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7 합정동 - 仙술집



홍대 앞 상권이 포화상태에 이른 2천년대 중반, 그러니까 이제 홍대 앞에 라이브 클럽들이 더는 남아있기 어려워지던 그 시절쯤, 사람들은 하나 둘 씩 거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벗어났다기 보다는 쫓겨났다가 더 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신촌역 가는 기찻길에 늘어섰던 고깃집들은 기찻길을 뜯어내고 공원을 만드는 공사로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얼마 전엔 최후의 가게마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나던 길에 고깃집들이 사라진 걸 보고 친구가 연락을 줬다. 무척 서운해 하리라는 걸 알았나보다.) 버름하게 드럭에 처음 갔던 중딩 때, 얼굴도 처음 본 형들이 고기며 소주를 사주면서 롹큰롤 어쩌구 하던 그 가게들이 다 사라졌다. 


피카소 거리(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데) 곳곳에 작고 허름하고 담배 연기가 자욱했던 가게들, 몇 년간을 제집을 드나들듯 기웃대며 정치, 연예, 시답지도 않은 화제들로 목에 핏대를 세우던 술집, 가끔은 술취한 노브레인의 불대가리나 어어부의 백현진이나 캡틴롹을 볼 수 있었던 그 가게들도 다 사라졌다. 거긴 감성주점이니 하는 연예인 이름 들어간 술집이나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바뀌었고 나같은 애들은 잘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이제는 사라질(!) 타나 FF, 고고스투, 롤링 홀 같은 곳에서 공연을 보면 이런 얘기들을 지껄였다. “X발, 삼거리 포차가 이렇게 핫플레이스일 줄은 난 몰랐네”. 그리고 비척비척 상수동이나 합정동으로 걸어갔다. 술을 찾아 헤매는 술나비처럼.     


# 내가 아는 형들은 하나 둘 날개를 접고


그 때 거기서 술 사주고 고기 사주고 같이 담배 피던 형, 누나들은 번화한 곳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부유(浮遊)하거나 갈 곳 없이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자리를 잡았다고. 형들은 그 시절을 다 놀았다고 치고, 이제야 머리도 굵고 술먹고 담배 피워도 나라에서 간섭하지 않는 나이가 된 나는 여전히 아쉬워서 그 동네를 부유하거나 갈 곳 없이 머물렀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 토악질을 하면서 한참을 걸어다니다가 갔다. 선술집에.


그러니까 선술집은 순전히 우연히 처음 간 곳이다. 아니다, 누가 데려갔던 것도 같다. 내가 좋아할 거라면서. 하여튼 그게 뭐가 중요해. 그 날도 롤링홀인지 타인지에서 공연을 본 날이었는데 또 하염없이 걷다가 불쑥 선술집에 들어갔다. 우리는 적당히 취해있었고, 사람은 얼마 없었다. 목동들의 흐느끼는 노래소리가 없었고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우울하고 또 적당히. 적당히. 기억난다. 처음 데려갔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아무 자리에 앉아 사장님에게 물었다. “뭘 먹을까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선술집에선 아무자리에 앉자마자 사장님께 안주를 물어보는 게 보통이 됐다. 메뉴판도 없이 그날 그날 있는 생선도 다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선술집은 선어회 전문점이다. 메뉴판은 없고 벽에 이런 저런 메뉴가 붙어 있는데 가격은 적혀있지 않다. 병어조림이나 도미머리 구이 같은 게 써 있긴 하지만 딱히 눈여겨 보지는 않았다. 사장님에게 뭘 먹으면 좋을지 물으면 사장님은 우리가 저녁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를 묻기도 하고 그런 거하곤 상관 없이 오늘 어떤 생선을 잘 골라 왔는지 자세하게 얘기해 준다. 한 번은 기분이 좋아서 (사실 같이 있던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혼마구로를 달라 했더니, “비싸니까 먹지 말라”고 하더라. 역시 믿고 맡깁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친구와는 결국 잘 안됐나봅니다.


그래서 선술집은 ‘밖으로 나가버린 너를 욕하면서 안으로 취해만 가던 나’들과 함께 찾는 최후의 보루같은 게 돼버렸다.

언젠가 우리의 세대를 뭐라 규정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나. 지금 나는 우리 세대를 ‘주변인 세대’라고 명명하겠다. 우리는 무엇이 돼야 할지 몰라서 무엇이 되길 바라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무엇도 되지 못했다. 우리는 늘 괴롭고 또 외롭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이제는 차라리 외로움마저 느끼지 못해 그마저 퇴화시켜버렸다. 퇴행.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어른이었지만 아무 것도 아닌 아이가 됐다. 


