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사IN - 노동자가 소유한 ‘알짜 기업’이 한국에 있다]

노동자가 소유한 ‘알짜 기업’이 한국에 있다
‘노동자가 주인인 기업’은 구호로나 존재하는 이상인가 싶었다. 하지만 실재한다. 당신의 부엌에 있다. 프라이팬, 밥솥, 냄비, 국자, 수저 등을 만드는 주방업계 대표 기업 (주)키친아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96호] 2009년 07월 13일 (월) 11:17:20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어떤 곡절로 노동자가 기업의 경영을 맡게 되었는지, 그것도 연간 700억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영업이익만 해마다 20억원대를 꾸준히 유지하는 명품 기업이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듣자면 세월을 거슬러 가야 한다. 1980년대 산업재해와 불법해고,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만연하던 시절, 키친아트의 전신 기업인 경동산업은 스푼·포크·나이프 등을 생산하는 양식기 수출업체로 해외·국내 공장을 모두 합치면 직원 수는 7800명, 매출은 연간 1000억원대에 이르렀다. 하지만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실린 ‘손무덤’이라는 시의 소재가 되었을까. “올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대공원이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갔다 (중략)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들고/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기념 촬영을 요청하자 사장(전창협·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직원이 격의 없이 포즈를 취했다.
프레스 500대가 돌아가던 경동에서는 날마다 몇 사람씩 병원에 실려 갔다. 해서 매일 노동자 모집공고가 났다. 다쳐서 실려 가고,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속출했다. 야근, 철야는 또 어떤가. 한 달에 보름은 새벽 3시까지 일했고 여성 노동자들은 과로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래도 회사는 승승장구. 공정을 자동화하기 위해 설비투자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투자했고, 그중에서도 상당액은 비자금 용도로 흘러갔다. 당시 경동산업은 중견 건설사 삼환의 계열사로, 경영이 삼환 일가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그러다 19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삼환은 경동에서 손을 뗐다.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비대위를 결성한 직원들은 ‘40년 기업’을 이대로 죽게 할 수 없다며 회사 측으로부터 공장부지, 미수채권, 기계설비, 상품재고, 브랜드 저작권 등에 관한 소유 권리를 넘겨받고 회사 경영을 맡게 되었다. 2001년 4월의 일이다.

출 발 당시 자본금은 5000만원. 남은 직원 280여 명의 퇴직금을 갹출해 마련했고, 그 뒤로 규모를 꾸준히 늘려 현재 자본금은 8억원이다. 회사 이름은 경동산업 시절 브랜드명이었던 키친아트를 가져왔다. 키친아트는 국내 최초로 삼중 바닥 냄비를 개발하는 등 시장의 신뢰가 높은 제품이었다. 노조는 경동의
   
ⓒ키친아트 제공
키친아트의 전신인 경동산업의 옛 건물. 그 앞마당에 노동자의 땀과 피가 어린 목장갑이 널려 있다.
빚은 털되 브랜드 가치는 살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큰 밑천이 되었다. 첫해부터 흑자였다. 매출은 700억원 규모였고 영업이익만 21억원을 냈다.

공동소유·공동분배·공동책임


인천 가좌동에 위치한 키친아트 건물에는 사훈 세 마디가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다. ‘공동소유·공동분배·공동책임’ 이런 급진적인 모토가 정말 실현되고 있는 것일까?

키 친아트가 채택한 공동소유의 방식은 이렇다. 현재 이 회사 주주는 260여 명. 총주식 수인 16만 주를 260명으로 나누면 주주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주식 수다. 대주주나 지배주주 개념은 없다. 꼭 N분의 1만큼씩 가지고 있다. 경동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직원은 모두 주주가 되었는데 지금 그들 대부분은 고령으로 퇴직한 상태이고 주주로서 회사 경영에만 관여하고 있다. 공동분배도 같은 방식이다. 이익금을 주주에게 똑같이 배당한다. 주식 관리는 여느 회사와 좀 다르다. 노동자 자주 회사로서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통제한다. 주식을 팔려면 주주 가족 이외 외부인에게는 양도가 불가능하며 한 명이 소유할 수 있는 주식 수도 3명분을 초과할 수 없다. 새로 들어온 직원의 경우 3년이 지나야 주식을 살 자격이 생기고 3년 뒤부터 주식 거래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공동책임. 이 회사에서는 모두가 사장이고 모두가 노동자이다. 물론 임원과 평직원의 구분은 있지만 적대적 대립 관계로서 노사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총에서 이사(3년 임기)를 뽑지만 대표이사 개인의 책임을 묻기보다 모두가 책임을 나누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의미만 좇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 이 회사가 흑자 경영을 할 수 있었던 핵심은 간단하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가치 경영에 집중했다. 특히 하청업체와의 관계는 눈여겨볼 만하다. 키친아트는 저가의 중국산 대신 OEM(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의 국내 생산을 선택했다. 박선태 부사장은 “한 번도 하청업체를 배
   

