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데라곤 술 마시는 집밖에 없어요 Vol. Out-Size - 맛있는 집 이야기



그동안의 술집 유랑기엔 “음식이 맛있다고 할 순 없지만…”이라는 전제를 붙여야했다. 이게 맛집 탐방기도 아니고 술과 음식 이야기 보다는 그 술집에서의 ‘내 얘기’인지라 맛보다는 사연에 방점을 찍었던 탓이다. 사실 음식이 맛있는 집이란 찾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맛집이라고 불리는 곳들은 ‘먹을만한 음식’을 내놓는 것이지 맛있는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 여기서 혼동이 발생하는데, 요즘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구분하지 못하며 산다. 암튼 그래서 이번엔 번외로 ‘맛있는 집’ 이야기를 해보려고.


1. 먼저, 나는 대체로 화가 나 있음을 알리며 재수없는 고나리질


대저 ‘회’ 라고 하면 ‘싱싱한 활어 회’를 최고로 치는 경향이 분명하다. 예전 어떤 식당에서는 아직 아가미가 꿈뻑거리는 생선 대가리를 회 접시 옆에 같이 얹어서 내오기도 했다. 어쩌라는 건지. 그러나 사실 서울에서 먹는 활어 회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제, 아니면 그제 잡은 생선을 탱크에 가둬서 수백키로는 덜컹거리며 달려온 다음 좁은 수조 안 미지근하고 더러운 물에 넣어서 간신히 아가미만 꿈뻑거리게 만들어 놓은 생선을 잡아 주는 것. 서울에서 먹는 활어란 그런 의미다.


마치 미각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회와 해산물이 싱싱하고 맛있다는 식당이 있다고해서 따라갔더니 회는 으깨질대로 으깨져서 걸레쪽 같고, 살은 핏물이 베어 선홍색이다. 새우는 너무 삶아 살이 푸석하고 조개에선 폐타이어 냄새같은 게 난다. 거기에 초장을 푹하고 찍어서 깻잎에 싸고 마늘까지 두어쪽을 올리고선 회가 맛있다고 하면 그냥 앞으로 이이의 추천은 믿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네이버 맛집 블로거들이 주로 소개하는 홍대나 경리단, 가로수길 같은 곳의 맛집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포스트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문장이 “맛있게 맵다”는 말인데, 정작 먹어보면 캡사이신 덩어리에 지랄염병조미료 범벅인 경우가 열중 여덟 아홉이다. 대포알만한 카메라를 음식에다 들이밀고 그 지랄염병조미료 덩어리를 먹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도대체 왜 이 비싼 돈을 내고 줄까지 서서 이걸 먹어야 하는 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게 패션이니까.


며칠 전에도 줄을 서서 먹는다는 대학로의 어느 돈까스 집에 갔는데 아니나 달라. 안심 돈가스이라고 내어준 6조각 (미니) 고기 덩어리는 돈가스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칼을 내주지 않고 썰어서 나온 걸 보면 한입 내지는 두입 크기일텐데, 고기가 과하게 두꺼워 이빨을 넣고 한 번쯤 한 숨을 돌린 다음에 다시 씹어야 절단이 가능할 정도다. 이렇게 두꺼운 고기를 익히려면 기름 안에서 얼마나 익혀야 하는 거야. 높은 온도로 튀기면 고기가 다 타버릴테니 저온으로 튀겼을테고 그래서인지 튀김옷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여지는 습자지 수준의 튀김옷이 눅눅하게 고기에 늘어붙어 있다. 아, 고기가 설익은 건 자기들만의 방식이라고 친절히 테이블마다 써붙여 놨으니 패스. 플레이팅은 참 예뻤다. 돈가스 접시만한 예쁜 돌판을 함께 주길래 뭔가 했더니 그 판위에 소금을 뿌려놨다고.. 왜 그래야 하는 건가요.


