩔고. 다만 아쉬운건 임호. 그 정몽주에 임호를 끼얹나. 임호가 연기할 수 있는 사극 역할은 숙종이나 선조 정도로 마무리하자. 

 

5.

강신주 이름이 나와서 강신준이 생각났는데,

어느 친구가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자본과 강신준 교수가 번역한 자본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었다. 심지어 야밤에 전화해서. 

할 말이 없어서 한참 있다가 "김수행 교수 자본에 한자가 훨씬 많아"라고 대답하곤 끊었는데, 괜히 기분이 졸라 나빴다.


씨바,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6.

당장 아주 바쁜거만 좀 지나면 간만에 요리를 좀 해야겠다. 내 비장의 요리들은 예전에 알바하면서 어께너머로 익힌 이탈리아 음식들을 기반으로 내 쏘울과 감성, 게으름, 인간미 등등을 첨가한 필살 막장 레시피였는데, 새로운 체제로 외연을 좀 확장해 봐야겠다. 마침 난 이태원 주민이라 주변에 쏠쏠한 식자재들도 많이 있고. 다음의 도전 과제는 에스닉 푸드. 카다몸이나 클로브 같은 향신료들을 신기해서 몇 개 사왔는데, 아뿔싸 돌절구가 없슴니다. 


모쪼록 올 해에는 웰컴 투 에스닉 월드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과 손을 정갈히 해야지. 


7.

봄에는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동해에서 배타고 떠나는 블라디보스토크. 때마침 푸틴 형이 근혜누나랑 무비자 협정을 체결해줘서 더 감사하다. 푸틴 형, 근혜누나 짱짱맨 짱짱걸. 여유가 있다면 기차를 타고 크레믈린이랑 붉은광장 같은데도 가고 싶은데 어찌될지. 여하간 기다려라, 사상의 조국. 응?ㅋ


8.

바빠서 셜록 시즌3의 첫번째 에피소드밖에 못봤는데, 반응들이 영 시원찮다. 우리 셜록이 이렇게 찌질할리가 없어. 엉엉엉. 같은? 왓슨한테 너무 집착한다고. 두근두근. 난 사실 그 형이 찌질하게 집착하는게 좀 더 섹시할 거 같다.ㅋ 여튼 기다려라 셜록.


9.


사실 위에서 너무 미화했지만, 내 영철이 모드는 여기에 더 가깝다.


10.






단상 - 서른

스무시간 남짓이면 올해도 지나고, 올해가 지나면 내 나이의 앞글자도 바뀌는데, 어쩐지 아무렇지도 않아서 더 마음이 묘하다. 

백투더퓨쳐의 마티가 경험했던 미래는 고작 1년앞으로 다가왔고 원더키디가 우주를 향하기까진 5년밖에 남지않았다. 

 "서른을 맞지 않으려고 스물아홉에 자살할거"라던 십대시절의 그 기막힌 일기를 곱씹다 서른이란게 그렇게 대단할것도 또 그렇게 역겨울것도 없는 나이라는걸 알게됐다. 그보다는 스무살이 그렇게 뜨겁지만도, 열일곱이 그렇게 푸르지만도 않았다는걸 기억해 냈다는게 더 정확하겠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절대 소모되지 않는 에너지원을 개발해낸 외계생명체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처럼, 그건 아마 그저 막연한 동경이고 상상이고 또 두려움이었다. 단지 환상. 

 그래서 2013년과 2014년의 사이, 스물아홉과 서른의 사이에는 그 전과 동일한 1초가 있다. 다만, 어렵고 두려운 것은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는 1초의 무게'들'이다. 여상스러운 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하는 1초의 무게감. 그것을 지난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견뎌내고 바라보는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하는 축적들. 

 역겹거나 고단한 삶일 것도 없는 여상한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하겠다. 발레리의 말마냥 바람이 불어서 살아야겠다. 역겹지도 고단하지도 못한 삶을 견뎌내는 일. '고작' 살아남는 일이 어쩌면 '그렇게도' 살아가는 일이겠다. 서른에도 스물에도 어쩌면 마른이나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단상


1.

