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
며칠 전에 외국인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 들어왔길래 누군가 들여다 봤다.
그녀는 10여명의 페이스북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모두 '지훈'. 아마 어느 지훈을 찾고 있나보다. 사진이 프로필에 걸려있으니 본인 확인이 대단히 어렵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온갖 지훈들에게 연을 대고 있더라. 괜히 온갖 말을 맞춰가며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상상했다. 어쨌든 그녀가 찾고 있는 지훈을 만날 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낭만적이어라. 야밤에.


2.
이세돌이 알파고에 이겼다. 이세돌이 때는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패배했네, 이건 사기극이네 뭐네 말들이 많아 볼썽사나웠는데 속이 시원하더라. 이세돌은 바둑 두는 프로그램이랑 대국을 했고 그렇듯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그냥 이세돌의 바둑.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그냥 이세돌에 대한 팬심으로 그의 승리를 진심 축하하고 싶다.

이세돌의 이름이 부쩍 많이 들렸던 그가 10대의 나이로 32연승을 거두며 최우수기사상을 받았던 3 시절. 그래서 지금도 '이세돌 3'이란 호칭이 제일 익숙하다. (마찬가지로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의 단수가 귀와 입에 익어서 아직도 유창혁 6단과 이창호 7단ㅋ 90년대 초중반에 바둑학원에 다니고 아버지가 두는 바둑을 어깨넘어로 구경하고 그랬다.) '당차고 되바라진 말만큼이나 현란한 행마' 같은 이세돌에 대한 평가를 주로 봤는데 아마 그런 좋았나보다. 아성이었던 이창호를 이길 때도 유독 그에게만은 존경심을 표할 때도 좋았다. 내가 천재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그러니까 그냥 팬심. 또래의 바둑 두는 형에 대한. 아무튼 이세돌 9단이 5국에서도 좋은 바둑을 뒀으면 좋겠고 이기든 지든 그의 바둑이 계속 그의 바둑이었으면 좋겠다.


3.
내일이면 창간호가 나온다. 어쩐지 후덜덜. 거기 실린 글들을 사람들이 (무려 돈내고!!) 읽게 해도 괜찮은가 싶고. 거짓말은 없었는지, 고민없는 문장은 없었는지, 띄어쓰기는 했는지. (맞춤법은 선배들이 교정을 봤을테니 .) 더해서 고단한 작업을 앞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후덜덜. 복잡한 심경인데 그렇다고 이제와 어쩔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응원해 주세요. 좋은 책을 만들거고요. 재미있는 글을 겁니다. 일단 지금 다짐은 그래요.


4.
내일 아침 책이 나오기도 하고, 해야할 일들도 있고, 아침 일찍부터 출근 자신도 없고해서 사무실로 왔다. 놀멍 쉬멍 일해야지. 가끔 사무실에 야밤에 혼자 있는 짓을 하는데,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연필에서 나는 소리, 내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말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니터 불빛말곤 사위가 어두울 . 그냥 오롯이 혼자 있는 같을 . 번거로운 것들과 더는 이야기 하지 않아도 같은 기분.
삶은 본래 이토록 외로운 것이라는 각인이라도 하겠다는 . 하지만 담배는 나가서 핍니다.


5.
요즘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노래를 듣고. 하지만 지나간 일들이야 어차피. 그리고 돌아올 일들 따위도 어차피. 묵은 감정은 청산해야 하는 일이고 잔변감이야 해소하면 일이다. 다만 순간에 다할 최선. 관계와 기억을 눅진눅진 녹으로 만들진 말아야지. 그래서 지금은 손지연을 듣는다.



++
어차피 영원하진 않을텐데 내가 미워하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