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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재인 - 박민영, 사실 오직 그녀가 답이다




뿌리깊은 나무와 영광의 재인이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기 시작했을 때, 내심 더 마음이 갔던 쪽은 오히려 영광의 재인이었다. 그건 오직 박민영 때문이었는데, "뭐야, 김탁구잖아"라는 반응이 떠올랐던 첫 회의 미적지근함과 "우라질, 지랄하네"를 중얼거리는 세종, 심지어 송중기의 자태를 뽐내던 뿌리깊은 나무의 위용에 박민영에 대한 사랑도 잠시 미적지근해졌었다. (여기서 '민영아, 오빠가 미안해' 라고 하면 나 완전 오덕 인증하는거임?)

여하튼 뿌리깊은 나무에 밀려 본방사수가 힘들었던 영광의 재인의 밀린 부분들을 어제, 오늘에 걸쳐 다시보기했다. 보고났더니, 이거 생각보다 더 재밌는 드라마였네.

# 자본주의 우화

옛부터 자고로 캔디라 함은 돈 앞에 의연해야 했다. 나쁜 짓하고 돈으로 떼우려는 재벌 2세에게 "돈이 전부인 줄 아느냐, 일단 사과부터 해라"라는 대사를 날려주는게 자고로 모든 신데렐라, 캔디류의 드라마 첫 회였다. (그럼 그 당당하고 올곧은 성품에 재벌 2세가 홀딱 반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엄청 예뻐서 반하는 거다. 캔디는 주로 김희선이나 최지우가 했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캔디는 돈 앞에 의연하지 않다. 돈이 지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말로 꿋꿋하던 그녀들은 지고의 가치인 돈을 벌기 위해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는 꿋꿋함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건 아마 사랑과 낭만으로 살아 갈 수 있었던 시대의 캔디들에 비해, IMF에 사춘기를 보내고 FTA의 시대에 연애를 해야하는 신자유주의형 캔디들이 갖는 삶의 태도때문이겠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에 맞춰지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캔디. 어쩌면 우리도, 그녀들도 그걸 인식조차 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건 극중의 허영도 팀장의 대사에서도 나타난다.
"정말 비참한 건 잘못을 잘못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거야"

여담이지만 모 기업의 광고가 마뜩찮은 것도 같은 까닭이다.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좋아질 것도 많다는 말'이라던가. 그건 역시 쌓아올려 나아가는 것만이 오직 옳은 일임을 강변하는 말이다. "돈 벌자고 그런 짓은 할 수 없어요"대신에 "뭐든지 열심히 해서 돈 벌거에요. 빠샤"가 꿋꿋함의 상징이 되는 시대.

조금 유치했지만 영광의 재인은 이런 세상을, 그러니까 세상을 구성하는 계급의 잔인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그곳은 가족을 찾는 일 마저도 '처음엔' 돈의 힘을 빌려야 했다. 주인공들의 정직한 심성은 돈을 대하는 태도로 그려지고, 타인에 대한 호감과 사랑 역시 돈으로 표현된다. 오직 돈만이 세상의 모든 언어고 감정이고 윤리인 시대, 바로 지금. 

# 그래도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보려고 해요

이렇게 한 줄이라도 끄적거리고 싶게 만들었던 건 저 진부하고 오글거리는 대사 때문이었다. 진부하고 오글거리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에 남겨놓아야 하는 말, 희망.

그토록 싫던 서재명 회장과 닮아가던 재인은 마침내 답을 찾았다. 그건 직원이 곧 회사라는 아버지의 말씀. 그녀는 다시 사람이 희망이라던 어느 시인의 말을 읊조리면서 모든 희망을 사람에게 건다. 어디서 보기만 하면 하악거리는 소재인 '노동자 자주경영'. 그게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얘기일테다.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물려가도 우리 서로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면 살아 갈 수 있다는 얘기. 역시 모든 우화는 오글거려도 새겨들어야 하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있다. 그들이 권하는 선이란 사람이고, 그들에게서 발견한 희망이었다. 

재밌었던 건 내내 영광의 재인의 앞길을 막았던 뿌리깊은 나무의 주제의식도 같았다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은 책임이기 때문에 책임질 수 있는 몇몇이 해나가야 한다는 정기준과 정치의 주체는 책임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함께 토론하고 쟁명하여 고통스럽더라도 책임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세종의 대립. 그건 사람에게 희망을 걸 수 있는 이와 그럴 수 없는 이의 대립이었다. 정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어떤 답도 내리지 않는 것으로 안일하지 않은 대답을 내놨다면, 영광의 재인은 말했다시피 조금 유치하고 조금 조악하지만 결코 거부 할 수 없는 희망으로 대답한다. 그건 재인이 '기적'이라는 무기를 들고 극을 이끌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희망은 어쩌면 이뤄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기적같은 희망을 가져요"

냉철하고 정확한 눈도 좋지만, 때로는 무조건적이고 근거따위 없더라도 마냥 희망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도 반가운 법이다. 재인이의 기적처럼.

