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SNS


페이스북을 닫았다. 몇년동안 써놓은 글이나 저장해둔 사진들은 잘 백업했다. 내 글은 다 지우고 계정만 남겨놓은 채 몰래 몰래 남의 얘기는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그건 안되더라. 9년동안 쓴 수천 개의 포스트를 하나씩 일일이 지울 노력을 할 수 있다면 다르겠지만, 그런 노력씩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SNS에서 내 얘기를 하는 걸 일종의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쩗고 간결한 문장으로 유동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연습. 적재와 적소에서 적절한 글을 쓰는 연습. )사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중에 끼워맞춘 셈이다. 실제로는 재미있어서 했다. 따봉 많이 받고 싶은 관종짓이지 뭐.)


어느 날부턴가 선후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SNS에 쓰는 것 같은 글밖엔 못쓰게 돼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 몇년간은 실제로 말과 글이 대부분 SNS로 유통됐으니 그런 것들을 구분지을 일도 잘 없었고, SNS 말고는 글을 쓰는 일도 잘 없었다. 


'3줄이 넘어가는 글은 읽지 않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하지만 3줄의 글로도 사람들을 설득하는 연습'을 하려 했던 것인데, 어느샌가 3줄 이상의 글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 돼 버린 느낌이었달까. 


더 길고 친절하며 스킵하지 않고 끈질기고 진지한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SNS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다시 연필로 종이에 일기를 쓰고, 가계부를 적고, 메모를 꼼꼼히 하고. 


2.


여기도 초소  


얼마 전엔 어느 전문지 기자가 익명으로 쓴 글을 읽었다. 내용인즉슨 '스스로 주제파악을 하자'였는데, 전문지나 지방지, 인터넷 언론의 기자들은 선발과 수련의 과정이 종합 일간지나 방송국 기자들만큼 혹독하지는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옳은 말이지만, 주제 파악과 자학 혹은 자기연민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몇 달 전부터 전문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세계와 사람들, 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와 그저 대상화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 개인의 욕망, 개인의 상황, 처지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 어느 기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취재하는 일은 처음인데, 늘 기업이나 자본이라는 것은 사람보다 이윤을 앞세우고, 그 구조적인 이기심이 사람을 배제하는 결과를 만든다고 여겨왔다. 큰 틀에서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그 구조를 만드는 것 역시 사람이며 그 구조를 지탱하고 복무하는 것은 사람, 노동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고 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전문지 기자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앞서 언급한 그 익명의 글과는 또 다른 어느 전문지 기자의 마찬가지로 익명의 글에서 '사회적 감시같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도 봤다. 기업의 이윤이나 국한된 분야의 이야기에만 천착하는 전문지 기자의 글에도 사회적 의미와 책무가 있지는 않을까. 내가 서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의미와 책무를 찾는 일. 서 있는 모든 곳이 전선이고 초소일 수 있지 않을까. 


3.


자격심


이전 직장을 같이 다니던 어느 기자가 있는데, 그 회사에서 나를 포함한 몇몇은 그를 참 싫어했다. 무시하기도 하고. 지금도 나는 그의 세계관이나 문장, 취재방식 어느 것에도 동의라지 않는다. 


그를 그토록 인정하지도 않고 싫어해서 오히려 그의 이후 행보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게 많았다. 그가 생각보다 안망하고 (난 그가 금세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잘 지내는데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삶이 잘 풀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현상을 개탄하거나 낄낄거리며 비웃곤 했다. 


문득 그런 것들이 나의 자격지심이나 열등감, 혹은 부러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우 솔직하지 못한데다 너무 지질한 일. 타인의 얼굴에서는 나를 비춰 톺아볼 수 있는 일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거기서 내 얼굴을 비춰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싫어서 아마 지질하고 솔직하지 못했을까. 


내 얼굴을 그대로 들여다볼 일이다. 열심히 나를 연마하면 될 일이다.


4.


다이어트


다음 급여가 나오면 헬스클럽에 등록할 예정이다. 살을 빼고 건강해지기로 했다. 건강한 생각은 우선 건강한 몸에 있고, 둘 모두는 건강한 지갑에 달려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지갑도 건강해지겠다. 엥겔지수를 낮출 필요가 있어.


5.


다이어트2


몸의 살 뿐 아니라 관계에 찐 살도 좀 줄여야 한다. 의미없이 먹는 야식같은 관계들이 있다. 맺고 있는 관계들을 하나 하나 소중히 여기고 싶다. 그러려면 군더더기 같은 관계, 의미없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셀룰라이트 같은 관계들도 빼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