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밤새 있어서 24시간 하는 카페에 있었다. 3~4 쯤엔 취객들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는데 5시쯤 되자 고등학생들이 몰려들어 책을 펴놓고 시험공부를 한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고전문학 교과서를 들고 수미상관에 대해 한참을 떠들어댄다. 공부를 핑계로 앉아서 수다 떠는 열중하는 모양새다. 그래도 시험 봤으면 좋겠네.


2. 

집으로 오면서 배가 고파서 분식집 앞에서 오뎅을 주워먹었다. 오뎅 2개를 먹는동안 김밥을 사가는 손님이 10명도 지나갔다. 돈통을 미리 쌓아논 김밥 옆에 놔두고 손님이 알아서 돈내고 김밥을 집어가는 시스템. 저렇게 김밥 줄을 들고 버스며 지하철을 타겠다. 바쁜 와중에도 아침은 먹겠다는 사람들. 그렇게라도 하루를 버티겠다는 사람들. 생의 의지 같아서 어쩐지 경외감이 들기도. 어쩐지 서글프기도. 어쩐지 조금 부럽기도. 어쩐지 배가 고프기도.


3. 

오늘은 가을야구 시작. 엘레발이라고 놀림당할까봐 시즌 중반까지 엘지의 가을야구 탈락을 점치는 냉철한 팬의 포지션을 가장해왔다. "전력상 6~7 정도가 적합해 보이는데, 팬심이 있으니 6 정도 하면 좋겠어"라고 말하면서. 9연승 기간 이후에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며 쿨게이를 표방해왔지만 그래도 가을야구하니 좋다. 유광잠바는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못입지만, 제가 91 엘지트윈스 어린이 야구단 출신입니다.


3-1. 

나온김에. 오래도록 엘지팬하면서 맘고생 많았다. 금지어 18  Shake It 김재박으로 이어지는 엘지의 암흑기, 고난의 행군을 견뎌오면서 가장 싫었던 순위보다는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일테면 우규민 헤드샷 사건. 머리에 타구맞고 기절한 우규민 보고 낄낄거리다 결국 교체도 안해준. 금지어의 인격이 쓰레기인 그때 결정.) 유지현을 베팅볼 투수 취급하며 강제 은퇴시킨 , 김재현에게 각서 받은 , 그리고 기타친다고 이상훈 쫓아낸 . 엘지 감독들과 프런트가 짓들이다. 사실 엘지가 구단의 프랜차이즈를 제대로 대우해서 끝을 아름답게 적이 번도 없다. 원년부터 있던 팀에 영구결번이 김용수 명이다. 그나마 김용수 아저씨도 프론트는 굳이 은퇴시키겠다고 은퇴시키려고 바락바락 기를 썼었다. 선수들을 대하는 실리도 없고 명분도 없고 의리도 없다. 암튼 지긋지긋하고 너무 싫은 투성인데 ...


3-2. 

여튼 얘기를 꺼낸 라뱅 때문이다. 라뱅은 라면수비니 팀워크 브레이커니 여러가지 오해를 받지만 KBO 최고의 타자( 하나) 분명하다. 돌아가신 하일성 아저씨가 좋아했는데. 엘지에서 유일하게 30-30 해낸 선수이기도 하고 왕년엔 팀의 리드오프보다 도루를 많이 하고 출루도 안타도 많이 했다. 그야말로 적토마. 엄청 빠르고 싸움도 잘하는. 이런 선수를 시즌 내내 2군에 처박아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그건 전적으로 감독의 팀구상이니까 놔두고


필요한 예의와 배려였다는 말만. 20년동안 팀을 지켜온 선수에게 명예롭지 못한 마무리를 강요하는 무례함과,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 치졸. 선수의 미래와 삶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 그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마저 무시하는 안일함


만일 유지현 코치 처럼 1년짜리 푼돈 계약서를 내밀거나, 이상훈처럼 온갖 모욕을 줘가며 다른 팀으로 떠밀거나, 김재현 처럼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거나. 암튼 그러기만 해봐. 내가 한때는 쌍마의 네임드 키워였는데. 쌍둥이 삘딍에 똥뿌리는 사수대, 백순길 체포결사대 내가 조직한다고.  


4. 

고즈넉한 아침이었는데, 야구 얘기가 나오니 흥분을 해버렸.. 암튼 타이거즈 성님들, GG합시다요.


5. 

요즘 녹색당에서는 청소년 흡연권을 두고 아재들과 전투가 한창이다. 서울대병원 농성장 흡연구역에서 청소년 녹색당원 몇 명이 담배를 피웠는데 그게 못마땅했던 아재들이 담배 끄라며 윽박을 질렀고 청녹당원들이 반발하면서 불거진. 경찰 침탈 막자고 모인 자리에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됐다. 


며칠 계속 시끄러워서 그 아저씨들 하는 얘기를 좀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그냥 빻은 소리. 끔찍한 나이주의, 청소년을 계도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못난 태도 같은 것들은 워낙 다들 지적하니 놔두고. 가장 웃긴 부분은 “자기는 충분히 진보적이지만 청소년이 어른들 앞에서 담배 피는 꼴은 못보겠다”는 말과 “자기는 청소년의 흡연권을 인정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청소년 흡연권을 인정하는 정당은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이를 제한해야 한다”는 말. 도대체 ‘깨어있는 진보적 시민 자격증’은 어느 공기관에서 발급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 좌파, 진보로 규정하면서 “내가 이렇게 진보적이라서 아는데 넌 틀렸어”라는 말을 너무 쉽게한다. 


내가 당원이긴 하지만 사실 녹색당과 녹색당원들은 별로 진보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않다. 생태주의 운동을 환경보호 운동과 크게 구분하지 않고 있는(혹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 노동이나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민주당 정도의 스탠스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난 ‘녹색’이라는 패션으로 당원들을 꽤 많이 유입한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여기기도 하는데, 나쁜 의미는 아니다. 다만 앞으로 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거지. 암튼 그래서 ‘녹색당원 = 급진좌파’라는 도식을 스스로 만들어서 완장처럼 찬 사람들을 보면 참 갑갑하다. 좀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분들이 녹색당의 원내진출(멀리는 정권창출도 보시던데…)을 강하게 바라시는데, 그 원내진출을 위해서는 사소한 인권침해나 가치관의 양보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시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청소년들이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 일, 성소수자들의 권익, 여성들의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묻고 싶은 건, 그런 거 안 할 거면 왜 굳이 힘들게 녹색당을 하고 있나. 사실 그정도 ‘진보시민을 자처하며 자기만족을 얻고 조금 고생하면 원내진출은 물론 정권 창출도 할 수 있는 당’은 따로 있지 않은가 말이야. ‘진보정당’에서 방점은 정당이 아니라 진보에 찍혀야 한다. 진보정치 하려고 정당 만든 거지 정당 하려고 하는데 진보정치 쪽에 T.O.가 나서 진보정당 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특히 녹색당은 강령에서도 ‘반정당의 정당’을 명시한다. 정권창출이 아니라 살기좋은 지구와 뭇생명들과의 화해가 정당의 목표라고. 


6. 

짧게 쓰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어. 일단 자야겠다. 짤방은 여러모로 답답해서 준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