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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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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1월이다.
바람은 달력을 보기나 한듯이 어제와 다르게 차가워진다. 하루저녁 서울을 떠나있었을 뿐인데 돌아온 서울은 겨울이다. 마치 남반구로의 먼여행이나 다녀온듯이. 가을은 그렇게 찰나의 계절이다. 변화하고 영글어가며 마침내 사그라든다. 발아해서 영글고 사그라드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사는 일도 마찬가지라 생기고 영글고 사그라드는 일은 순리와 같은 것이다. 하여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엔 없다. 영그는 가을은 찰나기 때문이다. 여름에 가장 뜨거운 빛을 받은 열매가 가장 향기롭다.
여행갔던 곳에서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다 어느집 마당에서 모과를 몰래 하나 따왔다. 향기가 좋다. 여름에 빛을 많이 받은 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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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달력은 일년중 가장 지루하다. 빼빼로데이같은 억지스러운 날말곤 뭐하나 주워먹기 힘든날이다. 계절도 마찬가지다. 11월의 날씨라는 것이 가을이라기엔 스산하고 겨울이라기엔 어설프다. 이미 낙엽은 다 떨어져서 오곡백과의 풍성함보다 앙상한 가지의 불안함이 더 어울린다. 눈이 내리지 않으니 포근하지도 않고 김장을 담그기엔 뭔가 이른듯하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그런 얘기를 했다.
그저 솔직하고 건강해서 초롱초롱한 눈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는 지나버린것 같지만, 세월을 담은 엷은 미소를 띄우기엔 아직 덜 여문. 불타오르자니 식었고 잔향을 남기자니 설익은.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주변인. 주변인은 자고로 질풍노도라고. 2차성징따위 이미 지났지만 여전한 주변인.

어중간하고 이러지도 못하는 11월의 달력을 바라보다가 빠르게만 흘러가는 시간을 생각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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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다시 안들리기 시작한다. 불안하구만.




어떤날 - 11월 그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