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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사태를 보다가 - 우리를 위한 변명, 우리도 알아요



온라인은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관한 이야기로 넘쳐난다.
돌아다니는 사이트며 블로그가 한정적이라 모두 비정규직 철폐나 홍대 총학생회의 비겁함을 성토하는 내용들이다. 맞아. 비정규직은 철폐되어야 하고 우리의 연대는 더욱 공고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의 이야기다. 비겁한 스무살들의 비겁한 변명.

우리는 무엇도 허락받지 못하고 20년을 살아야 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은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다. 애들은 몰라도 된다는 말로 우리는 격리됐다. 자아를 구분할 수 있을 때쯤부터 우리를 키운건 팔할이 경쟁과 승리에 대한 주문이었다. 아직도 도무지 정체를 모를 그 '철'이 들기 위해서 늘 친구보다 앞서거나 타인에게 냉소적이어야 했다. 꿈? 물론 꾸었다. 어릴적 내 꿈은 판검사였다. 내 친구는 부자가 꿈이었다. 대부분이 그랬다. 꿈이란 삶의 지표가 아니라 권력이나 금력에 대한 희구일 뿐이었다. 우린 연대, 상생, 낭만, 소통, 가난 같은 말보다 먼저 경쟁, 승리, 출세, 성취 같은 말을 먼저 배웠다. 아니, 그런 말만 배웠다. 우리가 스무살이 되던 날, 우리는 대학 배치표를 끼고 앉아 있었다. 수십만명의 인간들에게 등급도장을 찍어주는 그 종이 쪼가리.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왔다.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수백만원의 방값과 수십만원의 책값을 쓰면서. 남자셋여자셋 같은 시트콤을 보면서 키웠던 캠퍼스의 낭만이나 소설책에서나 보았던 지성인의 고뇌섞인 일갈따위 대학엔 없었다. 선배들은 우희진보다 안예뻤고 송승헌보다 못생겼다. 소설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시대는 엄혹하지도 대학생들은 똑똑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취직이 어렵다는 말은 확인되지 않는 소식통에 의해 끊임없이 날아들었고 실제로 취업을 못한 선배들을 보고 있자니 찌질하고 갑갑했다.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이젠 소 한마리 팔아선 등록금 어림도 없다. 심지어 구제역 파동이라니.ㅋ

무엇보다 펜을 들어야 했다. 이 중에 몇 명만 취업하고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게 나여야 한다. 부모님이 뼈빠지게 모아준 등록금 허투로 쓸순 없다. 아파서 결석하는 친구가 걱정은 되지만 굳이 나서서 변호를 해주고 출석을 인정받게 해주고 싶진 않다.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차피 그게 세상사는 이치인거다. 20여년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 그렇게 밀려서 서울대에 가지 못했고 그렇게 밟아서 그래도 이 학교에 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더럽고 아니꼽지만 어쩔텐가, 그게 세상인데.

우리가 이기적이고 비겁하다는 말쯤, 한심하다는 말쯤 이미 수없이 들었다. 위로한답시고 이해한답시고 하는 말들도 들었다. 88만원 세대니 어쩌구 하는. 하지만 "우리를 동정하지 마 thㅔ요." 어차피 그건 우리를 위로하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인정 할 수 있다. 우리는 비겁하고 나약하다. 타인의 목숨줄보다 내 학점과 스펙이 더 중요하다. 이게 나쁘다는 것도 알고 그렇지 않게 분투하는 삶이 있는 것도 알고 그런 삶에게 우리가 어떻게 보일 줄도 안다. 가끔 속상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눈물이 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같은거다. 아버지에게 저항하기를 포기한 아들들. 세상에 저항하기를 포기한 아들들.

그렇다. 이건 전적으로 비겁한 변명이고 남 탓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난 그래서 키보드 앞에 앉아서 이기적이니 비겁하니 날을 세워 우리를 모욕하는 이들의 말이 싫다. 연구실 책상머리에서 우리를 이해하는 연구를하겠다고 문을 걸어잠그는 식자들도 싫다.

여기까지 써놓고서야 그래서 뭘 어쩌자는건데? 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그래, 답은 없다.
계속해서 이 유치한 싸움은 계속될거다. 하지만 한 명 정도는 비겁한 이들을 위한 변명정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위로해주지 못하니 변명만이라도. 

이건 우리 책임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