암튼 난 미각을 비롯한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은 자기 신체 기관의 예민함을 단련하는 정도에 따라 정교해진다는 상식에 더해 사회가 유도하는대로 시시각각 날조되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본연의 감각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와 사물, 사건에 대해 늘 의심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테레비와 인터넷이 맛있다고 하고 사람들이 많이 먹으면 무조건 맛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백종원 식당 음식이 맛있다고 칭송하는 것과 북한 주민은 뿔달린 괴물이라고 믿는 것과 박정희가 반인반신이라고 여기는 게 사실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말씀.


2. 지랄염병 천하제일 괴식대회

 

내가 살며 가장 놀라웠던 음식은 신천의 해주냉면이다. 사람들이 몇 십분이고 줄을 서서 먹는데 처음 그 광경을 봤던 고등학교 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냉면을 먹자고 줄을 서다니!!  한참만에야 겨우 냉면 한그릇을 받아들고는 더욱 놀랐다. 씨발 이게 뭐야. 맵고 맵고 또 맵기만 했다. 물을 벌컥거리고 혀를 행구고 눈물을 쏙 빼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매운 걸 못먹는구나” 라거나 “이거 먹으면 내일 아침에 화장실에서 힘들어” “난 괜찮은데?” 따위의 가당치도 않은 반응을 보였다. 


언제부턴가 매운음식을 기네스 도전하듯이 먹는 풍토가 생겼다. 불닭, 닭발이 그 선두에 있었고 떡볶이 냉면 가끔 카레 따위가 뒤를 이었다.  사실 여기에도 사회적 맥락이 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매운 음식을 찾는다. 통각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 매운음식을 먹으면 엔돌핀이 과다 분비되고 거기서 쾌감을 얻게된다. 사회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은 음악뿐이 아닌 거지. 2000년대 중반이후, 그러니까 세상 살기 참 뻑뻑해지면서 이런 음식들이 마구 유행했다. 그렇게 유행처럼 휘몰아친 매운 음식의 열풍이 좀 더 자극적이고 더 신기하고 더 매운 음식으로 발전해간다. 사람들은 더 강도높고 자극적인 매운 맛에 몰리게 되고, 짬뽕먹다 토하고 불닭먹다 실려가는 일이 만들어진다. 식당들은 더욱 매운 맛을 만들기 위해 온갖 재료들을 집어 넣는다. 청양고추에서 시작해 쥐똥고추나 하바네로를 경유하더니 요즘은 그냥 캡사이신 원액을 집어 넣는다. 그건 식도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도전인 건데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그 도전과 엔돌핀의 쾌감과 식도락을 혼동하게 된다. 이게 그냥 ‘맛있는’으로 치환되는 거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이런 괴랄한 음식들이 “맛있게 맵다”는 말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순창 고추장 광고하던 김혜자 아줌마 탓이다. 


얼마 후엔 갑자기 이 지랄염병같은 천하무적 캡사이신 대회의 자매품으로 치즈를 범벅하기 시작했다. 불닭 위에 치즈를 녹여 올린다거나 하는 수준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얼마전엔 졸라 매운 등갈비를 냄비에 가득 녹인 치즈에 찍어먹는 음식도 등장했다. 문화컬쳐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치즈는 매운 맛을 중화시켜주는 떡칠 사리에 가까운 음식이 됐다. 치즈의 풍미와 맛에 심혈을 기울였던 구라파의 낙농장인들이 보면 혀를 찰 일이다. 파트라슈 미안해. 이 아스트랄 미각 불지옥의 최전선엔 일단 편의점이 있다. (물론 이따위 음식을 노하우라고 팔고 있는 음식점도 엄청 많지만) 불닭볶음면에 치즈와 삼각김밥과 기타등등 온갖 것들을 넣고 죽을 쒀먹는 게 요즘 편의점 음식의 패션이다. 얼마 전에 대유행했던 허니버터칩 이후 편의점엔 온갖 것들에 허니와 버터를 쳐발라놓은 음식들이 나오기도 했다. 


음식의 맛과 궁합, 그를 알기위한 노력은 실종됐다. 퓨전이라는 말을 붙이거나 신개념이라는 말을 붙인 음식들, 괴식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건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아니, 사로잡았다기 보다는 볼모삼았다. 전쟁통에 먹었다던 꿀꿀이죽. 그 땐 가난하기 때문에 이라도 먹어야겠다던  음식을 먹는 대중들의 선택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런 거도 주면 맛있게 먹을 거라는 산업의 선택이 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누구 탓하기도 어려운 일이 됐고.   