신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경동산업이 부도나고 노조가 회사를 인수했을 때 업체들이 우리에게 물건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경동 시절에 결제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부도를 많이 맞았기 때문이다. 다시 물건을 대달라고 하니까 ‘또 부도내려고 왔냐’며 거절했다. 지금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어음발행 안 한다, 한 달 내 결제한다, 재고도 반반씩 안고 가자, 하청업체가 개발한 물건에 손대지 않겠다… 그렇게 설득했고 지금까지 그 약속은 모두 지키고 있다.”

키 친아트는 단가가 싸다고 거래업체를 바꾸지 않았다. 차라리 단가를 제품가격에 반영해 불량을 줄이고 고급화하는 전략으로 나갔다. 여기에 ‘주방 예술품’이라는 마케팅 포인트가 결합해 “키친아트 제품은 여느 국산품에 비해 20∼25% 비싸지만 그만큼 믿고 쓸 수 있다”라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키친아트의 직원은 총 27명. 이 적은 직원으로 4000종에 달하는 물건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하청업체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 덕분이었다. 

노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틀?


둘째, 키친아트의 신뢰 경영은 생산뿐만 아니라 판매에도 적용되었다.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외에도
   

키친아트에는 ‘키사모(키친아트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판로가 있다. 시중보다 싸게 파는 직거래 특판장은 퇴직한 키친아트 영업부 직원들이 맡는다. 이들이 정회원으로 있는 키사모는 하청업체 사람들도 옵서버로 참여시켜 파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상생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마케팅은 공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광고 외에 방송 광고는 하지 않는다. 사실 못한다는 편이 맞는 말이다. 수억원이나 하는 공중파 광고료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 대신 키친아트는 2006년 공익재단을 만들어 수익금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회사 정관을 통과시켰다.

우 여곡절은 많았다. 키친아트로 새 출발할 당시 노조위원장 출신에 비대위원장을 지낸 자를 대표이사로 앉혔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주식 지분도 51% 몰아주었지만 공금 횡령 등 회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로 인해 결국 퇴출되었다. 일반 회사에서는 만연한 일이지만 노동자 소유 기업이었기에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박선태 부사장은 당초 <시사IN>의 취재 요청에 “부담스럽다. 아직 고민이 정리되지 않았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스무 살에 이 회사에 입사해 이제 마흔 중반이 된 그는 생산, 영업, 노조위원장을 거쳐 해고도 당했고 4년3개월 옥살이까지 해봤다. 지금은 경영자의 위치지만 아직도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된장국 먹는 기분이란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뿐이다. 우리 주주들 손가락 잃어가며 이 회사에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청춘을 바쳤다. 그들이 일군 회사를 망쳐놓을 순 없다. 우리 후손에게 대한민국에도 이런 회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키친아트에는 노조가 없다. 경영과 노동을 아우르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게 박 부사장의 생각이다. 지금까지처럼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축소 재생산’이 아니라 생산·판매·자본의 ‘확대 재생산’을 하면서도 노동자 소유 기업의 틀을 유지하는 어떤 모델을 궁리 중이다. 그가 “키친아트는 아직 완성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
출근해서 졸린 눈 부비며 펼친 시사인을 보다가 잠이 깼다.
꿈만 꾼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
꿈도 꾸지 않으면 더 비참하게 변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꿈을 꾸어야겠다. 졸린눈 부벼 두 눈 시퍼렇게 뜨고.