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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올해의 영화 / 음반





올해도 영화 / 음반 결산.

돈도 안주는데 이런 거 참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돈 주면 더 열심히 해요.


어쨌든 영화 음반 각 10개씩.



# 영화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홍상수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면 많은 걱정을 하게된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더 나은'상황을 고려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더 나은 상황을 고려하느라 진심이나 솔직함 같은 건 선택의 고려 요소가 아니게 된다.


그동안 홍상수의 영화는 선택의 그 덧없음을 보여줘 왔던 것 같다. "그렇게 따져봤자 어차피 안될거야. 병신들아" 같은 느낌. 이 영화라고 '어차피 안될'상황이 나아졌겠냐만 그래도 어차피 안될 상황에 대한 위로 정도일까. 우리의 삶은 어차피 안될 거고 실망할 테지만 지금 이순간 솔직할 수 있다면, 삶에 조금은 충일할 수 있다면 그래도 아주 약간, 이 뭣같은 삶에서 희망의 부스러기라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올해의 영화. 

이 영화를 보러 들어가던 날의 생각과 그리고 다시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이 느낌을 흘리고 싶지 않아요.


- 자객 섭은낭 / 侯孝賢, Hsiao-hsien Hou  





거장이라는 이름은 공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비정성시와 연연풍진 (특히 연연풍진)은 살며 본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영화기도 하다. 허우샤오시엔이 무협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장풍 쏘고 낙엽밟아 날아다니는 무협은 아닐 것을 알았다.


영화의 무협은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고 섭은랑이라는 인물 역시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 자객이라는 비인간적 직업이 인간의 범주를 넘지 않고 존재했을 때 나타날 갈등 고민 연민이 그대로 담겨있으며 서기는 그 감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 (서기 누나는 여전히 완전 멋있다.) 


화려함보다는 수려함에 가깝고 침통보다는 아련에 가까운 화면이 백미다. 새로운 무협영화 장르가 개척됐고, 그 첫번째는 이 영화다. 



- 스파이 브릿지 / Steven Spielberg





냉전시대 이야기고, 스파이 얘기인데 심지어 스필버그가 만들어서 별로 보고싶지 않았는데.

반공영화는 아니고 미국 만세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삶을 위대하게하고 세상을 유지시키는 것은 정의로움과 그 정의를 지켜내는 신념이라는 아주 당연한 상식에 대한 영화. 


신념은 내용이 아니라 신념 그 자체만으로 위대하고 사실 온전한 진실과 정의는 어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는 장면처럼. 그 장면에는 모두 4개의 시선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 거울속에 비친 남자, 자화상 속에 그려진 남자,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는 나까지.

(그래서 모든 것엔 옳거나 그름이 없다는 양비/양시는 아니다. 그 믿는바를 지켜내려는 모든 신념이 위대하다는)


톰 행크스는 스필버그의 페르소나임에 틀림없고 스필버그는 거장임에 틀림이 없나보다. 그래도 난 ET가 여전히 제일 좋은데.



 

- 한여름의 판타지아 / 장건재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사람 '사이', 극과 다큐멘터리 '사이',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사람 '사이', 스크린과 관객 '사이', 카메라와 배우 '사이', 배우와 배우 '사이', 말과 말 '사이'


사이에 관한 영화이고 영화란 본질적으로 그 사이를 포착하고 담아내는 작업임을 알게하는.

그 사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도 감독과 관객 저마다 제각각일테고 그 제각각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사실 삶의 매력이기도 하겠다.


영화는 시종일관 선량하고 예쁘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으니 로맨스 영화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여행지에서 만난 낮선 사람과의 사랑은 비포 선라이즈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뭐가 됐건 영화를 보고 나와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삶이 늘 그렇지 뭐. 현실은 시궁창. 젠장. 




- 버드맨 / Alejandro Gonzalez Inarritu 





다시 사랑받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보단 사랑받은 적이 있기나 했던가.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버드맨의 가면 같은 건, 그러니까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같은 건 어쩌면 사랑을 받기 위한게 아니라 하기 위한 것.


삶은 늘 역설로 흐르고 인과는 무시되는 것처럼 보이거나 가끔은 정말로 무시되기도 하지만 삶의 불확실성이야말로 불확실한 삶에 세상이 주는 가장 따듯한 위로.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기는 참 힘들고 사랑은 주기보다 받고 싶은 법. 사실 영화 한 편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질까.ㅋ


이냐리투는 그동안 죽음과 감정이 베베꼬이는 영화들을 만들어내더니 버드맨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어냈다. 아닌게 아니라 좋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은 이렇게 변하고 발전하는구나. 




