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3. 06:02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1.
군복을 벗고 찾아온 교정에는
막바지 진달래만큼이나 싱싱한 젊음들이 배타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네.
시험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언어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그때쯤 깨닫게 되지.
남몰래 도서관에서 시험지 채우는 연습을 하는 동안
세월은 시험지 채우기보다는 쉽게 흘러가지.
김영하 - 다시 은둔을 꿈꾸는 친구에게 (H의 결혼에 부쳐)
2.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좋다거나 아이큐가 높다는 얘기는 뇌세포의 개수가 절대적으로 많거나 뇌용량이 큰 것 보다는 '시냅스'의 문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냅스란 한 뉴런에서 다른 세포로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 지점을 뜻한다. 그러니까 뇌신경과 뇌신경사이의 전달통로.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이 연결통로가 다양할수록 머리가 좋다는 말일텐데, 그건 아마 사고의 유연함, 내지는 다각적 관찰, 혹은 이면을 볼 수 잇는 힘. 정도로 해석되겠다.
사람은 살면서 보통 (주입된 것이든 스스로 익숙해진 것이든) 자주 사용하는 사고체계, 그러니까 늘 사용하는 시냅스만을 사용하면서 나머지 것들은 퇴화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살던대로만, 편한대로만 살아서 우리는 조금씩 더 멍청해지고 있다는 이야기. 이게 과학적으로 맞는 것이든 아니든 그건 그 다음의 문제겠다.
3.
어쨌든 수다떨어서 밥먹고 살겠다고 나선 이상, "시험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언어를 상실"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사실 원고지 한 장, 어느 땐 (지금도) 이 포스팅 하나를 다 채우지 못해 끼적거리고 지우기를 수십번 반복하기 일쑤다.
4.
말을 앗아가는 것은 세상이나 사회.라기보다는 그것에 의해 빼앗기고 있다고 규정하고 단정하는 스스로인 게 더 정확하겠다. 나이드는 것은 세상을 조금 더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냉철하고 객관적이라는 것은 거기서 한발작 물러서는 것이라고, 한발짝 물러섰으니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 철이드는 것은 내 일이 아닌 일에 열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게 '쿨'하게 살아야만 견딜 수 있었을까. 혹은 '잉여'를 자처해야만 좀 덜 부끄러웠을까. 그렇게 어느새 사고는 단절되고 언어를 상실하고 시냅스가 끊어져 멍청해져서는. 인지부조화, 대가리를 짚더미에 쳐박고 내가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 세상도 나를 보지 않을거라 여기는. 닭들마냥.
5.
저 대자보가 회자되고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저 자리엔 비슷한 내용의 대자보들이 숱하게 붙었었을테고, 저 대자보를 쓴 친구도 이미(아마?) 저 자리에다 여러차례 무언가를 호소하고 바랐을거다. 다만 그걸 보지 '않은' 것은. 쿨하게 살아야만 견딜 수 있었고 잉여를 자처해야만 좀 덜 부끄러웠을 사람들, 나나 당신. 그렇게 할 말도, 들을 말도 조금식 빼앗겨버린 사람들.
(어쩌면 저 대자보 사진 뒤에 보이는 종이들이 어느 토익학원이나 유학원, 혹은 대기업 공모전 포스터일 것이란 짐작이 어렵지 않다.)
6.
새벽에 괜히 센치해져선 이런 되도않는 중언부언을 끼적이고 있지만 이건 올곧이 부끄러움이고 그래서 자기위안이다. 다만.
비록 어느 순간 행동하고 나서고 또 깨지고 쥐어박히고 하지는 못해도. 말만이라도 그것만이라도. 말만은 잃지 말아야지. 늘상 들었던 말이 "주댕이만 살아가지고"였으니 그나마 산 주댕이라도 고이고이 간직하고 살아야지. 그래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시험지를 채우거나 이렇게 누구 하나 읽지도 않을 잡설을 끼적이는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지.
7.
여담이지만, 대학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던 대자보도 그렇고 저 학교는 대자보 참 잘 쓰네.ㅋ
내가 쓴 (악필)대자보를 보고 굳이 뜯어와서 "학우들 우롱하지 말라"던 그 잔인한 기억이 문득 새록새록하구만. 대자보 꿈나무를 짓밟았어.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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