오늘의 심야조깅(을 빙자한 산책)은 9.64Km.

브금으로 아이돌 댄스를 주로 듣는데, 갑작스런 변박으로 혼란의 카오스에 빠졌던 아이야를 무사히 넘겨서 기쁘기 한량없다. 하지만 최고의 러닝브금은 역시 로드파이터와 컴백. 역시 젝키가 짱.


2.

엘지의 플레이오프 광탈이후 야구소식을 단호박 자르듯 단호하게 끊었다. 박펠레 박동희가 두산의 승리를 점쳐서 당연히 엘지가 이길줄 알았는데. 기왕 이렇게된거 두산이 드라마마냥 코시를 우승해줬으면 싶..을리가 있냐. 드라마고나발이고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진리를 삼성이 막강 전력으로 증명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두산의 2승.


강제강판 같은 어지간해선 고교야구에서도 안나올 진기명기를 보여주는 두산은 정말 드라마의 팀. 그러니까 삼성 이겨라. 홍홍호옹.


3.

트위터에서 모집하는 공부모임을 신청했다. 인문사회과학과 미학공부. 일단 내주까지 앙띠오이디푸스를 읽어야 하는데 책도 아직 못구했다. 현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일단 내 근본없는 무식함.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무식함보다는 대책없는 게으름이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 그니까 일단 뭐라도 하겠다구요.


4.

김현식 아저씨의 미발표 곡들을 모은 앨범이 나왔다. 버스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그 소식을 발견하곤 기사아저씨의 목을 졸라 차를 돌려 핫트랙스로....향하진 못하고 내려서 버스 갈아타고 갔다. 그리고 아, 목소리. 마침 그 날은 주찬권 아저씨가 죽은 다음날. 얄궃게.


'그대 빈들에'는 김현식 아저씨의 마지막 목소리라고 한다. 2013년 시월에 듣는 90년 시월의 목소리. 그렇게 노래가 남아 사람을, 시절을 돌이켜주는 것. 노래를 불러야지. 죽을때까지 하염없이.


++

세상이 모두 다 내것 같을 때, 나는 저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았네 

세상이 모두 어둠으로 덮힐 때, 나는 또 어둠을 걸었네

이젠 떠나야할 시간이 되었나봐 이젠 잊어야할 시간이 되었나봐


5.

이제 여간해선 무협지를 잘 읽지 않는다. 그나마 환상문학이 팔리는 장사가 되니까 우후죽순처럼 온갖 허섭스레기들이 양산됐고 내용은 차치하고 비문투성이에 쉬운 맞춤법도 지키지 않는 무협지가 태반이다. 영웅문이나 천룡팔부를 읽으며 철사장을 연마하고 땅에 떨어진 강호의 도의를 가슴 아파하던 시인묵객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여하튼, 이제는 거의 끊어낸 무협 중독에도 끝내 끊어내지 못하는 무협지가 하나 있는데, 한백림 작가의 한백무림서. 한백무림서가 책 제목은 아니고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 속 세계관에 등장하는 책 이름인데, 작가는 이 한백무림서가 완성되는 이야기를 10여 개의 독립된 시리즈물(그러니까 주인공이 10여 명쯤)로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란다. 한 시리즈가 보통 10권정도 되니까 완성되면 총 100권이 넘는 대하소설이 되는 것. 무협지가 재밌다기 보다는 이 원대한 계획의 진행을 지켜보는 맛이 있다.물론 소설 자체도 소소하고 쏠쏠한 재미가 있다. 


작가가 현직 의사라던데, 그래선지 극악할 수준으로 연재진행이 더디다. 지난 권을 읽고 군대에 갔다는 독자가 제대를 했는데도 다음권이 나오지 않더라는.... 그런 수준.... 하지만 요 극악한 작가의 만행에도 기다린 보람이 있어 신간이 나왔다는 첩보를 뒤늦게 입수했다. 내일은 간만에 만화방가서 짜장면을 먹어야겠다.


6.

아, 춥다.

기온이 얼마나 내려갔을 때면 보일러를 틀어도 부끄럽지 않다는 가이드라인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