- 킹스맨 / Matthew Vaughn





'매너 매잌스 맨'. 올 상반기 최고의 유행어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오락영화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통쾌함과 뻔뻔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007도 사실은 실체를 모르고 (어쩌면 007에게 지령을 줄 것같은) 있을 듯한 고급 요원들이 아서왕과 기사의 이름을 받고 수제 양복과 포마드 잔뜩발라 넘긴 머리를 하고 앉아서 벌이는 그.


스냅백과 블링블링 악세사리를 차고 앉아 햄버거를 먹고 스마트폰을 무기삼아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과 대비되는 정갈함. 


뭐 내용이 필요한가. 그 잔혹한 액숀신에 흐르는 엘가 같은 게 이 영화의 요체고 전부다. 


그리고 콜린 퍼스의 간지. 갓양남의 전형일까. 

  



- 소셜포비아 / 홍석재





영국의 퍼기경은 SNS를 인생의 낭비라고 표현하셨다. (그러니까 퍼디난드 이 양반아 축구 좀 잘하지.)

혹자는 SNS를 시간(S) 낭비(N) 서비스(S)의 줄임말이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트위터와 페북을 끊고 모두 싸이월드 블로그의 세계로 돌아오세요)


소셜포비아는 스릴러 같거나 추리물 같지만 매우 엉성하다. 그렇다고 그 엉성함이 흠결은 아니고.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 첨예화되어 하나의 정언명령이 된다. "다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윤리학의 유일한 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 세계가 보거나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은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 나 자신으로 말하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밖에서도 다 보이는 집을 짓고 싶어 했던 한 로마인이야말로 가장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병철 <투명사회>


영화가 보여주는 건 우리사회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SNS의 폐해들이다. 마녀사냥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바보같은 말과 행동들이 이를 통해 전파되고 있는지. 음모론 같은 거.


엉성한 남자애들이 나오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엉성하게 흘러도 어색하지 않고 실제 세계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것도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어쨌든 결론은 이 세계에서도 우리들은 모두 패자에 불과하다는 것.


“디지털 파놉티콘의 특수성은 무엇보다도 그 속의 주민들 스스로가 자기를 전시하고 노출함으로써 파놉티콘의 건설과 유지에 능동적으로 기여한다” 같은 책

 

인디영화씬의 핫피플 변요한과 이주승이 동시에 나온다. 

그러고보니 이제 얘들은 인디영화씬의 핫피플이 아니라 그냥 핫피플이지. 



- 베테랑 / 류승완





얼마전에 개봉한 내부자들이 노렸던 건 베테랑이 가졌던 지위였겠지만 그러려면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안됐지.


영화는 시종일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악을 꾸짖는다. 분명 우리사회의 모순을 규명하는데는 더 많은 언어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사실 2시간 남짓의 오락을 위해서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통쾌한 일침과 꿀밤.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부를 수 있고, 그 새끼한테 꿀밤 날려주는 좋은 형에게 박수치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구조. 여기에서 필요한 건 깊이가 아니라 정확함이다. 황정민과 유아인, 유해진은 모두 정확했고 그래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유행어가 될 듯한 명대사까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같은. 이건 사실 강수연이 술 마실 때 배우들과 종종하는 건배사라고 한다)


장점이 명확한 만큼 한계들도 비교적 뚜렷한데,

구조적 모순에는 침묵하던 경찰조직이 '내 새끼'가 다치자 몽땅 나선 다는 점이나, 일상적 폭력을 희화하고 있다는 점이나,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감안할 수 있는 범위'보다 과한 마초적 언어들이라든가. 

(그래서 사실 이 목록에 넣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한국영화도 너무 없고...)



- 잡식가족의 딜레마 / 황윤





우리는 늘 고기를 먹지만 그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고기 역시 생명이고, 그 생명의 존엄성을 갖는다. 사실 존재하는 모든 먹거리는 다 생명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의 죽음을 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때문에 온정적인 태도로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삶을 인정할지 묻는 것. 그리고 내 생이 어떤 죽음을 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감사히 여기는 것, 나 역시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을 아는 것. 


인간은 본래 채식을 하는 생물이 아니므로 나 역시 원칙적인 채식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대인의 섭생이 과도한 육식에 매몰돼 있고 그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자본이 소용되고 있으며 지구 생태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야. 현재 지구에는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와 돼지가 있고 그네들이 뿡뿡 내뿜는 방귀와 가스들이 메탄가스란 이름으로 지구를 병들게 한다. 그들이 먹어재끼는 옥수수가 토양을 갉아먹고 있기도 하고.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자본주의가 부채질한 풍경이고. 


