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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단상

파놉티콘 
파놉티콘을 처음 발명한건 밴담이다. 무려 200년 전. 간수 혼자서도 죄수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효율적 감옥 시스템이 파놉티콘이다. 파놉티콘이 감옥 뿐 아니라 학교, 군대, 병원, 나아가선 사회 전체에서 권력의 감시체제로 작용한다고 지적한 것은 푸코다. 그건 한 40년쯤 전이다. 파놉티콘의 '통제'에 놓인 사회에서 개인들은 분리되고 돌출된 개인은 중앙의 감시자에게 쉽게 노출된다. 쉽게 계측되고 검증된다. 피감시자들은 잠재적으로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가시성의 체제 하에서 매 순간 감시 받는다는 것을 자각하는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고 억압하게 된다. 덕분에 권력은, 감시를 통해 생명을 가두거나, 제거하거나, 억압하지 않고서도 개인의 신체와 행동에 훈육효과를 발생시키게 된다. 아, 지금은 2016년이다. 

# 테러방지법 
국가정보기관이 합법적으로 모든 국민들을 감시하고 감청할 수 있게 해주는 법안. 국정원은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다. 모든 국민은 잠재적 테러 용의자. 감시와 통제, 처벌은 용이해졌고 권력은 쉽게 돌출된 개인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 권력은 저항을 압도하고 체제는 공고해졌다. 몇년 지나면 오가작통법 같은 것도 부활시킬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만세. 아, 하일 박근혜. 뭐 이런 걸로 해야 하나. 

# 필리버스터 
김광진의 필리버스터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록을 넘어섰다고. 내 생전에 필리버스터를 생으로 보게 되다니. 이 나라의 버라이어티함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이나 샌더스의 필리버스터가 유명하고 간지도 나지만 사실 필리버스터가 일어나는 국회는 결국 후진 정치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필리버스터가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진 모르겠으나 이게 이뤄지는 동안 온 나라의 모든 이슈는 여기에 빨아먹히게 될 거다. 그리고 3개 야당들의 합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고. 여러가지 우려가 많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여의도에서 목이 터지고 다리가 퉁퉁 부을 국회의원들을 응원하는 일이다. 그래, 일단 막고 보자. 

 # 은수미 
은수미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9시간째 이어지고 있다. 곳곳에서 은수미 의원을 칭찬하거나 격려하는 기사와 댓글들이 나오는데 많은 글이 '50대의 연약한 여성의원'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이고 체구가 왜소하고 50대라서 그녀가 더욱 대단하다고 하는 건 여성이고 체구가 왜소하고 50대인 사람에겐 본래 한계가 있다고 단정하는 셈이다. 이런 이야기에서조차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선 견디지 못하는 그 치졸함이 지겹다. 공천 어쩌구 하는 발언이 나왔고, 은수미 의원은 공천을 바라서 행동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래도 은수미 의원이 우리동네에서 공천을 받았으면 좋겠고 선전을 펼치고 당선됐으면 좋겠다. 은수미 의원은 사노맹 활동으로 91년 수감됐고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사노맹을 탈퇴하지 않았다. 그녀가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녀가 주류정치에 입문하면서 많은 말이 있었고 나도 그게 마뜩치 않았지만 의정활동에서 그녀가 쌍용의 해고노동자들에, 삼성의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강정에 보인 열의를 계속 지켜봤다. 그녀는 이 망할 국회에서 몇 안되는 쓸만한 의원이었고 다음 의정활동이 그만큼 더 기대되는 정치인이다.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여야의 지도부가 만날테지만 이 유능하고 의지높은 의원들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철수 너 말이야 너. '정권교체'가 진심이라면 말이다. 

덧, 정말로 은수미 의원 지역사무소에 박카스라도 하나 놓아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