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대낮부터 아버지와 술을 마시고 조금 취했다.


낮술에 취하면 애비에미도 몰라본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앞에 앉은 사람이 아버지라는 걸 까먹기 전까지만 마시면 되니까'하면서 안심하고 마셨더니 이 꼴이 됐다.


아버지는 나보다 좀 더 취한 거 같으니 내가 이긴 셈이다. 뿌듯하지는 않다.


오늘은 아버지의 환갑 생신이다. 생활수준과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민전체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환갑의 중요도가 떨어지는...같은 개드립을 구사하려다 관두고, 아버지에게 아주 좋은 환갑잔치 상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했다.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그렇듯 조선 남자의 전통적인 꼰대질을 시전하셨다. 당신이 지내온 과거의 영광과 세상탓, 아버지와 잘 아는 누구가 어느 부처 고위직의 누구다 같은 거.


되게 홍상수 영화같은 술자리였고 어쩐지 쓸쓸해졌다. 어제 홍상수 영화를 봐서 그런가보다.

아버지 뒷모습을 괜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괜히 씁쓸해지는 클리셰같은 장면을 일부러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안바뀌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뒷모습을 계속 봐야했다. 이게 다 이재명 때문이다. 성남의 교통시스템은 정말 지랄맞다.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술을 깨러 인근의 다방으로 들어왔고 옆테이블엔 내 또래의 아이 엄마들이 앉아있다. 나한테 술냄새가 난다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데, 내가 안들릴 줄 아냐. 내가 내 앞에 일행의 목소리보다 옆테이블 얘기에 집중하는 도청계의 소머즈인데. 하지만 미안하니 어서 나가야지.


어느 순간에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삶을 지탱시키는 힘이었다. 이해와 용서. 같은 말을 입에 주워담은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누가 누굴 이해하고 용서해. 감히. 오늘도 아버지가 중얼거린 "삶은 각자 사는 거"라는 말, 증오도 애정도 마뜩치 않은 이 뜨뜻미지근한 마음. 명백한 타자화.


다만 서로의 삶을 살고 가끔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조금은 해보는. 

그리고 고희에는 오늘보다는 좋은 음식, 많은 사람들을 다짐하는 정도의. 그냥 그 정도.


회사에 도착하기 전까지 전환과 환기가 필요한데, 아무래도 컬투쇼를 들으면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