황윤 감독은 이번 총선에 녹생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다. 이 포스팅에는 그녀와 녹색당의 선전을 바라는 마음이 아주 많이 담겼지만 사전 선거운동은 아니다.



- 아무르 포 / Jessica Hausner 





폰 클라이스트는 천재 극작가였지만 자살했다. 생전에는 아무도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고 극도로 가난했던데다, 조국인 프로이센은 식민지나 마찬가지였고, 연애도 잘 안됐다고 한다. (게이였다는 얘기도 있고) 여튼 그는 베를린의 어느 강변에서 유부녀와 함께 동반자살했는데, '유부녀와 동반자살한 천재 극작가'라는 모티프는 그동안 몇 번이고 영화화 됐어도 이상할 게 없는 소재되겠다. 낭만적이지 않은가 말이야.


영화 속 클라이스트가 실제의 클라이스트와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영화는 주로 동반자살한 유부녀 헨리에테 포겔의 입장에서 그려지는데 이 언니가 좀 멍청하다. 난 동반자살로 표현되는 자살 대부분이 사실은 살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남의 손에 맡길만큼 유약한 건 결국 멍청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게다가 둘은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에반해 클라이스트는 또라이 기질이 코믹스러울 정도로 유쾌한데, 압권은 보는 사람마다 동반자살을 제안하는 장면. 그 유쾌함이 혁명 이후의 유럽과 그 지독하고 갑갑한 세상을 살아가는 천재의 염세를 잘 그려내고 있다. 


덧,

전주영화제에서 히트를 했다는 소문에 전주는 못갈지언정 어둠의 경로를 통해 힘겹게 구했는데, 자막 ㅆㅂ.

  







# 음반



- 모노톤즈 / Into The Night





“난 처음부터 록 스타가 되고 싶었다. 아니면 의미가 없지. 비틀즈한테 고무가 됐었는데, 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지. 내가 그랬거든. 로큰롤을 처음 들었을 때 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차승우


청년폭도맹진가와 청춘98을 듣고 자란 차차키드에게 모노톤즈는 평가나 왈가왈부의 대상은 아니다. 그야말로 락스타, 경배의 대상. 로큰롤은 차차고, 차차의 음악은 로큰롤이다. 여기서 로큰롤은 일개 장르따위가 아니라 삶의 태도 같은 건데, 로큰롤을 들었을 때 행복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차차의 말처럼.


문샤이너스 해체이후 차차가 박현준과 밴드를 만들었다는 소문, 보컬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 음악이 거의 완성됐다는 소문, 박현준이 결국 밴드에서 나갔다는 소문. 뭐 이런저런 소문들만 들으면서 간간이. 하지만 모노톤즈가 나온다던 락페스티벌에도, FF에서 했다는 데뷔공연에도 가지 않았다. 삶은 로큰롤이 없이도 굴러갔고 더이상 로큰롤은 곧 행복을 의미하지도 않았던. 블로그 이름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름을 바꿀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았던 날들. 하지만 다시 모노톤즈의 노래를 듣고있다. 그리고.


모노톤즈의 노래를 뭐라고 말해. 그게 뭐든 난 다시 시작했고, 공연날짜를 기다리고 있고, 또 사랑을 찾을 거고, 행복해질 거다. 가끔 방황해도 괜찮고, 질퍽하거나 암울해도 괜찮다. 그래서 다시, 그렇게, 로큰롤하게. 삶을 행복하게 살아도 괜찮다.


그래도 Let's Rock'n Roll   



강허달림 / Beyond The Blues





강허달림은 독보적인 블루스 보컬이다. 사실 한국은 블루스 풍토가 워낙에 척박해서 마땅히 대중적인 블루스 보컬 하나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만.


2집에서 어쩐지 이모같은 노래로 살짝 엇나갔던 노래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쓸쓸하고 사무치는. 블루스는 그래야 제 맛. 그보다는 어떤 노래를 불러도 블루스가 되는 보컬이 된 느낌일까. '기슭으로 가는 배'나 '이슬비', '거리' 같은 트랙을 들었을 때 그런 느낌이 선연하다.


리메이크란 원곡의 후광에서 멋어나지 못하거나 어설픈 도전으로 이도저도 아닌 우스꽝스러움이 되기 십상인데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아 좋았다. 마치 처음부터 자기 노래였다는 듯이.


