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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아주 늦은 밤 평상에 앉아 맥주와 수박을 먹을때, 무릎위엔 모기향과 담배에서 품어져 나오는 독한 냄새를 뚫고 들어온 불굴의 모기가 살포시 앉아있고, 수다를 떠느라 모기가 다리를 무는지 발가락을 무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싶다.

오히려 여름은 쾌적한 계절이다. 몰래 숨겨놓은 추위도 급작스러운 변덕도 없이 그저 내리꽃히는 태양과 쏟아지는 빗줄기만 있다. 본래 여름은 솔직하고 아늑한 계절이다.

한낮 도심 한가운데를 걷다 극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네모난 콘크리트 덩어리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럽지 못한 열기와 물기 하나 없어 머릿속 까지 말려버리는 것 같은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과 햇빛 한 모금, 땀 한방울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한 지독한 화장품 냄새와 이 모든 불쾌감을 만들어 놓고도 불쾌하다 짜증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어디론가 숨고 싶을 만큼 불쾌해진다.

아침 일찍 산에 올랐다. 이슬을 가장한 보슬비가 내렸고 나무는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었고, 골마다 물이 흘렀고 이름 모를 풀들과 꽃과 나무와 땀과 물과 그런 생명, 생명, 생명. 살아 있는 것.

어쩌면 이제 우리 사는 도시 한가운데로 여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이 혹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풍요를 맹세하는 생명의 단련이라기 보단 차라리 살의.

 

쌍용, 민언련,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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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의 쌍용자동차편을 보고 화내고 슬퍼하다 잠이들었다.
시키는대로 죽으라면 죽을수밖에 없는 것이 노동자라며 자조하는 어떤 젊은 노동자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싸움을 다짐한 눈빛을 쏘아낸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고 분열시키는 적들의 대범한 치밀함에 그저 혀를 내두르지만, 70m상공에서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어느 새 적이 되어버린 어제의 동지에게 담배를 권하는 저이들의 투박함이 더욱 위대하다는 걸 알고있다.

요즘 빠져있는 로스트의 시즌2 마지막회 제목은 Live Together, Die Alone. 함께하면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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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에서 인턴을 하게됐다. 그야말로 몇 푼 안되는 돈이라 아르바이트라고 부르긴 어렵고 그저 놀면 뭐하냐.의 마음가짐 쯤이랄까.
새내기 시절부터 워낙에 들어온 민언련여서일까 초큼 설레고 두근거린다. 출근에만 1시간 반이 걸린다는 어마어마한 사실만 빼면 지금은 일단 다 좋다.
일을 시작하면 새로 생긴 일기장에 포스팅할 거리도 많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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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간 로스트에 빠져있다. 워낙에 회자되던 드라마지만 그 방대한 분량에 선뜻 손을 못대다가 며칠전에야 비로소 봤는데, 어익후.
아직 시즌2까지밖에라 미스테리하고 판타지한 이야기들 투성이지만 그 결말의 반전이 시시하지 않을 것임은 본능적으로도 알 수 있다.
지금은 사소한 에피소드들의 짜임새와 등장인물들의 욕구를 훔쳐보는 재미가 가득하다.
역시 난 제국의 음모, 거대한 우주의지, 알 수 없는 존재따위의 판타지를 굉장히 좋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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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때마침 오래된 김치도 두어포기 있으니 간만에 김치부침개나 부쳐먹어야겠다.



이사


이글루스에서 빠져나왔다.

누구의 말을 밀리자면 미소녀와 망가에 빠진 오타쿠들이 서로를 좌빨이네 수꼴이네하며 싸우는 곳이라고 그곳을 표현하더라만.
어쨌든 오타쿠도 수꼴과 입진보의 고만고만한 싸움도 싫어하진 않지만, 그냥 지금은 조근조근 수다를 떨어줄 집과 친구들이 더 고프다.

1년반동안 블로그질을 하며 정립한 블로그의 유일한 목적은 '배설'. 내 배설물을 어떻게 가지고 무얼하든 상관은 없지만, 분명한건 여긴 내 해우소.

꽤나 믿음직한 시스템이라 여러가지 것들이 가능해보여 당분간은 이것저것 가지고 노느라 정신없겠다. 재미있는 블로그질 시즌2는 그 다음부터.

어쨌든 잘해보자 티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