# 박민영, 사실 오직 그녀가 답이다

고백하자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박민영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좋은 평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못되고 차가운데다 비관적이기까지 한 도시남자라서 사실 희망의 강요. 같은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적의 주체가 박민영이라 이렇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달까.ㅋ

그녀는 왜 이런 표정을 지어도 아름다운 것인가.


박민영은 예쁜데다 매우 영리하다. 그건 그녀의 작품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가 선택했던 작품들은 언제나 평균 이상의 수준을 유지한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자명고를 들먹거리는 이가 있더라만, 자명고는 박민영을 제외하더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다. 완전한 파국, 그 섬칫할 만치의 비극을 가졌던 사극이 존재하기나 했던가. 자명고는 훌륭한 상상력의 스토리와 섬세한 감수성이 스몄던 걸작. 흠이라면 시껍할 만치의 시청률과 조기종영일까. 

여하튼 이 영리하고 예쁜 배우에게 홀릭하게 된 계기는 어느 인터뷰. 성균관 스캔들이 끝나고 있었던 그 인터뷰에서 그녀는 “마지막에 대사성이 김윤식 박사라고 불렀다. 마지막까지 동생의 이름으로 박사를 한 거다. 결국 여자로서 인정받은 건 없다”라고 말했다. 극과 캐릭터를 진짜로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정말 좋은 시야를 가진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던 계기.
언제나 다음 작품이 매우 기다려지는 배우랄까.

그녀의 작품중 가장 좋아하는건 런닝,구. 종종 이렇게 단편을 찍어주면 더 좋겠다.




##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 말

예전에 SNS에 중얼거린 낙서인데,

'인생은 살 값어치가 있다는 감정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살할 만한 값어치가 없다는 감정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벤야민의 경구를 떠올리며 일평생 대충 때우다 가게되면 가고 또 아님 말지 뭐. 하다가도 어느 날은 삶에 당당히 맞서는 무사가 등장하는 무협지에 주먹이 불끈불끈 하기도 한다. 이렇게 흔들흔들 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인가보다. 생각해보니 성균관스캔들에서 정조는 나침반이 흔들리는 한 틀린 방향을 가리키진 않는다는 주옥같은 대사를 날려주신다. 그래, 답은 결국 박민영인 것이다.

이걸로 완벽히 박민영 덕후 인증.ㅋ

단상


1.
온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 안도현, 삶의 비밀

안도현은 좀 오글거리는 것 같아서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 아침 귀갓길에 갑자기 '삶의비밀'이란 말이 번뜩 떠올랐다. 뭐 이유가 있나, 갑자기 떠오른 말에. 도대체 이게 무슨말이냐 생각하다가 난 검색이 생활화된 N세대(?)이므로 구글링, 안도현의 글줄을 발견했다. 뭐 그냥 그렇다고. 난 술은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으므로, 그러니까 이건 헛소리인것.
2.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08년의 촛불에서 사람들은 거대한 희망을 보았다고 말했었다. 물론 나도. 다중지성과 창의적인 실천력, 저항의 기억들이 합쳐져서 '대중'들이 계급적, 정치적 각성에 한발 다가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촛불은 패배하고 아무것도 바꾸지도 바뀌지도 못했다. 그리고 3년, 사람들은 그때와 혹은 그 이전과 똑같아 보인다. 여전히 노빠로 대변되는 깡패들이 설친다. 이제는 박원순.안철수빠로 바뀌었지만. 그들의 광기를 호출해내는 주술사들도 있다. 김어준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문은 반지성이다. 이 소모적인 놀이의 유행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한다. 대중은 절실한 계급적 각성도 정교한 정치적 각성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못하는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놀이의 기억에 존재하는 틈새에 스미는 희망을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희망을 믿으려는 노력이다. 냉소와 절망으로는 아무런 것도 해낼 수 없는건 명확한 일이니까. 오늘의 놀이와 내일의 놀이 사이에 존재하는 그 아주 작은 차이와 틈새. 그것이 우리가 얘기하는 느리고 확실한 작은 걸음. 그 희망에 걸어야한다. 노력해야겠다.

3.


자기회사의 문제도 1면에 실어버리는 이 패기. 이것이 언론이다.

4.
어제 마신 술이 문제인가, 배탈이 났지만
또 생각나는 술술술. 이거 이제 좀 무섭다.

5.
녹색평론이 20주년을 맞았다. 기념으로 학교후배들 보라고 학생회실에 정기구독을 시켜.......주고싶지만 난 담뱃값 마련도 잘 못하는 백수 날거지. 이런 책이 있다며 슬적 추천해줘야지. 나꼼수 같은거 듣고 낄낄거리거나 학생회실에서 여자연예인들 시스루룩에 하악거리는 일 말고도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 얼마든지 있단다.

6.




조동희 언니의 1집 앨범.
올해는 정말 기다렸던 음반들이. 조동희라니.
이 언니 도대체 몇 년만이야.

소리 지르지거나 울지않고,
일부러 행복하라거나 슬프라고 강요하지도,
자기가 제일 불행하다고 징징거리지도 않는 노래.

++
누구든 내게 다가와 내얘길 들어줘
휘청이는 이세상속에 혼자하던 노래
지친 나의 맘에 귀를 기울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