얼마전에 본죽 광고에 강허달림의 노래가 나오던데, 

무엇보다 강허달림이 꿋꿋하게 블루스 보컬이었으면 좋겠다.  



- Kendrick Ramar / To Pimp A Butterfly





켄드릭 라마를 처음 들은 건 몇 해 전 '컨트롤 비트 대전'때문이었다. 사실 힙합은 그렇게 즐겨 듣는 편도 아니고. 어쨌든 켄드릭 라마는 컨트롤 비트 이후 "새 앨범이 나왔다니 들어는 봐야지" 정도.


켄드릭 라마의 랩은 어떤 의미에서 랩보다는 선언이나 연설과 같다고 생각했다. 'I'나 'King Kunta'같은 트랙들. 돈 많이 벌고, 예쁜 여자하고 섹스하고, 약이나 쭉쭉 빨아먹고 다니는 걸 자랑하는 게 전부인 노래가사랑은 다르게. 


무엇보다 전자음에 기반하거나 훅이 강한 멜로디만 넘실대는 주류힙합.(이라고 표현하기에 내가 뭘 딱히 대단히 많이 듣는 건 아니다만, 나 같은 애가 찾지 않아도 들었으면 주류힙합이겠지)에선 잘 들을 수 없는 음악. 펑크나 재즈에 가까운 사운드들도 매력적이다. 신나고 잘한다.의 느낌을 넘어서 분명 한 획, 내지는 거장의 냄새가 폴폴. 

(I를 듣다가 마틴 루터 킹을 생각했는데, 자기는 쿤타킨데라네. 역시 나 같은 범인과는 다르다.ㅋ)


비트나 따라하지 말고 좀 제대로 따라했으면 좋겠다.


- 정차식 / 집행자





"귀신 나올 것 같다"던 얘기처럼 그의 음악은 귀곡락이다. 듣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그렇다고. 코드 몇 개를 펼쳐놓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옮겨적으면 그게 노래.라니 그게 작곡이냐 신탁이지.ㅋ


정차식의 음악은 격려, 위무 이런 것들하고는 상관이 없다. 노래는 지난 '황망한 사내'에서보다 더욱 처절하고 고달파졌다. 할렐루야라니. 절대자인 아버지에게 구원을 갈망할만큼.


하지만 힐링이니 하는 거짓부렁 상품이 넘쳐나는 와중에 차라리 죽도록 힘들다며 "무엇을 선택해도 후회되며 어디로 가려해도 꿈이라 허무하다"는 말은 차라리 위로에 가깝다. 나도 사는 게 좆같애. 힘내라고, 내가 너를 힐링해 주겠다고 덤비는 사기꾼들 틈새에서 그만 오직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느낌. 한 번만 더 내게 힘내라고 말하면 침을 뱉어주겠어요.


  

- Bob Dylan / Shadows In The Night





예전에 며칠 연속으로 밥딜런이 죽는 꿈을 꾼 적 있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가장 죽지 않았으면 하는 뮤지션이 밥딜런인가보다. 이 나이 든 히피는 여전히 한 순간도 안주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영광 같은 건 모른다는 듯이 연이어 앨범을 내놓다가 36번째 정규앨범마저 내놨다. 36집 가수라니.


시나트라의 노래들을 다시 부른 10곡으로 채워진 앨범은 이 노래가 원래 시나트라의 노래였나 싶다. (My Way는 없다.ㅋ) 전형적인 헤테로섹슈얼 마초 남성이었던 시나트라와는 또 다른. 시나트라의 도시적 우울함, 그러니까 30년대 뉴욕 뒷골목, 마피아와 시가같은 목소리보다는 더 관조적이고 더 쓸쓸하다. 70이 넘은 노인이 지나간 세월을 조망하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은 Auyumn Leaves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온갖 드라마 같은데서 늘 끈적끈적 흐르는 노래인 이 곡을 더할 수 없게 담백하게 불러버린다. "가을 정도 지나는 게 뭘 그리 거창해"하는 것처럼.


하지만 나이든 히피의 목소리가 짙은 허무따위는 아니다. 오히려 삶을 관조해서 더욱 희망적인. That Luck Old Sun 같은 노래. 


Like that lucky old sun. Give me nothing to do But roll around heaven all day.

저 나이든 행운의 햇살처럼, 

천국을 배회할 일 말곤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아주세요. 


할아버지처럼 늙고 싶네요.