초고층의 으리번쩍한 고층 빌딩들 사이에 남은 낡은 선술집의 모양새가 그렇다. 원래 그 주변엔 비슷한 가게들이 꽤 있었다. 지금은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를 한없이 치켜들어야 하는 그 건물이 있던 자리엔 히레사케가 맛있던 작은 이자카야가 있었다. 낡고 허름한 호프집도 있었다. 토악질을 하는 남자애들이 있었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이제는 혼자 남다시피 한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결국 이겨낸 걸까, 아니면 남아서 떠나지도 못하는 걸까. 어쨌든 남았다. 이건 내 얘기다. 이상하게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면 늘 만취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거기서 앉아 만난 사람들과는 그런 얘기를 했다. 떠나가는 이야기, 남아서 기다릴 이야기, 무언가를 붙잡고 놓지 못하는 이야기, 결국 버리고 말 이야기.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나 정말.


사실 그건 선술집의 안주가 비싸서 그렇다. 작은 접시에 몇 점 올라간 선어회는 푹푹 떠먹기에 부담스럽고 회 한 점에 술을 몇 잔씩 먹다보니 금세 취할밖에. 그래서 술을 마실 때면 누군가는 울었던 것 같다. 선술집에서 택시를 잡으러 가는 길은 아침에 침대에서 화장실로 가는 길 만큼이나 멀다. 


# 나 이렇게 이 땅에 선 채


그래도 여전히 선술집엘 다닌다. 거기서 술을 먹고 좋은 꼴을 본 적이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찌질찌질 울거나 시원하게 토악질을 하거나 아니면 누군가와 대판 소리를 질러 싸움박질을 하더라도. 그건 그대로 오늘을 살았음을 증거하는 일이라 여기는 탓이다. 그리고 선술집의 선어회는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술집 유랑기에서 처음으로 맛있다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토악질을 하고. 그러고보면 숙취에 시달리는 일만큼이나 자기 존재를 절절히 확인하는 순간이 있을까. 새벽내내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사투를 벌이면 내장의 위치는 물론 식도의 위치까지 알게되지 않나. 난 내 살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골격들도 통증을 통해 가까스로 확인한다. 올 여름 두툼하게 썰어나온 고등어회를 먹고 여지없이 만취한 날,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맨날 맨날 사먹을 수 있게 살자”고 약속했다. 사는 게 뭐 별거겠냐, 맛있는 거 먹고 술먹고 토하고 싸우다 화해하는 거지. 라는 말도 했다. 


그래서 사실 술취해서 지껄이는 말들과 그 끝간데 없는 우울함과 자조는 분명 삶의 징후다. 살 거다. 나는 아직 고개를 흔들며 형들이 찾으려 했던 그 무언가를 찾아 낯선 길로 나섰다. 여전히 스무살. 주변인 세대니까 그런 거다. 여전히 스무살로 살면서 형들처럼 아니라던 곳으로 가진 않을 거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아직 아지트도 있고 그 아지트에는 엄청 맛있는 선어회도 있다. 


#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해 보리라


아마 오늘도 술을 퍼먹을 거고, 잘하면 선술집으로 가게 될 수도 있겠다. 가면 또 시덥지 않은 정치 경제 연예 연애 얘기를 하면서 싸우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얘기들을 지껄이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얘기들을 경청하게 되겠지. 그런 게 사는 거다. 어차피 살아가는 건 소극(笑劇)이다. 그러면 더 비속하고 더 웃겨야지.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해야지. 어차피 힘차게 맹진하며 골로가는 청춘이다.  




Etc.


1. 화장실이 굉장히 좁습니다. 좋은 술집은 화장실을 좁게 만들어야 한다는 법령같은 거라도 있나봐요.

2. 월요일은 쉽니다. (일요일인가? 아마 월요일 맞을 겁니다.)

3. 진짜로 좀 비쌉니다. 식사 후에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술 좀 먹는 성인남성 둘이 앉아 양껏 먹으면 십수만원은 훌쩍 깨집니다.

3-1. 무조림이 별미입니다. 회는 조금씩 맛을 음미하며 드시고 진짜 안주는 계속 주는 무조림으로 하는 게 노하우. 생활의 지혜, 가정경제 도우미.


4. 사진은 고등어 회 사진말고는 다 인터넷에서 훔쳐온 겁니다. 이 연재 계속하려면 나도 사진같은 걸 좀 찍어야 할텐데 술먹기 바빠서 ;;;



*동진형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