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SNS를 없앴더니 독서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사실 그보다는 최근에 읽은 <세 여자> 때문이다. 허정숙과 주세죽과 고명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코를 박고 책을 읽다 내릴 지하철 역을 지나치기도 했다. 허정숙과 주세죽과 고명자. 그 이름들을 자꾸자꾸 생각했다. 이따금 박헌영과 김단야 같은 이름도 곱씹었다. 


신수정 교수의 추천사처럼, 소설가 조선희는 영웅들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여자들이 20세기에, 이 땅에, 살아있었다는 것만을 말해주었을 뿐이고, 그것만으로 단지 충분히 설레고 벅차기도 했다. 


 



2.

조계사 앞을 지나고 있을 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어떤 사람을 봤다. 강아지가 조계사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는 목줄을 급하게 당기며 "들어가면 안돼, 지옥간다"라고 말했다. 순간 지옥에 들어와 있는 줄 알았다. 사바하.


3.

최근 이직을 결정했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누가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니"라고 격려했지만, "고생을 굳이 돈주고 사게 생겨서 걱정"이라고 답했다. 


3-1.

최근 주변에 이직과 퇴직, 창업, 업종변화 뭐 이런 일이 잦다. 서른 중후반. 삶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판단'과 '결정'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이제야 비로소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 아니겠냐고. 바야흐로 '전환'과 '승부'의 시기다. 우리 모두 힘을 내요. 슈퍼파워까진 아니어도..


4.

요즘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는 <불량사제>와 <트랩>이다. 특히 <불량사제>는 모처럼 본방 날짜를 기다리며 챙겨보는 드라마다. 이하늬는 홍길동에서 장녹수 역할할 때부터 '어머, 이 언니 뭐람?' 싶었는데, 최근의 연기들에서는 독보적인 매력을 뿜뿜하고 있다. 김남길이야 뭐. 원래 멋있었지. 

<트랩>은 좋은 극본과 좋은 화면의 영화같은 드라마다. 오씨엔이 만드는 장르물은 늘 좋은 캐스팅의 여성 캐릭터를 굳이 쓸데없이 소모시키는 악덕이 있는데, <트랩>에서도 그런 기미가 보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용서 가능한 범위다. 하지만 이서진을 끼얹은 실책에 대해선 어떻게 만회할 건지 모르겠다. 그 좋은 캐릭터를 이서진이 삼시세끼에 나온 것처럼 혹은 다모에 나온 것처럼 혹은 왕초에 나왔을 때처럼 (다 똑같으니 어차피 어디든 뭐) 연기하면 짜증이 막 나기도 한다. 


5.

작금의 배경음악은 장고 맥크로이. 봄이 살랑살랑 올랑말랑 하면 적당히 섹시한 남자의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