- 혁오 / 22





눈독 들이고 있던 밴드가 유명해지는 건 기분이 나쁘면서 동시에 좋은 일이다. 장기하나 국카스텐 같은. 이젠 지들 입으로 '나만 알고싶은 밴드'라고 말하는 혁오도 그 중 하나 '였다'. 망할 무한도전.


여튼 정규앨범 한 장 내지 않은 주제에 기똥찬 음악을 해내는. 이걸 어떻게 구분해야하나. 소울도 아니고 펑크도 아닌 것이 가만 듣다보면 알앤비같기도 하고. 여튼 제일 좋아하는 트랙은 'Hooka'인데 끈적거리면서 느끼하지 않은 오혁의 보컬이 가장 매력이다. (공드리가 제일 좋아. 라고 누가 말하길래 후카 끝나면 공드리 나와. 로 정리했다.. 이래저래 다 좋다는 얘기다.ㅋ) 요즘 표절 얘기도 나오고 방송에 너무 노출돼 이런저런 하마평에 시달리는 모양이더라만, 결국 나온다는 그 정규앨범이 모든 걸 설명하겠지.



- 이승열 / SYX





지난 앨범이 너무 실험적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유앤미블루 시절이나 솔로 1,2집 정도의 정서로 조금은 돌아온 느낌. 이거말곤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그냥 마냥 좋은데. 올 해 가장 많이들은 앨범. 이자 올 해의 음반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지난 V 부터 뭔가 확고해진 형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기다리던 유앤미 블루는 이제 물건너 갔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보다는 이제 기다릴 의미가 없겠다는 느낌에 더 가깝겠다. 한국에서 '음악'을 가장 잘하는 남자. 라고 부르고 싶은. 


'a letter from'은 세월호 이야기다.

깊은 물 속에서 온 편지. 




- Jamie XX / In colour





트랜스나 EDM을 영 듣질 않아서 가끔 뒤처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클럽을 안다니는 게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클럽에서 날 안받아 줄거라는 게 문제, 나이트가 더 체질이라는 게 더 큰 문제) 하지만 영 뚱땅거리는 소리가 익숙해지질 않았다.


올 여름에 EDM을 좀 '공부'하고 싶어져서 친구에게 물었더니 Jamie XX를 추천해줬다. 이걸 듣고도 맘이 동하지 않으면 다 텄으니 그냥 LA 메탈이나 들으라며. 다행히 다 트진 않았는지 이후에도 이 앨범을 꽤나 많이 들었는데, 특히 노동요로 이만한 게 없었다. 하반기에 나온 내 대부분의 글들은 대부분 여기에 힘입은. (지금도.ㅋ) 


클럽사운드에도 우아함이. 

얼마 전에 데미안 라이스를 폄훼하다 반성했던 일도 있고. 음악엔 편견을 두면 안된다.



- 김사월 / 수잔





김사월을 처음 본 건 우연히 따라간 김사월 X 김해원의 공연. 어쩐지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인디씬의 여성 솔로에게 포크는 드문 장르가 아닌데, 그게 너무 지나쳐서 이제는 좀 지겨울 지경. 이런 상황에서 김사월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예쁘기만 하지 않은 노래지만 예쁘다. 이 말도 안되는 문장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김사월의 앨범 커버에 있는 사진을 봐도 그렇다. 예쁘지 않은데 예뻐. 이상하게 예뻐.

퇴폐적이지만 참 곱다.   

 


- Steve Hackett / Wolflight





프로그래시브는 폼잡고 싶어서 듣기 시작했다. 뉴트롤즈나 QVL같은. 

그러다 학교 앞에 '르네상스'라는 펍의 사장님한테 물려서. (그 아트록밴드 르네상스 맞다. 신도시의 대학가 앞에 르네상스라니!!) 프로그레시브의 세례를 받게 됐는데, 괜히 QVL 노래를 신청했던 게 화근이었다. 여튼 거기서 맥주 공짜로 엄청 얻어먹었다. 스티브 해킷도 그 때 그 사장님이 소개해준. 씨디도 한 장 주셨다.  


아무튼 스티브 해킷 할아버지는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는 록음악계의 흰수염해적. 힘이 괴물같아서 아직도 엄청난 대작들을 막 쏟아낸다. 'Love Song to A Vampire'같은 거. 9분이 넘는데 후반부는 심지어 메탈 사운드도 나온다. 


아트록 앨범들은 대부분 한바퀴를 다 듣고 나면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고전파 클래식은 듣다가 간간히 졸기라도 하지. 이건 뭐 졸만 하면 쾅쾅거리니까.ㅋ


여튼 올해의 아트록 앨범을 끝으로 연말 정산도 끝.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