3. 맛집의 개수작 - 네이버 블로그를 금지해야


비슷한 이야기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맛집 블로그라거나 어플에 등록되는 집들을 가보면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다. 으리번쩍한 접시에 푸짐한 음식을 내어오지만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어떤 집은 먹을만하지도 않은, 대놓고 먹기 힘든 음식들도 있다.

일테면 섞여선 안되는 음식들을 한접시에 내어오거나, (국물이 줄줄 흐르는 김치와 드레싱이 과한 샐러드와 기름에서 나온 순간엔 바삭했을 돈가스를 한 접시에 주는 게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름만 그럴듯했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음식..(최근 토끼정에서 크림카레우동을 먹고 나오면서 30여분째 줄을 서있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싶었다. 당신들 시간은 그렇게 한가합니까)이 나오거나 근본적으로 이걸 왜 돈주고 먹고있나 싶은 집들이 있다.


이런 가게들의 공통된 점은 인터넷을 통한 홍보가 무척 잘되고 벌써 여러 개인 맛집소개 프로그램에 한 두번씩은 소개된 곳이라는 거다. 앞서 얘기한 치즈를 매운맛 중화용 정도로 쓰는 매운 음식 맛집들에서 치즈를 줄줄 늘려가며 맛있네요를 외치는 박지윤이나, 한입 이상 먹기 힘든 느끼한 음식을 그릇째 마셔버리는 정준하가 다녀간 곳은 이튿날이면 발을 디딜틈도 없어진다.


여지없이 블로그와 SNS에는 맛집 방문기가 올라온다. 맛에 대한 평가나 소회보다는 사진으로 ‘다녀갔음’을 기록하는 용도에 가까워보이는 포스트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비슷한 수의 스크랩이 카운트된다. 음식의 맛보다는 다른 요인들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연예인들이 먹은 것을 먹어보고 그걸 인증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식생활에서의 일상이 된 거다. 그렇게 보면 매운 양념에 버무린 빨간 요리와 죽죽 늘어나는 치즈는 그야말로 포토제닉한 음식이다.


4. 진짜 맛집


사실 진짜로 맛있는 집을 찾아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른 이들의 동의라는 지난하고 힘겨운 과정을 생략하더라도, 내가 참으로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을 죽기 전에 한 두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사실 한 끼에 수십만원 씩 든다는 파인 다이닝에 가면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지만 주머니 얇은 사정상 요원한 일이고. 하지만 그래도 내 입과 혀의 즐거움을 느끼는 게 다른 어떤 요소가 아니라 올곧이 나라면 느낄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이 곳곳에 분명 숨어있다고 믿는다.


설탕이나 물엿이 아니라 장과 양파, 양배추만으로도 충분히 달짝지근하게 만든 떡볶이가 있고, 발데온치즈로 만든 소스에 찍어먹는 빵이나 정성스레 우린 육수에 말아먹는 냉면, 걸쭉하게 갈아만든 콩국, 발효하는 냄새가 심하게 나는 청국장, 모짜렐라와 루꼴라만 올라간 피자. 뭐 맛있는 음식은 셀 수도 없이 참 많다. 사실 잘 숙성시킨 돼지고기를 적당히 화력좋은 숯에만 구워도 좋을 일이다. 이런 음식들을 하는 화려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데다가 대포알 디에스엘알도 없는 식당들은 화려하지도 자극적이지도 대포알 사진기도 없어서 맛집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여러분, 맛집 정보를 얻으려거든 네이버 블로그를 끊고 조선일보 주말판을 보세요. 조선일보 아저씨들이 맛집 정보는 제일 잘 꿰고 있습니다.


4-1. 그래서


다음 술집 유랑기는 내 가본 술집 중 음식이 가장 맛있는 집을 선정해보려고 합니다. 어디가 될진… 사실 정해놨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